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3
김서완의 목덜미를 낚아챈 소천경이 그녀를 한 대 때리려는 순간, 김서완이 먼저 소천경을 단숨에 기절시켰다.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는 한담 가장자리를 향해 달렸다.
맑고 잔잔한 수면 위에 거뭇거뭇한 반점이 가득 나 있는 얼굴이 비쳤다.
몸 주인이 원래 못생겼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못생겼을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더 이상 얼굴을 쳐다보고 싶지 않았던 그녀가 대나무 숲으로 들어가더니 아침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김서완이 떠나고 얼마 후, 기절해 있던 소천경이 깨어났다.
"왕야, 수하의 불찰입니다. 부디 벌을 내려 주시옵소서!"
뒤늦게 도착한 호위대장 경태가 한 쪽 무릎을 꿇고 잔뜩 겁에 질린 얼굴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그는 대나무 숲에 숨은 자객을 제때에 발견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자객의 기습에 기절하여 큰 화를 초래할 뻔했다.
비록 왕야가 목숨의 위협을 받지 않았지만, 그의 엉망진창인 몰골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을 뿐더러 머릿속에 불길한 추측들이 자꾸 피어 올랐다.
"오늘 누가 이 산에 들어왔는지 당장 찾아내거라. 본 왕의 손으로 그 계집을 갈기갈기 찢어 죽일 것이다."
소천경은 그 여인이 자객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아마 산에서 발을 헛디디며 굴러 떨어져 우연히 그를 만난 것이겠지.
그렇다면 분명 어딘가에 단서를 남겼을 것이다. 야밤에 산을 들어온 사람을 알아내면, 반드시 그 계집을 찾아낼 수 있을 테지.
....
그 시각, 김서완은 자신이 이미 소천경의 추적 명단에 올랐다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일찍이 성문을 지난 그녀는 평양후작부 대문 앞에 도착했다.
오늘은 김씨 가문과 박씨 가문이 혼인하기로 약조한 날이다. 대문 앞에 화려한 등불을 가득 매단 후작부에서는 시끌벅적한 북소리가 울려 퍼졌다. 후작부를 뒤덮은 경사스러운 분위기에 이상한 점은 조금도 발견할 수 없었다.
길 양 켠에 모여든 백성들은 저마다 낮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듣자 하니 김씨 가문 큰 아가씨가 어젯밤에 야반도주를 했다지. 하여 오늘 김씨 가문 둘째 아가씨가 대신 혼인한다던데, 사실인가?"
곁에 선 사내가 눈을 흘기며 말했다. "이 두 눈으로 추녀가 외간 남자와 마차를 타고 성 밖으로 나가는 것을 봤는데, 내가 거짓말이라도 한단 말이오?"
"이런, 멀쩡한 세자빈 자리를 버리고, 혼인 전날 밤에 야반도주라니. 승상댁에서 어찌 이리도 멍청한 아가씨가 나왔단 말인가."
"야반도주라도 하길 다행이지. 못생긴 데다 멍청하기까지 한 사람이 어떻게 세자의 세자빈이 될 수 있겠어..."
김서완은 백성들이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태연하게 길가에서 따온 바나나를 한입 베어 물었다.
어쩐지 김이연이 위험을 무릅쓰고 몸 주인을 성 밖으로 내보내려 하다니, 속에다 이런 꿍꿍이를 담고 있었군.
혼인 전날, 신부가 외간 남자와 야반도주했다는 소문은 김씨 가문과 박씨 가문에 큰 망신을 주었다. 이럴 때 경성 제일 미녀인 김이연이 자발적으로 후작부에 시집가겠다고 나선다면, 평양후작부의 명성을 지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박창세는 경성에서 아름답기로 소문난 여인을 세자빈으로 맞이할 수 있었다. 그야말로 꿩 먹고 알 먹는 격이다.
참으로 계획을 잘 세웠다고 칭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가 이 세계로 오지 않았다면, 모든 것이 김이연의 계획대로 진행되었을 것이다.
바로 그때, 멀지 않은 곳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폭죽이 동시에 터지는 소리를 시작으로 징과 북이 길을 열며 높은 말에 올라탄 박창세가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선두에 나타났다. 그 뒤로 여덟 명의 하인이 정교하면서도 화려하게 만들어진 가마를 짊어지고 웅장하게 거리를 가로질러 후작부 대문 앞에 멈춰 섰다.
"김이연 아가씨는 얼굴이 예쁘장한 데다 마음씨까지 고우니, 듬직하고 풍채가 뛰어난 박창세 세자와 아주 천생연분이라지."
붉은색의 혼례복을 입고 꽃 가마에서 내린 김이연은 한곳에 모인 사람들의 칭찬을 듣더니 붉은 너울 아래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비록 그녀는 경성 제일 미녀라고 불리지만, 생모의 출신이 낮은 탓에 경성의 권문세가 아가씨들은 늘 그녀를 꺼려했다.
이제 드디어 그녀가 오매불망 바라던 후작부에 시집오게 되었으니, 박창세가 후작부를 물려받으면 그녀는 존귀한 신분인 후작 부인이 될 것이다. 때가 되면 어느 누가 감히 그녀를 안중에 두지 않을 수 있을까?
장어멈의 손에서 붉은 비단을 받아 든 그녀는 허리를 꼿꼿하게 펴고 발을 앞으로 내디뎠다. 그 모습은 마치 날개를 활짝 편 공작새가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후작부를 향해 걸어가는 것 같았다.
고고한 자태로 앞으로 걸어 나간 김이연은 갑자기 발밑이 미끄러지는 것을 느끼더니 몸의 균형을 잃고 앞으로 자빠지는 것이다. 그 충격에 머리에 쓴 너울도 함께 날아가 버렸다.
"아!"
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김이연은 외마디 비명을 내지르며 바닥에 얼굴을 찧었다.
"저런..." 구경꾼들은 잇달아 숨을 들이마시며 그녀 대신 심한 통증 느끼는 것 같았다.
장어멈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혼례 날, 신부가 신랑 집 대문 앞에서 자빠지는 것도 모자라 너울이 벗겨지다니. 이보다 더 큰 불길은 없을 것이다.
제일 빠른 속도로 달려온 박창세가 김이연을 부축하더니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이연아, 괜찮느냐?"
말이 끝나기 무섭게 김이연의 빨개진 코에서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고, 얼굴 군데군데 묻은 폭죽의 잔해에 신부의 단아하면서도 청초한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치밀어 오르는 통증에 김이연은 분통이 터질 것 같았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화를 낼 수 없었다.
손을 들어 박창세 앞으로 내민 그녀가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얼굴로 흐느끼며 말했다. "세자 오라버니, 너무 아픕니다..."
그녀의 손바닥에 난 상처를 발견한 박창세가 안타까움에 위로의 말을 건네더니 구경꾼들을 돌아보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누구냐, 누가 바닥에 바나나 껍질을 버린 것이냐?"
그는 어느 간이 배 밖으로 나온 녀석이 후작부까지 찾아와 난동을 부리는지 똑똑히 지켜볼 생각이었다.
곧바로 그는 모여든 구경꾼들 속에서 낯익은 그림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