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1

"유진아, 엄마가 하는 말 꼭 명심해야 한다. 스무 살이 되기 전에는 재능을 드러내지 말아야 할뿐더러, 예쁜 얼굴을 누구에게도 보여줘서는 안 된다."

15년 동안 어머니의 마지막 유언을 하루도 잊지 않은 이유진은 집에서까지 못생긴 분장을 하며 어리숙한 연기를 해왔었다.

오늘은 그녀의 스무 번째 생일로, 드디어 못생기고 자신감 없는 모습을 벗어 던지고, 진정한 그녀의 모습을 보여줄 때가 되었다.

욕조에 따뜻한 물을 가득 채운 그녀는 약물을 부은 후, 화장을 지우는 도구들을 미리 준비해 두었다. 흉측하기 그지없는 화장을 씻어내고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기 위해 옷을 벗으려는 순간, 그녀의 방문을 두드리는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한껏 짜증이 치민 그녀는 하는 수 없이 방문을 열어야만 했다.

방문을 열자 가정부 윤 아줌마가 의기양양한 얼굴로 문에 기대 서 있었다. "이유진, 창고에서 혼자 숨어 뭘 하려는 거야? 오늘 하나 아가씨 결혼식인 거 잊었어? 네가 결혼식에 나타나지 않으면 사람들은 네가 심씨 가문에서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고 오해할지도 몰라. 그러니 지금 당장 거실로 내려와!"

윤 아줌마의 말에 이유진은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다. 가정부로 고용된 사람이 모시는 아가씨를 대하는 태도가 거만하기 그지없었으니 말이다. 창고에 숨은 쥐새끼 취급을 하다니. 그녀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 창고 방에 숨어 지낸 지 십오 년이 지났는데 말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계모 허수빈은 아버지와 밖에서 몰래 낳은 사생아 심하나와 함께 심씨 가문에 들어와 지내며 안주인 행세를 했다.

더욱 황당한 사실은 이유진의 아버지 심현준마저 그녀를 무시하며 딸 취급조차 해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옷만 갈아입고 내려갈게요."

그녀의 담담한 반응에 윤 아줌마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비웃음을 터뜨렸다. "왜 옷을 갈아입겠다는 거지? 아무리 예쁜 옷을 입어도 못생긴 얼굴이 예뻐지지 않을 텐데. 김씨 가문 사람들이 이미 도착했으니 빨리 내려와. 구청 직원들도 이미 도착해서 김 대표와 하나 아가씨의 혼인신고 서류를 작성하고 있으니까. 사모님은 이 아름답고 중요한 순간에 모두가 참석하길 바라고 있어."

그 말에 이유진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번졌다.

김씨 가문은 A시에서 가장 유망한 가문이며, 김씨 가문의 상속자 김도준은 사업 수완이 무척이나 뛰어난 사람이다.

심하나는 사교계에서 일찍이 이름을 알린 관계로 두 사람의 약혼 소식은 뉴스에도 몇 번이나 보도되었다. 사람들은 그런 두 사람을 천생연분에 완벽한 커플이라고 부르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인터넷에도 두 사람의 약혼 소식이 파다하게 퍼졌고, 모두가 성대한 결혼식만 기다리고 있었다.

허수빈은 말만 번지르르하게 했지만, 이유진은 그 속에 숨은 뜻을 바로 알아차렸다. 허수빈은 단지 심하나의 빛나는 순간을 그녀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이유진은 옷을 갈아입고 윤 아줌마를 따라 거실로 내려왔다.

화려하기 그지없는 장식품을 곳곳에 치장한 오늘의 심씨 가문은 심하나의 약혼식을 위해 만반의 준비를 했다.

화려하게 차려 입고 참석한 손님들 사이로, 색이 바랜 흰색 티셔츠에 찢어진 청바지, 흉측한 화장을 하고 나타난 이유진이 유난히 눈에 띄었다. 누가 보아도 이곳과 어울리지 않는 그녀의 모습은 오히려 분위기를 깨뜨리고 있었다.

김도준의 할아버지 김권호 회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허수빈은 이유진이 거실로 내려온 모습을 보고 자리에 멈칫하더니 이내 가식적인 미소를 지어 보였다. "유진아, 왜 아줌마가 선물한 드레스를 입지 않은 거야?"

이유진은 허수빈이 그랬던 것처럼 내키지 않은 얼굴로 시선을 돌렸다. 예전의 그녀였다면 아무것도 모르는 척 허수빈의 장단에 맞췄겠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다. 허수빈의 말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은 그녀는 김씨 어르신을 향해 돌아서며 정중하게 인사를 건넸다. "어르신 안녕하세요."

김권호는 인자하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유진이는 유진이만의 스타일이 확고하구나."

이유진은 머쓱한 얼굴로 폭탄 머리에 가까운 가발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위압감 넘치는 어르신이 이토록 관대한 사람일 줄은 몰랐는데. 적어도 그녀에게 상처가 되는 말은 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녀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김권호의 곁에 선 남자에게로 향했다. 거실에 들어선 순간부터 남자에게 시선을 고정한 그녀는 그의 몸에서 풍기는 압도적인 위압감에 그가 대중 앞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김씨 가문 상속인 김도준이라는 것을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김도준을 보니 또 다른 매력이 풍겨났다. 큰 키에 다부진 체격과 날렵한 턱 선은 마치 로맨스 소설 주인공을 연상케 했다. 이유진은 그의 잘생긴 얼굴에서 한참이나 시선을 떼지 못했다.

"유진이 좀 보세요." 그때, 윤 아줌마가 일부러 큰 소리로 그녀를 비웃기 시작했다. "자기 못생긴 얼굴은 생각하지도 않고 하나 아가씨의 약혼자를 쳐다보며 침을 흘리고 있으니. 우스워죽겠어요. 그 얼굴에 김 대표님의 얼굴을 쳐다보는 것조차 범죄 아닌가요?"

윤 아줌마는 분명 허수빈의 지시를 받고 일부러 비아냥거리는 것이 확실하다.

심하나는 이유진은 그녀의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듯, 일부러 김도준의 팔에 팔짱을 끼며 말했다. "괜찮아요. 도준 씨가 이렇게 대단한데, 여자들이 도준 씨를 좋아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죠."

심하나는 이유진을 경쟁 상대로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뿐더러, 이유진을 발 아래에 두고 짓밟아 우월감을 느끼고 싶었다.

심현준은 그런 이유진을 불쾌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돌아보며 화를 냈다. "쓸모 없는 것, 썩 꺼져!"

긴 다리를 이용해 의자를 앞으로 끌어당긴 이유진은 무감한 얼굴로 김도준의 바로 앞에 앉았다.

그녀의 예상외의 반응에도 김도준은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일관했다.

김권호는 어색하게 헛기침을 하며 구청 직원들을 돌아봤다. "빠진 서류가 없는지 꼼꼼하게 확인 부탁하네."

"네, 어르신." 구청 직원은 빠르게 컴퓨터를 열어 중요한 서류가 빠지지 않았는지 확인했다. 곧바로, 직원 중 한 명이 흠칫 놀라는 것 같더니 주저하며 김도준을 쳐다보는 것이다. "김 대표님, 시스템에 따르면 대표님은 이미 결혼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김 대표님의 아내 분은 이유진 씨로 확인됩니다."

"잠, 잠시만요. 뭐라고요?" 넓은 거실에 숨 막힐 듯한 고요함이 밀려왔다.

이유진도 적지 않은 충격을 받은 듯 눈을 크게 떴다. 그녀가 결혼을 했다니? 게다가 상대는 김도준이라고? 당사자인 그녀는 왜 아무것도 몰랐을까!

회차 2

허수빈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에요?"

심현준도 완전히 당황한 얼굴로 되물었다. "그, 그럴 리 없을 텐데. 분명 착오가 있을 거예요."

애당초 심씨 가문은 이유진의 어머니 이수연의 뛰어난 의술과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기발한 처방 덕분에 명문 가문 대열에 합류할 수 있었다. 그러다 이수연이 세상을 떠나자 심씨 가문의 입지는 나날이 흔들리기 시작했고, 김씨 가문이 유일한 동아줄이라고 생각한 그들은 어떻게든 결혼이 성사되기만을 애타게 바랐다.

이유진도 심씨 가문의 딸이 맞지만, 그녀의 결혼은 심하나의 결혼만큼 중요하지 않았다. 심하나야말로 심씨 가문에서 사랑을 독차지 하며 자라온 딸이다.

침착함을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들인 심하나는 주먹이 터지도록 세게 움켜쥐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나긋하게 웃어 보이며 입을 열었다. "그럴 리 없어요. 분명 오해가 있을 거예요."

"하지만 저희 구청 시스템에는 김 대표님께서 이미 혼인신고를 하신 것으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구청 직원은 단호하게 말했다.

모두가 구청 직원이 가리킨 컴퓨터 화면을 확인하자 구청 직원이 말한 대로, 김도준과 이유진은 이미 부부였다. 두 사람은 2년 전, 이유진이 열여덟 살이 되자마자 B국에서 혼인신고를 마친 것으로 확인된 것이다.

심현준과 허수빈은 완전히 넋이 나간 얼굴로 자리에 멈춰 섰다.

당혹감에 더 이상 우아한 모습을 연기할 수 없었던 심하나의 순진무구한 가면도 드디어 깨졌다.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동시에 김도준에게 집중되었고 김권호는 눈을 가늘게 뜨고 날카롭게 물었다. "김도준,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김도준은 시종일관 무표정한 얼굴을 유지하며 대답했다. "저는 모르는 일입니다."

"모른다고?" 다시 되묻는 김권호의 목소리에 노기가 가득했고 분노를 이기지 못해 수염이 세차게 떨렸다. "B국에서 혼인신고까지 했는데 모르는 일이라고?"

김도준의 날카로운 시선이 곧바로 맞은편에 앉은 이유진에게 향했다. 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못한 이유진도 당황한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

곧이어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그를 따라 이유진에게 고정되었다. 이제 그녀는 이번 사건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됐다.

당황스럽기는 이유진도 마찬 가지였다. "저도 모르는 일이에요."

그러나 아무도 그녀의 말을 의심하지 않았다. 집 뒤편의 창고에서 숨어 지내다시피 한 그녀는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한데다, 못생긴 외모 때문에 늘 조롱을 받으며 지냈었다. 그런 그녀가 몰래 김도준과 함께 B국에 가서 혼인신고를 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절대 불가능한 일이에요. 누가 장난을 친 게 분명해요!" 허수빈은 입술을 꽉 깨물고 소리쳤다. "진실은 나중에 밝히는 거로 하고, 지금은 이혼 서류를 접수한 다음 김 대표와 하나의 혼인신고를 작성하는 게 우선이에요."

"네. 김 대표와 하나의 혼인신고부터 작성해야죠." 심현준도 재촉하며 말했다.

"도준이는 하나와 결혼하지 못할 것이네." 천천히 한숨을 내쉰 김권호가 말을 이어 했다. "우리 김씨 집안에는 대대로 지켜야 할 가훈이 있어. 김씨 가문의 남자는 배우자가 별세를 한 후에야 재혼을 할 수 있어. 그러니 이혼은 절대 안돼. 그럼 어쩔 수 없이 김도준과 유진이의 결혼을 인정 해야 겠지."

"그럴 수 없어요!" 인내심이 한계에 달해 평정심마저 무너진 심하나가 분노에 눈이 멀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A시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제가 김씨 가문에 시집갈 거라고 확신하고 있단 말이에요. 이제와 신부가 제가 아닌 이유진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사람들이 저를 얼마나 우습게 보겠어요?"

허수빈도 더 이상 예의 바르며 우아한 모습을 보이지 않고 날카롭게 소리를 질렀다. "김씨 가문의 사모님은 반드시 하나가 되어야 해요. 이유진은 김씨 가문의 사모님이 될 자격이 없어요!"

이유진에게 있어 허수빈과 심하나가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을 눈앞에서 지켜보는 것만큼 흥미진진한 일은 없었다. 그래서 어떻게 김도준을 빼앗을지 생각하던 참에 이렇게 생각지도 못한 행운이 닥친 것이다. 역시 운명이란 신기한 것이다. 생각지도 못한 행운이 찾아 왔으니 말이다. 그녀는 손가락 하나 까닥하지 않고 김도준을 차지할 수 있었고 이렇게 된 이상 그녀는 절대 먼저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환한 미소를 지은 이유진은 김도준의 팔짱을 끼고 애교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보, 이런 일에 연루되게 해서 미안해요."

여보라는 말에 심하나는 더 이상 듣고만 있을 수 없었다. "너 미쳤어? 도준 씨는 내 남자야. 네가 무슨 자격으로 도준 씨를 여보라고 부르는 거야!"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지른 그녀는 당장이라도 이유진에게 달려들 기세였다.

빠르게 김도준의 뒤에 몸을 숨긴 이유진은 그의 어깨를 방패 삼아 머리만 내밀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언니, 참아요. 재벌 가문의 우아한 이미지는 지키셔야죠."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허공에 손짓한 심하나는 이유진의 말 한 마디에 자리에 멈췄다.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심하나는 그녀가 A시에서 이룬 지위와 명성을 까맣게 잊고 말았다. 그동안 지위를 굳건하게 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들였는데, 순간의 감정 때문에 모든 것을 잃을 뻔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정신 나간 사람처럼 소리를 지르던 심하나가 아련한 얼굴로 고개를 아래로 떨궜다. "도준 씨, 날 버리지 말아요. 나보다 도준 씨를 사랑하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심현준과 허수빈은 이 상황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이 있길 바라며 간절하게 김도준을 쳐다봤다. 꼿꼿하게 자리에 앉은 김권호는 가훈을 목숨보다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이었기에 마음을 바꾸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그를 설득하는 건 의미 없는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어떻게든 김도준을 설득해야만 한다.

사건의 중심에 선 김도준은 여전히 아무런 표정이 없었다.

그는 아직도 그의 어깨를 잡고 있는 이유진을 흘깃 쳐다보더니 이내 눈길을 거두었다. 무겁게 가라앉은 공기를 가르고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가 흔들림 없이 단호했다. "저는 김씨 가문의 후계자로, 가문의 가훈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니 절대 가훈을 어기지 않을 겁니다."

단호한 그의 말에 허수빈과 심하나의 얼굴에 짙은 먹구름이 드리웠고 다리에 힘이 풀려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심현준은 초조한 얼굴로 김권호를 돌아봤다. "어르신, 이건..."

과장된 화장을 한 이유진을 쳐다본 김권호는 무표정한 얼굴로 자리에 선 김도준을 돌아보더니 이내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

"도준이 너한테는 미안하지만 가훈을 어길 수는 없다." 김권호는 아무도 들리지 않게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다시 고개를 돌린 김권호가 심현준을 쳐다보며 말했다. "현준 씨, 내가 두 가문의 결혼을 동의한 건, 자네 아버지께 신세를 졌기 때문일세. 하지만 결혼을 약속했던 당시, 심씨 가문의 딸이면 된다고 했지, 누구라고 정확히 언급하지 않았어. 유진이도 심씨 가문의 딸이니, 김도준의 아내가 될 자격은 충분해. 난 절대 우리 가문의 가훈을 어기지 않을 것이니 더 설득하려 하지 말게나."

심현준은 받아들이기 힘들었지만 단호한 김권호의 모습에 애써 분노를 삼키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로써 이유진이 신부로 결정되었고 심하나를 대신해 김도준과 결혼하게 되었다.

회차 3

최고의 재벌인 김씨 가문의 후계자답게 김도준의 결혼식은 사치스럽기 그지 없었다.

신부를 위해 준비된 드레스는 40만 개가 넘는 다이아몬드와 진주로 장식되어 그 아름다움은 말로 표현하기에 단어가 부족할 지경이었다. 심하나는 자기가 그 드레스를 입고 김도준과 결혼하는 것을 얼마나 간절하게 바라왔는지 모른다.

김씨 와 심씨는 모두 재벌이지만 차이는 엄청났다. 때문에 심현준은 심씨 가문의 체면을 구기지 않기 위해, 그리고 이번 기회에 심씨 가문의 평판을 끌어 올리기 위해 1000억이라는 엄청난 금액의 혼수를 마련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게 이유진에게 갈 줄이야...

오늘 아침 항공편으로 도착한 해외 유명 디자이너가 만든 드레스가 이유진의 몸에 걸쳐진 것을 보니 그들은 죽을 쒀서 개줬다는 생각에 복창이 터지는 것 같았다.

그 모습에 이유진은 자꾸만 새어 나오는 웃음을 억지로 참아내야 했다. 곁에 빙산같이 차가운 김도준이 있었으니 말이다.

김도준은 위험한 인간이다. 사업수단은 물론이고 뛰어난 통찰력을 갖췄기에 그의 앞에서는 신중하게 행동해야 했다. 그리고 두 사람의 결혼에는 아직 풀리지 않은 많은 의문들이 남아 있었고 그녀는 빠른 시일 내에 자초지종을 밝혀 내고 싶었다.

심씨 저택 밖에 수많은 기자들이 물 샐 틈 없이 모여들었다. 작은 기사거리 하나라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모두 호시탐탐 기사거리를 찾아 헤맸다. 하여 김도준은 신부가 바뀌었다는 소식이 밖으로 전해지는 걸 피하기 위해 이유진과 함께 헬기로 이동했다.

헬기가 구름 속으로 사라진 것을 본 심하나의 얼굴에 어느새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엄마, 김씨 가문 사모님이 되려는 내 꿈은 이렇게 끝난 거예요?"

"아니! 아직 포기하긴 일러." 허수빈의 목소리에 독기가 가득 묻어났다. "김도준이 저렇게 못생긴 여자랑 결혼 한다고? 그것도 영문도 모른 채? 김도준이 어떤 인간인데, 어쩌면 이유진이 첫날밤도 보내지 못하고 사고로 죽을 수도 있어."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심하나의 두 눈이 위험하게 빛났다. "그러니까, 엄마 말은 김도준이 이유진을 제거 할거라는 거예요?"

허수빈은 차갑게 미소 지으며 입을 열었다. "이유진이 죽으면 김도준은 다시 널 찾아올 거야. 그러니 그때까지 넌 A시의 최고의 재벌 아가씨 타이틀을 지키고 있어야 해. 때가 되면 김씨 가문 사모님자리를 네가 차지 할 수 있을 거야."

헬기로 이동중인 이유진 또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유진은 여태껏 김도준을 실제로 만난 적이 없었다. 하지만 A시 최고의 재벌 김도준에 대한 소문은 귀가 아플 정도로 많이 들었다. 그가 피도 눈물도 없는 인간이고 그는 그가 가는 길에 튀어나온 걸림돌 들은 가차없이 잔인하게 처리한다고 소문이 자자했다. 심지어 그의 심기를 건드린 사람들은 불행한 최후를 맞이 하거나, 차라리 죽는 게 나을 정도로 고달픈 삶을 살아 간다는 소문도 있었다. 하여 이유진은 김도준의 심기를 건드릴 생각이 없었다.

이유진은 결혼식 내내 얌전한 모습이었다. 이후, 신혼방에 들어온 후에도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정장 외투를 벗은 김도준은 침대 맞은편에 놓인 소파에 앉았다. 강렬하고도 냉정한 눈빛으로 그녀에게 시선을 고정한 그는 그녀의 생각을 꿰뚫어 볼 것만 같았다.

몇 시간 전만 해도 그녀는 흉측한 얼굴에 헝클어진 머리카락으로 마치 난민 구역에서 뛰쳐나온 모습이었지만 지금은 하얀색 베일로 얼굴을 반쯤 가리고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그녀의 피부는 백옥처럼 빛났고 거기에 날씬한 몸매까지 더해지니 아름답기 그지 없었다.

소문에 이유진은 어두운 과거를 가지고 있었다. 다섯 살 때, 그녀가 집에 불을 지르는 바람에 그녀의 어머니는 불바다 속에서 사라졌고 자신의 얼굴에도 큰 화상을 입어 흉측한 허물을 안고 살아가야 했다. 사람들은 그녀가 저주를 받은 사람이라고 손가락질을 했다.

모든 사람들이 그녀가 못생긴 것도 모자라 머리가 멍청하다고 했지만, 김도준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반짝이는 그녀의 두 눈에는 영리한 빛이 가득한 걸 보아. 멍청하기는커녕 오히려 심계가 깊은 사람인 것 같았다. 그리고 낮에 심하나가 그녀한테 달려들 때, 재빨리 그의 뒤로 숨는 몸 놀림, 그건 피나는 노력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의외라고 생각 했을 뿐 김도준은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은 다름아니라 두 사람이 어떻게 혼인신고를 했냐는 것이다. 대체 누가 이토록 치밀하게 일을 꾸민 걸까? 어떤 이유 때문에?

이렇게 해서 그들이 얻은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이유진은 정말 아무것도 몰랐을까?

"낮에는 말만 잘하더니, 왜 지금은 조용한 거야?" 김도준의 목소리가 방안의 고요함을 깨뜨렸다.

그의 차가운 목소리에 이유진은 소름이 끼쳤다. "저는 김도준 씨와 결혼할 계획 같은 건 없었어요. 너무 갑작스러워 어떻게 해야 될지도 모르겠고..."

이유진은 김씨 가문에 발을 들인 이상,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얌전하게 있는 것만이 살길이라는 것을 바로 알아차렸다. 싱긋 지어 보이는 미소와 나긋한 태도를 유지하면 큰 위험도 피해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녀의 대답을 들은 김도준은 참지 못하고 작게 소리 내어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이유진이 한 말을 조금도 믿지 않는 눈치였다. 그녀는 심하나의 심기를 건드리기 위해 일부러 '여보'라고 불렀던 사람이 아니던가. 그녀의 목소리에서 불안한 기색을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그녀가 언제까지 가면을 쓰고 거짓말을 하는지 똑똑히 지켜볼 것이다.

이유진도 그가 그녀의 말을 믿지 않는다는 것을 눈치챘을 뿐더러, 그에게 어떤 기대도 하지 않았다. 단지 어떤 허점도 잡히지 않으면 그만이다.

이유진이 이러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난 김도준이 긴 다리로 성큼성큼 그녀에게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그녀가 반응도 하기 전에 그는 그녀를 안아 올렸다.

동화 속 신부처럼 아름다운 자태로 그의 품에 안기자 이유진은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것을 느꼈다. "김도준 씨, 지금 뭐 하는 거예요?"

그런 그녀를 내려다보는 김도준의 입가에 위험한 미소가 피어 올랐다. "신혼부부가 결혼식 첫날밤에 해야 하는 게 뭔지 내가 꼭 하나하나 설명해야 해?"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그녀를 가볍게 침대에 내던지고는 그녀의 위에 올라탔다.

김도준의 뜨거운 숨결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였다. 이유진은 경악했다. 이렇게 못생긴 얼굴을 하고 있는데 나한테 손을 대다니...

지금 전체 스토리 읽기
작가를 후원하고 Moboreader의 다음 이야기를 응원해 주세요!
모든 회차 잠금 해제

못생긴 그녀의 복수

1화
회차
사용자 설정
다음 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