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1
엄동철, 목운산장(暮雲山莊) 뒷산의 깊은 골짜기에는 눈이 수북이 쌓였다.
두 사람은 얇은 옷차림을 한 여인을 들고 산골짜기에 걸어가 그녀를 힘껏 내던졌다.
사마음(謝魔音)의 몸이 땅과 부딪치는 순간, 두 눈은 충격으로 인해 번쩍 떠졌고 오장육부가 몸 안에서 터지면서 반사적으로 몸이 살짝 접히며 피를 내뿜었다.
새하얀 눈밭은 순간 붉게 물들어 버렸다.
물 속에 빠져 질식할 듯한 공포감이 온몸을 휩쓸었고 부러진 뼈와 찢어진 살에서 전해오는 고통은 현실을 일깨워주듯 그녀를 자극하고 있었다.
사마음은 멍하니 눈앞의 흰 경치를 바라보았다.
내가 다시 태어났다.
사윤설(謝允雪)의 함정에 빠져 절름발이가 된 그 날로 돌아왔다니.
그 해, 사윤설이 돌아왔다. 상서부로 들어오는 순간, 모든 사람들의 관심이 그녀에게 집중되었다.
사상서 부부는 모든 일에서 다 사윤설을 우선시하였고 오라버니는 늘 언니에게 양보를 해야 된다고 일깨워주었다. 사윤설이 밖에서 떠도는 동안, 너무도 많은 고난을 겪었다면서...
그녀를 가장 아끼고 사랑했었던 약혼자조차, 눈에 사윤설밖에 담지 못하게 되었다.
사마음 역시 언니를 불쌍히 여겼었다. 하지만 그 결과, 그녀는 자신의 언니에게 당하여 이 엄동설한에 뒷산의 깊은 골짜기에 버려지면서 다리 한쪽까지 부러지게 된 것이었다.
사마음은 자욱한 하늘에서 눈꽃이 흩날리는 것을 바라보았다. 눈꽃은 홑옷을 입고 있는 그녀의 몸에 떨어졌고 온몸이 치가 떨리게 아팠다.
힘써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였지만 몸을 움직이는 것조차 할 수 없었다.
왜 하필 이 시간에...
설마, 또 지난 생처럼 밤 연회가 끝난 뒤까지 버텨야 가증스러운 사윤설이 날 주워가는 걸까?
"사마음!"
먼 곳에서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흐릿한 목소리는 점차 또렷해졌다.
사마음은 눈을 번쩍 뜨고 온갖 힘을 다하여 외쳤다. "저는 여기에 있습니다."
장화가 눈을 밟는 소리가 점점 더 가까워졌고 큰 그림자가 눈 앞을 가렸다. 사마음은 차갑고 준수한 얼굴을 가진 사내를 바라보았다. 그는 그윽한 눈빛으로 사마음을 바라보더니 코웃음을 쳤다.
"참으로 품위가 있군, 이리도 추운 날 심산유곡에 누워있다니..."
"만약 이때 딱 마침, 늑대 몇 마리가 지나가기라도 하면 시체를 거둘 필요도 없겠군."
조롱이 가득 담긴 말에 사마음은 눈시울이 붉어졌다.
전생에서도 이 사내는 똑같이 차갑고 조롱하는 듯한 말투로 그녀를 대했지만 결국은 그녀를 꽉 끌어안은 채, 수많은 화살에 찔려 눈밭에서 목숨을 잃었었다.
"이혁 오라버니, 너무 아픕니다..."
사마음은 흐느끼며 말했다.
이혁은 천자의 태부이자 추밀원의 정사로서 금군을 관리하는 인물이었다. 그는 어린 황제의 곁에 있는 가장 날카로운 무기였고 조정의 권력을 틀어쥐고 있었다.
그는 일 처리에 있어서 늘 무자비했고 조정의 모든 사람에게 간신으로 불렸지만 그녀에게만 특별하였다.
하지만 지난 생의 사마음은 사람을 보는 안목이 없었기에 간사한 자의 말을 믿어 이혁을 간신으로 대했고 결국 그를 죽게 만들었다.
"이제서야 아픈 줄 알겠느냐? 내가 고심하여 충고할 때에는 들은 체 만체하였으면서."
이혁은 차가운 말투로 입을 열었지만 바로 겉옷을 벗고 부드러운 손길로 그녀를 감싸 안았으면서 산골짜기 밖을 향해 걸어갔다.
사마음은 얌전히 그의 품 속에 안겨 있었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혁 오라버니, 송구합니다..."
"이제 와서 잘못을 인정하여도 소용 없다. 송씨 집안의 그 놈이 널 이리 만든 것은 내 기필코 청산할 것이다." 이혁은 거친 목소리로 말했다.
사마음은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그 빚들은, 제대로 청산해야지요..."
목운산장 문앞.
명문 집안의 공자와 아가씨들이 산장 안에서 걸어 나왔다. 그들은 삼삼오오 무리를 지었으며 웃음소리가 끊기지 않았다.
"이 숙산에서 아주 멋진 경치가 보인다는 소문은 진작에 들었습니다. 바로 저 산꼭대기에 있는 십리매림이지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모두 송씨 집안의 개인재산이어서 평소에는 올 기회가 없었습니다."
"오늘 이리 두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모두 윤설 아가씨의 덕분이지요."
"그렇지요. 윤설 아가씨의 초대가 없었더라면 둘째 공자님의 그 성질에 절대 저희를 가까이 들이지 않을 테니까 말입니다."
사람들은 분홍색 비단옷을 입고 있는 여인을 둘러싸고 웃으면서 말했다.
사윤설은 아무 말 하지 않고 그저 옅은 미소를 지으며 사람들의 아첨을 즐겼다.
"참."
한 여인이 갑자기 무언가를 떠올린 듯 입을 열었다. "산장의 사람들은 다 흩어졌는데 어찌 마음이가 보이지 않는 거지요?"
"어디 구석에서 홀로 삐지고 있겠지요."
다른 한 사람이 깔보는 듯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사윤설 아가씨께서 둘째 공자와 말을 몇 마디 더 나누셨다고 그리 악설을 퍼붓더니. 이제 와서 무슨 염치로 숨어 억울한 척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참으로 역겹기 그지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경멸하는 표정을 지었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거지?"
갑자기 청량한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인들은 모두 고개를 숙이고 인사를 올렸다. "둘째 공자님."
원안후작 댁의 둘째 공자 송승안은 청풍제월한 청년이었고 젊은 나이에 벌써 한림원의 편수(編修:중국에서 옛날 국사편찬에 종사하던 사관)를 맡게 되었기에 전도가 양양하였다.
"마침 마음이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저에게 화가 나서 어디로 갔는지도 모르겠네요."
사윤설은 입술을 깨물고 조금 흥분한 말투로 말을 이었다.
"안 되겠습니다, 아무래도 제가 찾으러 가야 하겠습니다! 이리도 추운 날에 계속 밖에 있다가 고뿔이라도 걸리면 안되니까요..."
송승안은 얼마 전, 사마음이 성질을 부리는 교만한 표정을 떠올리며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사윤설의 손을 붙잡고 따분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가기는 어디를 간다는 거지? 성질을 부리려거든 마음껏 부리라고 하거라!"
"전부 스스로 자초한 일이다. 밖에서 얼어 죽어도 싸지!"
송승안이 그 말을 마치자 주위의 공기는 한껏 싸늘해진 것 같았다.
뒤에서 누군가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가 얼어 죽어도 싸다고 하였소?"
그는 고개를 들자마자 몸집이 큰 남자가 한 여인을 꽁꽁 감싼 채, 그의 눈앞에 서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이 대인님?"
송승안은 깜짝 놀랐고 그가 품에 안은 여인이 누구인지 자세히 들여다 본 후, 순식간에 안색이 어두워졌다.
"사마음! 사람들이 보는 눈앞에서 다른 남자를 이리도 친근히 끌어안고 있다니. 네 눈에는 약혼자인 내가 보이지 않는 것이냐!"
"염치도 모르는군! 조금 전까지만 하여도 네 언니가 걱정하는 마음에 아픈 몸으로도 너를 찾으려 떠나려 하였는데 말이야!"
송승안은 매서운 눈빛으로 사마음을 째려보았다. 그는 당장 내려오라고 외치려 할 때, 그녀의 차가운 눈빛을 마주치게 되었다.
예전의 순진하고 억울한 눈빛과는 달리, 마치 다른 사람이라도 한 듯 차가웠다.
그는 잠시 멈칫하였다. 그때 사마음이 냉소하며 말했다. "사람이 죽게 생겼는데, 염치는 무슨 염치 말입니까?"
"그게 무슨 뜻이지?" 송승안은 막연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사윤설도 앞으로 나아가며 관심 어린 말투로 물었다. "그래, 마음아. 왜 그러는 것이냐? 밖에서 다치기라도 한 것이냐?"
사마음은 그 목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시선을 향했고 그 얼굴을 보게 된 순간, 눈에서 증오가 들끓어 올랐다.
"제가 왜 그러는 거냐고 물으셨습니까? 언니는 정녕 몰라서 물으시는 겁니까?"
사윤설은 마음이 덜컹 내려앉았다. 그녀는 사마음이 무슨 말을 할지 예상이라도 한 듯 그녀의 입을 막으려 하였다.
하지만 사마음보다는 한발 느렸다.
"제가 혼자가 된 틈을 타, 사람을 시켜 저를 기절시키셨지요. 그리고는 뒷산의 산골짜기에 저를 버리셔서 제가 이 꼴이 된 것 아닙니까!"
"그게 무슨 헛소리인가? 윤설이가 그리 지독한 일을 저지를 리가 없지 않은가?"
송승안은 미간을 찌푸리고 앞으로 나아갔다.
"그렇다면 제 온몸의 상처는 다 아무 까닭 없이 나타난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사마음은 손을 뻗어 겉옷을 걷어 올리고 뒤틀릴 정도로 붉게 부어 오른 발목을 내밀었다.
보기만 해도 소름이 돋았다.
"당신..." 송승안은 제자리에 얼어붙었다.
"사윤설은 지독하게도 피가 섞인 동생을 해치려 하였지요. 그리고 당신, 송승안은..."
사마음은 전생에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사내를 바라보며 역겨운 느낌밖에 들지 않았다.
"제가 산골짜기에 버려져서 생사를 오가고 있을 때, 송 공자는 다른 여인을 안고 그녀에게 지극정성이었지요! 심지어 저한테 염치도 모르냐고 따지다니..."
"그쪽은 그저 무정하고 의리가 없는 쓰레기일 뿐이죠!"
회차 2
"사마음!"
마음속의 동정심이 조금 솟아오르려 할 때, 바로 그 쓰레기의 말에 산산이 흩어지고 말았다. 송승안은 어두운 표정을 하고 낮은 목소리로 경고하였다.
"이 중에는 뭔가 오해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 내 따로 날을 잡아 자세히 조사하라고 할 터이니..."
"지금은 일단 네 상처부터 치료하도록 하지."
그는 말을 끝내자마자 바로 손을 뻗어 사마음을 건네 받으려 하였다.
만약 예전의 사마음이라면 송승안이 자신을 안으려 할 때, 바로 기쁜 표정으로 그의 품에 안겼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 그녀는 역겨운 표정으로 이혁의 품속으로 숨어들었다. "그래서 아직도 사윤설 저 여인이 억울하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윤설이는 네 언니다. 어찌 너를 해치려 하였겠느냐?"
송승안은 본능적으로 사윤설을 감싸고 돌았다.
옆에 서있던 사윤설은 잔뜩 억울한 표정으로 눈시울을 붉혔다. "마음아, 내가 저택에 돌아온 후 네게서 부모님의 관심을 빼앗아갔다고 원망하는 것은 이해한단다. 그리고 내가 몸이 성치 않아 둘째 공자님을 여러 번 귀찮게 하였고..."
"하지만 넌 늘 내가 가장 아끼는 동생이다! 어찌 날 그리 의심할 수 있는 것이냐?"
사마음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입을 열려고 하였지만 그녀를 안고 있던 사람이 먼저 입을 열었다.
이혁은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 "도대체 그대가 해치려 한 것인지 아닌지는 자세히 조사를 해보면 알 테지..."
"여봐라."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산장 곳곳에서 수십 명의 자객들이 나타나 이혁의 뒤에 서서 명을 기다렸다.
"주인님."
"이곳에 있는 사람들을 모두 데려가 조사하거라. 결과가 나오기 전에 누가 한 발짝이라고 나가려거든... 바로 목을 베거라!"
이혁은 그 말을 마치면서 눈빛이 더욱 날카로워졌다.
경성(京城)의 사람들은 모두 이혁이 제멋대로 움직이는 살신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가 목을 베라고 하면 정말로 죽이겠다는 뜻이었다.
예전에 한 호부시랑은 말실수를 하여 이혁의 심기를 건드렸기에 그 자리에서 목을 베이고 말았었다.
명문 집안의 공자와 아가씨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왜서인지 이 사건에 연루되게 된 그들은 모두 공포에 휩싸였다.
이혁은 그들을 전혀 시경 쓰지 않고 명을 내린 뒤, 바로 사마음을 안고 자리를 떠나려 하였다.
"사마음!"
송승안이 조급한 말투로 외쳤다. "네가 이리 막무가내로 나가면 저택에 돌아간 후, 어머님과 아버님의 질책을 받을까 봐 두렵지도 않은가?"
그 말에 이혁은 고개를 숙이고 품속에 있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사마음은 늘 부모님의 말을 가장 신경 쓰곤 하였다. 특히 사윤설이 돌아온 후, 그녀는 매일 조심스레 살았었다. 조금이라도 실수를 하면 부모님의 사랑을 잃을까 봐 두려웠었다.
하지만 사실은 어떠한가. 그녀의 부모님은 사윤설이 나타났을 때 이미 사마음을 포기하였다.
사마음은 조롱하는 듯한 눈빛으로 말했다. "저는 제 자신이 억울함을 당하는 것이 가장 두렵습니다."
이혁은 잠시 멈칫하더니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번에 그의 발걸음은 더 이상 멈추지 않았고 사마음을 안은 채 성큼성큼 걸어갔다.
눈은 점점 더 크게 내렸고 눈앞의 광경도 점차 흐릿해졌다.
사마음은 그의 따뜻한 품속에 안겨 느린 발걸음 소리를 들으면서 점차 눈꺼풀이 무거워졌다.
꿈속에서 그녀는 또다시 전생으로 돌아갔다.
사마음이 함정에 빠져 다리가 부러진 후, 저택으로 돌아가서 사윤설을 고발하였지만 오히려 그녀가 억울하다며 피를 토하고 말았었다.
집안 사람들은 모두 사윤설을 향했고 그녀가 자생 자멸하도록 마당에 가둬두었다. 그리고 송승안과의 혼사도 사윤설에게 안배되었다.
송승안과 사윤설이 혼인을 올리는 그날, 사윤설은 붉은색 희복을 입고 사마음을 보러 왔었다.
"동생아, 그걸 아느냐? 오늘, 난 송승안과 혼인을 한단다."
"부모님께서는 더 이상 너더러 내가 네 다리를 부러지게 만들었다는 헛소리를 하게 하면 안 된다고 하더구나.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 후작 집안의 주모가 될 나의 명성에 영향을 끼친다고..."
"그래서 언니가 친히 널 보내주려고 한단다."
사윤설은 환히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바로 한 시녀가 다가와 그녀를 진흙 투성이인 오물 속에 짓눌러 익사하게 하였다.
죽음을 맞이하는 공포에 사마음은 두 눈을 번쩍 뜨고 두 손으로 자신의 목을 쓰다듬었다.
"놀라서 정신이라고 나간 건가?"
한 남자의 청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마음이 고개를 숙이자 이혁이 자신의 부어 오른 종아리를 누르고 있는 장면을 보게 되었다.
그녀는 쑥스러운 마음에 저도 모르게 다리를 거두려 하였지만 엄숙한 꾸짖음 소리가 들려왔다.
"움직이지 말거라! 다리를 갖고 싶지 않은 것이냐?"
사마음은 동작을 멈추고 멍하니 이혁을 바라보았다.
그는 침대 옆에 앉아 사마음의 다리를 자신의 허벅지에 올려놓고 금창약을 상처 부위에 발랐다.
"네 다리뼈는 부러졌고 이곳에는 의원이 없으니 내가 처리할 수밖에 없다."
이혁은 약을 다 바른 뒤, 나무 판으로 그녀의 다리를 고정하고 천을 감았다.
천을 감다가 귓가에서 시름소리가 들려오자 그는 고개를 들고 물었다."아픈 것이냐?"
사마음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파도 싸다!"
이혁은 바로 고소하게 여기는 듯 냉소하며 말했다.
사마음은 침묵하였다.
"아프지 않으면 기억하지도 못할 테지."
이혁의 말투는 무척 차가웠지만 손 동작은 점차 부드러워졌다.
사마음은 입술을 오므리고 눈앞에 있는 사내의 윤곽이 뚜렷한 얼굴을 바라보았다. 늘 날카로웠던 눈빛은 그 순간만큼은 진지하고 조심스러웠다.
얼음장처럼 차갑고 냉정한 살신은 그녀에게만 부드러웠다.
끝내 자신을... 죽게 만든 사람에게 말이다.
사마음은 전생에서 이혁이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채, 그녀의 품속에 안겨있는 장면을 떠올리며 눈앞이 흐릿해졌다.
이혁은 무언가 눈치라도 챈 듯, 고개를 들었다. 그는 억울함으로 가득 차 있는 사마음을 바라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꾸지람 몇 마디 들었다고 억울한 것이냐?"
사마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눈시울이 붉어졌다.
이혁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더는 꾸짖지 않으마. 그러면 되지? 일단 이 곳에서 쉬거라. 내가 사람을 시켜 약을 더 가져오라고 할 테니 네 외상을 처리하자꾸나."
"이 곳은 어딥니까?" 사마음은 뒤늦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내 개인 저택이다."
이혁은 자리에서 일어나 손수건으로 손을 닦으면서 말했다.
눈앞의 소녀의 가련한 모습에 그의 눈빛에는 악랄함이 스쳐 지나갔다.
"며칠 전까지만 하여도 송승안을 위하여 나한테 손찌검을 하지 않았느냐. 앞으로 널 이 곳에 가두고 다시는 너의 그 정인을 만나지 못하게 할 것이다!"
"오라버니와 함께 이 곳에서 은거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지요."
사마음은 가볍게 웃으면서 말했다.
"뭐라고 한 것이냐?"
이혁은 심장이 덜컹하였고 그녀를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
사마음은 고개를 들고 입을 열려 하였지만
마침 그때, 밖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마음아! 이게 전부 다 내 탓이다... 내가 널 따라 목운산장에 오지 말았어야 했다. 연회에서 널 홀시하고 다치게 하지 말았어야 했어."
마음속의 원한은 전부 다 언니에게 풀 거라. 다른 사람을 끌어들이지 말고!"
울음이 섞인 불쌍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방 안의 두 사람은 동시에 멈칫하였다. 이혁의 눈빛은 차가워졌고 자리에서 일어서는 순간 살기가 가득하였다.
"잠시만요."
사마음은 급히 그를 잡고 말했다. "이곳까지 찾아왔으니 제가 한번 만나보고 오겠습니다."
조금 전 한잠을 잤으니 사윤설과 맞설 기운은 충분하였다.
도대체 무슨 수작을 부릴 생각인지 구경이라도 하자고.
회차 3
사마음이 밖으로 안겨 나가자마자 사윤설이 그녀에게 덮쳐왔다.
"마음아... 전부 다 이 언니의 탓이란다. 언니가 널 홀시하지 말았어야 했다. 널 이렇게 다치게 만들다니..."
"네가 여전히 날 원망한다면... 나도 그 산골짜기에서 뛰어내리면 그만이지 않느냐?"
사윤설은 입술을 깨물고 흐느끼면서 애원하였다.
"이 일은 둘째 공자님과 아무런 상관이 없단다. 계속 이리 소란을 피우면 그가 명문 집안의 공자들 앞에서 체면을 다 잃게 될 것이야!"
목운산장은 송승안이 사유한 곳이었고 명문 집안의 공자들은 그의 사유지에 놀러 온 것인데, 이런 식으로 협박을 당하다니.
그들은 감히 이혁과 맞서려 하지 않을 것이고 추후 송승안을 원망할 것이다.
사마음은 하인들이 가져온 나무 의자에 앉아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그러지요."
그녀는 아주 통쾌하게 허락하였다.
"가서 한번 뛰시기만 하면 오늘의 일은 없던 일로 치지요."
조금 전까지 끊임없이 애원하던 사윤설은 갑자기 제자리에 멈췄다. 그녀는 사마음이 이러한 반응을 보일 거라고 예상하지 못한 듯하였다.
"왜 그러십니까? 못하시겠습니까?" 사마음은 눈썹을 치켜 올린 채, 그녀를 내리 보았다.
사윤설의 눈빛 속에는 원망이 스쳐 지나갔지만 바로 연약한 모습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창백한 얼굴로 입술을 깨물면서 자리를 떠나려 하였다.
"그래... 지금 바로 가마!"
"윤설아!"
사윤설이 땅바닥에서 일어서자마자 갓 도착한 송승안이 그녀의 팔목을 잡아당겼다. 그는 안쓰러운 눈빛으로 사윤설의 어깨를 끌어안더니 사마음을 째려보며 말했다.
"윤설이가 이렇게까지 너한테 애원하는데, 어찌 이리도 사람을 궁지로 모는 것이냐?"
사윤설조차 이대로 목운산장을 봉쇄하면 앞으로 그의 명성에 불리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약혼녀인 사마음은 이리도 물불 안 가리고 이혁의 등을 떠밀어 그를 이 꼴로 만들다니.
"전부 언니 스스로 제기한 것 아닙니까? 제가 궁지로 몰았다니요?"
사마음은 혐오가 가득 찬 눈빛으로 턱을 들고 되물었다.
"너!"
송승안은 말문이 막혔고 한참 후에야 숨을 참고 말했다. "윤설이는 널 위하여 자신의 뜻을 굽혀 일을 해결하려고 한다. 심지어 절벽에서 뛰어내리겠다고까지 하는데... 넌 어찌 이 일을 붙잡고 네 언니를 놓아주려 하지 않는 것이냐. 이게 사람을 궁지에 내미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이냐!"
"제가 붙잡고 놓아주지 않으려 한다고 하셨습니까?"
사마음은 마치 우스운 일이라도 들은 듯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저는 그저 진실을 밝혀 제 억울함을 풀어주려 하는 것 뿐입니다. 이게 그리 큰 잘못입니까?"
"그리고 언니가 정말 켕기는 일을 하지 않았으면 이리 급히 달려와 저에게 사죄할 필요가 있었을까요? 결국은..."
제 발 저려 진실이 들어날까 봐 이 연극을 벌린 것이잖습니까. 이렇게 얼렁뚱땅 일을 넘기시려는 거지요?"
"마음아, 어찌 날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냐?
사윤설은 그녀의 말에 온몸이 얼어붙은 채, 한참 동안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기만 하였다. 그리고는 미친 듯이 송승안에게서 벗어나 밖으로 향해 달려갔다.
"둘째 공자님, 저를 말리지 말아 주십시오! 전부 다 제 잘못입니다. 제가 마음이에게 진 빚을 갚지 않으면 절대 저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고 공자님을 놓아주지도 않을 겁니다..."
"돌아오거라!"
송승안은 바로 사람을 끌어왔고 죽일 듯이 사마음을 째려보았다.
"본래도 몸이 성치 않은 네가 정말로 절벽에서 뛰어내리면, 살아서 돌아올 수가 있겠느냐? 저 여인은 널 사지로 몰려는 것이다!"
"정말 웃기네요! 언니가 몸이 성치 않다고 저를 비난하시는데 오자마자 절벽에서 뛰어내리겠다고 난리를 부린 사람은 언니에요. 어찌 또 제 잘못이 된 거지요?" 사마음은 되물었다.
"허나 너도..."
송승안은 말문이 막혔지만 반박하려고 할 때, 말이 끊겼다.
"그리고 송 공자 말입니다. 언니가 연약하다고 이리 감싸고 도시면서 모든 잘못을 다 저한테 넘기시는데... 다친 사람은 저라는 것을 잊으신 겁니까? 골짜기에서 제가 돌아온지 이리도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 단 한번만이라도 제 상처에 대하여 물으신 적이 있습니까?"
사마음은 고개를 들어 송승안을 바라보면서 쓸쓸한 기분이 들었다.
전생의 그녀는 전심전력으로 이 사람을 사랑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진심은 너무도 보잘것없었다.
"난..."
"송 공자는 옳고 그름을 가리지도 못하고 단 한 순간도 저를 약혼녀로 대하지 않으셨지요. 그렇다면 저희의 혼인을 계속 유지할 필요도 없겠지요. 파혼합시다!"
사마음은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힘찬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 말에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랐지만 오직 뒤에 서있던 이혁만이 얼굴에 기쁜 표정을 띠었다.
송승안은 왠지 모르게 공황을 느꼈다.
예전의 사마음은 사윤설의 일로 화를 낸 적이 있었지만 파혼을 꺼낸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이번에는, 정말로 무언가가 달라진 듯하였다.
"헛소리하지 말거라..." 송승안은 미간을 찌푸리고 꾹 참으며 말했다.
사윤설은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눈치 차리고 바로 앞에 나서서 말했다. "마음아, 이런 말은 함부로 입에 담으면 안 된단다! 네가 언니에게 화가 나서 그런다는 것 안다... 내가 앞으로 다시는 너와 둘째 공자님의 눈에 띄지 않으면 그만이지 않느냐!"
"화가 나다니요? 저는 두 사람이 함께 할 수 있도록 도와준 겁니다. 기뻐하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사마음은 모든 것을 다 꿰뚫어 볼 듯한 눈빛으로 사윤설을 내려보았다.
"사마음!"
대답을 듣기도 전에 밖에서는 분노가 가득 찬 외침소리가 들려와 두 사람의 대화를 끊었다.
흰색 옷차림을 한 남자가 잔뜩 성이 난 얼굴로 걸어 들어왔다. "넌 네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긴 아는 것이냐?"
"내가 저택을 떠난 지 고작 이틀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이리도 큰 소란을 피우다니. 그리고 윤설이를 이렇게 대하다니, 네가 정녕 두려운 것이 없구나!"
남자는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안색이 창백한 사윤설에게 시선을 향하며 분노가 들끓어 올랐다.
사마음은 질책으로 가득 찬 그 얼굴을 바라보며 누가 바늘로 가슴을 찌르는 듯 심장이 아팠다.
"오라버니께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묻지 않으시고 제 죄부터 물으시는 겁니까?"
사여준은 사마음과 가장 친한 큰 오라버니였다. 전생에서 사윤설이 나타나지 않았을 때, 그는 사마음을 보물처럼 아꼈었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것이 다 달라졌다.
사여준은 잠시 멈칫하면서 그녀의 상처에 시선을 향했다. 그의 눈빛에는 망설임이 스쳐 지나갔지만 바로 분노로 바뀌었다.
"일이 어떻게 되었든 지간에 넌 윤설이의 몸이 약한 것을 뻔히 알지 않느냐. 그런데도 윤설이를 이리 약 올린 건 네 잘못이다!"
사마음의 눈시울은 순식간에 붉어졌다. 그녀가 입술을 깨물면서 반박하려고 할 때, 누군가가 어깨를 눌렀다.
"사공자님은 올해 대리사에 들어가시지요? 그래도 형사 사건을 책임지는 사람이 어찌 사리분별도 하지 못하고 막돼먹은 여자처럼 행동하시는지요?" 이혁이 비웃으며 말했다.
"당신!"
"주인님!"
그때 누군가의 조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산장의 모든 사람들에 대한 조사를 다 끝마쳤습니다. 사소저를 산골짜기에 내던진 자도 찾았습니다."
이혁이 데려온 부하들은 다 그의 측근이었고 능력이 출중하였기에 조사에는 확실히 재간이 있었다.
이혁은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끌고 오거라."
곧 하인 차림을 한 두 남자가 꽁꽁 묶인 채, 사마음의 앞에 버려졌다. 그들은 몰골이 말이 아니었고 오기 전에 고문을 당한 것이 뻔했다.
"대인! 대인, 저희는 고의로 그런 것이 아닙니다... 부디 목숨만은 살려주시옵소서!"
두 사람은 바로 무릎을 꿇고 목숨을 구걸하였다.
"누가 지시한 거냐?"
이혁은 차가운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보았고 눈빛 속에는 살기가 가득 담겨 있었다.
"범인을 가리킬 기회는 단 한번 뿐이다. 말을 하지 못한다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