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1

내가 보스의 원수에게 납치당했을 때, 보스는 운명의 짝과 함께 해돋이를 보느라 나 따위 신경도 쓰지 않았다.

납치범들에게 전화가 걸려 오자 그는 무심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를 잘 묶어 둬, 다시는 귀찮게 하지 않게."

생사의 갈림길에서 나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나는 상대방 보스에게 매달리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제발.... 저를 죽이지 말아 주세요. 뭐든지 할게요, 제발."

그리고 나의 보스가 비로소 나를 떠올렸을 때, 상대방의 보스는 품에 안겨 잠든 나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비웃듯 말했다. "이미 늦었어. 이제 그녀는 너를 따라갈 힘도 없으니까."

...

나용준과 함께한 지 10년이 되는 해에, 그는 마침내 달의 여신 앞에서 사랑을 맹세하기로 했다.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그를 위한 선물을 준비하기에 바빴다.

호텔 스위트룸에서 그를 찾아갔을 때, 그는 부하들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정말 내일 김주리 씨와 약혼하시는 겁니까?" 누군가가 물었다.

"그럴 일은 없어. 아이도 가질 수 없는 여자가 어떻게 내 짝이 될 자격이 있겠어?" 나용준의 목소리가 들렸다.

다른 부하가 웃으며 말했다. "그녀가 알고나면 떠날까 봐 두렵지 않아요?"

나용준은 비웃으며 말했다. "그녀가 날 떠날 수 있다고 생각해? 화내며 도망쳐봤자, 결국 사흘도 못 가서 스스로 돌아와 빌 거야. 다들 알지?"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하긴, 그런 배짱이 없는거 같아요."

그들의 비웃음 속에서 나는 얼음 구덩이에 빠진 듯 추위를 느꼈다.

다음 날, 나용준은 고급스러운 맞춤 양복을 입고 모두의 주목을 받으며 무대 중앙에 서 있었다.

하지만 나는, 평소에 입던 가장 평범한 드레스를 입은 채 천천히 그곳으로 걸어갔다.

나의 차림새를 본 그의 얼굴색이 바로 어두워졌다. "옷이 그게 뭐야? 오늘처럼 중요한 날에 나를 욕보이려고 하는 거야?"

나는 무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시작해."

나를 향한 그의 시선은 차갑고 날카로웠다.

그러더니 그는 갑자기 돌아서서 사람 속에서 이다빈을 앞으로 끌어냈다.

그 바람에 그녀의 망토가 떨어졌고, 눈부신 웨딩드레스가 내 눈을 아프게 했다.

"여러분, 바쁘신 와중에 이 자리에 참석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달의 여신 앞에서 저 나용준은 이다빈 양과 평생 함께하기를 맹세합니다."

사람들이 일제히 우리 셋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내 얼굴에서 무너지는 모습을 읽으려고 했지만

난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나용준이 다시 입을 열려고 하는 순간, 내가 말을 가로챘다. "오늘 이 자리는 나와 상관없는 것 같으니, 그냥 가도 되지?"

그는 냉소하며 말했다. "사흘도 못 버티고 기어 돌아오는 모습을 기대할게."

나는 돌아서서 문을 향해 걸어 나갔다. 문을 나서자 애써 참던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흘러내렸다.

'이젠 그는 정말로 나를 전혀 신경 쓰지 않는구나.'

어젯밤 그가 한 말이 농담이길 바랬지만, 그는 모든 사람들의 앞에서 이다빈을 선택했다.

그럼 그와 10년을 같이 한 난 무엇이란 말인가?

그냥 그의 버려진 장난감인가?

갑자기 누군가 내 앞을 막았다.

이다빈이 허리에 손을 얹고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김주리, 나용준을 원망하지 마. 다 네가 못나서 그런 거야. 그 사람은 뒤를 이어갈 후계자가 필요한데 넌 그럴 능력이 없잖아."

나는 그녀의 오만함을 견딜 수 없어 그녀를 밀치려 했다. "비켜."

그 순간 나용준이 나타나 나를 밀치는 바람에 난 그대로 땅에 주저앉았다. "감히 누구한테 손을 대? 제정신이야?"

말을 마친 그는 부하들에게 나를 붙잡아 벌을 주라고 명령했다.

그날 밤, 상처투성이가 된 나는 조직에서 쫓겨났다.

달빛이 전혀 들지 않아 사방이 캄캄하게 어두웠다. 나는 상처 입은 몸을 끌고 앞으로 걸어가다가

갈림길에서 의식을 잃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 나는 나무에 묶여 있었고, 그 아래는 끝없는 절벽이었다.

"깨어났어?" 옆에서 매혹적인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니 박성현이었다. 그도 조직의 보스였고, 나용준의 경쟁 조직의 일인자였다.

내가 깨어난 것을 확인하고 박성현은 나용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용준, 네 여자 지금 내 손에 있어. 내가 요구한 것들은 준비됐어?"

나용준은 잠시 멈칫하더니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그녀를 잘 묶어 둬, 다시는 귀찮게 하지 않게. 그리고 다음번에 새로운 수법을 쓰라고 전해줘. 너무 구식이잖아."

전화가 끊기고, 마지막 남은 나의 한 줄기 희망도 함께 사라졌다.

회차 2

나는 떨어질까 봐 두려워 묶고 있는 밧줄을 꽉 쥐고 있었다. "제발, 제발 날 죽이지 마세요."

나는 이미 그의 의도를 알아챘다. "날 죽여도 나용준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거예요."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갑자기 내 휴대전화가 요란하게 울렸다. 이다빈이 사진을 보내온 것이었다.

사진 속 그녀는 옷이 흐트러진 채로 나용준 가슴에 누워 있었다.

나용준은 그녀의 손을 부드럽게 잡고, 마치 진귀한 보물을 다루듯이 조심스럽게

그녀의 배에 올려놓고 있었다.

"내가 아이만 낳으면 달의 여신 인정을 받을 수 있다고 했어! 그때가 되면 나는 가장 존경받는 보스의 아내가 될 거야. 그리고 넌? 너는 아무것도 아닐 거고!"

나는 그녀의 메시지에 답할 형편이 아니었지만, 그녀는 내가 일부러 답하지 않는 것이라고 여겼다.

그리하여 그녀는 나용준과의 친밀한 사진들을 미친 듯이 보내기 시작했다.

집에서, 호텔에서, 회의실에서,

심지어 숲에서도....

그들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서 수없이 사랑을 나누었다.

순간 구역질이 나서 몸을 움츠리자,

나의 움직임 때문에 뒤의 나무가 약간 흔들렸다.

박성현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고, 앞으로 다가와서 밧줄을 잡아 나를 뒤로 끌어당겼다.

그는 나를 차갑게 노려보며 말했다. "이 상황에서 그렇게 움직이면 죽을 수도 있다는 걸 몰라?"

그는 갑자기 자신이 너무 거칠었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다시 부드럽게 말했다. "당신을 잡으면 나용준을 협박할 수 있을 줄 알았어. 근데 내가 틀렸어. 당신은 그에게 그렇게 중요하지 않나 봐."

나는 가슴이 답답해 입술을 꽉 깨물었다.

머릿속은 방금 나용준이 한 말들이 계속 맴돌아 입술에서 피가 나는 것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다.

박성현이 가까이 다가와 손으로 내 입가를 부드럽게 닦아주었고

붉은 피가 그의 손끝을 물들였다.

다음 순간, 그는 피 묻은 손가락을 자신의 입에 넣더니 말했다. "내 부탁 하나만 들어주면, 당신을 풀어줄게."

나는 긴장한 채 한걸음 뒤로 물러서며 그와 거리를 두었다.

소문에 따르면 박성현은 난폭하고 변덕이 심해,종종 아주 사소한 일로도 사람을 죽인다고 한다.

조금 전의 그의 행동도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자기도 모르게 침범당한 것처럼 느껴졌다.

잔뜩 긴장한 나를 보고, 그는 웃었다. "걱정하지 마, 당신을 죽일 생각은 없어. 나용준한테 가서 당신이 그에게 선물했던 반지를 되찾아와."

나는 순간 멈칫했다. "당신이 어떻게 반지에 대해 알아요?"

그는 내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그냥 부하들에게 나를 데려가라고 명령했다.

박성현이 말한 그 반지는 내 부모님이 결혼할 때 직접 만든 반지였다.

나용준의 조직은 우리 부모님에게 큰 빚을 진 적이 있어서 조직 전체가 그들을 존경했고

그 반지도 조직에서는 중요한 물건이었다.

나용준과 막 사귀기 시작했을 때 난 사랑의 표시로 그 반지를 그에게 선물했다.

혹시 박성현은 그것을 이용해 나용준의 조직을 장악하려는 것일까?

나는 무거운 마음으로 조직에 돌아왔다.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에 존경심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오직 경멸만이 남아 있었다.

"무슨 낯으로 돌아온 거야? 저 여자 때문에 하마터면 보스가 위험할 뻔했잖아!"

"내쫓아!"

"꺼져!"

그들은 독설을 퍼부었지만, 아무도 나에게 손을 대지 않았다.

나는 곧장 내가 살던 집의 문 앞까지 걸어갔다.

나용준이 그 반지를 침대 옆 서랍에 두었던 걸 기억하고 있었다.

방문을 열자마자 거실에서 두 사람이 얽혀 있는 것이 보였다.

나를 본 나용준이 멈칫하더니 곧 비아냥거렸다.

"납치당했던 거 아니었어? 벌써 돌아왔네?"

이다빈은 나의 너덜너덜한 옷을 보고 놀란 듯 입을 가렸다. "어떤 납치범들은 다른 방식으로 대가를 받는다던데. 주리야, 네 옷이 그런 게 혹시...."

그녀는 말을 멈추고 상상의 여지를 남겼다.

그 말은 들은 나용준은 일어나서 내게 다가와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내게서 다른 사람의 냄새를 맡은

그의 얼굴은 즉시 어두워졌다. "누가 널 안았어?"

나는 그를 무시하고 침실로 갔다. "네가 상관할 일이 아니야. 내 물건을 되찾으러 왔어."

이다빈이 그때 조용히 말했다. "네 물건은 문 앞에 내놨는데 못 봤어? 여긴 이젠 내가 살 거니까, 내 취향대로 다시 꾸며도 된다고 했어."

나는 그제야 방 안에 더 이상 예전의 흔적이라고는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내 마음은 무겁게 가라앉았다.

회차 3

나는 망설이지 않고 문 앞으로 달려가 내 물건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나용준이 준 선물들, 내 옷과 보석들이 모두 입구에 쌓여 있었다.

그 물건들을 하나씩 정리하면서 눈물이 저도 모르게 흘러내렸다.

나용준은 뒤에서 오랫동안 나를 바라보다가 잠시 망설이더니 다가와 나를 일으켜 세웠다. "정리하지 마. 나중에 새로 사줄게. 다빈이가 아이를 낳으면 그녀가 내 짝이 되겠지만 우리 사이도 변함이 없을 거야."

그 말을 들은 나는 어이가 없었다. "나를 애인으로 삼겠다는 거야?"

그는 계속하여 뻔뻔스럽게 말했다. "우리는 서로 사랑하잖아. 당연히 함께 있어야지. 그런 말로 자신을 비하하지 마."

나는 그를 밀어내고 계속 짐을 쌌다.

박성현과의 약속이 없었더라면 난 이 타이밍에 돌아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나를 역겹게 했고

내 자존심을 짓밟았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봐도 반지가 보이지 않았다. "나용준, 내가 준 반지는 어디 있어?"

그러자 이다빈이 문가에 기대어 손을 들어 올렸다. "이 반지 말하는 거야?"

보석이 햇빛 아래에서 독특한 빛을 뿜으며 반짝였다.

나는 반지를 빼앗으려고 그녀의 앞으로 달려갔다.

근데 그녀한테 닿기도 전에 이다빈은 뒤로 넘어지며 소리쳤다. "야! 김주리, 왜 나를 밀쳐!"

"내가...." 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용준이 나를 밀쳤다.

어제 맞아서 상처 난 내 등이 바닥에 긴 핏자국을 남겼다.

예전에 내 손에 작은 상처가 나도 나용준은 당황해하며 어쩔 바를 몰랐지만 지금은 나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는 조심스럽게 이다빈을 일으켜 세웠다. "괜찮아?"

부드러운 그의 모습은, 조금 전 내게 보였던 흉악한 모습과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반지를 차지할 생각은 아니었어. 그냥 예뻐 보여서." 이다빈은 반지를 빼는 척하면서 말을 이어갔다. "미안해, 돌려줄게. 제발 화내지 마."

그녀가 불쌍해 보일수록 나용준은 나에게 더 큰 불만을 품었다.

그는 그녀의 손을 꼭 잡고 말했다. "주리가 나에게 준 거야. 그러니깐 내 물건이야. 이젠 너한테 선물할게."

"나용준!" 내가 힘없는 목소리로 그를 부르자 그는 나를 보았다.

바닥에서 고통스럽게 몸을 일으키는 나의 모습과 바닥의 핏자국을 본 그는 의아해하며 물었다. "왜 이렇게 피가 많이 나?"

내가 잘못 본 건지, 그의 눈에 순간적으로 걱정하는 눈빛이 스쳤다.

그때 이다빈이 그의 팔에 매달렸다. "용준 씨, 다 내 잘못이야. 내가 먼저 집으로 돌아갈게."

나용준은 정신을 차리고 그녀를 꼭 안았다. "떠나야 할 사람은 당신이 아니야."

나는 간신히 일어서서 비틀거리며 그들의 앞에 갔다. "나용준, 난 떠날 수 있어. 하지만 제발 반지만은 돌려줘. 나의 부모님이 남겨준 유일한 유품이야. 부탁할게."

나는 한 번도 이렇게 비굴하게 부탁한 적이 없었다.

"반지를 준다면 조직에서의 모든 특권을 포기할게." 나는 이를 악물고 한마디 덧붙였다. "날 추방해도 좋아."

"정신 나갔어?" 나용준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소리쳤다. "무슨 말을 그렇게 함부로 해!"

나는 그의 말은 아무것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고, 오로지 반지만 돌려달라고 졸랐다.

심지어 바닥에 무릎까지 꿇고 그에게 빌었다.

내 이마에서 피까지 흐르는 걸 보자 나용준은 반지를 앞에 던졌다. "꺼져!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지 마."

나는 손에 반지를 꽉 쥐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조금 전의 나약함과 간절히 애원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나용준, 이제부터 우리는 남남이야. 후회하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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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림 받은 후, 원수의 품에 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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