

슈퍼모델의 컴백: 당신은 아웃이야
구름이 몰려와 용시의 하늘을 덮은 날의 저녁, 마지막 햇살마저 어둠에 완전히 가려졌다.
펜트하우스의 눈부신 조명이 곳곳을 감싸고 통창 너머로 반짝거리는 야경이 그림처럼 펼쳐졌다.
통창에 바싹 붙어 선 강아윤의 검은색 머리카락은 땀에 젖어 이마에 흘러내렸고, 안개 낀 유리창을 따라 물방울이 가득 맺혀 있었다. 실크 가운은 그녀의 매혹적인 엉덩이에 느슨하게 달라붙었고, 부드러운 피부는 복숭아처럼 달아올라 있었다.
바르르 떨리는 몸과 함께 마른하늘에 울리는 천둥소리가 입술을 비집고 흘러나오는 신음을 삼켰다.
남자가 뒤로 한 걸음 물러서자 온기가 사라지는 것을 느낀 강아윤은 추위에 몸을 흠칫 떨었다.
드디어 모든 게 끝났다는 안도감이 들기도 전에, 커다란 손이 그녀의 몸을 돌려놓더니 미처 가시지 않은 열기가 다시 타올랐다. 그녀의 몸은 거친 파도에 휩쓸린 것처럼 마구잡이로 몰아치는 움직임을 모두 감당해야만 했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지쳐 쓰러지고 다시 깨어나기를 반복하던 강아영이 죽음의 문턱에서 다시 환희의 희열감이 그녀를 덮쳤다.
빗물이 창문을 때리는 소리와 함께 습기로 가득 찬 공기가 눅눅하게 가라앉았다.
날이 어슴푸레하게 밝아오자 남자는 주저 없이 강아윤의 등에 몸을 붙였다. 남자는 굳은살이 가득 박인 손으로 그녀의 가녀린 손목을 움켜잡더니 그녀의 눈 아래에 난 빨간 점을 천천히 어루만졌다.
낮게 깔린 남자의 권태로운 목소리에 강아윤은 등골이 서늘해 났다.
"내가 누군지 알아? 내가 누군지도 모르고 대담하게 내 침대에 올라오지 않았겠지?"
고혹적이면서도 섬뜩한 목소리에 심장이 철렁 내려앉은 강아윤은, 강렬한 질식감에 휩싸여 덧없는 꿈속에서 벗어나지 못할 뻔했다.
연달아 가쁘게 숨을 몰아쉰 끝에야 비로소 꿈 때문에 죽는 일은 면할 수 있었다.
휴대폰의 진동 소리에 화들짝 놀란 강아윤은 화면에 깜빡이는 '재민 오빠' 이름을 확인하고 미간을 찌푸렸다.
일주일 전, 심재민의 무자비한 목소리가 다시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아윤아, 장씨 가문의 후계자 장윤재에 대해 들어봤지? 오빠 부탁 하나만 들어줘야겠어. 장윤재와 함께 하룻밤을 보내 줘. 네 언니를 내가 얼마나 사랑하는지 너도 알잖아? 소연이는 장윤재를 포기해야만 내 마음을 받아줄 거야. 도와줄 거지?"
강아윤은 당시 심재민의 얼굴에 번진 미소가 지워지지 않았다. 그의 말은 잔인하면서도 낯설기 그지없었다.
그때 그녀는 날카롭게 되물었다. "장윤재와 하룻밤을 보내고 싶어 하는 여자는 수도 없이 많은데, 왜 하필 저예요?"
심재민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너는 소연이가 제일 싫어하는 여동생이니까. 장윤재가 너랑 밤을 보내면 소연이도 장윤재를 증오하게 될 거야."
고개를 떨군 강아윤의 입가에 조소가 스쳤다. 마지막 벨소리가 끊기기 직전, 그녀는 통화 버튼을 눌렀다.
"재민 오빠, 무슨 일이에요?" 그녀의 나긋하면서도 기분 좋은 달콤한 목소리는 완벽하게 훈련된 것 같았다.
심재민은 조금 뜸을 들이다 입을 열었다. "오늘 밤에 파티가 있는데, 장윤재도 참석할 거야."
심재민이 그녀에게 먼저 전화를 거는 경우는 거의 드물었다.
"알겠어요. 시간 맞춰 참석할게요." 강아윤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심재민은 그녀에게 반박할 기회조차 주지 않겠다는 듯 빠르게 말을 이어 했다. "운전기사가 파티에 입고 갈 드레스를 갖고 갈 거야. 꼭 입고 참석해." 그의 사무적인 목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그리고 E.R 레트로 시즌 쇼 피날레 준비하고 있다고 했지? 그건 소연이한테 양보해. 다른 쇼 피날레를 알아봐 줄게."
심재민의 명령에 가까운 말투에 강아윤은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간신히 삼켰다.
당시 강소연은 강아윤이 강씨 그룹의 자산을 빼돌린다고 확신하며 그녀가 회사에 발도 들이지 못하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경쟁에 휘말리고 싶지 않았던 강아윤은 어느 날 우연한 기회에 모델 대회에 참석하며 모델이 되었다.
그렇게 하면 강소연과 강씨 가문에서 완전히 벗어날 줄 알았지만, 강소연이 작년부터 모델 업계에 발을 들이면서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심재민과 강씨 그룹의 인맥 덕분에 강소연은 하룻밤 사이에 유명 모델로 자리 잡았고, 강아윤이 발탁되었던 기회마저 모조리 빼앗았다.
강소연의 변덕은 강아윤에게 치명적인 타격으로 다가왔고, 심재민의 공도 빼놓을 수 없었다.
그는 강아윤이 힘겹게 얻은 기회를 하나도 빠짐없이 강소연에게 양보하도록 강요했고, 매번 같은 말로 그녀를 달래며 형식적인 핑계조차 찾으려 하지 않았다.
어렸을 때부터 항상 그래왔던 것 같다. 강소연이 원하는 것이라면, 설령 그것이 강아윤의 것이라 할지라도, 그녀는 늘 양보해야만 했다.
이유나 설명은 필요하지 않았다.
강소연은 강씨 가문에서 가장 사랑 받는 아가씨였고, 심재민이 자기 목숨보다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반면 강아윤은 세상에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숨 쉬는 것조차 비난받아야 할 사람처럼 여겨졌다.
"네, 재민 오빠 말대로 할게요." 강아윤은 떨리는 목소리를 애써 꾹 눌러 차분하게 대답했다.
이후 짧은 침묵이 이어졌지만 심재민의 만족스러운 웃음소리가 들릴 지경이었다.
어느새 눈빛이 차갑게 식은 강아윤은 휴대폰을 몇 번 터치하는 것 같더니 '재민 오빠'로 저장된 이름을 '바보'라고 바꿨다.
숨을 길게 내쉰 그녀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욕실로 향했다.
30분 후, 심씨 가문의 운전기사로부터 도착했다는 전화가 울렸다.
강아윤이 현관문을 열자 운전기사가 정성스럽게 포장된 상자를 건넸다. 미리 마음의 준비를 했음에도, 얇은 실크 가운을 연상케 하는 드레스의 과한 노출에 순간 당황했다.
얼굴에는 내키지 않는 기색이 역력했지만, 한숨 한 번으로 모든 불만을 삼켰다.
결국 그녀는 옷을 갈아입기 위해 침실로 향했다.
거울 앞에 선 강아윤은 예쁘다는 말 한마디로 단정 지을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다. 매끄러운 피부와 촉촉한 속눈썹 끝에 걸린 반짝임은 보고만 있어도 마음을 홀릴 것만 같았다.
그녀의 눈 밑에 자리한 붉은 점은 묘한 매력을 자아냈다. 마치 그 작은 점 하나가 사람을 빠져나올 수 없게 붙잡는 듯했다.
가녀리면서도 볼륨감 넘치는 완벽한 몸매는 압도적인 아름다움을 드러냈다.
강아윤이 모습을 드러내자 참지 못하고 곁눈질한 운전기사는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더니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강아윤 씨, 출발해도 될까요?"
강아윤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밤색 클럽은 용시에서 유명한 클럽으로 이곳에 드나들 수 있는 사람들은 재벌 가문 자제나 유명 인사들이었다.
밤색 클럽에 처음 방문한 강아윤은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곳곳을 훑어봤다.
운전기사는 그녀를 VIP 입구로 안내하며 전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최상층으로 향했다.
VIP 룸 문을 열자 화려한 조명이 곳곳을 비췄고 매캐한 담배 연기가 코를 찔렀다.
손잡이를 잡고 안으로 들어간 강아윤은 짙은 연기에 참지 못하고 기침을 하며 눈물이 핑 돌았다.
욕설이 튀어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은 그녀는 흐릿한 시야 속에서 심재민을 발견하고 억지로 싱긋 미소 지었다. "재민 오빠."
고개를 비스듬히 돌린 심재민은 그녀의 몸에 걸친 드레스를 확인하는 것 같더니 그제야 무심코 손을 흔들어 보였다. "아윤아, 이리 와."
강아윤은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 우아하게 장내를 가로질러 다가갔다. "네."
중요한 부위만 아슬아슬하게 가린 실크 드레스는 그녀의 가녀린 몸에 달라붙어 움직일 때마다 얇고 쭉 뻗은 각선미를 더욱 잘 드러냈다.
매끄러운 피부 위에 깔린 부드러운 빛은 훤히 드러난 등을 고스란히 비췄고 아찔한 모습에 눈 둘 곳 없게 했다.
사방에서 몰려오는 욕망으로 얼룩진 추악한 눈빛을 가볍게 무시한 강아윤은 방안을 둘러보며 누군가를 찾는 듯했다.
그녀의 무심한 눈빛이 구석진 곳에 있는 사람에게 고정되었다.
다리를 꼬고 소파에 기대앉은 남자는 태어날 때부터 부와 명예, 권력을 손에 쥔 사람답게 오만함과 당당함이 깔려 있었다.
잠시 스친 시선이 차가웠던 탓일까, 강아윤의 심장은 주체할 수 없을 만큼 거세게 뛰었다.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한 목적을 떠올린 순간, 온몸을 타고 전율이 흘렀다. 긴장과 흥분이 한데 뒤섞인 감정이 그녀의 모든 신경을 팽팽하게 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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