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1
나는 쌍둥이의 여섯 번째 생일을 맞아 깜짝 신탁 펀드를 만들어주기 위해 은행에 갔다. 지난 6년간 나는 IT 업계의 거물, 권도준의 아내로 살았다. 내 삶은 완벽한 꿈 그 자체라고 믿었다.
하지만 내 신청서는 거절당했다. 은행 부장은 가족관계등록부상 내가 아이들의 법적 어머니가 아니라고 통보했다.
아이들의 진짜 엄마는 윤희수. 내 남편의 첫사랑이었다.
미친 듯이 그의 사무실로 달려갔지만, 굳게 닫힌 문 너머로 끔찍한 진실을 엿듣고 말았다. 내 결혼 생활 전체가 정교하게 짜인 사기극이었다. 내가 아내가 될 수 있었던 건 단지 윤희수와 닮았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나는 그녀의 아이를 낳아줄 대리모로 고용된 것이었다.
지난 6년간 나는 그저 공짜 보모이자, 그녀가 돌아올 때까지 잠시 자리를 채우는 ‘쓸 만한 대용품’에 불과했다.
그날 밤, 처참하게 무너진 내 모습을 본 아이들의 얼굴이 혐오감으로 일그러졌다.
“꼴이 끔찍하네.”
딸아이가 비웃으며 나를 밀쳤다.
나는 그대로 계단 아래로 굴러떨어졌고, 머리가 기둥에 부딪히며 끔찍한 소리가 났다. 피를 흘리며 쓰러진 나를 보며 아이들은 그저 웃을 뿐이었다.
그때 남편이 윤희수와 함께 들어왔다. 그는 바닥에 쓰러진 나를 차갑게 훑어보더니, 아이들에게 ‘진짜 엄마’와 아이스크림을 사주겠다고 약속했다.
“희수 아줌마가 우리 진짜 엄마였으면 좋겠어.”
떠나는 딸아이의 목소리가 집 안에 울려 퍼졌다.
내 피가 흥건한 웅덩이 속에 홀로 버려진 채, 나는 마침내 모든 것을 깨달았다. 내가 이 가족에게 쏟아부은 6년간의 사랑은 그들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그래. 좋다.
소원대로 해 주지.
제1화
은행의 차가운 대리석 바닥이 발끝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내 마음은 따뜻한 온기로 가득했다. 바로 오늘이었다. 여섯 번째 생일을 맞은 내 쌍둥이, 시우와 시아를 위해 신탁 펀드를 만들어주는 날. 아이들의 미래를 지켜주고 싶은 엄마의 깜짝 선물이었다.
나는 서류를 자산 관리 담당인 김 부장에게 건넸다. 그는 친절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서류는 다 준비된 것 같네요, 사모님.”
나도 진심으로 행복하게 미소 지었다.
“그냥 아진이라고 불러주세요.”
지난 6년간 나는 IT 거물 권도준의 아내, ‘사모님’으로 불렸다. 아직도 꿈만 같았다.
그가 키보드를 두드리자, 그의 미소가 살짝 옅어졌다.
“본인 확인 절차만 간단히 진행하겠습니다, 서아진 고객님.”
몇 번의 클릭이 더 이어지고, 그의 미간이 좁혀졌다. 그는 모니터와 나를 번갈아 쳐다봤다.
“죄송합니다만, 문제가 좀 있는 것 같습니다.”
“문제요? 혹시 이체 한도를 초과했나요?”
나는 현실적인 문제들을 떠올리며 물었다.
“아니요, 그건 아닙니다.”
그는 망설이며 말했다.
“시스템에서 신탁 계좌 개설 신청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내 미소가 무너져 내렸다.
“왜죠? 제 정보에 오류라도 있나요?”
그는 헛기침을 하며 불편한 기색을 보였다.
“저희 기록에 따르면, 권시우, 권시아 군의 법적 친모는 서아진 고객님이 아니십니다.”
숨이 멎었다.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네? 그럴 리가요. 제가 엄마예요. 제가 낳았다고요.”
김 부장은 내 눈을 피하며 모니터를 내 쪽으로 살짝 돌렸다.
“시스템상 두 자녀의 법적 친모는… 윤희수 씨로 되어 있습니다.”
윤희수.
그 이름이 갑자기 텅 비어버린 내 머릿속을 세차게 울렸다. 권도준의 첫사랑. 그가 늘 슬프고 아련한 눈빛으로 이야기하던 여자. 몇 년 전 그를 떠났다는 바로 그 여자.
손에 감각이 없었다.
“뭔가 착오가 있을 거예요. 아주 끔찍한 착오요.”
“죄송합니다, 고객님.”
그가 나지막이 말했다.
“출생 증명서는 전산으로 연동되어 있어서요. 이건 명백한 사실입니다.”
나는 그를 멍하니 바라봤지만, 그는 보이지 않았다. 지난 6년의 세월이 스쳐 지나갔다. 잠 못 이루던 밤들, 아이들의 첫걸음, 까진 무릎, 잠자리에서 읽어주던 동화책들. 내 삶의 전부. 내 세상. 모든 것이 거짓이었다.
나는 의자가 끌리는 거친 소리를 내며 일어섰다.
“남편과 이야기해봐야겠어요.”
그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은행을 나섰다. 도시의 소음이 귓가에 멍하게 울렸다. 머릿속은 그 불가능한 사실 하나만을 제외하고는 새하얗게 지워져 버렸다.
권도준을 만나야 했다. 그가 설명해 줄 것이다. 이건 분명 행정 착오이거나, 잔인하고 끔찍한 장난일 뿐이다.
나는 손을 떨며 운전대를 잡고 그의 강남 사무실로 향했다. 내가 늘 자랑스러워했던, 유리와 강철로 빛나는 그 빌딩이 이제는 감옥처럼 보였다.
그의 비서가 나를 보고 놀라 일어섰다.
“사모님! 대표님은 지금 회의 중이신데…”
나는 그녀를 지나쳐 걸었다. 값비싼 카펫이 깔린 고요한 복도에 내 발소리만 울렸다. 그의 사무실 문이 살짝 열려 있었다. 안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권도준의 목소리, 그리고 한 여자의 목소리. 권도준이 간직한 녹음 파일에서나 들어봤던 부드럽고 아름다운 목소리.
윤희수.
나는 문에서 몇 걸음 떨어진 곳에 멈춰 섰다. 손이 허공에서 굳어버렸다.
“그 여자, 아직도 모르지?”
윤희수의 목소리에는 비웃음이 섞여 있었다.
“응.”
권도준이 무미건조하게 대답했다.
“애들이 자기 자식인 줄 알아. 엄마 노릇은 잘하더군. 순진해 빠져서 그렇지, 꽤 헌신적이야.”
차가운 공포가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좋은 대리모였다는 뜻이겠지.”
윤희수가 웃었다.
“지난 6년간 공짜 보모 노릇까지 해줬잖아. 솔직히, 권도준, 당신 계획은 완벽했어. 나랑 적당히 닮았으면서, 가짜 결혼에 동의할 만큼 절박한 여자를 찾아내다니.”
숨이 턱 막혔다. 가짜 결혼. 대리모.
“어쩔 수 없었어.”
권도준이 말했다.
“난 내 아이들이 필요했어. 우리 아이들. 애들은 당신 눈을 닮았어, 희수야. 당신 재능까지도. 서아진의 유전자는… 실망스러웠을 거야. 이 방법 덕분에 완벽한 아이들이 태어났지.”
진실이 무너져 내렸다. 물리적인 무게감에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시험관 시술. 내 난자와 그의 정자를 쓴다고 했던 의사들의 말. 전부 거짓이었다. 윤희수의 난자였다. 나는 그저 자궁, 인큐베이터, 도구에 불과했다.
“속이기도 쉬웠어.”
권도준이 말을 이었다. 그의 목소리에 담긴 무심한 잔인함이 가장 끔찍했다.
“원래 좀 단순한 여자야. 내가 자길 사랑하는 줄 알지. 당신이 돌아올 때까지 쓸 만한 대용품이었을 뿐인데.”
시야가 흐려졌다. 세상이 빙빙 돌았다. 나는 쓰러지지 않으려고 벽을 붙잡았다.
장면이 바뀌고, 내 마음은 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나는 가족의 빚 때문에 팔려가듯 해야 했던 결혼식에서 도망치고 있었다. 값싼 드레스 자락은 찢어져 있었다. 겁에 질려 숨어든 호텔에서, 나는 엉뚱한 스위트룸으로 잘못 들어갔다.
권도준이 그곳에 있었다. 그는 도시의 야경을 내다보고 있었다. 몇 년간 짝사랑해온 남자, 다른 세상의 사람이었다. 그는 내 남루한 모습을 보고 동정이 아닌, 계산적인 눈빛으로 나를 훑어봤다.
“아내가 필요해.”
그가 차분하고 직설적으로 말했다.
“대용품일 뿐이지만. 내 아이를 낳아줄 사람. 당신, 그녀와 닮았군. 꿈에도 못 꿀 인생을 살게 해주지.”
그때 그의 책상 위 사진을 봤다. 나와 같은 머리색, 비슷한 얼굴 골격을 가진 여자. 윤희수.
오랜 짝사랑과 탈출에 대한 갈망에 눈이 멀어, 나는 동의했다. 나는 그가 나를 사랑하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내 헌신이면 충분할 거라고 믿었다.
그는 내게 성대한 결혼식, 아름다운 집, 그리고 두 아이를 주었다. 그는 친절했고, 세심했으며, 관대했다. 그는 내 육아 방식을 칭찬했다. 밤에는 나를 안아주었다. 나는 이 모든 것이 진짜라고 믿어버렸다. 나는 내 모든 사랑을 이 가족, 이 삶에 쏟아부었다.
그리고 모든 것이 거짓이었다. 정교하게 만들어진 환상. 아이들에 대한 그의 사랑은 우리 사랑의 결실이어서가 아니라, 다른 여자에 대한 그의 집착의 산물이었기 때문이었다.
기억이 희미해지고, 나는 차갑고 삭막한 복도에 남겨졌다. 진실은 가슴에 뻥 뚫린 상처가 되었다.
나는 돌아서서 도망쳤다. 건물 밖으로 뛰쳐나가자, 내면의 폭풍처럼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 비에 흠뻑 젖었지만 추위를 느낄 수 없었다. 텅 비고 저릿한 고통 외에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인도에 서 있었다. 비가 머리카락을 얼굴에 달라붙게 했고, 눈물은 뺨을 타고 흐르는 빗물과 섞였다. 전화가 울렸다. 집사였다.
“사모님, 학교에서 방금 전화 왔습니다. 비가 많이 오는데, 기사님 보내서 아이들 데려올까요?”
아이들. 그 순간, 어둠 속에서 본능적인 사랑의 불꽃이 일었다.
“네.”
나는 목이 메어 말했다.
“네, 안전하게 집으로 데려와 주세요.”
전화를 끊고 걷기 시작했다. 목적지도 없었다. 결국, 내 몸은 나를 집으로 이끌었다. 집은 따뜻하고 아늑하게 불이 켜져 있었다. 거짓이었다.
나는 물을 뚝뚝 흘리며 집 안으로 들어섰다. 시우와 시아가 계단 꼭대기에서 밝은 얼굴로 서 있었다.
“엄마!”
시아가 외쳤다.
그러다 아이의 시선이 내게, 흠뻑 젖은 내 비참한 모습에 닿았다. 미소가 사라지고, 경멸의 표정으로 바뀌었다.
“꼴이 끔찍하네.”
“희수 아줌마는 절대 저런 모습이 아닐 텐데.”
시우가 팔짱을 끼며 덧붙였다.
이미 산산조각 난 내 심장이 더 작고 날카로운 파편으로 부서졌다.
“거기 서서 카펫에 물 흘리지 마.”
시아가 날카롭게 말했다.
“더럽잖아.”
아이는 한 걸음 다가와 나를 밀었다. 세게 민 것은 아니었지만, 나는 감정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지쳐 균형을 잃은 상태였다. 나는 뒤로 넘어졌고, 머리가 계단 아래의 단단한 기둥에 부딪히며 끔찍한 소리가 났다.
눈앞에서 통증이 폭발했다. 나는 기절한 채 그들을 올려다봤다. 아이들은 놀라지도, 달려와 도와주지도 않았다.
그들은 웃었다.
“저것 좀 봐.”
시우가 비웃었다.
“진짜 칠칠맞아.”
바로 그때, 권도준이 윤희수에게 우산을 씌워주며 들어왔다. 그는 바닥에 쓰러진 나를, 젖은 머리카락 사이로 피가 흐르는 나를 봤다.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이게 다 뭐야?”
그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엄마가 넘어졌어요.”
시아가 밝게 말했다.
“이제 희수 아줌마랑 가도 돼요? 아이스크림 사주기로 약속했잖아요.”
권도준의 시선이 차갑고 무심하게 나를 스쳐 지나간 뒤, 아이들에게 미소를 지었다.
“물론이지. 가서 외투 입어.”
그는 다시는 내 쪽을 쳐다보지 않고 윤희수의 외투를 벗는 것을 도왔다. 아이들은 신나게 재잘거리며 내 옆을 지나쳐 달려갔다.
“난 저 아줌마보다 희수 아줌마가 훨씬 좋아.”
시아가 내가 들을 수 있을 만큼 큰 소리로 오빠에게 말했다.
“저 아줌마가 우리 진짜 엄마였으면 좋겠어.”
“원래 진짜 엄마거든, 멍청아.”
시우가 속삭였다.
“아빠가 말해줬어.”
그들이 떠났다. 현관문이 닫히고, 나는 빗물과 내 피가 흥건한 웅덩이 속에, 조용하고 텅 빈 집에 홀로 남겨졌다.
느리고 씁쓸한 웃음이 가슴속에서 터져 나왔다. 이상하고 부서진 소리였다.
그들은 윤희수가 엄마이길 바랐다.
그래. 좋다.
소원대로 해 주지.
나는 끝났다. 거짓말도, 고통도, 이 모든 것들과도.
회차 2
집사가 내 머리의 상처를 소독하고 붕대를 감아준 후,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권도준의 서재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나는 그가 절대 쓰지 못하게 했던 값비싼 가죽 의자에 앉아 그의 컴퓨터를 켰다.
바탕 화면에는 작년 여름 해변에서 찍은 우리 네 가족의 사진이 있었다. 아이들은 웃고 있었고, 권도준은 내 어깨에 팔을 두르고 있었으며, 나는 바보같이 사랑스러운 눈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화면 속 웃고 있는 내 얼굴을 손가락으로 더듬었다. 낯선 사람. 광대.
나는 빈 문서를 열고 이혼 합의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손은 흔들리지 않았다. 머리의 통증은 둔탁하게 울렸지만, 영혼의 고통에 비하면 희미한 메아리일 뿐이었다.
타이핑을 하는 동안 기억들이 홍수처럼 밀려왔다. 갓난아기였던 시우, 작고 연약한 손으로 내 손가락을 꽉 쥐던 모습. 한 살배기 시아가 내 목에 얼굴을 파묻고 처음으로 “엄마”라고 불렀던 순간. 그 기억은 너무나 선명해서 아팠다.
결혼 1년 후, 시험관 시술을 해보자고 부드럽게 설득하던 권도준의 모습이 떠올랐다.
“당신과 함께 가정을 꾸리고 싶어, 아진아.”
그가 사랑이라고 믿었던 감정이 듬뿍 담긴 목소리로 속삭였다.
“더 이상 기다리지 말자.”
주사, 병원 방문, 몇 달간 계속된 입덧을 기억했다. 쌍둥이를 키우는 엄청난 노력, 내 모든 것을 쏟아부었던 시간, 그가 원하는 완벽한 아내와 엄마가 되기 위해 내 꿈을 희생했던 순간들을 기억했다.
그리고 아이들… 그들은 나를 사랑했다. 내 상상이 아니었다.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
시우는 그렇게 말하곤 했다. 냉장고에는 우리 ‘행복한 가족’을 그린 아이의 그림이 가득 붙어 있었다.
“과자보다 엄마를 더 사랑해.”
시아는 잠자리에서 껴안을 때마다 속삭였다.
모든 것이 변하기 시작한 것은 약 1년 전, 아이들이 프랑스어 수업을 받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권도준의 동료가 추천해준 새로운 가정교사라고 했다. 똑똑하고 교양 있는 여자.
윤희수.
이제야 이해가 갔다. 아이들의 마음을 서서히 병들게 한 것은 그때부터였다. 미묘한 비교, ‘희수 이모’가 얼마나 더 세련되고 똑똑한지에 대한 무심한 언급들.
문득 한 가지 생각이 스쳤다. 나는 웹 브라우저를 열고 권도준의 이름을 입력했다. 그의 공개된 소셜 미디어는 알고 있었지만, 직감적으로 다른 것이 있을 것 같았다. 검색어에 ‘비밀’, ‘블로그’를 추가했다. 조금 파고들자, 가명으로 된 잠긴 계정을 찾아냈다. 비밀번호는 날짜였다. 윤희수가 그를 떠난 날.
나는 그것을 열었고, 속이 뒤집혔다. 그곳은 신전이었다. 수년간의 게시물, 사진, 보내지 않은 편지들, 모두 그녀에게 바쳐진 것이었다. ‘나의 희수’, 그는 그녀를 그렇게 불렀다. ‘유일한 사람.’
그는 멀리서 그녀의 모든 삶을 기록해왔다. 파리에서의 학업, 미술 전시회, 여행. 그리고 그녀의 귀국.
1년 전 게시물이 있었다. ‘그녀가 돌아왔다. 그녀를 가까이 둘 방법을 찾았다. 아이들은 진짜 엄마를 알아야 한다.’
그는 그녀를 아이들의 프랑스어 가정교사로 고용했다. 그는 1년 동안 그녀를 우리 집, 우리 삶으로 끌어들였다. 그는 이 재회, 이 교체를 내 코앞에서 지휘하고 있었다.
나는 그가 그녀를 위해 열어준 환영 파티 사진들을 훑어보았다. 사치스럽고 호화로운 파티는 프라이빗 클럽에서 열렸다. 그는 내가 항상 꿈꿔왔던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손은 그녀의 허리께에 놓여 있었다. 그들은 커플처럼 보였다. 당연한 커플.
그리고 사진 속에는 윤희수를 숭배하는 눈빛으로 올려다보는 아이들이 있었다. 그는 아이들에게 그녀를 사랑하고, 그녀를 엄마로 보도록 가르치면서, 동시에 나를 경멸하도록 가르치고 있었다. 게시물에는 그가 아이들과 나눈 ‘수업’ 내용이 상세히 적혀 있었다. ‘오늘 나는 아이들에게 희수의 예술적 재능에 대해 이야기했다. 서아진은 막대기 그림조차 제대로 그리지 못한다. 아이들이 자신들의 유전적 재능을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다.’
모든 조각이 맞춰지며, 너무나 거대하고 치밀하게 계획된 배신의 그림이 완성되었다. 숨이 막혔다. 나는 바보, 눈먼, 순진한 바보였다.
나는 이혼 합의서 작성을 마쳤다. 손가락이 키보드 위를 날아다녔다. 나는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았다. 그저 깔끔한 단절. 그리고 한 가지 더.
문서를 인쇄하고 브라우저를 닫으려 할 때,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권도준과 아이들이 돌아왔다.
나는 재빨리 컴퓨터를 끄고 일어섰다. 인쇄된 서류를 손에 꽉 쥐었다.
아이들이 아이스크림으로 끈적끈적한 얼굴을 한 채 방으로 뛰어 들어왔다.
“엄마, 밀어서 미안해요.”
시아가 시럽처럼 달콤한 목소리로 말했다. 무언가를 원할 때 쓰는 말투였다.
“실수였어요.”
시우는 나를 쳐다보지 않고 덧붙였다.
나는 내 목숨보다 더 사랑했던 이 아이들의 얼굴을 보았지만,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내 애정의 샘은 말라붙어 황량한 불모지만 남았다.
“그래.”
나는 무미건조하게 말했다.
아이들은 내 무반응에 놀란 듯했다. 권도준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들어왔다.
“아진아, 괜찮아? 정말 걱정했어.”
그가 내 팔을 만지려고 손을 뻗었다. 나는 불에 덴 듯 움찔하며 물러섰다.
“만지지 마.”
혐오감이 너무나 본능적이고 갑작스러워서 헛구역질이 났다. 나는 손으로 입을 막았다. 메스꺼움이 밀려왔다.
권도준의 눈이 커졌다가 가늘어졌다. 그의 얼굴에 흉측한 무언가가 스쳐 지나갔다.
“설마…? 아진아, 임신했어?”
그 질문은 터무니없고 끔찍하게 공중에 떠돌았다.
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그의 표정은 비난으로 굳어졌다.
“일부러 그런 거지? 희수를 보고 나서, 다른 아이로 나를 옭아매려고 한 거지?”
“무슨 소리야?”
나는 겁에 질려 속삭였다.
그가 내 팔을 잡았다. 손가락이 내 살을 파고들었다.
“지금 당장 확인해야겠어.”
그는 나를 안방 욕실로 끌고 가기 시작했다.
“찬장에 테스트기 있잖아.”
나는 맨발로 광택 나는 나무 바닥을 미끄러지며 그에게 저항했다.
“이거 놔, 권도준!”
몸싸움을 하던 중, 내 다리가 받침대 위에 놓인 커다란 도자기 화병 모서리에 걸렸다. 화병이 바닥으로 떨어지며 수백 조각으로 산산조각 났다. 날카로운 파편 하나가 내 종아리를 깊게 베었다. 날카롭고 즉각적인 통증이 다리를 타고 올라왔다.
권도준은 멈춰 서서 내 발 주위에 고이는 피를 내려다봤다. 그는 내 팔을 놓지 않았다. 그저 무표정한 얼굴로 쳐다볼 뿐이었다.
내 마음은 2년 전으로 돌아갔다. 우연한 임신. 10주 만의 유산. 나는 절망에 빠졌었다. 권도준은 나를 안고 부드럽고 위로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괜찮아, 자기야. 우리에겐 예쁜 쌍둥이가 있잖아. 서로가 있잖아.”
또 다른 거짓말. 그는 분명 안도했을 것이다. 또 다른 아이는 또 다른 복잡함, ‘대용품’과의 또 다른 족쇄였을 테니까. 그의 부드러운 위로는 연기였다.
그가 내 팔을 다시 잡아당겨 깨진 도자기 조각 위로 나를 끌었다.
“테스트기, 아진아. 지금 당장.”
그는 나를 욕실로 밀어 넣고 임신 테스트기를 내 손에 쥐여주었다.
나는 작은 플라스틱 막대기와 그의 차갑고 분노에 찬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6년 동안, 나는 그가 나의 구원자라고 생각했다. 이제 나는 그의 진짜 모습을 보았다. 그는 나의 감금자였다.
나는 고통과 분노, 두려움이 뒤섞인 채 떨리는 손으로 테스트를 했다. 그는 내 위에서 나를 지켜보며 기다렸다.
내 인생에서 가장 긴 5분이 흘렀다.
마침내, 결과 창이 변하기 시작했다.
회차 3
나는 임신 테스트기의 한 줄을 내려다보며 건조하고 유머 없는 웃음을 터뜨렸다.
임신이 아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그 생각은 너무나 명확하고 날카로워서 나 자신도 놀랐다. 이 남자, 이 가족과 단 1초라도 더 엮이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없었다. 나는 자유로웠다. 아니, 곧 자유로워질 것이다.
권도준이 몸을 숙여 결과를 확인하자, 그의 어깨에 들어갔던 힘이 눈에 띄게 풀렸다. 그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휴, 다행이네.”
그는 다정한 남편의 가면을 다시 쓰려는 듯 목소리를 부드럽게 하려 애썼다.
“아진아, 다리… 병원에 가봐야겠어.”
“신경 꺼.”
나는 타일 바닥처럼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그를 밀치고 절뚝거리며 욕실을 나섰다.
“왜 그래?”
그가 나를 따라오며 따졌다.
“왜 이렇게 구는 거야? 우린 가족이잖아.”
“우리가?”
나는 그를 마주 보고 섰다. 이혼 서류는 여전히 내 손에 쥐어져 있었다. 나는 그것을 내밀었다.
“이혼해 줘, 권도준.”
그는 서류를 쳐다보다가, 마치 내가 외국어로 말한 것처럼 나를 쳐다봤다.
“그리고,”
나는 꾸준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청담동에 있는 상가 건물, 그거 나 줘. 작년에 당신이 산 거. 그거 넘겨주면, 나 조용히 떠나줄게.”
거짓말이었다. 이혼 합의서에는 그 건물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 그저 단순한 합의 이혼 서류일 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의 거대한 자존심이 내가 떠나는 진짜 이유 대신 집중할 만한 무언가, 즉 미끼가 필요했다. 내가 좀스럽고 탐욕스럽게 굴고 있다고 그가 생각하게 만들어야 했다.
그는 알 수 없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그는 마침내 무언가 정말로 잘못되었다는 것, 이것이 단순히 윤희수에 대한 질투심의 발작이 아니라는 것을 감지하고 있었다.
“네가 뭔데 나한테 뭘 요구해?”
그가 입가에 경멸적인 미소를 띠며 물었다.
“요구하는 거 아니야.”
나는 그를 자극할 만한 말투로 말했다.
“그냥 이 모든 게 지겨워서 그래. 위대한 권도준 대표님의 명성에 흠집 낼 만한 소란 없이 조용히 사라져 주길 바란다면, 그 가게를 줘. 아니면 말고. 어차피 타블로이드 신문들은 당신과 윤희수의 재회 소식을 아주 좋아할 테니까.”
먹혔다. 그의 자존심은 그의 가장 큰 약점이었다. 그의 순하고 유순한 아내인 내가 감히 그에게 도전한다는 생각은 모욕적이었다. 작은 상가 하나 값으로 나를 쉽게 처리할 수 있다는 생각은 그에게 싼 거래였다.
“좋아.”
그가 책상에서 펜을 낚아채며 쏘아붙였다. 그는 서류를 읽지도 않고 서명했다.
“가져. 그리고 내 눈앞에서 사라져. 넌 갈수록 실망스럽기만 해.”
그는 서명한 서류를 책상 위로 던졌다. 나는 그것을 집어 들었다. 심장이 기묘한 공포와 승리감으로 두근거렸다.
1단계는 끝났다.
방을 나서려는데, 문밖에서 쌍둥이가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저 아줌마, 가는 거야?”
시아가 물었다.
“잘됐네.”
시우가 대답했다.
“그럼 희수 아줌마가 진짜 우리 엄마가 될 수 있잖아. 난 저 아줌마 싫어.”
나는 잠시 눈을 감고, 서명된 서류를 손에 꽉 쥐었다. 곧, 얘들아. 너희들이 원하는 대로 될 거야.
그날 이후로, 나는 멈췄다. 완벽한 아내와 엄마이기를 멈췄다. 권도준의 식사를 계획하고, 그의 옷을 챙기고, 집안일을 관리하는 것을 멈췄다. 나는 내 방에 머물며 다친 다리와 부서진 마음을 돌봤고, 권도준이 쌓아 올린 완벽한 세계가 무너지는 것을 지켜봤다.
집은 혼돈에 빠졌다. 빨래는 쌓여갔다. 셰프가 준비한 식사는 권도준의 까다로운 입맛에 맞지 않았다. 쌍둥이는 집사가 만든 음식은 “엄마”가 만든 것과 다르다며 투덜거리며 아무것도 먹지 않으려 했다.
어느 날 아침, 수석 집사인 박 여사가 절망적인 얼굴로 내 방문을 두드렸다.
“사모님, 대표님께서 오늘 중요한 회의가 있으신데, 파란색 정장에 어떤 넥타이를 매야 할지 결정을 못 하고 계십니다. 저한테… 넥타이를 세 개나 던지셨어요.”
나는 매일 아침 이 일을 처리했었다. 나는 그의 옷장을 그보다 더 잘 알았다.
“은색 줄무늬가 있는 남색 넥타이요.”
나는 문을 열지 않고 말했다.
“그게 그의 눈 색깔을 돋보이게 해줄 거예요. 그리고 금색 커프스링크 말고 은색으로 하라고 전해주세요.”
잠시 침묵이 흐른 뒤, 감사하다는 인사가 들려왔다.
그날 늦게, 권도준이 내 방문 앞에 나타났다.
“왜 당신 의무를 다하지 않는 거야?”
그가 따졌다.
“집은 엉망이고, 아이들은 비참해하고 있잖아.”
“몸이 안 좋아요.”
나는 무미건조하게 대답했다.
“다리가 아파요. 의사가 쉬라고 했어요.”
그는 그 말에 반박할 수 없었다. 그는 내가 쓸모없다고 중얼거리며 떠났다. 그는 그의 공짜 보모, 무급 가사 관리인을 원했다. 아내를 원한 게 아니었다.
혼돈은 계속되었다. 배달 음식과 셰프의 고급 음식에 익숙하지 않은 쌍둥이는 배탈이 나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창백하고 무기력했다. 어느 날 저녁, 권도준은 복도에서 토하고 있는 시우를 발견하고 집에 돌아왔다. 그는 집사에게 소리를 지르며, 그의 소중한 아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고 비난했다.
나는 내 방에서 들으며, 씁쓸한 아이러니를 느꼈다. 6년 동안, 나는 이 가족을 순조롭게 운영하는 보이지 않는 엔진이었다. 나는 그들의 식단을 관리하고, 일정을 짜고, 열을 내렸다. 나는 모든 것을 수월하게 보이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들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내가 멈추기 전까지는.
이제, 나는 그저 날짜만 세고 있었다. 30일. 이혼 숙려 기간이었다. 내가 자유로워지기까지 30일.
어느 날 저녁, 권도준이 다시 내 방으로 왔다. 이번에는 그의 말투가 달랐다. 더 부드럽고, 더 교활했다.
“아진아.”
그가 내 침대 가장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아직도 희수 때문에 화났어?”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소문 좀 들었겠지.”
그가 말했다.
“사람들은 말하기 좋아하니까. 하지만 우리 사이엔 아무 일도 없어. 그녀는 그냥 오랜 친구고, 아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 있을 뿐이야.”
그는 내가 그의 비밀 블로그에서 봤던, 그의 손이 그녀의 허리를 소유욕 강하게 감싸고 있던 환영 파티 사진이 온라인에 퍼진 것을 본 모양이었다.
“그녀는 아이들을 가르칠 뿐이야.”
그가 주장했다.
“당신이 엄마야, 아진아. 그 무엇도, 그 누구도 그걸 바꿀 수 없어. 사소한 질투심 때문에 판단력을 흐리지 마. 아이들이 당신 이런 모습을 보는 건 좋지 않아.”
그는 나를 가스라이팅하며, 나를 미친, 질투심 많은 아내로 만들려고 했다.
표면 아래에서 들끓던 분노가 마침내 폭발했다.
“당신 말이 맞아요.”
나는 지금까지 느끼지 못했던 분노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이들에게 좋지 않죠. 그러니 어쩌면 내가 그냥 그들의 엄마이기를 그만둬야 할지도 모르겠네요.”
나는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어쩌면 그냥… 이제 그 애들, 원하지 않는다고 하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