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2
이화린은 온몸에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다. 특히 머리에서 전해지는 마치 불로 달군 쇠로 지지는 듯한 극심한 작열감에 그녀는 비명을 지르며 몸을 일으켰다.
"어? 이 독한 년 어떻게 또 깨어 난 거지? 아까 분명히 숨이 끊어졌었잖아? 너희들 도대체 일 처리를 어떻게 하는 거야? 당장 이 년 숨통을 끊어!"
귀에 거슬리는 명령과 함께 밧줄이 그녀의 목을 조였다.
순식간에 이화린은 목이 부러질 것 같은 통증과 함께 숨이 막혀왔다.
강렬한 질식감에 몸부림치며 손을 휘적이던 그녀는 머리에 꽂은 비녀가 손에 잡혔고, 본능적으로 비녀를 뽑아 뒤에 있는 사람의 몸을 향해 힘껏 찔렀다.
"악!"
돼지 멱따는 소리 같은 비명이 방안에 울려 퍼졌다.
이화린은 목을 조여오는 힘이 약해진 것을 느끼고 재빨리 몸을 돌려 뒤에 있는 사람과 거리를 벌린 후, 동시에 눈을 크게 뜨고 방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똑똑히 확인했다.
눈앞에는 세네 명이 서 있었고 하나같이 통나무 같은 허리에 팔뚝이 굵었다. 그 중 한 하녀는 피가 흐르는 팔을 움켜쥔 채 악독한 눈빛으로 이화린을 노려보고 있었다.
이화린은 어리둥절한 상태였다. 눈앞의 상황이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녀는 분명 눈이 내리는 밤에 절벽에서 뛰어내렸다. 그러니 살아날 가능성은 존재 하지 않았다.
'난 이미 죽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 통증은 뭐지? 왜 이렇게 생생하게 느껴지는 걸까?'
그리고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너무 생생하게 느껴졌다.
대체 무슨 상황인지 이해가 되지 않던 그때, 머릿 속에 그녀의 것이 아닌 낯선 기억들이 잔뜩 밀려 왔다.
공친후부, 상인 가문, 혼인, 학대, 간통, 처형…….
그녀는 당장이라도 터질 것 같은 머리를 움켜잡았다. 눈물이 하염없이 펑펑 흘러 내렸고 그와 동시에 그녀는 자신이 왜 이곳에 있는지 드디어 알게 되었다.
그녀가 환생한 것이다!
자신이 죽은 지 한 달이 지난 시점에, 그녀의 혼이 경성 공친후부 둘째 부인의 몸에 들어 온 것이다.
이화린, 둘째 부인의 이름도 이화린이었다.
다만, 이 이화린은 재상 이씨 가문의 이화린이 아니라 상인 가문의 이화린이었다.
상인 가문의 이화린은 마음이 착하고 여린 데다 가문이 부유하고 얼굴이 아름다워 권세가인 공친후부의 눈에 들었다. 후부는 삼서육례(三媒六娉)를 모두 갖춰 대방(大房,가문 적장자의 식구들을 이르는 말.) 둘째 아들의 정부인으로서 그녀를 들였다.
그녀는 위세 높은 가문으로 시집을 왔으니 좋은 낭군을 만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호랑이 굴일 줄은 몰랐다.
시어머니는 교활하고 탐욕스러웠고, 낭군은 정이 없고 무심했다. 후부의 그 누구도 그녀를 사람 취급 해주지 않았다.
심지어 시어머니라는 작자는 그녀의 혼수를 차지하기 위해 독한 계책을 생각해 냈다. 그녀에게 외간 남자와 불륜을 저질렀다는 누명을 씌웠던 것이다. 결국 이화린은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벽에 머리를 박았다.
하늘이 그녀를 가엽게 여겼던 걸까? 상인 가문의 이화린이 죽은 그 시점, 재상 가문의 이화린의 혼이 그녀의 몸에 깃든 것이다.
현재, 그녀의 얼굴에 하염없이 흘러 내리는 눈물은 전부 상인 가문의 이화린이 죽기 전에 느꼈던 고통과 억울함이었다. 동시에 그녀가 죽기 전에 외쳤던 한 맺힌 목소리가 머릿속에 메아리 쳤다.
"복수할 거야! 반드시 복수할 거야!"
백어멈은 상처를 입은 이어멈을 부축하며 사악한 눈빛으로 이화린을 노려봤다. "이 망할 년이, 곱게 보내주려 했더니 감히 반항을 해? 곱게 죽긴 싫다는 거지? 그럼 원하는 대로 해주마!"
말을 마친 백어멈은 손에 잡히는 대로 의자를 집어 들고 이화린의 머리를 향해 내리쳤다.
바로 그때, 바닥에 엎드려 있던 이화린이 벌떡 일어더니 순식간에 백어멈을 향해 달려들며 손에 쥔 비녀를 백어멈의 목에 겨눴다.
"꼼짝 마! 누구든 움직이면, 이 년의 목을 그어버리겠어!"
백어멈과 하녀들은 이화린의 몸에서 순식간에 터져 나온 힘과 속도에 놀란 나머지 그대로 얼어 붙고 말았다.
특히 백어멈은 자신을 목을 겨누고 있는 비녀가 얼마나 날카로운지를 알아 차리고는 다급한 동시에 화가 치밀었다. 그녀가 이화린을 향해 소리쳤다. "이 미친 년이! 감히 나를 협박해!?"
이화린은 온몸에 퍼지는 통증을 참으며 감히 꼼짝도 하지 못하고 자신의 품에 잡혀있는 백어멈을 향해 소리쳤다. "못할 것도 없지. 하인인 주제에 주인인 나를 해하려 들다니! 관아에 고하기만 하면 너희들은 전부 얼굴에 낙인이 찍힌 채 유배를 가야 할 것이다."
백어멈은 비웃음을 터뜨렸다. "아이고, 우리 작은마님 건망증도 심하시네. 외간 남자랑 놀아나다 후부인께 들킨 건 잊으셨나? 관아에 가면 간통죄로 형을 당할 텐데, 감당되시겠어?"
"못할 것도 없지."
이화린은 비녀를 백어멈의 목에 더욱 깊숙이 찔러 넣었고 늙은이의 고통스러운 비명을 들으며 차갑게 말했다.
"후부인을 불러 와라! 그렇지 않으면… 너 이 늙은 것, 나와 함께 지옥 구경이나 하자꾸나."
회차 3
백어멈의 목덜미에서 피가 쉴 새 없이 흘러내렸다. 백어멈은 두려움에 잔뜩 질린 눈으로 믿을 수 없다는 듯 마치 지옥에서 기어 나온 듯한 이화린을 쳐다 보았다.
"이 년이… 아, 아니, 둘째 부인! 이 늙은이가 후부인님을 모셔오기 싫은 게 아니라, 오늘 후부에 귀한 손님들이 많이 찾아와 주인님들께서 모두 앞마당에서 손님들을 맞이하고 계십니다… 둘째 부인께서 이 늙은이를 놓아주신다면, 제가 반드시 후부인님 앞에 가서 둘째 부인님의 좋은 말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어떠신지요?"
이화린 얼굴의 비웃음이 더욱 짙게 번졌다. "놓아 달라고? 다시 날 죽이겠다고 덤비도록 말이냐? 후부에 귀한 손님들이 왔단 말이지? 아주 잘됐구나. 내 이 일을 크게 키워 경성의 귀인들이 모두 공친후부의 역겨운 속내를 전부 보게 만들 것이다."
후부 앞마당 화청에서는 손님들과 주인들이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마냥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공친후부는 역사가 긴 오래된 고관대작 가문 중 하나였다. 하지만 현재에 이르러 공친후부는 내리막 길을 걷고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돈에 눈이 멀어 상인의 딸을 후부에 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백어멈 그 늙은 여편네는 왜 아직 소식이 없는 게야?"
후부의 부인 조씨는 오늘따라 더욱 화려하게 단장했다. 금실로 수를 놓은 금빛 찬란한 예복을 입고 하늘거리며 걷는 그녀는 청춘을 잃은 지 오래 되었지만 결혼한 여자다운 성숙한 매력을 풍겨냈다.
"부인님, 안심하십시오. 백어멈은 평소에 일을 꼼꼼하게 처리하는 사람이지 않습니까? 그런 사소한 일은 필시 문제 없이 처리할 겁니다. 걱정하지 미시지요. 지금은 큰 도련님의 승진 연회를 잘 치르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 않습니까."
난어멈의 말에 기분이 한껏 좋아져 자지러지게 웃는 조씨의 눈가에는 만족스러운 기색이 가득했다.
그때, 화청에서 놀란 비명이 들려왔다.
"어머나! 후부 뒷마당 쪽에서 불이 난 것 같습니다!"
갑자기 들려 온 비명 소리에 연회에 참석한 하객들이 모두 화청에서 나와 불이 난 곳을 쳐다봤다.
조씨와 공친후 송중서도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불길이 점점 세게 번지기 시작하는 걸 본 송중서는 연회를 계속 열 수 없다고 판단하고 하인들에게 어서 불을 끄라고 지시했다.
난어멈의 부축을 받은 조씨는 불이 난 방향을 쳐다보며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저기는… 그 천한 것의 처소 아니더냐? 얼른 가보자!"
불이 난 곳을 흥미롭게 지켜보는 하객들도 있는 반면 겁에 질려 안절부절 못하는 하객들도 있었다. 그러나 한 젊은 남자가 다른 이들과는 다르게 상석에 앉아 느긋하게 차를 음미하고 있었다.
그는 불이 난 곳을 힐끗 쳐다보더니 입 꼬리를 말아 올렸다. 하지만 입가에 번진 미소와는 달리 눈빛은 더욱 차갑게 점점 차갑게 식어 갔다.
"아주 적절한 때에 불이 났군. 진풍아, 우리는 해야 할 일을 하자꾸나."
진풍이라 불린 남자가 머뭇거리며 말했다. "도독(都督)님, 폐하께서 이미 이씨 가문이 적과 내통했다는 죄명을 확정지으셨기에 대세는 이미 정해진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그런 시점에 만약 도독께서 계속 이 사건을 조사한다는 사실을 폐하께서 알게 되신다면 필시 불쾌해하실 것입니다."
남자가 고개를 들어 진풍을 쳐다보며 말했다. "내가 언제 규칙대로만 일을 처리했더냐? 황상 백부님께서 물으시거든 내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 넌 어서 가거라. 송씨 가문 놈들에게 들키지 않도록 조심하고. 현재 우리에게 남은 단서는 이것뿐이다."
주인이 고집을 부리자 진풍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후부의 서재가 있는 방향으로 향했다.
남자는 손에 든 찻잔을 매만지며 조심스레 마음 깊숙이 묻어 두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 빨간 그림자...
과거, 목숨을 구원 받았던 그 은혜는 이제 값을 수 없다.
그러니 지금은 그녀와 그녀의 가족들의 누명을 벗겨주기 위해 최선을 다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