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1
"긴급 뉴스입니다. 257번 고속도로에서 후방 추돌 교통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술에 취한 트럭 운전사가 앞을 달리는 택시를 들이받아 택시가 전복되는 참변이 일어났습니다. 아직 부상자 신원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목격자들이 말하길 택시 안에는 출산을 앞둔 임산부가 타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사이렌 소리, 비명 소리, 차가 빠르게 달리는 소리가 귀를 먹먹하게 만들었다.
난잡한 소리가 최윤정의 귀를 먹먹하게 만들었고, 공기 중의 비릿한 피 냄새가 그녀의 코끝에 저릿하게 전해졌다.
당장이라도 의식을 잃을 것 같은 것을 느낀 그녀는 힘겹게 휴대폰을 꺼내 익숙한 전화번호를 눌렀다.
영원히 연결되지 않을 것 같은 통화가 마침내 연결되었다.
휴대폰 너머에서는 낯설고도 익숙한 목소리가 전해졌다. "윤정 언니, 성준 오빠 지금 샤워 중이라 통화 힘들 것 같아요. 무슨 일이에요? 급한 일이면 저한테 말해도 돼요."
그 순간, 가슴이 찢어지는 것을 느낀 최윤정은 원망과 분노가 눈물을 타고 흘러내렸다.
역시, 전화를 받은 사람은 김설민이었다.
김성준이 출산 예정일이 얼마 남지 않은 그녀의 연락처를 모두 차단하고 버려두게 한 장본인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김씨 가문에서 함께 자란 그녀는 김씨 가문의 양녀이자 김성준이 극진하게 아끼는 여동생이었다.
소란스러운 소음을 뒤로하고 두 눈을 꼭 감은 최윤정은 다리 사이로 뜨끈한 무언가가 흘러내리는 것을 느꼈다. 그녀가 자기 목숨보다 소중하게 여겼던 아이가 위험하다는 신호였다. 모든 고통을 뒤로하고 그녀는 애원하며 간청했다. "살려주세요. 257번 고속도로, 제발. 내 아이를 살려주세요. 내 아이..." 쏟아지듯이 터져 나오는 피에 그녀는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쥐어 짜내며 간절하게 사정했다.
갑자기 일어난 대형 교통사고에 양쪽 펜스가 모조리 쓰러져 고속도로 입구가 모두 막혀 버렸다. 아수라장이 되어버린 고속도로에 구조 차량은 진입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헬기를 동원해 환자를 구출할 수 있지만 반드시 복잡한 심사를 거쳐야 했다. 최윤정은 김씨 가문이 전용 헬기를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김성준이 지금 바로 전용 헬기를 보내온다면, 아이는 살릴 수 있을 것이다.
"윤정 언니, 미안해서 어쩌죠? 오늘 제 생일이라 성준 오빠는 언니와 아이를 살려주지 못할 것 같은데요." 달콤한 목소리와 달리 내뱉는 말은 잔인하기 그지없었다.
"뚜, 뚜..." 그 말을 끝으로 잠깐의 연결음이 들려왔다.
그대로 바닥에 완전히 쓰러진 최윤정은 바닥을 흥건하게 적신 휘발유 냄새에 자기도 모르게 미간이 찌푸려졌다. 지금 당장 이곳에서 도망치지 않으면 폭발하는 차에 목숨을 잃을지도 모른다.
불현듯 그녀는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서 그녀는 짧았던 25년 세월을 돌이켜보았다. 그 중 절반이 넘는 시간을 자신을 사랑하지도 않는 남자 주위만 맴돌다 허비하고 만 것이다.
최씨 가문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자란 상속녀인 그녀가 지금은 남편에게 처참하게 버려지고 말았으니.
그녀는 최씨 가문의 모든 재산을 김성준에게 넘겨줬지만, 그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이제 그녀는 완전히 지쳤다. 더 이상 사랑 같은 건 꿈도 꾸지 못할 만큼 말이다.
이번 생에 잘못된 판단만 한 그녀에게 내린 벌이라고 생각하자. 만약 다음 생이 있다면 절대 이와 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을 것이다.
"사모님, 오늘 밤 자선 경매회에 정말 이 핑크색 탑 드레스를 입으시겠어요? 대표님께서..." 장 아주머니는 하려던 말을 삼키고 다시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탑 드레스는 너무 경솔해 보이는데, 차라리 다른 드레스를 골라보는 건 어때요?"
말을 마친 그녀는 잔뜩 긴장한 얼굴로 거울에 비친 여자의 안색을 살폈다.
김씨 가문에서 오랫동안 근무한 장 아주머니는 최윤정이 김성준을 얼마나 많이 사랑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의 마음을 얻기 위해 간단한 옷차림부터 시작해서 말투 행동까지 그의 취향대로 모두 바꿨으니.
최윤정은 눈앞의 익숙한 광경을 보고 가슴이 빠르게 뛰는 것을 느꼈다.
분명 그녀는 교통사고로 죽었는데? 게다가 자선 경매회는 3년 전에 열리지 않았던가? 어떻게 이런 일이... 설마 환생이라도 한 걸까?
"사, 사모님?"
장 아주머니의 다급한 목소리에 최윤정은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대표님께서 한 시간 후에 모시러 오겠다고 했습니다. 준비를 서두르셔야 합니다. 진주를 포인트로 한 화이트 드레스는 어떻습니까? 우아한 매력을 극대화..."
순간 눈을 반짝인 그녀의 입 꼬리가 예쁜 곡선을 그리더니 매혹적인 미소가 번졌다.
이번 경매회는 해성에서 가장 오래된 재벌 가문인 배씨 가문에서 주최한 것이다. 겉보기에는 상류 재벌 가문의 평범한 행사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배씨 가문에서 자신들의 실력을 과시하는 방법이었다.
배씨 가문은 한 가문의 화목한 분위기를 제일 중요시하기에 김성준은 반드시 그녀를 대동하고 경매회에 참석해야 했다.
예전의 그녀는 김성준의 모든 관심과 사랑을 독차지하는 김설민에 눈이 멀어 어떻게든 그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김설민을 똑같이 따라 했었다.
그의 마음에 들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해댔지만, 돌아오는 건 그의 경멸과 원망밖에 없었으니.
이번 자선 경매에서 김성준은 그녀의 동의도 구하지 않고 그녀가 혼수로 챙겨온 에메랄드 목걸이를 김설민에게 넘겨줬다. 하여 김설민은 오늘 자선 경매에서 모든 사람의 이목을 집중시키기도 했었지.
그녀가 자신의 목걸이를 되찾으려 하자 김성준은 그녀가 김설민을 질투한다는 말을 지껄여 경매회에 참석한 재벌 가문 자녀들의 비웃음거리로 전락하고 말았다.
하늘이 그녀에게 새 인생을 살아갈 기회를 줬으니 그녀는 기필코 자신의 모든 것을 되찾을 것이다.
최윤정은 전생에 있었던 일들을 하나둘씩 떠올리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지난번에 주문한 베이지색 개량 한복에, 내가 혼수로 챙겨온 에메랄드 목걸이를 매치하면 잘 어울리겠네요."
지난 몇 년 동안 김설민을 따라 하기에 바빴던 그녀는 자신도 최씨 가문에서 귀하게 자란 아가씨였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살 뻔했다.
최씨 가문의 상속녀가 당장 망해가는 김씨 가문 입양아와 겨룬다는 것은 정말이지 어리석은 판단이 아닐 수 없었다.
장 아주머니는 걱정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하지만, 대표님은 사모님이 정숙한 옷을 입고 나타나면 싫어할 게 뻔합니다. 게다가 에메랄드 목걸이는 사모님 할머니께서 물려주셨잖아요? 결혼식에도 아까워 착용하지 않았는데, 경매회에 착용하고 나타나면 너무 과하지 않을까요?"
"목걸이는 제가 직접 가져올게요." 최윤정은 장 아주머니의 걱정을 뒤로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아주머니, 옷을 챙겨오는 김에 옷장에 있는 옷들 모두 쓰레기통에 버리세요. 새 옷으로 다시 채워 넣어야겠어요."
최윤정이 멀어지는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장 아주머니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하더니 곧바로 분부대로 행동했다.
모든 준비를 마친 최윤정은 김성준을 기다리지 않고 차고에 주차해 둔 람보르기니에 올라타더니 직접 경매장까지 운전해 갔다.
자선 경매회는 손님들의 신상을 보장하는 개인 별장에서 개최되었다.
하늘에 붉게 번진 노을이 그녀의 우아하면서도 고풍스러운 한복에 내려앉아 더욱 눈부신 빛을 냈다.
몸에 꼭 맞으면서도 기품 넘치는 기세는 그녀의 우아한 모습을 돋보이게 했고, 단아하게 틀어 올린 머리와 섬세한 메이크업은 그녀를 더욱 빛나게 만들었다.
운전석에서 내린 그녀가 차 키를 직원에게 맡기자마자 휴대폰이 울렸다.
화면에 김성준의 이름이 한참이나 반짝이는 것을 본 그녀가 실소를 터뜨리며 통화를 연결하자 휴대폰 너머에서 큰 소리가 들려왔다.
"누가 너더러 에메랄드 목걸이를 가져가도 좋다고 했지?"
회차 2
기세등등한 김성준의 목소리는 마치 그의 목걸이를 훔쳐 달아난 최윤정을 취조하는 것 같았다.
"너 지금 어디야? 오늘 설민에게 그 목걸이를 하고 경매회에 참석하라고 약속했으니 지금 당장 목걸이 가져와!"
별장 입구에 도착한 그녀는 경매회 매니저에게 초대장을 건네며 비아냥거리는 목소리로 통화를 계속했다. "목걸이는 내가 우리 가문에서 혼수로 가져온 거야. 언제부터 당신이 내 혼수에 손을 대고 된다고 허락했지? 아니면 김씨 가문이 몰락한 나머지 내 혼수에 손을 댈 정도까지 이르렀나?"
최윤정의 반박에 김성준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그는 항상 고분고분하던 최윤정이 감히 그의 말에 반박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한 것이다.
김성준의 낮게 깔린 목소리가 휴대폰을 통해 들려왔다. "최윤정, 마지막 경고야. 지금 당장 목걸이를 갖고 돌아오지 않으면 내가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몰라. 때가 되면 후회하지 말고 지금 순순히 돌아오는 게 좋을 거야."
차갑게 깔린 목소리에 경고랍시고 내뱉는 그의 말투에서 그의 인내심이 한계에 도달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후 그는 그녀의 모든 연락처를 차단하고 한 달 이상 말을 걸지 않을 것이다. 최윤정이 아무리 자존심을 버려가며 사과해도 그는 웃는 얼굴 한 번 보이지 않았다.
최윤정은 김성준의 환심을 사기 위해 허리가 저리도록 굽실거렸던 지난날을 회상하면 역겨움에 토가 쏠렸다.
"그럼 나도 마지막으로 물어보고 싶네. 아내의 혼수를 다른 여자에게 선물해 호감을 사려는 당신이야말로 진짜 재벌일까, 아니면 호구일까?" 그녀는 말을 하면서 차갑게 비웃었다. "어디 마음대로 화내보든가. 화병이라도 걸리면 더 좋고."
그대로 끊겨버린 전화에 김성준은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최윤정이 감히 그의 전화를 먼저 끊다니! 정신이 나가도 한참 나간 게 틀림없다!
곁에서 두 사람의 통화를 지켜본 김설민이 김성준의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성준 오빠, 이번 경매회에 내가 오빠 파트너로 참석하는 일 때문에 윤정 언니 화 많이 났어요? 그래서 일부러 목걸이를 빌려주지 않겠다고 하는 거예요?"
그녀의 나긋하면서도 애교 가득한 목소리는 그의 화만 더 돋울 뿐이다.
김성준은 차갑게 코웃음 치며 말했다. "어떻게든 내 관심을 끌기 위해 아득바득 애를 쓰는 것뿐이야. 시집온 지 1년밖에 안 됐는데 질투심이 하늘을 찌를 기세야."
최윤정이 목걸이를 빌려주지 않으려 한다는 것을 눈치챈 김설민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지만 얼굴에는 한껏 가련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됐어요. 차라리 제가 경매회에 참석하지 않는 게 나아요. 그깟 목걸이 하나 때문에 윤정 언니가 이렇게까지 화를 내는데, 내가 오빠 파트너로 참석하면 얼마나 미쳐 날뛰겠어요."
"그러든 말든. 어차피 깎이는 건 최씨 가문의 체면이니까." 김성준은 씩씩 화를 내며 소리를 내질렀다.
그리고 김설민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달랬다. "걱정하지 마. 에메랄드 목걸이를 한 네가 경매장에서 제일 빛나는 보석이 되게 해줄게."
김설민은 눈을 반짝이며 김성준의 품에 파고들어 애교를 부렸다. "오빠 정말 최고예요!"
그 시각, 최윤정이 경매장에 들어서자마자 지배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그녀를 찾아와 말을 걸었다.
"사모님, 사모님께서 이번 경매회에 내보이실 경매품은 무엇입니까?"
최윤정은 잠시 멈칫하다가 지배인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이번 경매회에 저는 김씨 사모님이 아니라 제 이름으로 경매품을 내놓고 싶습니다. 가능할까요?"
지배인을 살짝 놀란 눈치였지만 빠르게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경매회에 선보일 모든 물품은 기부자 개인의 의사를 우선으로 따를 것입니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 최윤정은 에메랄드 목걸이를 만지작거리며 결연한 태도로 말했다.
"제가 오늘 경매할 상품은, 이 목걸이에요."
그러자 지배인은 깜짝 놀란 얼굴로 눈을 크게 떴다. 줄곧 경매 업계에 종사해 온 그는 목걸이의 가치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사모님께서 저희 경매회에 이리 귀한 상품을 내놓으시겠다고 하니 가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허나 오늘 경매회의 본질은 자선 사업입니다. 또한 배씨 가문과 각계 유명 인사들의 협력하게 촉진한 것이지 전문 경매회는 아니라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사모님께서 경매품으로 내놓으시겠다는 목걸이는 귀한 재료에 최고의 장인이 손수 조각해 만든 것입니다. 가문에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귀한 물품을 자선 경매회에 내놓기에 너무 과한 경매품이 아닐까 싶습니다."
지배인의 공손하면서도 조심스러운 말에 최윤정은 싱긋 미소 지었다. 에메랄드 목걸이는 할머니가 그녀에게 직접 혼수로 물려준 것으로 처음부터 경매에 내보일 계획은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김설민은 오늘 경매장에서 모든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 위해 그녀의 허락도 구하지 않고 목걸이를 경매품으로 내놓을 것이다.
당시 목걸이는 배씨 노부인의 눈에 들어 경매장에서 최고가로 낙찰되기까지 했다. 이를 계기로 배씨 가문과 손을 잡은 김씨 가문은 평범한 재벌 가문에서 명문 재벌 가문으로 도약까지 했으니.
목걸이의 진짜 주인인 그녀는 목걸이를 되찾으려다가 미친 여자라는 낙인이 찍혔고, 김성준은 그녀를 강제로 끌어내 차 안에 가두었다.
그날 이후, 그녀는 어떤 연회나 행사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에게 이용당하는 것보다 그녀가 먼저 손을 쓰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자선 경매회에는 자연히 진심과 성의가 담긴 물건을 내놓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경매회를 주최한 배씨 노부인의 의도도 저와 같다고 생각됩니다." 기품이 흘러넘치면서도 대범한 그녀의 말에 지배인은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부끄럽지만 지배인께 작은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최윤정은 쑥스러운 듯 살짝 미소 지으며 말을 이어 했다. "제가 직접 무대에서 이 목걸이를 선보이고 싶습니다. 저보다 이 목걸이에 대해 더 잘 아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지배인은 이례적인 요청에 당황한 눈치였지만, 너무 무리한 요구가 아닌 이상 들어주기로 했다.
"물론입니다. 사모님께서 무대에 오를 차례가 되면 미리 전해 드리겠습니다."
두 사람이 나눈 대화는 2층 VIP 룸에서 대기하고 있는 사람의 귀에 우연히 흘러 들어갔다. 옅은 베이지색 정장에 셔츠 단추를 풀어 가슴 근육을 자랑하는 남자는 농익은 매력을 그대로 발산했다.
"최씨 가문 아가씨 통 한 번 크네. 자선 경매회에 에메랄드 목걸이를 경매품으로 내놓다니. 게다가 직접 모델까지 자처하고 말이야. 오늘 경매회에 목걸이를 낙찰받은 사람은 그녀를 다시 평가하겠는데?"
고개를 돌린 남자는 무뚝뚝한 얼굴로 소파에 기대앉은 남자를 보며 물었다. "설마 네 할머니께서 이 목걸이를 소장하고 싶어 한다는 걸 눈치챈 건 아니겠지?"
배씨 노부인의 손자 배운길은 생각에 잠긴 얼굴로 와인 한 모금 마시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저 여자 결혼했을 텐데, 왜 혼자 경매회에 참석했지?"
회차 3
배운길의 질문에 박영준은 흥미진진한 얼굴로 윙크를 날리면서 설명했다.
"네가 해외에 있을 때 일어난 일이라 잘 모를 수 있어. 이 일은 한때 해성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지. 김성준에게는 자기 아내보다 더 소중하게 여기는 여동생이 한 명 있어. 최윤정은 당장 망해가는 김씨 가문에 최씨 가문 재산 대부분을 투자하는 대가로 김성준과 결혼했지. 그러면 여기서 질문, 김씨 가문은 최윤정에게 고마워했을까? 두 사람이 결혼한 지 1년이 지났지만, 김성준이 나타나는 자리마다 여동생이 파트너로 참석하고 있어. 김씨 가문은 최윤정에게 고마워하기는커녕 그녀를 하인 부리듯이 부리고 말이야. 아무 존중도 대접도 받지 못한 채 말이지."
박영준은 혀를 끌끌 차며 계속해서 말했다. "김성준도 참 대단한 사람이야. 외모로 보나 성품으로 보나, 해성에는 감히 최윤정과 비교할 상대조차 없는데, 어떻게 저런 여자를 집에 내버려두고 출신도 모르는 여자에게 빠질 수 있지?"
한참 동안 아무 대답도 듣지 못한 박영준이 뒤를 돌아보자 소파에 앉아 있던 배운길이 어느새 방을 나가버린 것이다.
"아저씨, 같이 가..."
경매품에 사인을 마친 최윤정은 간단한 디저트를 먹기 위해 몸을 돌리자마자 화가 가득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최윤정, 누가 허락도 없이 혼자 연회에 참석해도 된다고 했어?"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뒤를 돌아보자 청순 여리한 드레스를 입은 김설민이 김성준의 팔을 꼭 안고 다가오는 것이다. 가녀린 얼굴에 순수한 미소를 짓고 있지만, 미소 뒤에 오만한 눈빛은 숨기지 못했다.
"성준 오빠, 윤정 언니한테 화내지 마세요. 아마 제가 오빠 파트너로 참석하는 게 싫어서 일찍 경매장에 도착해 오빠를 기다렸겠죠. 차라리 제가 먼저 집에 돌아가 있을게요." 잔뜩 상처받은 얼굴로 김성준을 올려다보며 말하는 김설민의 두 눈에는 이미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 "언니를 화나게 하고 싶지 않아요."
김성준은 차가운 눈빛으로 최윤정을 날카롭게 쏘아봤다. 어울리지 않는 공주 드레스를 벗어 던진 그녀는 단아하면서도 우아한 기품이 그대로 드러나는 한복을 입어 함부로 접근할 수 없는 기세를 내뿜었다.
우아한 몸짓에 여유로우면서도 자신감 넘치는 태도는 마치 최씨 가문의 상속녀로 다시 돌아간 것만 같았다. 그가 감히 넘볼 자격조차 없을 만큼 얄밉게 오만했다.
김성준은 그런 그녀를 똑바로 쳐다보며 조롱 섞인 말투로 말했다. "자기 잘난 멋에 사는 공주병 환자가 내 파트너로 참석하면 우리 김씨 가문의 체면만 깎아내릴 게 뻔해."
그리고 김설민의 손을 부드럽게 감싸며 달랬다. "어렸을 때부터 넌 내 유일한 파트너였어. 이후에도 내 파트너는 너밖에 없어."
언제나 그랬듯이 죽이 척척 맞는 두 사람은 최윤정을 안중에 두지 않고 말했다.
"최윤정 씨는 왜 굳이 행사에 참석해 이런 꼴까지 당하는 건지." 모여든 구경꾼들이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러니까 말이에요. 남편이 여동생을 편애하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굳이 연회에 참석해 못 볼 꼴을 보이고 있으니."
그러나 최윤정은 오히려 개의치 않은 듯 옅은 미소를 지어 보이는 것이다. "맞아요. 설민 씨가 당신의 파트너로 자처하니 제가 얼마나 마음이 놓이는지 몰라요."
최윤정이 난동을 부릴 줄 알았던 사람들은 현모양처에 가까운 그녀의 모습에 적지 않게 놀란 얼굴이었다.
잠시 어리둥절하던 김설민은 최윤정이 김성준에게 혼나서 얌전해졌을 거라 생각하여 한창 기분이 들떠 있을 때, 최윤정이 계속해서 말하는 것이다. "밖에서 아무 여자나 만나는 것보다 깨끗하잖아요."
그 말을 들은 김설민의 두 눈에 분노가 언뜻 거리더니 빨개진 눈시울로 최윤정을 바라봤다.
"윤정 언니, 저를 향한 성준 오빠의 편애 때문에 언니가 저를 표적으로 삼았다는 거 알고 있어요. 저는 정말 괜찮아요. 언니는 재벌 가문에서 태어났으니 저같이 가진 게 아무것도 없는 사람을 얕잡아 보는 것도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김씨 가문은 언니가 함부로 모욕할 수 있는 가문이 아니에요. 모든 비난과 질책은 제가 감당할게요!"
김설민의 가식에 최윤정은 터져 나오려는 실소를 겨우 참았다.
당시 두 집안에서 혼담이 오갈 때, 김씨 가문은 한창 몰락할 때였다. 언론에서는 최윤정이 자기 집안보다 많이 못한 가문에 시집갔다고 의논했는데, 그것에 김성준은 늘 불쾌했었다.
가문에 관한 얘기만 언급되면 김성준은 상상 그 이상으로 예민해져 최윤정이 자신을 얕보고 있다고 생각했다. 사실은 그의 알량한 자존감이 열등감에 휩싸인 줄도 모른 채 말이다.
하필이면 이 모든 것을 눈여겨보고 있던 김설민이 매번 김성준의 열등감을 콕콕 찔렀고, 김성준은 자존감을 이기지 못해 최윤정에게 화풀이를 한 꼴이 되었다.
예상대로 김성준은 최윤정을 향해 버럭 화부터 냈다. "사과해! 난 줄곧 네가 오만하기 그지없는 공주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라고만 생각했어. 이제 보니 넌 오만하기 그지없을 뿐만 아니라 무례하고 교양도 없는 여자였어. 최씨 가문에서는 딸을 이딴 식으로 교육한 거야? 명문 재벌 가문이라고 소문났더니, 사실은 별거 아니잖아?"
그는 최윤정을 날카로운 눈빛으로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지금 당장 설민이한테 사과하고 목걸이 내놔. 진심을 담아 공손하게 사과하면 용서해 줄게."
어둡게 가라앉은 얼굴에 오만하기 그지없는 목소리는 그녀의 인생에 두 번은 없을 오만한 명령이었다.
예전이었다면 자신과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도 못하고 그의 핀잔을 피하고자 아무리 무리한 요구를 바로 승인했을 것이다.
그가 이렇게까지 심하게 몰아붙였으니, 최윤정은 얌전히 고개를 숙이고 사과를 해야 할 것인데...
"뭐라고? 지금 나더러 당신 동생한테 무릎이라도 꿇고 사과하길 바라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