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2

검은색 유리로 된 아파트 자동문이 열리자, 강아영은 쌀쌀한 10월의 공기를 맞으며 밖으로 나왔다. 그녀를 동정과 경멸이 뒤섞인 눈빛으로 바라보던 경비원 김씨가 택시를 부르기 위해 손을 번쩍 들었다.

"김씨, 괜찮아요." 강아영은 아침 출근길의 소음을 뚫고 들려오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는 멈추지 않고 낡은 가죽 가방 손잡이를 꽉 쥔 채, 대기 중인 검은색 차들을 지나쳐 오른쪽으로 향했다.

손을 번쩍 든 채 얼어붙은 김씨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멀어지는 그녀의 뒷모습을 지켜봤다. '강 사모님은 절대 걸어 다니지 않는데…'

강아영은 목적지를 향해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도시는 서서히 잠에서 깨어나고 있었다. 배기가스, 구운 견과류, 그리고 축축한 콘크리트 냄새가 폐부 깊숙이 파고들었다. 거칠고 더러웠지만, 진짜였다. 라벤더 향이 가득한 펜트하우스의 공기보다 훨씬 나았다.

머리를 맑게 해야 했다. 강준혁과의 대치로 인한 아드레날린이 서서히 가라앉자 차가운 현실만이 명료하게 남았다. 이제 그녀에게는 집도, 직업도 없었다. 주머니에는 고작 2만 7천 원이 전부였고, 노트북은 3년이나 된 구형이었다.

하지만 아직 머리가 있었고, 미래를 향한 지도가 뇌리에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지하철역으로 가는 지름길을 택하기 위해 골목으로 들어섰다. 이곳의 건물들은 더 오래되었고, 그림자도 더 길게 드리워져 있었다. 이곳은 초부유층 지역과 나머지 세계를 잇는 경계선이었다.

그때, 날카로운 비명이 아침의 고요를 깨뜨렸다.

날카롭고 두려움에 가득 찬 비명이 갑자기 끊기자, 강아영은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머리가 생각하기도 전에 몸이 먼저 반응했다. 무게 중심이 자연스럽게 발끝으로 옮겨졌다. 강준혁을 만나 트로피 와이프의 가면을 쓰기 전, 그녀는 이곳보다 훨씬 험한 곳에서 살아남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죽기 전의 삶에서, 회의실과는 어울리지 않는 기술들을 익혔다.

약 6미터 앞에 있는 좁은 골목 입구를 바라봤다. 벽돌 벽에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끼어들지 말아야 했다. 가방 하나 든 여자 혼자였다. 그냥 지나쳐야 했다.

하지만 그 비명은 기억 속에서 메아리치며, 병원 침대에서 질렀던 자신의 소리 없는 절규와 겹쳐졌다.

강아영은 가방 손잡이를 내려놓고 골목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녀의 발소리는 포장도로 위로 조용히 울려 퍼졌다.

어두운 그림자 속에서 남자 셋이 어린 소녀를 구석으로 몰아붙이고 있었다. 배낭을 메고 큰 후드티를 입은 소녀는 대학생처럼 보였고, 두려움에 눈이 크게 뜨여 있었다. 한 남자가 소녀를 쓰레기통에 밀어붙이자, 다른 두 남자는 히죽거리며 웃었다. 그중 한 명은 스위치블레이드를 꺼내 찰칵거리며 열었다 닫았다를 반복했다.

길 건너편, 어두운 비계 아래에 세련된 검은색 마이바흐 한 대가 주차되어 있었다. 창문은 짙게 틴팅되어 있어 마치 공허한 구멍처럼 보였다.

차 안 뒷좌석에 앉은 강태혁은 무릎에 태블릿을 올려놓고 있었다. 화면에는 아시아 시장 변동에 대한 복잡한 재무 보고서가 떠 있었다. 무심한 표정의 날카로운 턱선이 화면의 푸른빛을 받아 희미하게 빛났다.

"대표님, 골목에 문제가 생긴 것 같습니다. 119에 신고할까요?" 운전기사 김씨가 긴장한 목소리로 물었다.

강태혁은 바로 고개를 들지 않았다. "그러시죠." 그의 목소리는 낮고 부드러웠지만, 잘 다듬은 돌처럼 차가웠다. 비즈니스 세계에서 충분한 폭력을 목격한 그에게 물리적인 폭력은 무감각한 일상일 뿐이었다.

그때, 그의 시야에 어떤 움직임이 포착되었다.

한 여자였다.

골목 입구에 나타난 그녀는 날씬한 몸매에 날씨에 비해 턱없이 얇아 보이는 코트를 입고 있었다. 영웅처럼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곧 희생자가 될 것처럼 보였다.

강태혁은 태블릿을 내려놓고 그 모습을 지켜봤다.

강아영은 소리를 지르거나 자신의 존재를 알리지 않았다. 그녀는 바닥에 떨어진 유리병을 조용히 집어 들었다.

그리고 던졌다.

유리병은 칼을 든 남자의 머리에서 몇 센티미터 떨어진 벽에 부딪혀 산산조각 났다. 유리 파편이 비처럼 쏟아졌다. 남자들은 놀란 표정으로 뒤를 돌아봤다.

"꺼져." 강아영이 아무런 감정이 실리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칼을 든 남자가 비웃음을 터뜨렸다. 불쾌하고 축축한 소리였다. "이것 좀 봐, 얘들아. 자원봉사자가 나타나셨네."

그는 그녀를 향해 달려들었다.

차 안에서 김씨가 숨을 헐떡였다. "맙소사, 저 여자 죽겠어요."

강태혁은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눈을 가늘게 떴다.

남자는 칼을 강아영의 배를 향해 찔러 들어왔다.

강아영은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앞으로 한 발짝 파고들었다. 그녀의 움직임은 한순간 흐릿했다. 이제 그를 힘으로 제압할 수는 없었다. 대신 물리학을 이용했다. 왼손이 쏜살같이 뻗어 나가 남자의 손목을 잡고, 그의 몸이 자신을 지나치도록 비틀었다.

그 순간, 끔찍한 소리가 들려왔다.

남자는 비명을 지르며 칼을 떨어뜨렸다.

강아영은 멈추지 않았다. 그대로 남자의 몸을 돌려세워 얼굴을 벽돌 벽에 처박았다. 남자는 젖은 종이봉투처럼 맥없이 쓰러졌다.

두 번째 남자가 소리를 지르며 달려들었다. 강아영은 그의 거친 주먹을 피하며 안으로 파고들어 팔꿈치로 명치를 가격했다. 한 방에 쓰러뜨릴 공격은 아니었지만, 숨을 멎게 하기에는 충분히 정확했다. 남자가 고통으로 몸을 숙이자, 그의 무릎 옆을 날카롭게 걷어찼다.

남자는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소녀를 붙잡고 있던 세 번째 남자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소녀를 놓아주고 뒷걸음질 쳤다. 그는 쓰러진 두 동료와, 그 학살의 현장 한가운데에 태연히 서 있는 날씬한 여자를 번갈아 쳐다봤다.

"도망치는 게 좋을 거야." 강아영은 코트를 바로잡고 소매의 주름을 폈다.

세 번째 남자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골목을 빠져나갔다.

대학생은 바닥에 주저앉아 흐느끼기 시작했다.

마이바흐 안에는 침묵만이 흘렀다.

김씨는 입을 살짝 벌린 채 말했다. "보셨습니까? 정말… 효율적이네요. 대체 저 여자는 누구죠?"

강태혁은 여자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방금 전의 싸움을 머릿속으로 되감았다. 효율성. 낭비되는 움직임이 전혀 없었다. 그녀는 인체의 약점을 정확히 아는 사람처럼 싸웠고, 자신의 부족한 힘을 무서울 정도의 정확성으로 보완했다.

"대표님, 경찰이 오고 있습니다. 저희가 개입할까요?" 김씨가 멀리서 들려오는 사이렌 소리를 듣고 물었다.

강태혁은 경찰차가 골목 입구를 막고 정차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두 명의 경찰관이 총을 뽑아 들고 차에서 내렸다.

"아니." 강태혁이 감정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는 그저 목격자일 뿐이다. 경찰이 진술을 받을 때까지 기다려. 저 여자와 접촉하지 마."

그는 강아영이 울고 있는 소녀 옆에 무릎을 꿇는 모습을 지켜봤다. 그녀는 흔들림 없는 손으로 소녀의 동공을 확인했다. 이윽고 고개를 들어 거리를 훑어보던 그녀의 시선이, 그의 차의 검게 틴팅된 창문에 와서 멎었다.

그를 볼 수는 없었지만, 마치 그가 그곳에 있다는 것을 아는 듯했다.

강태혁은 등골을 타고 오르는 오싹한 호기심을 느꼈다. 호기심은 위험한 감정이었다.

"김 기사." 강태혁이 조용히 말했다.

"네, 대표님."

"경찰 조사가 끝나면, 저 여자가 누군지 알아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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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차 3

경찰서는 혼란과 비참함, 관료주의가 뒤엉킨 아수라장이었다. 머리 위 형광등은 두통을 유발할 듯 윙윙거렸고, 공기 중에는 묵은 커피와 바닥 왁스, 씻지 않은 몸에서 나는 시큼한 냄새가 뒤섞여 있었다.

아로라는 딱딱한 나무 벤치에 앉아 여행 가방을 다리 사이에 단단히 끼고 보호하듯 끌어안았다. 그녀는 이미 진술을 마친 상태였다. 경찰관들은 그녀의 진술에 감탄하면서도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했다. 작은 체구의 여자가 어떻게 무장한 괴한 둘을 제압했는지는 그들로서도 풀리지 않는 의문이었다.

방 건너편, 서장실 근처에 이현우가 서 있었다. 그는 목격자 진술을 위해 따로 불려온 듯했다. 혼란스러운 경찰서의 소음 속에서도 그는 마치 자신만의 고요한 공간에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가 입은 정장은 이 경찰서의 1년 치 예산보다도 비싸 보였다.

그는 그녀에게 말을 걸지도, 태워주겠다는 제안을 하지도 않았다. 그저 경찰이 그들을 각기 다른 차에 태울 때, 차갑게 식은 눈으로 그녀를 관찰할 뿐이었다.

서장과의 대화를 마친 그가 몸을 돌려 출구로 향했다. 그의 발걸음이 그녀가 앉은 벤치를 지나쳤다.

그가 돌연 걸음을 멈췄다.

아로라가 고개를 들자, 가까이서 본 그는 더욱 위압적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의 턱에 단단히 들어간 힘과 미세하게 창백해진 안색을 놓치지 않았다.

"생존 본능이 아주 뛰어나군요." 이현우가 칭찬이라기보다는 그저 관찰에 가깝다는 듯 말했다.

"이 도시에서 살아남으려면 필수적인 본능이죠." 아로라가 차가운 목소리로 받아쳤다.

이현우는 그녀의 멍든 손마디를 훑어보더니 다시 그녀의 얼굴로 시선을 옮겼다. 그는 그녀의 얼굴에서 두려움이나 자존심, 혹은 인정받고 싶어 하는 기색이라도 찾아보려 했지만, 보이는 것은 텅 빈 무표정뿐이었다.

그가 소매 단추를 매만지려 손을 뻗었을 때, 아로라는 그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포착했다. 완벽해 보이는 그의 태도에 생긴 아주 작은 균열이었다.

아로라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녀는 그를 만지지 않았다. 그럴 필요도 없었다. 그녀는 그의 동공이 형광등 불빛에 반응하는 정도가 양쪽이 미세하게 다른 것을 알아차렸다. 서늘한 공기 속에서도 그의 관자놀이에 식은땀이 맺힌 것도 보았다.

"그 떨림, 의사에게 진찰받아 보는 게 좋겠어요. 왼쪽 눈가를 맴도는 편두통도요." 그녀가 나직이 말했다.

이현우가 그 자리에 얼어붙자, 소매 단추를 고쳐 잡으려던 그의 손이 멈칫했다. 그의 눈빛이 칼날처럼 날카로워졌다.

"방금 뭐라고 했지?"

"정중신경 문제가 아니에요." 아로라는 주변 경찰들이 듣지 못하도록 목소리를 더 낮추며 말을 이었다. "전신성 염증이 신경 스파이크를 유발하는 겁니다. 과도한 카페인과 수면 부족으로 신경 수초가 손상되고 있는 거고요."

이현우는 그녀를 빤히 쳐다봤다. 두 사람 사이의 공기가 무겁게 내려앉았다. 그는 스위스 최고의 전문의들을 만나봤지만, 그 누구도 이렇게 지저분한 경찰서에서 한눈에 그의 병을 진단해내지는 못했다.

"당신, 정체가 뭐지?" 그가 낮게 으르렁거리듯 물었다.

"그냥 목격자일 뿐이에요." 아로라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여행 가방을 챙겼다. "마그네슘과 길초근을 챙겨 드시고, 잠을 푹 주무시는 게 좋을 겁니다."

그녀는 그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출구를 향해 걸어갔다. 리놀륨 바닥 위로 그녀의 하이힐 소리가 또각또각 규칙적으로 울려 퍼졌다.

그녀의 말이 맞았다는 것을 잔인하게 증명하듯 욱신거리는 두통에, 이현우는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 있었다.

그때, 김 비서가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 "대표님, 차 준비되었습니다."

이현우는 바로 움직이지 않은 채, 자동문 너머로 그녀의 모습이 사라지는 것을 지켜봤다.

"김 비서."

"네, 대표님."

"단순한 신원 조회는 필요 없어. 저 여자에 대한 모든 걸 알아내. 어디서 태어났고, 무슨 책을 읽으며, 의술은 누구에게 배웠는지까지 전부."

"네, 대표님. 성함은 알아냈습니까?"

"아로라." 이현우는 그 이름을 입안에서 나직이 굴렸다. "찾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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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후 천재로 각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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