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1

"아가씨, 저희가 저택까지 안전하게 모시겠습니다."

소한주는 말끔한 정장 차림의 남자들을 가만히 응시하고 있었다.

"아가씨, 회장님과 사모님께서 아가씨를 얼마나 오랫동안 애타게 찾아 헤맸는지 모릅니다. 아가씨가 이곳에서 지낸다는 소식을 접하자마자 저희더러 모셔오라고 분부했습니다." 선두에 집사인 듯한 남자가 형식적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심씨 가문도 아가씨가 돌아오는 날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 아가씨는 돌아가자마자 심씨 가문 도련님과 약혼식을 올리게 될 겁니다."

"네, 알겠어요. 출발하죠." 소한주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순순히 동의했다.

그녀는 꼭 필요한 물건만 챙긴 뒤, 차에 올라탔다.

선군현은 외딴 시골에 있는 작은 마을로 경성까지 가려면 최소 이틀은 꼬박 운전해야 도착할 수 있다.

하늘이 황금색 노을로 뒤덮일 때쯤, 그들은 또 다른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 집사는 꽤 깔끔해 보이는 모텔을 가리키며 이곳에서 하룻밤 묵은 뒤 내일 다시 출발하자고 제안했다.

소한주가 묵을 방은 2층 복도 맨 끝에 있는 201호실이었다. 아마 몇 개 남지 않은 방 중에서 가장 좋은 방일 것이다. 집사와 경호원들은 아래층에 묵기로 결정했다.

그날 밤, 유난히 무덥고 습한 방에 오래된 에어컨마저 고장이 난 바람에 소한주는 시원한 밤바람이라도 맞을 겸 창문을 활짝 열었다. 얼굴을 부드럽게 스치는 바람에 얇은 커튼이 천천히 흩날렸다.

샤워를 마치고 나온 후, 그녀는 불을 완전히 끈 뒤 침대에 누웠다.

깊게 잠이 들려는 찰나, 복도에서 들려오는 어수선한 소리에 그녀는 잠에서 깨야만 했다.

곧이어 열린 창문 사이로 들리는 굉음에 화들짝 놀란 그녀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경계 태세를 취했다. 불현듯 검은 그림자가 스쳐 지나가는 것 같더니 그녀의 침대 위로 뛰어든 것이다.

동시에 목에 닿은 칼날의 차가운 감촉과 낮은 목소리가 위협적으로 귓가에 내려앉았다. "움직이지 마."

그대로 자리에 얼어붙은 소한주는 두려움에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남자의 소매에서 풍겨오는 코를 찌르는 피비린내가 그가 얼마나 위험한 존재인지 일깨워 줬다. 틀림없는 사실은, 이 남자는 그녀가 함부로 반항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복도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더욱 선명하게 들려왔다. 곧바로 누군가 그녀의 방문을 세게 두드리며 거친 목소리로 소리쳤다. "안에 누구야. 문 열어!"

문을 쿵쿵 두드리는 소리가 커질수록 그녀의 목에 대인 칼날이 점점 더 압박해 왔다.

남자의 낮고 굵은 목소리가 위협적으로 들려왔다. "저 사람들부터 돌려보내. 그렇지 않으면 지금 이 자리에서 죽게 될 거야."

남자는 오른팔로 그녀의 허리를 꽉 붙잡았고, 왼손에 쥔 칼로 그녀의 목에 위협을 가했다.

남자의 커다란 손과 절제된 힘으로 보아, 소한주는 그가 쉽지 않은 상대라는 것을 바로 알아차렸다.

궁지에 몰린 그녀는 어떻게든 그의 위협적인 제안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네." 소한주는 대답하는 와중에도 남자를 달래어 자신의 안위를 보장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괜찮을 거예요."

방 안에서 아무 대답도 없자, 밖에 있던 사람들은 마스터키로 문을 열고 들이닥쳤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함께 남자는 소한주의 헐렁한 티셔츠를 잡고 자신을 향해 확 잡아당기더니 이내 무릎에 앉히고 마주 보며 천천히 허리를 움직였다.

바로 그때, 문이 벌컥 열리며 눈부신 플래시 불빛이 방 안을 비췄다.

소한주는 당황한 척 비명을 내지르며 남자 위에 엎드려 그를 가려줬다.

"자기야, 여기 대체 뭐 하는 곳이야? 어떻게 허락도 없이 막 쳐들어올 수 있어?" 소한주는 잔뜩 겁에 질린 듯 남자를 필사적으로 붙잡았다.

조금 전까지 요염하게 들려오던 목소리에 짜증과 화가 섞이며 가쁘게 몰아 쉬는 숨결이 더해지자 마음이 완전히 사로잡히는 것 같았다.

소한주도 남자가 잔뜩 긴장한 채 몸이 경직된 것을 느꼈다.

곧바로 그가 그녀의 허리를 감싼 팔에 힘을 주더니 능숙하게 몸을 뒤집어 이불로 두 사람의 몸을 완전히 덮었다.

이불 아래 절제하며 움직이는 두 사람의 몸과 틈틈이 새어나오는 야릇한 숨소리에 사람들은 순간 어찌할 바를 몰랐다.

예상치 못한 광경을 목격하게 된 사람들은 당황한 나머지 넋을 잃은 채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주변에 사람들이 몰려있는데도 불구하고 두 사람이 전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자 모텔 경비원이 어색하게 코를 만지며 먼저 입을 열었다.

"커플 사이가 이렇게 뜨거워서야... 저희도 이만 나가는 게 좋은 것 같은데요?"

그때, 무리 중 누군가 경비원을 밀치고 서슴없이 침대로 향했다.

빠르게 가까워지는 발소리에 소한주는 심장이 당장이라도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설마 이대로 이불을 들춰 확인하는 건 아니겠지?

옆구리에 닿는 싸늘한 칼날이 느껴지자 그녀는 정신을 차리고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았다.

발자국 소리가 바로 침대 옆에 멈춰 서자 소한주는 용기를 내어 몸을 더욱 깊이 숙였다.

이불이 살짝 들어 올려지며 눈부신 플래시 빛이 그녀의 매끈한 등 일부분을 비췄다. 하지만 두 사람은 행각을 조금도 멈추지 않았다.

남자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포갠 소한주가 자연스럽게 긴 머리를 흘러내려 교묘하게 남자의 얼굴을 가리자, 그는 그녀의 가녀린 허리를 부드럽게 감쌌다.

두 사람의 입술 사이로 더욱 뜨거운 신음이 터져 나왔다.

그때, 방문 앞에 선 남자가 창문을 가리키며 높은 소리로 말했다. "형님, 거리에 수상한 자가 나타났다고 합니다."

그 소리에 침대 곁에 플래시를 쥔 남자가 바로 밖으로 달려 나갔다.

문이 굳게 닫히는 소리와 함께 소한주는 미끄러지듯이 남자의 몸에서 내려왔다.

살짝 열린 커튼 사이로 희미한 달빛이 방 안에 스며들어 두 사람을 비췄다. 남자는 달빛에 드러난 소한주의 가느다란 몸매를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조금 전, 앙큼한 그녀의 행동을 떠올린 남자는 손가락으로 매끈한 그녀의 피부를 천천히 쓸었다. 그의 손가락에서 그녀의 부드러운 피부 감촉이 그대로 전해왔다.

그녀의 긴 머리카락에서 풍기는 은은한 향기가 코끝에 맴돌았고 목소리는 기분 좋은 선율처럼 그의 마음에 자리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서 그녀는 침착하고도 차분하게 행동했다. 낯선 사람이 쳐들어왔음에도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그의 입술에 먼저 입술을 갖다 대었고, 진짜 커플인 것처럼 행동해 주변을 속였다.

게다가 온몸에 시원한 느낌이 전해질 정도로 차가웠던 그녀의 입맞춤은 참으로 서툴렀다. 아마 첫 키스인 것 같다.

여기까지 생각한 남자는 피식 웃으며 물었다. 유난히 차가웠던 목소리가 온기를 되찾으며 부드럽게 들려왔다. "첫 키스?"

회차 2

소한주는 캐리어에서 옷 한 벌을 꺼내며 차가운 목소리로 대꾸했다. "당신이 상관할 바 아니에요. 이제 그만 나가주세요."

그녀는 남자가 한시라도 빨리 방에서 나가기만을 바랐다.

조금 전, 그가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고 등을 쓸어 내리는 시간이 어찌나 길게 느껴졌는지 치가 떨렸다. 하지만 손가락 끝에 굳은 살이 많이 박힌 점과, 칼을 다루는 솜씨가 능숙하고 반사신경이 경이로운 것을 보아 보통 사람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소한주는 남자의 정체에 대해 더 고민하지 않기로 하고 무심하게 캐리어를 닫았다.

밖에서 들려오는 경적 소리가 방안의 어색한 침묵을 깼다. 남자는 천천히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급박한 상황에 셔츠 단추를 모두 풀었지만, 여전히 흐트러짐 없는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창가에 다가선 그가 셔츠 단추를 잠그며 소한주에게 무언가를 가볍게 던졌다. "아까는 너무 급박한 상황이라 결례를 범했어요. 이건 보상이라고 생각해요."

말을 마친 그는 날렵하게 창틀을 잡고 걸터앉더니 그녀를 향해 싱긋 웃고는 몸을 뒤로 넘기며 창밖으로 사라졌다.

화들짝 놀란 소한주가 창가에 다가가 밑을 내려다보자 희미한 가로등 아래 남자는 맨손으로 벽을 타며 빠른 속도로 내려가고 있는 것이다. 이내 땅바닥에 발을 디딘 남자는 마치 한 마리의 민첩한 치타처럼 빠르게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허리를 굽혀 남자가 던진 물건을 줍자 한 장의 검은색 카드였다.

거의 잠들 뻔했던 그녀의 방에 갑자기 쳐들어왔으니 보상은 응당 받아야 하는 것이다. 소한주는 카드를 주머니에 넣고 창문과 커튼을 굳게 닫았다.

다음 날 아침, 그녀를 보자마자 집사는 한껏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아가씨, 어젯밤 잘 주무셨습니까? 이곳 직원이 말하길, 어젯밤 모텔에 도둑이 들어 한참 시끄러웠다고 합니다."

소한주는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네, 괜찮았어요."

집사는 룸미러로 뒷자리에 앉은 그녀를 흘깃 쳐다봤다. 뒷자리에 기대앉아 창 밖을 바라보며 사색에 잠긴 것 같은 그녀의 모습은 우아하고 기품이 흘러 넘쳤다.

집사는 그녀가 전혀 시골에서 자란 소녀 같지 않자 고개를 갸웃거렸다. 차분하면서도 고상한 품위와 세련된 얼굴은 시골에서 자란 여인들과 차원이 달라도 완전히 달랐다. 가만히 보고만 있어도 호감이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꼬박 이틀이 걸리고 나서야 소한주는 경성에 도착할 수 있었다.

경성은 특별시로 밤낮을 불문하고 활기와 열정이 넘치는 도시다.

오후 8시쯤, 소한주를 태운 차가 3층짜리 고급 저택 앞에 미끄러지듯이 멈춰 섰다.

먼저 차에서 내린 소한주는 웅장하게 자리한 3층 저택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다.

한눈에 봐도 굉장하고 화려한 저택은 막대한 부를 증명하고 있는 것 같았다. 저택 곳곳을 세심하게 관찰한 그녀의 입가에 비웃음이 잔뜩 피어 올랐다.

저택의 주인은 바로 그녀의 아버지인 소승제다. 시골 가난한 집 자식인 소승제는 그녀의 어머니와 결혼하고 명예와 부를 모두 얻을 수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소승제는 모든 재산을 빼앗은 뒤, 그녀의 어머니를 매몰차게 차버리고 정부를 선택했다.

그의 내연녀인 당윤미는 사실상 아무 노력도 하지 않고 그녀의 어머니 자리를 꿰차지 한 것과 마찬가지다. 지금의 그녀는 결코 자신의 힘으로 누릴 수 없을 만큼의 사치와 존중을 받으며 당당하게 소씨 가문 사모님의 권리를 행사하고 있다.

심지어 몇 년 전엔,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고자 슬픔에 빠진 소한주의 어머니를 찾아가 소승제와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를 들려주기까지 했다. 그 결과 소한주의 어머니는 슬픔을 이기지 못해 눈물로 하루하루를 보내다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진실을 모르는 사람들은 당윤미가 아름다움과 지혜로움으로 소승제의 두 번째 아내 자리를 차지했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심지어 그녀는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자신이 그녀의 친 어머니라고 뻔뻔스럽게 주장하고 다녔다.

그러나 소한주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당윤미의 화려한 가면 뒤에 얼마나 추악하고 가증스러운 얼굴이 숨어있는지.

과거를 떠올린 소한주의 두 눈이 결의에 찬 듯 위험하게 뻔뜩였다.

두 사람이 그녀의 어머니에게 진 빚을 갚지 못했으니, 이제 그녀가 그 빚을 대신 받아야 할 차례다.

바로 그때, 저택 문이 활짝 열리며 두 남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맞춤 정장에 금테 안경으로 날카로운 눈매를 강조한 소승제는 큰 키가 인상적이었다.

그의 곁에는 매혹적인 몸매를 그대로 드러낸 당윤미가 몸에 꼭 맞는 원피스로 우아함을 극대화했다.

"한주야, 드디어 돌아왔구나." 소승제가 먼저 그녀를 향해 손을 내밀며 따뜻하게 맞이했다. "어서 안으로 들어가자."

시선을 아래로 떨군 소한주는 두 눈에 가득 피어 오른 증오를 최대한 감추었다. 깊게 숨을 들이마신 그녀는 당당히 고개를 들고 주저 없이 다가갔다.

소승제는 당윤미의 허리를 다정하게 감싸며 그녀를 향해 소개했다. "한주야, 인사부터 해야지. 이 사람이 바로 네 어머니다."

그리고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는 어린 여자아이를 가리키며 계속해서 말했다. "태리는 네 동생이야."

거실 소파에 앉아 TV에 시선을 고정한 소태리는 소한주가 가까이 다가오자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경멸 어린 눈빛으로 소한주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어본 그녀가 불쾌한 듯 눈살을 찌푸리더니 잔뜩 비아냥거렸다. "난 시골 촌뜨기를 언니로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요."

그때 당윤미가 빠르게 다가와 소한주의 팔을 잡고 설명을 보탰다. "한주야, 태리가 아직 어려 짓궂은 장난을 좋아하는구나. 태리가 하는 말에 신경 쓸 필요 없어. 여기까지 오느라 힘들었을 텐데, 엄마가 맛있는 아침을 만들었단다. 얼른 안으로 들어가자."

소한주는 잡힌 팔을 힘껏 뿌리치고 홀로 주방으로 향했다.

안색이 순식간에 굳더니 서러운 듯 눈매를 아래로 떨군 당윤미가 소승제를 돌아보며 입술을 꼭 깨물었다. "여보, 한주가 저를 싫어하는 건 아니죠?"

소승제는 한숨을 길게 내쉬며 당윤미를 위로했다. "한주는 시골에서 자랐기 때문에 예의범절에 대해 모를 수 있어. 당신한테 나쁜 감정이 있는 건 아니야."

그제야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 당윤미가 환한 미소를 지어 보이더니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정말 괜찮아요. 오늘부터 한주가 우리 가문에 적응할 수 있게 최선을 다해 가르칠게요. 경성에서 제일 아름답고 우아한 아가씨로 만들 거예요."

소승제는 어리지만 현명한 아내의 대답이 마음에 든 듯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등을 다독였다.

주방으로 들어온 당윤미는 소한주의 손을 끌고 자신의 옆자리에 앉혔다.

"한주야, 엄마가 직접 만든 육회부터 먹어봐." 당윤미는 말과 함께 육회 한 점을 떠서 소한주의 접시에 놓았다. "태리가 제일 좋아하는 반찬이야."

그러자 소한주는 미간을 잔뜩 일그러뜨리고 접시에 놓은 육회를 휴지에 싸서 역겹다는 듯이 던졌다. "역겨워."

회차 3

소한주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식탁 주변의 공기가 굳어지더니 모두가 경악에 찬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인내심을 잃은 소태리가 식탁을 세게 내리치며 소리쳤다. "촌녀가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우리 엄마가 네가 온다고 얼마나 열심히 반찬을 준비했는데. 거지같은 게 감히 주제도 모르고 함부로 설쳐?"

그러자 소한주는 무구한 눈빛으로 세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더니 잔뜩 억울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난 그저 고기가 역겹다고 했을 뿐인데, 생고기라서 보기만 해도 좀 역겨운 느낌이에요. 태리야, 언니 말을 오해했구나?"

"너...!" 순간 말문이 막힌 소태리는 반박하지 못하고 말만 더듬었다. 더 떠들어댔다간 소한주가 자신의 어머니를 모욕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되므로 분을 삼킬 수 밖에 없었다.

소한주는 계속해서 무구한 표정을 짓고 눈을 깜박였다."태리야, 설마 식탁에 생고기보다 역겨운 음식이 또 있다는 거야?"

소태리는 그 말에 어찌 답변해야 할지 몰라 두 눈을 휘둥그레 뜨고 입 꼬리만 실룩거렸다. 마치 무언가에 목이 멘 듯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다.

그때, 당윤미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어색한 침묵을 깼다. "한주야, 이건 일반 육회가 아니라 미슐랭 셰프의 특제 소스로 최고급 소고기와 저온 살균 계란으로 만든 특급 육회야. 일반 레스토랑에서 맛볼 수 없는 최고급 음식이란다. 아마 여태껏 시골에서 지내느라 한 번도 먹어보지 못했겠지?"

당윤미의 말에는 시골에서 지낸 소한주가 고급 요리를 먹어본 적 없다는 조롱이 미묘하게 섞여 있었다.

소한주는 싱긋 미소 지으며 조금도 개의치 않다는 듯이 답했다. "요즘 아무리 미슐랭 셰프가 대단하더라도 저는 전통 음식이 입에 맞는 것 같아요. 조상들이 남겨준 조리 방법들이 얼마나 대단한데, 양식 소스를 곁들여 생고기를 먹는다는 게 너무 야만인 같지 않나요?"

당윤미의 얼굴에 불쾌한 기색이 드러났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온화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래, 우리 전통 육회도 있는데 엄마가 너무 내 생각만 했구나.

"그래, 나도 서양 소스를 곁들인 육회는 별로인 것 같아." 갑자기 끼어든 소승제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소한주를 바라봤다. "나도 우리 전통 음식이 더 입에 맞는 것 같아. 한주의 음식 취향을 보니 나를 많이 닮은 것 같구나."

소한주는 소스가 묻은 젓가락을 냅킨으로 닦으며 계속해서 미소만 지었다. 소태리의 분에 겨운 눈빛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말이다.

당윤미는 소한주를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한주는 지금 어느 대학에 다니고 있어? 태리는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중주대학교에 다니고 있는데, 너는 어때?"

소태리는 바로 득의양양한 표정을 하며 가슴을 앞으로 폈다.

소한주의 학업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자 소승제의 안색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한주가 지내고 있던 마을 주민들한테 확인해 보니 한주는 지금 어느 대학에도 다니지 않는다더군."

당윤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크게 뜨고 되물었다. "네? 한주가 대학에 진학하지도 않았다는 말이에요? 그럼 안 되는데, 심씨 가문 사람들이 알면 가만있지 않을 거예요. 얼마 전 심씨 가문 사모님께서 한주가 돌아오면 성대한 연회를 열어 축하해주겠다고 했단 말이에요. 만약 심씨 가문에서 한주가 대학에 입학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소승제가 한껏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당윤미의 말을 가로챘다. "그만해. 한주 학교는 내가 직접 알아볼 거니까."

곁에서 잠자코 듣고만 있던 소태리가 참지 못하고 소리 내어 웃음을 터뜨렸다. 소한주가 아버지의 인맥을 빌어 아무 지방에 있는 대학에 입학하는 상상만으로도 자연스레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때 가서 무명 대학에 진학한 시골 촌녀 소한주를 위해 축하 연회를 여는 심씨 가문도 덩달아 비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게다가 연회장에서 소한주가 촌스러움이 묻어나는 행동과 태도를 보인다면 축하를 받기는커녕 되려 미움을 사게 될 거다.

사실 소태리는 심씨 가문의 도련님인 심하준을 오랫동안 짝사랑하고 있었다. 그러나 심씨 가문에서 오래 전에 양가 부모끼리 약속한 혼사 때문에 굳이 소한주를 데려오게 할 줄 누가 알기나 했을까.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아직도 이런 약조를 곧이곧대로 지키는 가문이 있다니!

소태리는 심씨 가문이 학교도 제대로 다닌 적 없는 촌년 소한주를 결코 마음에 들어 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소한주의 대학에 관한 말이 오가는 동안, 분위기가 또다시 무겁게 가라앉았다.

어색한 침묵 속에서 소한주가 냅킨으로 입가를 닦더니 세 사람을 둘러보며 태연하게 입을 열었다. "저는 며칠 뒤에 있는 경화 대학교 입시 시험에 참가할 예정이에요. 이변이 없으면 경화 대학교에 입학하게 될 겁니다."

놀란 듯 어안이 벙벙해 있던 소태리가 이내 어처구니없는 실소를 터뜨렸다.

경화 대학교는 전국 수재들만 모여 있는 대학인만큼, 입시 시험 자격 또한 매우 까다로웠다. 그러니 시골에서 자란 소한주에게 경화 대학교에 입시 시험 자격이 주어졌다는 건 거짓말일 것이다.

소승제도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살을 깊게 찌푸리고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한주야, 네가 고등학교도 다니지 못했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 알고 있는데. 경화 대학 입시 시험을 본다는 거짓말로 우릴 속일 생각이야? 시골에서만 자랐더니, 못된 것만 배웠구나."

"여보, 화내지 마세요." 당윤미가 서둘러 중재하며 나섰다. "한주는 당신한테 좋은 인상을 남기고 싶어서 거짓말을 했을 거예요."

소한주를 돌아본 당윤미가 최대한 자애로운 목소리로 달래려 했다. "한주야, 대학에 입시하지 못했다고 해서 열등감을 가질 필요 없어. 더욱이 거짓말을 할 필요도 없단다. 우리는 한 가족이기 때문에, 널 무시하거나 업신여기지 않을 것이야."

그녀를 위로하는 당윤미의 말에는 그녀가 거짓말을 했다는 확신과 불신으로 가득 차 있었다.

소한주는 말없이 휴대폰을 꺼내 몇 번 두드리더니 식탁 중앙에 올려놓았다.

세 사람은 휴대폰 화면을 보기 위해 머리를 빼고 몸을 앞으로 내밀었다. 실소를 하며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소태리가 웃음을 멈추고 표정을 굳혔다.

화면에는 그녀의 사진과 이름까지 똑똑하게 적혀 있는 경화 대학교 입학시험 수험표가 떡 하니 있었다.

소태리는 식탁에 놓인 휴대폰을 낚아채더니 두 눈을 크게 뜨고 몇 번이나 확인하며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소리쳤다. "이, 이럴 수 없어! 우릴 속이기 위해 가짜 수험표까지 만든 거야?"

지금 전체 스토리 읽기
작가를 후원하고 Moboreader의 다음 이야기를 응원해 주세요!
모든 회차 잠금 해제

촌녀,전설이 되다

1화
회차
사용자 설정
다음 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