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3

"하지만 은지를 만나고 나서야 소월이와 은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됐어. 은지는 소월이보다 훨씬 다정하고, 나를 더 의지하며… 소월이에게선 받아보지 못한 사랑을 줬어."

주태웅은 박민섭의 뻔뻔한 말에 기가 차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넌 은지를 속이는 게 맞다고 생각하냐?"

"난 은지를 속인 게 아니야!" 박민섭이 욱하며 목소리를 높였다가, 이내 주위를 의식한 듯 다시 목소리를 낮췄다. "난 은지를 진심으로 사랑해. 하지만…"

"하지만 뭐?" 주태웅이 참지 못하고 쏘아붙였다.

"소월이를… 완전히 잊을 수가 없어. 걘 내 첫사랑이었잖아. 소월이가 해외에서 돌아와 날 찾아왔을 때, 차마 거절할 수가 없었어. 하지만 은지도 포기하고 싶지 않아."

"그래서 은지를 속이고 가짜 혼인신고서까지 만들었어? 은지는 너와 법적인 부부라고 믿고 있을 텐데?" 주태웅의 목소리에는 경멸함이 가득했다. "박민섭, 넌 진짜 쓰레기보다도 못한 놈이야."

박민섭은 잠시 침묵하더니 자조적인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나 쓰레기 맞아. 소월이의 열정과 은지의 다정함을 모두 갖고 싶어. 두 사람 다 내 곁에 두고 싶다는 생각까지도 했어."

"너 미쳤어?" 주태웅이 박민섭의 말을 가로막았다 "은지가 네가 양다리 걸친 걸 알게 되면, 널 용서할 것 같아?"

"은지는 절대 모를 거야." 박민섭은 주태웅의 말을 가로채며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은지는 날 철석같이 믿고 있어. 내가 소월이와 뒹굴고 있을 때 전화가 와도 전혀 의심하지 않았어."

그 말 한마디 한마디가 강은지의 심장을 난도질하는 것 같았다.

강은지는 소리 없이 몸을 돌려 엘리베이터로 발걸음을 옮겼다. 마치 무거운 안개 속을 걷는 것처럼 발걸음이 천근만근처럼 느껴졌다.

정말 아이러니했다.

자신이 2년 동안 사랑했던 남자가 이토록 파렴치한 거짓말쟁이에 불과하다니.

강은지는 어떻게 집에 돌아왔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멍하니 현관문을 열고 주방으로 향한 강은지는 기계적으로 저녁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6시 30분, 도어락이 해제되는 소리가 들렸다.

박민섭은 평소처럼 매력적인 미소를 지으며 들어왔고, 손에는 신선한 백합 꽃다발을 들고 있었다.

"나 왔어." 그는 부드럽게 웃으며 강은지에게 다가가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강은지는 꽃다발을 받아들이며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박민섭은 그녀의 이상함을 눈치채지 못한 채 재킷을 벗으며 킁킁거렸다.

"뭐 맛있는 거 했어? 좋은 냄새가 나는데."

"당신이 제일 좋아하는 갈비찜이야." 강은지는 차갑게 굳어가는 표정을 숨기기 위해 꽃을 화병에 꽂으러 돌아섰다.

식사 내내, 강은지는 남자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했다.

박민섭은 휴대폰을 뒤집어 식탁 위에 올려놓고는, 마치 누군가의 연락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힐끔거렸다.

"머리가 조금 아파." 식사를 마친 후 강은지가 갑자기 말했다. "침대 옆 서랍에 있는 약 좀 가져다줄 수 있어?"

"그래." 박민섭은 즉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기서 쉬고 있어."

그가 2층으로 올라가자마자, 강은지는 재빨리 식탁 위에 놓인 그의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화면을 켜자 잠금 화면이 나타났다.

그녀는 자신의 생일과 두 사람의 기념일을 차례로 입력해 보았지만, 휴대폰은 열리지 않았다.

다시 시도하려던 찰나, 화면에 한 통의 메시지가 떴다. [민섭 씨, 좋은 소식이 있어. 나 임신했어!]

강은지의 손끝이 차갑게 굳어버렸다. 화면에 떠오른 글자들은 그녀의 심장을 찌르는 날카로운 칼날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그 메시지를 멍하니 응시하고 있다가 박민섭이 계단을 내려오는 소리가 들리자, 황급히 휴대폰을 식탁 위에 내려놓았다.

박민섭은 약과 물 한 잔을 들고 다가왔다. "너 안색이 안 좋은데 오늘은 일찍 쉬는 게 좋겠어."

강은지는 약을 받아 삼키는 척하며 말했다.

"괜찮아. 그런데 당신 회사에 무슨 일 있어? 아까부터 계속 휴대폰을 신경 쓰는 것 같아서."

박민섭은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태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 프로젝트에 좀 문제가 생겨서. 다시 회사에 가봐야 할 것 같아."

"그럼 가봐, 일이 먼저지." 은지는 속이 문드러지는 것 같았지만, 애써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박민섭은 재빨리 코트를 걸치고 그녀의 볼에 입맞춤을 하며 말했다. "나 기다리지 말고 먼저 자."

현관문이 닫히는 순간, 강은지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눈물이 차올랐지만, 그녀는 고개를 뒤로 젖혀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억지로 삼켜냈다.

오랫동안 마음을 가라앉힌 후, 강은지는 떨리는 손으로 지난 2년 동안 한 번도 연락하지 않았던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아빠, 저 결정했어요. 아빠 말씀대로… 그 정략결혼,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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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으로 여겼던 그녀는 여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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