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3

윤나래는 바닥에 널브러진 남자들을 흘깃 쳐다본 뒤, 부상당한 남자에게 시선을 옮겼다.

날카로운 이목구비가 눈에 띄었다. 어둡고 차가운 눈빛, 딱딱하게 굳은 표정, 마치 조각이라도 한 듯이 완벽한 얼굴.

그의 얼굴은 고통으로 창백해졌지만, 그럼에도 고요한 강인함을 내뿜고 있었다.

윤나래는 이 혼란스러운 상황을 뒤로하고 떠날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평소 정이 많고 마음이 약한 윤나래의 동정심이 여지없이 발동한 것이다.

결국, 윤나래는 한숨을 내쉬며 남자 옆에 무릎을 꿇고 상처를 살피기 시작했다.

"고맙습니다." 최시훈이 낮고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별거 아니에요." 윤나래는 무심한 듯 대답했지만, 행동은 그렇지 않았다. 그녀는 진심을 다해 그를 치료하고 있었다.

최시훈의 맥박을 재던 윤나래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출혈이 심하긴 했지만, 그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맥박이 약하고 불규칙했다. 이건 독이 몸속에서 퍼지고 있다는 명백한 신호였다.

윤나래는 가방에서 작은 도자기 병을 꺼냈다. 마개를 열고 고운 약가루를 그의 상처에 뿌리자, 출혈이 즉시 멎었고 따끔한 통증 대신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이어 그녀는 작은 알약을 꺼내 그에게 건네며 말했다.

"이거 드세요. 독을 해독할 겁니다. 지금 제대로 치료하지 않으면 오래 버티지 못할 거예요."

그 말에 최시훈은 약간 머뭇거리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윤나래는 그의 시선을 무시한 채, 그의 상처를 붕대로 감싸기 시작했다. 그녀가 치료를 마무리하려던 순간, 어디선가 발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 보니 또 다른 사람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대표님..."

"제 사람들입니다." 최시훈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의 어깨는 한결 가벼워졌고, 자세도 조금 풀어졌다.

윤나래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사람들이 왔으니 저는 이만 가볼게요."

"아가씨." 최시훈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윤나래를 불러세웠다. "이름이라도 알려주세요. 은혜를 갚고 싶습니다."

"그러실 필요 없어요." 윤나래는 차갑고 단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최시훈이 더 말을 잇기도 전에, 윤나래는 곧장 자리를 떴다. 그녀에게는 더 이상의 문제를 감당할 여유가 없었다.

최시훈은 자신을 구해준 그녀의 뒷모습을 날카로운 눈빛으로 끝까지 지켜보았다.

맥박만으로 몸에 독이 퍼졌다는 사실을 알아채다니, 믿기 어려웠다.

정확함, 흔들림 없는 침착함, 그리고 전문가 같은 손길. 이 모든 것들이 그의 관심에 불을 지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그녀가 강성에 머무르는 한, 그는 반드시 그녀를 찾아낼 것이라는 것을.

윤나래는 뒤돌아보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 이미 그녀의 머릿속은 다른 계획들로 가득 차 있었다.

갑작스레 들려오는 자동차 엔진 소리에 윤나래는 정신을 차렸다. 커스텀 제작된 롤스로이스 한 대가 가로등 불빛 아래, 매끈하게 빛나며 그녀 앞에 멈춰 섰다. 윤나래는 잠시 얼어붙었다. 이런 최고급 차는 TV나 잡지에서나 보던 것이었다.

문이 부드럽게 열리며 한 중년의 남자가 차에서 내리더니 공손하게 입을 열었다. "아가씨! 드디어 찾았네요! 저는 고씨 가문의 집사, 안창민입니다. 사장님과 사모님의 부탁으로 제가 직접 모시러 왔습니다."

"네? 저를요?" 윤나래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되물었다. 이 사람,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지?

윤씨 가문 사람들은 그녀의 친부모가 청운현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가난하게 살고 있다고 했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 앞에 있는 남자와 차는 엄청난 부와 권위를 상징하는 것들이었다.

"네, 아가씨 말입니다!" 안창민은 따뜻하면서도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가씨는 고씨 가문의 아가씨입니다. 사모님은 아가씨가 살아 계신 걸 아시고는 너무 놀라고 감격해 거의 실신하실 뻔했습니다. 사장님께서는 저한테 직접 모시고 오라고 부탁하셨고요. 어서, 저와 함께 가시지요."

그는 차 문을 열고 조심스럽게 한 발 물러섰다. 표정은 여전히 차분했지만, 눈빛에는 깊은 존경심이 담겨 있었다.

윤나래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윤씨 가문의 조사가 잘못된 건가? 아니면 조작된 걸까?

혼란스러움 속에서도 그녀의 결심은 서서히 굳어졌다. 원래부터 친부모를 직접 찾아보겠노라 마음먹고 있었는데, 지금 누군가 친부모를 만나게 해주겠다고 하니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윤나래는 깊이 숨을 들이쉬고, 천천히 차에 올랐다. 문이 부드럽게 닫히자 차는 조용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엘리트 별장은 강성에서도 최고의 명성을 자랑하는 고급 주택 단지였다. 단 12채의 가구만이 존재하는 이 빌라에는, 강성에서 가장 부유하고 영향력 있는 사람들만 거주하는 곳이었다.

차가 빌라로 이어지는 구불구불한 전용 도로를 달리는 동안, 안창민은 한층 더 공손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아가씨, 지금 고씨 가문에는 아가씨의 오빠 되시는 고준혁 도련님과 입양된 동생 분, 고예은 아가씨가 계십니다. 사모님과 사장님이 아가씨를 얼마나 그리워하셨는지 몰라요. 수년 동안 전국을 샅샅이 뒤지면서 아가씨를 찾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하셨죠."

그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목소리를 낮추며 차분하게 말했다. "사실 사장님은 청운현 출신이십니다. 수십 년 전, 사장님과 사모님이 조상님들께 제사를 지내기 위해 청운현을 방문하셨는데, 마침 그때 아가씨가 태어나신 겁니다. 하지만 출생 직후에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생겨 아가씨를 잃어버리고 말았죠. 사장님이 아가씨를 찾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하셨지만, 결국 아무 단서도 찾지 못하신 채 강성으로 돌아가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슬픔은 가슴 깊이 묻고, 아픔을 견디며 성공을 위해 온 힘을 다하셨죠."

그의 목소리에 은근한 자부심이 묻어났다. "그 결과가 바로 지금의 고씨 가문입니다. 수년 동안 고씨 가문은 성장을 거듭했고 지금은 강성에서 가장 부유한 가문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렇게 대단한 일들을 하시면서도, 단 한 번도 아가씨를 찾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놓으신 적이 없습니다."

윤나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안창민의 한 마디 한 마디가, 그녀가 전혀 알지 못했던 과거의 조각들을 끄집어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차가 점점 속도를 줄이더니, 거대한 저택 앞에 멈췄다. 저택은 마치 그림에나 나올 법한 웅장한 모습으로 풍경 속에 우뚝 서 있었다.

천천히 차에서 내린 윤나래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가만히 둘러봤다. 웅장한 저택 입구에서 두 사람이 흥분한 얼굴로 그녀에게로 다가오고 있었다.

단정하고 세련된 분위기를 풍기는 남자는 날카로운 이목구비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 안에서 은은한 온화함이 느껴졌다. 그 옆에 있는 여자는 우아함이 몸에 배어 있었고, 움직임 하나하나가 기품이 넘쳤다.

윤나래를 본 송진영은 도저히 평정심을 유지하기가 힘들었다. 눈에 눈물이 가득 차오른 송진영은 윤나래에게 달려와 힘껏 그녀를 안았다. "나래야, 사랑하는 내 딸..." 송진영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드디어 너를 찾았구나. 그 오랜 세월 동안... 네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상상도 안 된다. 다 우리 잘못이야. 우리가 널 지키지 못했어."

송진영은 윤나래를 꼭 끌어안은 채 그녀의 얼굴을 바라봤다. 도저히 부정할 수 없을 만큼 자신을 꼭 닮아 있었다. 그 순간, 송진영은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절대로, 다시는 딸에게 그런 고난을 겪게 하지 않겠다고.

반면, 그런 다정함이 낯설게 느껴졌던 윤나래는 굳은 몸으로 가만히 서있었다. 어쩌면 부담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 따뜻함 속엔 분명히 진심이 담겨 있었고, 그것이 천천히 윤나래의 마음의 벽을 허물기 시작했다.

"전 괜찮아요. 정말로요." 윤나래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사실 그 말은 진심이라기보다는 송진영을 위로하기 위한 것이었다.

송진영은 한참 후에야 조심스럽게 팔을 풀었다. 그녀의 눈에는 여전히 눈물이 맺혀 있었다. "나래야, 약속할게. 이제부턴 어떤 것도, 그 누구도 너를 힘들게 하지 못할 거야."

곁에 서 있던 고문철도 침착하던 평소와는 달리 눈가에 눈물을 머금고 있었다. 그는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차분하지만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드디어 집으로 왔구나, 아가야. 그거면 됐다. 어서 들어가자."

세 사람은 함께 저택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문 안쪽에 서 있던 고예은은 이 모든 광경을 묵묵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의 눈에 잠시 차가운 기운이 스쳐 지나갔다.

그녀는 곧 마음을 가다듬고 조심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나래 언니, 집에 돌아온 걸 환영해." "나는 고예은이라고 해."

고예은은 윤나래를 처음 본 순간부터 모든 것을 알 수 있었다. 윤나래는 고씨 가문의 핏줄임이 확실했다. 놀랍도록 닮은 윤나래와 송진영의 얼굴이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고예은은 잠깐 시선을 들어 윤나래의 얼굴을 쳐다봤다. 그녀의 눈빛에 질투가 스쳤다.

송진영은 마음을 가다듬고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나래야, 여기는 고예은이야. 우리가 입양한 딸이지. 이제부터 네 동생이다. 그리고 네 오빠는 해외 출장 중인데, 곧 돌아올 거야. 너희 할머니는 요양 중이시고, 이번 달 말쯤에 집으로 오실 예정이고."

윤나래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차분한 표정이었지만,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혀 드러나지 않았다. 이 정도로 크고 영향력 있는 가문이라면, 복잡한 관계와 숨겨진 의도가 있기 마련일 것이다. 윤나래는 다시 만난 가족에 대한 환상 같은 건 애초에 없었다. 그녀는 적절한 때가 오면 이태호를 시켜 고씨 가문의 과거를 철저히 조사해 보리라 다짐했다.

"아, 나래야. 널 만나면 꼭 주고 싶었던 게 있어." 송진영이 기대감으로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그리고는 우아한 손짓으로 손목에서 에메랄드 팔찌를 풀었다.

"내가 항상 차고 다니던 팔찌인데, 이젠 너한테 주고 싶구나."

송진영은 이 팔찌를 정확히 어디서 받은 것인지 기억나진 않았지만, 중요한 누군가가 준 것이 분명했기에 오랜 시간 소중히 간직해 왔다.

윤나래는 잠시 망설였다. 그 순간의 무게가 그녀를 압도했다. 그 팔찌는 단순히 아름답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수십억 원에 이를 정도로 값어치 있는 것이었다.

"이건 너무 부담스러워요." 윤나래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렇게 비싼 건 받을 수 없어요."

"나래야, 언젠간 내가 가진 모든 게 다 네 것이 될 거야. 이건 그것들 중 하나일 뿐이란다."

윤나래가 다시 거절하기도 전에, 팔찌는 이미 그녀의 손목에 채워져 있었다. 선명한 에메랄드는 그녀의 손목 위에서 더욱 눈부시게 빛났다.

방 한쪽에서 이들을 지켜보던 고예은의 미소가 굳어졌다. 그녀의 손가락이 떨리더니, 이내 손톱이 손바닥에 박힐 정도로 주먹을 꽉 쥐었다. 얼마나 세게 쥐었던지, 고통이 무감각해질 정도였다.

이건 너무나도 노골적인 편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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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을 쓴 상속녀:그녀를 건드리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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