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1

호텔 스위트룸, 야릇했던 분위기가 차츰 가라앉았다.

김서아가 부스스 눈을 떴다. 이내, 옆에 누운 잘생긴 남자가 눈에 들어왔고 순간, 부끄러움과 함께 복잡한 표정이 얼굴에 스쳤다.

어젯밤, 그녀는 동창회에 참석해 술을 마셨다. 그러다 뭔가 이상하다는 걸 캐치한 그녀는 즉시 자리를 떠났고 흐릿한 정신으로 호텔 객실 쪽으로 도망쳤다. 그 와중에 그녀는 문이 살짝 열려 있는 방을 발견했고 무작정 안에 쳐들어갔다.

곧바로 그녀의 시야에 키가 훤칠하고 잘생긴 남자가 나타났다.

"나가!"

싸늘한 목소리에 가득 담긴 분노. 그게 그 남자의 첫 마디였다.

당시 너무 힘들었던 그녀는 남자의 말을 제대로 듣지 못했다. 그저 남자가 너무 잘생겼다는 생각만 들었고 그의 몸에서 풍기는 시원한 향기에 이끌려 자꾸만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고 싶을 뿐이었다.

김서아는 미간을 찌푸렸다. 기억을 되짚을 수록 민망한 장면들만 잔뜩 떠올랐던 것이다.

그때, 옆에 누워있던 남자가 몸을 뒤척였다. 화들짝 놀란 것도 잠시, 그녀는 약간 찔리긴 했지만 남자의 잘생긴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몇 초가 지났음에도 남자는 깨어나지 않았다.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조심조심 이불을 걷고 침대에서 내려왔다. 삭신이 쑤셨지만 그녀는 참아 내며 바닥에 흩뿌려진 옷가지들을 주섬주섬 주워들었다.

잠 자리를 갖고 나서 바로 튀는 게, 살짝 양심에 찔렸지만 어쩔 수 없었다.

김서아는 옷을 챙겨 입은 뒤, 침대 옆에 서서 여전히 잠들어 있는 남자를 빤히 내려다 봤다. 남자의 얼굴은 정말 잘생겼다. 잘생긴 남자를 많이 봐왔던 그녀였지만 이렇게 잘생긴 남자는 처음이었다.

다만, 조금 사나웠다. 특히 어젯밤에는…

야릇한 장면이 갑자기 머릿속에 떠오르자 김서아는 얼굴이 빨개졌고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바로 생각을 떨쳐 냈다.

잠시 고민에 잠긴 그녀는 가방에서 수표 한 장을 꺼내 침대 옆 탁자에 올려놓았다. 하지만 살짝 마음이 놓이지 않았던 그녀는 쪽지를 써 수표 위에 올려 놓았다.

그제야 그녀는 방을 나섰다.

그녀가 엘리베이터에 탔을 때, 휴대폰이 울렸다. 김서아는 휴대폰을 꺼내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뭐야? 너 무슨 일 있어? 아침부터 목소리가 왜 이렇게 죽어 있어?"

휴대폰 너머에서 여자의 예리한 질문이 날아왔다.

김서아는 헛기침을 하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젯밤에 잠을 제대로 못 잤어."

"잠을 제대로 못 잤다고? 왜?"

"아무것도 아니야." 김서아는 미간을 찌푸리고 더 이상 이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 얼른 화제를 돌렸다. "아침부터 왜 전화했어?"

"아, 진우성이 또 갤러리에 왔어. 10배의 가격을 제시하며 네 그림을 사고 싶다고 하는데, 다시 생각해 볼래?"

김서아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가 거절할까 봐 두려웠던 여자는 바로 다시 입을 열었다. "서아야, 진우성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 GE 그룹의 실세란 말이야. 권세가 하늘을 찌르고, 냉혈무정하며, 수단이 잔인하기로 소문이 자자한 놈이야. 아무도 건드릴 수 없는 사람이라고!

근데, 정말로 네 그림이 마음에 드는 모양이야. 지난 번에 그를 거절한데 이어 이번에도 거절하면 날 절말 죽이려 들지도 몰라."

진우성은 16살에 진씨 가문의 가주가 되어 가문 내의 내분을 해결했고, 18살에 GE 그룹의 실세로 등극했다. 올해 26살인 그는 이미 GE 그룹의 시가총액을 몇 배나 늘렸고, 그의 뛰어난 실력에 사람들은 그를 재계의 황제라 불렀다.

외부 사람들은 그의 얼굴을 본 적은 없으나 그에 관한 소문은 끊이지 않았다.

잠시 고민에 잠긴 김서아가 마침내 대답했다. "그래, 어쩔 수 없지 뭐. 그 사람한테 팔아."

그 그림은 원래 조씨 가문에 선물하려 했지만, 이제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조씨 가문은 그녀의 평범한 출신을 꺼려 그녀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키려 하지 않았고 그녀 또한 바람둥이 도련님과 결혼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여자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래, 거래가 끝나면 바로 돈을 보내줄게."

김서아는 말했다. "10배의 가격은 필요 없어. 원래 가격만 받아."

여자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응. 알겠어. 사실 그가 10배 가격을 제시했다고 해도 난 감히 받지 못했을 거야."

오늘은 토요일이라 숙소 룸 메이트들은 다 나가고 없었다.

A대 기숙사에 도착한 김서아는 바로 욕실로 향했고 눈을 꼭 감은 채 씻었다. 자신의 몸을 확인할 용기가 없었던 것이다.

샤워를 마치고 옷을 갈아입은 그녀는 책상에 앉아 컴퓨터를 켜고 빠르게 호텔 감시 시스템에 침입했다.

공교롭게도 어젯밤 동창회가 열렸던 룸의 CCTV는 고장 난 상태라 데이터가 존재하지 않았다.

'우연? 우연 일리가 없어.' 그녀는 잠시 고민에 잠기더니 이내,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키보드를 두드렸다. 몇 분 후, 화면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그녀의 눈빛이 점차 차갑게 식었다.

'역시...그 여자 였어.'

김서아는 잠시 멈칫하더니 다시 화면을 호텔 객실 쪽으로 전환했다. 그녀는 자신이 남자의 방에 들어가는 장면을 보며 미간을 살짝 찌푸렸지만 영상을 삭제하지는 않았다. 수표에 그녀의 이름이 찍혀있으니 감시 시스템을 삭제하는 건 의미가 없었다.

그녀는 피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다만 아까는 상황이 너무 당황스러웠던 나머지 서둘러 도망쳤을 뿐이다.

만약 상대방이 그녀의 일 처리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협상은 얼마든지 해 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남자가 수표를 받고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묻어 두길 바랐다.

호텔 객실.

침대 옆에 선 진우성은 손에 쥔 쪽지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죄송해요. 어젯밤 누군가 저를 함정에 빠뜨렸어요. 도와주셔서 고마워요. 이 수표는 당신에게 드리는 보상이에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넘어가 주셨으면 좋겠네요.]

그가 눈빛이 차츰 차갑게 식었다. 쪽지가 그의 손아귀에서 볼품 없이 구겨졌고 수표를 뚫어지게 쳐다 보는 그의 안색이 더욱 차갑게 가라앉았다.

체내의 독소가 갑자기 발작해 이성을 잃은 게 아니었다면, 그녀와 관계를 가질 일은 절대 없었을 것이다.

'잠자리를 가지고 도망친 것도 모자라 돈으로 날 모욕하다니, 간이 아주 배 밖으로 나온 모양이군!'

진우성은 쪽지를 바닥에 던져버리고 휴대폰을 들어 비서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때, 그의 시선이 무심코 침대 시트에 묻은 붉은 얼룩에 멈췄다.

한 시간 후.

비서가 조심스레 진우성의 곁으로 다가왔다. "진 대표님, 찾았습니다."

소파에 앉아 눈을 감고 있는 진우성의 얼굴이 차갑게 굳어 있었고 제왕 같은 그의 기세에 비서는 자기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말해."

"김서아, 20살, A대 컴퓨터학과 3학년 학생입니다. 성적은 우수하지만 가정 형편이 좋지 않습니다.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재혼했습니다. 현재 혼자 A시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으며, 어젯밤은 동창회에 참석한 걸로 밝혀졌습니다.

CCTV를 확인한 결과, 그녀는 당시 정신이 혼미한 상태였고, 대표님 방 문이 제대로 닫히지 않아 실수로 들어온 것 같습니다."

"가정 형편이 좋지 않다고?" 진우성은 갑자기 눈을 뜨고 의심 가득한 눈빛으로 물었다. "그럼 이 수표는 어떻게 된 일이야?"

억 단위의 수표, 그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평범한 학생에게는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니었다.

"A대에는 이런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김서아의 아버지가 생전에 A시의 재벌을 도와준 적이 있다고 합니다. 그는 임종 전에 딸을 상대방에게 부탁했고, 딸이 그 집안에 시집가길 바랐지만 상대방은 받아들이지 않았고 대신 그녀에게 돈을 줬다고 합니다."

진우성은 가늘 게 뜬 눈으로 탁자 위에 놓인 수표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그의 그의 잘생긴 얼굴엔 어두운 그림자가 잔뜩 드리워져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정주현은 수표를 흘깃 쳐다봤다. 아마 보스가 본 수표 중 가장 적은 금액일 일 것이다. 보스를 덮쳐버린 것도 모자라 이런 식으로 모욕하다니, 그 여자는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었다.

"진 대표님, A대에 가서 잡아 올까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학교에서 손대지는 말고, 회관으로 잡아 와." 진우성이 명령이 떨어졌다.

"네." 정주현은 잠시 멈칫하더니 뭔가 생각난 듯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진 대표님, K 선생이 그 그림을 팔겠다고 했습니다. 회관으로 보낼까요, 아니면 저택으로 보낼까요?"

마음에 드는 그림을 손에 넣은 진우성은 안색이 조금 부드러워졌다. "회관으로 보내. 네가 직접 가서 액자에 넣어 접견실에 걸어놔."

정주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지금 바로 진행하겠습니다. "

회차 2

오후 5시가 조금 넘은 시각, 김서아는 컴퓨터에서 USB 뽑아 들고 밖으로 나섰다.

그녀는 USB를 클럽에 가져다줘야 했다. 레이 클럽은 학교에서부터 걸어서 10분 정도 거리에 위치해 있었다.

길을 걷던 김서아는 누군가 자신을 미행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고 불현듯 고개를 돌리자 그녀의 시야에 검은 옷을 입은, 딱 봐도 수상해 보이는 두 남자가 들어 왔다.

그중 한 남자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 여자야. 움직여!"

그 말을 들은 김서아의 눈빛이 어둡게 가라앉았다.

주변에 사람들이 많았던 탓에 그녀는 이곳에서 싸움을 벌이고 싶지 않았다. 이목이 끌리는 걸 원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여 김서아는 빠르게 옆 골목으로 들어갔다.

두 남자가 그녀를 쫓아 서둘러 골목으로 쫓아 갔다. 하지만 둘이 골목에 들어섰을 때, 긴 골목에는 아무도 없었고 김서아의 그림자조차 찾지 못했다.

둘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이 휘둥그래졌다.

"여기 숨을 데도 없잖아? 어디로 튄거지? 너무 빠르잖아?!"

"아무래도 무술을 배운 사람인 것 같아. 어쩐지 우리 두 사람을 보내더라니. 일단 안으로 들어가 찾아보자."

김서아를 그저 어린 소녀일 뿐이라고 생각한 그들은 쉽게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김서아는 그들의 눈앞에서 순식간에 사라지고 말았다.

어린 소녀 한 명도 잡지 못했다니... 둘은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두 남자를 쉽게 따돌린 김서아는 노선을 바꿔 다른 길로 레이 클럽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녀의 일진은 오늘따라 유독 사나웠다.

두 남자를 따돌리자마자, 클럽 앞에서 조씨 가문 사람들을 만난 것이다.

그녀를 발견한 조현아가 불쾌한 목소리로 물었다. "너 여긴 무슨 일이야? 여긴 네가 들어 올 수 있는 곳이 아니라고."

조현아와 김서아는 둘 다 A대 학생이었고 학과만 달랐다. 조현아는 예전부터 김서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중에 김서아가 자신의 오빠와 약혼한 사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나서는 김서아가 더더욱 싫어졌다. 다행히 할아버지와 부모님은 두 사람의 약혼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렇지 않았다면 조현아는 역겨워 죽었을 것이다.

오늘은 조현아의 생일이었고, 그녀의 가족과 친구들은 레이 클럽에서 그녀의 생일 파티를 열어 주었다.

그런데 김서아가 여기 나타나다니. '뻔뻔한 년!'

사람들은 김서아를 마치 쓰레기를 보듯 혐오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봤다.

김서아는 차갑게 식은 눈빛으로 조현아를 쳐다봤다. "왜? 이 클럽이 네거야?"

그때, 장미영이 다가와 다짜고짜 그녀를 비난했다. "주제도 모르는 년! 여기까지 쫓아 왔어?! 아무래도 알아 들을 수 있게 말해 확실하게 줘야겠군! 김서아, 너희 가문에게 1억을 준 것으로 빚진 은혜는 전부 갚았어! 우리 조씨 가문은 너와 내 아들의 약혼을 인정 못해! 아들을 너 같이 볼품 없는 가문의 여자와 결혼시키는 일은 없을 테니, 일찍 포기하는 게 좋을 거야."

조씨 가문은 조현우를 결혼 시키더라도 조씨 가문과 비슷한 가문의 아가씨와 결혼 시키려했다. 가문도, 신분도 보잘것 없는 '하등인' 김서아는 그들의 눈에 들어 오지도 않았다.

김서아는 차갑게 실소를 터뜨렸다. "저기요, 아줌마. 전 조현우에게 전혀 관심 없어요. 쓸데 없는 걱정을 하시는 것 같네요."

"그럼 내 생일 파티에 왜 온 건데?" 조현아는 팔짱을 끼고 비아냥거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레이 클럽은 A시에서 유명한 유흥업소로, 돈 많은 사람들의 천국이었고 김서아 같은 평범한 서민이 들어 올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그녀는 김서아가 자신들을 찾아온 게 확실하다고 생각했다.

"너 오빠를 꼬셔보려고 찾아 온 것 같은데, 이곳에 왔다고 해도 아무 소용 없어! 왜 인지 알아? 우리 오빠는 요즘 해외에 있거든, 넌 오빠를 유혹할 기회조차 없어."

그때, 화려한 옷차림의 여자가 입을 열었다. "주제를 모르는 게 아니라, 욕심이 너무 많은 것 같아. 1억으로 며칠이나 버틸 수 있겠어? 가난한 운명을 바꾸려면 조씨 가문에 시집을 가는 것 밖에 없잖아. 그래서 포기하지 못하는 게 분명해."

조현아는 차갑게 코웃음을 쳤다. "이따위 여자는 우리 조씨 가문의 문턱도 넘지 못해!"

조현아의 아버지 조진세는 어둡게 가라앉은 얼굴로 김서아를 노려봤다. 그녀가 이렇게 눈치 없는 사람일 줄은 몰랐다. 전에 그녀를 문전박대하며 모욕했는데도 아직도 주제를 모르고 이곳에 나타나다니!

그는 조 어르신을 돌아보며 말했다. "아버지, 먼저 들어가 계세요. 제가 해결할게요."

오늘은 그의 딸의 생일이다. 만약 김서아가 이곳에서 소란을 피운다면, 조씨 가문의 체면에 영향이 갈 것이다.

조 어르신은 대답하지 않고 김서아의 앞에 멈춰 섰다. "김서아, 네 아버지가 나한테 은혜를 베푼건 사실이야. 하지만 당시 내가 네 아버지의 부탁을 들어 준건 그저 네 아버지가 편안히 눈을 감을 수 있도록 해주기 위함이었어. 너는 우리 조씨 가문의 며느리로 적합하지 않아. 하지만 걱정하지 마. 우리 조씨 가문은 나 몰라라 하지 않을 테니. 앞으로 어려운 일이 생기면 언제든지 찾아와. 내가 해결해 줄 테니까."

조 어르신은 잠시 뜸을 들이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다만 네가 이곳에서 소란을 피워 조씨 가문의 체면을 깎는다면, 너한테도 아무 이득이 없어."

김서아는 너무 역겨웠다. 그녀는 차갑게 식은 눈빛으로 사람들을 훑어봤다. "귀가 먹은 건가? 왜 사람 말을 알아 듣지 못하는 거죠? 분명히 말했어요. 전에 조씨 가문에 찾아 간건 혼약을 취소하기 위함이었고 오늘 여기서 만난건 그저 우연일 뿐이라고요. 난 당신들 조씨 가문에 관심 없어요."

당시 그녀의 아버지는 조 어르신과 약속했다. 그녀가 20살이 되면 조씨 가문의 장손과 결혼해 조씨 가문에 시집가기로 말이다.

그녀는 아버지가 자신을 위해 그런 결정을 내렸다는 걸 알았다. 아버지는 그녀에게 의지할 수 있는 버팀목을 마련해 주려 했다. 하지만 그녀는 결혼하고 싶지 않았고 조씨 가문의 보호도 필요 없었다. 하여 그녀는 A시에 와서 지내는 몇년간 조씨 가문과 거의 접촉하지 않았다.

올해 마침 20살이 된 그녀는 일주일 전, 조씨 가문에 약혼을 취소하러 갔다. 하지만 조씨 가문 사람들은 그녀가 약혼을 요구하러 왔다고 생각했는지, 그녀를 문전박대했고 심지어 가정부를 시켜 그녀를 모욕했다.

그 순간, 그녀는 조씨 가문 사람들의 추악한 민낯을 똑똑히 보았다.

그들이 자꾸만 입에 올리는 1억, 그녀는 그 돈을 본적도 없었고 필요하지도 않았다.

그녀의 말을 들은 조씨 일가 사람들의 안색이 어둡게 가라앉았다.

조씨 가문에 관심이 없다고? 그들은 김서아의 말을 믿지 않았다. 그저 자존심이 상해 끝까지 우기는 거라고 생각했다.

조진세는 차갑게 코웃음을 쳤다. "그렇다면 다행이고! 김서아, 네가 분수를 지키며 잠자코 지낸다면 A시에 머물 수 있도록 도와주마. 하지만 네가 조용히 지내지 않는다면, 그땐 나도 옛정을 봐주지 않을 거야."

조 어르신은 이미 인내심이 바닥난 것 같았다. "되었다, 이제 안으로 들어가자."

급한 일이 있었던 김서아는 더 이상 그들을 상대하지 않고 클럽으로 향했다.

"거기 서!" 그녀가 클럽으로 향하는 것을 본 조현아가 그녀를 쫓아가며 소리쳤다. "감히 클럽에 들어가려 들어? 넌 네 주제도 몰라? 돈이 있긴 해? 여긴 네가 들어 갈 수 있는 곳이 아니야."

김서아는 차갑게 식은 눈빛으로 그녀를 흘겨보며 말했다. "비켜."

조현아가 또 뭐라고 말하려 할 때, 클럽 매니저가 다가왔다.

"김서아 아가씨, 오셨습니까?"

김서아는 매니저를 돌아보며 말했다. "허 매니저님."

매니저는 싱긋 미소 지으며 공손하게 그녀를 맞이했다.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이쪽으로 모시겠습니다."

김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 모습을 본 조현아는 자리에 멍하니 얼어붙었다. 클럽 매니저가 직접 김서아를 맞이하다니!

조씨 가문 사람들의 안색이 어둡게 가라앉았다.

레이 클럽은 배경이 깊은 클럽이었고 클럽 매니저도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다.

조씨 가문도 클럽 매니저가 직접 맞이하는 대우를 받을 자격이 없는데, 김서아는 대체 무슨 자격으로 이런 대우를 받는 걸까?

조현아의 안색이 더욱 어둡게 가라앉았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그녀의 친구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알바를 하러 온 것 같은데? 쟤 인턴십을 시작했다는 소문을 들었거든, 돈이 부족한가 봐."

장미영은 조현아의 곁으로 다가가 말했다. "그래. 딸, 오늘은 네 생일이잖아. 저런 이상한 애는 신경쓰지마."

장미영은 권력도 없고, 배경도 없는 고아인 김서아가 이곳에 온 건 일하러 왔거나, 돈 많은 사람들에게 몸을 팔러 왔을 것이라 짐작했고 더이상 김서아를 신경 쓰지 않았다.

조현아는 여전히 불쾌한 얼굴로 장미영의 팔짱을 끼고 말했다. "엄마, 김서아를 A대에서 쫓아낼 수 없어? 나 김지아가 너무 거슬려."

회차 3

"김서아의 아버지가 네 할아버지를 구했으니, 우리가 너무 심하게 굴면 안 돼. 김서아 같은 것들은 무시하는 게 상책이야. 그런 애를 상대하면 네 격이 떨어 질 뿐이야." 장미영이 말했다.

조현아는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하지만 우리 학교에 김서아를 좋아하는 부잣집 도련님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아? 만약 김서아가 정말로 재벌 가문의 도련님을 유혹하면 어떡해?"

"그럴 일은 없어. 김서아 같은 년은 기껏해야 재벌가 도련님들의 장난감으로 놀아 날 뿐이야. 걱정하지 마." 장미영의 목소리에는 경멸이 가득 묻어났다.

조현아는 입술을 꼭 깨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마음속 불쾌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반드시 김서아 그년을 A시에서 쫓아 내야겠어.'

vip 룸.

소파에 기대앉은 진우성의 얼굴은 여전히 차갑고 준수했으며, 깊고 어두운 눈동자로 허공을 응시하며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소파 맞은 켠에 앉은 두 남자가 얘기를 나누고 있었지만 진우성은 관심을 주지 않았다.

그때, 룸에 들어온 정주현이 안색이 좋지 않은 진우성의 곁으로 다가가 허리를 숙이고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대표님, 여자를 잡지 못했습니다. 도망쳤습니다."

그 말을 들은 진우성의 안색이 어둡게 가라앉더니 고개를 살짝 돌렸다. "뭐라고?"

정주현은 잔뜩 긴장한 얼굴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제 실수 입니다." 잠시 뜸을 들인 그가 계속해서 말했다. "부하가 말하길, 여자는 순식간에 자취를 감출 정도로 몸놀림이 아주 재빠르다고 합니다. 훈련을 잘 받은 경호원 두 명의 손아귀에서 도망칠 정도이니, 실력자로 보입니다."

"그 여자가 실력이 있는 걸까, 아니면 네가 보낸 사람이 무능한 걸까?"

정주현은 대꾸 하지 못했다. 용병 출신 경호원 두 명이 어린 여자를 잡지 못했다니, 그역시 너무 의외였다.

"주변 CCTV는 확인했어?" 진우성이 다시 물었다. "확인했습니다.

하지만 여자의 모습은 찍히지 않았습니다. 의도적으로 CCTV를 피해 움직인 것 같습니다."

경호원을 따돌리고 CCTV까지 피했다라...

진우성의 눈빛이 더욱 어두워지더니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역시 A대 컴퓨터 공학과 수재답게 실력이 꽤 있군.'

그때, 김서아가 매니저를 따라 VIP룸 앞에 도착했다. 매니저가 문을 열며 말했다. "안쪽으로 드시지요."

"감사합니다." 김서아는 매니저의 뒤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매니저도 함께 안으로 들어오며 말했다. "도련님, 김서아 씨가 도착했습니다."

소파에 앉아 있던 시경훈이 바로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더니 자리에서 일어 났다. "김서아 씨, 반가워요."

시경훈은 레이 클럽은 시씨 가문의 사업체다. 하지만 시경훈은 아직 클럽을 물려받지 않고 따로 IT 회사를 운영하고 있었다.

시경훈으로 말할 것 같으면, 일할 때는 냉철하고 단호하지만, 평소에는 온화하고 예의 바른 젠틀한 사람이었다.

두 사람은 주 교수의 소개로 얼굴을 익혔고, 김서아의 능력을 높이 평가한 시경훈은 그녀에게 스카웃 제의를 했다.

회사 기술력을 담당하는 대가로 회사 지분 상당 부분을 양도해 주겠다고 했지만 그녀는 아직까지도 그의 회사에 합류하지 않았다.

시경훈과 마찬가지로 옆에 있던 세 사람도 김서아를 돌아봤다.

크리스털 샹들리의 불빛 아래, 가녀린 몸매의 여자가 천천히 다가왔다. 비단처럼 부드러운 머리카락과 눈처럼 하얀 피부, 거기에 맑은 눈동자와 가지런한 치아까지 더해져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시경훈 대표님." 김서아가 싱긋 미소 지으며 사람들을 휙 둘러 보았다. 그러다 진우성과 눈이 마주치고 말았고, 그녀의 얼굴에 번진 미소가 순식간에 굳어졌다.

'어젯밤 그 남자잖아!

그가 왜 여기 있는거지? 그것도 시경훈과 함께 있다니?!'

정주현은 깜짝 놀란 얼굴로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대표님, 이 여자입니다!"

진우성은 당연히 김서아를 알아봤다. 그는 깊은 눈매로 여자를 응시하고 있었고 어둡기만 한 그의 눈빛에선 아무런 감정도 읽어 낼 수 없었다.

김서아는 침착함을 유지하며 시경훈에게 다가가 손에 쥔 USB를 건넸다. "시 대표님, 데이터를 전부 복구 했어요. 확인해 보세요."

USB를 건네 받은 시경훈은 고마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고마워요. 수고하셨어요."

"별말씀을요."

소파에 기대앉은 지형진은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김서아를 뜯어 보더니 호기심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시대표, 이 아가씨는 누구야?"

"A대 컴퓨터 공학과 학생이자, 미래 우리 회사의 기술력을 담당할 김서아씨에요. " 시경훈은 김서아를 소개한 후, 지형진과 진우성을 소개했다. "김서아 씨, 여긴 광화 주얼리의 둘째 도련님 지형진 씨고 그리고 여기는 지형진 씨의 친구이자 GE 그룹의 대표 진우성 씨에요."

진우성과 지형진은 A시에서 재벌계에서도 부유하기로 유명한 두 가문의 도련님이다.

김서아는 깜짝 놀란 얼굴로 두 사람을 돌아봤다.

'진우성! 어제 나한테 당한 남자가 진우성이었다고?'

심지어 그녀는 그에게 수표까지 남겨 주었다.

'그렇다면... 조금 전 날 잡으려 했던 두 놈은 진우성의 부하들인가?'

우연도 이런 우연이 없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모두 그녀가 자초한 일이었다.

다시 진우성과 눈이 마주친 김서아는 마음이 조금 불안했지만, 태연한 얼굴로 말했다. "지형진 도련님, 진우성 대표님."

지형진은 싱긋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짧은 침묵이 흘렀고 진우성이 먼저 입을 열었다. "김서아 씨, 또 만났네요."

'또'라는 말에 의미심장한 뜻이 담겨 있었다.

그 말을 들은 시경훈은 깜짝 놀란 얼굴로 물었다. "두분 아는 사이였어요?"

진우성이 대답하기도 전에, 김서아가 먼저 말했다. "아니요. 아는 사이는 아니고, 우연히 한 번 만난 적 있어요. 그때는 저는 진우성 대표님인 줄도 몰랐어요."

시경훈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진우성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김서아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지형진은 의심 가득한 눈빛으로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봤다. 아무리 봐도 두 사람은 말처럼 우연히 한 번 만난 사이가 아닌 것 같았다. 진우성이 낯선 여자에게 먼저 말을 거는 모습은 친구인 그조차도 처음 봤으니 말이다.

그는 이 상황이 너무 신기했다.

지형진은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김서아 씨, 술 한 잔 하실래요?"

김서아는 어색하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죄송해요. 술은 마시지 않아요."

그녀는 다시는 술을 마시고 싶지 않았다!

"술을 마시지 않는다고요?" 진우성이 차갑게 입을 열었다.

'어젯밤, 술 냄새를 풍기며 내 방에 쳐들어온 게 누구였지? 이제 와서 조신한 척 하려는 건가?'

김서아는 태연한 얼굴로 말했다. "알코올 알레르기가 있어서요."

"김서아 씨, 안색이 왜 그래요? 혹시 어디 아파요?"

시경훈이 걱정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김서아는 가볍게 기침을 하며 말했다. "아니요. 아마 조금 전에 급하게 걷다 보니, 아마도 그래서 그런 걸 거에요."

진우성은 차가운 눈빛으로 김서아를 쳐다봤다. '훈련을 잘 받은 경호원 두 명을 따돌려야 했으니 급하긴 했겠지. 하지만 내 손에 들어 온 이상, 절대 놓치지 않아.'

"일단 앉아요. 서아 씨"

시경훈이 말했다.

김서아는 이곳에 머물고 싶지 않았다. "아니요. USB를 전달했으니, 이만 학교에 돌아가야죠."

시경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학교에 도착하면 안전하게 도착했다고 안부 메시지 보내줘요."

"네. 그럼 전 이만."

김서아는 진우성과 지형진을 돌아보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인사를 한 뒤, 몸을 돌려 자리를 떠났다.

지형진은 입 꼬리를 살짝 올리며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시대표, 모든 부하 직원들을 그렇게 잘 챙겨줘? 아니면 김서아 씨만 특별히 챙겨주는 거야?"

시경훈은 빙그레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지 도련님, 농담도 참, 전 모든 직원들을 전부 똑같이 잘 챙겨 줍니다."

그 말인 즉 김서아를 부하 직원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진우성이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너희 일단 술 마시고 있어. 난 먼저 가볼게."

두 사람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그는 성큼성큼 밖으로 나갔다.

정주현도 빠르게 그의 뒤를 따랐다.

지형진은 진우성의 이런 모습에 익숙했지만, 시경훈은 진우성과 그리 친하지 않았기에 자신이 진우성을 잘 대접하지 못한 게 아닐까 생각했다.

시경훈의 걱정 가득한 눈빛을 알아차린 지형진이 말했다. "진우성은 원래 이런 사람이야. 시대표,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우린 계속 술이나 마시자고. 건배."

그는 말을 하면서 술잔을 높이 들었다.

시경훈은 시선을 거두고 자신의 술잔을 들어 올렸다. "네, 그러죠."

VIP룸을 나선 김서아가 몇 걸음 걷지도 못했을 때, 뒤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김서아 씨, 잠깐만요." 정주현이 그녀를 불렀다.

'역시.'

김서아가 자리에 멈춰 서서 뒤를 돌아보자, 두 명의 건장한 남자가 그녀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진우성의 신분을 알게 된 순간부터, 그녀는 어젯밤의 일이 쉽게 끝나지 않으리라는 걸 직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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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속 결혼 후, 집안의 총애를 한 몸에 받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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