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1

"김예교 그래도 우리가 널 키워준 세월이 있는데, 네가 이렇게까지 마음을 독하게 먹을 줄은 몰랐다. 이 집에 더 이상 네 자리는 없어. 그러니 지금 당장 나가." 김예교 앞에 선 우아하고 점잖은 귀부인이 혐오스럽다는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며 말했다.

"엄마 이건 그냥 사고였어요. 저 혼자 발을 헛디뎌 계단에서 굴러 떨어진 거예요. 언니는 아무 잘못 없어요..." 중년 여인과 똑 닮은 어린 소녀가 소파에 앉아 말했다. 두 눈에 눈물이 가득 고인 어린 소녀는 붕대를 감은 무릎을 조심스럽게 감싸 안고 있었다.

30분 전, 김씨 가문의 친딸 김정민이 2층 계단에서 떨어지는 사고가 있었고 떨어질 당시, 2층에는 김예교 한 사람뿐이었다.

모든 증거가 김예교한테 쏠리고 있었다

김예교를 쳐다보는 김씨 부부의 두 눈에는 혐오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불과 일주일 전, 기자들 앞에서 김예교와 떨어져 지내기 아쉬워하던 모습과 완전히 딴판이었다.

바닥을 내려다보는 김예교의 눈 밑으로 비웃음이 잔뜩 묻어났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녀는 김씨 가문의 유일한 아가씨였다. 비록 부모님의 총애를 받으며 자란 건 아니지만, 물질적으로 부족한 것 하나 없이 커왔다.

그러다 줄곧 그녀의 아버지라고 생각해 왔던 김진웅이 갑자기 큰 사고를 당하면서, 급하게 수혈이 필요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이후 진행한 혈액 검사에서 김예교가 김씨 가문의 딸이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사실을 알게 된 김진웅은 모든 인력과 자원을 동원해 친딸 김정민을 수소문했고 빠르게 되찾았다.

김씨 가문은 강성에서 명성이 꽤 높은 재벌 가문으로, 소문은 빠르게 퍼져나갔다. 대중들의 관심이 일순간 김씨 가문에 쏠렸고, 가문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그들은 오랫동안 키워온 김예교를 아쉬워하며, 그녀를 친딸처럼 한동안 데리고 있다가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겠다고 했다.

그러나 비밀리에 진행된 계획은 그들이 대중들에게 밝힌 계획과 완전히 달랐다. 그들은 대중들의 관심이 사그라들 때쯤, 아무도 모르게 김예교를 쫓아낼 생각이었다.

김정민을 찾자마자 김씨 가문 사람들은 김정민이 어린 시절을 힘들게 보낸 이유를 모두 김예교 탓으로 돌리고 김예교를 방에서 쫓아낸 후 창고로 쓰던 다락방에서 지내게 했다.

이후 김예교는 모든 집안일을 도맡아 했고 가정부보다 못한 대접을 받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정민은 김예교가 집에 더 이상 머물기를 원하지 않았다.

지난 며칠 동안 김정민은 몇 번이나 그녀를 함정에 빠뜨렸고, 그럴 때마다 김씨 부부는 아무것도 보지 못한 척하며 심지어 김예교에 대한 증오감을 드러내곤 했다.

이러한 시련이 반복되자 김예교는 김씨 부부에 대한 환상을 모두 잃었고, 더 이상 당하고만 살지 않을 거라고 스스로 다짐했다. 순간 감정이 북받쳐 오른 김예교는 고개를 번쩍 들어 김정민을 노려보며 말했다. "떠날 때 떠나더라도 사실은 바로잡아야겠어. 김정민, 난 그동안 참을 만큼 참았어. 이제 더 이상 당하고만 있지 않을 거야!"

김정민은 김예교의 날카로운 눈빛을 보고 몸을 흠칫 떨었다.

여태껏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하고 당하고만 있던 김예교가 맞을까?

그때 김정민의 눈 밑에 어두운 빛이 언뜻 스쳤다. 빌어먹을!

김씨 가문에서 사랑 받고 지냈어야 할 사람은 자신이어야 하는데, 이년은 무슨 자격으로 그동안 그녀의 삶을 누리고 있었단 말인가!

지금이라도 김예교를 당장 집에서 쫓아내야 한다!

"언니, 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김정민은 억울함이 잔뜩 묻어나는 말투로 말했다. "난 이제야 내 자리를 찾았고, 그동안 받지 못했던 부모님의 사랑을 받은 것뿐인데, 언니는 내가 이 집에 온 순간부터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어. 언니가 나를 괴롭힐 때도, 난 끝까지 모른 척했었는데. 내 다리는... 어떻게 이럴 수 있어? 내가 무용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면서 어떻게... 언니도 국내 대회에 참가하는 줄 알았다면, 난 대회에 참가하지 않았을 거야."

김정민은 김예교가 질투심을 이기지 못해 그녀를 계단에서 밀었다고 암시하고 있었다.

김정민의 친모 황진영은 김정민의 말을 굳게 믿었고, 경멸에 찬 목소리로 비아냥거렸다. "정민아, 넌 쟤가 아무리 노력해도 따라올 수 없을 만큼의 재능을 갖고 있지. 그러니 그 자리도 반드시 네 자리가 될 거야. 김예교 넌 지금 당장 짐 챙기고 우리 집에서 나가!" 황진영이 김예교를 삿대질하며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김예교의 침울한 표정은 김씨 부부의 미움만 살 뿐이었다.

반면에 온순하고 애교가 많으며 무용에 재능이 넘쳐나는 김정민은 반짝반짝 빛나는 보석과도 같았다. 이렇게 훌륭한 애야말로 자신의 딸일 수 있었다.

그때, 줄곧 침묵을 지키고 있던 김진웅이 실망 가득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김예교. 소문이 잠잠해질 때까지 네가 이 집에서 지낼 수 있게 도와주려 했으나, 지금 넌 정민이를 원망하고 괴롭힐 생각만 하는구나. 이제 우린 널 낳아준 부모에게 보내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은 없는 것 같구나."

김진웅이 김예교를 저택에서 내쫓겠다는 말을 들은 김정민의 두 눈이 승리의 빛으로 반짝였다.

곧바로 다락방에 올라가 짐을 챙기는 김예교는 감정을 읽어내기 어려울 정도로 담담한 표정이었다.

김예교가 한참이 지나도 내려오지 않는 것을 본 김정민은 불안감만 커져갔다. "방에 있는 모든 물건을 챙겨 가려는 건 아니겠죠?"

김씨 가문의 모든 재산은 그녀의 것인데, 절대 다른 년이 가져가는 걸 용납할 수 없었다.

마침내 김예교가 다시 계단에 나타났고, 천천히 아래층으로 내려오는 그녀의 등에는 검은색의 작은 가방을 메고 있었다. 김예교가 차갑게 식은 눈빛으로 거실을 둘러보자 김진웅은 어색하게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황진영은 김예교의 등에 있는 작은 가방을 발견하고 눈살을 찌푸렸다. "짐은 그게 다니? 이렇게 오랫동안 뭘 챙긴 거야? 이리 가져와 보렴." 황진영은 의심 가득한 목소리로 요구했다.

그러나 김진웅이 빠르게 황진영을 제지했다. "내버려둬. 내가 준 카드만 챙겼겠지. 카드에 2천만 원밖에 없을 거야."

그러나 김예교는 당황하지 않고 가방을 테이블 위에 던지더니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그렇게 궁금하면 직접 확인해 보시던가요."

황진영은 코웃음을 치더니 가방 지퍼를 열며 중얼거렸다. "누가 알아. 값비싼 물건이라도 훔쳤는지..." 가방 곳곳을 뒤져봐도 공책 하나와 갖가지 씨앗, 현금 조금 외에는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심지어 카드 한 장도 없는 것을 본 황진영은 문득 얼굴이 뜨거워 났다.

"기사님한테 데려다 달라고 해." 이후 날카롭게 쏘아붙이고 몸을 돌렸다.

김진웅도 마음이 착잡해 났는지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 김예교에게 내미는 것이다. "예교야, 돌아가면 부모님 말씀 잘 들어야 한다. 평생 시골에서 지내온 사람들이라 순박하고 착한 사람들이다. 네가 부모님을 많이 도와야 한다."

담담한 눈빛으로 카드를 쳐다보는 김예교의 표정이 차분하기만 했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기가 감당해야 할 운명을 갖고 태어난다고 했어요." 김예교는 낮은 목소리로 말하며 카드를 김진웅 쪽으로 밀었다. "그러나 떠나기 전에 한 가지는 확실하게 해야겠어요. 김정민, 진실을 말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줄게. 계단에서 어떻게 넘어졌어?"

김정민은 김예교의 아무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눈빛이 제일 싫었다. 담담한 얼굴에 사람을 꿰뚫어 보는 눈빛은 마치 그녀가 남보다 한 수 위인 것처럼 보여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화가 치밀게 만들었다.

김예교는 분명 그녀의 신분을 뺏은 도둑년에 시골에서 평생 농사만 짓는 농부의 딸이었다!

"대체 무슨 말이야? 내가 일부러 계단에서 떨어졌다는 거야?" 김정민이 높은 소리로 되물었다. "춤을 추는 내게 다리는 목숨보다 소중한 건데, 어떻게 일부러 다리를 다치게 할 수 있겠어?" 김정민은 감정을 억제하지 못한 듯 펑펑 울더니 황진영의 품에 덥석 안기는 것이다.

"펑!"

바로 그때, 꽃병 하나가 거실을 가로질러 날아오더니 김정민의 서투른 연기를 방해했고, 화들짝 놀란 김정민은 그대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황진영과 김진웅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경악을 금치 못하고 김정민을 바라봤고, 순식간에 공기가 어색하게 가라앉았다.

다리 부상 때문에 일어설 수 없다고 한 김정민이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난 건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회차 2

곧바로 자신이 실수를 저질렀다는 것을 깨달은 김정민은 당장 소파에 주저앉더니 다리를 감싸 안고 고통스러운 듯 신음을 내뱉었다. "아, 내 다리. 너무 아파요!"

그러나 김진웅은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죄책감 가득한 눈빛으로 김예교를 바라봤다. "예교야, 정민이는 아직 한창 어린 나이라 철이 들지 않았어. 그러니 너무 원망하지 말거라..."

이렇듯 한 변명을 김예교는 신물이 나도록 들었다.

"물론이죠. 개한테 물렸다고 해서 저도 개를 물 순 없잖아요? 결국 개도 주인을 따라 배웠을 테니까요."

잔뜩 비아냥거리는 목소리와 비웃음이 어색한 침묵을 깨버렸다. 김예교가 가방을 등에 메고 단호하고도 힘이 넘치는 발걸음으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다.

거실에 남은 세 사람의 안색이 시퍼렇게 질려 있었다.

저택 내부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모르고 있는 기사는 무심한 태도로 차에 기대 김예교를 기다렸다. 김정민이 김씨 가문에 온 이후로 김예교는 모든 하인들의 눈 밖에 나기 시작했다. 누구도 양녀인 그녀를 아가씨로 대접하지 않았고, 운전기사조차 그녀를 무시했다.

김예교는 차에 기대선 기사를 보지 못한 듯 빠른 걸음으로 앞으로 나아갔다.

기사는 그제야 조급해 난 듯 그녀를 뒤따라오며 소리쳤다. "아가씨, 어르신께서 아가씨를 목적지까지 데려다 주라고 했습니다."

자리에 멈춰 선 김예교가 쌀쌀맞은 목소리로 답했다. "필요 없어요, 이제 저는 김씨 가문과 아무 상관없는 사람이니까요."

차갑게 말을 뱉은 김예교는 택시에 올라타 김진웅이 그녀에게 보내준 주소를 기사에게 보여줬다.

목적지에 도착한 그녀가 택시에서 내리자 그동안 지냈던 호화스러운 저택과는 거리가 먼 초라하고 낯선 시골 풍경을 보게 되었다.

김예교가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집 앞에 도착하자, 안에서 서러운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천천히 발걸음을 옮긴 그녀가 안으로 들어가자 집 안에는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한눈에 봐도 값비싼 정장을 입은 남자가 경호원들에게 둘러싸여 있었고, 소박한 차림의 부부가 남자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김예교가 어쩔 바를 몰라 자리에 가만히 멈춰 서 있을 때, 정장을 입은 남자가 그녀를 돌아보더니 눈시울이 빨개진 모습으로 달려와 그녀를 품에 안는 것이다.

"딸아, 네가 맞았구나. 네가 아직까지 살아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아."

덩치가 큰 남자가 흐느끼는 목소리로 하는 말을 들은 김예교는 의문 가득한 표정이었다.

이 남자는 대체 누구일까? 왜 그녀를 딸이라고 부르는 걸까?

자신을 돌아보는 시골 부부의 눈시울도 빨개진 것을 본 김예교가 참지 못하고 물었다. "어머니, 아버지. 무슨 상황이에요?"

소박한 차림의 남자가 깊은 한숨을 내쉬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예교야. 우린 네 친 부모가 아니다. 정민은 김씨 가문의 딸이 맞지만, 너는 우리 자식이 아니란다. 우리 아기는 태어나자마자 세상을 떠났어.

"이 분이야말로... 네 친아버지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정장을 입은 남자를 바라본 김예교는 그제야 자신과 남자의 미간이 똑같게 생겼다는 것을 발견했다.

가방에서 유전자 검사 결과를 꺼내는 남자의 손이 작게 떨리더니 감정이 북받쳤다. "예교야, 널 처음 병원에서 봤을 때 익숙한 느낌에 강한 끌림을 느꼈단다. 얼마 후 김씨 가문에서 진짜 딸을 찾았다는 소식을 듣고, 혹시 병원에서 우리 아이도 바뀐 건 아닌지 의심이 들었어. 이후 모든 방법을 동원해 유전자 검사를 진행했고, 네가 우리 딸이라는 결과가 나왔어. 넌 내 딸이야!"

김예교가 검사 결과를 확인하자 하단에는 남자의 말대로 유전자가 일치 하다는 검사 결과가 적혀 있었다.

그러나 검사 결과를 확인해 볼 필요도 없이, 두 사람의 똑같은 미간만 봐도 피를 나눈 사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었다.

김예교는 머리가 혼란스러운 느낌에 순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녀에게 있어 그야말로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일이 일어난 것이다. 친부모를 찾았다고 생각했는데, 또 다른 친부모가 나타날 줄이야.

그때, 남자가 다정한 목소리로 타일렀다. "지금 당장은 받아들이기 힘들겠지. 그러나 진실이 이러하니 받아들일 수밖에 없어. 네가 태어난 날, 간호사의 실수로 인해 세 가족의 삶이 복잡하게 얽히게 되었지. 이들 부부의 아이는 사산되어 우리 품에 왔고, 너는 김씨 가문에 보내졌고, 김정민은 이들 부부와 함께 지냈어."

"나와 네 엄마는 네가 태어나자마자 죽은 줄 알았는데." 남자는 진심 어린 눈빛으로 차근차근 설명했다. "네 엄마가 그동안 얼마나 자책하고 힘들어했는지 모른다. 지금 호텔에서 네가 오기만 애타게 기다리고 있어."

남자의 진심 어린 눈빛과 마음에 김예교의 마음이 조금씩 흔들렸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 그녀가 소박한 차림의 부부를 돌아봤다.

정장을 입은 남자가 더욱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 모든 게 병원의 실수로 일어난 사고다. 저들도 이번 사건의 피해자니 그동안의 피해에 대해 보상하려 한다."

그러자 남자가 연신 손을 저으며 답했다. "저희는 아무 보상도 필요 없습니다. 그저 진실을 알게 된 것만으로 충분합니다."

농부의 목소리에 피곤함이 잔뜩 묻어났지만 모든 것을 놓아버린 듯 탄연하게 들려왔다. 그들 부부는 비록 가진 건 많지 않지만, 온 정성을 다해 애지중지 김정민을 키워왔다. 그러나 김정민은 친부모와 함께 돌아간 후 모든 연락을 끊고 전화도 받지 않았다.

"어서 돌아가십시오. 한 가족이 돌고 돌아 겨우 힘들게 만났는데, 이곳에서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죠." 농부는 초연한 얼굴에 슬픔이 가득 묻어난 표정으로 김예교와 남자를 대문으로 안내했다.

김예교는 정장을 입은 남자와 경호원들과 함께 고급 세단인 롤스로이스 앞에 도착했다.

허름한 집 앞에 세워진 고급 세단은 고즈넉한 시골과 조금도 어울리지 않았다.

"예교야, 난 네 아버지고 강철호라고 한다. 이제부터 내가 널 지켜줄 것이다. 필요한 게 있다면 주저하지 말고 아버지한테 말하거라." 남자의 다정한 목소리가 힘 있게 들려왔다.

강철호가 강성 제일 그룹인 강씨 그룹 회장이라는 것을 떠올린 강예교는 새 가족도 어마어마한 부자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강예교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애픈로 호텔은 강성에서 제일 화려한 호텔이었다.

신상 사넬 원피스를 곱게 차려 입은 김정민은 김씨 부부와 함께 호텔 로비에 들어섰다.

며칠 전 황진영은 무용 협회 부회장이자 이번 대회 심사위원인 강미연이 강성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황진영은 이번 기회를 놓치려 하지 않았다. 만약 김정민이 강미연의 레슨을 받으면 이번 대회에서 쉽게 우승을 차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식을 접한 후, 황진영은 제일 좋은 옷을 골라 김정민에게 입히고 호텔로 향했다. 두 사람은 호텔에 들어서자마자 만난 사람을 보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바로 1층 로비 건너편에 서 있는 강예교를 발견한 것이다. 청바지에 간단한 티셔츠를 걸쳐 입은 그녀의 예쁘장한 얼굴은 모든 사람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녀의 곁에는 값비싼 정장을 차려 입은 남자가 서 있었고, 황진영은 기둥에 가려진 남자의 얼굴을 똑바로 보지 못했다.

"김예교? 쟤가 왜 여기에 있는 거지?" 황진영은 의문 가득한 목소리로 낮게 중얼거렸다.

회차 3

"강미연 선생님이 이곳에 왔다는 소식이 벌써 새어나갔나 봐요." 김정민이 순진무구한 표정에 호기심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언니도 강미연 선생님의 학생이 되고 싶은 걸까요? 강미연 선생님은 언니가 우리 집에서 쫓겨났다는 사실을 모르니, 우리 두 사람 모두 그 분의 학생이 될 수 있을 거예요!"

김정민이 하는 말을 들은 황진영의 안색이 확연히 굳어져 있었다.

강예교가 강미연을 먼저 만날까 봐 두려웠던 황진영이 그녀 앞길을 막으려 했으나, 그녀가 호텔에서 제일 비싼 방인 에메랄드 방으로 향하는 것이다.

그 모습에 황진영은 적지 않게 당황했다. 지들이 왜 에메랄드 방으로 들어가는 걸까?

김정민도 적지 않게 놀란 얼굴로 물었다. "엄마 저 방은 아무나 함부로 들어갈 수 있는 방이 아니잖아요? 어쩌면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소식을 알고 있을지도 몰라요. 언니를 도와주는 친구가 참 대단한 것 같아요."

"제 딴은 친구는 무슨!" 황진영이 차갑게 쏘아붙였다. 가난함을 참지 못했던 강예교가 돈도 많고 나이도 많은 남자를 유혹해 지위를 높이려는 걸까?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김씨 가문에 큰 오점으로 남을 것이다.

생각만으로도 역겨웠지만, 그녀를 신경 쓸 시간은 없다는 것을 깨달은 황진영이 다급하게 강미연에게 전화를 걸었다.

"죄송해요. 급한 일이 생겨 오늘은 안 될 것 같네요." 황진영이 말을 꺼내기도 전에, 강미연의 쌀쌀맞은 목소리가 휴대폰 너머에서 들려오더니 통화가 끝났다.

들떴던 마음이 순식간에 가라앉은 김정민은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김진웅은 그런 김정민을 품에 꼭 끌어안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위로했다. "정민아, 더 좋은 기회가 생길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 다른 방법도 많으니까."

통화를 마친 강미연은 휴대폰을 옆자리에 내려놓았다.

그녀의 오빠인 강철호가 잃어버린 딸을 찾았다는 소식을 듣고 가족 모임을 연 것이다.

강미연의 곁에 우아한 자태로 앉은 강아름이 말했다. "지난 몇 년 동안 언니는 가족의 사랑도 받지 못하고,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눈에 띄는 외모와 정교한 메이크업에 고급 원피스를 입은 강아름은 재벌 집 아가씨 기세를 온몸으로 풍겼지만, 찌푸려진 미간 사이로 걱정스러운 기색이 가득 풍겨났다.

강미연은 잠깐 생각에 잠기더니 입을 열었다. "양부모가 잘 대해줬다고 했으니 어려움 없이 지냈을 거야."

강아름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진지하게 말했다. "저희도 언니를 따뜻하게 맞이해주는 게 좋겠어요."

강미연은 대견한 눈빛으로 강아름을 바라보더니 다정하게 머리를 쓰다듬었다.

강아름은 강씨 가문에 입양된 아이였다. 강예교가 강씨 가문에 돌아온다는 소식을 들은 후에도 거부감이 없어 보였고, 언니에게 모든 사랑을 빼앗길까 봐 걱정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단아한 개량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이슬청의 기대에 가득 찬 눈빛은 줄곧 방문에 고정되어 있었다.

이것을 본 강아름의 마음속에 불안감이 서서히 스며들었다.

드디어 방문이 열리고 나타난 운전기사가 빠르게 옆으로 몸을 비켰다.

뒤이어 강아름과 비슷한 또래의 여자가 들어왔다. 수수한 차림에도 화려한 얼굴은 감춰지지 않았다. 차분한 표정은 이슬청과 너무 닮아 있어 한눈에 봐도 이슬청의 딸이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었다.

그 광경에 강아름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공허함을 느꼈다.

이슬청은 더 이상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고 앞으로 달려갔다.

"내 딸." 강예교를 품에 안은 그녀는 감정에 북받쳐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뜨거운 환대에 어찌할 바를 몰라 자리에 멍하니 선 강예교는 천천히 손을 들어 이슬청의 등을 가볍게 두드렸다.

그녀의 가슴 깊숙한 곳에서부터 처음 느껴보는 따스한 감정이 서서히 피어 올랐다.

사랑하는 가족이 곁에 있다면 이런 기분일까...

"예교 놀라겠어. 일단 자리에 앉자고." 뒤이어 강철호가 이슬청을 달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슬청은 목소리를 최대한 가다듬으려고 애를 쓰며 강예교 옆에 꼭 붙어 앉았다. "예교야, 너를 찾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구나. 우리가 미안해.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을까..."

"저는... 잘 지냈어요. 괜찮아요." 이슬청의 두 볼을 타고 흐른 눈물이 강예교의 손등에 떨어지자 그녀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진심 어린 모습에 감동한 그녀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이슬청을 위로했다. "어머니,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이렇게 다시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잖아요."

'어머니'라는 호칭에 이슬청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다. "그래. 사랑하는 내 딸. 그동안 못해준 것들도 모두 보상해주마."

두 사람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은 강철호가 열망 가득한 눈빛으로 강예교를 바라봤다. 뜨거운 시선에 강예교는 입술을 달싹거렸다. "... 아버지."

"그래. 우리 딸." 보기 드물게 환한 미소를 지은 강철호의 얼굴에 행복감이 그대로 나타났다. "이제 우리 가족을 소개할게. 여긴 네 고모 강미연이야."

강미연은 강예교를 위아래로 훑으며 가볍게 인사를 건넸고, 김예교는 공손하게 허리까지 굽혀 인사했다.

다음은, 강아름.

강아름은 먼저 강예교에게 말을 걸며 밝게 웃어 보였다. "언니가 오기만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몰라요. 저도 이제 언니가 생겼다고 사람들한테 자랑할 수 있겠네요!"

이슬청이 주저하는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아름은 네 아빠 절친의 딸이야. 아름이 어렸을 때, 두 사람은 사고로 일찍 세상을 떠났고 우리가 불쌍하게 여기고 키워줬단다. 만약 네가 불편하다면..."

"저는 괜찮아요." 강예교는 이슬청의 말뜻을 바로 알아차리고 담담하게 답했다.

"그리고 위로 오빠가 세 명 있는데, 지금 집에 없으니 천천히 소개해 줄게." 강예교가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을 본 이슬청은 마음이 따스해 나는 것을 느끼며 환하게 웃었다.

강철호가 휴대폰을 강예교에게 내밀며 말했다. "예교야, 그동안 고생 많았어. 연락처 교환부터 하는 게 좋겠어."

이슬청도 빠르게 휴대폰을 내밀며 말했다. "엄마 휴대폰에도 찍어줘."

강예교가 두 사람의 휴대폰에 전화번호를 입력하자, 곧바로 메시지 알림이 두 개 도착했다. 강철호와 이슬청이 동시에 그녀의 계좌에 20억 원씩 입금했다는 알림이었다.

강철호는 싱긋 웃으며 태연하게 말했다. "아빠가 너에게 주는 용돈이다. 모자라면 언제든지 말해."

이슬청도 뒤질세라 입을 열었다. "엄마가 널 위해 방을 꾸미고 옷장을 가득 채워났어. 집에 돌아가면 하나씩 입어 봐."

강예교는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환대가 낯설었지만, 마음까지 따뜻해지는 기분이 싫지 않았다.

그녀뿐만 아니라 강아름 역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방금 만난 강예교에게 용돈이라며 20억을 준 것이다. 한 달 용돈이 고작 2000만 원밖에 되지 않는 그녀와 확연히 비교되었다.

자신은 입양아이고, 강예교는 친딸이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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