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1

내 결혼은 완벽했다. 첫 아이를 임신했고, 남편 강태준은 나를 여왕처럼 떠받들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었다.

그 꿈은 산산조각 났다. 그가 어둠 속에서 내 살결에 다른 여자의 이름을 속삭였을 때.

김가영. 내가 직접 키운 우리 회사 신입 변호사였다.

그는 실수였다고 맹세했지만, 가영의 계략이 악랄해질수록 그의 거짓말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그는 내게 약을 먹이고, 작업실에 가뒀으며, 나를 계단에서 밀어 병원 신세를 지게 했다.

하지만 그의 궁극적인 배신은 가영이 가짜 교통사고를 꾸며 내게 뒤집어씌운 후에 일어났다.

태준은 내 머리채를 잡고 차에서 끌어내 뺨을 후려쳤다. 그러고는 간호사를 협박해 그의 내연녀를 위해 내 피를 뽑게 했다. 그녀에겐 필요하지도 않은 수혈이었다.

내가 과다출혈로 죽어가는 동안 그는 나를 짓누르며 그녀 곁으로 달려갔다. 그는 자신의 선택으로 돌이킬 수 없는 뇌 손상을 입게 된 우리 아이를 희생시켰다.

내가 사랑했던 남자는 사라지고, 나를 죽게 내버려 둔 악마만 남았다.

그 병원 침대에 누워, 나는 두 통의 전화를 걸었다. 첫 번째는 내 변호사에게였다.

"혼전 계약서의 불륜 조항을 발동시켜요. 그놈을 빈털터리로 만들어 주세요."

두 번째는 10년 동안 말없이 나를 사랑해 온 남자, 윤지후에게였다.

"지후 씨."

내 목소리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내 남편을 파멸시키는 거, 도와줘요."

제1화

서하연 POV:

내 결혼이 끝났다는 첫 번째 신호는 립스틱 자국이나 의심스러운 문자 메시지가 아니었다. 어둠 속에서 내 살결에 속삭여진 이름, 그건 내 이름이 아니었다.

몇 주 동안 태준은 냉랭했다. 그는 자신의 말을 빌리자면 '괴물 같은' 인수 합병 건에 정신이 팔려 밤늦게까지 일했다. 집에 와서는 휴대폰으로 내 옛날 영상들을 보고 있었다. 우리의 신혼여행 영상, 내 배가 아이로 불러오기 전, 내 몸이 나조차 거의 알아보지 못할 모습으로 변하기 전의 영상들이었다. 그는 의사가 임신 초기에 관계를 자제하라고 해서 내가 그리워 그런 거라고 했다. 나는 그를 믿었다. 언제나 그를 믿었다.

오늘 밤, 나는 그 거리를 좁히고 싶었다. 화면 속 나를 보는 그의 눈이 아니라, 그의 손이 나를 느끼게 하고 싶었다. 내가 먼저 시작했다. 내 움직임은 느리고 신중했다. 나는 여전히 그 영상 속의 여자이며, 단지 배에 소중한 곡선이 새로 생겼을 뿐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그는 소름 끼치는 조급함으로 반응했다. 열정이라기보다는 절박함에 가까운 허기였다. 그의 손은 갑자기 낯설게 느껴지는 익숙함으로 나를 더듬었다. 그의 손길은 은밀하면서도 무심했다.

"여기 이 작은 점, 너무 예뻐."

그가 쇄골을 따라 입술을 움직이며 속삭였다.

나는 얼어붙었다.

"태준 씨, 나 거기엔 점 없는데."

그는 멈추지 않았다.

"왜 없어. 내가 매일 밤 키스하는데."

그는 그 자리에 다시 입술을 눌렀다. 완강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점이야."

뼛속까지 차가운 공포가 스며들기 시작했다. 에어컨 때문이 아니었다. 그는 틀렸다. 그는 너무나 확신에 차 있었지만, 완전히 틀렸다. 결혼 5년 차 남편이 틀릴 수 없는 디테일이었다. 내 몸 구석구석을 경배한다고 주장하는 남편이라면 더더욱.

"태준 씨."

내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나 좀 봐. 내가 누군지 알기나 해?"

그의 움직임이 멎었다. 잠시, 조용한 방 안에는 우리 둘의 숨소리만 들렸다. 이윽고 그가 몸을 숙였다. 그의 목소리는 나를 향한 것이 아닌 다정함으로 잠겨 있었다.

"당연히 알지, 내 사랑 가영아."

그 이름은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한 충격을 주었다. 목구멍에서 숨이 턱 막혔다. 세상이 축을 잃고 기울었고, 소리는 귀에서 낮게 윙윙거렸다. 그가 다시 말했다. 부드럽고 사랑스러운 한숨처럼.

"가영아."

메스꺼움과 혐오감이 온몸을 휩쓸었다. 내 두 손이 그의 가슴팍으로 날아가 있는 힘껏 밀쳤다. 그는 허를 찔려 침대에서 뒤로 굴러떨어지며 협탁 모서리에 머리를 찧었다. 쿵, 소름 끼치는 소리가 났다.

아랫배에 날카로운 경련이 일었다. 나는 숨을 헐떡이며 몸을 웅크렸다. 배신감은 독처럼 혈관을 타고 퍼져나갔다.

김가영.

김가영. 우리 로펌의 신입 변호사. 석 달 전, 블루스퀘어 타워 프로젝트 설계도의 치명적인 오류를 발견해 내 커리어가 박살 나는 걸 막아준, 사슴처럼 눈이 크고 영리한 아이. 태준은 나를 대신해 빚을 갚는 길이라며 그녀를 직접 '멘토링'하겠다고 고집했다. 그는 그녀에게 새 차를 사주고, 학자금 대출까지 갚아주었다. 나는 그저 관대하지만 조금 과한 제스처라고만 생각했다.

어떻게 이렇게 눈이 멀었을까? 어떻게 독사를 은인으로 착각했을까?

뼛속에서 시작된 냉기는 이제 심장에 닿아 얼음으로 감싸 버렸다.

협탁에서 떨어진 그의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자기 번호로 전화가 걸려오고 있었다. 혼란스러웠지만, 차에 연결된 것이 분명했다. 그가 긴급 버튼을 누른 게 틀림없었다. 나는 그가 신음하며 기기를 더듬는 모습을 마비된 채 지켜봤다.

"여보세요?"

그가 멍한 목소리로 말했다.

"강태준 고객님, 제네시스 커넥티드 서비스입니다. 충격 감지 신고가 접수되었습니다. 괜찮으십니까?"

"괜찮아요."

그가 중얼거렸다.

"그냥… 침대에서 떨어져서. 머리를 부딪쳤어요."

"주변에 다른 분 계십니까? 아내분, 서하연 님은 거기 계신가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이내 그의 목소리는 내가 잘 아는 부드럽고 걱정스러운 톤으로 바뀌었다.

"아니요, 아내는… 오늘 친정에 가 있어요. 저 혼자입니다."

그는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내가 바로 여기 있는데도 낯선 사람에게 거짓말을 했다.

"아내에게… 전화 좀 걸어주시겠어요? 걱정시키고 싶진 않지만, 목소리가 듣고 싶어서요."

그가 내 번호를 읊었고, 잠시 후 침대 옆 탁자 위 내 휴대폰이 환하게 빛났다. 나는 심장이 갈비뼈를 부술 듯이 뛰는 것을 느끼며 그것을 노려봤다. 음성사서함으로 넘어갈 때까지 내버려 뒀다.

그가 다시 휴대폰에 대고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만들어낸 걱정이 가득했다.

"전화를 안 받네요. 자고 있나 봐요. 특히 지금은 푹 쉬어야 하는데. 제발 다시 전화하지 마세요. 깨우고 싶지 않으니까요."

그는 전화를 끊고 천천히 일어나 앉아 뒤통수를 문질렀다. 그는 어두운 방을 둘러봤지만, 초점 없는 그의 눈은 나를 보지 못했다.

그러고는 휴대폰을 집어 들고 전화를 걸었다. 내 휴대폰이 다시 빛났다. 이번에는 받았다. 내 목소리는 죽은 듯 평평했다.

"하연아?"

"나 여기 있어."

"아, 다행이다."

그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자기야, 괜찮아? 나 악몽 꾸다가 바닥에서 깼어. 머리가 깨질 것 같아."

나는 김가영이 사는 오피스텔의 방재실에 와 있었다. 충격과 고통의 소용돌이 속에서 정신없이 이곳으로 차를 몰았다. 기업 프로젝트 때문에 이용했던 보안업체에 조용히 연락해 로비 CCTV 화면에 접근할 수 있었다. 나는 지금 거친 화질의 모니터로, 우리 침실을 서성이며 머리를 감싸 쥔 그를 보고 있었다.

"괜찮아."

내 목소리는 텅 비어 있었다.

"그냥 바람 좀 쐬고 있어."

"이렇게 늦게 밖에 있으면 안 돼."

그가 부드럽게 나무랐다. 완벽하고 다정한 남편.

"아기는 괜찮아? 임신부 비타민은 챙겨 먹었고? 박 원장님이 네 철분 수치에 대해 뭐라고 했는지 기억하지? 냉장고에 넣어둔 보양식 잊지 말고 챙겨 먹어."

그가 수년간 완벽하게 연마해 온 세심한 보살핌, 흠잡을 데 없는 헌신의 연기는 이제 잔인한 조롱처럼 느껴졌다. 그는 나를 사랑했다. 나는 그가 그랬다는 걸 안다. 몇 번의 유산으로 힘들어할 때 나를 붙잡아 주었고, 내 성공을 축하해 주었으며, 내 눈물에 입 맞춰 주었다. 그는 내가 힘든 날을 보낼까 봐 사무실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비싼 차를 여분으로 구비해두던 남자였다.

그 남자는 유령이었다. 어쩌면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태준 씨."

목구멍에서 말이 찢어져 나왔다.

"아직도 나 사랑해?"

"무슨 그런 질문을 해?"

그가 킥킥 웃었다. 그 소리가 상처 난 내 신경을 긁었다.

"당연히 사랑하지. 세상 그 무엇보다 더. 방금도 네 생각하고 있었어. 너무 보고 싶어서 아플 지경이야. 빨리 집에 왔으면 좋겠다."

그가 그 말을 하는 순간, 내 앞 모니터 속 로비 엘리베이터가 띵 소리를 내며 열렸다. 김가영이 걸어 나왔다. 그녀는 전화를 받고 있었고, 얼굴에는 밝고 의기양양한 미소가 가득했다.

"나도 보고 싶어, 태준 씨."

그녀가 전화기에 대고 애교를 부렸다. 그녀의 목소리는 모니터의 싸구려 스피커를 통해서도 들렸다.

"나 이제 거의 다 왔어."

내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태준의 목소리는 따뜻한 애무 같았다.

"기다리고 있을게, 자기야. 사랑해."

"나도 사랑해."

나는 화면에 시선을 고정한 채 속삭였다.

그가 전화를 끊었다.

모니터에서 나는 그가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는 것을 봤다. 김가영이 전화를 끊는 것도 봤다. 그녀는 로비를 가로질러 정문으로 나갔다. 잠시 후, 태준의 검은색 세단이 길가에 멈춰 섰다. 그녀는 망설임 없이 조수석에 올라탔다. 차는 쏜살같이 사라졌다.

그들이 어디로 가는지 추측할 필요도 없었다. 우리 집. 내 침대.

단 한 번의 처절한 흐느낌이 내 입술에서 터져 나왔다. 순수한 고통의 소리였다. 내 완벽한 결혼, 내가 공들여 쌓아 올린 삶은 거짓이었다. 아름답고, 정교하며, 파괴적인 거짓말. 나는 그가 항상 나를 얼마나 조심스럽게 대했는지, 얼마나 다정했는지, 특히 내가 임신한 후에는 거의 경건할 정도로 우리 사랑을 나눴는지 기억했다. 그는 나를 깨지기 쉬운 예술품처럼 다뤘다.

이제야 그 이유를 알았다. 그는 자신의 진짜 열정, 날것 그대로의 억제되지 않은 욕망을 그녀를 위해 아껴두고 있었던 것이다.

휴대폰이 알림으로 울렸다. 우리 침실 카메라와 연결된 베이비캠 앱에서 온 것이었다. 그가 설치하자고 고집했던 앱. 나는 그것을 열었다.

화면은 수정처럼 맑았다. 태준이 가영을 방으로 끌어들이고 있었고, 그들의 입은 이미 서로에게 잠겨 있었다. 나는 그녀의 웃음소리를 들었다. 유리 깨지는 소리 같았다.

"네 귀하신 하연 씨는 친정에서 곤히 주무시고?"

"당연하지."

태준의 목소리는 거칠고 굶주려 있었다.

"걔는 순진해 빠져서 내가 하는 말은 뭐든 다 믿어."

"들킬까 봐 걱정 안 돼?"

가영이 그의 셔츠 단추를 풀며 물었다.

"절대."

그가 섬뜩할 정도의 확신에 차 말했다.

"만약 들킨다 해도, 걔가 뭘 어쩌겠어? 임신했는데. 그 애가 내 족쇄가 될 거야. 걔는 절대 내게서 못 벗어나."

나를 관통한 소리는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심장이 두 동강 나는 소리였다. 영혼이 부서지는 소리였다. 그는 단지 바람을 피우는 게 아니었다. 그는 우리의 아이, 우리의 소중한 태아를 이용해 나를 그의 기만이라는 거미줄 속에 가두려 하고 있었다.

"아니."

나는 텅 빈 방을 향해 속삭였다.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아니, 넌 틀렸어, 강태준."

나는 밤새도록 거기에 머물며 화면을 지켜봤다. 눈물은 이내 마르고, 그 자리에 뼛속 깊이 자리 잡은 차갑고 단단한 결심이 들어섰다.

다음 날 아침, 도시 위로 해가 떠오를 때, 나는 집으로 가지 않았다. 변호사 사무실로 갔다.

"혼전 계약서의 불륜 조항을 발동시키고 싶어요."

나는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이혼 소송을 제기하고 싶고요."

그러고 나서 나는 또 다른 전화를 걸었다. 몇 년 동안 걸어본 적 없는 번호였다.

"윤지후 씨 좀 부탁합니다."

잠시 후, 익숙하고 깊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연 씨?"

"지후 씨."

나는 감정이 실리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도움이 필요해요. 내 남편을 파멸시키는 거, 도와줘요."

회차 2

서하연 POV:

변호사 사무실을 나서며 나는 깊고 차분한 숨을 내쉬었다. 상쾌한 아침 공기도 핏속의 불길을 식히기엔 역부족이었다. 서류에 서명했다. 절차는 시작됐다. 되돌아갈 길은 없었다.

나는 태준과 처음 데이트했던 작은 카페 '라라브레드'로 걸어갔다. 그곳은 우리의 장소였다. 주인인 상냥한 아주머니는 나를 보자 환하게 웃었다.

"하연 씨, 어서 와! 얼굴이 폈네!"

그녀가 달려와 나를 껴안으며 외쳤다.

"어제 태준 씨가 여기 와서 레몬 타르트를 몽땅 사 갔어. 자기가 이걸 그렇게 먹고 싶어 한다면서. 그 남자, 정말 자기를 끔찍이 아끼나 봐."

나는 억지로 미소를 지었지만 눈이 타는 듯했다. 끔찍이 아낀다고. 그래, 그는 내게 아름다운 새장을 지어주고 비단과 금으로 안을 채웠지. 눈물 한 방울이 흘러 차가운 길을 그리며 뺨을 타고 내렸다.

"어머, 얘, 무슨 일이야?"

아주머니가 걱정스럽게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그림자가 우리 테이블 위로 드리워졌다.

"이거, 강태준 사모님 거죠?"

나는 위를 올려다봤다. 김가영의 크고, 기만적으로 순진해 보이는 눈과 마주쳤다. 그녀는 의자 하나를 들고 있었다. '서하연 님 지정석'이라는 놋쇠 명패가 붙어 있는 의자. 내 의자였다. 그녀는 그 의자를 자기 옆에 놓으며 사카린처럼 단 미소를 지었다.

"모든 것에 대해 다시 한번 감사드리고 싶었어요."

그녀의 목소리에는 거짓된 감사가 뚝뚝 묻어났다.

"태준 씨가 정말 관대하시더라고요. 제 새 오피스텔 월세도 내주셨어요. 제가 사모님의 가장 큰 프로젝트를 살려준 것에 대한 최소한의 보답이라고 하시던데요."

또 다른 거짓말. 사소한 것이었지만, 뱃속에 돌덩이가 내려앉는 듯했다. 태준은 내게 그녀에게 현금 보너스를 줬다고 했다. 오피스텔 얘기는 한마디도 없었다.

가영이 두툼한 서류 봉투를 테이블 위로 밀었다.

"이건 보셔야 할 것 같아서요."

봉투를 여는 내 손이 무겁게 느껴졌다. 안에는 수십 장의 광택 사진이 들어 있었다. 그녀와 태준의 사진. 우리 침대에서. 그의 사무실에서. 그의 차 뒷좌석에서. 사진들은 노골적이고, 은밀했으며, 최대한의 고통을 주도록 설계되었다. 각 이미지는 정밀한 칼날처럼 내 과거의 실타래를 하나씩 끊어냈다.

나는 표정 없는 얼굴로 모든 사진을 샅샅이 훑어봤다. 다 본 후, 나는 사진들을 깔끔하게 쌓아 봉투에 다시 넣었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 종류의 고통을 느낄 수 있는 내 일부는 어젯밤 어두운 방재실에서 거친 화질의 모니터를 보며 죽어버렸다.

"그는 나한테 푹 빠졌어요."

가영이 몸을 앞으로 숙이며 은밀하게 속삭였다.

"누구에게도 이런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대요. 사모님은… 차갑대요. 아름다운 조각상 같다고. 감탄하기는 쉽지만 사랑하기는 불가능하다고."

그녀가 히죽 웃었다.

"하지만 걱정 마세요. 훌륭한 전처가 되실 거예요. '강태준 사모님'이라는 호칭도 좋지만, '서하연 사모님'이 되는 것도 익숙해지겠죠."

"전부 네 거야."

나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이름, 그 남자, 그 인생. 다 가져."

그녀의 미소가 흔들리더니 분노의 섬광으로 바뀌었다. 내 평정심이 그녀의 승리를 망치고 있었다. 그녀는 아이스커피를 움켜쥐었다. 하얀 손마디가 내게 그걸 던지려는 의도를 분명히 보여줬다.

하지만 그때 그녀의 눈이 문 쪽으로 향했고, 표정이 순식간에 바뀌었다. 분노는 사라지고, 순수하고 연극적인 공포의 표정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그녀는 처절한 비명과 함께 커피 한 컵을 통째로 자신의 하얀 블라우스 앞섶에 쏟아부었다.

"하연 씨, 어떻게 이럴 수 있어요?"

그녀가 비명을 지르며 눈물을 글썽였다.

카페 문이 벌컥 열렸다. 태준이었다. 그는 그 광경—차분하고 마른 나와, 흐느끼며 갈색 액체에 흠뻑 젖은 가영—을 보고 얼굴이 굳어졌다.

하지만 그는 그녀에게 달려가지 않았다. 내게 달려왔다.

"하연아, 괜찮아?"

그가 내 어깨 위로 손을 맴돌며 물었다. 그의 눈은 내가 다친 곳은 없는지 샅샅이 훑었다.

"저 여자가… 저한테 커피를 부었어요!"

가영이 바닥에서 배를 움켜쥐고 울부짖었다.

"내가 당신 남편을 훔치려 한다면서요!"

태준은 그녀에게 얼음장 같은 시선을 던졌다.

"나가, 김가영."

그의 목소리는 위험할 정도로 낮았다.

"다시는 내 아내 근처에 얼씬도 하지 마."

그는 나를 일으켜 세워 허리를 단단히 감싸고 카페 밖으로 이끌었다. 바닥에 주저앉아 우는 가영을 남겨둔 채. 그는 나를 집으로 데려다주며 완벽한 걱정의 연기를 펼쳤다.

"그 여자가 그런 짓을 하다니 믿을 수가 없네."

그가 나를 티 없이 하얀 우리 집 거실로 안내하며 중얼거렸다.

"내가 처리할게. 내일 당장 해고시킬 거야. 누구도 내 가족을 위협할 순 없어."

"피곤해, 태준 씨."

나는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 작업실에 가고 싶어."

그곳은 그가 거의 들어오지 않는, 나의 성역이었다.

"물론이지, 자기야. 가서 쉬어."

그는 문까지 나를 따라오며 모든 것을 바로잡겠다고, 나를 위해 복수하겠다고 약속했다. 심지어 나중에 발 마사지를 해주겠다고도 했다. 사랑 많고 헌신적인 남편, 자신의 역할을 완벽하게 연기하고 있었다.

나는 뼛속까지 파고드는 깊은 피로감을 느꼈다. 그저 자고 싶었다. 내 삶이 되어버린 이 깨어 있는 악몽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가 물 한 잔을 가져다주었다. 그의 손길이 내 팔에 부드럽게 닿았다.

"자, 이거 마셔. 탈수 증세가 있는 것 같아."

나는 생각 없이 마셨다. 물에서 희미하고 쓴 뒷맛이 났지만, 너무 피곤해서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나는 작업실의 긴 의자에 누웠고, 무겁고 부자연스러운 잠이 나를 덮쳤다.

한밤중에 아랫배에 타는 듯한 통증을 느끼며 잠에서 깼다. 숨을 앗아가는 지독하고 뒤틀리는 경련이었다. 나는 태준을 불렀지만 대답이 없었다.

나는 배를 움켜쥔 채 비틀거리며 작업실 문으로 갔다. 문은 밖에서 잠겨 있었다. 공포가 목구멍을 할퀴었다. 나는 갇혔다.

나는 그의 이름을 몇 번이고 소리치며, 주먹이 헤질 때까지 무거운 참나무 문을 두드렸다. 통증은 더욱 심해졌고, 시야에 검은 점들이 떠다니는 잔인하고 불타는 고통이었다. 다리에 힘이 풀리면서 나는 바닥에 쓰러졌고, 세상은 고통의 소용돌이 속으로 녹아들었다.

내 마지막 의식적인 생각은 내 아기를 위한 기도였다.

내가 깨어났을 때, 살균 소독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나는 살균된 하얀 방에 있었고, 팔에는 링거가 꽂혀 있었다. 복도에서 낮고 다급한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태준이었다. 그리고 가영도.

"이제 만족해?"

태준의 목소리는 짜증으로 팽팽했다.

"네가 원하는 대로 물에 진정제를 탔어. 밤새 꼼짝없이 잤다고. 이게 내가 널 사랑한다는 증거가 돼?"

"그래야만 했어."

가영의 목소리는 의기양양한 속삭임이었다.

"걘 교훈이 필요했어. 날 모욕하고도 그냥 넘어갈 순 없지."

세상이 침묵했다. 폐 속의 공기가 얼음으로 변했다. 진정제. 그가 내게 약을 먹였다. 그의 임신한 아내에게. 전부 그의 내연녀를 달래기 위해서. 내가 저지르지도 않은 죄로 나를 벌하기 위해서.

날것 그대로의 원초적인 비명이 가슴속에서 터져 나오려 했지만, 나는 그것을 억눌렀다. 대신, 손바닥에 손톱을 박아 넣어 부드러운 살에 깊은 초승달 모양을 새겼다. 그 날카로운 따끔함은 고통의 우주 속에서 나를 붙잡아주는 중심점이었다.

문이 삐걱거리며 열리고 태준이 안으로 들어섰다. 그의 얼굴은 걱정스러운 헌신의 가면을 쓰고 있었다. 그는 내가 눈을 뜬 것을 보고 내 곁으로 달려왔다.

"하연아! 세상에, 자기야, 깨어났구나. 정말 겁먹었잖아."

회차 3

강태준 POV:

그녀의 눈이 떠 있는 것을 본 순간 공포가 나를 사로잡았다. 그녀의 시선은 내게 고정되어 있었지만, 언제나 나의 닻이 되어주었던 따뜻함과 사랑은 사라지고 텅 비어 있었다.

"하연아."

나는 목이 메어 속삭였다.

"자기야, 깨어났구나. 죽는 줄 알았네."

나는 손을 뻗어 그녀의 뺨을 부드럽게 쓸어주며, 내가 보지 못했던 눈물을 닦아주었다. 그녀의 피부는 차가웠다.

죄책감과 공포의 파도가 나를 덮쳤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어떻게 이렇게 어리석고 무모할 수 있었을까? 그저 가벼운 진정제였을 뿐인데. 카페에서의 소동 후에 그녀를 진정시키고 잠들게 하려는 것뿐이었는데. 가영이 너무나 완강하고 괴로워했다. 그녀는 울면서, 내가 충성을 증명하지 않으면 우리 관계를 폭로하겠다고 협박했다. 순간의 나약함에, 그녀를 침묵시키고 싶은 마음에, 나는 동의하고 말았다.

"정말 미안해, 하연아."

나는 그녀의 침대 옆에 무릎을 꿇고 목이 메어 말했다. 나는 바삭한 하얀 시트에 얼굴을 묻고, 꾸며낸 흐느낌으로 몸을 떨었다.

"회사에 급한 일이 생겨서. 가야만 했어. 작업실 문은 생각 없이 잠갔어. 손님들이 있을 때 네 작품을 보호하려고 생긴 버릇이라서. 집에 돌아와 보니 네가… 정말, 정말 미안해."

거짓말은 입안에서 재처럼 썼지만, 필요한 것이었다. 그녀를 잃을 수 없었다. 지금은. 절대로. 그녀는 완벽한 아내였고, 내 아이의 완벽한 어머니였다. 그녀는 내가 쌓아 올린 완벽한 삶의 기반이었다.

나는 애원하는 눈으로 그녀를 올려다봤다. 그녀의 시선은 불안할 정도로 흔들림이 없었다. 침묵은 말하지 않은 비난으로 가득 차 길게 늘어졌다. 그녀는 나를 믿어야만 했다. 그녀는 나를 사랑했다. 그녀는 항상 나를 용서했다.

다음 며칠 동안 나는 그녀 곁을 떠나지 않았다. 나는 그녀에게 죽을 떠먹여주고, 그녀가 좋아하는 시를 읽어주었으며, 우리의 가장 행복했던 순간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나는 완벽하고 참회하는 남편이었고, 서서히 그녀의 눈 속 얼음이 녹기 시작하는 것을 보았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때 런던 지사에서 전화가 왔다. 내 즉각적인 출석을 요구하는 위기 상황이었다.

"가야 해, 자기야."

나는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며 말했다.

"몇 시간만. 금방 돌아올게."

그녀는 그저 눈을 감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병원을 나와 곧장 가영을 만나러 갔다. 그녀는 개인 병원에서 창백한 얼굴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 임신했어, 태준 씨."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속삭였다.

세상이 멈췄다. 또 다른 아이. 아들일지도. 내 아들. 의기양양한 자부심이 나를 관통했다. 나, 강태준은 두 개의 새로운 생명을 창조하고, 내 유산을 두 배로 확보할 만큼 강력하고 정력적이었다.

나는 한쪽 무릎을 꿇고, 본능적으로 그녀의 평평한 배에 손을 얹었다.

"아기라니."

나조차 놀랄 만큼 진심 어린 경이로움으로 가득 찬 목소리로 숨을 내쉬었다.

"우리 아기."

나는 모든 것을 가질 것이다. 완벽한 아내와 흥미진진한 내연녀. 합법적인 상속자와 비밀스러운 사랑의 아이. 완벽했다.

나는 의기양양한 환상에 너무 깊이 빠져 복도의 그림자를 보지 못했다. 나는 하연이 창백하고 감정 없는 가면을 쓴 채 서서 내 모든 연기를 지켜보고 있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서하연 POV:

나는 그가 그녀 앞에 무릎을 꿇고, 순수하고 꾸밈없는 기쁨의 표정을 짓는 것을 지켜봤다. 내가 임신했다고 말했을 때 그가 지었던 바로 그 표정이었다. 똑같은 부드러운 경외감, 똑같은 소유욕 넘치는 자부심. 그것은 독특하지 않았다. 특별하지 않았다. 우리만의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가 연기하는 대본이었고, 그는 방금 새로운 여주인공을 찾았을 뿐이었다.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산산조각 났다고 생각했던 내 심장은 어찌 된 일인지 더 부서질 방법을 찾아냈다.

휴대폰이 울렸다. 가영에게서 온 문자였다.

새로 지어진 건물의 사진이었다. 유리와 강철로 된 세련되고 현대적인 구조물. 내 디자인이었다. 내가 몇 달 동안 작업해 온 개인 미술관, 태준을 위한 깜짝 선물이었다.

아래의 문자는 이랬다.

'그가 나를 위해 지어줬어. 내 예술 작품을 전시할 곳. 그리고 곧 우리 아들이 놀 곳이 될 거야. 그는 이곳을 '가영 센터'라고 불러.'

무감각이 나를 덮쳤다. 나는 택시를 잡고, 단조로운 목소리로 주소를 말했다.

내가 도착했을 때, 파티는 한창이었다. 태준의 친구들, 우리의 친구들이 모두 거기에 있었다. 그들은 가영 주위에 모여 웃고, 축하하고, 그녀의 배를 만지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우리 삶의 모든 사람, 내가 믿었던 모든 사람이 그 거짓말에 동참하고 있었다. 나만이 바보였다.

"독한 년이네."

태준의 파트너 중 한 명이 그의 등을 치며 말했다.

"아들이 틀림없어. 아들 둘이네, 강태준! 낮에는 하나, 밤에는 하나!"

군중이 웃음바다가 되었다.

태준은 미소를 지으며 가영의 어깨에 보호하듯 팔을 둘렀다.

"두고 봐야지."

그가 거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낮에는 아내를 행복하게 해줘야 하지만, 내 밤은…"

그가 가영에게 윙크했다.

"내 밤은 내 여왕을 위한 거지."

그들은 그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들의 밤에 대해. 그가 그녀에게 한 짓들. 그녀가 낸 소리들. 그들의 불륜에 대한 은밀한 세부 사항들이 우리의 가장 가까운 친구들을 위한 파티 잡담으로 제공되었다.

내 손은 군중 위로 걸려 있는 크고 화려한 샹들리에로 향했다. 내가 이탈리아에서 직접 공수한 맞춤 제작품이었다. 나는 그것의 결함을 알고 있었다. 그것을 지탱하는 사슬의 정확한 구조적 약점을 알고 있었다.

내가 가진 줄도 몰랐던 힘으로, 나는 벨벳 커튼 뒤에 숨겨진 유지보수 윈치를 찾았다. 나는 그것을 날카롭고 단호하게 잡아당겼다.

금속이 뒤틀리는 신음 소리가 나더니, 소름 끼치는 파열음이 들렸다. 거대한 크리스털 조명 기구가 흔들리더니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그것은 똑바로 나를 향해 오고 있었다.

그 찰나의 순간, 나는 태준의 고개가 휙 돌아가는 것을 보았다. 붐비는 방을 가로질러 우리의 눈이 마주쳤다. 그의 얼굴에 공포가 번졌다. 그는 나를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고, 그의 입술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하연아!"

하지만 그때, 가영이 비명을 질렀다. 높고 날카로운 공포의 소리.

태준의 몸이 주춤했다. 그는 멈췄다. 그는 돌아섰다.

그는 그녀를 선택했다.

세상은 크리스털과 빛의 소나기 속에서 폭발했다. 하얗게 타오르는 절대적인 고통이 나를 삼켰다. 어둠이 나를 덮치기 전 마지막으로 본 것은, 내 세상이 무너져 내리는 동안 등을 돌린 채 자신의 몸으로 가영을 보호하는 태준이었다.

나는 들것에 실려 옮겨지고 있었고, 주변의 목소리는 웅웅거리는 소음 같았다. 나는 들것 위에 있었다. 태준은 기절한 가영을 안고 부드럽게 흔들고 있었다.

"그녀는 괜찮아요?"

그가 구급대원에게 미친 듯이 물었다.

"먼저 확인해 주세요! 임신 중이란 말입니다!"

그들이 나를 지나쳐 가려고 했다.

"잠깐."

그가 들것 앞을 가로막으며 명령했다. 그의 얼굴은 천둥 같은 가면을 쓰고 있었다.

"강태준 씨, 아내분이 위독합니다."

구급대원이 그를 밀치려 하며 말했다.

"가야 합니다."

"안 돼."

태준의 목소리는 강철 같았다. 그는 몸을 숙여 나를 들것에서 잡아챘고, 내 몸은 차가운 대리석 바닥에 충격적으로 부딪혔다. 내 머리가 땅에 부딪히면서 방이 격렬하게 돌았다.

"그녀는 기다릴 수 있어."

그가 의식을 잃은 가영을 팔에 안고 으르렁거렸다.

"가영부터 돌봐. 내 아들이 저 안에 있어."

그는 내 들것을, 내 피 웅덩이에 누워 있는 내 부서진 몸을 지나쳐, 그녀를 안고 밤 속으로 사라졌다.

나는 거기에 누워 있었다. 입안에는 피 맛이 가득했고, 우리 친구들의 웃음소리가 여전히 귓가에 맴돌았다. 내가 사랑했던 남자, 내가 결혼했던 남자, 내 아이의 아버지가 방금 내가 디자인한 건물의 바닥에서, 내 인생을 파괴한 여자를 위해 나를 죽게 내버려 두고 떠났다.

그 순간, 나는 알았다. 내가 사랑했던 태준은 정말로 사라졌다. 그리고 그의 자리에는 악마가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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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죄악, 내 마음의 복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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