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2

"임서현, 너 뭐 하는 거야? 빨리 우리 엄마를 놓지 못해?"

조영아가 불만스럽게 말했다.

"우리 엄마가 너희를 착한 마음으로 보살펴주지 않았다면, 너희는 벌써 죽었을 거야. 게다가 넌 밖에서 몇 년 동안 일하느라 집으로 돌아오지도 않았잖아. 혹시 밖에서 임신해서 아이까지 낳은 거 아니야? 더러워 죽겠어...."

조영아는 그녀를 비웃었다. 하지만 속으로는 임서현이 돌아왔으니 앞으로 자기들을 돌볼 사람이 둘이나 생겼다고 생각하니 어쩌면 그것도 나쁘지 않을 지도 모른 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다음 순간, 임서현이 성큼 앞으로 다가오더니 힘껏 식탁을 걷어 찼다.

쾅.

임서현의 발차기에 식탁 위의 음식들이 바닥에 쏟아져 엉망진창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임서현은 거기에 그치지 않고 손에 잡히는 대로 꽃병을 집어 들더니 조영아와 고모부의 머리에 휘둘렀다.

"으악!"

둔 탁한 파열음과 함께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고 둘은 피를 철철 흘리며 몸을 떨었다.

"하루 시간 줄 테니까 당장 내 집에서 꺼져."

마치 차가운 서리가 내린 듯한 임서현의 목소리는 지옥에서 들려 오는 메아리 같았다.

말을 마친 그녀는 곧장 몸을 돌려 임서윤을 안아 들고 집을 뛰쳐나가 차를 타고 병원으로 향했다.

저택은 울음 소리, 비명소리로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엄마, 그 미친 년이 감히 날 때렸어. 나 얼굴이 베었다고, 설마 못난이가 되어 버리는 건 아니지?"

조영아는 거울을 보며 울며 화를 내며 소리쳤다.

임수연 역시 치밀어 오르는 화를 주체할 수 없었다.

"저 망할 년이. 몇 년 밖에 있다 오더니 아주 간이 배 밖으로 나온 모양이다. 이제 감히 집으로 다시 돌아온다면 제대로 혼내줄 거야. 우린 이제 예전의 우리가 아니야. 지금 우리 회사는 노스 그룹과도 협력하고 있는데, 어떻게 저 딴 계집애 하나를 무서워하겠어?"

말을 마치고, 임수연은 딸을 안쓰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영아야, 걱정하지 마. 엄마랑 같이 병원에 가자."

병원.

"다리는 부러진 지 오래됐고, 온몸에 성한 곳이 없어요, 이도 몇 개 빠져 있고요. 도대체 그 동안 언니 노릇을 어떻게 한 겁니까?"

그동안 별별 환자를 다 본 의사였지만, 그는 임서윤의 모습에 여전히 크게 충격을 받았다.

그때, 임서현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제 잘못입니다."

앞머리가 그녀의 얼굴을 가리고 있어 그녀의 감정을 읽어 낼 수 없었다.

하지만 의사는 예의 바르고 철이 든 듯한 임서현의 모습에 더 이상 심하게 나무랄 수 없었다.

"상처는 이미 제가 붕대로 감아 두었어요. 만약 누군가가 당신들을 괴롭혔던 거라면 반드시 경찰에 신고해야 합니다."

그 말에 임서현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임서윤의 병상으로 다가갔다.

열아홉 살의 소녀라기엔 몸집이 너무 왜소했다.

게다가 손목은 어찌나 가는지 마치 조금만 비틀어도 부러질 듯 했고 단발머리는 잡초처럼 메말라 있었고, 아무렇게나 자른 듯한 머리카락은 보기가 흉했다.

임서현은 천천히 이불을 젖혔다.

소녀의 피부에는 채찍 자국과 상처가 가득했고,

심지어 담뱃불로 지진 걸로 보이는 흉터까지 남아 있었다.

그 모습에 임서현은 더 이상 폭발하듯 터져 나오는 살기를 누를 수 없었고 눈가에는 이미 눈물이 흘러 내렸다.

"언니..."

그때, 침대 위에 누워있던 임서윤이 낮게 중얼거렸다.

임서현은 곧장 그녀의 손을 움켜쥐었다.

"언니 여기 있어."

"언니, 나... 너무 보고 싶었어."

임서윤은 쉬고 갈라진 목소리로 낮게 속삭였다.

임서현은 그녀의 손을 꽉 잡은 채 눈물을 주룩주룩 흘렸다.

"미안해, 서윤아. 난 내가 열심히 일하면 네가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 언니가 잘못했어. 이제 다시는 널 떠나지 않을 거야."

임서현의 따스함을 느낀 듯, 임서윤의 찡그렸던 미간이 점차 풀어졌다.

잠시 후, 임서윤이 안정을 되찾자 임서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병원 데스크로 향했다.

"비용은 이미 납부되었습니다."

데스크 직원의 말에 임서현은 눈살을 찌푸렸다.

'누구지? 혹시 도정문? 아니야. 그가 아직 이 일을 알 리가 없어.'

"혹시 누가 낸 지불 한 건지 확인해 주실 수 있을까요?"

임서현이 물었다.

"죄송하지만 저희에겐 그럴 권한이 없어요. 아마도 가족 분이 아닐까요? 가족 분한테 물어보세요."

가족이라는 두 글자에 임서현의 얼굴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녀는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직접 알아보기로 했다.

병원 복도, 임수연은 막 치료를 끝낸 조영아를 데리고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난 절때 그년을 용서하지 않을 거야."

조영아는 이를 갈며 분노했다.

"걱정하지 마. 임서현이 편하게 살 날도 얼마 안 남았어. 그리고 너도 좀 진정해. 얼굴 상처가 다시 벌어지면 안 되잖아."

임수연은 딸을 몹시 걱정하고 있었다.

"너도 네 언니에게서 좀 배워. 너무 욱하지 말고."

머릿속에 언니의 모습을 떠올리자,

조영아의 얼굴에는 득의양양한 기색이 비쳤다.

"엄마, 언니만 잘나가면 되는 거야. 언니는 지금 강성 무용단의 가장 어린 무용수잖아. 임서윤 그 멍청한 년이 감히 언니랑 경쟁을 하다니, 다리가 부러진 건 자업자득인 거지. 언니는 내가 괴롭힘 당한 걸 알면 분명히 속상해 할 걸?"

"지금은 네 언니한테 있어서 중요한 시기니까, 언니한테는 당분간 말하지 마."

임수연은 조영아의 코 끝을 살짝 건드렸다. 그러다 문득 고개를 들자 임서현의 뒷모습이 눈에 띄었다.

조영아 역시 그녀를 발견했고

순간, 얼굴의 상처가 떠오른 조영아는 손에 쥔 백을 힘껏 임서현을 향해 휘둘렀다.

징이 가득 박혀있는 백이었고 그녀가 있는 힘껏 휘두른 바람에 스치기만 해도 상처가 날게 분명했다.

잠자코 복도를 걷던 임서현은 뒤에서 기척이 느껴지자 즉시 반격을 할 준비를 마쳤다.

하지만 그녀가 고개를 돌리던 그 순간, 눈앞에 훤칠한 몸매의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큰 키, 넓은 어깨, 떡 벌어진 등판. 그는 손을 뻗어 가방 끈을 낚아 채더니 힘껏 끌어 당겼다.

"으악."

그탓에 조영아는 그대로 바닥에 나동그라지며 비명을 질렀다.

회차 3

"영아야!"

임수연은 가슴 아파 어쩔 줄 몰라 하며 급히 조영아를 부축했다. 그러더니 불쑥 나타난 남자를 향해 분노에 찬 눈빛을 보냈다.

"너 누구야? 설마 임서현의 남자 친구야?"

남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깊고 날카로운 그의 눈매에서는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심해처럼, 죽은 듯 고요하고 위험한 기색을 내뿜을 뿐이었다.

그는 임수연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갔다. 가죽 구두가 바닥을 밟을 때마다 묵직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순간, 임수연은 마치 누군가가 심장을 쥐어짜는 것처럼 숨조차 쉴 수 없었다.

'저 남자, 절대 만만치 않아.'

"임서현, 집에 돌아오고 싶으면 당장 우리한테 사과해. 그렇지 않으면, 우리 집은 너희 같은 고아를 다시는 받아주지 않을 거니까."

임수연은 날 선 말을 남긴 채 조영아를 데리고 자리를 떠났다.

'받아주지 않을 거라고? 흥. 그 저택은 애초부터 내 집이었어.'

불현듯, 남자의 허리춤에서 언뜻 보이는 권총을 발견한 임서현의 눈빛이 매서워졌다.

'이 남자, 대체 정체가 뭘까?'

그때, 남자가 그녀를 향해 돌아섰고 임서현은 마침내 그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잘생긴 얼굴, 날렵한 턱선과 이목구비, 차가운 분위기가 인상적이었고 그의 차가운 얼굴에서는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주변에 감도는 기운은, 그녀도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공포와 위험 그 자체였다.

'어쩐지 임수연이 그렇게 줄행랑을 치더라니.'

"임서현."

남자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낮고 듣기 좋은 목소리였지만 뼛속까지 파고드는 차가움이 서려 있었다.

임서현은 그를 바라보았다.

"당신이... 제 동생의 병원비를 대신 내준 건가요?"

"똑똑하군." 남자는 여전히 차가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짐 챙겨. 우리 집으로 가자."

그 말에 임서현은 미간을 찌푸렸다.

'이게 대체 무슨 황당한 소리야?'

바로 그때, 옆에 있던 한 남자가 다가와 설명하기 시작했다. "임서현 씨. 반갑습니다. 이분은 저희 주시우 도련님이십니다. 도련님의 아버지와 아가씨 아버지는 전우 사이셨습니다. 주 어른께서 돌아가시기 전, 도련님에게 꼭 아가씨 자매를 잘 돌보라고 신신당부하셨습니다. 도련님께서는 얼마 전까지 군대에 계셨다가 이제야 민간인으로 돌아 온 거라 드디어 두 분을 찾게 된 겁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무시무시한 기운을 내뿜고 있었던 거구나.'

임서현은 느낄 수 있었다. 비록 그는 차갑고 냉혹하지만, 자신에게 악의는 없음을 말이다.

임서현이 담담하게 물었다.

"당신 아버지랑 제 아버지가 전우라는 걸 증명할 수 있는 증거가 있나요?"

주시우는 사진 한 장을 꺼내 보여주었다.

사진은 전장에서 찍힌 듯 배경이 황량하기 그지없었다.

임서현의 아버지 옆에는 낯선 남자가 있었는데, 그 낯선 남자의 눈매가 눈앞의 남자와 많이 닮아 있었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요."

임서현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좋아. 그럼 연락처부터 교환하지."

주시우는 말을 아꼈다.

임서현은 그의 연락처를 추가하고 보니 주시우의 프로필 사진은 그저 새까만 색으로만 되어 있었다.

마침 임서현의 프로필 사진과 꼭 같았다.

순간, 왠지 모르게 묘하게 기분이 이상했다.

잠시 후, 주시우의 비서인 이민준도 임서현의 연락처를 추가했다.

"임서현 씨. 저는 도련님의 비서 이민준이라고 합니다. 필요할 때 언제든 저를 찾으셔도 좋습니다."

"네."

임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이 멀어져 가자 임서현은 그제야 임서윤의 병실로 돌아왔다.

잠시 후, 병실 문 앞에 건장한 두 명의 경호원들 서 있는 걸 발견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그 남자가 보낸 이들임을 알 수 있었다.

한편, 임서현은 직접 동생의 옷을 갈아 입히고 머리를 감겨 주었다.

그러자 거칠고 메마른 머리카락이 조금은 부드러워졌다.

임서윤의 몸 곳곳에 남은 상처 자국과 담뱃불로 지진 흔적을 보는 순간, 임서현의 눈가가 또다시 붉어졌다.

그녀는 참고 또 참았다.

그렇게 감정을 억누른 다음 임서윤에게 자신이 개발한 약을 발라주고, 곧바로 노트북을 열었다.

자신이 떠난 이 몇 년 동안, 동생이 무슨 일을 겪었는지 그녀는 반드시 알아내야 했다.

임서현은 저택 구역의 감시 카메라에 접속했다. 화면 속 장면이 눈에 들어오자, 임서현의 몸은 점점 굳어지기 시작했다.

그녀가 떠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임서윤은 방에서 쫓겨나 마당에 있는 개 집에서 지내는 신세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한때 햇살처럼 밝던 동생의 얼굴에선, 더 이상 웃음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그녀가 알바를 시작했을 땐, 직장에서 성희롱을 당했었고

열심히 공부를 해 명문대학에 입학했지만 첫 학기가 시작되기 바쁘게 다리가 부러지고 말았다.

무용수였던 임서윤은 골절상을 입은 바람에 더 이상 제대로 춤을 출 수 없었다.

조영아에겐 조이현이라는 이름의 언니가 있었다. 그리고 조이현과 임서윤은 같은 반이었기에 임서현은 동생이 사고를 당한 게 조이현과 연관이 있을 것이라는 의심을 지울 수 없었다.

그 후, 홀로 집에 남아 있던 임서윤은 매일 하녀처럼 허드렛일을 해야 했고, 개 집에서 지내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거의 짐승 보다 못한 삶을 살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임서윤은 매번 그녀에게 이렇게 문자를 보내곤 했다.

'언니, 걱정 마. 나 잘 지내. 언니도 거기서 잘 지내야 해.'

그 순간, 임서현의 눈앞이 뿌옇게 흐려졌다.

임서윤은 그렇게 비참하게 살고 있는 반면 고모인 임수연은 MK 그룹과의 협력으로 회사를 점점 키워갔었다.

중학교를 중퇴했던 사촌여동생은 인기 인플루언서가 되었고 조이현은 무용학원에서 이름을 날리게 되었다.

게다가 임수연은 상류층 모임에 드나들기 시작했고 고모부 역시 재계의 주목을 받는 인물이 되었다.

'쾅!'

임서현은 있는 힘껏 책상을 내리쳤다. 통증은 없었지만 후회가 파도처럼 밀려 왔다.

'내가 서윤이에게 조금만 신경을 더 썼어도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거야.' 내가 그 동안 피땀을 쏟으며 쌓아온 모든 노력들이 그저 고모를 위한 것이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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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왕이 가면을 벗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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