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1

최고급 주한 예술원 갈라 파티.

장학생 바이올리니스트인 나, 서아영은 드디어 이곳에 속한 기분이었다.

특히 내 곁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지키고 있는, 막강한 권력을 가진 이사 남자친구 강태준 덕분에.

하지만 기부자들의 이름이 떠야 할 거대한 스크린이 깜빡이며 살아났다.

그리고 그 위로, 지극히 사적인 내 침실 영상이 재생되었다.

대한민국 상류층 모두가 보는 앞에서, 나의 가장 깊은 치욕이 공개적인 소비거리로 전락한 순간이었다.

경악의 숨소리가 잔인한 속삭임과 조롱 섞인 웃음으로 변해갈 때, 내 세상은 산산조각 났다.

나의 닻이라 믿었던 강태준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리고 잠시 후, 나는 그를 발견했다.

내 의붓자매 한세라와 함께 의기양양하게 웃으며, 우리의 관계 전체가 나를 파멸시키기 위한 ‘재미있는 심심풀이’였다고 인정하는 그의 모습을.

사랑했던 남자에게 배신당하고 짐승처럼 끌려간 나는, 그의 친구들에게 어두운 골목으로 끌려갔다.

그리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끔찍한 고문을 견뎌야 했다.

고춧물이 목구멍을 태웠고, 터지는 플래시가 내 공포를 담아냈으며, 시뻘겋게 달궈진 인두가 어깨에 낙인을 찍었다.

이 모든 것은 대중의 오락거리였고, 강태준이 허락한 일이었다.

그는 나중에 소름 끼치게도, 납치범들에게 나를 ‘처리해 버리라’고 지시했다.

한때 나를 지지해 주던 그 남자는 어째서 이토록 괴물 같은 잔인함을 계획했을까.

나를 망가뜨리고 낙인을 찍은 것도 모자라, 나의 존재 자체가 사라지기를 바랐던 이유는 무엇일까.

이 뒤틀린 복수심을 부추긴 어두운 비밀은 무엇이며, 나는 과연 그의 무서운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뼛속까지 파고드는 이 배신은 나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나는 단지 살아남는 것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그의 세상에서, 나만의 방식으로, 완벽하게 사라져 주리라.

그가 만들어낸 폐허에 등을 돌리고, 나 서아영이 마침내 자유로워질 미래를 내 손으로 만들어낼 것이다.

제1화

주한 예술원의 웅장한 홀 안의 공기는 후끈했다.

비싼 향수 냄새와 희미하게 들려오는 오케스트라의 튜닝 소리, 그리고 서울 상류층의 나직한 대화 소리가 짙게 뒤섞여 있었다.

서아영은 바이올린 케이스를 꽉 쥐었다.

낡은 가죽 케이스는 주변의 반짝이는 드레스와 날렵한 턱시도 사이에서 유독 도드라졌다.

이곳은 연례 기금 모금 갈라, 음악을 축하하기 위한 밤이었지만, 아영에게는 그저 자신에게 없는 돈과 인맥을 과시하는 자리로만 보였다.

장학생이라는 신분은 마치 주홍글씨 같았다.

하지만 강태준은 그녀의 닻이었다.

그는 그녀 곁에 서서 허리를 가볍게 감쌌다. 너무나 자연스러운 소유의 제스처였다.

그는 젊고, 막강한 권력을 가진 이사였고, 그의 가문 이름은 서울 곳곳의 건물에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그는, 믿을 수 없게도, 그녀의 남자였다.

적어도 그녀는 그렇게 믿었다.

“긴장 풀어.”

태준이 자유롭게 흐르는 샴페인처럼 부드러운 목소리로 속삭였다.

“넌 여기 있을 자격 충분해, 아영아.”

그녀는 그 말을 믿고 싶어서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하지만 그때, 인파 속을 우아하게 가로지르는 의붓자매, 한세라가 눈에 들어왔다.

세라는 피아니스트였지만, 그녀의 재능은 그녀의 인기와 아영에 대한 경멸감에 가려져 있었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세라의 입술이 아주 살짝 비틀렸다가 이내 외면했다.

그 침묵의 무시가 아영의 가슴을 아프게 찔렀다.

아영의 의붓아버지이자 세라의 아버지인 한정혁은 딸을 보며 흐뭇하게 미소 지었다.

그는 두 사람 사이의 긴장감은 전혀 눈치채지 못하거나, 혹은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그는 언제나 가족의 완벽한 이미지를 최우선으로 생각했다.

갑자기 조명이 어두워졌다.

정적이 흘렀다.

무대 위, 기부자 명단을 띄우기 위한 대형 스크린이 깜빡이며 켜졌다.

하지만 화면에 나타난 것은 이름이 아니었다.

거칠고 사적인 영상이었다.

아영은 숨을 헙, 들이마셨다.

화면 속 여자는 바로 자신이었다.

은밀한 순간, 침실의 한 장면.

소리는 희미했지만, 영상은 부정할 수 없었다.

그리고 실루엣만 보이지만 체격이 익숙한 남자는, 누가 봐도 태준을 의도한 것이 분명했다.

홀 전체에 경악의 탄성이 파도처럼 번졌다.

사람들의 휴대폰 불빛이 켜지며 스크린을, 그리고 핏기가 가시는 아영의 얼굴을 녹화하기 시작했다.

감각이 마비된 그녀의 손에서 바이올린 케이스가 미끄러져, 잘 닦인 대리석 바닥 위로 떨어졌다.

갑작스러운, 공포에 질린 침묵 속에서 그 소리는 귀가 먹먹할 정도로 크게 울렸다.

그리고 속삭임이 시작되었다. 음흉하고 잔인하게.

“저거… 서아영 아니야?”

“그 장학생?”

“강태준 이사랑? 세상에, 완전 스캔들이네!”

태준의 친구들인 최우진과 박민혁이 서 있는 구석에서 날카롭고 조롱 섞인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들의 얼굴은 악의적인 희열로 빛나고 있었다.

영상은 그녀의 가장 깊은 치욕을 반복해서 보여주며 계속 재생되었다.

아영은 그 자리에 뿌리 박힌 듯 서 있었다.

온몸이 떨렸고, 수치심이 속에서부터 그녀를 불태웠다.

바닥이 자신을 삼켜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태준은 어디에 있지?

분명 바로 옆에 있었는데.

그녀는 필사적으로 인파 속을 훑었다. 그는 사라졌다.

그를 찾아야 했다.

그라면 어떻게 해야 할지 알 것이다.

그가 이 상황을 해결해 줄 것이다. 그는 언제나 모든 것을 해결해 주었으니까.

그녀는 군중 속을 비틀거리며 헤쳐나갔다.

얼굴들은 흐릿했고, 목소리들은 판단의 불협화음이었다.

“뻔뻔하긴.”

“몸으로 출세하려고 했네.”

“듣자 하니 걔네 엄마랑 똑같다던데.”

스캔들로 경력이 망가졌던 어머니에 대한 언급은 또 다른 고통의 칼날이 되어 박혔다.

아영은 피난처를, 태준을 찾아 무거운 참나무 문을 밀고 나갔다.

그녀는 개인 기부자 라운지로 이어지는, 사람이 덜 붐비는 복도로 들어섰다.

숨을 돌리고 생각할 시간이, 단 한순간이라도 필요했다.

그녀는 클러치 안에서 태준에게 주려고 뜨개질하던 작고 미완성인 목도리를 더듬었다.

어리석지만 진심이 담긴 선물이었다.

반복적인 바늘의 움직임은 보통 그녀를 진정시켜 주었다.

그녀는 희미하게 불이 켜진 골방의 벨벳 벤치에 주저앉았다.

손가락이 기계적으로 움직였다.

그때, 문이 살짝 열린 옆 라운지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태준의 목소리였다. 그리고 우진과 민혁의 목소리도.

“…완벽하게 성공했네, 임마.”

우진이 의기양양한 투로 말했다.

“귀신이라도 본 것 같은 표정이었어.”

“바이올린 떨어뜨리는 거 봤냐?”

민혁이 킥킥거렸다.

“진짜 대박이었지.”

태준이 낮고 차가운 소리로 웃었다.

아영이 알던 따뜻한 웃음과는 전혀 다른 소리였다.

“버릇을 좀 가르쳐줄 필요가 있었어. 2년 전에 세라 독주회 자리를 뺏어간 거… 세라가 아직도 잊지 못하거든. 이건 그냥 작은 복수일 뿐이야.”

아영의 뜨개바늘이 멈췄다.

피가 차갑게 식었다.

독주회 자리? 복수? 세라를 위해서?

“그럼 이 모든 거, 걔랑 사귀고, 영웅 행세한 거… 전부 연기였어?”

우진이 감탄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재미있는 장난감이었지.”

태준이 경멸이 뚝뚝 묻어나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세라가 걔가 망신당하는 걸 원했고, 난 언제나 세라 편이니까. 게다가 그 여자, 너무 사람을 잘 믿어. 거의 식은 죽 먹기였지.”

“영상은? 실제로 누가 유출한 건데?”

민혁이 캐물었다.

“그냥 공동 작업이었다고 해두지.”

태준이 매끄럽게 말했다.

“중요한 건, 메시지는 전달됐다는 거야.”

공동 작업.

그의 말이 아영의 머릿속, 갑자기 울부짖는 침묵 속에서 메아리쳤다.

그녀가 사랑하고 믿었던 남자가, 그녀의 공개적인 파멸을 계획했다.

세라를 위해서.

2년 전, 이겼다는 사실조차 거의 잊고 있었던 경연 때문에.

라운지 문이 활짝 열리고 태준이 걸어 나왔다.

그의 친구들이 뒤를 따랐다.

그는 아영을 보고는 멈칫했다.

방금 전까지 차갑고 계산적이던 그의 눈이, 놀란 척 커졌다가 이내 걱정으로 부드러워졌다.

“아영아! 여기 있었구나! 온 데를 다 찾아다녔어. 괜찮아? 아까 그 일은 정말 비열했어!”

그는 그녀에게 달려와 보호하듯 어깨를 감쌌다.

우진과 민혁은 그의 뒤에서 히죽거렸다.

“저 사람들 말 듣지 마, 아영아.”

태준이 그녀가 늘 믿었던, 부드러운 연고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주변에서 힐끔거리는 몇몇 사람들을 쏘아보았고, 그들은 재빨리 시선을 피했다.

“내가 처리할게. 누가 너한테 이런 짓을 했는지 알아낼 거야.”

그의 손길이 그녀의 피부에 얼음처럼 닿았다.

그의 말은 위로의 기괴한 패러디였다.

그녀의 마음속에 과거가 스쳐 지나갔다.

6개월 전, 악명 높은 교수가 말도 안 되는 꼬투리를 잡아 그녀를 낙제시키고 장학금을 위협했을 때.

태준이 매력적인 후원자이자 강력한 이사로서 나타나 모든 것을 ‘해결’해 주었다.

그는 저녁 식사에 그녀를 데려가, 사소한 학내 정치 때문에 좌절하기엔 너무 재능이 아깝다고 말했다.

그는 그녀가 안전하고, 존중받고, 소중히 여겨진다고 느끼게 해주었다.

그는 그녀의 영웅이었다.

그때 그녀는 생각했었다.

그는 나에게 안전한 둥지를 만들어주는 새 같다고.

이제 그 둥지는 치밀하게 설계된 덫이었음이 드러났다.

그녀를 감싼 그의 팔의 온기는 거짓이었다.

그의 걱정스러운 시선도 거짓이었다.

모든 것이 거짓이었다.

그녀는 덫에 걸렸다.

지금 그녀의 머리카락에 대고 나직이 보호의 말을 속삭이며, 충격에 빠진 구경꾼들 사이를 헤쳐나가는 바로 그 남자에 의해, 완벽하게 덫에 걸렸다.

그의 사랑은 잔인하고 계산된 게임에 불과했다.

회차 2

태준은 아영의 어깨를 단단히 감싼 채 예술원을 빠져나왔다.

그의 입에서는 거짓된 분노와 보호의 약속이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우리가 이 일의 진상을 밝혀낼 거야, 아영아. 약속할게. 아무도 너를 이렇게 다치게 하고 무사하지 못할 거야.”

그의 걱정은 숨 막히는 담요 같았다.

모든 단어가 정교하게 만들어진 거짓말이었고, 이제 그녀는 그것을 알았다.

그는 그녀를 자신의 펜트하우스로 데려갔다.

한때 안식처처럼 느껴졌던 곳이 이제는 금박을 입힌 새장이 되어 있었다.

그는 그녀 주위를 맴돌며 물과 차를 권했고, 그의 손길은 필요 이상으로 오래 머물렀다.

“좀 쉬는 게 좋겠어.”

그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전화 몇 통 돌려볼게. 조사를 시작해야지.”

아영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혼자 있고 싶었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가 서재로 들어가 아마도 그 ‘전화’를 하러 간 사이, 아영의 시선은 커피 테이블 위에 아무렇게나 놓인 그의 태블릿에 닿았다.

고통스럽더라도 더 많은 진실을 알아야 한다는 절박함에서 비롯된 충동에, 그녀는 태블릿을 집어 들었다.

잠금은 풀려 있었다.

그녀의 손가락이 떨리며 메시지 앱을 열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거기 있었다.

태준과 세라 사이에 오간 길고 역겨운 메시지들이.

세라: 끝났어? 그 불쌍한 장학생 나부랭이 울고 있어?

태준: 영상은 아주 멋지게 상영됐어. 완전히 무너졌지. 네가 원했던 그대로야, 내 사랑.

세라: 최고야. 걔는 나한테 한 짓, 그리고 그냥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훨씬 더 심한 꼴을 당해야 마땅해.

태준: 인내심을 가져, 세라. 이건 시작에 불과해. 걔의 추락은 아주 장관일 테니까.

메시지는 몇 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상세한 계획들.

아영에 대한 그의 경멸은 반복되는 주제였다.

태준: 재미있는 장난감이야. 너무 순진해서 거의 불쌍할 지경이야.

태준: 죽은 엄마에 대한 끔찍하고 진심 어린 이야기를 또 들어줘야 했어. 내가 널 위해 이런 것까지 한다, 세라.

그에 반해, 세라에게 보내는 그의 메시지는 애정과 거의 숭배에 가까운 감정으로 가득했다.

매일의 통화, 그녀의 해외 ‘요양’을 위한 거액의 송금, 애칭들.

그는 세라를 ‘나의 여왕’, ‘나의 빛나는 별’이라고 불렀다.

아영은 그저 ‘그 바이올리니스트’, ‘프로젝트’일 뿐이었다.

그의 이중성의 깊이에 아영은 숨이 막혔다.

이건 단순히 독주회 자리를 빼앗긴 것에 대한 복수가 아니었다.

이것은 그들 둘이 즐기는, 자신을 말로 삼은 역겨운 게임이었다.

서재 문이 열리는 소리에 그녀는 마치 불에 덴 것처럼 태블릿을 테이블 위로 떨어뜨렸다.

태준이 힘겹게 걱정하는 표정을 지으며 나왔다.

그는 작은 흰색 상자를 들고 그녀에게 다가왔다.

“아영아.”

그가 부드러운 어조로 시작했다.

“일어난 일도 있고… 그리고, 음, 어젯밤에 우리 같이 있었잖아… 만약을 위해서…”

그가 상자를 열었다.

사후피임약이었다.

방금 읽은 메시지들 이후, 그들이 나눈 친밀함 이후에 나온 너무나 차갑고 사무적인 이 행동은 뺨을 맞은 것 같았다.

그의 눈에 비친 자신의 지위를 명확히 보여주었다.

일시적인 오락거리, 육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입안에 쓴맛이 가득 찼다.

그녀는 주먹이 하얗게 될 때까지 상자를 꽉 쥐었다.

“고마워, 태준 씨.”

그녀는 놀랍도록 차분한 목소리로 겨우 말했다.

“참… 사려 깊네.”

그는 거짓된 위로의 제스처로 그녀에게 키스하려 다가왔다.

아영이 살짝 고개를 돌리자 그의 입술이 뺨에 스쳤다.

아주 작고 거의 감지할 수 없는 움츠림이었지만, 그녀는 그의 몸이 순간적으로 긴장하는 것을 느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그의 걱정스러운 가면은 굳건했다.

“내가 모든 걸 처리할게, 아영아.”

그가 그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넌 그냥 네 자신에게만 집중해. 이 짓을 한 놈들이 대가를 치르게 할게. 그리고 이 일이 잠잠해지면, 내가 약속했던 파리 여행 가는 거야. 너랑 나, 단둘이서.”

더 많은 거짓말. 더 많은 헛된 약속.

그는 그녀가 아직도 그렇게 잘 속는다고 생각하는 걸까?

다음 날 아침, 소환장이 왔다.

의붓아버지 한정혁의 퉁명스러운 전화였다.

그의 목소리는 빙하처럼 차가웠다.

“아영아. 내 사무실로. 지금 당장.”

아영이 한남동 저택에 도착했을 때, 분위기는 비난으로 가득 차 있었다.

세라는 해외에서 돌아온 충격과 갈라 영상의 충격에서 아직 ‘회복 중’이라며 보이지 않았다.

세라의 어머니인 캐롤라인 여사는 한정혁 옆에 서서 경멸 어린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한정혁은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다.

“그 영상. 그 스캔들. 네가 이 집안을 더럽혔어, 아영아.”

그의 목소리는 낮고 분노에 차 있었다.

“전 안…”

아영이 말을 시작했지만, 그가 말을 끊었다.

“닥쳐!”

그가 분노로 일그러진 얼굴로 그녀에게 한 걸음 다가왔다.

그리고 그의 손이 날아와 그녀의 뺨을 세게 후려쳤다.

아영은 뒤로 비틀거리며 쓰러졌다.

뺨이 얼얼했고, 눈물이 핑 돌았다.

“넌 우리 명예의 오점이야.”

한정혁이 증오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네 엄마처럼.”

캐롤라인 여사는 차가운 만족감으로 그 광경을 지켜봤다.

“버스 표 예매해 놨다.”

한정혁이 어떤 온기도 없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는 마호가니 책상 위로 얇은 표 한 장을 던졌다.

“네 엄마가 살던 옛날 동네로 돌아가. 강원도로. 넌 서울을 떠나는 거야. 주한 예술원 장학금은… 더 이상 문제 일으키면 없는 줄 알아.”

추방. 그는 그녀를 내쫓고 있었다.

아영은 표를 보다가 의붓아버지를 다시 쳐다봤다.

싸울 의지가 사라졌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들은 이미 그녀의 죄를 단정 지었다.

“알았어요.”

그녀가 속삭였다.

이상한 평온함이 그녀를 감쌌다.

떠나고 싶었다.

이 도시, 이 사람들에게서 벗어나야 했다.

한정혁은 그녀가 너무 빨리 굴복하자 놀란 듯했다.

“좋아.”

그때, 그의 얼굴에 다른 무언가가 스쳐 지나갔다.

그의 이미지.

“세라가 오늘 밤 조촐한 귀국 파티를 열 거야. 태준이가 세라를 위해 주최하는 거지. 너도 참석해야 한다. 웃어야 해. 아무 일 없는 것처럼 행동해. 네가… 사라질 때까지는 우리가 단합된 모습을 보여줘야 하니까.”

치욕 속에서도 그녀는 그들의 완벽한 가족 이미지를 위한 소품이었다.

아영은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그 집에서 자신의 방이었던 곳으로 돌아온 아영은, 그곳에 두었던 몇 안 되는 소지품을 천천히 챙기기 시작했다.

나중에 작은 기숙사 방으로 가서 나머지를 챙길 것이다.

그녀는 태준을 위해 뜨개질하던 목도리를 발견했다.

침착하고 꾸준한 손길로, 그녀는 그것을 한 땀 한 땀 풀었다.

쓸모없는 실뭉치가 될 때까지.

그녀는 그가 준 모든 작은 선물, 그의 거짓된 애정의 모든 증표를 똑같이 처리하여 쓰레기통에 버렸다.

풀린 실 한 올, 버려진 물건 하나하나는 관계를 끊는 작은 행위였고, 조용히 자신을 되찾는 과정이었다.

회차 3

세라를 위한 파티는 태준의 호화로운 청담동 타운하우스에서 열렸다.

아영은 이제 그곳이 거짓으로 지어진 곳임을 알았다.

의붓아버지는 그녀가 조용히 추방되기 전에 가족의 단합된 이미지를 보여주기 위해 참석하라고 강요했다.

그녀는 마치 사형 집행인의 무도회에 참석해야 하는 사형수 같은 기분이었다.

그녀는 구석에 서서 물 한 잔을 홀짝이며 잔치의 유령처럼 있었다.

음악은 너무 시끄러웠고, 웃음소리는 너무 밝았다.

태준은 매력적인 주인을 연기했고, 세라는 그의 곁에서 빛나며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갑자기 태준이 그녀 앞에 섰다.

그의 어둡고 강렬한 눈이 그녀를 훑었다.

“아영아. 밤새 한마디도 안 했네. 괜찮은 거야?”

그의 목소리는 낮고 소유욕이 강했다.

그는 너무 가까이 있었다.

“괜찮아요, 태준 씨.”

그녀가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냥 괜찮다고?”

그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런 일이 있었는데… 나한테 좀 더 기댈 줄 알았는데.”

“제가 왜 태준 씨한테 기대야 하죠?”

아영이 위험한 날을 세운 목소리로 물었다.

“제가 지금 태준 씨한테 뭐라도 되나요? 제… 보호자?”

그의 눈이 가늘어졌다.

분노의 불꽃이 스쳤지만, 재빨리 억눌렀다.

그가 그녀의 팔을 잡았다.

그의 악력은 놀라울 정도로 강했다.

“이러지 마, 아영아.”

“어떻게요?”

그녀가 그의 팔을 뿌리치며 반문했다.

“솔직하게 구는 거요?”

그의 턱이 굳어졌다.

그가 무언가, 분명 날카로운 말을 하려던 순간, 그의 영원한 아첨꾼들인 우진과 민혁이 어슬렁거리며 다가왔다.

“태준아! 세라가 너 찾는다.”

우진이 말하고는 아영을 쳐다봤다.

“어, 안녕, 아영아. 거기 있는 줄 몰랐네. 아직도 그 영상 때문에 우울해?”

민혁이 킥킥거렸다.

“그래, 안됐네. 그래도 뭐, 이제 유명해졌잖아, 안 그래?”

태준이 그들에게 경고의 눈빛을 보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세라요?”

아영은 모르는 척하며 태준을 똑바로 쳐다봤다.

“그분이랑 특별한 사이인가 봐요?”

우진이 폭소를 터뜨렸다.

“특별한 사이? 너 진짜 모르는구나? 와, 이거 대박인데.”

민혁이 음모를 꾸미듯 다가왔다.

“그냥 강태준이랑 한세라가 아주 오래된 사이라고만 해두지. 진실을 알면 충격받을걸, 아가씨.”

태준의 얼굴은 통제된 분노의 가면이었다.

“그만해, 둘 다. 가서 세라나 찾아. 난 곧 간다고 전해.”

그들은 여전히 낄낄거리며 어슬렁거리며 사라졌다.

태준은 다시 아영을 돌아봤다.

그의 표정은 읽을 수 없었다.

“저놈들 말 듣지 마. 멍청이들이야.”

“그런가요?”

아영이 조용히 물었다.

그는 한숨을 쉬며 머리를 쓸어 넘겼다.

“봐, 아영아, 상황이… 복잡해. 하지만 난 널 신경 써. 정말이야.”

그녀는 거의 웃을 뻔했다.

그는 여전히 그녀를 조종하려 하고 있었다.

내면에서 차가운 결심이 굳어졌다.

그녀는 끝났다.

그와도, 세라와도, 이 모든 지긋지긋한 연극과도 끝이었다.

오늘 밤, 의붓아버지가 요구한 대로 자신의 역할을 하고, 그들의 삶에서 사라질 것이다.

나중에, 한정혁이 주목을 끌기 위해 잔을 두드리자 잡담이 멎었다.

그는 의기양양하고 자랑스럽게 미소 지었다.

“친애하는 친구 여러분, 제 사랑하는 딸 세라의 귀국을 환영하기 위해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 기쁜 날, 태준 군이 여러분과 나누고 싶은 발표가 있습니다.”

스포트라이트가 태준과 세라를 비췄다.

두 사람은 가까이 서 있었다.

세라의 미소는 승리에 차 있었다.

태준이 그녀의 손을 잡았다.

“세라와 저는,”

그가 방 안 가득 울리는 목소리로 발표했다.

“약혼했음을 기쁘게 알려드립니다.”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우진과 민혁은 아영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포식자의 미소가 걸려 있었다.

분명 그녀가 무너지거나, 울거나, 난장판을 벌일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아영은 이상한 분리감을 느꼈다.

그녀는 이미 그의 태블릿에서 진실을 보았다.

이것은 단지 공개적인 확인일 뿐이었다.

그녀는 표정을 중립적으로 유지하고, 시선을 흔들림 없이 고정했다.

심지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작고 예의 바른 박수를 치기까지 했다.

그녀는 방 건너편에서 자신을 찾는 태준의 눈을 보았다.

그는… 불안해 보였다.

그녀의 평정심은 그가 예상했던 것이 아니었다.

그는 반응을, 그가 여전히 그녀의 감정을 지배하고 있다는 신호를 원했다.

그녀는 그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았다.

세라의 손가락에 끼워진 화려한 다이아몬드가 불빛 아래서 반짝였다.

그들의 승리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아영은 새로운 무언가의 불꽃을 느꼈다.

절망이 아니라, 차갑고 단단한 분노, 그리고 그 아래에서, 이 모든 것을 이겨내려는 의지의 첫 싹이 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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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붓자매의 경멸, 연인의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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