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1

첫 만남

침실 공기가 섬뜩할 만큼 차가웠다. 김아영은 눈을 뜨기도 전에 그 사실을 알아차렸는데, 그건 에어컨 온도를 20도로 맞춰 놓은 탓이 아니었다. 마치 죽음을 경험한 그녀의 뼛속에서부터 서늘한 냉기가 뿜어져 나오는 듯했다.

그녀는 숨을 헐떡이며 킹사이즈 침대에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 이집트산 면 시트가 식은땀으로 축축한 피부에 끈적하게 달라붙었다. 심장이 새장 속에 갇힌 새처럼 미친 듯이 뛰었다. 쿵, 쿵, 쿵. 그것은 생존의 리듬이었다.

그녀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피부는 따뜻했고, 살아있다는 감각이 생생했다. 그녀는 더 이상 병원 침대에 누워 있지 않았다. 서준이 로비에서 그녀의 사망 기자회견을 여는 동안, 그녀는 더 이상 병상에 누워 모니터의 수평선을 듣고 있지 않았다.

김아영은 손을 내리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방은 노골적일 만큼 현대적이었다. 크롬 장식, 검은색 가죽 가구, 그리고 맨해튼의 스카이라인이 한눈에 들어오는 통유리창까지. 그곳은 펜트하우스의 탈을 쓴 금빛 새장이었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협탁 위 디지털시계를 확인했다. 오전 7시. 10월 14일.

그 날짜가 물리적인 충격처럼 그녀를 덮쳤다. 10월 14일. 서준이 뉴욕 증권 거래소에서 개장 벨을 울리기로 한 날. 서준 그룹이 '혁신적인' 새 알고리즘을 발표할 날. 바로 서준이 인맥 관리를 위해 밖을 나도는 동안, 그녀가 세탁실에 처박혀 낡은 노트북으로 밤새워 완성한 그 알고리즘 말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오늘이 바로 그가 그녀를 버리는 날이라는 사실이었다.

묵직한 참나무 문이 요란하게 열리며 화장대 위 크리스털 꽃병이 가늘게 떨렸다.

서준이 방으로 들어섰다. 그는 이미 맞춤 제작한 차콜색 정장을 빼입고 머리까지 완벽하게 손질한 상태였다. 자신이 표지를 장식했던 모든 잡지 속 모습처럼 잘생기고, 날카로우며, 속이 텅 빈 것처럼 보였다. 그는 다이아몬드 커프스를 매만지며 방 건너편 전신 거울에 비친 제 모습에 온전히 심취해 있었다.

"일어났어?" 그의 목소리는 무심했고, 아무렇게나 툭 던지는 말투였다. 그는 그녀를 쳐다보지 않았다. 단 한 번도 그녀를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 그에게 그녀는 가끔 손질이 필요한 가구와 다를 바 없었다.

그는 침대로 다가와 두툼한 서류 뭉치를 이불 위로 던졌다. 서류는 둔탁한 소리를 내며 그녀의 다리 위로 미끄러졌다.

"사인해." 서준은 차갑고 참을성 없는 눈으로 그녀를 쏘아보며 명령했다. "변호사들이 오늘 아침에 서류를 제출하면, 장 마감 후 인터뷰에서 내가 싱글이라는 걸 발표할 수 있다고 했어. 투자자들에게 더 좋은 인상을 줄 수 있겠지. '매력적인 독신남'이라는 서사가 요즘 먹히거든."

김아영은 서류를 내려다보았다. 이혼 합의서. 굵은 글씨가 그녀를 노려보는 듯했다.

지난 생에서, 이 순간은 그녀를 완전히 무너뜨렸다. 그녀는 울고, 애원하고, 그의 팔에 매달려 무엇을 잘못했는지 물으며 더 나은 아내가 되겠다고, 더 조용히 있겠다고, 그가 원하는 대로 뭐든지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를 사랑했기에 스스로를 비참하게 만들었다. 그가 없으면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거짓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하지만 지금은?

김아영은 손을 뻗어 서류를 만졌다. 손끝에 건조하고 거친 종이의 감촉이 전해졌다. 눈시울이 뜨거워지지도, 목이 메어오지도 않았다. 그녀는 그저… 후련했다.

그녀는 서준을 올려다보았다. 3년 만에 처음으로 그를 똑바로 마주했다. 그는 업계의 거물이 아니었다. 그저 그녀가 벽돌 하나하나, 코드 한 줄 한 줄로 쌓아 올린 받침대 위에 서 있는 평범한 남자일 뿐이었다.

"왜 아무 말이 없어?" 서준이 입술을 비틀었다. "눈물은 아껴둬. 우리 둘 다 이 순간이 올 줄 알았잖아. 넌 재미있는 프로젝트였지만, 솔직히 말해서 넌 그냥 트레일러 파크 출신이 펜트하우스에서 공주 놀이하는 것뿐이었어. 우리 둘 다에게 창피한 일이라고."

트레일러 파크 소녀. 그것은 그가 가장 즐겨 쓰는 무기였다. 그는 그녀의 보잘것없는 출신을 들먹이며 그녀를 초라하게 만들었고, 자신의 관심 한 조각에도 감사하게 길들였다.

김아영은 침대에서 다리를 내려 일어섰다. 부드러운 카펫에 발이 닿았다.

그녀의 자세가 변했다. 순종적인 아내의 구부정한 어깨는 온데간데없었다. 그녀는 허리를 꼿꼿이 펴고 턱을 살짝 들어 올렸다. 김아영은 서준을 지나쳐 방 한편에 놓인 마호가니 책상으로 성큼성큼 향했다. 어제까지는 찾아볼 수 없었던 유연한 우아함이 그녀의 몸짓에 깃들어 있었다. 아니, 죽음이 그녀에게 자신이 누구인지를 일깨워 주기 전까지는 그런 우아함을 가졌다는 사실조차 잊고 살았다.

서준은 그녀의 침묵에 순간 당황했다. 그는 그녀가 더는 '브랜드 이미지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연설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녀의 무반응에 연습해 둔 대사가 엉망이 된 기분이었다.

"내 말 들었어?" 그는 그녀의 앞을 가로막으며 쏘아붙였다. "서류에 사인하라고. 나 시간 없어. 차가 아래서 기다리고 있단 말이야."

김아영은 멈추지 않았다. 움찔하지도 않았다. 그녀는 그를 복도에 놓인 짐짝처럼 사소한 장애물인 양 가볍게 비켜섰다.

책상에 도착한 그녀는 묵직한 만년필을 집어 들었다. 몽블랑. 첫 번째 결혼기념일에 그녀가 그에게 선물한 것이었다. 그는 한 번도 쓰지 않았다. 너무 무겁다는 이유에서였다.

김아영은 만년필을 손에 쥐었다. 완벽한 무게감이었다. 균형 잡힌, 치명적인 무게.

그녀는 서명란을 내려다보았다. 서준. 그의 서명은 날카롭고 공격적이었다. 그 옆에는 김아영의 서명을 위한 빈칸이 있었다.

기억들이 눈앞을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그가 잠든 동안 밤새워 시장 동향을 분석하던 그녀.

그녀가 짠 코드가 그의 첫 스타트업을 파산에서 구해냈다.

회의 직전 그의 귓가에 속삭여준 그림자 전략은 훗날 그의 위대한 아이디어로 둔갑했다.

그녀는 그에게 모든 것을 주었다. 그녀의 마음, 그녀의 영혼, 그녀의 존엄성까지.

그녀는 만년필 뚜껑을 열었다. 정적을 깨는 날카로운 '딸깍' 소리가 울렸다.

"위자료는 협상 없어." 서준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서류에 명시된 금액 그대로 받게 될 거야. 네 평생 만져보지도 못할 돈이지. 욕심부리지 마."

김아영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숨소리처럼 작은 소리였지만, 서준은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쓴웃음이 아니었다. 마치 아이가 양자 물리학을 설명하려는 걸 지켜보는 어른의 웃음 같았다.

"당신 돈, 필요 없어." 그녀의 목소리는 차분했고, 그와 대화할 때마다 그녀를 괴롭히던 미세한 떨림이 사라져 있었다.

그녀는 책상에 몸을 숙여 만년필 촉을 종이에 눌렀다. 검은 잉크가 영원처럼 번져나갔다.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서명했다.

김아영.

서아영이 아닌, 김아영.

그녀는 만년필 뚜껑을 닫고 서류를 그에게 던졌다. 서류가 공중에서 팔랑거리다 그의 가슴팍에 부딪혔다.

서준은 허둥지둥 서류를 잡았고, 그 바람에 애써 유지하던 침착함에 금이 갔다. 그는 서명을 내려다보았다. 엉망으로 휘갈겼거나 항의의 낙서라도 있을 줄 알았는데, 서명은 우아하고 날카로웠으며, 완벽한 법적 효력을 지니고 있었다.

"너… 너 지금 사인한 거야?" 그는 말을 더듬었다. "이렇게 순순히?"

"그래." 김아영은 드레스룸으로 향했다. 그가 원하는 인형이 되기 위해 사들였던 디자이너 드레스들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녀는 높은 선반에 손을 뻗어 낡은 가죽 여행 가방을 꺼냈다. 3년 전, 이곳에 처음 들어올 때 가져왔던 바로 그 가방이었다.

"지금 떠나는 거야?" 서준이 그녀를 따라가며 물었다. 그는 혼란스러워 보였다. 분명 원하는 바를 이뤘고 이겼는데도, 어쩐지 승리한 기분이 들지 않았다. 마치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무언가를 송두리째 잃고 있는 기분이었다.

김아영은 가방에 몇 가지 필수품을 던져 넣었다. 청바지 한 벌, 스웨터 한 벌, 그리고 그녀의 낡은 노트북. 뚜껑에 불사조 스티커가 붙어 있는 바로 그 노트북이었다.

"합의서에 30일 이내에 집을 비워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어." 서준은 다시 오만함을 그러모으며 말했다. "하지만 솔직히, 네가 빨리 떠날수록 좋지. 다음 주에 디자이너들이 와서 여기 인테리어를 싹 바꿀 예정이거든."

김아영은 여행 가방의 지퍼를 잠갔다. 지퍼 소리는 마치 시신 가방을 닫는 소리처럼 섬뜩하게 울렸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그를 돌아보았다.

"당신이 날 쫓아낸다고 생각하나 보네." 그녀는 부드럽게 말하며 여행 가방을 끌고 문으로 향했다. 바퀴가 단단한 바닥 위에서 위잉, 소리를 냈다.

서준이 문을 가로막았다. 그는 그녀보다 키가 크고 덩치가 컸다. 그는 자신의 물리적인 존재감을 이용해 그녀를 위협하며, 둘 사이의 권력 구도를 상기시키려 했다.

"그 문을 나서는 순간, 넌 아무것도 아니야." 서준은 몸을 숙이며 비웃었다. "네가 왔던 그 쓰레기장으로 돌아가. 내 이름 없이는 이 도시에서 아무도 널 거들떠보지도 않을 테니."

김아영은 고개를 들어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녀의 눈은 어둡고, 끝없이 고요한 심연 같았다.

"맞아." 그녀가 말했다. "당신이 누리는 그 삶, 유지하려면 어느 정도의 천재성이 필요하거든."

그녀가 한 걸음 다가서자, 서준은 저도 모르게 움찔하며 뒤로 물러섰다.

"메모라도 해 뒀길 바라." 그녀가 나직이 속삭였다.

그녀는 그를 밀치고 지나갔다. 그의 어깨와 부딪혔지만, 그녀는 휘청이지 않았다. 그녀는 침실을 나와 긴 복도를 지나 펜트하우스 현관문을 나섰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며 그녀가 만들어 낸 사치의 풍경을 가로막는 순간, 김아영은 시계를 확인했다.

오전 7시 15분.

시장은 두 시간 15분 후에 열린다.

그녀는 눈을 감고 숨을 내쉬었다. 엘리베이터의 공기는 탁했지만, 그녀에게는 신선한 산소처럼 느껴졌다.

"카운트다운 시작." 그녀는 텅 빈 엘리베이터를 향해 중얼거렸다.

서준은 '공짜'가 얼마나 비싼 대가를 치르게 되는지 곧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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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차 2

검은색 유리로 된 아파트 자동문이 열리자, 강아영은 쌀쌀한 10월의 공기를 맞으며 밖으로 나왔다. 그녀를 동정과 경멸이 뒤섞인 눈빛으로 바라보던 경비원 김씨가 택시를 부르기 위해 손을 번쩍 들었다.

"김씨, 괜찮아요." 강아영은 아침 출근길의 소음을 뚫고 들려오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는 멈추지 않고 낡은 가죽 가방 손잡이를 꽉 쥔 채, 대기 중인 검은색 차들을 지나쳐 오른쪽으로 향했다.

손을 번쩍 든 채 얼어붙은 김씨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멀어지는 그녀의 뒷모습을 지켜봤다. '강 사모님은 절대 걸어 다니지 않는데…'

강아영은 목적지를 향해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도시는 서서히 잠에서 깨어나고 있었다. 배기가스, 구운 견과류, 그리고 축축한 콘크리트 냄새가 폐부 깊숙이 파고들었다. 거칠고 더러웠지만, 진짜였다. 라벤더 향이 가득한 펜트하우스의 공기보다 훨씬 나았다.

머리를 맑게 해야 했다. 강준혁과의 대치로 인한 아드레날린이 서서히 가라앉자 차가운 현실만이 명료하게 남았다. 이제 그녀에게는 집도, 직업도 없었다. 주머니에는 고작 2만 7천 원이 전부였고, 노트북은 3년이나 된 구형이었다.

하지만 아직 머리가 있었고, 미래를 향한 지도가 뇌리에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지하철역으로 가는 지름길을 택하기 위해 골목으로 들어섰다. 이곳의 건물들은 더 오래되었고, 그림자도 더 길게 드리워져 있었다. 이곳은 초부유층 지역과 나머지 세계를 잇는 경계선이었다.

그때, 날카로운 비명이 아침의 고요를 깨뜨렸다.

날카롭고 두려움에 가득 찬 비명이 갑자기 끊기자, 강아영은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머리가 생각하기도 전에 몸이 먼저 반응했다. 무게 중심이 자연스럽게 발끝으로 옮겨졌다. 강준혁을 만나 트로피 와이프의 가면을 쓰기 전, 그녀는 이곳보다 훨씬 험한 곳에서 살아남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죽기 전의 삶에서, 회의실과는 어울리지 않는 기술들을 익혔다.

약 6미터 앞에 있는 좁은 골목 입구를 바라봤다. 벽돌 벽에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끼어들지 말아야 했다. 가방 하나 든 여자 혼자였다. 그냥 지나쳐야 했다.

하지만 그 비명은 기억 속에서 메아리치며, 병원 침대에서 질렀던 자신의 소리 없는 절규와 겹쳐졌다.

강아영은 가방 손잡이를 내려놓고 골목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녀의 발소리는 포장도로 위로 조용히 울려 퍼졌다.

어두운 그림자 속에서 남자 셋이 어린 소녀를 구석으로 몰아붙이고 있었다. 배낭을 메고 큰 후드티를 입은 소녀는 대학생처럼 보였고, 두려움에 눈이 크게 뜨여 있었다. 한 남자가 소녀를 쓰레기통에 밀어붙이자, 다른 두 남자는 히죽거리며 웃었다. 그중 한 명은 스위치블레이드를 꺼내 찰칵거리며 열었다 닫았다를 반복했다.

길 건너편, 어두운 비계 아래에 세련된 검은색 마이바흐 한 대가 주차되어 있었다. 창문은 짙게 틴팅되어 있어 마치 공허한 구멍처럼 보였다.

차 안 뒷좌석에 앉은 강태혁은 무릎에 태블릿을 올려놓고 있었다. 화면에는 아시아 시장 변동에 대한 복잡한 재무 보고서가 떠 있었다. 무심한 표정의 날카로운 턱선이 화면의 푸른빛을 받아 희미하게 빛났다.

"대표님, 골목에 문제가 생긴 것 같습니다. 119에 신고할까요?" 운전기사 김씨가 긴장한 목소리로 물었다.

강태혁은 바로 고개를 들지 않았다. "그러시죠." 그의 목소리는 낮고 부드러웠지만, 잘 다듬은 돌처럼 차가웠다. 비즈니스 세계에서 충분한 폭력을 목격한 그에게 물리적인 폭력은 무감각한 일상일 뿐이었다.

그때, 그의 시야에 어떤 움직임이 포착되었다.

한 여자였다.

골목 입구에 나타난 그녀는 날씬한 몸매에 날씨에 비해 턱없이 얇아 보이는 코트를 입고 있었다. 영웅처럼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곧 희생자가 될 것처럼 보였다.

강태혁은 태블릿을 내려놓고 그 모습을 지켜봤다.

강아영은 소리를 지르거나 자신의 존재를 알리지 않았다. 그녀는 바닥에 떨어진 유리병을 조용히 집어 들었다.

그리고 던졌다.

유리병은 칼을 든 남자의 머리에서 몇 센티미터 떨어진 벽에 부딪혀 산산조각 났다. 유리 파편이 비처럼 쏟아졌다. 남자들은 놀란 표정으로 뒤를 돌아봤다.

"꺼져." 강아영이 아무런 감정이 실리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칼을 든 남자가 비웃음을 터뜨렸다. 불쾌하고 축축한 소리였다. "이것 좀 봐, 얘들아. 자원봉사자가 나타나셨네."

그는 그녀를 향해 달려들었다.

차 안에서 김씨가 숨을 헐떡였다. "맙소사, 저 여자 죽겠어요."

강태혁은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눈을 가늘게 떴다.

남자는 칼을 강아영의 배를 향해 찔러 들어왔다.

강아영은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앞으로 한 발짝 파고들었다. 그녀의 움직임은 한순간 흐릿했다. 이제 그를 힘으로 제압할 수는 없었다. 대신 물리학을 이용했다. 왼손이 쏜살같이 뻗어 나가 남자의 손목을 잡고, 그의 몸이 자신을 지나치도록 비틀었다.

그 순간, 끔찍한 소리가 들려왔다.

남자는 비명을 지르며 칼을 떨어뜨렸다.

강아영은 멈추지 않았다. 그대로 남자의 몸을 돌려세워 얼굴을 벽돌 벽에 처박았다. 남자는 젖은 종이봉투처럼 맥없이 쓰러졌다.

두 번째 남자가 소리를 지르며 달려들었다. 강아영은 그의 거친 주먹을 피하며 안으로 파고들어 팔꿈치로 명치를 가격했다. 한 방에 쓰러뜨릴 공격은 아니었지만, 숨을 멎게 하기에는 충분히 정확했다. 남자가 고통으로 몸을 숙이자, 그의 무릎 옆을 날카롭게 걷어찼다.

남자는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소녀를 붙잡고 있던 세 번째 남자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소녀를 놓아주고 뒷걸음질 쳤다. 그는 쓰러진 두 동료와, 그 학살의 현장 한가운데에 태연히 서 있는 날씬한 여자를 번갈아 쳐다봤다.

"도망치는 게 좋을 거야." 강아영은 코트를 바로잡고 소매의 주름을 폈다.

세 번째 남자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골목을 빠져나갔다.

대학생은 바닥에 주저앉아 흐느끼기 시작했다.

마이바흐 안에는 침묵만이 흘렀다.

김씨는 입을 살짝 벌린 채 말했다. "보셨습니까? 정말… 효율적이네요. 대체 저 여자는 누구죠?"

강태혁은 여자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방금 전의 싸움을 머릿속으로 되감았다. 효율성. 낭비되는 움직임이 전혀 없었다. 그녀는 인체의 약점을 정확히 아는 사람처럼 싸웠고, 자신의 부족한 힘을 무서울 정도의 정확성으로 보완했다.

"대표님, 경찰이 오고 있습니다. 저희가 개입할까요?" 김씨가 멀리서 들려오는 사이렌 소리를 듣고 물었다.

강태혁은 경찰차가 골목 입구를 막고 정차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두 명의 경찰관이 총을 뽑아 들고 차에서 내렸다.

"아니." 강태혁이 감정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는 그저 목격자일 뿐이다. 경찰이 진술을 받을 때까지 기다려. 저 여자와 접촉하지 마."

그는 강아영이 울고 있는 소녀 옆에 무릎을 꿇는 모습을 지켜봤다. 그녀는 흔들림 없는 손으로 소녀의 동공을 확인했다. 이윽고 고개를 들어 거리를 훑어보던 그녀의 시선이, 그의 차의 검게 틴팅된 창문에 와서 멎었다.

그를 볼 수는 없었지만, 마치 그가 그곳에 있다는 것을 아는 듯했다.

강태혁은 등골을 타고 오르는 오싹한 호기심을 느꼈다. 호기심은 위험한 감정이었다.

"김 기사." 강태혁이 조용히 말했다.

"네, 대표님."

"경찰 조사가 끝나면, 저 여자가 누군지 알아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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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차 3

경찰서는 혼란과 비참함, 관료주의가 뒤엉킨 아수라장이었다. 머리 위 형광등은 두통을 유발할 듯 윙윙거렸고, 공기 중에는 묵은 커피와 바닥 왁스, 씻지 않은 몸에서 나는 시큼한 냄새가 뒤섞여 있었다.

아로라는 딱딱한 나무 벤치에 앉아 여행 가방을 다리 사이에 단단히 끼고 보호하듯 끌어안았다. 그녀는 이미 진술을 마친 상태였다. 경찰관들은 그녀의 진술에 감탄하면서도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했다. 작은 체구의 여자가 어떻게 무장한 괴한 둘을 제압했는지는 그들로서도 풀리지 않는 의문이었다.

방 건너편, 서장실 근처에 이현우가 서 있었다. 그는 목격자 진술을 위해 따로 불려온 듯했다. 혼란스러운 경찰서의 소음 속에서도 그는 마치 자신만의 고요한 공간에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가 입은 정장은 이 경찰서의 1년 치 예산보다도 비싸 보였다.

그는 그녀에게 말을 걸지도, 태워주겠다는 제안을 하지도 않았다. 그저 경찰이 그들을 각기 다른 차에 태울 때, 차갑게 식은 눈으로 그녀를 관찰할 뿐이었다.

서장과의 대화를 마친 그가 몸을 돌려 출구로 향했다. 그의 발걸음이 그녀가 앉은 벤치를 지나쳤다.

그가 돌연 걸음을 멈췄다.

아로라가 고개를 들자, 가까이서 본 그는 더욱 위압적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의 턱에 단단히 들어간 힘과 미세하게 창백해진 안색을 놓치지 않았다.

"생존 본능이 아주 뛰어나군요." 이현우가 칭찬이라기보다는 그저 관찰에 가깝다는 듯 말했다.

"이 도시에서 살아남으려면 필수적인 본능이죠." 아로라가 차가운 목소리로 받아쳤다.

이현우는 그녀의 멍든 손마디를 훑어보더니 다시 그녀의 얼굴로 시선을 옮겼다. 그는 그녀의 얼굴에서 두려움이나 자존심, 혹은 인정받고 싶어 하는 기색이라도 찾아보려 했지만, 보이는 것은 텅 빈 무표정뿐이었다.

그가 소매 단추를 매만지려 손을 뻗었을 때, 아로라는 그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포착했다. 완벽해 보이는 그의 태도에 생긴 아주 작은 균열이었다.

아로라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녀는 그를 만지지 않았다. 그럴 필요도 없었다. 그녀는 그의 동공이 형광등 불빛에 반응하는 정도가 양쪽이 미세하게 다른 것을 알아차렸다. 서늘한 공기 속에서도 그의 관자놀이에 식은땀이 맺힌 것도 보았다.

"그 떨림, 의사에게 진찰받아 보는 게 좋겠어요. 왼쪽 눈가를 맴도는 편두통도요." 그녀가 나직이 말했다.

이현우가 그 자리에 얼어붙자, 소매 단추를 고쳐 잡으려던 그의 손이 멈칫했다. 그의 눈빛이 칼날처럼 날카로워졌다.

"방금 뭐라고 했지?"

"정중신경 문제가 아니에요." 아로라는 주변 경찰들이 듣지 못하도록 목소리를 더 낮추며 말을 이었다. "전신성 염증이 신경 스파이크를 유발하는 겁니다. 과도한 카페인과 수면 부족으로 신경 수초가 손상되고 있는 거고요."

이현우는 그녀를 빤히 쳐다봤다. 두 사람 사이의 공기가 무겁게 내려앉았다. 그는 스위스 최고의 전문의들을 만나봤지만, 그 누구도 이렇게 지저분한 경찰서에서 한눈에 그의 병을 진단해내지는 못했다.

"당신, 정체가 뭐지?" 그가 낮게 으르렁거리듯 물었다.

"그냥 목격자일 뿐이에요." 아로라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여행 가방을 챙겼다. "마그네슘과 길초근을 챙겨 드시고, 잠을 푹 주무시는 게 좋을 겁니다."

그녀는 그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출구를 향해 걸어갔다. 리놀륨 바닥 위로 그녀의 하이힐 소리가 또각또각 규칙적으로 울려 퍼졌다.

그녀의 말이 맞았다는 것을 잔인하게 증명하듯 욱신거리는 두통에, 이현우는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 있었다.

그때, 김 비서가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 "대표님, 차 준비되었습니다."

이현우는 바로 움직이지 않은 채, 자동문 너머로 그녀의 모습이 사라지는 것을 지켜봤다.

"김 비서."

"네, 대표님."

"단순한 신원 조회는 필요 없어. 저 여자에 대한 모든 걸 알아내. 어디서 태어났고, 무슨 책을 읽으며, 의술은 누구에게 배웠는지까지 전부."

"네, 대표님. 성함은 알아냈습니까?"

"아로라." 이현우는 그 이름을 입안에서 나직이 굴렸다. "찾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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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후 천재로 각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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