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1

나는 품에 안아보지도 못한 아기를 애도하며 병원의 소독약 냄새 가득한 침묵 속에 누워 있었다. 모두가 비극적인 사고였다고 했다. 발을 헛디뎌 넘어졌을 뿐이라고. 하지만 나는 남편이 나를 밀쳤다는 진실을 알고 있었다.

최진혁이 마침내 병문안을 왔다. 그의 손에는 꽃다발 대신 서류 가방이 들려 있었다.

가방 안에는 이혼 서류와 비밀 유지 계약서가 들어 있었다.

그는 내 친구이자 자신의 내연녀가 임신했다고 차분하게 통보했다. 이제 그들이 자신의 ‘진짜 가족’이며, 어떤 ‘불미스러운 일’도 없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조작된 정신과 진료 기록을 이용해 나를 불안정하고 위험한 사람으로 몰아가겠다고 협박했다.

“서류에 사인해, 서은하.” 그의 목소리에는 어떤 감정도 실려 있지 않았다. “아니면 이 편안한 병실에서 좀 더… 안전한 시설로 옮겨지게 될 거야. 아주 오랫동안.”

내가 사랑했던 남자의 얼굴에서 나는 괴물을 보았다. 이건 비극이 아니었다. 내 인생을 통째로 집어삼키려는 기업 인수 합병이었다. 내가 아이를 잃고 있을 때, 그는 변호사들을 만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슬픔에 잠긴 아내가 아니었다. 처리해야 할 부채, 정리해야 할 골칫거리일 뿐이었다.

나는 완벽하게 덫에 걸렸다.

절망이 나를 집어삼키려던 바로 그 순간, 돌아가신 부모님의 오랜 변호사님이 과거의 유령처럼 나타났다. 그녀는 묵직하고 화려한 열쇠 하나를 내 손에 쥐여 주었다.

“부모님께서 탈출구를 남겨두셨단다.” 그녀는 결의에 찬 눈빛으로 속삭였다. “바로 오늘 같은 날을 위해서.”

그 열쇠는 수십 년 전, 우리 할아버지들이 맺었던 잊힌 계약서로 나를 이끌었다.

나를 한 남자에게 묶어두는, 철갑처럼 단단한 혼인 서약서. 내 남편이 죽음보다 더 두려워하는 단 한 남자. 무자비하고 은둔하는 억만장자, 강태준.

제1화

품에 안아보지도 못한 내 아이의 유령이 병실의 소독약 냄새 가득한 침묵 속을 떠돌았다.

희망이 있던 자리에 텅 빈 공간이 생겨났고, 배 속 깊은 곳에서부터 유령 같은 통증이 느껴졌다. 소독약 냄새는 빳빳하고 얇은 시트에 배어 있었고, 숨을 쉴 때마다 날카로운 화학 약품 냄새가 목을 긁었다. 굳게 닫힌 창문 밖으로 보이는 서울의 풍경은 잿빛 비와 흐릿한 불빛으로 번져, 마치 수만 킬로미터 떨어진 다른 세상처럼 느껴졌다.

내 세상은 이 네 개의 하얀 벽과, 규칙적으로 울리며 나를 비웃는 듯한 심장 박동 모니터 소리, 그리고 잔인하게 무한 반복되는 기억 속으로 오그라들었다.

*날카롭고 거친 손길. 나를 향해 돌진하던 번쩍이는 대리석 바닥. 걱정스럽게 나를 돌아보는 대신, 내 친구였던 ‘그 여자’를 보호하듯 감싸 안던 최진혁의 얼굴. 바닥에 구겨진 내게 겨우 향했던 그의 눈에는 사랑도, 당황도 없었다. 오직 차갑고 끔찍한 무관심뿐이었다. 귀찮음. 나는 그의 행복으로 가는 길에 놓인 장애물이었다.*

그 기억은 내 마음속에 박힌 유리 조각 같았다. 눈을 깜빡일 때마다 더 깊이 파고들었다. 의사들은 비극적인 사고라고 했다. 발을 헛디뎌 넘어졌을 뿐이라고. 나는 진실을 알았다. 나는 버려졌다.

문이 딸깍 열리는 소리에 과거의 수렁에서 빠져나왔다. 나는 움찔했다. 심장이 덫에 걸린 새처럼 갈비뼈를 두드려댔다. 따뜻한 미소와 함께 몰래 가져온 초콜릿 바를 건네줄 내 가장 친한 친구, 지민이길 바랐다.

하지만 온 사람은 최진혁이었다.

그는 꽃을 들고 오지 않았다. 매끈한 가죽 서류 가방을 들고 왔다. 그는 문가에 서 있었다. 완벽하게 재단된 양복을 입은 낯선 남자. 방 안의 모든 빛을 흡수하는 듯한 짙은 차콜색 옷감. 그에게서는 비싼 향수 냄새와 그가 방금 뚫고 온 비 냄새가 났다. 그는 침대로 다가오지 않았다.

내 안의 목소리가 비명을 질렀다. *저 남자는 미안해하지 않아. 저것 봐. 널 보고 있지도 않잖아. 기계들을 보고 있어. 계산하고 있는 거야.*

“서은하.” 그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사업 계약을 성사시킬 때 쓰던 그 부드럽고 합리적인 톤이었다. 한때는 안심이 된다고 생각했던 목소리였다. 이제는 소름이 끼쳤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목구멍은 사막이었고, 혀는 납덩이처럼 무거웠다. 나는 그저 그를 지켜보았다. 내 손가락은 내가 가진 유일한 방패인 얇은 담요를 움켜쥐었다.

그는 부드럽고 단호한 소리를 내며 서류 가방을 열었다. 그는 서류 뭉치를 꺼내 내 침대 옆 이동식 테이블 위에 무균적인 소리를 내며 올려놓았다. 맨 위 페이지에는 선명하고 굵은 글씨로 ‘이혼 합의서’라고 적혀 있었다.

“조건은 후하다고 생각할 거야.” 그가 말했다. 그의 시선이 마침내 내게 닿았다. 평평하고 감정이 없었다. 그의 턱은 굳어 있었고, 귀 근처의 작은 근육이 경련했다. 그는 초조했다. 이 일을 끝내고 싶어 했다.

“후하다고?” 메마른 목소리가 갈라져 나왔다. 낯선 사람의 목소리가 내 목구멍을 긁으며 기어 나왔다. “네가 우리 아기 죽였잖아, 최진혁.”

찰나의 순간, 그의 얼굴에 무언가 스쳐 지나갔다. 죄책감이 아니었다. 후회도 아니었다. 짜증. 순수하고 완전한 짜증이었다.

“사고였어, 서은하. 의사들도 확인했잖아.” 그의 목소리가 낮아지며 위험할 정도로 부드러워졌다. “그리고 넌 그 이후로… 몸이 안 좋았잖아. 불안정하고. 이게 더 나은 방법이야.”

그는 다른 서류를 테이블 위로 밀었다. 비밀 유지 계약서. 법률 용어를 훑어보는 동안 피가 차갑게 식었다. 나는 그와 그의 사업, 그리고 그의… 새 가족에 대해 절대 말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었다.

“내 진짜 가족은 이제 내가 필요해.” 그가 말을 이었다. 독화살 같은 말들이었다. “아라 씨가 임신했어. 우린 어떤 불미스러운 일도 없어야 해. 여기에 사인하면, 넌 보살핌을 받게 될 거야.”

나는 그를 쳐다보았다. 그의 계산된 배신의 잔인함이 온전히 나를 덮쳤다. 이건 비극이 아니었다. 내 인생을 통째로 인수 합병하려는 것이었다. 나는 관리해야 할 부채였다.

*그는 이걸 계획했어. 내가 피를 흘리고, 우리 아이를 잃고 있을 때, 그는 변호사들을 만나고 있었어. 그는 그 여자를 보호하고 있었던 거야. 그의 ‘진짜’ 가족을.* 그 생각은 너무나 비열하고 끔찍해서 메스꺼움이 밀려왔다.

“만약 내가 사인 안 하면?” 나는 속삭였다. 싸울 힘이 빠져나가고, 뱃속에는 차갑고 단단한 공포의 돌덩이만 남았다.

최진혁은 테이블 가장자리를 잡은 손등이 하얗게 될 정도로 힘을 주며 몸을 살짝 앞으로 숙였다. 예의 바른 가면이 벗겨졌다.

“그럼 나도 선택의 여지가 없어.” 그의 목소리는 독기 어린 속삭임이었다. “나한테 진단서들이 있어. 아주 저명한 의사들에게서 받은. 모두 네가 망상과 편집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하지. 자신과 타인에게 위험한 존재라고. 이 편안한 병실에서 좀 더… 안전한 시설로 옮겨지는 걸 보는 건 유감스러운 일이겠지. 아주 오랫동안 있을 곳으로.”

그 협박은 공기 중에 짙고 숨 막히게 매달려 있었다. 그는 나를 정신병원에 가둘 작정이었다. 그는 나를 지우고, 미친 여자로 만들고, 모든 것을 가지고 떠날 것이었다. 내 남편. 내 미래. 내 정신.

남아있지 않다고 생각했던 눈물이 뜨겁고 조용하게 관자놀이를 타고 머리카락 속으로 흘러내렸다. 나는 덫에 걸렸다. 완전히, 철저하게 부서졌다.

그는 나의 항복을 보았다. 그는 넥타이를 바로잡으며 완벽하게 평정을 되찾았다. “내일 변호사가 서명을 받으러 다시 올 거야. 푹 쉬어, 서은하.”

그는 돌아서서 나갔다. 부드럽고 마지막을 고하는 문 닫히는 소리는 내 인생이 산산조각 나는 소리처럼 울려 퍼졌다.

나는 그가 남긴 침묵 속에서 익사하며 영원처럼 느껴지는 시간 동안 누워 있었다. 모니터의 경고음만이 내가 아직 살아있다는 유일한 증거였다. 나는 아무것도 없었다. 아니, 아무것도 아닌 것보다 못했다. 나는 해결해야 할 문제, 정리해야 할 골칫거리였다.

하늘에서 마지막 한 줄기 빛이 사라질 무렵, 부드러운 노크 소리가 들렸다. 문이 다시 열렸다. 나는 또 다른 타격을 각오하며 눈을 질끈 감았다.

“은하 아가씨?”

목소리는 부드럽고, 여성스러웠으며, 익숙했다. 나는 눈을 떴다. 친절한 눈매와 단정하게 빗어 넘긴 은발의 노부인이 서 있었다. 김 변호사님. 부모님의 변호사였고, 몇 년 동안 뵙지 못했던 분이었다. 그녀는 서류 가방 대신 낡은 가죽 가방을 들고 있었다. 방 안이 갑자기 조금 더 따뜻해진 것 같았다.

그녀는 내 침대 곁으로 다가왔다. 그녀의 표정에는 연민과 결의가 뒤섞여 있었다. 그녀의 차갑고 마른 손이 잠시 내 팔에 닿았다. 며칠 만에 처음 느껴보는 친절한 손길이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들었단다.” 그녀는 내 망가진 상태를 하나도 놓치지 않는 시선으로 부드럽게 말했다. “그리고 그… 남자가 방금 여기 왔었다고도 들었고.” 그녀는 ‘남자’라는 단어를 마치 더러운 것을 말하듯 뱉었다.

그녀는 가방을 열어 화려하고 오래된 열쇠 하나를 꺼냈다. 놋쇠로 만들어져 묵직했고, 단순한 가죽 고리에 달려 있었다.

“네 부모님은 훌륭한 분들이셨지, 은하야.” 그녀의 목소리는 꾸준하고 확신에 차 있었다. “그리고 사람 보는 눈도 아주 뛰어나셨어. 언젠가 늑대가 양의 탈을 쓸지도 모른다는 걸 예견하셨지.”

그녀는 열쇠를 내 손바닥에 쥐여 주며 내 손가락으로 그것을 감싸게 했다. 금속이 내 피부에 차갑게 닿았다.

“부모님께서 탈출구를 남겨두셨단다.” 그녀는 내 절망을 꿰뚫는 강렬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속삭였다. “이 열쇠는 서울 중앙은행의 금고를 여는 열쇠야. 그 안에서 계약서를 찾게 될 거다. 네가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더 큰 힘을 가진 계약서. 최진혁이 꿈도 꾸지 못할 만큼의 힘을.”

그녀는 마지막으로 내 손을 한 번 더 꽉 쥐었다. “네 부모님은 네가 절대 진정한 덫에 걸리지 않도록 해두셨어, 얘야. 가거라. 그걸 사용해.”

그녀는 왔을 때처럼 조용히 떠났다. 내 손에 들린 열쇠의 무게와 숨 막히는 어둠 속에서 단 하나의, 무섭고 불가능해 보이는 희망의 빛줄기만을 남겨둔 채.

회차 2

탈출은 열병을 앓는 꿈 같았다.

최진혁이 다녀간 후 내 눈에 서린 공포를 본 ‘사라’라는 이름의 동정심 많은 야간 간호사가 나를 도왔다. 그녀는 내 몸에 헐렁하게 맞는 버려진 환자복을 찾아주었고, 내가 서울의 새벽 찬 공기 속으로 비상구를 통해 빠져나갈 때 눈을 감아주었다.

공기는 날카롭고 축축했으며, 비와 배기가스 냄새가 났다. 병원의 재활용된 무균 공기 후에 내 몸에 충격이었다. 모든 소리가 증폭되었다. 멀리서 들려오는 사이렌 소리, 젖은 아스팔트 위를 스치는 타이어 소리, 미친 듯이 뛰는 내 심장 소리. 나는 주머니 속 놋쇠 열쇠를 꽉 쥐었다. 그 단단한 모서리가 허벅지에 고통스럽고도 안심되는 압박감을 주었다. 그것이 내가 가진 유일한 진짜였다.

서울 중앙은행은 화강암과 대리석으로 지어진 오래되고 위압적인 건물로, 오래된 돈과 비밀의 신전이었다. 손이 너무 심하게 떨려서 출입 신청서에 겨우 서명할 수 있었다. 지루한 눈을 한 ‘데이비드’라는 이름의 젊은 직원은 눈치채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는 나를 금고로 안내했고, 거대한 원형 문이 무겁고 마지막을 고하는 소리를 내며 우리 뒤에서 닫히자 공기는 차갑고 고요해졌다.

금고는 길고 좁았다. 안에는 빛바랜 검은 벨벳 위에 짙은 붉은색 밀랍으로 봉인된 두꺼운 양피지 봉투 하나가 놓여 있었다. 우리 가문의 문장. 부모님 장례식 이후로 보지 못했던 문장이었다.

두려움과 아드레날린이 뒤섞여 서툰 내 손가락이 봉인을 깼다.

안에 있는 문서는 묵직했고, 종이는 빳빳하고 오래되었다. 글씨체는 고풍스러웠고, 해석하기 어려운 격식 있는 법률 용어였다. 하지만 선명하고 현대적인 글꼴로 타이핑된 이름들은 착각할 수 없었다.

내 이름, 서은하.

그리고 또 다른 이름. 숨이 멎게 만드는 이름.

강태준.

*뭐라고?* 그 이름이 내 마음속에서 메아리쳤다. 강태준. 악명 높게 무자비하고, 터무니없이 부유하며, 병적으로 은둔하는 TJ 그룹의 CEO. 그는 서울 상류층 세계의 유령이었고, 그의 제국은 최진혁이 그토록 물려받고 싶어 하는 제국의 직접적이고 쓰라린 경쟁자였다. 그는 전설이었고, 상어였고, 유령이었다.

그리고 내가 떨리는 손에 들고 있는, 철갑처럼 단단하고 법적 구속력이 있는 문서에 따르면, 그는 나의 약혼자였다.

그것은 수십 년 전 우리 할아버지들이 맺은, 그들의 첫째 손주들을 묶는 사전 약혼 계약서였다. 다른 시대의 유물이었고, 두 강력한 가문을 합병하기 위한 왕조적 동맹이었다. 잉크와 법으로 봉인된 약속이, 지금까지 시간에 잊혀 있었던 것이다.

*이게 김 변호사님이 말씀하신 거구나. 최진혁이 꿈도 꾸지 못할 힘을 가진 계약서.* 그 대담함, 그 중세적인 기묘함이 아찔했다. 부모님은 내게 생명줄을 남겨주셨지만, 그것은 거대한 괴물에 연결되어 있었다.

나는 계약서를 손에 쥔 채 은행을 비틀거리며 나왔다.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잿빛 아침 햇살이 거칠고 까칠하게 느껴졌다. 도시는 깨어나고 있었고, 거리는 평범한 삶, 평범한 문제를 가진 사람들로 채워지고 있었다. 그들은 괴물에게서 도망치거나, 신화 속 인물과의 결혼 계약서를 들고 있지 않았다.

그때 그들을 보았다.

길 건너 검은 세단 옆에 서 있는 검은 양복의 두 남자. 그들은 눈에 띄지 않으려 했지만, 그들의 시선은 너무 날카로웠고, 그들의 부동자세는 너무 포식자 같았다. 그들 중 한 명이 귀에 전화기를 대고, 그의 눈은 정확히 나를 향해 고정되어 있었다. 최진혁의 부하들. 그는 기다리지 않았다. 그는 이미 나를 사냥하고 있었다.

차갑고 날카로운 공포가 나를 사로잡았다. 뇌가 명령을 내리기 전에 다리가 먼저 움직였다. 나는 달렸다.

나는 아침 인파 속으로 뛰어들었다. 병원에서 나온 신발이 젖은 보도블록을 철썩이며 때렸다. 나는 사람들을 밀치고 지나가며 그들의 화난 외침을 무시했다. 환자복은 어설픈 변장이었고, 어울리지 않는 사람, 도망치는 사람이라는 표식이 되었다.

*생각해, 은하야, 생각해! 어디로 갈 수 있지?* 지민이의 아파트는 그들이 가장 먼저 찾아볼 곳이었다. 호텔은 신분증과 신용카드가 필요했고, 둘 다 병원에 있는 내 지갑 안에 있었다. 나는 아무 자원도 없는 유령이었다.

추격은 상점과 얼굴들의 흐릿한 연속이었다. 나는 어깨너머로 힐끗 쳐다보았다. 그들은 더 가까워져 있었고, 무섭고 민첩한 목적을 가지고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은 따라잡고 있었다.

폐가 타는 듯했다. 여전히 약하고 회복 중인 내 몸이 비명을 질렀다. 절망이 공포의 가장자리를 갉아먹기 시작했다. 그들에게 잡힐 것이다. 그들은 나를 끌고 돌아갈 것이고, 최진혁은 그의 위협을 실행에 옮길 것이다. 잠긴 방, 영원히 침묵하게 될 모습이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했다.

그때 그것을 보았다.

다른 건물들 위로 흑요석 조각처럼 솟아오른, 권력과 야망의 기념비. TJ 그룹 본사.

미친 생각이었다. 절박하고 마지막 발악 같은 도박. 하지만 그것은 서울 전체에서 최진혁이 쉽게 손댈 수 없는 유일한 장소였다. 용의 소굴이었다. 그리고 나는 용 자신에게서 온 초대장을 들고 있었다.

마지막 힘을 다해, 나는 넓고 바람 부는 광장을 가로질러 빛나는 유리와 강철 입구를 향해 질주했다. 내 뒤의 두 남자는 소리치며 전력 질주하기 시작했다.

나는 회전문을 통해 상업의 대성당처럼 느껴지는 거대하고 화려한 로비로 뛰어들었다. 바닥은 광택 나는 검은 대리석이었고, 3층 높이의 천장을 반사했다. 청동과 강철로 된 거대한 추상 조각이 공간의 중심을 차지했다. 공기에서는 돈 냄새, 깨끗하고 무균적인 냄새, 그리고 아마도 백차일 듯한 희미하고 기분 좋은 향이 났다. 흠잡을 데 없는 양복을 입은 남녀들이 조용하고 효율적인 목적으로 움직였고, 그들의 목소리는 낮았다.

창백한 파란색 환자복을 입은 내 초라한 모습, 헝클어진 머리, 공황 상태의 호흡—이 모든 것이 이 조용하고 완벽한 세계를 급정지시켰다.

엄격한 얼굴의 산더미 같은 경비원이 즉시 나를 가로막았다. “부인, 여기 계시면 안 됩니다.”

“강태준 씨를 만나야 해요.” 나는 목이 쉰 채로 헐떡였다.

그는 짧고 재미없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시겠죠. 당신뿐만 아니라 모두가 그렇죠. 나가셔야 합니다. 지금 당장.”

그가 내 팔을 잡으려 했다. 나를 쫓던 남자들은 이제 문 앞에 있었고, 다른 경비원에게 잠시 막혀 있었다. 시간이 없었다.

내 절망은 원시적이고 날카로운 비명으로 터져 나왔다.

“강태준!”

그 소리는 동굴 같은 공간에서 메아리쳤다. 모든 머리가 돌아갔다. 모든 대화가 멈췄다. 뒤따른 침묵은 절대적이었고, 충격으로 무거웠다.

수석 경비원의 얼굴이 굳어졌다. “이걸로 끝입니다. 나가시죠.”

“안 돼요!” 나는 소리치며 손에 든 문서를 더듬었다. 나는 두꺼운 양피지를 흔들며 들어 올렸다. “나한테 계약서가 있어요! 혼인 계약서! 그 사람이랑!”

내 주장의 터무니없음, 내 모습의 터무니없음이 공중에 떠돌았다. 나는 주위 사람들의 얼굴에서 연민과 불신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은 내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내가 미쳤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때, 변화가 일어났다.

로비 전체에 집단적인 탄성이 퍼져나갔다. 아트리움 저편의 웅장하고 떠 있는 계단 근처에 서 있던 사람들이 홍해처럼 갈라졌다.

나는 그들의 시선을 따라 위를 보았다.

계단 꼭대기, 뒤의 거대한 창문을 배경으로 한 인물이 실루엣으로 서 있었다. 그는 키가 컸고, 제2의 피부처럼 보이는 완벽하게 재단된 양복을 입고 있었다. 이 거리에서도 그에게서 발산되는 힘은 명백했다. 그것은 한마디 말 없이 전체 공간을 지배하는 고요함, 응축된 강렬함이었다.

그는 유연하고 신중한 움직임으로 계단을 내려오기 시작했다. 그가 가까워질수록 그의 이목구비가 뚜렷해졌다. 날카롭고 귀족적인 광대뼈, 강한 턱, 그리고 검은 머리. 하지만 나를 사로잡은 것은 그의 눈이었다. 그것은 놀랍도록 차가운 회색이었고, 아트리움 건너편에서부터 내게 고정되어 있었다. 화나거나 놀란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평가하고, 분석하고, 완전히, 무섭도록 차가웠다.

강태준. 신화. 내 미래를 손에 쥔 남자. 그리고 그의 얼음 같은 시선에는 단 한 점의 알아봄도 없었다.

회차 3

강태준의 사무실에 흐르는 침묵은 그 남자 자신만큼이나 절대적이고 불안했다.

그 공간은 그를 완벽하게 반영했다. 미니멀하고, 강력하며, 어떤 개인적인 온기도 없었다. 한쪽 벽은 바닥부터 천장까지 이어지는 창문으로, 서울의 비에 젖은 거리와 건물들이 지도처럼 펼쳐진 신과 같은 전망을 제공했다. 다른 벽들은 갤러리처럼 새하얀 색으로 칠해져 휑했다. 가구라고는 짙고 광택 나는 목재로 된 거대한 책상과 가죽 의자 두 개뿐이었다. 공기에서는 오래된 가죽 냄새, 비싼 잉크 냄새, 그리고 건물 깊숙한 곳 어딘가에서 윙윙거리는 서버에서 나오는 희미하고 깨끗한 오존 냄새가 났다.

나는 의자 중 하나에 앉아 있었다. 차가운 가죽이 얇은 환자복 천에 달라붙었다. 폭풍우 속에서 들어온 길 잃은 동물처럼, 값비싼 양탄자 위에 물을 뚝뚝 흘리는 기분이었다. 양피지 계약서는 우리 사이의 책상 위에 놓여 있었다. 이 현대적인 신전 속의 기이하고 고대적인 유물처럼.

강태준은 내 맞은편에 앉아 있었다. 문서를 보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보고 있었다. 그의 얼음 같은 회색 눈은 가차 없었고, 내 방어막을 겹겹이 벗겨냈다. 그는 로비에서 구경하던 군중을 단 한 번의 날카로운 손짓으로 해산시키고, 엄격해 보이는 비서 ‘에블린’에게 개인 엘리베이터로 나를 안내하게 한 이후로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심장은 여전히 갈비뼈에 대고 미친 듯한 리듬을 두드리고 있었다. *무슨 말이라도 해봐. 뭐든지. 화났나? 날 쫓아낼 건가? 저 눈빛은 유리라도 깨뜨릴 것 같아.* 나는 무릎 위에서 손을 비틀었다. 손마디가 하얗게 질렸다.

마침내, 그가 계약서를 집어 들었다. 그의 길고 우아한 손가락이 놀라울 정도로 섬세하게 낡은 종이를 다루었다. 그는 표정을 읽을 수 없는 얼굴로 천천히 그것을 읽었다. 유일한 소리는 양피지가 부드럽게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창문에 부딪히는 비의 조용하고 끈질긴 두드림뿐이었다. 그의 턱은 굳게 다물려 있었고, 집중의 단단한 선을 이루었다. 놀라움도, 충격도 없었다. 오직 조용하고 강렬한 집중뿐이었다.

영원처럼 느껴지는 시간이 흐른 후, 그는 문서를 책상 위에 다시 내려놓으며 가장자리에 완벽하게 맞추었다.

“우리 법무팀에서 확인해야 할 겁니다.” 그의 목소리는 낮고 울리는 바리톤이었고, 그의 로비에 깔린 대리석처럼 차갑고 매끄러웠다. “하지만 할아버님의 서명은 알아볼 수 있군요. 진본인 것 같습니다.”

나는 참고 있던 숨을 내쉬었다. “맞아요.”

그는 의자에 등을 기댔다. 가죽이 부드럽게 신음했다. 그는 손가락을 깍지 꼈고, 그의 시선은 나를 그 자리에 고정시켰다. “그래서, 정확히 저에게 원하는 게 뭡니까, 서은하 씨?”

그 질문은 얼음덩어리 같았다. 그는 계약서에 뭐라고 쓰여 있는지 알고 있었다. 그는 나를 시험하고 있었다.

*내가 돈 때문에 왔다고 생각하는구나. 이걸 공갈 협박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그 생각은 내 공포에 새로운 굴욕감을 더하며 나를 찔렀다.

“보호요.” 내 목소리는 떨렸지만 분명했다. “제… 제 남편, 최진혁이 저를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려고 해요. 지금도 그의 부하들이 저를 찾고 있고요. 이 계약서가… 제 유일한 희망이었어요.”

강태준의 눈이 거의 알아챌 수 없을 정도로 좁혀졌다. “최진혁. 세진 그룹의.” 그건 질문이 아니었다. 그는 내 남편이 누구인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당연했다. 그들은 경쟁자였다.

“네.” 나는 속삭였다.

그는 또 한참 동안 침묵했다. 그의 시선은 내 흐트러진 모습—값싼 환자복, 눈에 서린 거친 공포—을 훑었다. 그는 계산하고 있었다. 내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변수들을 저울질하고 있었다.

“계약을 이행하겠습니다.” 그의 말은 판사의 선고처럼 단호했다.

안도감이 너무나 강하게 밀려와 머리가 어지러웠다.

“하지만,” 그는 말을 이었다. 그의 목소리가 더욱 낮아졌다. “이 합의의 조건에 대해서는 명확히 해두죠. 제 이름을 드리겠습니다. 제 절대적인 보호를 제공할 겁니다. 아무도 당신을 건드리지 못할 겁니다. 그 대가로, 당신은 공식적인 자리에서 강태준의 아내로서 요구되는 의무를 수행해야 합니다. 당신은 이름뿐인 아내가 될 겁니다. 이건 거래입니다. 애정을 기대하지 마십시오. 우정을 기대하지 마십시오. 그 이상은 아무것도 기대하지 마십시오. 이해했습니까?”

그의 제안의 냉정함은 뺨을 맞는 것 같았지만, 나는 그 뺨을 환영했다. 그것은 정직했다. 최진혁의 숨 막히는 거짓말의 거미줄 뒤에, 강태준의 잔인한 명확함은 기이하고 씁쓸한 종류의 안도감이었다. 그는 연기하지 않았다. 그는 새장을 제안하고 있었지만, 그것은 안전한 새장이었다.

“이해했어요.” 나는 거의 속삭이듯 말했다. 내게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그는 날카롭고 단호한 움직임으로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인터콤 버튼을 눌렀다. “에블린, 혼인 신고 서류 가져와. 그리고 법무팀에게 30분 후에 구청에서 만나자고 해.”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정말로 벌어지고 있었다. 몇 시간 만에, 나는 병원의 죄수에서 강태준의 약혼녀가 되었다.

그의 비서가 폴더를 들고 들어서는 바로 그 순간, 사무실 문이 벌컥 열렸다.

최진혁이 분노로 일그러진 얼굴을 하고 들이닥쳤다. 그는 비싸 보이는 변호사 두 명을 대동하고 있었다. 그의 완벽한 양복은 약간 흐트러져 있었고, 머리카락은 비에 젖어 있었다. 그는 거칠고, 궁지에 몰린 듯 보였다.

“여기 있었군!” 그가 으르렁거렸다. 그의 눈은 분노로 불타며 내게 꽂혔다. “이런 짓을 할 줄 알았어!”

그는 나를 잡으려는 듯 손을 뻗으며 내게 다가왔다. “서은하, 이건 미친 짓이야. 넌 제정신이 아니야. 집으로 가자.”

그의 변호사들은 한꺼번에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미동도 하지 않는 강태준에게 법적 위협을 퍼부었다. 그는 그저 초연한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혼란이 펼쳐지는 것을 지켜볼 뿐이었다.

“내 아내야!” 최진혁이 고함쳤다. 그의 목소리가 조용한 사무실에 울려 퍼졌다.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여자라고! 정신 나간 꽃뱀이야!”

그는 강태준의 책상 위로 파일을 던졌다. 그것은 광택 나는 목재 위를 미끄러지며 내용물을 쏟아냈다. 조작된 정신과 진단서. 내 신뢰성과 자유를 박탈하기 위해 고안된 거짓말로 가득 찬 서류들. 그것들을 보자 속이 메스꺼웠다.

“도움이 필요한 여자야.” 최진혁은 이제 강태준을 향한 연기를 하며 거짓된 걱정의 톤으로 말했다. “병원에 있어야 해. 나한테 법원 명령서도 있어.”

그는 다시 내게 달려들었다. 그의 손가락이 쇠사슬처럼 내 팔을 감쌌다. 그 손길은 전기가 오르는 듯한 순수한 공포의 충격이었다. 나는 비명을 지르며 벗어나려 애썼다. 그의 밀침, 차가운 대리석 바닥의 기억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갑자기, 근육과 고급 양복의 벽이 우리 사이에 끼어들었다.

강태준은 조용하고도 충격적인 속도로 움직였다. 그는 내 바로 앞에 서서 자신의 몸으로 나를 보호했다. 그의 손이 올라와 최진혁의 손목을 감쌌다. 그의 악력은 너무나 강해서 최진혁이 고통에 찬 비명을 질렀고, 그의 손가락은 즉시 내 팔을 놓았다.

“내 아내에게 손대지 마.” 강태준이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그것은 폭풍을 예고하는 조용한 천둥소리처럼 치명적으로 낮았다. 방 안의 온도가 20도는 떨어진 것 같았다.

최진혁은 충격으로 말을 잃고 창백한 얼굴로 그를 쳐다보았다.

강태준은 최진혁에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뒤로 손을 뻗어 에블린의 떨리는 손에서 펜을 가져갔다. 그는 폴더에서 혼인 신고서를 꺼내 단 한 번의 날카롭고 신중한 필치로 자신의 이름을 서명했다.

그는 최진혁의 손목을 놓고 그를 한 걸음 뒤로 밀쳤다. 그러고 나서 그는 조용히 문가에 나타난 자신의 경호실장에게 돌아섰다.

“윤 실장.” 강태준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최진혁 씨와 그의 동료들을 내 건물에서 내보내. 그리고, 그를 망가뜨려. 재정적으로. 직업적으로. 개인적으로. 우리가 가진 모든 자원을 동원해. 그에게 아무것도 남지 않게 해. 알겠나?”

“명심하겠습니다, 회장님.” 경호실장이 음산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최진혁은 위협과 저주를 퍼부으며 끌려 나갔다. 그의 공들여 쌓은 세계가 실시간으로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문이 닫히고, 사무실은 다시 귀가 먹먹할 정도의 침묵에 잠겼다.

나는 떨고 있었다. 온몸이 충격과 무섭고도 짜릿한 해방감으로 떨렸다. 나는 강태준의 등을, 5분 만에 나의 보호자, 나의 남편, 나의 복수자가 된 남자를 쳐다보았다.

그는 잠시 어깨를 긴장시킨 채 가만히 서 있었다. 그러고 나서, 천천히, 그는 내게로 돌아섰다.

얼음 같은 가면은 사라졌다. 처음으로, 그의 차가운 외관에 금이 갔고, 그의 회색 눈에 담긴 표정은 날것의, 가드 없는 강렬함이었다. 그는 한 걸음 더 다가와 내 시선을 찾았다.

그는 몸을 숙여, 오직 나만을 위한 낮고 긴급한 속삭임으로 말했다.

“이제,” 그가 내 충격을 가르는 단 한마디를 뱉었다. “전부 다 말해. 그가 죽인 아이 얘기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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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 아내: 쏜의 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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