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2
빌라에 있던 골동품을 옮기기 위해 트럭 10여 대가 동원되었다.
백아진은 텅 비어버린 빌라를 보며 마음 한구석이 텅 비어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휴대폰을 꺼내 달력을 확인한 그녀는 떠나기 전날이 자신의 생일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명절 때마다 임하나가 김강준에게 전화를 걸었기에 백아진은 명절에 PTSD가 생겼다.
그래서 자신의 생일 조차 잊어버렸다.
하지만 김강준만 떠나면 그녀는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희망에 가득 찬 마음으로 잠이 든 백아진은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 김강준과 함께 살았던 신혼집으로 향했다.
이 집은 원래 김강준이 전액을 지불하고 구매한 집이다.
하지만 백아진은 그와 반반씩 돈을 내겠다고 고집했다.
이곳은 두 사람이 살아갈 집이다. 그러니 당연히 두 사람이 함께 힘을 합쳐야만 집이라 부를 수 있다는 게 그녀의 생각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수중에 유동 자금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끼던 골동품 도자기 한 쌍을 팔았다.
그것은 세상에 단 하나뿐인 골동품이었다.
백아진이 비밀번호를 누르자 비밀번호가 틀렸다는 알림이 떴다.
그녀는 미간을 찌푸렸다.
비밀번호는 그녀가 설정한 것이다.
바로 그녀와 김강준의 생일.
절대 틀릴 리가 없었다.
"누구세요?"
그때, 집 안에서 중년 여자의 목소리와 함께 문 뒤에서 한 여자가 궁금하다는 듯 얼굴을 내밀었다.
백아진은 경계하며 물었다. "그쪽이야 말로 누구신데요?"
중년 여자가 되물었다. "누구시냐고요?"
백아진이 중년 여자를 옆으로 밀쳤고 침실에서 잠옷을 입고 나오는 임하나가 눈에 들어 왔다.
'임하나가 내 신혼집에 살고 있다니!'
백아진은 어이가 없어 실소를 터뜨렸다. "누가 너한테 이 집에 살아도 된다고 허락했어?"
임하나는 백아진이 나타난 것을 보고도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그녀는 이곳이 백아진과 김강준의 신혼집이라는 것을 알고 일부러 이사 온 것이다.
"강준 오빠가 나한테 이 집에 살라고 했어. 백아진, 아직도 모르겠어? 강준 오빠 마음속엔 나밖에 없어!"
임하나는 말을 마친 후 백아진이 화를 내며 소리를 지르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그녀의 예상과 달리 백아진은 휴대폰을 꺼내 관리사무소에 전화를 걸었다. "관리사무소죠? 모르는 사람이 제 집에 불법으로 침입했어요. 관리사무소는 대체 뭘 하는 거예요?"
한 시간 후. 드디어 누군가 나타났다.
하지만 나타난 사람은 관리사무소 직원이 아니라 김강준이었다.
차가운 기운을 풍기며 들어온 남자의 잘생긴 얼굴에 불쾌한 기색이 역력했다. 백아진을 발견한 그의 눈빛에 짜증이 가득했다. "또 왜 난리야?"
아무렇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백아진이다.
하지만 이순간... 백아진은 누군가 그녀의 심장을 움켜 잡고 쥐어 짜는 듯한 고통을 느꼈고 숨이 막혀 질식할 것 같았다.
"여긴 우리 신혼집이야. 네가 뭔데 내 허락도 없이 임하나를 이 집에 살게 해?"
두 사람 사이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팽팽해졌다.
임하나는 눈앞의 상황이 마음에 쏙 들었다.
그녀는 흐느끼며 불 난 집에 기름을 부었다. "강준 오빠, 미안해. 다 내 잘못이야. 여기가 오빠와 아진 언니의 신혼집인 줄 몰랐어.지금 당장 이사 갈게... 쿨럭... 쿨럭..." 그녀는 말을 하면서 가슴을 움켜쥐고 기침을 했다.
마치 당장 죽을 것 같은 모습이었다.
김강준은 빠르게 임하나를 부축했다. "백아진, 제발 이성적으로 생각 좀 해."
백아진의 시선이 백아진을 부축한 김강준의 손에 머물렀고 바늘로 심장을 찌르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그녀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사? 그러지 않아도 돼. 이 집을 살 때 나도 반값은 냈으니까. 그 돈만 나한테 돌려주면 돼."
그녀는 신혼집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이제 고민할 필요가 없게 된 셈이다.
백아진이 보인 이성적인 모습, 그게 바로 김강준이 원하던 거였다.
하지만 어쩐지 그는 마음이 불편했다. "그래. 회사에 돌아가면 심정우한테 돈을 보내라고 할게."
"그래."
백아진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을 나섰다.
백아진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김강준의 마음속에 갑자기 불안감이 스쳤다.
하지만 그는 곧바로 그 감정을 억눌렀다.
그는 백아진이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았다. 그래서 그녀가 기분이 상한 걸 알았지만 그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가 혼자서 감정을 삭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날 오후.
백아진은 김강준이 보낸 돈을 받았다.
무려 20억.
그녀가 집을 살 때 낸 돈보다 두 배나 많은 돈이었다.
김강준 결점이 많은 사람이지만 적어도 돈에 있어서는 인색하게 굴지 않았다.
곧바로 김강준의 문자가 도착했다.
[내일 데리러 갈게.]
상의가 아니라 통보였다.
매번 이런 식이었다.
문자 한 통만 보내고 어디에 가는지, 누구와 함께 가는지 말하지 않았다.
마치 그녀에게 한마디라도 더 하면 김강준이 큰 손해를 보는 건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백아진은 문자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휴대폰을 옆에 던져두고 이사 준비를 이어갔다.
다음 날 10시, 김강준의 차가 제시간에 그녀의 집 앞에 도착했다.
백아진이 그녀 소유의 빌라에 살고 있다는 사실에 그는 놀란 것 같았다. "서산에 살지 않았어?"
서산은 김강준의 빌라가 있는 곳이다.
그녀는 김강준과 사귄 지 3년이 되어서야 빌라에 들어갈 수 있었다.
반면에 김강준은 임하나를 처음 만난 날, 바로 그녀를 빌라에 데려갔다고 한다.
사랑과 사랑하지 않는 것의 차이는 이렇게나 컸다.
"오래 살았더니 지겨워졌어." 백아진은 대충 대답했다.
김강준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차 안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30분 후, 차는 포르쉐 4S 매장 앞에 멈춰 섰다.
백아진의 눈빛이 흔들렸다.
한 달 전, 포르쉐에서 새로운 스포츠카 MISSION X를 출시했다.
그녀는 그 차가 마음에 쏙 들었다.
그래서 매일 김강준 앞에서 노래를 불렀다.
하지만 이 차는 아직 대량 생산되지 않았고, 현재 전 세계에 단 세 대밖에 없었다.
일주일 전, 이 4S 매장에서 한 대를 들여왔다는 소식이 뉴스에 보도되었다.
백아진은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그녀는 차에서 내려 김강준을 따라 4S 매장으로 들어갔다.
매장에 들어서자마자 직원들에게 둘러싸인 임하나를 발견한 백아진은 순식간에 기분이 잡쳤다.
그녀가 돌아서려 할 때, 임하나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준 오빠, 아진 언니, 왔어?"
"강준 오빠, 나 차 마음에 들어. 이 차 어때? " 임하나가 가리킨 차는 바로 MISSION X였다.
김강준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마음에 들면 그걸로 해."
백아진을 돌아본 그의 눈빛이 차갑게 식었다. "너도 한 대 골라."
백아진은 의기양양한 얼굴로 그녀를 도발하는 임하나를 보며 손을 들어 올렸다. "나도 이 차로 할래."
김강준은 미간을 찌푸렸다. "다른 차로 골라."
"난 이 차가 마음에 들어." 백아진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임하나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번졌다.
그녀는 김강준을 돌아봤다.
김강준은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백아진, 제발 억지 좀 부리지 마. 매장에 차가 이렇게 많은데, 왜 고집을 부리는 거야? 다른 차를 고르면 안 돼?"
백아진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러게? 왜 다른 차를 고르지 못하는 걸까?"
그녀는 고개를 들더니 환한 미소를 지었다. "농담이야. 내가 어떻게 네가 소중하게 여기는 여자의 차를 뺏을 수 있겠어? 난 이 차로 할게."
백아진이 가리킨 방향을 본 임하나의 안색이 어둡게 가라앉았다.
919!
무려 200억 원짜리 차였던 것이다!
회차 3
"아가씨!" 임하나가 정신을 잃고 쓰러지자, 매니저가 큰 소리로 외쳤다.
그때, 한 실루엣이 매니저보다 훨씬 빠르게 임하나 곁으로 달려가더니 그녀를 품에 안아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
훤칠한 실루엣, 당연히 김강준이었다.
백아진의 입가에 조롱 섞인 미소가 번졌다.
김강준이 차를 몰고 떠났으니, 그녀는 택시를 타고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4S 매장 근처에서 택시를 잡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백아진이 하이힐을 신고 한 시간을 걸은 후에야 겨우 택시를 잡을 수 있었다.
택시에 올라탄 그녀는 물집이 잡힌 발을 내려다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마음이 아픈 것 보단 발이 아픈 게 차라리 나았다.
4S 매장에서 있었던 일 뒤로, 백아진은 며칠 동안 김강준을 만나지 못했다.
굳이 그가 뭘 하고 있는지 알고 싶지도 않았다.
기다리면 임하나가 알아서 보고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9:05 강준 오빠가 직접 끓여준 죽을 먹었어.]
[18:23 강준 오빠가 직접 까준 자몽이야. 너무 맛있어 보이지? 맛보고 싶지 않아? 아쉽게도 넌 평생 맛볼 수 없을 걸.]
아래 사진은 껍질을 깐 자몽이었다.
[22:35 강준 오빠가 내 옆에서 자고 있어. 히히.]
아래 사진은 김강준이 임하나의 침대에 팔을 짚고 있는 모습이었다.
백아진은 말없이 내용을 확인하고는 휴대폰을 가방에 던져 넣었다.
마음이 무뎌진 걸까? 며칠 동안 임하나가 김강준의 일정을 일일이 보고하는 걸 보다 보니 이제는 광대 쇼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백아진은 차에서 내려 LS엔터 회사 건물로 들어갔다.
이 회사는 그녀와 김강준이 함께 설립한 회사다.
당시 그녀는 김강준과 더 깊은 관계를 맺기 위해 회사를 설립했다.
그래야 김강준이 쉽게 이별을 말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회사는 그녀의 족쇄가 되고 말았다.
"A시를 떠나 경시로 돌아가겠다고?" 회사 부사장 유재진은 백아진을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쳐다봤다. "김강준 대표는 알고 있어?"
백아진은 고개를 저었다. "아직 말하지 않았어. 선배, 일단은 비밀로 해줘."
"그래, 그래." 유재진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김강준 대표를 많이 사랑하지 않았어? 정말 떠날 수 있겠어?"
백아진은 김강준을 7년 동안이나 쫓아다녔다.
그녀의 가장 아름다운 청춘을 김강준에게 바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응, 버릴거야." 백아진은 담담하게 말했다. "내가 떠난 후, 회사 지분 분할에 관한 문제는 선배한테 맡길게. 수고해 줘."
"그렇게까지 예의를 차릴 필요 없어." 유재진은 고개를 숙여 눈에 번지는 기쁨을 감췄다. "넌 내 후배 잖아. 내가 LS에 들어올 수 있었던 것도 네가 적극적으로 추천해 준 덕분이야."
백아진은 유재진을 고마운 눈빛으로 쳐다봤다.
회사는 그녀의 것이지만, 실질적으로 회사를 운영하는 사람은 유재진이었다.
유재진이 없었다면, 회사는 일찍이 망했을 것이다.
백아진은 마지막으로 회사를 한 바퀴 둘러본 후에야 떠났다.
유재진은 직접 그녀를 회사 건물 아래까지 배웅했고, 그녀의 차가 멀어지는 것을 보고 나서야 아쉬운 눈빛으로 고개를 돌려 다시 회사로 올라갔다.
차에 올라탄 백아진은 휴대폰을 열어 해야 할 일을 확인 하며 <회사 지분 문제 해결하기> 라는 마지막 두 번째에 위치한 항목을 리스트에서 지웠다.
그리고 마지막 일에 시선을 고정했다.
<서산에서 이사하기>
서산에서 나오고 나면 그녀와 김강준은 완전히 남이 될 것이다.
백아진은 묵묵히 운전대를 잡았다.
차 안의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서산에 도착한 그녀는 곧장 2층으로 올라갔다.
그녀가 집에 돌아온 것을 본 고용인들은 그녀를 투명 인간 취급하듯 아무도 인사를 건네지 않았다.
그들은 김강준이 그녀를 전혀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서산에 들어온 이후, 김강준은 집에 돌아오는 횟수가 현저히 줄어들었다.
백아진은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녀와 김강준은 각방을 쓰고 있었다.
옷장에는 명품 브랜드의 옷들로 가득 차 있었다.
모두 김강준이 그녀에게 선물한 옷들이었다.
하지만 백아진은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녀는 허리를 굽혀 자신의 캐리어를 꺼냈다.
그녀가 짐을 정리하고 있을 때, 아래층에서 경적 소리가 들려왔다.
"김 대표님..."
"김 대표님..."
"김 대표님..."
공손한 목소리가 현관에서부터 들려왔다.
김강준이 돌아온 것이다.
백아진은 황급히 캐리어를 다시 옷장 안에 넣었다.
그녀는 김강준에게 그녀가 떠날 것이라는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았다.
그녀가 캐리어를 넣고 고개를 들자, 문 앞에 우뚝 선 남자의 그림자가 보였다.
남자의 눈가에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잘생긴 이목구비는 복도에 비치는 따뜻한 조명을 입어 더욱 입체적으로 보였고 너무 완벽해 마치 예술 작품 같았다.
백아진은 숨을 멈췄다.
"뭐 하는 거야?" 김강준의 뜨거운 시선이 그녀를 꿰뚫어 보는 것 같았다.
백아진은 캐리어를 가리고 말했다. "물건을 찾고 있었어."
김강준은 별 의심 없이 안으로 들어섰다.
"요즘 너무 바빠, 심정우가 스케즐을 체크했어. 19일은 시간이 빈대. 그날 혼인신고 하자."
또 통보하는 말투였다.
백아진은 고개를 살짝 들었다. "19일은 내 생일이야."
그녀는 김강준의 눈에 언뜻 스친 당황한 기색을 포착했다.
"그날은 이미 약속이 있어."
"넌 여태 생일을 챙기지 않았잖아?"
'너와 함께 보내지 않을 뿐이야.'
백아진은 결국 이 말을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았다.
"그럼 다른 날로 정하자."
김강준은 넥타이를 살짝 풀어 내고는 욕실로 들어갔다.
30분 후, 남자는 피어 오르는 안개와 함께 욕실에서 나왔다.
그는 수건 한 장만 몸에 두르고 있었다.
물방울이 그의 가슴 근육을 따라 흘러내려 선명하게 보이는 복근에 머물렀다.
한때 백아진을 미치게 만들었던 그의 탄탄한 근육이지만 이제 그녀는 아무런 감흥도 없었다.
김강준은 휴대폰만 내려다보고 있는 백아진을 쳐다보며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예전 같았으면 그가 근육을 드러내기 바쁘게 백아진은 달려와 그의 몸을 만졌을 것이다.
"자자."
김강준은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웠다.
백아진은 어둠 속에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 나도 돌아가야 겠어."
김강준은 미간을 더욱 찌푸린 채, 문이 열리고 닫히는 것을 지켜봤다.
방은 다시 어둠에 잠겼다.
그의 마음속에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스쳤다.
하지만 곧바로 그 불안감을 억눌렀다.
'아니야. 아무 일도 없을 거야.'
남은 며칠 동안, 백아진은 김강준을 만나지 못했다.
유재진의 말에 따르면, 김강준은 출장을 떠났다고 했다.
그조차도 김강준과 연락이 닿지 않는다고 했다.
예전의 백아진이었다면 이건 절대 좋은 소식이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소식이었다.
그녀는 김강준이 없는 틈을 타 서산에 가서 짐을 정리할 수 있었다.
서산에 있는 그녀의 물건은 많지 않았다.
대부분은 그녀가 김강준에게 선물한 물건들이었다.
커플 시계, 옷, 곰 인형...
하지만 김강준은 유치하다는 이유로 물건들을 옷장 구석에 처박아 두었다.
그녀는 선물들을 하나씩 꺼내 캐리어에 넣었다.
그리고 꽉 찬 캐리어를 들고 서산을 떠났다.
그녀가 캐리어를 들고 나가는 것을 본 고용인들은 그녀가 출장을 떠나는 줄 알고 아무도 묻지 않았다.
시간은 눈 깜짝할 사이에 19일이 되었다.
백아진은 모든 일을 처리했다.
이제 20일이 되기만 기다리면, 이 도시를 떠날 수 있다.
저녁.
백아진은 혼자 시내 케이크 가게에 들러 케이크를 사, 공원원 벤치에 앉아 케이크를 야금야금 먹었다.
케이크는 너무 달콤했다.
이제 그녀는 김강준이 자신을 떠날까 노심초사하지 않아도 됐다.
그녀는 어두운 하늘을 올려다보며 입가에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때,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불꽃이 터졌다.
오색찬란한 불꽃이 밤하늘을 수놓으며 대낮처럼 환하게 밝혔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백아진의 목이 뻐근해질 때쯤, 불꽃놀이가 끝났다.
그녀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백아진은 휴대폰을 꺼내 확인했다.
김강준이 보낸 메시지였다.
[불꽃놀이 마음에 들어? 생일 축하해!]
백아진의 눈앞이 흐릿해졌다. 그녀는 김강준에게서 생일 축하 메시지를 받아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마지막 날에 그에게서 생일 축하 메시지를 받게 될 줄이야...
그녀가 메시지를 열고 '고마워'라고 입력하려 할 때, 메시지가 하나 더 도착했다.
임하나가 보낸 사진이었다.
백아진이 사진을 열자, 미역국 한 그릇이 보였다.
[강준 오빠가 직접 끓여준 미역국이야. 오늘이 네 생일이라며? 강준 오빠한테 특별히 미역국을 끓여달라고 했어. 히히, 나는 미역국을 먹고 있는데, 넌? 못 먹었지? 생일인데 너무 불쌍해!]
백아진의 눈가에 맺혔던 눈물이 순식간에 말라 들었다.
그녀는 김강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네가 끓여 준 미역국이 먹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