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3

"아가씨!" 임하나가 정신을 잃고 쓰러지자, 매니저가 큰 소리로 외쳤다.

그때, 한 실루엣이 매니저보다 훨씬 빠르게 임하나 곁으로 달려가더니 그녀를 품에 안아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

훤칠한 실루엣, 당연히 김강준이었다.

백아진의 입가에 조롱 섞인 미소가 번졌다.

김강준이 차를 몰고 떠났으니, 그녀는 택시를 타고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4S 매장 근처에서 택시를 잡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백아진이 하이힐을 신고 한 시간을 걸은 후에야 겨우 택시를 잡을 수 있었다.

택시에 올라탄 그녀는 물집이 잡힌 발을 내려다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마음이 아픈 것 보단 발이 아픈 게 차라리 나았다.

4S 매장에서 있었던 일 뒤로, 백아진은 며칠 동안 김강준을 만나지 못했다.

굳이 그가 뭘 하고 있는지 알고 싶지도 않았다.

기다리면 임하나가 알아서 보고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9:05 강준 오빠가 직접 끓여준 죽을 먹었어.]

[18:23 강준 오빠가 직접 까준 자몽이야. 너무 맛있어 보이지? 맛보고 싶지 않아? 아쉽게도 넌 평생 맛볼 수 없을 걸.]

아래 사진은 껍질을 깐 자몽이었다.

[22:35 강준 오빠가 내 옆에서 자고 있어. 히히.]

아래 사진은 김강준이 임하나의 침대에 팔을 짚고 있는 모습이었다.

백아진은 말없이 내용을 확인하고는 휴대폰을 가방에 던져 넣었다.

마음이 무뎌진 걸까? 며칠 동안 임하나가 김강준의 일정을 일일이 보고하는 걸 보다 보니 이제는 광대 쇼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백아진은 차에서 내려 LS엔터 회사 건물로 들어갔다.

이 회사는 그녀와 김강준이 함께 설립한 회사다.

당시 그녀는 김강준과 더 깊은 관계를 맺기 위해 회사를 설립했다.

그래야 김강준이 쉽게 이별을 말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회사는 그녀의 족쇄가 되고 말았다.

"A시를 떠나 경시로 돌아가겠다고?" 회사 부사장 유재진은 백아진을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쳐다봤다. "김강준 대표는 알고 있어?"

백아진은 고개를 저었다. "아직 말하지 않았어. 선배, 일단은 비밀로 해줘."

"그래, 그래." 유재진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김강준 대표를 많이 사랑하지 않았어? 정말 떠날 수 있겠어?"

백아진은 김강준을 7년 동안이나 쫓아다녔다.

그녀의 가장 아름다운 청춘을 김강준에게 바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응, 버릴거야." 백아진은 담담하게 말했다. "내가 떠난 후, 회사 지분 분할에 관한 문제는 선배한테 맡길게. 수고해 줘."

"그렇게까지 예의를 차릴 필요 없어." 유재진은 고개를 숙여 눈에 번지는 기쁨을 감췄다. "넌 내 후배 잖아. 내가 LS에 들어올 수 있었던 것도 네가 적극적으로 추천해 준 덕분이야."

백아진은 유재진을 고마운 눈빛으로 쳐다봤다.

회사는 그녀의 것이지만, 실질적으로 회사를 운영하는 사람은 유재진이었다.

유재진이 없었다면, 회사는 일찍이 망했을 것이다.

백아진은 마지막으로 회사를 한 바퀴 둘러본 후에야 떠났다.

유재진은 직접 그녀를 회사 건물 아래까지 배웅했고, 그녀의 차가 멀어지는 것을 보고 나서야 아쉬운 눈빛으로 고개를 돌려 다시 회사로 올라갔다.

차에 올라탄 백아진은 휴대폰을 열어 해야 할 일을 확인 하며 <회사 지분 문제 해결하기> 라는 마지막 두 번째에 위치한 항목을 리스트에서 지웠다.

그리고 마지막 일에 시선을 고정했다.

<서산에서 이사하기>

서산에서 나오고 나면 그녀와 김강준은 완전히 남이 될 것이다.

백아진은 묵묵히 운전대를 잡았다.

차 안의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서산에 도착한 그녀는 곧장 2층으로 올라갔다.

그녀가 집에 돌아온 것을 본 고용인들은 그녀를 투명 인간 취급하듯 아무도 인사를 건네지 않았다.

그들은 김강준이 그녀를 전혀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서산에 들어온 이후, 김강준은 집에 돌아오는 횟수가 현저히 줄어들었다.

백아진은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녀와 김강준은 각방을 쓰고 있었다.

옷장에는 명품 브랜드의 옷들로 가득 차 있었다.

모두 김강준이 그녀에게 선물한 옷들이었다.

하지만 백아진은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녀는 허리를 굽혀 자신의 캐리어를 꺼냈다.

그녀가 짐을 정리하고 있을 때, 아래층에서 경적 소리가 들려왔다.

"김 대표님..."

"김 대표님..."

"김 대표님..."

공손한 목소리가 현관에서부터 들려왔다.

김강준이 돌아온 것이다.

백아진은 황급히 캐리어를 다시 옷장 안에 넣었다.

그녀는 김강준에게 그녀가 떠날 것이라는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았다.

그녀가 캐리어를 넣고 고개를 들자, 문 앞에 우뚝 선 남자의 그림자가 보였다.

남자의 눈가에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잘생긴 이목구비는 복도에 비치는 따뜻한 조명을 입어 더욱 입체적으로 보였고 너무 완벽해 마치 예술 작품 같았다.

백아진은 숨을 멈췄다.

"뭐 하는 거야?" 김강준의 뜨거운 시선이 그녀를 꿰뚫어 보는 것 같았다.

백아진은 캐리어를 가리고 말했다. "물건을 찾고 있었어."

김강준은 별 의심 없이 안으로 들어섰다.

"요즘 너무 바빠, 심정우가 스케즐을 체크했어. 19일은 시간이 빈대. 그날 혼인신고 하자."

또 통보하는 말투였다.

백아진은 고개를 살짝 들었다. "19일은 내 생일이야."

그녀는 김강준의 눈에 언뜻 스친 당황한 기색을 포착했다.

"그날은 이미 약속이 있어."

"넌 여태 생일을 챙기지 않았잖아?"

'너와 함께 보내지 않을 뿐이야.'

백아진은 결국 이 말을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았다.

"그럼 다른 날로 정하자."

김강준은 넥타이를 살짝 풀어 내고는 욕실로 들어갔다.

30분 후, 남자는 피어 오르는 안개와 함께 욕실에서 나왔다.

그는 수건 한 장만 몸에 두르고 있었다.

물방울이 그의 가슴 근육을 따라 흘러내려 선명하게 보이는 복근에 머물렀다.

한때 백아진을 미치게 만들었던 그의 탄탄한 근육이지만 이제 그녀는 아무런 감흥도 없었다.

김강준은 휴대폰만 내려다보고 있는 백아진을 쳐다보며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예전 같았으면 그가 근육을 드러내기 바쁘게 백아진은 달려와 그의 몸을 만졌을 것이다.

"자자."

김강준은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웠다.

백아진은 어둠 속에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 나도 돌아가야 겠어."

김강준은 미간을 더욱 찌푸린 채, 문이 열리고 닫히는 것을 지켜봤다.

방은 다시 어둠에 잠겼다.

그의 마음속에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스쳤다.

하지만 곧바로 그 불안감을 억눌렀다.

'아니야. 아무 일도 없을 거야.'

남은 며칠 동안, 백아진은 김강준을 만나지 못했다.

유재진의 말에 따르면, 김강준은 출장을 떠났다고 했다.

그조차도 김강준과 연락이 닿지 않는다고 했다.

예전의 백아진이었다면 이건 절대 좋은 소식이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소식이었다.

그녀는 김강준이 없는 틈을 타 서산에 가서 짐을 정리할 수 있었다.

서산에 있는 그녀의 물건은 많지 않았다.

대부분은 그녀가 김강준에게 선물한 물건들이었다.

커플 시계, 옷, 곰 인형...

하지만 김강준은 유치하다는 이유로 물건들을 옷장 구석에 처박아 두었다.

그녀는 선물들을 하나씩 꺼내 캐리어에 넣었다.

그리고 꽉 찬 캐리어를 들고 서산을 떠났다.

그녀가 캐리어를 들고 나가는 것을 본 고용인들은 그녀가 출장을 떠나는 줄 알고 아무도 묻지 않았다.

시간은 눈 깜짝할 사이에 19일이 되었다.

백아진은 모든 일을 처리했다.

이제 20일이 되기만 기다리면, 이 도시를 떠날 수 있다.

저녁.

백아진은 혼자 시내 케이크 가게에 들러 케이크를 사, 공원원 벤치에 앉아 케이크를 야금야금 먹었다.

케이크는 너무 달콤했다.

이제 그녀는 김강준이 자신을 떠날까 노심초사하지 않아도 됐다.

그녀는 어두운 하늘을 올려다보며 입가에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때,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불꽃이 터졌다.

오색찬란한 불꽃이 밤하늘을 수놓으며 대낮처럼 환하게 밝혔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백아진의 목이 뻐근해질 때쯤, 불꽃놀이가 끝났다.

그녀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백아진은 휴대폰을 꺼내 확인했다.

김강준이 보낸 메시지였다.

[불꽃놀이 마음에 들어? 생일 축하해!]

백아진의 눈앞이 흐릿해졌다. 그녀는 김강준에게서 생일 축하 메시지를 받아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마지막 날에 그에게서 생일 축하 메시지를 받게 될 줄이야...

그녀가 메시지를 열고 '고마워'라고 입력하려 할 때, 메시지가 하나 더 도착했다.

임하나가 보낸 사진이었다.

백아진이 사진을 열자, 미역국 한 그릇이 보였다.

[강준 오빠가 직접 끓여준 미역국이야. 오늘이 네 생일이라며? 강준 오빠한테 특별히 미역국을 끓여달라고 했어. 히히, 나는 미역국을 먹고 있는데, 넌? 못 먹었지? 생일인데 너무 불쌍해!]

백아진의 눈가에 맺혔던 눈물이 순식간에 말라 들었다.

그녀는 김강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네가 끓여 준 미역국이 먹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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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혼 당한 나는 초스피드 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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