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1
나는 서엘레나. 세계적인 외식 기업, 서린 그룹의 유일한 상속녀다.
아버지는 나를 위해 네 명의 고아를 후원했다.
나의 보호자이자, 미래의 남편이 될 남자들이었다.
하지만 내 심장은 오직 한 사람, 강태준을 향해 뛰었다.
그러나 그는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
그가 사랑한 건 내가 후원하던 인턴, 유나였다.
그는 그녀에게 나와의 결혼은 내 유산을 확보하기 위한 비즈니스일 뿐이라고 약속했다.
나를 더 자신에게 의존하게 만들려고, 그는 거대한 샹들리에가 나를 덮치는 사고를 계획했다.
나의 보호자여야 할 그는, 내가 위험에 처한 줄도 모르고 유나를 위로하기에 바빴다.
오빠라고 불렀던 나머지 세 남자마저 그들의 편에 섰다.
나를 악독하고 질투심에 눈이 먼 미친년이라 부르면서.
죽음의 문턱을 넘나든 그날 이후, 그들을 향한 내 사랑은 재가 되어 사라졌다.
나는 마침내 모든 것을 포기했다.
그래서 그들이 마지막으로 나를 모욕할 계획을 세운 기념 파티에서,
내가 강태준을 그리워하는 비밀 영상이 공개되었을 때, 나는 울지 않았다.
오히려 미소 지었다.
그들은 모른다. 나에게도 그들의 모든 추악한 비밀이 담긴 영상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이제, 내가 모든 것을 폭로할 차례라는 것을.
제1화
내 이름은 서엘레나. 세계적인 외식 기업, 서린 그룹의 유일한 상속녀다.
내가 기억하는 한, 내 세상은 아버지가 들인 네 명의 젊은 남자를 중심으로 돌아갔다.
그들은 아버지가 직접 발굴한 재능 있는 고아들이자, 자신의 오른팔과 왼팔로 키워낸 영재들이었다.
그리고 그중 한 명은 내 남편이자 아버지의 후계자가 될 운명이었다.
몇 년 동안, 내 심장은 오직 한 사람, 강태준을 향해서만 뛰었다.
그는 가장 똑똑했고, 가장 재능이 뛰어났으며, 가장 차가웠다.
나는 젊은 시절 내내 그의 빛에 매달리는 그림자처럼 그를 쫓아다녔다.
그가 좋아하는 음식을 배워 만들어주었지만, 그는 늘 배고프지 않다고 말했다.
회의가 끝난 그를 기다렸지만, 그는 늘 짧은 목례만 하고 나를 지나쳐 갔다.
나는 그의 냉정함이 어두운 과거 때문에 쌓아 올린 벽일 뿐, 그의 본성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내가 충분히 노력하면 그 벽을 허물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어젯밤, 그 믿음은 산산조각이 났다.
나는 긴급 서류를 들고 강태준에게 가기 위해 서린 그룹 본사 최고층으로 가는 VIP 엘리베이터를 탔다.
복도는 고요했고, 통유리창 너머로 쏟아지는 도시의 불빛이 차갑게 빛나고 있었다.
그때, 임원 라운지 옆 어둠 속에서 그들을 보았다.
강태준이 내가 후원하던 인턴, 유나를 벽에 밀어붙이고 있었다.
그는 마치 목숨이라도 걸린 듯 그녀에게 키스하고 있었다.
내가 꿈에서나 받아보았던 불같은 열정으로.
유나.
강태준이 가난한 환경에서 자랐다며, 그룹 재단을 통해 대학까지 지원해달라고 내게 간청했던 아이.
모두가 착하고 연약하다고 생각했던 아이.
내가 친동생처럼 아꼈던 아이.
그때 그녀의 속삭임이 들려왔다. 두려움이 섞인 가짜 떨림과 함께.
“태준 씨, 서엘레나 상무님이 아시면 어떡해요?”
그의 대답은 내 수년간의 헌신을 단칼에 베어버리는 칼날이었다.
“절대 모를 거야.”
오늘 아침, 나는 아버지의 서재로 들어가 내 인생의 경로를 바꿀 결정을 내렸다.
“아빠, 저 결혼할 사람 정했어요.”
아버지, 서 회장님은 서류에서 고개를 들어 따뜻하게 미소 지었다.
“드디어 태준이 마음을 얻었구나? 우리 딸, 해낼 줄 알았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내 목소리는 단호했다.
“아니요. 판교의 테크 거물, 차현성 대표의 청혼을 받아들이겠어요.”
아버지의 미소가 사라졌다. 그는 펜을 내려놓고 혼란스러운 듯 미간을 찌푸렸다.
“현성이? 실리콘밸리의 그 친구? 엘레나, 그는 내가 키운 아이들이 아니잖니. 이게 무슨 소리냐?”
“그 사람은 절 사랑해요, 아빠. 진심으로요.”
“내가 키운 아이들은 뛰어나다. 너와 함께 자랐지. 진우는 뛰어난 전략가고, 시혁이는 산을 옮길 만한 열정을 가졌어. 누구든 너의 훌륭한 파트너가 될 수 있다.”
입안에 쓴맛이 감돌았다.
“훌륭하다고 요? 아빠는 아무것도 모르세요.”
일주일 전의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그 키스를 목격한 충격에 회사 타워를 뛰쳐나온 나는, 난생 처음 가보는 청담동의 고급 바에서 슬픔을 잊으려 맛도 느껴지지 않는 칵테일을 들이켜고 있었다.
그때 옆 부스에서 그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진우, 권시혁, 그리고 이선우였다.
교활한 하진우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새로운 전략이 필요해. 엘레나가 태준이한테 점점 더 집착하고 있어. 이제 어린애가 아니라고.”
늘 성질이 급한 권시혁이 비웃었다.
“그래서 뭐? 그냥 계속 장단 맞춰주면 되지. 태준이가 원하는 걸 얻을 때까지 기분 맞춰주라고. 우리 문제 아니잖아.”
“그렇게 간단하지 않아.”
하진우의 목소리는 차분하고 날카로웠다.
“우리 작은 천사, 유나가 이 일로 상처받지 않게 해야지. 우리의 충성은 그녀를 향한 거니까.”
푹신한 가죽 부스 뒤에 숨어 그들의 대화를 듣는 동안, 차가운 공포가 나를 덮쳤다.
그들은 웃었다.
강태준을 향한 나의 ‘어리석고 눈먼’ 헌신을 비웃었다.
그들은 모두 한패였다.
그들의 소중한 유나를 지키기 위해, 강태준이 나를 ‘관리’하는 것을 돕고 있었다.
그들은 외부인인 차현성 대표를 동정하기까지 했다.
“적어도 그놈은 진짜로 엘레나를 사랑하잖아.”
권시혁이 무시하듯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그놈한테는 안된 일이지만, 우리 ‘가족’이 아니니. 어차피 패배할 운명이야.”
그들의 궁극적인 목표, 이 모든 기만의 이유는 유나였다.
강태준이 그녀를 내게 데려온 날이 기억났다.
그가 자선 강연에서 만난 대학생, ‘지금까지 본 중 가장 순수한 눈’을 가진 소녀.
그는 그룹 재단을 이용해 그녀의 학비 전액을 후원하도록 나를 설득했다.
그리고 그의 제안에 따라, 나는 규정을 어기고 그녀를 서린 그룹의 핵심 부서 인턴으로 채용했고, 표준 급여의 두 배를 지급했다.
처음부터 그의 백만 분의 일 확률의 사랑 이야기는 다른 사람을 위한 것이었다.
나는 그저 관대한 현금인출기이자, 그들의 로맨스를 위한 편리한 배경이었을 뿐이다.
그들은 내 가족이 제공하는 모든 것을 누리면서, 뒤에서는 나를 조롱하고 음모를 꾸미고 있었다.
복도에서 들었던 강태준의 말이 날카롭게 되살아났다.
키스가 끝난 후, 그는 유나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쌌다.
“그 여자와 결혼하는 건 그냥 서 회장님과의 약속을 지키고, 상속 재산을 받기 위한 거야.”
그는 그녀에게 약속했다.
“중요한 건 너야, 유나. 언제나 너였어.”
회차 2
나는 그 바에서 밤을 새웠다.
차가운 알코올 기운도 배신감의 불길을 잠재우지 못했다.
강태준의 말이 머릿속에서 울렸다.
‘약속을 지키기 위한 것.’
그는 나를 거래, 지불해야 할 청구서로 여겼다.
나는 그의 동정의 대상이 되지 않을 것이다.
내 이름과 재산으로, 나는 원하는 어떤 남자든 가질 수 있었다.
나를 경멸하는 사람에게 애정을 구걸할 필요가 없었다.
나는 다시 아버지 앞에 섰다. 결심은 더욱 굳어졌다.
“진심이에요, 아빠. 저 현성 씨랑 결혼할 거예요. 그 사람을 믿어요. 저에게 솔직했던 유일한 사람이니까요.”
“하지만 저 아이들은…”
“그 ‘아이들’은 아빠가 미래를 쥐고 있으니 충성하는 거예요.”
내 목소리는 날카로웠다.
“저에 대한 존중은 전부 연기일 뿐이에요.”
나는 눈에 스치는 고통을 감췄다.
내가 낭비한 세월, 쏟아부은 사랑, 모든 것이 농담처럼 느껴졌다.
나는 어깨를 폈다.
“몇 가지 요청이 있어요.”
“뭐든지 말하렴, 얘야.”
“그 네 명 전부, 법인 계좌와 개인 신용 한도를 동결시켜 주세요. 그리고 인턴 유나는 채용 기준 미달로 해고해 주세요. 그녀에 대한 모든 재단 지원도 즉시 중단하고요.”
아버지는 충격을 받은 듯했지만,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원한다면, 그렇게 하마. 네 판단을 믿는다.”
가슴을 짓누르던 무게가 사라졌다.
나는 고개를 든 채 서재를 나섰다.
나는 서린 그룹 본사 중앙의 거대한 대리석 계단에서 유나를 마주쳤다.
섬세한 흰색 드레스를 입은 그녀는 순수함 그 자체였다.
그녀는 달려와 내 팔에 팔짱을 끼려 했다.
“엘레나 상무님! 마침 찾고 있었어요! 오늘 밤 자선 파티가 있다면서요. 저도 데려가 주시면 안 될까요? 네?”
나는 그녀의 얼굴, 그 달콤한 미소를 보며 속이 메스꺼워졌다.
이것이 내 사랑을 훔치고 내 고통을 비웃은 소녀의 얼굴이었다.
나는 역겹다는 표정으로 그녀의 손아귀에서 팔을 뺐다.
그녀의 눈이 놀라움으로 커졌다.
그러더니, 순전히 연극적인 천재성으로, 그녀는 작은 비명을 지르며 계단 마지막 몇 칸을 극적으로 굴러떨어졌다.
“유나야!”
계단 아래에서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강태준이었다.
권시혁과 이선우가 바로 뒤에 있었다.
나는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들 모두가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권시혁이 분노로 얼굴이 붉어진 채 나를 손가락질했다.
“서엘레나, 이 악독한 년! 어떻게 유나를 밀 수 있어? 질투심에 미쳤구나!”
한편, 유나는 이미 일어나 눈물을 글썽이며 나를 변호하기 위해 달려왔다.
“아니에요, 아니에요! 엘레나 상무님이 그런 거 아니에요! 제가 그냥 미끄러졌어요. 상무님은 절대로 저를 해치실 분이 아니에요.”
그녀의 말은 나를 더 유죄처럼 보이게 만들 뿐이었다.
그녀의 눈가는 붉었고, 입술은 떨리고 있었다.
완벽한 피해자였다.
남자들은 모두 순수한 혐오감으로 나를 쏘아보았다.
강태준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차갑고 경멸적인 시선으로 나를 한번 쳐다본 뒤, 마치 유리로 만들어진 것처럼 유나를 품에 안고 자리를 떴다.
나는 계단 위에 홀로 남겨졌다.
수많은 손가락질과 속삭임의 표적이 된 채.
그날 저녁, 회사 창립 기념 파티에서 나는 맞춤 제작 드레스를 입고 완벽한 평정을 가장한 채 나타났다.
하지만 당연히 그녀도 그곳에 있었다.
해고되었어야 할 유나가 강태준의 개인 ‘비서’ 자격으로 그의 곁에 서 있었다.
그녀는 부드럽고 달콤한 목소리로 내게 다가왔다.
“엘레나 상무님, 오늘 아침 일은 정말 죄송해요. 그리고 저랑 태준 씨 일은 걱정하지 마세요. 제 분수를 알아요. 상무님의 행복을 절대 방해하지 않을 거예요.”
강태준은 그녀 곁을 맴돌며, 마치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인 양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녀가 춥다고 떨자 숄을 둘러주었고, 직접 샴페인을 가져다주었다.
그녀가 하이힐 때문에 발이 아프다고 불평하자, 그는 수백 명의 하객들 앞에서, 반짝이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그녀의 발목을 부드럽게 살폈다.
그는 그녀를 위해 무릎을 꿇었다.
나는 얼어붙었다.
내 열세 번째 생일이 떠올랐다.
파티의 중심에는 그랜드 피아노가 있었고, 나는 강태준의 연주를 듣고 싶었다.
그는 이미 천재였고, 그의 음악은 그 자신처럼 눈부시고 강렬했다.
아버지는 그에게 남자는 오직 아내를 위해서만 무릎을 꿇는 것이라고 가르쳤다.
하지만 그날, 아버지는 마지못해 하는 열여섯 살의 강태준을 보며 말했다.
“엘레나를 위해 연주해라. 저 아이가 너의 미래다, 태준아. 너의 모든 것이야.”
강태준은 조용한 굴욕감으로 가득 찬 얼굴로 연주했다.
미래의 신부를 위한 공연, 미래의 제국을 위한 거래.
회차 3
아버지의 말은 선언이자, 강태준의 운명을 결정짓고 나의 미래를 약속하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그에게 내가 그의 세상이 되어야 하며, 무엇보다 존중해야 할 여자라고 말하고 있었다.
피아노 의자에 나란히 앉았을 때, 심장이 세차게 뛰던 그 느낌을 기억한다.
내가 그를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을 처음 깨달은 순간이었다.
나는 너무 어렸고, 너무 깊이 빠져 있어서 그의 눈에 타오르던 수치심을 보지 못했다.
나는 다시는 사람들 앞에서 그에게 연주해달라고 부탁하지 않았다.
그의 자존심을 너무나 존중했기에.
이제, 나는 그가 다른 여자를 위해, 유나를 위해 기꺼이, 즐겁게 무릎 꿇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는 내 눈이 시릴 정도로 다정한 눈빛으로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그 광경은 날카롭고 견딜 수 없는 물리적인 고통이었다.
나는 억지로 시선을 돌렸다.
바로 그때, 차현성 대표가 내 곁으로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저와 춤추시겠습니까?”
그는 방 안의 다른 모든 사람을 무시한 채 물었다.
나는 그의 손을 잡고 댄스 플로어로 나갔다.
음악에, 왈츠의 회전에 몸을 맡기며, 나를 짓누르는 숨 막히는 현실에서 벗어나려 애썼다.
노래의 마지막 음이 사라질 때, 금속이 뒤틀리는 역겨운 소리가 홀 전체에 울려 퍼졌다.
고개를 들었다.
내 좌석 바로 위에 있던 거대한 크리스털 샹들리에가 흔들리더니, 주 지지 케이블이 실처럼 끊어지고 있었다.
그것은 나를 향해 추락했다.
군중이 비명을 질렀다. 시간이 느려지는 것 같았다.
나는 눈이 커진 채 마침내 반응하는 강태준을 보았지만, 그는 너무 멀리 있었다.
파티에 ‘압도당한’ 유나를 위로하는 데 너무 집중한 나머지, 그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있었다.
번개처럼 움직인 것은 차현성 대표였다.
그는 나를 덮쳐 밀쳐냈고, 바로 그 순간 샹들리에가 내가 서 있던 자리에 떨어져 크리스털과 강철 파편을 흩뿌리며 폭발했다.
크리스털 조각이 내 종아리를 베었다.
고통의 안갯속에서 나는 강태준을 찾았다.
그는 이제 공황 상태의 얼굴로 나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그는 나의 보호자, 아버지가 내 안전을 맡긴 사람이었다.
그는 실패했다.
그는 그녀에게 정신이 팔려 있었다.
다음 순간, 나는 다리에 수십 바늘을 꿰맨 채 병원 침대에 누워 있었다.
강태준은 죄책감에 시달리는 듯, 내 간병인을 자처했다.
그는 완벽한 간호사였다. 세심하고 부드러웠다.
식사를 가져다주고, 책을 읽어주었으며, 내가 고통스럽지 않도록 신경 썼다.
며칠 동안, 내 안의 어리석은 부분이 한 줄기 희망을 키우도록 내버려 두었다.
어쩌면 그가 신경 쓰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 사고가 그에게 무언가를 깨닫게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유나가 보온병에 담긴 수프를 들고 찾아올 때마다 그의 눈이 빛나는 방식, 내가 보지 않는다고 생각할 때 그들이 나누는 비밀스러운 미소를 볼 때마다, 그 희망은 시들어 죽어갔다.
어느 날 밤, 잠을 이룰 수 없어 나는 조용하고 소독약 냄새가 나는 개인 병동 복도를 절뚝거리며 걸었다.
비상구를 지날 때, 목소리가 들렸다.
하진우와 강태준이었다.
“이번엔 너무 심했어, 태준아.”
하진우의 목소리는 낮은 독설이었다.
“그녀가 죽을 수도 있었어. 저 샹들리에 무게가 1톤이야.”
내 피가 차갑게 식었다.
심장이 귀에서 쿵쾅거리는 것을 느끼며 벽에 몸을 기댔다.
강태준의 대답은 소름 끼치도록 차분했다.
“케이블이 낡은 건 알고 있었어. 몇 주 전에 시설팀에 수리 요청을 해뒀지. 계획은 케이블이 미끄러져서 공황 상태를 유발하는 거였어. 내가 달려가서 그녀를 구하고, 약간의 공포심으로 그녀를 더 의존적으로 만들려는 거였지. 실제로 떨어질 줄은 계산하지 못했어.”
그는 나의 추락을 계산했다.
사고가 아니었다. 계획이었다.
“그래서 이게 네 속죄냐?”
하진우가 물었다.
“헌신적인 간병인 노릇 하는 거?”
“끝까지 해낼 거야.”
강태준이 말했다.
“그러면 이 모든 게 끝날 거야. 그녀는 괜찮아질 거고, 우린 앞으로 나아갈 수 있어.”
메스꺼움이 밀려왔다.
가슴에서부터 온몸으로 차가운 기운이 퍼져나갔다.
병원 에어컨과는 아무 상관없는 한기였다.
그가 나에게 이런 짓을 했다.
고의로.
나를 ‘겁주기’ 위해.
나를 ‘관리하기’ 위해.
나는 피 맛이 날 정도로 입술을 세게 깨물었지만, 고통을 느끼지 못했다.
심장의 고통이 너무나 커서 다른 모든 것을 압도했다.
이것은 단순한 배신이 아니었다.
이것은 괴물 같은 짓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