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3

"영아야!"

임수연은 가슴 아파 어쩔 줄 몰라 하며 급히 조영아를 부축했다. 그러더니 불쑥 나타난 남자를 향해 분노에 찬 눈빛을 보냈다.

"너 누구야? 설마 임서현의 남자 친구야?"

남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깊고 날카로운 그의 눈매에서는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심해처럼, 죽은 듯 고요하고 위험한 기색을 내뿜을 뿐이었다.

그는 임수연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갔다. 가죽 구두가 바닥을 밟을 때마다 묵직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순간, 임수연은 마치 누군가가 심장을 쥐어짜는 것처럼 숨조차 쉴 수 없었다.

'저 남자, 절대 만만치 않아.'

"임서현, 집에 돌아오고 싶으면 당장 우리한테 사과해. 그렇지 않으면, 우리 집은 너희 같은 고아를 다시는 받아주지 않을 거니까."

임수연은 날 선 말을 남긴 채 조영아를 데리고 자리를 떠났다.

'받아주지 않을 거라고? 흥. 그 저택은 애초부터 내 집이었어.'

불현듯, 남자의 허리춤에서 언뜻 보이는 권총을 발견한 임서현의 눈빛이 매서워졌다.

'이 남자, 대체 정체가 뭘까?'

그때, 남자가 그녀를 향해 돌아섰고 임서현은 마침내 그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잘생긴 얼굴, 날렵한 턱선과 이목구비, 차가운 분위기가 인상적이었고 그의 차가운 얼굴에서는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주변에 감도는 기운은, 그녀도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공포와 위험 그 자체였다.

'어쩐지 임수연이 그렇게 줄행랑을 치더라니.'

"임서현."

남자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낮고 듣기 좋은 목소리였지만 뼛속까지 파고드는 차가움이 서려 있었다.

임서현은 그를 바라보았다.

"당신이... 제 동생의 병원비를 대신 내준 건가요?"

"똑똑하군." 남자는 여전히 차가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짐 챙겨. 우리 집으로 가자."

그 말에 임서현은 미간을 찌푸렸다.

'이게 대체 무슨 황당한 소리야?'

바로 그때, 옆에 있던 한 남자가 다가와 설명하기 시작했다. "임서현 씨. 반갑습니다. 이분은 저희 주시우 도련님이십니다. 도련님의 아버지와 아가씨 아버지는 전우 사이셨습니다. 주 어른께서 돌아가시기 전, 도련님에게 꼭 아가씨 자매를 잘 돌보라고 신신당부하셨습니다. 도련님께서는 얼마 전까지 군대에 계셨다가 이제야 민간인으로 돌아 온 거라 드디어 두 분을 찾게 된 겁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무시무시한 기운을 내뿜고 있었던 거구나.'

임서현은 느낄 수 있었다. 비록 그는 차갑고 냉혹하지만, 자신에게 악의는 없음을 말이다.

임서현이 담담하게 물었다.

"당신 아버지랑 제 아버지가 전우라는 걸 증명할 수 있는 증거가 있나요?"

주시우는 사진 한 장을 꺼내 보여주었다.

사진은 전장에서 찍힌 듯 배경이 황량하기 그지없었다.

임서현의 아버지 옆에는 낯선 남자가 있었는데, 그 낯선 남자의 눈매가 눈앞의 남자와 많이 닮아 있었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요."

임서현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좋아. 그럼 연락처부터 교환하지."

주시우는 말을 아꼈다.

임서현은 그의 연락처를 추가하고 보니 주시우의 프로필 사진은 그저 새까만 색으로만 되어 있었다.

마침 임서현의 프로필 사진과 꼭 같았다.

순간, 왠지 모르게 묘하게 기분이 이상했다.

잠시 후, 주시우의 비서인 이민준도 임서현의 연락처를 추가했다.

"임서현 씨. 저는 도련님의 비서 이민준이라고 합니다. 필요할 때 언제든 저를 찾으셔도 좋습니다."

"네."

임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이 멀어져 가자 임서현은 그제야 임서윤의 병실로 돌아왔다.

잠시 후, 병실 문 앞에 건장한 두 명의 경호원들 서 있는 걸 발견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그 남자가 보낸 이들임을 알 수 있었다.

한편, 임서현은 직접 동생의 옷을 갈아 입히고 머리를 감겨 주었다.

그러자 거칠고 메마른 머리카락이 조금은 부드러워졌다.

임서윤의 몸 곳곳에 남은 상처 자국과 담뱃불로 지진 흔적을 보는 순간, 임서현의 눈가가 또다시 붉어졌다.

그녀는 참고 또 참았다.

그렇게 감정을 억누른 다음 임서윤에게 자신이 개발한 약을 발라주고, 곧바로 노트북을 열었다.

자신이 떠난 이 몇 년 동안, 동생이 무슨 일을 겪었는지 그녀는 반드시 알아내야 했다.

임서현은 저택 구역의 감시 카메라에 접속했다. 화면 속 장면이 눈에 들어오자, 임서현의 몸은 점점 굳어지기 시작했다.

그녀가 떠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임서윤은 방에서 쫓겨나 마당에 있는 개 집에서 지내는 신세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한때 햇살처럼 밝던 동생의 얼굴에선, 더 이상 웃음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그녀가 알바를 시작했을 땐, 직장에서 성희롱을 당했었고

열심히 공부를 해 명문대학에 입학했지만 첫 학기가 시작되기 바쁘게 다리가 부러지고 말았다.

무용수였던 임서윤은 골절상을 입은 바람에 더 이상 제대로 춤을 출 수 없었다.

조영아에겐 조이현이라는 이름의 언니가 있었다. 그리고 조이현과 임서윤은 같은 반이었기에 임서현은 동생이 사고를 당한 게 조이현과 연관이 있을 것이라는 의심을 지울 수 없었다.

그 후, 홀로 집에 남아 있던 임서윤은 매일 하녀처럼 허드렛일을 해야 했고, 개 집에서 지내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거의 짐승 보다 못한 삶을 살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임서윤은 매번 그녀에게 이렇게 문자를 보내곤 했다.

'언니, 걱정 마. 나 잘 지내. 언니도 거기서 잘 지내야 해.'

그 순간, 임서현의 눈앞이 뿌옇게 흐려졌다.

임서윤은 그렇게 비참하게 살고 있는 반면 고모인 임수연은 MK 그룹과의 협력으로 회사를 점점 키워갔었다.

중학교를 중퇴했던 사촌여동생은 인기 인플루언서가 되었고 조이현은 무용학원에서 이름을 날리게 되었다.

게다가 임수연은 상류층 모임에 드나들기 시작했고 고모부 역시 재계의 주목을 받는 인물이 되었다.

'쾅!'

임서현은 있는 힘껏 책상을 내리쳤다. 통증은 없었지만 후회가 파도처럼 밀려 왔다.

'내가 서윤이에게 조금만 신경을 더 썼어도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거야.' 내가 그 동안 피땀을 쏟으며 쌓아온 모든 노력들이 그저 고모를 위한 것이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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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왕이 가면을 벗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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