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2
9월의 북양은 무더웠다.
오늘은 성당국의 공주가 인친을 위해 북양국에 도착한 날이고 혼례를 치르는 날 이였다. 그러나 국공부(國公府)의 대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혼례날의 경사스러운 분위기는 전혀 찾아 볼수 없었다.
곳곳에서 모여 든 백성들로 거리는 미여 터질 듯 하였고 그들은 고개만 내밀고 구경하며 비웃음을 숨기지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명색의 한 나라 공주인데, 혼례날부터 문전박대를 당하는 건 좀 그렇지 않아?"
"성당국의 공주라는 허울뿐이지, 진짜 황족은 아니니까. 성당국의 황제가 인친을 위해 임시로 급하게 책봉한 공주라는 소문도 있잖아."
"들리는 소문에 성당국의 공주가 죄인 가문의 여식이라는 말이 있어. 죽음이 두려워 인친을 자청했다던데? 그리고 오늘 가족이 처형을 당하는 날이라고 하더라고? 혼례복까지 차려 입고 찾아오다니. 뻔뻔하기도 하지."
꽃 가마에 앉아 있는 소예슬은 주위에서 들려오는 조롱 소리에 천천히 손을 들어 자신의 목을 만져 보았다. 매끈한 피부가 그대로 만져지자 차가운 손끝이 심하게 떨렸다. .
처형장의 단두대에서 가차없이 목이 베인 기억을 마지막으로 눈을 뜨니 바로 이곳이었다.
그녀의 짧은 일생에 혼례복은 입은 날은 오직 한번 밖에 없었다.
당시 소씨 가문의 자제가 군령을 어겨, 소씨 가문 전체가 처형을 당해야만 하는 위기에 놓여 있었다. 그녀의 할아버지와 부모님들은 거친 바닥에 몇 번이고 머리를 찍어 절하며 그녀와 소미영을 살려 달라고 빌고 또 빌었다.
이에 황제는 자비를 베푸는 척하며 소예슬과 소미영의 죄를 사면해 주었다.
허나, 목숨을 부지했다고 해서 벌마저 피해 갈 수는 없었다.
때마침, 북양국의 사신이 성당국까지 찾아와 인친을 제안했다.
그 당시 각국 간에 전쟁이 쉬지 않고 벌어지고 있었고 북양국과 성당국은 적어도 겉으로는 사이가 좋았다. 자신의 딸을 북양국에 보내고 싶지 않았던 황제는 소예슬을 소화 공주로 책봉하여 인친을 보냈고 소미영은 지참금으로 같이 보내졌다.
"슬아, 네가 성당국에서 살아남는다 해도 떳떳하게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을 것이다. 차라리 북양국으로 피신을 가 있거라..."
"슬아, 내 반드시 너를 데리러 갈 것이다. 네가 다른 사내와 혼인을 했다 한들 어떠하냐. 내가 즉위하면 즉시 너를 황후로 책봉할 것이야..."
"슬아, 꼭 기다려야 한다..."
대황자의 달콤한 속삭임이 아직도 귓가에서 떠나질 않았다.
과거의 소예슬은 북양국에서 온갖 모욕을 꾹 참고 지냈고, 하루라도 빨리 대황자와 만나기만을 기다렸다.
지금의 소예슬은 당시 어리석은 자신의 생각에 토가 쏠릴 지경이었으니.
눈이 멀어도 한참 멀었었지. 어떻게 그 놈의 인면수심(人面獸心)의 본성을 알아 보지 못한 건지...
"언니..."
그때, 꽃 가마 밖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미영!
독사보다 악독하고 은혜를 모르던 지난 생의 조미영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다. 주먹을 너무 꽉 쥔 나머지 손가락이 하얗게 질렸고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원통하고, 분하구나!
다행인 것이라면, 지금의 소미영은 아직 황후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녀만 정신을 다잡으면, 반드시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소예슬이 숨을 깊게 들이마시자 증오로 들끓던 눈동자가 천천히 차갑게 식어 내렸다. 손을 뻗어 마차의 창문 발을 걷자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새하얀 피부와 귀엽고 아름다운 얼굴은 그야 말로 미인이었다.
그녀와 눈이 마주친 소미영은 입술을 삐죽 내밀더니 시무룩하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언니, 우리가 대문 밖에서 기다린 지 두 시진이 지났습니다. 아무리 국공부라고 해도 처사가 너무 지나친 것 아닙니까? "
그녀는 몸이 휘청거렸고 언제든지 쓰러질 것 같았다.아무래도 낯선 곳에 적응 하지 못해 병이 난 것 같았다.
가마 곁에 선 연이의 얼굴에는 못마땅한 기색이 역력했다. 작은 아가씨는 자기가 힘들거나 못마땅 한일이 있으면 항상 아가씨를 부추겨 앞장 세우곤 했다.
연이의 표정을 알아차린 소예슬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곁에서 시중을 드는 하녀조차 소미영의 본 모습을 꿰뚫고 있는데, 어찌 그녀만 바보처럼 속고만 있었던 걸까.
너무 우습고 비참한 일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군영에서 지낸 소예슬은 일찍이 군용 의술에 능통했다. 예전의 그녀였다면 진심으로 소미영을 걱정해 줬겠지만, 지금의 그녀는 바로 그녀의 꾀병을 한눈에 알아차렸다.
전생의 기억대로라면, 소예슬은 횃불을 가져오도록 지시했었다.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은 소예슬은 이번 생에도 전생과 똑같이 말했다. "연이야, 횃불 좀 가져오거라."
"아가씨..."
"어서!"
아가씨의 명을 거역할 수 없었던 연이는 하는 수 없이 횃불을 가지러 떠났다.
가마 밖에서 그 모습을 본 소미영의 입 꼬리가 희미하게 올라갔다.
북양국으로 떠나기 전, 대황자는 하루라도 빨리 북양국 국공부의 신임을 얻어야 한다고 신신당부했다. 그리고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소예슬을 등을 짓밟고 올라서는 것이다.
소예슬이 더욱 무모하게 막 나갈수록, 그녀의 온순하면서도 영리한 모습이 보여질 것이다.
"아가씨, 횃불을 가져왔습니다." 잠시 후, 연이 손에 횃불을 들고 나타났다.
꽃 가마 문을 걷어차고 밖으로 나온 소예슬이 연이의 손에서 횃불을 뺏어 들었다. 그녀의 빨간 혼례복이 바람에 나부꼈다.
우아하면서도 단호하게 걸음을 옮기며 주위를 둘러보는 소예슬의 눈빛 또한 흔들림이 없었다.
조롱으로 가득 섞인 웃음소리는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고, 대신 북양국 백성들의 호기심 가득한 눈동자가 번뜩였다.
성당국의 공주는 대체 뭘 어쩌려는 걸까?
설마 국공부에 불을 지르려는 건 아니겠지?
이러한 상황에 소미영은 마음이 뿌듯해 났다. 그녀는 소예슬이 당장이라도 북양국 백성들의 미움을 사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래야만 자신이 더 빨리 그들과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다.
그건 그녀의 바램일 뿐, 소미영은 걱정 가득한 얼굴을 지어 보이며 달려가더니 소예슬의 팔을 잡아 끌며 말렸다. "언니, 아무리 그래도 불까지 지필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조금만 더 기다리면 문이 열리지 않을까요?"
소미영은 말을 하면서 일부러 소예슬이 손에 쥐고 있는 횃불을 빼앗으려 들었다.
전생에 소예슬은 소미영이 다칠까 걱정되어 끝까지 횃불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그러나 이젠...
소미영이 손을 뻗어 횃불을 뺏으려는 순간, 소예슬은 무섭게 타오르는 횃불을 소미영의 손에 건네주었다. 동시에 팔꿈치로 그녀의 옆구리를 슬쩍 밀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고통을 이기지 못한 소미영은 저도 모르게 횃불을 쥔 손을 놓치고 말았다!
"푸덕!"
반동에 의해 매섭게 타오르던 횃불은 국공부 저택 대문 바로 앞에 떨어졌다.
"화르륵!"
거센 불길이 순식간에 번져나가는 것을 본 북양국의 백성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대혼일에 부군의 집에 불을 지르다니...
성질머리가 저렇게 더러워서야!
"해가 지기에 난 그저 횃불을 빌려 국공부의 대문을 두드리려 했는데, 어찌 이리 성급하게 행동하는 것이냐?" 소예슬은 일부러 화들짝 놀란 얼굴로 바닥에 쓰러진 소미영을 내려다봤다.
넋을 잃은 얼굴인 소미영은 횃불의 불이 대문으로 옮겨가는 모습을 확인하고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북양, 국공부 대청.
상석에 앉은 노부인은 두 눈을 꼭 감은 채 손에 쥐고 있는 염주를 돌리며 소리를 냈다.
북양국의 황제가 성당국 죄인이 딸을 국공부에 인친을 보냈다는 것은 국공부의 세력을 제압하려는 것이 틀림없다.
차마 황명을 거역할 수 없었던 노부인은 성당국의 공주를 대문 밖에 세워둘 수밖에 없었다.
그때, 대부인 유씨가 대청으로 다급하게 들어오더니 노부인의 귓가에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방금 갑자원에 다녀왔는데, 하인이 말하길 어젯밤에 화항(花巷)으로 간 민 도련님이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답니다..."
염주를 손에 쥔 대부인의 손이 그대로 자리에 멈칫했다.
혼례날에 술과 분내가 가득한 화항에 들락거리니, 이 무슨 체통이 상하는 짓인가!
곰곰이 생각에 잠긴 노부인의 얼굴이 이내 환하게 펴졌다. "고작 죄인의 딸이 아니더냐. 장손이 직접 맞이할 자격은 없지."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고 돌아선 대부인 유씨의 두 눈에 실망스러운 기색이 언뜻 비쳤다.
둘째 부인 손씨는 대부인이 멀어지는 모습을 흘깃 바라보더니 고개를 더욱 내밀어 대문을 쳐다보며 나지막하게 물었다. "두 시진이 지났는데, 왜 아무 반응도 없는 거야?"
셋째 부인 전씨가 입을 손으로 가리며 조소했다. "죄인의 딸이라니, 우리 국공부의 기세에 놀라 자지러졌을 겁니다."
셋째 부인의 말에 이낭들도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마치 대문 밖에 내버려둔 성당국의 공주가 개 돼지보다 못한 사람인 것처럼 말이다.
바로 그때, 대부인 유씨가 다시 헐레벌떡 들어오더니 숨조차 제대로 돌릴 틈 없이 다급하게 외쳤다. "큰, 큰일났습니다. 문지기가 말하길, 성당에서 온 사람이 대문에 불을 질렀다고 하옵니다.
회차 3
대부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방안이 쥐 죽은 듯 조용해 졌다.
조금 전까지 조롱 섞인 눈빛을 숨기지 않던 부인들조차 안색이 시퍼렇게 질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문전박대를 당했다고 부군의 집에 불을 지르는 건, 그녀들의 상식을 완전히 벗어난 행동이었다.
그들은 서로의 눈치를 살피며 상황을 이해 하려고 애썼다.이번 인친의 상대가 성당의 반역죄를 지은 소씨 집안의 딸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어찌 이렇게 주제도 모르고 날뛴단 말인가?
"만만치 않은 계집이군. 창피한 줄도 모르고 무인 가문에서 자라 예법을 배우지 못했다고 곳곳에 자랑하고 있구나."
평온한 눈빛으로 부인들의 말을 듣고 있던 노부인의 두 눈이 불현듯 날카롭게 빛나더니 대부인 유씨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비록 민이 지금 집에 없지만, 부엌에 닭이 한 마리 남았다지? 성당국 공주에게 닭을 품에 안고 대문을 넘도록 전하거라."
대부인은 자리에서 선뜻 움직이지 못했다. "아무리 그래도 민이와 혼례를 올릴 성닥국 공주입니다. 이리 모욕을 주는 건..."
노부인은 담담한 목소리로 그녀의 말을 가로챘다. "제아무리 성당국 공주라고 한들, 우리 국공부의 사람이 되려면 우리 가문의 규정을 따라야지!"
다소 난감한 표정인 대부인 유씨는 고개를 작게 끄덕인 뒤, 대청을 나섰다.
노부인의 말을 들은 하인들이 재미있는 구경거리 라도 생긴것처럼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마당으로 나온 대부인 유씨는 바로 이 어멈을 불러 자세히 당부했다. 이내 어멈이 머리를 끄덕이더니 자리를 떠났고, 홀로 계단에 올라선 대부인의 얼굴에는 평온하면서도 후련한 표정이 자리했다.
북양국 귀비의 여동생인 그녀가 신분이 낮은 국공부 자제와 혼인하게 된 것은 신분을 낮춰 결혼한 것과 다름없었다. 그러나 권세가 높고 지위를 무시할 수 없는 노부인은 적장손을 매우 중시하게 여겼고, 그녀는 어진 계모의 모습을 최선을 다해 흉내 낼 수밖에 없었다.
드디어 동방민을 웃음거리로 만들 기회가 찾아온 만큼, 대부인 유씨는 이번 기회를 절대 놓지 않을 것이다.
국공부 대문 앞.
거센 불길에 구멍이 두 개나 생긴 대문이 활짝 열리더니 이 어멈이 하인을 거느리고 밖으로 나왔다.
"저택에 해야 할 일이 많아 하인들이 문을 여는 것을 잠시 지체했을 뿐인데, 성당국 공주가 국공부의 대문에 불을 지르는 건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이 아닙니까?" 짙은 청색의 옷을 입고 나타난 이 어멈은 동글동글한 얼굴에 한껏 치켜 뜬 눈이 유난히 매섭게 보였다.
얼굴에 당황한 빛이 어린 소미영은 바로 불쌍한 척 연기하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희 언니가 횃불을 ..."
소미영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소예슬은 그녀를 자신의 등 뒤로 끌어 내고 말했다. "내 동생은 어릴 적부터 몸이 약 했고 고작 횃불 바닥에 떨어뜨려 일어난 사고일 뿐인데, 하인 주제 어찌 주인의 잘못을 캐묻고 있단 말이더냐? 북양국의 교양이 잘못된 것이냐, 아니면 국공부의 가르침이 덜한 것이냐?"
소예슬의 날카로운 반박에 이 어멈의 안색이 시퍼렇게 질렸다.
소미영은 그녀의 등 뒤에서 얼굴을 내밀며 다급하게 외쳤다. "어멈 화내지 마세요. 언니가 일부러..."
소예슬은 그녀의 말을 잘라 버렸다."더 시간을 지체했다간 오늘 안에 혼례를 치를 수나 있겠는가?빨리 길을 안내 하거라." 이 어멈은 소미영의 말은 들은 체도 하지 않고 돌아섰다. 만약 소미영이 대문에 불을 지르지 않았다면, 그녀가 직접 소예슬을 마중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런 망신을 당하고 있지 않았을 것이다.
입술을 꽉 깨문 소미영은 고개를 아래로 푹 떨궜다.
"미영아, 언니가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 소미영의 손을 꼭 잡은 소예슬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나란히 국공부의 문을 넘었다.
소미영은 평소와 다름없이 온화한 얼굴로 자신을 달래는 소예슬의 모습이 어딘가 다르게 느껴졌지만, 이상한 곳을 찾지 못해 고개만 갸웃했다.
죄인 가문의 신분으로 인친을 떠난 소예슬이었기에, 그녀를 북양국에 데려다준 사신은 이미 떠난 지 오래였다. 함께 국공부에 발을 들인 건 연이와 월이 소예슬의 두 몸종이었다.
소미영은 소예슬보다 낮은 신분인 이낭으로 딸려 온 것이었기에 몸종은 옥이 한 사람만 데려왔다.
다섯 사람이 국공부의 대문을 지나 중문을 지나자마자 선두에 선 이 어멈이 자리에 멈춰 섰다. 두 사람의 차림새만 보아도 누가 공주인지 한눈에 알아 볼 수 있었기에 소예슬을 향해 말했다."민 도련님은 고귀하신 분이십니다, 지금쯤 화항에서 몸을 쉬이고 있을 겁니다..."
이 어멈이 하는 말을 들은 소미영의 눈언저리에 만족스러운 빛이 언뜻 스쳤다. 국공부의 도련님이 하루가 멀다하고 화항에 드나드는 것은 물론이고, 몸이 허약해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거라는 소문이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이 어멈이 뒤를 따르는 하인에게 눈짓하자, 하인은 닭 한 마리를 소예슬의 손에 강제로 쥐여줬다.
"노부인께서 말씀하시길, 성당 공주께서 인친을 맺으러 왔으니 우리 국공부도 소홀히 할 수 없다 하셨습니다. 하여 잠시 이곳에서 기다리다 노부인의 부름이 들리신다면 이 닭을 가지고 함께 들어가 예식을 올리면 됩니다."
말을 마친 이 어멈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하인들을 거느리고 빠르게 자리를 떠났다.
연이는 아가씨의 품에 얌전히 안겨있는 닭을 보며 분노가 치밀었다. 국공부는 아가씨를 업신여겨 모욕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반대로 소예슬은 조금도 당황한 기색 없이 태연하기만 했다.
이러한 모욕은 전생에 이미 모두 겪어 보았고, 이제 와 다시 겪는 게 대수롭지 않았다.
전생의 그녀는 반항하면 연약하기 그지없는 소미영이 국공부에서 괴롭힘을 받을까 두려워 반항 한 번 하지 못하고 모든 일에 양보하고 참으며 지냈다.
그러나 이제 그녀는 더 이상 바보처럼 참고만 있지 않을 것이다.
품에 안은 닭을 가만히 내려다본 소예슬은 바로 그것을 월이에게 던져주었다. "죽여."
"네." 여태껏 곁에서 아무 기색도 하지 않은 월이가 닭의 두 날개를 움켜쥐고 구석으로 향했다.
소예슬은 연이를 돌아보며 태연하게 물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북양까지 오는 내내 우리가 직접 음식을 만들어 먹었었지?"
소예슬의 어둡게 가라앉은 두 눈에 날카로운 빛이 언뜻 거리는 것을 본 연이 몸을 흠칫 떨었다. 마치 폭풍전야의 고요함처럼, 그녀가 감히 감당할 수 없는 폭풍이 휘몰아칠 것만 같았다.
차가운 눈빛으로 예슬이 하인들에게 지시를 내리는 모습을 지켜본 소미영은 놀랐지만 한켠으로 안도했다. 가문 사람들이 처형당한 이후, 줄곧 죄인처럼 지냈던 소예슬이 이토록 당당하게 의견을 밝히고 움직일 줄 몰랐다.
소미영은 소예슬이 반항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하면 그녀가 직접 나서지 않아도 국공부 사람들은 소예슬을 미워하며 따돌릴 테니 말이다.
"성당 공주는 어서 안으로 들어와 예식을 올리거라."
곧바로 대청에서 누군가의 높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언니, 빨리 안으로 들어가요." 어느새 옆으로 다가온 소미영이 낮은 목소리로 재촉했다. 그녀는 소예슬이 국공부 사람들과 갈등이 생기길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소미영의 속셈을 모조리 꿰뚫고 있는 소예슬은 치밀어 오르는 혐오를 억누르며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돌아섰다. 소예슬은 등을 곧게 세우고 고개를 살짝 들어 올린채 천천히 문턱을 넘었다. 빨간 혼례복을 입은 그녀가 대청에 들어섰다.
대청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앉아 있었고 소예슬은 익숙한 얼굴들을 가볍게 훑어봤다.
조금도 주눅들지 않은 모습으로 대청에 들어선 소예슬의 모습을 본 국공부 사람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바람에 가볍게 나부끼는 혼례복이 그녀의 우아함에 강렬함 까지 보태 주었고 , 검푸른 머릿결과 새한얀 피부 그토록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특히 그녀의 눈동자는 마치 모든 것을 꿰꿇어 볼수 있을 것 같이 차갑고 깊었다.
인친이 정해졌을 때, 성당국에서는 소예슬의 초상화를 보내왔었다. 당시 국공부의 사람들은 성당국에서 소예슬의 미모를 미화한 것이라고 말들이 많았으나 막상 오늘 실물을 보니 초상화보다 더 빼어난 미모를 자랑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소미영도 아름답기는 하나, 그녀 같은 생기와 우아함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