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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후에야 남편이 후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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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후에야 남편이 후회했다

48 회차
완결
3년의 계약 결혼이 종료되는 날, 서윤은 태오에게 이혼 서류를 내밀며 자유를 선택합니다. 사랑은 없다며 냉정하게 선을 긋던 태오는 아내의 부재를 직면한 뒤에야 그녀를 놓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이혼 후에야 남편이 후회했다>는 차가운 계약 관계에서 시작된 감정의 변화와 남자의 뒤늦은 후회를 다룬 modern novel입니다. 진정한 관계의 시작을 그린 이 romance stories를 통해 romance novel 특유의 몰입감을 경험해 보세요.
이혼 후에야 남편이 후회했다 - 1화

비가 오고 있었다.

한서윤은 식탁 위에 식어가는 찻잔을 내려다보았다. 찻물 위로 얇은 김이 사라진 지는 오래였다. 잔 가장자리에는 입술 자국 하나 남아 있지 않았다.

차태오는 오늘도 마시지 않았다.

그는 늘 그랬다. 서윤이 우려 놓은 차를 보고도, 정작 손을 대는 일은 드물었다. 그래도 서윤은 매번 새 찻잎을 골랐다. 새벽 두 시에 돌아오는 사람의 위장을 생각했고, 비 오는 날 젖은 어깨를 생각했고, 피곤할 때마다 조금 굳어지는 그의 미간을 생각했다.

그런 것들이 사랑이라고 믿었던 때가 있었다.

서윤은 찻잔을 싱크대로 가져갔다.

흰 도자기 잔이 차가운 물에 닿자 작은 소리가 났다. 맑고 짧은 소리였다. 꼭 무언가가 끝났다고 알려 주는 것처럼.

현관문이 열린 것은 그때였다.

낮은 전자음이 울리고, 검은 수트 차림의 남자가 들어섰다. 차태오. 태경그룹 전략기획본부장. 그리고 서윤의 남편.

정확히는, 오늘 자정까지 남편인 남자.

“아직 안 잤습니까.”

태오가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며 물었다.

서윤은 물기를 닦은 손을 천천히 내려다보았다. 결혼반지가 낀 손가락이 낯설었다. 3년 동안 익숙해지려 애썼지만, 끝내 제 것이 되지 못한 물건처럼.

“기다렸어요.”

태오의 손이 잠깐 멈췄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다. 곧 그는 아무 일 없다는 듯 재킷을 벗어 소파 등받이에 걸쳤다.

“무슨 일입니까.”

말투는 평소와 같았다. 낮고 건조했다. 피곤함이 묻어 있었지만 다정함은 없었다.

서윤은 식탁 위에 놓아둔 봉투를 그의 쪽으로 밀었다.

태오의 시선이 봉투에 닿았다.

“이게 뭡니까.”

“이혼 서류예요.”

공기가 조금 가라앉았다.

밖에서는 빗물이 창문을 두드렸다. 일정한 간격으로, 집요하게.

태오는 서류를 바로 열지 않았다. 봉투 위에 놓인 손끝만 내려다보았다. 마치 그 흰 종이 위에 보이지 않는 흠집이라도 있는 것처럼.

“날짜가 오늘이긴 하군요.”

그가 말했다.

서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계약서에 적힌 날이에요.”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준비했어요.”

태오가 천천히 봉투를 열었다. 서류가 빠져나오는 소리가 유난히 선명했다. 종이 위에는 이미 서윤의 서명이 있었다. 한서윤. 세 글자가 단정하게 적혀 있었다.

태오는 그 이름을 오래 보았다.

“갑자기 서두를 필요는 없습니다.”

“갑자기는 아니에요.”

서윤은 담담하게 말했다.

“3년 전부터 정해져 있던 일이잖아요.”

그 말에 태오의 눈썹이 아주 조금 움직였다.

서윤은 그 표정을 알고 있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 보고서를 받았을 때, 예상 밖의 변수를 마주했을 때, 그는 딱 저만큼만 표정을 흐트러뜨렸다.

서윤은 한때 그런 미세한 변화까지 사랑했다.

오늘은 아니었다.

“집은 이번 주 안에 비울게요. 필요한 절차는 변호사 통해서 진행하면 될 것 같고요.”

“한서윤 씨.”

오랜만에 들은 이름이었다.

아내라고 부른 적은 거의 없었다. 여보도, 당신도 아니었다. 공식 석상에서는 서윤 씨, 집에서는 한서윤 씨.

그 거리감이 처음에는 예의라고 생각했다. 나중에는 선이라고 알았다. 지금은, 그저 끝내 넘지 못한 벽처럼 느껴졌다.

“말하세요.”

태오가 서류를 식탁 위에 내려놓았다.

“조건을 바꾸고 싶습니까?”

서윤의 입가에 아주 희미한 웃음이 스쳤다.

조건.

역시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서윤이 이 밤까지 기다린 이유가 돈이나 집, 주식, 위자료 때문이라고.

“아니요.”

“그럼 원하는 게 뭡니까.”

“없어요.”

태오의 시선이 날카로워졌다.

“없다?”

“네. 아무것도요.”

서윤은 왼손 약지에서 반지를 빼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쉽게 빠지지 않았다. 3년 동안 한 번도 제대로 빼 본 적 없는 반지는 살 위에 옅은 자국을 남기고 있었다. 서윤은 잠시 멈췄다가, 천천히 힘을 주었다.

반지가 손가락을 빠져나왔다.

작은 금속음과 함께 식탁 위에 놓였다.

태오의 시선이 그 소리에 붙들렸다.

“그건 두고 가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습니다.”

“제 건 아니었으니까요.”

태오가 고개를 들었다.

서윤은 그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예전 같았으면 그 시선 하나에 먼저 고개를 숙였을 것이다. 그의 침묵이 불편해서, 그의 무표정이 무서워서, 혹은 제가 너무 많은 걸 바라고 있다는 사실이 들킬까 봐.

하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더는 기다리지 않기로 했으니까.

“3년 동안 고마웠어요.”

서윤이 말했다.

태오의 입술이 굳었다.

“그 말은 이상하군요.”

“뭐가요?”

“마치 정말 끝내는 사람처럼 들립니다.”

서윤은 잠시 그를 바라보았다.

비가 더 세차게 내렸다. 창밖의 불빛들이 물에 번져 흐려졌다. 이 집은 늘 지나치게 넓고 조용했지만, 오늘따라 더 낯설었다.

“끝내는 거예요.”

그녀는 조용히 답했다.

“오늘이 그날이니까.”

태오는 대답하지 않았다.

서윤은 의자에 걸어 두었던 코트를 집어 들었다. 가방은 이미 현관 옆에 놓여 있었다. 큰 짐은 낮에 모두 옮겼다. 태오가 회사에 있는 동안, 이 집에서 자신의 흔적을 하나씩 지웠다.

화장대 위의 립밤, 욕실의 칫솔, 드레스룸 한쪽에 걸려 있던 얇은 원피스들. 냉장고 안의 반찬통까지.

마지막으로 남긴 건 식탁 위의 반지뿐이었다.

“이 시간에 어디로 갑니까.”

태오가 물었다.

“제 집으로요.”

“여기가 당신 집입니다.”

서윤의 손이 현관 손잡이 위에서 멈췄다.

잠깐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돌아보지 않은 채 말했다.

“그 말, 3년 전에 해 줬으면 좋았을 텐데요.”

등 뒤에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서윤은 현관문을 열었다. 차가운 복도 공기가 얼굴에 닿았다. 실내의 온기와 전혀 다른 공기였다. 어쩐지 숨이 쉬어졌다.

그때, 태오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한서윤.”

이번에는 씨가 붙지 않았다.

서윤은 천천히 돌아섰다.

태오는 식탁 곁에 서 있었다. 늘 완벽하던 셔츠의 소매가 조금 구겨져 있었다. 넥타이는 풀려 있었고, 손은 식탁 모서리를 짚은 채였다.

그의 눈이 흔들리고 있었다.

아주 조금.

하지만 서윤은 그 작은 흔들림을 더 이상 붙잡고 싶지 않았다.

“서류는 내일 오전까지 보내 주세요.”

서윤이 말했다.

태오가 한 걸음 다가왔다.

“지금 나가면 후회할 겁니다.”

예전의 서윤이었다면 멈췄을 말이었다.

그가 던지는 낮은 경고, 익숙한 통제, 차가운 확신. 그 모든 것에 마음이 먼저 움츠러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서윤은 가만히 웃었다.

슬프지도, 화난 것도 아닌 얼굴이었다.

“후회는 제가 충분히 했어요.”

그녀는 말했다.

“이제 차태오 씨 차례예요.”

태오의 손이 움직였다.

그는 서윤의 손목을 잡으려는 듯 팔을 뻗었다. 그러나 손끝이 그녀의 코트 소매에 닿기 직전, 멈췄다.

붙잡을 자격이 없다는 걸, 그제야 떠올린 사람처럼.

서윤은 그 손을 내려다보다가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안녕히 계세요.”

문이 닫혔다.

태오는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현관문 너머로 엘리베이터가 도착하는 소리가 들렸다. 문이 열리고, 닫히고, 숫자가 아래로 내려가는 소리가 희미하게 이어졌다.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식탁 위에는 이혼 서류와 반지가 놓여 있었다. 식어 버린 찻잔은 사라지고 없었다. 늘 당연하게 있던 것들이, 오늘은 하나도 제자리에 남아 있지 않았다.

태오는 천천히 식탁으로 돌아갔다.

반지를 집어 들었다.

작고 가벼웠다. 그런데 이상하게 손바닥이 무거웠다. 숨을 쉬는 법을 잠깐 잊은 사람처럼, 그는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계약은 끝났다.

분명 그렇게 되어야 했다.

그가 원했던 결혼은 처음부터 감정 없는 결혼이었다. 서로를 필요 이상으로 침범하지 않는 관계. 태경그룹에 필요한 안정적인 그림. 그리고 3년 뒤, 조용한 이별.

완벽한 조건이었다.

그런데 왜.

태오는 빈 현관을 바라보았다.

왜 집이 이렇게 낯설어졌는지 알 수 없었다.

그는 손 안의 반지를 세게 쥐었다. 금속의 둥근 모서리가 손바닥을 파고들었다.

그때 휴대폰이 울렸다.

화면에는 강유라의 이름이 떠 있었다.

태오는 한참 뒤에야 전화를 받았다.

“태오 씨, 기사 봤어요? 우리 약혼 얘기, 슬슬 정리해야 할 것 같은데요.”

그의 시선이 이혼 서류 위에 멈췄다.

서윤의 서명.

한서윤.

태오는 그 이름을 보며 낮게 말했다.

“정리 못 합니다.”

상대가 잠시 침묵했다.

“네?”

태오는 천천히 반지를 움켜쥐었다.

그제야 알았다.

끝난 건 계약뿐이었다.

그는 아직, 한서윤을 보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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