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1

"대인, 자월이를 놓아주십시오."

"자월은 대인께서 원하시는 걸 모두 드릴 수 있으나 이것만은 절대 안 됩니다!"

가냘프게 흐느끼는 임자월이 힘없이 무릎을 꿇고 뒤에 있는 사내에게 간청하고 있었다.

그녀의 눈은 검은 비단천으로 가려져 있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시야가 완전히 가려진 지금, 그녀의 촉각과 청각은 더욱 예민해졌다.

그녀의 뒤에서 낮은 소리로 웃음을 터뜨리는 사내의 웃음소리는 그녀의 말을 비웃기라도 한 듯 조롱이 가득 섞여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이 세상에 내가 원하는 것이라면 반드시 내 손에 넣기 마련이다. 불가능한 건 없다."

굳은 살이 박힌 손가락이 그녀의 저고리를 헤치고 마구 헤집는 것 같더니 가슴 앞에 연한 살을 매섭게 움켜쥐고 비벼대는 것이다.

"안 됩니다. 이러지 마시오." 임자월이 큰 손을 뿌리치고 도망치려 했으나 나무 의자에 몸이 묶여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사내가 다른 한 손으로 그녀의 허리를 단단히 옭아맨 탓에 아무리 발버둥쳐도 손아귀에서 빠져나가거나 도망칠 구멍은 보이지 않았다.

그런 그녀를 나무 의자에 붙잡아둔 사내의 거친 손이 그녀의 봉긋한 가슴을 타고 점점 아래로 내려가 물소리를 냈다.

떨리는 몸을 주체하지 못한 임자월은 필사적으로 허리를 흔들며 사내의 잔악한 손길에서 벗어나려 했다.

이런 행동이 사내의 욕망을 더 자극할뿐더러, 부끄러움이라고는 전혀 모르는 그녀가 겉으로는 싫지만 속으로는 간절하게 바라는 행동처럼 보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사내의 손이 그녀의 가슴에서 멀어진 것을 본 임자월은 이대로 풀려날 것이라고 확신했다.

남자는 그녀를 놓아줄 생각이 없는 듯, 손가락을 그녀의 입술 사이로 집어넣더니 혀끝을 꼬집는 것이다.

절대적인 힘 앞에서 그녀의 입술은 고장 난 듯 낭패한 몰골로 침을 질질 흘렸다.

임자월은 상황이 이 지경까지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어제 향시에 급제한 부군이 가깝게 지내는 벗들과 함께 술을 마시고 한밤중이 되어서야 비틀거리며 사가에 돌아와 실수로 귀인을 다치게 했다고 고백했다.

임자월은 이제 막 급제한 부군에게 사달이라도 난다면 윗사람에게 벌을 받는 것은 물론이고 거인도 하지 못하게 될까 두려웠다.

시아버지는 난봉꾼으로 일 년 내내 집에 계시지 않고, 시어머니는 몸이 좋지 않으며 부군은 연약하기 그지없었다. 어제 귀인을 다치게 한 후 오늘은 처소 밖으로 나올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으니.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던 그녀는 직접 선물을 챙기고 사죄하러 왔다. 하지만 대문을 들어서자마자 누군가 비단천으로 그녀의 눈을 가리고 강제로 의자에 눕혀 능욕하는 것이다!

원래라면 이렇게 쉽게 붙잡히지 않았을 텐데, 오늘따라 이상하리만큼 몸이 나른하고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대인, 제발 멈춰 주십시오!" 임자월은 입안을 마구 헤집는 손가락을 물고 흐느껴 울었다.

곧 빠르게 부딪쳐 오는 입술이 그녀의 흐느낌을 집어삼켜 신음조차 낼 수 없게 되었다.

그녀의 입안을 헤집듯이 괴롭히는 사내의 혀는 마치 가시가 박힌 것처럼 그녀의 부드러운 혀를 쓸어내렸다. 이미 녹초가 되어 버린 몸에 정신은 더욱 혼미해졌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본 사내의 검은 눈동자가 흥분에 일렁거렸다.

"부인께서 내 존귀한 신분을 알게 되었으니, 이제 막 급제한 거인의 명성을 망치는 것쯤은 일도 아니라는 것을 알겠네."

"난 돈이 부족하지 않으니, 사죄하고 싶다면 몸으로 대신 갚거라."

사내의 코끝이 임자월의 귓불을 스치더니 곧바로 그녀의 몸 가장 깊숙한 곳으로 파고 들어갔다.

임자월은 있는 힘껏 발버둥을 쳤지만 몸집이 커다란 사내 앞에서는 모두 헛수고였다. 작은 의자는 두 사람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한참을 삐걱거리는 소리를 냈다.

큰 소리를 내며 울부짖는 임자월의 머리에 깨질듯한 고통이 전해졌다.

얼마나 울었을까, 그녀는 결국 정신을 잃고 쓰러지고 말았다.

사내는 그녀가 기절했다고 해서 조금도 연민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기절한 그녀를 침대에 데려가 마음껏 능욕하기 시작했다.

임자월이 깨어났을 때, 눈을 가린 검은 비단천은 사라지고 없었고, 홀로 의자에 무릎 꿇고 있었다.

그녀는 온몸이 마차에 깔린 것처럼 극심한 고통이 전해지는 것을 느꼈다. 입술은 물론이고 아랫배마저 찢어지는 듯한 통증은 처음 겪는 일이었다.

힘겹게 자리에서 몸을 일으킨 그녀는 방에 놓인 석경 앞에서 헝클어진 머리를 정리했다.

허나 목에 남은 붉은 자국은 그녀가 아무리 옷깃으로 가려도 가려지지 않았다.

옷깃을 있는 힘껏 여민 그녀가 천천히 방문을 열었다.

문밖에는 시중을 드는 하녀 몇 명이 서 있었고, 임자월을 발견하자 경멸 섞인 눈빛을 보내왔다.

비록 하녀들이 입고 있는 옷은 똑같았지만, 신발과 장신구는 모두 달랐다.

신분이 낮은 하녀의 장신구는 무척이나 소박했고, 신분이 높은 하녀는 손목에 옥 팔찌는 물론이고 머리에 옥 장신구까지 꽂고 있었다.

가장 눈에 띄는 건 손목에 순백의 옥 팔찌를 차고 있는 하녀였다.

일찍이 장수 가문에서 태어난 임자월은 한눈에 옥 팔찌의 가치를 알아봤다. 하녀의 옥 팔찌 하나가 그녀 집안의 모든 재산과 맞먹을 정도였다.

하녀가 내키지 않은 얼굴로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소인 백설, 대인의 명을 받고 부인의 시중을 들러 왔습니다."

옷깃을 더욱 세게 여민 임자월은 수치스럽고 분한 마음에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 모습을 본 백설의 입꼬리가 비스듬히 올라갔다.

"저희 대인은 특별한 신분을 가진 분이십니다. 그런 대인을 모실 수 있었던 건 부인의 복입니다. 그러니 부인께서 자기 주제를 잘 알기 바랍니다."

임자월은 분노로 온몸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줄곧 청렴하게 지내온 그녀가 아무 이유도 모른 채 능욕을 당했는데, 설마 북이라도 치며 축하해야 하는 걸까?

회차 2

임자월이 아무리 옷깃을 애써 여며도 백옥 같은 피부에 난 빨간 자국은 숨겨지지 않았다.

그녀의 여린 목덜미에 빼곡히 자리한 흔적은 당장이라도 피어 오를 불꽃처럼 백설의 눈을 뜨겁게 태우고 있었다.

백설은 자신이 문밖에서 기다리는 동안, 눈앞에 있는 여자가 폐하의 몸 아래에서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신음을 내뱉었을 생각만 하면 질투심에 미쳐버릴 지경이었다.

임자월은 이미 다른 사내와 혼인한 부녀자인데, 어떻게 대인의 눈길을 끌 수 있단 말인가!

백설은 억누를 수 없는 질투심에 사로잡혀 임자월의 몸도 닦아주지 않고 너덜너덜해진 옷을 그대로 입게 하고 쫓아냈다.

그때, 백설의 곁에 있는 어린 시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폐하께서 소인더러 부인의 몸을 씻긴 다음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히고 보내라 하셨습니다. 만약 소인들이 명대로 움직이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벌을 내리실 것입니다."

백설은 아랑곳하지 않고 콧방귀를 뀌었다. "우리 두 사람이 끝까지 입을 다물면, 폐하께서 어떻게 알아차릴 수 있겠니?"

임자월을 떠나보내고 서고로 향한 백설은 서고 밖을 지키고 있는 시위들을 향해 고개를 살짝 숙였다.

"소인 백설, 대인께 아뢸 말이 있습니다."

널찍한 서고에 높게 쌓은 서책 외에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최상급 배나무로 만들어진 긴 책상이었다.

책상에는 서책이 빼곡하게 쌓여 있었고, 책상 앞에 앉은 우진백은 손에 든 서책을 집중해 읽고 있었다.

출중한 외양에 깊고 어두운 눈동자는 깊이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고, 보는 이로 하여금 치명적인 위험을 감수한 채 빠져들게 만들었다.

백설은 사내의 얼굴을 보자마자 홀린 듯 계속 바라봤다.

갑자기 고개를 든 우진백이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 "눈을 갖기 싫은 것이냐?"

우진백의 표정은 담담하기 그지없지만, 목소리에는 살기가 가득 묻어났다.

그 살기가 어찌나 강렬했던지, 화들짝 놀란 백설이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백설은 그제야 보통 사내보다 출중한 외양을 가진 사내가 한 나라의 황제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한낱 미천한 하녀 주제에 어찌 황제의 훌륭한 용안을 똑바로 마주 볼 수 있을까.

황급히 고개를 숙이고 바닥에 무릎을 꿇은 백설이 몸을 더욱 심하게 떨었다.

백설은 연신 머리를 조아리며 용서를 빌었다. "폐하, 소인 죽일 죄를 지었습니다.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 소인 폐하께 무례를 범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습니다. 소인은 그저 그 부인이 떠났다는 사실을 아뢸 생각이었습니다."

백설은 황제의 화를 가라앉히기 위해 일부러 임자월을 입에 올렸다.

"부인께서 떠나실 때 안색이 어두운 것을 보아 폐하께 큰 불만을 품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시선을 들어 올린 우진백의 눈빛이 매섭게 빛났지만, 입가에는 부드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얼굴에 불쾌한 기색을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그가 탁자를 가볍게 두드리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만 나가도 좋다."

"속에 야망을 품은 계집이로구나. 이곳에 네가 남을 자리는 없다. 내일부터 오지 않아도 된다."

그 말에 백설의 얼굴이 사색이 되어갔다.

그녀의 앞에 있는 사내는 진정한 천자로 이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신분을 가진 사람이다. 그런 분이 직접 그녀를 곁에 둘 수 없다고 하니, 어느 누가 감히 그녀를 곁에 두겠는가?

폐하는 지금 그녀에게 사형을 신고한 것과 다름없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백설 폐하께 이 한 몸 바쳐 충성을 다하고 있습니다. 소인이 폐하의 눈 밖에 나는 행동을 했다면 무슨 처벌이든 달갑게 받겠습니다. 부디 소인을 버리지 말아 주십시오."

얼굴에 웃음을 머금은 우진백은 새로운 장난감을 발견한 것마냥 흥미로운 얼굴로 그녀를 가만히 지켜봤다.

우진백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백설의 고함 소리가 그의 심기를 더욱 건드릴까 두려웠던 시위들이 서둘러 그녀를 끌고 나갔다.

우진백이 하는 말을 들은 집사는 더 이상 백설을 남길 엄두도 내지 못하고 시위더러 백설을 대문 밖으로 쫓아내게 했다.

서재 안.

우진백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압도적인 기세에 주위에서 시중을 들고 있는 하인들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그 시각 우진백의 머릿속에는 임자월이 흐느끼는 모습으로 가득 찼다.

그토록 애절했던 여인이 그의 품 안에 안겨 흐느끼는 모습을 상상하기만 해도 아랫도리에 힘이 들어갈 지경이었으니.

우씨 가문은 대혁왕조의 황족으로 대혁왕조에서 높은 지위를 차지하고 있을뿐더러 자손들은 외모가 출중한 데다 비상한 머리를 갖고 있었다. 그런 우씨 가문 자손들이 선천적으로 고질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은 아무도 모른다.

그리 대단한 병은 아니지만, 발병할 때마다 극심한 두통에 머리가 깨질 지경이었다.

해가 지날수록 이러한 증상은 더욱 뚜렷해졌고, 결국에는 사람의 정신까지 손상시켜 난폭하고 의심이 많아지며 살기까지 품게 만든다.

두통이 심할 때는 가장 가까운 사람들조차 알아보지 못한다.

이러한 고통은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저주처럼 근본을 제거할 방법이 없었다. 단지 잠깐이나마 증상을 억제하거나 통증을 완화시킬 뿐이다.

두통에 시달리다 처참한 최후를 맞이하는 건 우씨 가문의 숙명과도 같은 존재였다.

이러한 두통이 방금 그 여인 덕분에 완화된 것을 발견했다.

그 여인의 몸에서 은은하게 풍겨오는 향기가 그를 오랜 시간 괴롭혔던 두통을 가라앉혔다. 하여 오늘 아침과 같이 자제력을 잃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그의 머리는 여태껏 경험해 보지 못한 상쾌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우진백은 손에 든 서책을 탁자 위에 내려놓고 손가락으로 부드럽게 탁자를 두드렸다.

"그 여인의 신분에 대해 알아 왔느냐?"

우진백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곁에 있던 근시가 서책을 그에게 내밀었다.

"임자월의 생평이 서간에 모두 담겨있습니다. 폐하, 살펴보십시오."

서간을 받아 든 우진백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읽어 내려갔다.

그 여인의 이름이 임자월이었군.

오늘 아침 두통이 심했던 그는 임자월이 무슨 말을 했는지 한마디도 듣지 못했다. 그저 그 여인이 자신의 극심한 통증을 완화시켜 줄 수 있는 약이라는 것만 알고 있었다.

병에 오랫동안 시달린 사람이 영약을 발견하면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는 건 물론이고 약을 단숨에 삼킬 욕망에 빠지곤 한다.

하여 더 좋은 방법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인이 자발적으로 그를 찾아올 수 있게 가장 어리석고 효과적인 방법을 쓰기로 했다.

서간을 손에 꼭 쥔 우진백은 임자월의 부군이 자현우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회차 3

"자현우 같은 잡놈이 이렇게 아름답고 이해심 많은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다니."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우진백이 안타까운 듯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최근 누군가 이번 과거 제도에 부정행위를 한 사람이 있다는 상서를 올렸다.

하여 부정행위를 저지른 거인을 수색하기 위해 어사 신분에 미복 차림으로 순시를 나가다 자현우라는 술고래를 만난 것이다.

그날 자현우가 천박하기 그지없는 기녀 여러 명을 품에 안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모습만 기억에 남았다.

그 중 한 기녀가 그를 흘깃 쳐다보자 질투심에 눈이 먼 자현우가 그에게 본때를 보여주겠다고 고래고래 소리까지 질렀었지.

다행히 호위가 지키고 있어 자현우는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지만 실수로 그의 허리춤에 있는 옥패를 깨뜨리고 말았다.

옥패가 깨진 것과 동시에 자현우도 꿈에서 깬 듯한 얼굴이었다. 우진백의 화려한 옷차림과 주변에 많은 호위를 본 그는 당장에 겁에 질려 바지를 적셨다.

엉망이 된 옷차림과 취기가 오른 얼굴에는 기녀의 빨간 연지 자국까지 남아있었고, 아래에는 알 수 없는 오물까지 묻어 있어 한심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었다.

우진백이 혐오감 가득한 눈빛으로 곁에 선 호위를 쳐다보자, 호위는 자현우를 끌고 옆으로 데려갔다.

한낱 하찮은 파리와도 같은 사내를 호위가 어떻게 처리했는지 그는 묻지 않을뿐더러 신경 쓰지도 않았다.

허나 아침 해가 밝자마자 누군가 그를 찾아와 사죄하려 한다는 것이다.

미복 차림으로 순시를 나왔던 터라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지 않아 거절하려던 찰나, 명함에서 전해지는 은은한 향기를 맡게 되었다.

태어날 때부터 저주처럼 그를 괴롭혀온 두통이 명함에서 전해지는 향기를 맡은 후 마법처럼 조금씩 사라지는 것이다.

거절의 말이 한참이나 입술을 맴돌았으나 결국 목구멍 아래로 삼켜버리고 말았다.

그의 모든 감각이 명함의 주인을 만나고 싶다고 소리 없는 아우성을 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당장이라도 그 주인의 옷을 하나씩 벗겨내 맛을 천천히 음미하고 싶었다.

잠깐 맛만 보려 했으나 이성을 완전히 잃은 그는 여인이 기절할 때까지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여인의 작은 입술이 탐스럽게 살짝 벌어진 것을 떠올린 그의 눈빛이 더욱 짙게 가라앉더니 울대가 살짝 진동했다.

이미 차분해진 몸이 다시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뜨겁게 끓어올랐다.

"임자월..."

상서에 적힌 임자월의 이름을 응시한 그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후 손가락으로 임자월의 이름을 매만지는 그의 입꼬리가 비스듬히 올라갔다.

"아쉽구나. 너를 조금 더 일찍 만났으면 좋았을 것을."

조금 더 일찍 만났다면, 그녀가 도망칠 수 없게 단단히 손아귀에 틀어쥐었을 것이다.

지금처럼 다른 사내의 아내가 된 여인을 그리워하며 욕망을 억누르는 일도 없었을 것이고.

더럽혀진 몸을 이끌고 힘겹게 집으로 돌아온 임자월은 낭패한 몰골에 대해 변명거리를 여러 개 생각했지만, 가족들 중 아무도 그녀를 신경 쓰지 않았다.

쓸쓸한 기분으로 처소에 돌아간 그녀는 깨끗한 물수건으로 몸을 닦고 비슷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거울 앞에 선 그녀는 이상한 흔적이 보이지 않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곁에 놓인 등불을 들어 부군을 찾으러 나섰다.

그녀의 부군은 부지런하고 성실한 사람이기에, 이 시간에는 보통 서책을 읽고 있을 것이다.

서고에 도착하니 아니나 다를까 촛불이 서고를 환하게 밝히고 있었다.

부군이 촛불에만 의지한 채 밤새 서책을 읽고 있다는 생각에 그녀는 모든 노력이 가치가 있다고 느껴졌다.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가는 것을 느낀 그녀는 서재로 더 가까이 다가갔다.

그녀가 서재 문 앞에 도착했을 때, 안에서 시어머니와 부군의 말소리가 새어 나왔다.

"자월이는 왜 아직도 돌아오지 않는 것이냐? 그 귀인이 자월이를 괴롭히는 건 아니겠지?"

"어머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자월이도 만만치 않은 상대입니다. 우리가 상대하기 힘든 장수들도 자월이가 모두 상대하지 않았습니까? 이번에도 문제없을 겁니다."

"이 어미가 걱정하는 건 그것만이 아니다. 그 귀인이 자월의 예쁘장한 미모에 홀려 저지르지 말아야 할 짓을 저지르는 건 아니겠지?"

시어머니가 하는 말을 들은 임자월은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오늘에 있은 일을 떠올린 그녀는 문을 열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그 귀인의 신분이 마냥 평범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앞뒤로 시중을 드는 하인이며 호위며 얼마나 많았는지 모릅니다. 현지의 현령 나리께서도 그런 대접을 받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 귀인이 어떻게 천박하고 교양도 없는 여인을 품에 안을 수 있겠습니까?"

천박하고, 교양이 없는 여인...

임자월은 지금 자신이 듣고 있는 말을 믿을 수 없었다.

부군은 그녀가 이 세상에서 가장 현명하고 착한 사람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이제 보니 부군은 그녀가 없는 곳에서 그녀를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음이 순간 차갑게 식어 내렸다. 오늘 의자에 묶여 귀인의 손아귀에 다뤄질 때보다 더욱 차가운 느낌이었으니.

손에 쥔 등불을 더욱 세게 움켜쥔 그녀가 조심스럽게 서재 문을 두드렸다.

"부군, 안에 계십니까?"

곧바로 문이 열리고 자현우는 그녀를 따뜻하게 품에 안았다.

"부인, 드디어 돌아왔군."

자현우는 임자월의 안색이 유난히 창백한 것을 눈치채지 못했을 뿐더러, 심지어 그녀가 옷을 갈아입은 것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어떻게 되었는가? 대인께서 나를 용서해 주시겠다고 약조했는가?"

기대 가득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부군의 눈빛에, 임자월은 자현우를 시험해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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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군의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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