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1

지난 7년간, 나는 아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죽음의 흔적을 지우는 특수 청소부로 일했다.

아들의 희귀 유전병을 치료할 신약 임상시험 비용 3억 원.

마침내 그 돈을 모두 모았다.

하지만 병원에 도착했을 때, 나는 남자친구 강태준의 대화를 엿듣고 말았다.

치료는 없었다.

그건 내가 돈만 밝히는 여자가 아님을 증명하기 위한 ‘사회적 실험’.

무려 7년간 이어진 잔인한 시험이었다.

내 아들은 단 한 번도 아픈 적이 없었다.

내 절친은 그 사실을 알면서도 웃고 있었다.

그리고 아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냄새나는 엄마, 이제 안 왔으면 좋겠어. 난 채아 이모가 좋아. 이모한테선 맛있는 쿠키 냄새가 난단 말이야.”

그들은 아들 유치원에서 나를 정신 나간 청소부 아줌마라며 모욕했다.

아들은 나를 손가락질하며 모르는 사람이라고 소리쳤고, 내가 사랑했던 남자는 망신이라며 나를 거칠게 끌어냈다.

내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다. 그저 데이터일 뿐이었다.

내 희생은 희생이 아니었다. 한 편의 연극이었을 뿐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역겨운 게임을 위해 내 아들마저 내게서 등을 돌리게 만들었다.

그들은 내가 가난하고 보잘것없는 청소부라고 생각했다.

그 남자가 대한민국 굴지의 재벌, 유성 그룹의 후계자 강태준이라는 사실을 몰랐던 것처럼.

그리고 내가 태강 그룹의 서지우라는 사실은 더더욱 상상조차 못 했을 것이다.

나는 수화기를 들고 오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 집으로 돌아갈게.”

제1화

서지우 POV:

죽음의 현장을 청소하며 번 마지막 돈은, 내 아들의 목숨을 살릴 돈이었다.

지난 7년간, 나는 다른 사람들의 삶이 남긴 마지막 잔혹한 순간들을 지워왔다.

락스와 비릿한 피 냄새는 내 코 안쪽에 문신처럼 새겨져 감각의 유령처럼 영원히 남았다.

손이 다 해질 때까지, 등이 끊임없이 비명을 지르는 고통의 매듭이 될 때까지 일했다.

오직 통장 화면에 찍히는 숫자를 위해서.

오늘, 그 숫자는 마침내 목표에 도달했다.

3억 원.

하준이의 희귀 유전병을 치료할 신약 임상시험 비용이었다.

마지막으로 입금된 돈이 담긴 통장은 주머니 속에서 묵직했다.

신성한 무게감이었다.

방금 전 시내의 한 오피스텔 현장을 마친 참이었다.

고독한 죽음이 입안에 씁쓸한 뒷맛을 남겼지만, 상관없었다.

이제 끝났으니까.

더는 차갑고 얼룩진 바닥에 무릎 꿇을 일도, 잠결에 낯선 이들의 현장 라인을 볼 일도 없을 것이다.

낡은 1톤 트럭이 덜덜거리며 병원으로 향했다.

조수석에는 건담 프라모델이 담긴 파란색 상자가 놓여 있었다.

하준이는 우주와 관련된 것이라면 뭐든 좋아했다.

아들의 환하게 밝아질 얼굴, 플라스틱 부품을 조심스럽게 조립하는 작은 손을 상상했다.

곧, 우리에겐 이런 걸 함께할 시간이 세상에 가득할 것이다.

곧, 하준이는 건강해질 거고, 나는 그냥 엄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청소부가 아니라.

병원비라는 유령에 끊임없이 시달리는 여자가 아니라.

그냥… 엄마.

트럭을 주차하고 룸미러를 내려 나를 비춰봤다.

스물아홉이라는 나이보다 더 늙어 보였다.

눈 밑에는 지워지지 않는 그늘이 졌고, 머리는 인정사정없이 하나로 질끈 묶여 있었다.

몸에서는 공업용 세제 냄새가 희미하게 풍겼다.

아무리 씻어내도 결코 완전히 지워지지 않는 냄새였다.

하지만 내 미소는 진심이었다. 지난 몇 년 중 가장 환한 미소였다.

나는 우리 인생 최고의 소식을 들고 가는 길이었다.

그들을 놀라게 해주고 싶었다.

이 모든 시간을 내 곁에서 함께해 준 남자, 내 남자 박민준은 아마 장기 환자들을 위해 병원에서 제공하는 가족 라운지에 있을 것이다.

내 절친 채아는 하준이가 가장 좋아하는 과자를 사 왔을 테고.

라운지로 향하는 복도는 조용했다.

가까워질수록 살짝 열린 문틈으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나는 발걸음을 늦췄다. 손은 이미 문고리를 향해 뻗어 있었고, 얼굴에는 미소가 얼어붙어 있었다.

민준의 목소리였다.

평소 하준이의 건강에 대해 얘기할 때의 지친 기색은 온데간데없는, 부드럽고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

“위약 실험 데이터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회장님. 김 박사님도 확인하셨고요. 하준이의 생체 신호는 완벽하게 안정적입니다. 건강한 여섯 살 아이와 정확히 똑같은 반응을 보였어요.”

피가 차갑게 식었다.

회장님? 위약 실험?

낯선 의사의 목소리가 답했다.

“훌륭하군. 아주 흥미로운 사회적 실험이야, 강 이사. 7년은 긴 시간이었지. 결과에 만족하나?”

강 이사? 내 남자의 이름은 박민준이었다.

나는 문에 귀를 더 바싹 갖다 댔다.

심장이 갈비뼈 안에서 역겹고 둔탁한 리듬으로 미친 듯이 울렸다.

“거의요.”

민준, 아니 강태준이 말했다.

“그 여자가 돈만 보고 접근한 게 아니란 건 증명됐죠. 돈을 모으겠다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구역질부터 할 일을 해냈으니까요. 제 ‘월급’으로 감당할 수 있는 수준 이상의 돈은 단 한 푼도 요구하지 않았고요.”

그때,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윤채아. 내 절친.

목소리는 가볍고 장난스러웠다.

“그럼 이제 시험 끝난 거야? 드디어 사실대로 말해줄 수 있는 거야?”

차갑고 숨 막히는 공포가 폐를 휘감았다.

이건 분명 실수일 거야. 끔찍하고 뒤틀린 농담이겠지.

“아직.”

강태준이 말했다.

그의 오만한 표정이 눈앞에 그려지는 듯했다.

“6개월은 더 필요할 것 같아. 그 여자의 본성이 확실히 괜찮은지 확인하려면. 마지막 돈을 건네고 나서 반년 동안 관찰하는 거지. 그 돈을 아까워하는지. 태도가 변하는지.”

“6개월이나 더?”

채아의 목소리에는 흥분 같은 것이 섞여 있었다.

“오빠, 진짜 잔인하다. 마음에 들어.”

그때, 내 아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준이의 목소리.

밝고 낭랑하게.

“아빠, 우리 집에 빨리 갈 수 있어요? 냄새나는 엄마는 이제 안 왔으면 좋겠어요. 엄마한테선 맨날 이상한 약품 냄새가 나요.”

그 말은 어떤 물리적인 충격보다 더 아프게 나를 때렸다.

냄새나는 엄마.

“곧 갈 수 있어, 아들.”

강태준이 다정하게 말했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돼.”

“엄마 싫어.”

하준이가 칭얼거리며 목소리를 높였다.

“채아 이모가 좋아. 이모는 쿠키 냄새도 나고 새 레고도 사준단 말이에요. 엄마는 맨날 울기만 하고.”

“알았어, 하준아.”

채아가 꿀처럼 달콤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채아 이모가 같이 있어 줄게. 우리 셋이서 아주 재미있게 놀자.”

“딱 6개월만 더.”

강태준이 CEO가 계약을 체결하듯 단호한 목소리로 반복했다.

“그러면 시험은 끝난다. 서지우가 유성 가문의 사람이 될 자격이 있는지 알게 되겠지.”

서지우.

그는 몇 년 동안 나를 그 이름으로 부르지 않았다.

그에게, 이 삶의 모든 사람에게 나는 박지우였다.

파란 상자 속의 건담 프라모델이 갑자기 수백 킬로그램의 벽돌처럼 느껴졌다.

나는 문에서 비틀거리며 물러났다.

목구멍에서 터져 나오려는 비명을 막기 위해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7년.

내 인생의 7년, 내 몸이 부서지고 내 영혼이 가루가 되도록 버텨온 시간.

그건 치료를 위한 게 아니었다.

시험이었다. 충성심 테스트.

내가 사랑한 남자와 내 절친이 설계하고, 내가 모든 것을 희생한 아들마저 동참한 정교하고 잔인한 게임.

내가 피와 눈물로 얼룩진 마지막 한 푼까지 긁어모은 그 돈은, 생명을 구하는 치료비가 아니었다.

새장 속 실험용 쥐처럼 나를 지켜보던 한 가문에 들어가기 위한 입장료였을 뿐이다.

그들에게 내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다. 데이터였다.

내 희생은 희생이 아니었다. 한 편의 연극이었다.

나는 손에 든 건담 프라모델을 내려다봤다.

나를 원하지 않는 아들을 위한 선물.

거짓으로 만들어진 미래의 상징.

내 모든 인생이 거짓이었다.

뜨거운 눈물이 소리 없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방 안에서 들려오는 행복한 가족의 웃음소리가 텅 빈 복도에 울려 퍼졌다.

그것은 내 심장이 부서지는 소리였다.

나는 돌아섰다. 걸음은 나무토막처럼 뻣뻣했다.

엘리베이터 옆에 놓인 커다란 회색 쓰레기통을 지나쳤다.

망설임 없이 뚜껑을 열고 파란 상자를 그 안에 던져 넣었다.

상자는 텅 빈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끝이야.

마음속에서 조용한 비명이 울렸다.

시험이 아니라.

우리가.

나는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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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차 2

서지우 POV:

한 시간 뒤, 전화벨이 울렸다.

내 트럭 안의 숨 막히는 정적을 깨는 날카롭고 불쾌한 소음이었다.

화면에 익숙한 번호가 떴다.

대한대학병원 소아청소년과, 원무과.

몇 년 동안 이런 전화는 내 혈관에 순수한 공포의 스파이크를 꽂아 넣곤 했다.

또 한 번의 필사적인 협상, 지불할 수 없는 돈을 약속하며 절망에 갈라지는 목소리로 연장을 애원해야 하는 시간이었다.

이번에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두려움과 희망이 살던 자리에 거대하고 차가운 공허함이 자리 잡았다.

나는 놀라울 정도로 차분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서지우입니다.”

“박하준 군 보호자 박지우 씨 맞으시죠?”

전화기 너머의 여자는 딱딱했고, 목소리에는 이미 피로가 묻어 있었다.

“하준 군의 예비 치료 프로토콜 관련 미납금 때문에 전화드렸습니다. 현재 500만 원이 연체된 것으로 나옵니다.”

나는 갈라진 가죽 시트에 머리를 기댔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전화했을 때가 생각났다.

나는 마룻바닥의 핏자국을 무릎 꿇고 닦고 있었고, 제발 2주만 더 시간을 달라고 울면서 애원했다.

그녀는 한숨을 쉬며 허락했지만, 재정적 책임감에 대한 잔소리를 잊지 않았다.

“네, 기억합니다.”

나는 감정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내 무덤덤한 반응에 당황했는지 그녀의 목소리가 약간 날카로워졌다.

“연장 기한이 끝났습니다. 즉시 납부하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준 군의 프로그램 참여가 중단될 수 있습니다.”

프로그램 참여 중단.

지난 5년간 나를 개인적인 악몽으로 몰아넣었던 협박.

그 꿈을 꾸다 식은땀을 흘리며 깨어난 적도 있었다.

이제 그 말들은 아무 의미도 없었다.

중단될 프로그램이 있기는 한가?

설탕 알약과 식염수 주사로 이루어진 프로그램?

그를 치료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시험하기 위해 설계된 프로그램?

“왜 저한테 전화하신 거죠?”

나는 진심으로 물었다.

“제가 알기로는 이건 제가 모으고 있던 본 치료 시작 전 마지막으로 내야 할 금액이었는데요.”

거짓말이 입안에서 재 맛처럼 썼다.

“네, 하지만 이건 이미 제공된 서비스에 대한 비용입니다.”

그녀가 참을성 없다는 듯 말했다.

“보통 남편분이신 박민준 씨가 이런 전화를 처리하셨는데, 연락이 닿질 않네요.”

박민준 씨.

강태준.

아마 10만 원짜리 지폐를 땔감으로 쓸 만큼 부유한 남자.

그가 고작 500만 원 때문에 내가 애걸복걸하게 내버려 뒀다.

그가 돈을 낼 수 없어서가 아니었다.

시험의 일부였다.

내가 어디까지 가는지 보려고.

내가 무너지는지 보려고.

나는 더 이상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그 사람한테 청구서를 보내세요.”

나는 침착하게 말했다.

“저는 더 이상 하준이의 재정 문제를 처리하지 않을 겁니다.”

전화기 너머에서 충격받은 침묵이 흘렀다.

“사모님? 무슨 말씀이신지… 항상 사모님께서…”

“제가 항상 뭘 했는지는 저도 압니다.”

나 자신도 놀랄 만큼 차가운 목소리로 그녀의 말을 끊었다.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청구서는 박민준 씨에게 보내세요. 아니, 더 좋은 방법은 강태준 씨에게 보내는 겁니다.”

나는 그녀가 대답하기 전에 전화를 끊고 조수석에 휴대폰을 던졌다.

바로 그때, 번쩍이는 검은색 SUV 한 대가 내 녹슨 트럭 옆 주차 공간으로 미끄러져 들어왔다.

강태준이었다.

아마 내 옷을 전부 합친 것보다 비쌀 맞춤 정장을 완벽하게 차려입은 모습이었다.

나를 보자 그의 잘생긴 얼굴에 놀라움이 스쳤지만, 이내 따뜻하고 걱정스러운 미소로 바뀌었다.

지난 7년간 나를 속여온 바로 그 미소였다.

“지우야! 자기야, 아직 여기서 뭐 해? 전화하려던 참이었어. 늦게까지 일하는 줄 알았지.”

그는 내 차 문을 열기 위해 움직였다.

그의 동작은 유려하고 매력적이었다.

완벽하고 헌신적인 파트너의 모습.

“일이 일찍 끝났어.”

나는 어떤 온기도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내릴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그는 내가 예전에 그토록 사랑스럽다고 생각했던 방식으로 미간을 찌푸렸다.

“괜찮아? 안색이 안 좋아 보이네.”

그가 내 손을 잡으려고 손을 뻗었다.

나는 그의 손가락이 닿기 전에 손을 빼버렸다.

그의 미간이 더 깊게 패였다.

짜증 같은 감정이 그의 얼굴에 스쳐 지나갔지만, 다시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가려졌다.

“힘든 하루였어?”

“그렇다고 할 수 있지.”

나는 마침내 트럭 문을 밀고 나와 그와 마주 섰다.

그는 나보다 키가 컸고, 그의 존재는 보통 위안을 주었다.

지금은 위협처럼 느껴졌다.

“내가 데리러 가려고 했는데.”

그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힘들게 일하고 여기까지 운전해 올 필요 없잖아. 같이 하준이 보러 가자.”

다음.

그는 다음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다시 줄을 서서, 그와 우리 아들을 위해 사는 사랑스럽고 지친 여자로 돌아갈 거라고 생각했다.

그들을 위해 무엇이든 할 여자.

그 여자는 한 시간 전 병원 복도에서 죽었다.

내 옷에 밴 락스 냄새가 이제 더 강하게 느껴졌다.

그의 비싸고 깨끗한 향수 냄새와 극명한 대조를 이루었다.

몇 년 동안 나는 아들의 목숨을 위해 싸우고 있다고 믿으며, 닦고, 모으고, 희생했다.

아니었다.

나는 내가 지원한 줄도 몰랐던 역할의 오디션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방금, 나는 그 역할에 떨어졌다는 것을 분명하게 통보받았다.

“아니.”

나는 조용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하준이를 다시 보지 않을 것 같아.”

그의 미소가 완전히 무너졌다.

“무슨 소리야, 지우야? 드라마 찍지 마. 그냥 피곤해서 그래.”

피곤하다.

그래, 나는 피곤했다.

뼛속까지, 영혼까지 피곤했다.

거짓말에 지쳤다.

시험에 지쳤다.

그에게 지쳤다.

“나 피곤해.”

나는 동의했다.

“이 모든 것에 너무 지쳤어.”

나는 그를 지나 병원의 번쩍이는 유리문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저 건물 안에서 내 절친은 내 아들에게 엄마 노릇을 하고 있었고, 내가 사랑했던 남자는 내 인생을 가지고 신 놀음을 하고 있었다.

쓰라리고 타는 듯한 분노가 내 핏속의 얼음을 녹이기 시작했다.

그는 다시 나에게 손을 뻗었다.

그의 표정은 사랑과 걱정으로 가득 찬 완벽한 가면이었다.

“자, 어서 안으로 들어가자. 채아가 쿠키 구웠어. 하준이가 너 찾고 있어.”

거짓말은 너무나 자연스럽고 능숙했다.

역겨웠다.

---

회차 3

서지우 POV:

나는 그를 따라 병원으로 다시 들어갔다.

마치 시멘트 속을 걷는 것처럼 발이 무거웠다.

한 걸음 한 걸음이 한 시간 전 고통 속에서 이곳을 도망쳤던 나 자신에 대한 배신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봐야만 했다.

기만의 장막이 찢어진 지금, 내 눈으로 모든 것을 직접 확인해야만 했다.

이 복도를 걸을 때마다 느끼던 따스함, 하준이의 얼굴을 볼 기대감은 사라졌다.

남은 것은 텅 비고 울리는 아픔뿐이었다.

가족 라운지에 가까워지자 웃음소리가 들렸다.

밝고 행복한 웃음소리.

하준이었다.

내가 몇 달 동안 듣지 못했던, 근심 걱정 없는 기쁨으로 웃고 있었다.

내가 곁에 있을 때는 결코 보여주지 않았던 기쁨.

민준이 활짝 웃는 얼굴로 문을 밀고 들어갔다.

“주차장에서 헤매고 있는 사람 좀 봐.”

안의 풍경은 완벽한 가정의 행복을 담은 그림 같았다.

채아는 푹신한 소파에 앉아 있었고, 하준이는 그녀의 무릎에 안겨 옆구리를 간지럽히는 그녀 때문에 고개를 젖히고 웃고 있었다.

펼쳐진 동화책이 그들 옆에 놓여 있었다.

그들은 너무나 자연스럽고, 너무나 잘 어울렸다.

엄마와 아들처럼.

하준이의 눈이 내게 닿자, 그의 미소가 사라졌다.

그냥 희미해진 게 아니었다.

마치 스위치를 끄듯 뚝 끊겼다.

그의 몸이 채아의 품에서 뻣뻣하게 굳었다.

“아.”

그가 거의 속삭이듯 중얼거렸다.

“왔네.”

방 안의 기쁨이 증발했다.

과거의 나라면 그에게 달려가 팔을 벌리고, 그가 마지못해 해줄 포옹을 갈망했을 것이다.

가슴 아파하며 무릎을 꿇고, 뭐가 문제인지, 왜 그렇게 멀게 느껴지는지 물었을 것이다.

나 자신을, 내 일을, 내 피로를 탓했을 것이다.

오늘, 나는 그냥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두 손을 옆에 꼭 쥔 채.

나는 그가 병으로 인한 환상통이라 믿었던 것 때문에 밤새 울부짖을 때 그를 안아주었던 모든 순간을 기억했다.

나는 그의 머리카락에 대고 속삭이며 약속했다.

더 열심히 일하고, 더 빨리 돈을 모으고, 그를 낫게 하기 위해 무엇이든 하겠다고.

돈을 마련하겠다고, 엄마가 다 해결해 주겠다고 맹세했다.

그 헌신, 7년간의 고되고 영혼을 갉아먹는 노동에 대한 보상은 그의 사랑이 아니었다.

그의 혐오였다.

그는 채아의 무릎에서 꿈틀거리며 빠져나와 나에게서 멀어지며 그녀의 다리 뒤로 살짝 숨었다.

그 작은 움직임은 너무나 심오한 거절이어서 내 폐에서 공기를 앗아갔다.

그는 내가 더 가까이 오지 않는 것에 안도하고 있었다.

나는 지갑을 꽉 쥐었다.

손마디가 하얗게 변했다.

표정을 중립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침착하고 사랑스러운 엄마의 가면은 내가 써본 것 중 가장 무거웠다.

더 이상 억지로 미소를 지을 수도 없었다.

내 얼굴은 돌처럼 굳어 있었다.

“하준아.”

내 목소리는 낯설고 긴장되어 있었다.

“엄마한테 인사 안 할 거야?”

그는 채아 뒤에서 살짝 엿보았다.

작은 얼굴은 뾰로통했다.

그는 고개를 저으며 그녀의 비싸 보이는 치마에 얼굴을 묻었다.

“싫어.”

채아는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녀의 표정은 동정심과 부드러운 꾸지람이 완벽하게 섞여 있었다.

“하준아, 착하게 굴어야지. 엄마 피곤하시잖아. 널 위해 아주 열심히 일하신단다.”

그녀는 나에게 시선을 던졌다.

예전에는 지지하는 우정으로 해석했던 시선.

이제 나는 그녀의 눈에서 승리의 빛을 보았다.

말없는 도전.

“오늘 좀 낯을 가리네.”

그녀가 가짜 다정함이 뚝뚝 묻어나는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조금 예민해져서 그래.”

낯을 가린다고?

내 아들은 나에게 낯을 가리지 않았다.

혐오하고 있었다.

나는 그의 눈에서 그것을 보았다.

나는 그가 ‘진단’받던 날을 떠올렸다.

나는 겁에 질린 젊은 엄마였고, 채아는 내 손을 잡고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 곁에 있겠다고 약속했다.

나는 너무나 감사했고, 그녀의 의리에 감동했다.

눈물을 흘리면서도 그녀가 하준이의 대모가 되어야 할 거라고 농담까지 했다.

그녀는 그냥 대모가 된 게 아니었다.

그녀는 그의 엄마가 되었다.

쿠키와 레고 세트, 그리고 죽음과 부패를 떠올리게 하지 않는 향기로 내 코앞에서 내 아들을 훔쳐 갔다.

갑자기 채아가 연극적인 작은 소리를 내며 숨을 헐떡였다.

그녀는 앞으로 비틀거리며 커피 테이블 위에 있던 과일 그릇을 쳐서 떨어뜨렸다.

포도와 사과 조각들이 깨끗한 흰 바닥에 흩어졌다.

“어머, 칠칠맞게!”

그녀가 소리쳤다.

즉시 민준이 그녀 곁으로 가 무릎을 꿇고 그녀를 도왔다.

“괜찮아, 자기?”

그가 내가 아프거나 다쳐서 집에 돌아왔을 때 단 한 번도 보여주지 않았던 깊은 걱정이 밴 목소리로 물었다.

그들은 함께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녀가 만든 난장판을 치우는 완벽한 한 팀.

하준이도 달려와 마치 귀한 보석이라도 되는 듯 포도알 하나하나를 조심스럽게 주웠다.

나는 문 옆에 서서 완전히 무시당했다.

나는 내 가족 안의 이방인이었다.

내가 피 흘려 지켜온 삶 속의 유령이었다.

차갑고 단단한 확신이 가슴속에 자리 잡았다.

여기에는 더 이상 나를 위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나 가봐야겠어.”

나는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민준이 짜증스럽게 미간을 찌푸리며 올려다보았다.

“지우야, 그러지 말고. 그냥 앉아.”

하지만 나는 이미 돌아서고 있었다.

그 방에서 단 1초도 더 숨 쉴 수 없었다.

그곳은 나를 질식시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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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 년의 거짓말, 복수의 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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