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1
"아, 좀 일어나요."
귓가에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오더니 누군가 그녀의 팔을 흔드는 느낌에 운여정은 천천히 눈을 떴다.
그녀의 팔을 흔들던 시녀는 그녀가 눈을 뜨는 것을 확인하자 흰자위를 드러내며 귀찮은 기색을 숨기지 않고 말했다. "노마님 생신 잔치 늦으면 또 나만 혼나지."
운여정은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죽기 전의 순간과 눈앞의 광경이 겹쳐 보이며 마치 환상에 빠진 것 같았다.
쇠사슬이 뼈를 꿰뚫고, 채찍이 살을 파고들며, 독약이 장을 찢는 등 온갖 고문으로 인해 사설 감옥은 그녀의 피로 물들었다.
결국 모진 고문 끝에 죽은 후에는 뼈마저 가루로 만들어져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짙은 피 냄새가 코끝에 맴돌고 온몸이 여전히 끝없는 고통에 시달리는 듯했다.
운여정은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온몸의 고통이 조금 가라앉고 눈에 들어온 것은 여전히 능소화가 수놓아진 휘장이었다. 촛불 아래에서 꽃잎이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았다. 이것은 그녀가 출가하기 전 규방에만 있던 고유한 자수 무늬였다!
정신이 번쩍 든 운여정은 고개를 살짝 돌려 시녀의 앳된 얼굴을 바라봤다.
예전에 그녀를 모시던 시녀 향단, 전생에 그녀를 괴롭히고 비참하게 죽게 만든 원흉 중 한 명이었다!
향단은 그녀가 멍하니 있는 모습을 보고 혐오스러운 눈빛을 흘기며 비꼬는 투로 말했다. "내숭 떨지 마요. 연화못 물이 깊지도 않은데."
"선영 아가씨는 그 귀한 몸으로도 멀쩡하신데, 촌에서 구르다 온 아가씨가 엄살은……"
향단이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운여정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팔을 크게 휘둘러 향단의 뺨을 가차없이 후려갈겼다.
손바닥이 얼얼해진 운여정은 그제야 자신이 다시 살아났다는 것을, 그것도 그녀의 인생을 바꾼 중요한 날에 돌아왔음을 확신했다.
향단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깜짝 놀랐다.
알다시피 이 여정 아가씨는 시골에서 돌아온 지 며칠도 되지 않아 온갖 추태를 부렸고, 성격도 나약하고 소심했다.
후부인 주문숙, 즉 여정 아가씨의 생모인 그녀는 운여정의 격식 없고 촌스러운 태도를 가장 싫어했으며, 자신의 딸이 시골에서 자랐다는 사실에 화가 나 사람들 앞에서 꾸짖을 뿐만 아니라 얼굴조차 보려 하지 않았다.
생모도 이런데, 후부의 다른 주인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하인들은 눈치껏 행동하며 아무나 그녀의 머리 꼭대기에 올라서려 했다.
이전의 운여정은 말대꾸조차 한 번 한 적이 없었으니, 손찌검은 더더욱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얼굴에 느껴지는 불같은 통증에 정신이 번쩍 든 향단은 얼굴이 일그러지더니 날카로운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이 년이 미쳤나! 내가 누구 사람인 줄 알고 손을 대?!"
운여정은 들끓는 감정을 감추고 온기라곤 없는 싸늘한 눈빛으로 향단을 내려다보았다.
그녀는 향단과 입씨름할 가치도 없다는 듯, 그저 손을 들어 정확하고 매섭게 뺨을 연달아 후려쳤다.
이런 입이 더럽고 심보가 고약한 앞잡이는 다시는 입을 놀리지 못하도록 가차없이 때려야 마땅했다.
향단은 머리가 어지럽고 양쪽 뺨이 벌에 쏘인 것처럼 아프고 부어 올랐다.
그녀는 운여정이 정말 미쳤다고 생각하고, 여전히 웅얼거리며 욕설을 퍼부었다. "그래, 드디어 본색을 드러내는구나!"
"마님 얼굴에 먹칠을 해? 마님이 널 가만둘 것 같아?"
다시 후부인이 언급되자 운여정의 손이 멈칫했다.
전생에 홀로 떠돌던 그녀가 가장 갈망했던 것은 바로 가족의 정이었다. 후부 사람들과 가까워지기 위해 스스로 몸을 낮추고 비굴해졌으며, 어떤 굴욕도 참아냈다.
늘 자신이 부족하기에 어머니와 후부 사람들이 자신을 싫어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인심이 얼마나 박한지 뼈저리게 겪은 지금, 어찌 같은 실수를 반복할 수 있겠는가?
향단은 그녀가 손을 멈춘 것을 보고 자신의 말이 효과가 있다고 생각하며 눈에 득의의 빛을 띠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그녀의 뺨에 다시 손바닥이 떨어졌다!
이번에는 더욱 힘이 실려 있었다!
그제야 두려움을 느낀 향단이 고개를 들자, 운여정의 눈빛이 한겨울의 얼음처럼 차갑게 식어 있었다. 촛불에 비친 그녀의 눈빛은 더욱 깊어 보였다.
분명 예전과 다를 바 없는 얼굴이었지만, 그 눈빛만으로도 사람을 오싹하게 만들었다.
향단이 용서를 빌려고 했을 때는 이미 모든 것이 늦었다. 얼굴이 부어 눈을 뜰 수 없었고, 입을 여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했다.
방 안에서 폭죽이 터지는 듯한 요란한 소리가 나자, 밖에서 지키고 있던 진어멈은 무슨 일이 생겼을까 걱정되어 서둘러 문을 열고 들어왔다.
한눈에 향단의 얼굴이 피투성이로 퉁퉁 부어오른 것을 본 진어멈은 깜짝 놀라며 소리를 질렀다. "이, 이게 무슨 일입니까?"
진어멈은 노부인이 운여정을 모시라고 보낸 사람이었다.
전생에 향단은 후부인을 등에 업고 호가호위하며 온갖 술수를 부려 운여정을 음해했다. 가소롭게도 자신은 주문숙의 거짓된 모성애에 빠져 진실을 보지 못했다.
반면 진어멈은 정말 좋은 사람이었고, 진심으로 운여정을 위했다.
그러나 향단의 이간질에 운여정은 진어멈을 시종일관 경계했고, 그로 인해 결국 진어멈과 할머니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 실망시켰다……
진어멈을 다시 만난 운여정은 만감이 교차했지만, 곧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녀는 아무 감정도 드러내지 않고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마침 잘 왔네. 이 아이가 마음이 바르지 못하고 주인을 능멸하니, 더는 두고 볼 수가 없네."
"자네가 이 아이를 내다 팔아 후택의 안녕을 지키게."
진어멈은 깜짝 놀란 얼굴로 운여정을 쳐다봤다.
이전까지 여정 아가씨가 가장 신뢰하는 사람은 향단이었다. 향단이 존비도 없이 자신을 무시하고 턱짓으로 이래라저래라 해도 가만히 있었다.
한번은 진어멈이 보다 못해 향단을 몇 마디 꾸짖자, 운여정은 서둘러 중재에 나섰고 그 이후로는 곁 시중을 향단에게만 맡겼다.
진어멈이 움직이지 않자, 향단은 바닥에 누워 숨이 넘어갈 듯한 신음소리를 냈다.
운여정은 눈을 가늘게 떴다. "진 어멈."
정신이 번쩍 든 진어멈은 서둘러 밖을 향해 소리쳤다. "게 누구 없느냐, 이 하극상을 저지른 천한 것을 끌고 가 가두어라. 내일 아침 노부인께 아뢰고 인신매매꾼에게 팔아버릴 것이다!"
진어멈이 말하자 밖에서 건장한 몸집의 아낙네 몇 명이 들어와 향단의 팔을 잡고 밖으로 끌고 갔다.
그제야 향단은 운여정이 진심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예전에는 부인 마님만 언급하면, 무슨 말을 하든 얌전히 듣고 따랐고, 아무리 괴롭힘을 당해도 반항하지 않았다!
향단이 용서를 빌려고 입을 열자 더러운 천이 그녀의 입을 막았고, 남은 소리는 두려움과 함께 뱃속으로 삼켜졌다.
운여정은 차갑게 고개를 돌리고 향단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진어멈에게 말했다.
"오늘이 할머니 생신이신데, 소란을 피워선 안 되지. 뒷문으로 바로 내다 팔게."
향단은 온몸의 고통을 참으며 몸부림쳤지만, 건장한 몸집의 아낙네들을 이길 수 없었다.
곧 밖에서 들려오던 소리가 사라졌다.
진어멈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운여정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가씨, 향단이를 내치시면 마님께서 노여워하실 텐데요……"
"위아래도 모르는 종놈을 두면 어머니 욕만 먹이는 꼴이니, 내가 대신 치워드린 게지. " 운여정은 그녀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보다 채비 좀 도와주게. 잔치에 늦겠어."
오늘 밤이야말로 진짜 중요한 무대니까.
회차 2
진어멈은 그 자리에 멍하니 서서 운여정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마치 오늘 처음 만난 사람을 보는 것처럼.
운여정은 겉으로는 태연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마음속은 이미 폭풍이 몰아치고 있었다.
전생의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회안후부의 친딸인 그녀는 유모가 바꿔치기 하는 바람에 오랫동안 밖에서 지내야만 했다.
후부에 돌아온 후, 가짜 아가씨 운선영은 사사건건 그녀를 괴롭히고 모함했다. 결국 후부 사람들의 미움을 받게 되었고, 고통 속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해야만 했다.
오늘도 운선영은 꽃을 보내는 핑계로 운여정과 함께 연화못에 빠졌다.
운선영은 교묘하게 일을 꾸몄고, 사람들의 눈에는 운여정이 운선영을 못에 빠뜨린 것처럼 보였다.
이 장면은 운여정이 끝없는 어둠에 빠지게 되는 시작이었다.
운선영과 그녀를 해친 사람들을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증오로 인해 안색이 변한 운여정을 본 진어멈은 그녀가 후부인 때문에 두려워하는 줄 알고 위로의 말을 건넸다. "아가씨께서 이미 결정을 내리셨으니 두려워하실 필요 없습니다."
"향단이 아가씨를 모욕한 것을 노비들이 모두 보았습니다. 노부인께서 아가씨의 편을 들어주실 것이니, 부인께서도 아가씨를 나무라지 못할 것입니다."
운여정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치밀어 오르는 증오를 억누르며 진어멈에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고맙네, 유모."
그리고 재촉했다. "자네가 내게 어울리는 옷을 좀 골라주게."
진어멈은 난처한 얼굴로 옷장을 돌아봤다.
운여정은 진어멈이 왜 난처해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앞으로 일어날 일을 위해 일부러 진어멈에게 어려운 문제를 던진 것이다.
후부에 돌아온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은 그녀를 위해 옷을 지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람들은 모두 운선영의 기분을 달래주기에 바빴기 때문이다.
그녀가 체면을 세울 수 있는 옷은 단 한 벌뿐이었다. 며칠 전, 그녀의 몸에 맞춰 지은 옷이었지만, 방금 못에 빠진 후 진흙이 묻어 더 이상 입을 수 없었다.
남은 옷은 모두 운선영이 입다 버린 옷이었다.
"아가씨, 차라리 병을 핑계로 잔치에 가지 않으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진어멈이 쭈뼛거리며 제안했다. "아가씨께서 못에 빠진 것을 모두가 보았으니 이해할 것입니다."
"할마마님 생신 잔치야. 게다가 내가 처음으로 사람들 앞에 나서는 자리지." 운여정은 태연한 얼굴로 옷장 앞으로 다가가 옷을 뒤적였다.
"내가 가지 않으면 불효가 될 뿐더러 구설수에 오를 게야."
처음이 얼마나 중요한지!
전생에 그녀는 못에 빠진 후 잔치에 가지 않았다. 그 틈을 타 다른 사람이 선수를 쳤고, 검은 것을 희다고 우겨 그녀는 열등한 사람으로 낙인찍혔다.
진어멈은 한 달 동안 운여정을 모셨기에 옷장 안에 어떤 옷이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운여정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가씨,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제가 새 옷을 찾아오겠습니다."
운여정이 진어멈이 떠나는 모습을 지켜본 후, 창가에 앉아 다시 태어난 후의 생각을 정리했다.
그녀가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뒤편 창문에서 '쿵'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고요한 방 안에서는 유난히 갑작스럽고 기이하게 들렸다.
유수각에는 향단과 진어멈만 운여정을 모시고 있었고, 나머지 시녀들은 모두 앞마당으로 보내졌다. 지금 들려온 소리는 분명 문제가 있었다.
운여정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탁자 위에 놓인 주전자를 손에 쥐고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병풍을 지나자마자 한기가 몰려왔고, 그녀가 반응하기도 전에 날카로운 비수가 그녀의 목에 닿았다.
"움직이지 마!" 운여정의 뒤에 선 남자의 목소리는 차갑고 어두웠으며, 살의가 가득했다.
목에 닿은 차가운 감촉에 운여정은 몸을 멈칫하더니 곧바로 침착하게 물었다. "무엇을 하려는 겁니까?"
뒤에 선 남자는 대답하지 않고 손에 쥔 비수를 아래로 눌렀다.
남자의 숨결이 운여정의 귓가에 닿았다. 차가운 설송의 청량한 향이 났지만,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
전생에 이런 일은 없었다. 운여정은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었다. 그녀가 말을 하려 할 때, 희미한 피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그녀는 어렴풋이 짐작하고 다시 말했다. "다쳤군요…… 게다가 중독까지!"
남자는 여전히 대답하지 않고 숨을 가쁘게 몰아쉬었다. 운여정의 몸에 가까이 다가선 남자의 몸이 억제할 수 없이 떨렸고, 뜨겁고 단단했다.
운여정은 시골에서 지내는 동안 스승을 따라 신기에 가까운 의술을 배웠다. 두 사람이 가까이 붙어 있었고, 남자의 반응을 본 그녀는 바로 문제점을 알아차렸다.
동시에 그녀는 소름이 끼쳤다.
유수각에는 그녀만 남았고, 뒤에는 미약에 중독된 무공이 뛰어난 남자가 있었다.
운여정은 손에 쥔 주전자를 꽉 움켜쥐고 머릿속에 온갖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녀가 동귀어진할 각오를 다질 때, 목에 닿은 힘이 갑자기 사라졌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남자가 바닥에 쓰러졌다.
운여정은 서둘러 뒤를 돌아보고 경계하며 남자를 살폈다.
바닥에 쓰러진 남자는 검은색 장포를 입고 얼굴에 검은색 복면을 두르고 있어 구체적인 얼굴을 볼 수 없었다.
복면 밖으로 드러난 눈은 별처럼 반짝였지만, 지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고 눈가에 희미한 물기가 맺혀 있었다. 남자는 필사적으로 무언가를 억누르고 있는 것 같았다.
운여정은 남자의 일에 참견할 생각이 없었다. 특히 유수각에 낯선 남자가 나타났고, 미약에 중독된 사실이 알려지면 그녀의 명성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녀가 조용히 남자를 처리하려 할 때, 남자의 소매에 검붉은색 까마귀 깃털이 수놓아진 것을 발견했다.
이 문양은 전생에 본 적이 있었다. 황손 목세곤의 문양이었다!
운여정은 그 사실을 깨닫고 두려움도 잊은 채 앞으로 다가가 남자의 복면을 벗겼다.
맑고 깨끗한 얼굴에 옥처럼 아름다운 이목구비, 날카로운 눈썹에 곧게 뻗은 콧날.
그러나 눈꼬리에 맺힌 붉은 정욕이 그 차가운 얼굴을 깨뜨렸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약효에 휩싸인 것인지 아니면 분노 때문인지, 굳게 다문 입술에서 차가운 한기가 뿜어져 나왔다.
운여정의 거침없는 시선에 남자의 별처럼 반짝이는 눈에 살의가 더욱 짙어졌다.
정말 목세곤이잖아.
회차 3
잠깐의 당황스러움이 지나간 후, 운여정의 마음속에 걷잡을 수 없는 희열이 솟구쳤다.
목세곤은 이미 세상을 떠난 태자 목충현의 유일한 아들이다. 태자가 죽은 지 6년이 지났지만, 황제는 아직 새로운 태자를 세우지 않았고, 황손의 신분은 여전히 존귀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 황손은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재능이 뛰어나고 무예가 출중하여 황제의 총애를 한 몸에 받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성격이 차갑고 오만하여 누구와도 가깝게 지내지 않았다.
운여정의 복수 길에는 운선영과 후부 사람들 외에도 황실의 권력 깊숙한 곳에 있는 사람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만약 황손과 연을 맺을 수 있다면, 복수도 훨씬 쉬워질 것이다. 그녀는 바로 그를 구하기로 결심했다. "독에 중독되셨군요. 제가 해독할 수 있습니다."
그녀의 말이 끝나자마자 목세곤은 고개를 돌리며, 목이 쉰 목소리에 냉담함을 담아 거절했다. "싫다."
간결한 거절이었다.
운여정은 반드시 그를 구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녀는 목세곤이 미약에 중독되었을 뿐만 아니라 다른 독까지 섞여 온몸이 녹신거려 힘을 쓸 수 없으니, 제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지 않겠는가 하고 생각했다.
그의 거절을 들은 척도 안 하고 바로 그를 일으켜 세웠다.
다행히 그녀는 약초를 캐러 산 넘고 물 건너다 보니 힘이 장사였다. 그렇지 않았다면 목세곤의 산만한 덩치를 혼자 옮길 수 없었을 것이다.
두 사람의 몸이 닿자마자 목세곤의 목에서 참기 힘든 신음이 흘러나왔다.
순식간에 그의 옥 같은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고, 그는 치욕스러운 듯 고개를 돌리며 숨을 헐떡이며 거절했다. "오지 마!"
그는 미약에 중독되었다고 하여 낯선 여인과 그런 일을 벌일 수 없었다.
그의 차갑고 어색한 표정을 본 운여정은 그의 생각을 어느 정도 짐작하고 흥, 콧방귀를 뀌었다. "몸에 퍼진 미약은 참는다고 해결될 것이 아닙니다."
"빨리 해독하지 않으면 한 시진 안에 경맥이 터질 겁니다. 안심하세요, 딴맘 먹지 않을 테니."
그녀의 손에는 적절한 해독제가 없었고, 시골에서 가져온 은침만 있었다.
은침이 효과를 발휘하려면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했다. 그 과정에서 목세곤이 통제력을 잃으면 큰일 날 것이다.
마침 물에 빠진 후 씻었기 때문에 방에 있는 욕조에 아직 찬물이 남아 있었다. 찬물은 그의 불안감을 잠시 완화할 수 있을 것이다.
목세곤은 그녀보다 훨씬 키가 컸고, 그의 몸무게가 그녀의 몸에 고스란히 실렸다. 뜨거운 숨결이 그녀의 머리 위로 쏟아져 내리며 약간의 간지러움을 유발했다.
두 사람은 뒤엉킨 발걸음으로 간신히 병풍을 지나 욕조 옆으로 다가갔다. 운여정은 눈을 꼭 감고 목세곤의 옷을 마구 벗겼다.
그녀의 부드러운 손이 눈을 감은 채 무질서하게 그의 몸을 더듬는 것은 또 다른 고문과도 같았다.
"무례하다!" 목세곤의 목울대가 꿈틀했다. 그는 분노가 담긴 거친 목소리로 힘겹게 내뱉었다. "네가 감히……"
하지만 그의 말은 격렬하면서도 억눌린 숨소리에 묻혀버렸다.
"저도 원해서 이러는 게 아닙니다." 운여정은 빠르게 그의 겉옷과 상의를 벗기고 허리띠를 풀었다. "해독제가 없으니 은침으로 독을 빼내야 합니다. 옷을 입고 있는데 어떻게 침을 놓겠습니까?"
그녀는 그의 옷을 완전히 벗기지 않고 속바지만 남긴 채 눈을 반쯤 뜨고 그를 물속으로 밀어 넣었다.
그러나 목세곤은 어디서 힘이 났는지 물에 빠지는 순간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세상이 빙글빙글 돌고 차가운 물이 사방으로 튀었다. 운여정은 순간 방심하여 그에게 이끌려 함께 욕조에 빠지고 말았다.
온몸이 흠뻑 젖은 그녀는 눈을 감은 채 몸을 일으키려 애썼다. 그녀의 손이 닿는 곳마다 그의 뜨겁고 단단한 몸이 느껴졌다.
목세곤은 차가운 물에 닿자마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는 그녀의 손을 잡고 욕조 가장자리에 밀어붙였다. "움직이지 마라……"
운여정은 감히 움직이지 못했다.
욕조가 크지 않아 두 사람이 들어가자 거의 빈틈없이 밀착되었다. 얇은 옷 한 겹을 사이에 두고 그녀는 그의 단단한 것이 그녀의 허벅지에 닿아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목세곤은 머리가 멍해지며 몸이 순간 통제력을 잃었다. 그는 본능적으로 앞으로 몸을 기울여 그녀와 더 가까이 닿으려 했다.
눈빛이 흐릿해진 그는 몸을 미세하게 떨며 그녀의 하얀 목덜미로 다가갔다……
목세곤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가 그녀에게 전염되는 것 같았다. 이대로 가다가는 정말 통제력을 잃을 것이다.
운여정은 손에 쥔 은침을 힘겹게 빼내어 그의 풍부혈에 찔렀다.
목세곤의 움직임이 멈추고 두 사람은 서로를 끌어안은 자세로 욕조에 꼼짝 않고 있었다. 숨결이 뒤엉키고 섞였지만, 누구도 다음 행동을 하지 않았다.
그때, 진어멈의 목소리가 멀리서부터 들려오며 방 안의 긴장감을 깨뜨렸다.
"아가씨, 사람들이 모두 앞마당에서 일을 돕고 있어 창고 열쇠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니 일단 대충 지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운여정은 진어멈이 방에 들이닥칠까 봐 심장이 목구멍까지 치솟았다. "알았어요. 저는 먼저 씻고 나갈 테니, 어멈은 밖에서 기다려요."
그녀의 목소리가 약간 떨리는 것을 느낀 진어멈은 이상하게 생각했다. 병풍 너머의 상황을 볼 수 없었던 그녀는 의심스럽게 물었다. "아가씨, 이미 씻지 않으셨습니까?"
"땀이 나서 다시 씻으려 해요." 운여정은 아무렇게나 핑계를 댔다. "곧 나갈게요."
다행히 그녀는 집에 돌아온 이후로 다른 사람의 시중을 받지 않고 목욕을 했기 때문에 진어멈은 의심하지 않았다. "네, 노비는 밖에서 기다리겠습니다."
운여정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천천히 몸을 움직여 욕조에서 일어났다.
그녀가 움직이자마자 맞닿은 피부가 마찰하며 짜릿한 감각이 전해졌다. 목세곤은 본능적으로 신음 소리를 냈다.
운여정은 잽싸게 그의 입을 틀어막고 경고했다. "한 시각이면 돌아올 테니, 꼼짝 말고 계세요."
차가운 손이 그의 입술에 닿자 목세곤의 눈빛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그녀의 말을 따르겠다고 했다.
운여정은 더 이상 지체하지 않고 옷을 갈아입으려 했다.
그러나 목세곤이 아직 방에 있다는 것을 떠올린 그녀는 손수건으로 그의 눈을 가리고 뒤통수에 매듭을 지었다.
시야가 가려지자 청각이 더욱 예민해진 목세곤은 옷이 스치는 소리를 들으며 목울대를 무의식적으로 삼켰다.
다행히 은침이 아직 혈자리에 꽂혀 있어 그의 몸속에서 요동치는 열기를 잠재웠다.
운여정은 옷장에서 운선영이 입었던 낡은 옷을 아무렇게나 꺼내 입고 문을 열고 나갔다.
그녀는 등 뒤에서, 욕조 속의 사내가 천천히 손을 들어 눈앞을 가린 성가신 손수건을 벗겨 내는 것을 보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