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1
내 운명의 상대와 각인하는 날, 나는 은송 팩의 베타인 강태준과 함께 서 있었다. 모두가 강력한 알파 킹의 날카로운 시선 아래 우리를 주목했다.
하지만 각인식이 시작되려는 순간, 태준은 제단에 선 나를 버리고 도망쳤다. 그가 거둬들인 연약한 로그, 유마리라는 여자를 위해 숲속으로 달려간 것이다.
그는 나를 혼자 남겨두고 이 모든 굴욕을 감당하게 했다. 그때,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리더십 채널에 공개 메시지가 울려 퍼졌다. 태준이었다. 마리가 자살을 시도해서 곁을 떠날 수 없다는 변명이었다.
심지어 그는 이 ‘소란’에 대해 내게 대신 알파 킹에게 사과하라고 명령하는 뻔뻔함까지 보였다.
6년 동안 사랑했고, 바로 어젯밤 영원을 약속했던 남자가 거짓말 한마디에 내 명예를 팔아넘겼다. 그는 나를 대륙 전체의 웃음거리로 만들었다.
그날 밤, 인간들의 바에서 슬픔을 술로 달래던 나는 우연히 알파 킹과 마주쳤다. 위스키와 찢어지는 심장에 취한 나는 무모한 제안을 던졌다.
“그는 이제 날 원하지 않아요.” 나는 혀 꼬부라진 소리로 말했다. “알파, 오늘 밤 저를 원하세요?”
놀랍게도 그는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의 품에서 나는 충격적인 진실을 발견했다. 내 전 약혼자의 삼촌인 알파 킹이 바로 내 운명의 상대라는 것을. 나의 복수는 이제 막 시작되었다.
제1화
서엘리 POV:
어깨를 짓누르는 각인식 드레스가 무거웠다. 은실 하나하나가 나를 끌어내리는 족쇄 같았다.
나는 은송 팩의 신성한 땅, 휘영청 밝은 보름달의 시선 아래 서 있었다. 오늘 밤, 나는 우리 팩의 베타인 강태준의 반려가 될 예정이었다. 우리의 결합은 우리 팩뿐만 아니라, 우리 위의 절대자인 적월 팩의 감시 아래 치러지는 성대한 행사였다.
그들의 알파 킹, 권도혁은 공터 가장자리에 놓인 조각된 왕좌에 앉아 있었다. 그의 존재감은 공기마저 무겁게 만드는 침묵의 압력이었다.
태준은 내 옆에 서 있었지만, 그의 정신은 딴 데 팔려 있었다. 그의 눈은 초점이 없었고, 허공을 맴돌았다. 모든 늑대인간이 공유하는 텔레파시, 마인드 링크의 미세한 울림이 느껴졌다. 달의 여신이 내린 선물, 머릿속의 사적인 통신선. 그는 누군가와 대화하고 있었고, 그 상대는 내가 아니었다.
“태준아.” 나뭇잎 스치는 소리보다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원로님께서 곧 시작하실 거야. 여신님께 예의를 보여줘.”
그가 움찔하며 마침내 내게 시선을 돌렸다. 그 눈에는 사랑이 아닌, 공포만이 가득했다. 이윽고 그의 목소리가 차갑고 다급하게 내 머릿속을 파고들었다.
*마리가 위험해. 가봐야겠어. 30분만 줘.*
피가 차갑게 식었다. 마리. 그가 거둬들인, 크고 순종적인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던 연약한 로그 늑대.
내가 그 말을 이해하기도 전에, 그는 움직였다.
“강태준 베타, 어디 가시는 겁니까?” 한 원로가 날카롭게 외쳤다.
“가봐야 합니다!” 태준의 목소리는 크고 긴장되어 있었다. 그는 나를, 그 누구도 보지 않고 오직 공터 너머의 어두운 숲만을 바라봤다.
“태준아, 안 돼!” 그의 팔을 잡으려 손을 뻗었지만, 그는 이미 멀어지고 있었다.
으르렁거리는 소리 반, 흐느낌 반의 소리와 함께 그는 늑대에게 몸을 내주었다. 뼈가 부서지고 재구성되는 소리가 공포에 질린 침묵 속에서 울려 퍼졌다. 순식간에 내 약혼자가 서 있던 자리에 거대한 갈색 늑대가 나타났다. 그는 죄책감 어린 시선으로 나를 한번 흘끗 본 뒤, 나무 사이로 사라졌다.
그는 떠났다.
두 팩의 앞에서, 알파 킹의 면전에서, 나를 내 각인식에 홀로 남겨두고.
심장이 갈비뼈를 미친 듯이 두드렸다. 우리가 수년간 가꿔온 사적인 마인드 링크로 그에게 말을 걸었다.
*태준아? 어디야? 무슨 일이야?*
침묵. 그는 링크를 끊어버렸다. 나를 완전히 차단한 것이다.
절망적인 생각이 머릿속을 할퀴었다. ‘그가 다른 여자 때문에 모두 앞에서 내게 망신을 줬어.’
그가 말한 30분은 영원처럼 길어졌다. 군중의 속삭임은 점점 커져, 나를 익사시킬 듯한 동정과 경멸의 파도가 되었다. 마침내, 새로운 메시지가 내 머릿속을 울렸다. 태준이었다. 하지만 사적인 링크가 아니었다. 그가 팩의 리더십 채널로 보낸 메시지였다. 내가 그의 약혼자라는 이유만으로 접속 권한이 있었던 채널. 알파 킹 또한 분명히 접속해 있을 채널.
그의 목소리는 차갑고, 무심했으며, 지독하게 굴욕적이었다.
*마리가 자살을 시도했다. 그녀 곁을 떠날 수 없다. 엘리, 네가 원로들과 알파 킹께 이 소란에 대해 내 대신 사과드리도록.*
그를 대신해서 사과하라고? 이 굴욕을 겪고도?
바로 어젯밤이 떠올랐다. 그는 나를 꼭 끌어안고 내 피부에 약속을 속삭였다. “넌 내 유일한 베타의 반려가 될 거야, 엘리. 영원히.”
거짓말. 전부 다.
나는 수많은 얼굴들을 바라보았다. 약한 오메가를 향한 동정과, 방금 공개적으로 버림받은 바보를 향한 경멸이 뒤섞인 표정들. 울지 않겠어. 저들에게 만족감을 주지 않을 거야.
속에서 휘몰아치는 폭풍을 잠재우지 못한 채 심호흡을 했다. 나는 드레스의 무거운 치맛자락을 그러쥐었다. 세상이 무너져 내리는 와중에도, 나는 원로들이 서 있는 높은 단상을 향해 흔들림 없는 걸음으로 혼자 걸어갔다.
목소리는 떨렸지만, 침묵에 잠긴 공터를 가로질러 선명하고 단호하게 울려 퍼졌다.
“강태준 베타와의 약혼은, 이 시간부로 파기합니다.”
회차 2
서엘리 POV:
군중 속에서 일제히 터져 나온 경악의 숨소리. 원로들이 혼란스럽게 질문을 외쳐댔지만, 나는 듣지 않았다. 나는 각인식에, 속삭임에, 알파 킹의 동정 어린 시선에 등을 돌리고 걸어 나왔다.
돌아오라는 외침을 무시하고 신성한 땅을 떠났다. 팩 멤버들을 근처 인간들의 도시로 데려다주는 차를 잡아탔다. 머릿속은 고통으로 하얗게 비어 있었다. 길 중간쯤 갔을 때, 차갑고 단단한 결심이 뱃속 깊은 곳에서 자리 잡았다.
“차 돌려주세요.” 나는 기사에게 말했다. “치유소로 가주세요.”
치유소는 팩의 병원이었다. 말린 약초와 소독약 냄새가 항상 배어 있는 곳. 나는 정문에서 멈추지 않았다. 분노로 격렬하게 뛰는 심장을 안고 곧장 뒤편의 개인 병실로 향했다.
마지막 병실에서 그녀를 찾았다. 유마리.
그녀는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있었다. 각인식이 끝나고 내가 갈아입을 예정이었던 것과 의심스러울 정도로 닮은 하얀 가운을 입고. 한쪽 손목에는 두꺼운 붕대가 감겨 있었지만, 피와 치유 약초의 역겨운 냄새가 여전히 공중에 떠다녔다.
나를 보자 그녀의 눈이 커졌다. 그 깊은 곳에서 공포, 혹은 승리감 같은 것이 스쳐 지나갔다. 그녀는 겁먹은 아이처럼 재빨리 태준의 등 뒤로 기어들어가 그의 팔을 붙잡았다.
태준은 처음엔 나를 눈치채지 못했다. 그는 문에 등을 보인 채 그녀를 돌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하지만 마리가 움츠러들자, 그의 고개가 휙 돌아갔다. 그의 몸이 굳어지고, 늑대가 즉시 표면으로 드러나 그녀를 나에게서 보호했다. 낮은 으르렁거림이 그의 가슴에서 울렸다.
“여기서 뭐 하는 거야?” 그가 으르렁거렸다.
나는 그를 무시했다. 내 시선은 차갑고 날카롭게 마리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죽어간다길래. 직접 보러 왔지. 로그들은 보기보다 질긴가 보네.”
마리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녀의 목소리는 가련하고 떨리는 속삭임이었다. “정말 미안해요… 태준 씨가 당신을 떠나게 할 생각은 아니었어요… 전 그냥… 그를 너무 사랑해서…”
말은 사과였지만, 어조는 완벽한 승리 선언이었다. 그녀는 과시하고 있었다. 그가 약속된 반려인 나 대신, 떠돌이인 자신을 선택했다는 것을.
내 안의 무언가가 끊어졌다.
완벽하고 순종적인 오메가로 살아온 세월, 그를 위해 자존심을 삼켜온 모든 순간이 분노의 불길 속에서 사라졌다. 나는 앞으로 달려들었다. 내 손이 그녀의 뺨을 후려치는 소리가 조용한 방 안을 갈랐다.
마리가 비명을 질렀다.
태준이 포효했다. 그건 인간의 소리가 아니었다. 순수하고 억제되지 않은 늑대의 분노였다.
“미쳤어!” 그가 고함치며, 잔인한 힘으로 나를 방 건너편으로 내던졌다.
회차 3
서엘리 POV:
내 등은 약초가 담긴 유리병으로 가득 찬 무거운 나무 캐비닛에 부딪혔다. 날카롭고 눈앞이 캄캄해지는 고통이 등골을 따라 폭발했다. 나 같은 오메가에게 베타의 힘은 압도적이었다. 나는 바닥에 쓰러졌고, 폐에서 공기가 빠져나갔다.
“누가 미친 건데?” 나는 몸부림치는 몸을 일으켜 세우며 헐떡였다. “너야! 정신 나간 건 너라고!”
내 목소리는 히스테릭한 비명으로 높아졌다. “넌 달의 여신 앞에서 내게 맹세했어! 넌 나를, 고작 오메가인 나를 혼자 남겨두고 알파 킹과 두 팩의 비웃음거리가 되게 했어!”
“언제부터 그렇게 제멋대로 굴었어?” 태준이 분노로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쏘아붙였다. “넌 이런 애가 아니었잖아!”
“이전엔 공개적으로 망신당한 적이 없었으니까!” 내가 소리쳤다.
“각인식은 다시 잡으면 돼!” 그가 이제는 손으로 흐느끼는 마리를 가리키며 격렬하게 주장했다. “내 평판은 지연 좀 돼도 괜찮아. 하지만 쟤 목숨은 아니라고! 내가 안 왔으면 죽었을 거야!”
나는 쓰라리고 부서진 웃음을 터뜨렸다. 그 소리는 절망으로 가득 찬 추한 소리였다. 로그의 값싼 속임수에 그는 완전히 넘어갔다. 그는 내 명예를 거짓말과 맞바꿨다.
그 순간, 그에 대한 마지막 사랑의 조각이 죽어버렸다. 그것은 내 가슴속에서 시들어 재가 되었다. 자신의 반려의 존엄성을 지켜주지 못하는 남자는 반려를 가질 자격이 없었다.
기묘한 평온이 나를 덮쳤다. 나는 등을 욱신거리는 고통을 무시하고 똑바로 섰다. 나는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얼음처럼 차갑고 평탄한 목소리로 말했다.
“강태준, 우리의 약혼은 공식적으로 파기야.”
나는 뒤돌아보지 않고 문을 향해 걸었다. 내 인생에서 단 1초도 그에게 더 주지 않을 것이다.
문가에 다다랐을 때, 마리의 역겨울 정도로 달콤한 목소리가 들렸다. “태준 씨, 가서 잡아줘요…”
그리고 그의 대답이 들려왔다. 오만과 경멸이 뚝뚝 떨어지는 목소리였다.
“내버려 둬. 어차피 오메가잖아. 며칠 안에 울면서 다시 돌아올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