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1
첫 번째 삶에서 나는 강성 그룹의 사랑받는 양녀였다.
완벽한 세 오빠는 내게 애정을 쏟아부었고, 첫사랑 강지혁은 세상이라도 가져다줄 듯 약속했다.
하지만 모든 것은 거짓이었다.
그들이 대저택에 불을 질렀을 때, 그들은 정원에 서서 내가 불타는 것을 지켜봤다.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그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어차피 고아 주제에.”
“몇 년 동안 사랑하는 척하느라 피곤해 죽는 줄 알았네.”
불 속으로 뛰어든 유일한 사람은 강태건, 모두가 나를 싫어한다고 말하던 차갑고 무뚝뚝한 작은아버님뿐이었다.
그는 무너지는 지붕 아래에서 나를 끌어안고 속삭였다.
“내가 함께 있어.”
그는 나를 위해 죽었다.
내 세상은 그들의 애정이라는 완벽하고 끔찍한 거짓말 위에 세워져 있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다시 깨어났다.
화재가 일어나기 일주일 전, 변호사 사무실에서.
수조 원대 재산을 상속받으려면, 유언장에 따라 세 오빠, 즉 나를 죽인 살인자 중 한 명과 결혼해야만 한다.
변호사가 내 선택을 물었을 때, 나는 미소 지었다.
“저는 강태건 님을 선택하겠습니다.”
제1화
사람들은 죽을 때 자신의 삶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고 말한다.
내게는 화재 현장이었다.
열기, 연기, 그리고 낡은 대저택이 불길에 산 채로 잡아먹히며 내는 신음 소리.
그리고 정원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세 양오빠, 강지혁, 강태민, 강서준의 얼굴.
그들은 나를 구하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내가 불타 죽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돌아가신 양아버지의 변호사, 그 차갑고 조용한 사무실에 앉아 그 모든 것을, 모든 세세한 부분까지 기억해 냈다.
“서하윤 양.”
김 변호사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유언장이… 아주 구체적입니다.”
그는 안경을 고쳐 쓰며 우리 사이의 커다란 마호가니 책상 위에 놓인 서류를 내려다보았다.
“강성 그룹과 그 모든 자산, 수조 원에 달하는 가치를 상속받으려면, 결혼을 해야 합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미 아는 내용이었다.
“결혼은 강성 가문의 일원과 해야 합니다.”
그는 더 이상 내가 받을 자격이 없는 부드러운 연민이 가득한 눈으로 말을 이었다.
그는 내가 슬픔에 잠긴 혼란스러운 소녀라고 생각했다.
내가 두 번째 기회를 얻어 내 몸으로 돌아온 복수심에 불타는 유령이라는 사실을 그는 전혀 몰랐다.
“생각은 좀 해봤나요, 하윤 양? 유언장에는 세 오빠 중 한 명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강지혁, 강태민, 또는 강서준 군 중에서요.”
내 오빠들.
잘생기고, 나를 끔찍이 아끼던 양오빠들.
그들 중 누구도 우리 아버지나 서로를 조금도 닮지 않았다는 건 가족의 농담거리였다.
모두가 애써 무시하던 사실.
그들은 내게 미소 지으며 내 살인을 계획했다.
“네, 생각해 봤어요.”
내 목소리는 흔들림 없었다.
김 변호사는 이해한다는 듯 작게 미소 지었다.
“그럴 거라 생각했습니다. 언론은 이미 결정을 내렸더군요. 하윤 양과 강지혁 군은 어릴 때부터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였으니. 논리적이고, 감히 말하자면 낭만적인 결론처럼 보입니다.”
나는 그 로맨스를 기억했다.
그의 부드러운 입맞춤과 상냥한 거짓말들을 기억했다.
지난 삶에서 그가 내 미래라고 믿으며 “네”라고 대답했던 것을 기억했다.
나는 또한 그가 다른 여자, 윤세아의 손을 잡고 내 죽음이 마침내 그들을 부자로 만들어 줄 것이라고 말하던 것도 기억했다.
“아니요.”
조용한 방 안에서 그 단어는 날카롭고 차갑게 울렸다.
김 변호사의 미소가 멈칫했다.
“아니라니요?”
“전 강지혁 씨와 결혼하지 않을 겁니다.”
그는 놀라서 눈을 깜빡였다.
“아. 그럼 혹시 강태민 군은? 그는 안정적인 청년이죠. 아니면 강서준 군은? 그는 항상 하윤 양에게 아주… 다정했잖습니까.”
그는 도움이 되려고 애썼다.
불쌍한 고아 소녀를 올바른 선택으로 이끌려 하고 있었다.
“강태민 씨나 강서준 씨와도 결혼하지 않을 겁니다.”
그의 얼굴에 떠오른 놀라움은 진정한 혼란으로 바뀌었다.
그는 앞으로 몸을 기울이며 목소리를 낮췄다.
“하윤 양, 분명히 해야 합니다. 유언장은 절대적입니다. 만약 그들 중 한 명을 선택하지 않으면, 강성 그룹의 모든 재산은 청산되어 여러 자선 단체에 기부될 겁니다. 하윤 양은 아무것도 남지 않게 돼요.”
“조건은 이해하고 있어요.”
나는 그의 말을 차분하게 끊었다.
나는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저는 제 선택을 했습니다.”
그는 펜을 메모장 위에 든 채 기다렸다.
나는 숨을 골랐다.
이것이 첫걸음이었다.
그들이 시작된 줄도 모르는 전쟁의 첫 수.
“저는 강태건 님을 선택하겠습니다.”
김 변호사의 펜이 책상 위로 쨍그랑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그의 눈이 커지고, 전문가다운 침착함이 완전히 산산조각 났다.
“강태건 님이라고요?”
그는 마치 그 이름을 말하는 것이 범죄라도 되는 듯 속삭였다.
“하지만… 하윤 양, 그는…”
“제 양아버지의 이복 남동생이시죠. 알고 있어요.”
내가 그의 말을 끝맺었다.
“법적으로나 입양으로나 제 작은아버님이시고요.”
방 안은 한동안 침묵에 잠겼다.
그는 나를 쳐다보았다.
처음으로 나를 제대로 보는 듯했다.
소녀가 아니라, 그가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로.
“그게 제 결정이에요.”
나는 흔들림 없는 시선으로 말했다.
내 목소리는 얼음장 같았다.
그는 마른침을 삼키며 천천히 서류를 챙겼다.
충격을 받은 듯 보였다.
“알겠습니다… 서류를 하윤 양의 선택에 맞게 수정하겠습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떠날 준비를 했다.
“김 변호사님.”
문가에 선 그를 멈춰 세우며 내가 말했다.
“이 대화는 공식 발표 전까지 우리 둘만의 비밀로 해주세요.”
그는 여전히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그는 문손잡이를 잡은 채 잠시 멈췄다.
“하윤 양, 솔직하게 여쭤봐도 될까요… 왜 그분입니까? 강태건 님은 하윤 양의 입양을 유일하게 반대했던 분입니다. 단 한 번도 따뜻한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으셨잖습니까.”
의자 팔걸이를 잡은 내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다.
차갑다.
그래, 그는 차가웠다.
모두가 강태건을 내 존재를 겨우 참아내는 과묵하고 무뚝뚝한 작은아버지로 보았다.
나를 못마땅한 눈으로 쳐다보던, 강력하고 존경받는 사업가로.
하지만 나는 진실을 알고 있었다.
나는 이미 한 번 살고 죽은 여자니까.
첫 번째 삶에서 나는 서하윤, 강성 그룹의 사랑받는 양녀였고, 완벽한 세 오빠의 애정을 듬뿍 받았다.
그들이 내 세상이었다.
강지혁은 내 첫사랑, 내 모든 것이었다.
그리고 모든 것은 거짓이었다.
유일하게 진실했던 사람은 강태건이었다.
내게 한 번도 웃어주지 않고, 단 하나의 선물도 주지 않았던 차갑고 말없는 남자.
결국, 불 속으로 나를 위해 뛰어든 유일한 남자.
나는 아직도 그의 팔이 나를 감싸고, 그의 몸이 무너져 내리는 불타는 잔해로부터 나를 보호하던 것을 기억했다.
“내가 여기서 꺼내줄게, 하윤아.”
그는 연기 때문에 쉰 목소리로 힘겹게 말했다.
“약속할게.”
나는 그의 품에서 울었다.
배신 이후 처음으로 흘리는 진짜 눈물이었다.
그는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지붕이 무너져 내렸다.
하지만 내가 마지막 숨을 거둘 때, 그는 나를 꽉 안고 속삭였다.
“괜찮아. 내가 함께 있어.”
그는 나와 함께 죽었다.
나를 위해.
이번 생에서는, 그가 다치게 두지 않을 것이다.
이번 생에서는, 그들 모두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나는 그날 늦게 강성 그룹의 대저택으로 돌아왔다.
현관을 지날 때, 머리 위의 거대한 크리스털 샹들리에가 깜빡였고, 천장에서 희미하게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가정부가 전선이 낡았다고 말했던 것이 떠올랐다.
나는 그 생각을 머릿속에 담아두었다.
세 사람은 거실에 있었고, 걱정스럽고 사랑스러운 오빠들처럼 보였다.
“하윤아, 돌아왔구나.”
지혁이 부드럽고 따뜻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일어서며 잘생긴 얼굴에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김 변호사님과는 어땠어?”
“설명은 다 들었어?”
언제나 현실적인 태민이 물었다.
서준은 그저 부드럽고 예술가적인 미소를 지었다.
“걱정 마, 하윤아. 무슨 일이 있든 우리가 곁에 있을게.”
거짓말.
전부 다.
“조건은 설명 들었어.”
나는 감정이 싹 가신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서,”
지혁이 가까이 다가오며 말했다.
“결정했어? 물론 시간이 더 필요하면 괜찮아. 하지만 내가 널 돌봐줄 거란 건 알지.”
그는 너무나 자신만만했다.
몇 년 동안 자신을 숭배해 온 소꿉친구가 그의 품에 바로 안길 것이라고 확신했다.
지난번처럼.
“결정했어.”
나는 그들의 기대에 찬 얼굴을 보며 말했다.
“일주일 뒤에 다들 알게 될 거야. 내 생일 파티에서.”
나는 돌아서서 계단을 올라갔다.
그들의 자신감과 계략 속에 그들을 남겨두고.
일주일.
일주일 후면 내가 그들의 세상을 잿더미로 만들어 버릴 것이다.
회차 2
이틀 후 초인종이 울렸다.
세 사람 중 감수성 예민한 예술가인 서준이 소파에서 거의 뛰쳐나가 문을 열었다.
“왔어!”
그가 흥분에 찬 밝은 목소리로 외쳤다.
나는 창가 안락의자에 앉아 책을 읽는 척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 눈은 문간에 고정되어 있었고, 뱃속은 차갑고 단단한 매듭처럼 꼬여 있었다.
안으로 들어온 소녀는 내가 기억하던 모습 그대로였다.
윤세아.
그녀는 장학생 신분을 강조하려는 듯 소박하고 약간 낡은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머리는 수수한 포니테일로 묶었고, 얼굴은 상냥하고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완벽하게 위장하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행운을 믿지 못하는 가난하고 감사할 줄 아는 소녀의 전형이었다.
그녀는 또한 내가 아는 가장 무자비하고 야심 찬 독사였다.
“지혁 오빠! 태민 오빠! 서준 오빠!”
그녀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선율 같았다.
“세아야! 왔구나!”
지혁이 나에게 한 번도 보여준 적 없는, 더 넓고 진심 어린 미소로 그녀를 맞았다.
“소식 듣자마자 달려왔어요!”
그녀는 눈물을 머금은 채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그녀는 작고 반짝이는 물건을 들어 올렸다.
“제가 해냈어요! 전국 기술 창업 경진대회에서! 제 프로젝트가 1등 했어요!”
그녀의 얼굴은 기쁨에 찬 불신으로 가득했다.
나는 의자에 앉아 세 오빠가 그녀에게 온통 정신이 팔린 모습을 지켜보았다.
나는 그들이 몇 년 동안 내게 속삭였던 맹세들을 기억했다.
“오빠가 항상 지켜줄게, 하윤아.”
“네 꿈이 내 꿈이야.”
“누구도 너보다 더 중요할 순 없어.”
이제, 그 맹세들은 다른 사람에게 바쳐지고 있었다.
“대단하다, 세아야!”
태민이 그녀의 어깨를 치며 말했다.
“네가 해낼 줄 알았어!”
“어디 보자.”
서준이 평소 귀한 예술품에나 보이던 경외심을 담아 그녀의 손에서 금메달을 받아 들었다.
“아름답다. 너처럼.”
세아는 얼굴을 붉혔다.
섬세한 분홍빛이 뺨을 물들였다.
“오빠들 도움이 없었다면 못 했을 거예요. 재단에서 장학금도 주시고, 다들 격려해주셔서…”
그녀의 목소리가 갈라졌고, 완벽한 눈물 한 방울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이런, 울지 마.”
지혁이 즉시 낮고 위로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그녀를 부드럽게 안아주었다.
“네가 이뤄낸 거야. 넌 똑똑하잖아.”
그 장면은 역겨울 정도로 익숙했다.
그들이 몇 년 동안 내게 쏟아부었던 칭찬은 모두 연습이었을 뿐이다.
그녀를 위한 연습.
내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랑은 그저 진짜 주인이 나타날 때까지 잠시 빌려온 것에 불과했다.
세아는 지혁에게서 떨어져 눈물을 닦고는 내게로 돌아섰다.
그녀의 미소는 달콤했지만, 눈에는 승리감의 빛이 서려 있었다.
“하윤아, 네가 제일 먼저 알았으면 했어. 넌 항상 나한테 친절했으니까.”
그녀는 다가와 메달을 내밀었다.
“고마움의 표시로, 이걸 너에게 주고 싶었어.”
내 눈은 그녀의 손에 들린 메달로 향했다.
나는 새겨진 글씨를 보았다.
전국 기술 창업 경진대회 - 대상
나는 그 대회를 잘 알고 있었다.
나 자신도 거기에 프로젝트를 제출했었다.
내 시선은 메달을 지나 그 뒤에 작게 접힌 증서로 향했다.
수상 프로젝트: ‘AURA’ - 사회 복지 배분을 위한 예측 AI
설계자: 윤세아
하지만 설계자는 윤세아가 아니었다.
설계자는 나였다.
‘AURA’는 내 졸업 논문이었고, 일 년 넘게 내 심혈을 기울인 프로젝트였다.
나는 지난달에 최종 제안서를 지혁에게 보여주며 내 작업에 대해 무척 자랑스러워했다.
그는 정말 격려해 주었었다.
그가 그녀에게 주었음에 틀림없다.
책 속에 감춰진 내 손이 휴대폰을 꽉 쥐었다.
손마디가 하얗게 질렸다.
“그 메달,”
나는 위험할 정도로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 거야.”
내 말은 방 안에 돌처럼 떨어졌다.
메달이 갑자기 힘이 빠진 세아의 손가락에서 미끄러졌다.
대리석 바닥에 부딪히며 쨍그랑 소리를 냈고, 한쪽 귀퉁이가 작게 부서졌다.
세아는 부서진 메달을 보며 얼굴을 구겼다.
“하윤아… 나… 난 이해가 안 돼.”
그녀는 상처받은 목소리로 더듬거렸다.
“난 그냥 내 기쁨을 너랑 나누고 싶었을 뿐이야. 만약… 만약 네가 싫다면,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잖아…”
“세아야, 그만해.”
지혁이 그녀 곁으로 달려가 바닥에 떨어진 부서진 상에서 그녀를 끌어당겼다.
“줍지도 마. 다칠라.”
“그냥 멍청한 메달일 뿐이야.”
태민이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우리가 백 개라도 사줄 수 있어, 세아야.”
서준은 그녀를 품에 안았다.
“괜찮아. 네가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우린 알아. 넌 우리가 아는 사람 중에 가장 재능 있어.”
그는 내 쪽으로 순수한 독기를 품은 시선을 던졌다.
“서하윤, 너 대체 왜 그래? 세아가 좋은 소식 전하러 왔는데, 애처럼 짜증이나 내고?”
서준의 품에 안긴 세아는 눈물 어린 감사한 눈으로 그들을 올려다보았다.
작고 승리에 찬 미소가 그녀의 입술에 잠시 스쳤다가 그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나는 내 집에서 이방인이 된 기분이었다.
그들의 완벽한 사랑 이야기에 끼어든 침입자.
그들은 내가 그저 질투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아무것도 몰랐다.
내 프로젝트를 훔친 것은 세아가 아니었다.
그녀는 그렇게 똑똑하지 않았다.
그들이었다.
지혁이었음에 틀림없다.
그녀의 이름으로 다시 제출할 수 있는 접근 권한과 기술적 지식을 가진 사람은 그뿐이었다.
그들은 내 작품, 내 꿈을 훔쳐서 그녀에게 은쟁반에 담아 바쳤다.
“세아한테 사과해.”
지혁이 정말 화가 났을 때 사용하던 낮고 위협적인 톤으로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지금 당장.”
그는 내게 한 걸음 다가왔다.
“사과하지 않으면, 서하윤, 너랑 나랑은 끝인 줄 알아.”
과거의 나라면 무너졌을 것이다.
그의 사랑을 잃을까 봐 두려워하며 흐느끼고 용서를 빌었을 것이다.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내가 저지르지도 않은 죄에 대해 사과했을 것이다.
나는 그 소녀를 기억했다.
나는 그녀의 나약함을 기억했다.
그녀는 죽었다.
“싫어.”
나는 그의 분노에 찬 시선을 피하지 않고 맞받아쳤다.
오빠들은 모두 나를 쳐다보았다.
그들의 충격은 역력했다.
나는 평생 단 한 번도 지혁에게 반항한 적이 없었다.
세아는 서준의 어깨 너머로 엿보았다.
그녀의 연기가 잠시 흐트러졌다.
진심으로 놀란 듯 보였다.
그러다 그녀는 재빨리 평정을 되찾고, 다시 목소리를 떨었다.
“내 잘못이야.”
그녀가 그들의 소매를 잡아당기며 속삭였다.
“내가 오지 말았어야 했어. 난 그냥 장학금 받는 가난한 애일 뿐이야. 난… 난 너희들 같은 사람이 아니야. 너희의 친절을 받을 자격이 없어.”
그것은 명연기였다.
“그런 말 마!”
태민이 즉시 말했다.
“넌 누구보다 가치 있어, 세아야.”
서준이 그녀를 더 꽉 안으며 덧붙였다.
지혁의 눈은 그녀를 볼 때 부드러워졌다가, 다시 내게로 돌아설 때 굳어졌다.
가슴속 통증은 무디고 익숙한 아픔이었다.
내 열여덟 번째 생일이 기억났다.
나는 첫 번째 주요 디자인 상을 받았다.
그들은 나를 위해 성대한 파티를 열어주었다.
“넌 천재야, 하윤아.”
지혁이 불꽃놀이 아래에서 내게 키스하며 말했다.
“우리의 천재.”
이제 그들의 천재는 다른 사람이었다.
회차 3
그들은 기억이나 할까?
그 모든 약속들이 조금이라도 의미가 있었을까?
나는 돌아서서 나가려고 했다.
그들과, 그녀를 향한 그들의 숨 막히는 거짓 애정이 가득한 같은 방에 더는 있을 수 없었다.
“어딜 가려고.”
지혁의 손이 내 팔을 꽉 잡았다.
그의 손가락이 내 살을 파고들었다.
“사과하라고 했잖아.”
그의 눈은 차가웠다.
사업상의 경쟁자에게나 향하던 날카롭고 베는 듯한 분노로 가득했다.
내게는 아니었다.
지금까지는.
메스꺼움이 밀려왔다.
나는 그가 이렇게 내 팔을 잡았던 다른 때를 기억했다.
내가 실수로 세아의 교과서에 커피를 쏟았을 때였다.
그녀는 울었고, 그는 나를 무릎 꿇려 사과하게 했다.
모든 집안 직원들 앞에서 그녀의 용서를 빌게 했다.
그 기억, 그 굴욕이 뱃속에서 불타올랐다.
나는 지쳤다.
그들의 장기 말이 되는 것에 너무나 지쳤다.
‘그들끼리 가지게 둬.’
차가운 목소리가 내 머릿속에서 속삭였다.
‘모든 걸 가지게 둬.’
내가 가진 줄도 몰랐던 힘으로, 나는 그의 손아귀에서 팔을 뿌리쳤다.
“싫다고 했어.”
지혁의 손은 허공에 남겨졌다.
그의 얼굴은 불신의 가면이었다.
나는 전에는 그에게서 결코 멀어진 적이 없었다.
나는 항상 그의 손길에 녹아들고, 그의 관심을 갈망했다.
그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우리가 너무 잘해줬나, 서하윤?”
그가 위험할 정도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게 문제야?”
나는 짧고 무미건조한 웃음을 터뜨렸다.
“나한테 너무 잘해줬다고? 아니, 지혁아. 내가 너희 모두에게 너무 잘해준 것 같아.”
세아가 나타난 이후로, 마치 스위치가 켜진 것 같았다.
사소한 관심, 무심한 애정, 우리만의 농담들.
그 모든 것이 이제 그녀에게로 흘러갔다.
내게는 부스러기만 남았다.
첫 번째 삶에서, 나는 필사적으로 그들을 되찾으려 애썼다.
모든 모욕을 삼키고, 모든 무시를 외면하고, 모든 굴욕을 견뎠다.
결코 내 것이 아니었던 사랑을 위해 싸웠다.
그리고 그 결과 나는 죽었다.
그들이 직접 지른 불에 산 채로 타 죽었다.
살갗이 녹아내리던, 타는 듯한 고통의 기억이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넌 그냥 버릇없는 애새끼일 뿐이야.”
지혁이 분노로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으르렁거렸다.
“넌 우리 양동생이야. 우리가 모든 걸 줬어. 네가 꿈도 꿀 수 없었던 집, 삶을.”
그는 또 한 걸음 다가와 나를 벽으로 몰아붙였다.
“넌 아무 권리도 없어. 우리가 널 생각해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해. 유언장에는 우리 중 한 명과 결혼해야 한다고 되어 있어. 넌 무릎 꿇고 날 선택해달라고 빌어야 마땅해.”
그는 거의 침을 튀기며 말을 뱉었다.
“아니.”
나는 떨리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다시 말했다.
“안 해.”
세아는 그 순간 자신의 역할을 하기로 했다.
그녀는 태민의 소매를 잡아당기며, 가짜 고통으로 눈을 크게 떴다.
“아마… 아마 내가 그냥 가야 할까 봐.”
그녀가 속삭였다.
“아니, 넌 아무 데도 안 가!”
세 사람이 거의 동시에 말하며 그녀를 위로하기 위해 돌아섰다.
그것은 잘 짜인 연극이었다.
“사랑해, 세아야.”
태민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부드럽게 말했다.
그 말은 그녀를 위한 것이었지만, 내 심장에 박힌 칼날이었다.
그들은 설명하려 했다.
세아에 대한 감정은 다르다고, 그녀는 그저 도와주는 친구일 뿐이라고 말하려 했다.
거짓말.
차가움이 내 몸 전체로 퍼져나갔다.
너무나 깊어서 거의 평화로울 정도였다.
나는 마침내, 진정으로 끝났다.
갑자기, 위에서 큰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내 머리가 홱 돌아갔다.
깜빡이는 불빛과 가정부의 경고가 머릿속에 스쳤다.
현관의 거대한 크리스털 샹들리에가 격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천장 고정 장치에서 짙은 먼지 구름이 떨어졌다.
“세아야!”
세 오빠가 동시에 비명을 질렀다.
그들은 그녀에게 달려들어, 그녀와 위험 사이에 인간 벽을 만들었다.
내 안전 통로를 막아버렸다.
나는 갇혔다.
마지막으로 본 것은 샹들리에가 부서져 내게로 떨어지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우주적인 고통.
옆구리에서 날카롭고 부서지는 듯한 감각.
시야가 흐려졌다.
나는 고개를 옆으로 늘어뜨린 채, 힘겹게 위를 보려고 애썼다.
고통의 안개 속에서, 나는 그들을 보았다.
그들은 세아 주위에 모여 있었다.
그녀는 완벽하게 괜찮았고, 흠집 하나 없었다.
“괜찮아? 다친 데 없어?”
지혁이 미친 듯이 그녀를 살피며 묻고 있었다.
세아는 고개를 저었다.
눈이 커져 있었다.
그러다 그녀의 시선이 바닥에 부서진 채 누워 있는 내게로 향했다.
그제야 그들은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듯했다.
그들은 황급히 달려왔다.
그들의 얼굴에는 경악과 짜증이 뒤섞여 있었다.
“하윤아? 젠장, 미안해.”
태민이 내 옆에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우린 그게… 순간 헷갈렸어.”
순간 헷갈렸다고.
나는 그저 그녀에 대한 집착 속에서 부수적인 피해였을 뿐이다.
그들의 태양이었고, 달이었고, 별이었던 내가.
나는 웃기 시작했다.
젖고 그르렁거리는 소리가 가슴을 통해 새로운 고통의 파도를 보냈다.
갈비뼈가 불타는 것 같았다.
고통과 분노의 눈물이 눈에 맺혔다.
일어설 수 없었다.
제대로 숨 쉴 수도 없었다.
세상이 가장자리부터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나는 의식을 잃었다.
마지막으로 본 것은 지혁의 얼굴이었다.
그의 이마는 찌푸려져 있었고, 눈에는 이상하고 읽을 수 없는 표정이 담겨 있었다.
마지막으로 들은 것은 그의 목소리였다.
거의 진짜처럼 들리는 공황 상태로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
“서하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