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1

7년의 연애 끝에 알게 된 건, 약혼자 민순양이 내 절친 궁리혜와 놀아나고 있었다는 사실뿐이었다.

내가 하혈하며 아이를 잃어가던 그 순간에도, 그는 리혜의 가짜 공황 발작을 챙기느라 내 연락을 무시했다.

가족들은 더 끔찍했다. 민순양에게 받은 돈이 끊길까 봐, 핏물 젖은 침대에 쓰러진 나를 외면하고 그에게 빌라고 강요했다.

민순양은 내 전 재산을 빼돌리고 나를 별장에 감금한 채, 리혜를 보호하기 위해 나를 기자회견장에 세웠다.

모든 죄를 뒤집어쓰고 사과하라는 그의 명령에, 나는 순종적인 인형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들은 몰랐다. 내가 죽은 듯 지내며 그들의 불륜과 횡령, 감금 증거를 모으고 있었다는 것을.

생방송 카메라가 켜지고 수많은 플래시가 터지던 순간, 나는 준비해 둔 증거 서류를 허공에 뿌리며 마이크를 잡았다.

"민순양 씨, 이제 쇼는 끝났어."

제1화

(차시현 POV)

그의 손이 내 허리를 감싸는 순간, 나는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그의 숨결이 귓가를 스쳤지만, 예전의 설렘 대신 역겨움이 치밀었다. 나는 눈을 감았다. 이 모든 것이 끝나기를 바랐다.

그의 입술이 내 목덜미에 닿으려는 찰나, 나는 온 힘을 다해 그를 밀쳐냈다. 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마치 내가 방금 뱀이라도 토해낸 듯한 표정이었다. 나는 그의 뺨에 남은 립스틱 자국을 손등으로 거칠게 닦아냈다. 그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게 달아올랐다.

민순양의 눈은 충격과 분노로 이글거렸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나를 노려봤다. 나를 감히 거부하다니, 그에게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의 입술이 씰룩거렸다. "차시현,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그 목소리에는 서늘한 살기가 담겨 있었다.

그때였다. 문이 벌컥 열리고 궁리혜가 들어섰다. 그녀는 민순양의 격앙된 얼굴과 나를 번갈아 보더니, 곧장 민순양에게 달려가 품에 안겼다. "순양 오빠! 괜찮으세요? 제가 조금만 늦었어도…." 그녀의 목소리는 얇고 가늘게 떨렸다.

궁리혜는 민순양의 가슴에 얼굴을 묻은 채, 나를 향해 힐끗 눈을 들어 올렸다. 그 눈빛에는 걱정보다는 교활한 승리감이 서려 있었다. 그녀는 마치 깨지기 쉬운 유리 인형처럼 가녀린 몸으로 민순양에게 매달려 있었다. "시현아, 네가 아픈 건 알지만… 순양 오빠는 너무 걱정하지 마."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민순양의 옷자락을 더욱 세게 움켜쥐었다.

이내 궁리혜는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끼기 시작했다. 소리 없는 울음이었지만, 그 소리는 오히려 더 극적으로 들렸다. "내가… 내가 괜히 여기 와서… 오빠를 힘들게 하는 것 같아. 시현아, 미안해. 내가 다시 돌아갈게." 그녀는 민순양의 품에서 벗어나려는 시늉을 했다.

"리혜야, 무슨 소리야! 너는 잘못 없어." 민순양은 리혜를 더욱 강하게 끌어안았다. 그의 눈은 나를 향해 강렬한 비난을 쏟아냈다. "이제 그만해. 네가 리혜한테 상처 주는 건 참을 수 없어." 그는 리혜의 가녀린 어깨를 다독이며, 마치 그녀가 세상에서 가장 연약한 존재라도 되는 양 보듬었다.

그의 목소리는 궁리혜에게 향할 때만 부드럽게 변했다. "리혜야, 괜찮아. 내가 옆에 있잖아. 아무 걱정 하지 마." 그는 리혜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마치 세상 모든 오물을 씻어내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완벽하게 순진무구하고, 완벽하게 사랑스럽다는 듯.

나는 그의 품에 안겨 있는 궁리혜를 바라봤다. 하얀 피부, 한없이 청순한 얼굴. 모두가 그녀를 완벽하다고 했다. 민순양은 늘 그렇게 말했다. "리혜는 너무 착해서 문제야. 너무 순수해서 세상 물정 모르고." 그의 입에서 나오는 리혜의 찬사는 나를 비참하게 만들었다.

내 시선은 벽난로 위에 놓인 은빛 액자에 닿았다. 그 안에는 내가 직접 디자인한 이 별장의 스케치 도면이 들어 있었다. 우리는 함께 이 집을 채워갈 꿈을 꾸었다. 하지만 지금, 이 집은 더 이상 우리의 것이 아니었다. 궁리혜의 취향으로 모든 것이 바뀌고 있었다. 그 액자 자체가 조롱 같았다.

이 모든 게 다 거짓이었어.

나는 깨달았다. 민순양이 나를 사랑한다고 믿었던 7년의 시간, 그 모든 순간이 조작되고 왜곡된 것이었다. 그는 나를 소유물로 여겼을 뿐이다. 내 열정, 내 재능, 내 존재 자체가 그에게는 그저 장식품이었다.

내 입술 사이로 차가운 비웃음이 터져 나왔다. "흐흥." 그 소리는 작았지만, 민순양의 귀에는 날카로운 비수처럼 박혔을 것이다. 그의 고개가 번쩍 들렸다.

"뭐가 우스워? 네가 지금 이 상황에서 비웃을 자격이라도 돼?" 민순양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네가 지금 무슨 짓을 하는지 정말 모르겠어? 리혜가 얼마나 힘든지 눈에 안 보여?" 그는 나를 향해 한 발짝 다가섰다. 그의 눈빛은 경고로 가득했다. "네가 이렇게 나오면… 나도 더 이상은 못 참아."

그는 내 눈을 꿰뚫어 볼 듯 노려봤다. "네가 그 아이를 얼마나 원했는지 내가 모를 것 같아? 네가 우리 아이를 잃었다는 소문이 퍼지면 어떻게 될 것 같아? 네 가족들이 얼마나 실망할지 생각해봤어?" 그는 가장 아픈 곳을 찔렀다. 나의 가장 큰 상실, 그리고 나의 가장 큰 약점.

궁리혜는 민순양의 품에서 조용히 숨죽여 울고 있었지만, 사실은 내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무언의 의식 같았다. 이 모든 비극의 가해자는 바로 나라는 듯이. 내가 민순양을 이해하지 못하고, 내가 리혜를 배려하지 못해서 벌어진 일이라는 듯이.

나는 고통스러운 결정에 직면했다. 그들의 프레임에 갇히느냐, 아니면 그들의 비난 속에서 완전히 고립되느냐. 나는 이를 악물었다. 그래, 일단은…

나는 고개를 떨궜다. "미안해… 내가 너무 예민했나 봐." 거짓말이었다. 내 목소리는 파리하게 떨렸지만, 그들은 내 진심이 아닌 연약함만을 읽었을 것이다.

그 방안에 있던 모든 이들, 하녀들과 경비원들조차 나를 경멸하는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은 민순양과 리혜의 편이었다. 내가 민순양의 약혼녀가 아닌, 이 모든 문제를 일으킨 악녀라는 듯이. 그들의 시선은 나를 짓누르는 공기가 되었다.

나는 더 이상 그 방에 서 있을 수 없었다. 나는 간신히 몸을 돌려 방을 나왔다. 심장이 발밑으로 곤두박질치는 것 같았다. 모든 것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내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몸을 던졌다. 흐느끼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 순간, 전화벨이 울렸다. 엄마였다. 나는 필사적으로 전화를 받았다. "엄마…" 내 목소리는 간신히 나왔다.

엄마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더 차갑고 격앙되어 있었다. "시현아, 너 지금 민순양 씨한테 무슨 짓을 하는 거야? 리혜 씨가 얼마나 착한 아이인데, 너 때문에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으면 공황 발작을 일으키니?" 그녀는 한숨을 쉬었다. "너 때문에 민순양 씨 지원금이 끊기기라도 하면 우리 집은 이제 어떻게 되는 줄 알아?"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내가 아파서 쓰러졌을 때, 민순양은 리혜를 간호하느라 내 연락을 무시했다. 가족들은 민순양에게 받은 돈 때문에 나를 외면했다. 그리고 나는… 결국 아이를 잃었다. 이 모든 고통의 순간에, 내 가족은 민순양의 편에 서 있었다. 그들에게 나는 돈줄일 뿐이었다.

"엄마, 내가… 내가 얼마나 아팠는지 알아? 나… 나 아이를 잃었어… 가족들은 나한테 관심도 없었잖아!" 내 목소리가 절규로 변했지만, 엄마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무슨 아이? 그게 지금 중요하니? 민순양 씨가 너 때문에 얼마나 곤란해하는지 알아? 너 혹시… 리혜 씨한테 무슨 말이라도 했니? 민순양 씨가 너한테 준 회계 장부, 그거 아직 가지고 있지? 그거 어떻게 됐냐고 묻잖아!" 엄마는 내 말을 끊고 민순양이 준 사업 자금 이야기를 꺼냈다. 그녀는 나의 고통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나는 이제야 깨달았다. 나의 가족은 진정으로 나를 사랑한 적이 없었다. 그들에게 나는 그저 황금 알을 낳는 거위였다. 민순양이라는 거대한 재벌과 연결될 수 있는 유일한 통로. "엄마… 어떻게…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시끄러워! 너는 그냥 시키는 대로만 해. 민순양 씨가 뭘 원하는지 알아서 해. 안 그러면…." 엄마의 목소리는 협박으로 가득했다. 나의 마지막 희망조차 산산조각 났다. 나는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내 몸은 이미 절망으로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하혈이 다시 시작되는 것을 느꼈다. 핏물이 허벅지를 타고 흘러내리는 감각이 너무나도 선명했다.

내 손에서 힘없이 전화기가 떨어져 나갔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 뒹굴었다. 엄마의 목소리가 여전히 스피커 너머에서 울려 퍼지고 있었다. "차시현! 내 말 듣고 있어? 당장 민순양 씨 말대로 해! 끊어!"

엄마는 전화를 끊었다. 나는 홀로 어둠 속에 남겨졌다. 핏물이 흥건한 침대 위에서, 나는 차갑게 식어가는 내 몸을 느꼈다. 아무도 나를 돌보지 않았다.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

나의 모든 세상이 무너져 내렸다.

회차 2

(차시현 POV)

차가운 바닥에 쓰러졌던 몸을 간신히 일으켰다. 온몸의 근육이 비명을 질렀고, 머리에서는 지독한 통증이 울렸다. 휘청거리는 몸을 가누지 못해 다시 벽에 부딪혔다. 날카로운 모서리에 어깨가 긁혔지만, 통증은 느껴지지 않았다. 이미 마음이 너무 아파서, 육체의 고통은 사치처럼 느껴졌다.

거울 속에 비친 내 얼굴은 창백하고 초췌했다. 핏기 없는 입술은 비웃는 듯 일그러져 있었다. 내 눈은 공허하게 빛났다. 더 이상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듯한 눈이었다. 바닥에 떨어진 은빛 액자를 주워 들었다. 그 안에는 여전히 내가 설계한 이 별장의 도면이 들어 있었다. 우리는 함께 이 집을 채워갈 꿈을 꾸었다. 내가 손수 고른 가구들, 내가 디자인한 조명들, 우리가 함께 키워갈 아이의 방까지.

이 모든 게 다 내 착각이었어.

민순양은 한 번도 나를 진심으로 사랑한 적이 없었다. 결혼식이 끝나면 신혼여행 대신 리혜와 유럽 여행을 갈 계획을 세웠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도, 나는 그저 '리혜가 아프니까, 내가 이해해야지' 하고 넘겼다. 우리의 신혼집이 리혜의 취향대로 리모델링되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도, 나는 '순양 씨가 피곤하니까, 내가 대신 신경 써야지' 하며 애써 외면했다. 그의 모든 행동은 나의 사랑을 이용한 통제와 집착이었다.

그날의 약혼식, 리혜가 갑자기 쓰러지며 공황 발작을 일으켰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도 나는 민순양의 불안한 눈빛에 속아 넘어갔다. 그는 내 손을 잡고 "미안해, 시현아. 리혜는 정말 아픈 아이야. 내가 아니면 돌봐줄 사람이 없어. 네가 이해심 많으니까 참아줄 수 있지?"라고 속삭였다. 나는 그 말을 믿었다. 그가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리혜를 잠시 돌보는 것이라고 스스로를 합리화했다.

하지만 리혜의 "공황 발작"은 민순양이 나를 떠나도록 만드는 완벽한 연극이었다. 민순양은 나를 홀로 남겨두고 식장을 떠났다. 그날 밤, 나는 하혈을 시작했다. 온몸에 힘이 빠지고 시야가 흐려지는데, 핸드폰을 붙잡고 민순양에게 전화했지만, 그는 받지 않았다. 겨우 가족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그들은 민순양에게 받은 돈이 끊길까 봐 "별일 아닐 테니 쉬어라"며 나를 외면했다. 결국 나는 아이를 잃었다. 내 아이가… 민순양의 아이가… 그들의 무관심 속에 사라졌다.

모든 것이 명확해졌다. 이 모든 것은 철저히 계획된 배신이었다. 나는 그 액자를 내던졌다. 유리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내 눈에서는 더 이상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대신 차가운 분노가 일렁였다.

나는 비틀거리는 몸을 이끌고 방을 나섰다. 밖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별장의 긴 복도를 걸어 내려가는데, 온몸의 세포가 비명을 지르는 듯했다. 배에서 시작된 고통은 허리까지 파고들었다. 나는 손으로 배를 감쌌다. 아랫배에서 울컥, 따뜻한 피가 다시 흘러나오는 것을 느꼈다.

거실 불빛이 희미하게 새어 나왔다. 하녀들이 나를 발견했지만, 그들은 본체만체하며 황급히 시선을 피했다. 민순양은 내가 격리되어야 한다고 지시했을 것이다. 아무도 내게 다가오지 않았다. 아무도 나를 돕지 않았다. 나는 그들의 시선 속에서 투명 인간이 된 것 같았다.

내 손가락에는 아직 약혼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민순양이 직접 디자인했다며 내게 끼워주었던 반지였다. 그 반지는 이제 조롱의 상징처럼 느껴졌다. 나는 힘없이 반지를 빼냈다. 차가운 금속이 손가락에서 미끄러져 바닥에 떨어졌다. 쨍그랑, 작은 소리가 났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나는 이 별장을 벗어나야 했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하혈이 심해지는 것을 느꼈다. 현관문에 다다랐을 때, 나는 잠겨 있는 문고리를 잡았다. 굳게 닫힌 문은 나를 가두고 있었다. 나는 탈출해야만 했다. 이 지옥 같은 곳에서.

무거운 현관문을 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몸이 휘청거리면서 머리가 다시 한번 띵하게 울렸다. 철컥, 손잡이가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차가운 겨울바람이 얼굴을 강타했다. 나는 비틀거리며 밖으로 나섰다.

새벽의 차가운 공기가 폐 속으로 파고들었다. 나는 겨우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뎠다. 멀리 보이는 도로는 아득하기만 했다. 얼마나 걸었을까, 다리에 힘이 풀리며 결국 길가에 주저앉았다. 옷은 이미 피로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지친 몸을 이끌고 겨우 버스 정류장까지 왔다. 주머니에 손을 넣어 핸드폰을 찾았다. 병원에 연락해야 했다. 하지만 핸드폰은 없었다. 아마 방에 떨어뜨린 듯했다. 나는 머리를 싸매고 다시 주머니를 뒤졌다. 지갑이… 지갑도 없었다.

젠장.

이런 상황에서 지갑조차 없다니. 나는 눈앞이 캄캄해졌다. 민순양은 나를 완전히 고립시키려 한 것이다. 병원비도, 택시비도, 아무것도 없었다.

그 순간, 내 눈에 익숙한 은행 앱 알림이 보였다. 내 명의로 된 계좌에서 큰 금액이 이체되었다는 알림이었다. 민순양의 회사 이름이 찍혀 있었다. 나는 내 계좌를 확인하기 위해 은행 앱을 열었다. 잔액은 0원이었다. 나의 모든 자산이 사라졌다. 내가 민순양의 회사에 투자했던 내 건축 설계 비용까지도.

"이게… 무슨…" 나는 믿을 수 없었다. 내 전 재산이, 나의 재능으로 벌었던 모든 돈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민순양은 나를 빈털터리로 만든 것이다. 내 가족과 민순양이 한 패였다는 사실이 다시 한번 머리를 스쳤다.

내 머릿속에 섬광처럼 스쳐 지나가는 단편적인 기억들이 있었다. 엄마와 남동생이 내게 사업 자금을 요구했던 일, 민순양이 흔쾌히 승낙하며 내 명의의 계좌에 돈을 넣어주었던 일, 그리고 그 돈을… 그들이 인출해 갔던 일.

내 가족들은… 민순양과 한통속이었어.

나는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추운 밤공기 속에서 나의 몸은 더욱 차갑게 식어갔다. 내 가족은 나를 팔아넘긴 것이다. 그 대가로 받은 돈으로 그들은 자신들의 사업을 확장하고, 새 차를 사고, 좋은 아파트로 이사했다. 그리고 나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그때, 주머니 속에서 진동이 울렸다. 민순양이었다. 나는 망설였다. 받을까, 말까. 하지만 곧이어 밀려오는 분노가 내 손을 움직였다. "여보세요." 내 목소리는 얼어붙은 듯 차가웠다.

"차시현! 너 지금 어디야? 감히 내 허락도 없이 별장을 나가?" 그의 목소리에는 분노가 서려 있었다. "네가 지금 무슨 짓을 하는지 알아? 당장 돌아와! 아니면…."

"뭘 할 건데?" 나는 그의 말을 잘랐다. "나를 또 감금할 건가? 내 가족들을 이용해서 나를 협박할 건가? 더 이상 나한테 남은 게 뭐가 있다고?"

"시현아, 너 지금 몸도 안 좋잖아. 비도 오는데 왜 밖에 나가서…." 그의 목소리에는 걱정하는 척하는 가식이 묻어 있었다. 나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비는 내리지 않았다.

"비는 오지 않아." 나는 싸늘하게 말했다. "넌 내가 지금 어디서 뭘 하는지조차 모르는구나. 관심도 없으면서… 왜 전화했어?"

순간 민순양의 목소리가 멈칫했다. "네가… 네가 나를 이렇게까지 만들 줄은 몰랐어. 네가 얼마나 영리한지 알아. 네가 나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어줬는지도. 하지만 이제는…." 그의 목소리에는 차가운 계산이 깔려 있는 듯했다. "네가 내 말을 듣지 않으면, 네 가족들에게 내가 준 모든 지원금을 회수할 수밖에 없어. 너도 잘 알잖아? 네 동생 사업이 얼마나 위태로운지."

가족…?

나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내 가족? 그들은 이미 나를 팔아넘겼어. 민순양, 네가 나한테 했던 모든 말들이 다 거짓말이었어. 너는 나를 사랑한 게 아니었어. 그저… 소유하고 싶었을 뿐이야."

"무슨 소리야! 나는 너를 사랑했어! 네가 나를 이렇게 만들었잖아!" 그의 목소리가 격앙되었다. "리혜는 네가 나한테서 멀어지려고 할 때마다 쓰러졌어! 너 때문에! 너무 불안해해서!"

나는 어이없는 웃음을 터뜨렸다. "리혜… 네가 돌봐야 할 가련한 리혜 말이야?" 나는 그의 말을 비웃었다. "나를 버리고 리혜에게 달려갈 때마다, 리혜는 행복해 보였어. 네가 나한테 한 약혼반지를 낀 채로, 내 신혼집을 리모델링하는 리혜 말이야?"

"그건… 리혜가 아파서 그랬어! 넌 왜 그렇게 이기적이야? 리혜는 네가 나보다 훨씬 더 뛰어나다고 했어. 네가 세계적인 건축가가 될 거라고. 나를 위해서 네 꿈을 버리는 건 미안하지만… 리혜는 늘 네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나한테 말해줬어."

나는 그의 말을 들으며 과거를 떠올렸다. 한때 민순양은 내 재능을 가장 먼저 알아봐 준 사람이었다. 내가 밤샘 작업을 할 때마다 따뜻한 커피를 가져다줬고, 힘들 때마다 어깨를 토닥여줬다. "시현아, 너는 정말 특별한 사람이야. 너의 재능은 하늘이 준 선물이야." 그의 칭찬은 나를 날아오르게 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조작된 것이었다. 리혜는 민순양에게 내 칭찬을 하면서 동시에 나와 민순양 사이를 이간질했을 것이다. 그녀는 교묘하게 나를 깎아내리고, 민순양이 나를 떠나 궁리혜 자신에게 집중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민순양은 내가 아이를 잃고 피를 흘리는 동안에도 리혜를 돌보느라 내 연락을 무시했다. 그들의 '사랑' 은 나의 고통 위에서 피어난 것이었다.

"시현아, 내가… 내가 얼마나 많이 노력했는지 몰라? 네가 나를 외면할 때마다 리혜가 얼마나 불안해했는지 알아? 너는 강하잖아. 너는 늘 혼자 모든 걸 견뎌냈잖아." 민순양의 목소리는 여전히 리혜를 감싸고 있었다.

그때 전화 너머에서 궁리혜의 목소리가 들렸다. "순양 오빠… 혹시… 시현 언니한테 신경 쓰는 거예요? 언니 혼자 강한 척하는 건데… 오빠가 너무 걱정하는 것 같아서…." 그녀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지만, 그 속에는 명확한 의도가 담겨 있었다.

"리혜야, 왜 또 울어? 괜찮아. 아무것도 아니야." 민순양은 리혜를 달래는 듯한 소리를 냈다. 그리고 내게 다시 말했다. "차시현, 마지막 경고야. 지금 당장 돌아와. 아니면… 넌 모든 걸 잃게 될 거야."

나는 피식 웃었다. 이미 모든 것을 잃었다. 더 이상 잃을 것도 없었다. "잃을 게 없어. 난 이미 모든 걸 잃었어."

"네가 뭘 잃어! 네가 가진 게 얼마나 많은데! 네 이름, 네 명예, 그리고…." 민순양은 말을 멈췄다. 내가 아이를 잃었다는 사실은 그에게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그의 관심은 오직 내가 가진 것들뿐이었다.

"내가 뭘 잃었는지 알아?" 내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 안에는 모든 것을 포기한 자의 냉기가 서려 있었다. "나는 꿈을 잃었고, 사랑을 잃었고, 가족을 잃었고… 그리고 아이까지 잃었어."

"시현아, 그건 네가… 네가 나한테 매달리지 않았기 때문이잖아! 네가 좀 더 내 말을 들었으면!" 민순양은 여전히 모든 것을 내 탓으로 돌렸다.

"하." 나는 짧게 내뱉었다. 그리고 전화를 끊었다. 더 이상 그의 목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다. 더 이상 그의 거짓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 나는 이대로 죽어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나를 기다리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내 몸은 점점 더 차갑게 식어갔다. 나는 눈을 감았다.

회차 3

(차시현 POV)

얼어붙은 몸으로 간신히 병원 응급실 문을 열고 들어섰다. 며칠 밤낮을 추위에 떨고, 하혈이 멈추지 않아 쓰러지기를 반복했다. 의사는 담담한 얼굴로 내 상태를 설명했다. 심각한 빈혈과 탈진, 그리고… 유산 후 합병증. 수술이 시급했다. 하지만 나는 돈이 없었다. 민순양이 내 모든 계좌를 비워버렸다.

"수술비는… 어떻게 되는 거죠?" 내 목소리는 파리했다. 의사는 잠시 침묵하더니, 복잡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일단은 보험 처리가 가능하지만… 나머지는 본인 부담입니다. 보호자와 상의해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나는 보호자가 없었다. 돌봐줄 가족도, 사랑해줄 연인도 없었다. 갈 곳도, 기댈 곳도 없었다. 나는 그저 텅 빈 병원 침대에 몸을 뉘었다. 이곳에서라도 잠시 몸을 눕힐 수 있다는 것이 유일한 위안이었다.

그때, 내 침대 옆에 놓인 핸드폰이 진동했다. 민순양이었다. 나는 차갑게 굳은 얼굴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내 목소리는 아무 감정 없었다.

"차시현! 너 지금 어디야? 감히 내 허락도 없이 병원까지 가?" 그의 목소리에는 불같이 화가 나 있었다. 그는 내가 병원에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을까.

전화 너머에서 궁리혜의 얇은 목소리가 들렸다. "순양 오빠… 시현 언니가… 혹시 또 오빠를 힘들게 하는 건 아니겠죠? 언니가 좀 예민하잖아요…" 그녀는 마치 순진한 질문을 하는 것처럼 말했지만, 그 속에는 나를 비난하는 노골적인 의도가 담겨 있었다.

"리혜야, 걱정하지 마. 내가 다 해결할게." 민순양은 궁리혜를 안심시키는 듯한 목소리로 말하더니, 내게 다시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차시현, 너는 왜 늘 모든 걸 복잡하게 만들어? 리혜가 너 때문에 얼마나 힘든지 알아? 너 때문에 리혜가 또 쓰러졌어!"

그는 또다시 모든 책임을 내게 전가하고 있었다. 내가 병원에 입원한 이유도, 내가 겪는 고통도, 그에게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오직 궁리혜의 안위뿐이었다. "네가… 네가 이렇게까지 나올 줄은 몰랐어. 정말 실망스럽다, 차시현." 그의 목소리에는 경멸이 담겨 있었다.

나는 침묵했다. 더 이상 반박할 힘도 없었다. 그의 말은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내 심장을 꿰뚫었다. 내가 민순양에게 매달렸던 7년의 세월이 스쳐 지나갔다. 그가 리혜에게 달려갈 때마다, 나는 그저 한없이 기다렸다. 그에게 내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을까. 이젠 아무 의미도 없었다.

넌 나를 정말 사랑하지 않았어. 단 한 번도.

나는 그의 진심을 이제야 깨달았다. 그는 나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저 자신의 소유물로 여기며 통제하려 했을 뿐이었다. 내 재능, 내 배경, 내 존재 자체가 그에게는 그저 편리한 도구였다.

전화 너머에서 궁리혜의 경박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언니… 혹시 아직도 순양 오빠가 언니를 사랑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죠? 언니가 차여서 너무 슬프다고 울면서 내가 위로해줬던 거… 기억 안 나요?" 그녀의 목소리는 잔인하게 나의 기억을 헤집었다.

민순양이 잠시 침묵했다. 그 침묵은 나에게 비수처럼 날아왔다. 그의 과거가, 그가 내게 했던 거짓말들이 떠올랐다. "시현아, 내겐 너밖에 없어. 리혜는 그저 어린 시절의 친구일 뿐이야." 그는 그렇게 말했지만, 그의 눈은 늘 리혜를 쫓았다.

나는 차가운 비웃음을 흘렸다. 그 웃음은 전화 너머의 그들에게 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망설임 없이 전화를 끊었다.

수화기 너머로 단절된 소리가 들렸다. 간호사 한 명이 들어와 주사를 놓아주었다. "힘내세요, 환자분. 괜찮아질 거예요." 그녀의 따뜻한 위로가 차가운 내 마음을 간신히 데웠다.

"고마워요." 나는 힘없이 말했다. "수술은… 언제 가능할까요?" 내게 남은 것은 이제 이 몸을 회복하고, 이 지옥에서 벗어나는 것뿐이었다.

"다행히 오늘 밤에 수술실이 비어서요. 준비되는 대로 바로 진행될 겁니다." 간호사의 말에, 나는 한 줄기 희망을 보았다. 이 모든 고통을 끝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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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사랑의 끝, 잔혹한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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