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2
진료실은 순식간에 쥐 죽은 듯이 고요해졌다.
박주안은 소시은을 향해 고개를 돌리더니 매서운 눈빛으로 그녀를 노려봤다.
하지만 소시은은 태연자약하게 그와 눈을 맞추며 담담한 눈빛으로 왜 얼른 대답하지 않냐고 다그쳤다.
그러자 한참이 지나서야 박주안은 입을 열었다. "없습니다."
"네?" 소시은은 저도 몰래 말꼬리를 살짝 올렸다. 믿기지 않는다는 눈치였다.
그녀는 병력부에 기록을 하면서 설명을 덧붙였다. "오랫동안 성생활을 하지 않았거나,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과도할 경우 기능성 장애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방금 검사 결과로 봤을 때, 환자분의 생식기 감각부분이나 구해면체 반사가 매우 우수하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박주안은 할 말을 잃었다.
'뭐? 생식기 뭐? 해면체 뭐?... 매우...우수?
이 여자가! 지금 내 앞에서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기는 한 걸까?'
소시은은 드디어 손을 거두고 장갑을 벗어 의료 폐기물 쓰레기통에 던졌다.
"검사는 끝났습니다. 이제 바지를 입으셔도 됩니다."
그녀는 말을 하면서 진료 책상으로 돌아가 병력부에 빠르게 기록을 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공적인 태도는 그 어떤 조롱보다 박주안을 비참하게 만들었다.
그는 검사 침대에서 내려와 평생 가장 빠른 속도로 옷을 정리했다.
벨트를 고정한 박주안은 다시 도도한 모습으로 돌아왔지만, 어둡게 가라앉은 얼굴과 굳게 다문 입술은 그의 기분이 얼마나 최악인지 여실히 보여줬다.
그는 이 터무니없는 악몽이 드디어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는 그 빌어먹을 보고서를 받아 할아버지에게 보여준 다음, 오늘 일어난 모든 일과 소시은이라는 여의사를 기억에서 완전히 지워버릴 것이다.
하지만 소시은의 다음 말은 그를 심연으로 떨어뜨렸다.
"환자분, 기본적인 검사는 끝났습니다." 그녀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방금 촉진과 미세한 생리 반응을 고려했을 때, 혈청 테스토스테론 수치와 신경 전도 기능 검사를 추가로 받는 것을 권장합니다."
박주안은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불쾌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그러니까..." 소시은은 여전히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환자분한테 기능성 장애가 있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럴 리 없습니다." 박주안은 거의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그는 항상 자신감이 넘쳤다. 비즈니스에서도, 그리고...자신의 몸도 말이다.
그는 단지 여자에게 관심이 없을 뿐이지, 기능성 장애가 있는 건 아니다!
소시은은 그의 반응을 예상한 듯 반박하지 않았다.
그녀는 책상 위에 놓인 빈 검사지를 밀어 넣으며 말했다. "환자분은 자신의 주관적인 느낌을 믿습니까, 아니면 과학을 믿습니까?"
박주안은 소시은의 지나치게 차분한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조금이라도 흔들리거나 불확실한 표정을 찾으려 했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도 없었다.
그녀의 눈빛은 전문적이고 확고했다.
그러자 박주안은 가끔씩 업무 과로로 인한 허리 통증과 기력 부족을 떠올렸다.
'그러니 설마...설마 정말 문제가 있는 걸까?'
잠시 망설인 후, 그는 검사지를 움켜쥐고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진료실을 나섰다.
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진태검은 박주안의 얼굴이 저승사자보다 더 무섭게 가라앉은 걸 보고 깜짝 놀랐지만, 용기를 내어 다가갔다. "대표님, 검사는 잘 끝났습니까?"
박주안은 그를 차갑게 흘겨보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검사실로 향했다.
진태검은 그의 단호한 뒷모습을 보며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 상황...뭔가 심상치 않은 것 같은데?'
그렇게 다음 한 시간은 박주안의 인생에서 가장 길고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채혈, 대기, 보고서 수령.
그가 검사 보고서를 손에 쥐고 다시 소시은의 진료실로 돌아왔을 때, 그의 기세는 이미 얼음점까지 차갑게 식어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도 진료실에는 다른 환자가 없었다.
소시은은 그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녀의 책상은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고, 그의 병력부만 남아 있었다.
박주안은 억눌린 분노를 담아 보고서를 책상 위에 탁하고 내리쳤다.
하지만 소시은은 전혀 개의치 않고 고개를 숙여 보고서를 자세히 살폈다.
시간은 1분 1초 빠르게 흘러갔다.
박주안은 그녀의 미세한 표정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고 그녀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그렇게 몇 분이 흐른 후, 소시은은 드디어 보고서를 내려놓고 고개를 들었다.
"제 예상과 일치합니다. 환자분은 신경성 발기부전 초기단계입니다."
'신경성... 발기부전?'
이미 마음의 준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진단 결과가 나오자 박주안의 머릿속은 윙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하얗게 변했다.
"원인은 비교적 복잡합니다. 장기간의 정신적 스트레스와 과도한 피로로 인해 발기를 제어하는 신경 기능에 장애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다행히 일찍 발견했고, 심각한 문제는 아닙니다. 체계적인 약물 치료와 물리적 재활을 통해 완전히 회복할 수 있습니다."
박주안은 어둡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나직이 물었다. "어떻게 치료합니까?"
"제가 자세한 진단 보고서와 치료 계획을 작성해 드리겠습니다." 소시은은 말을 하면서 컴퓨터에 기록을 하기 시작했고, 프린터에서 곧바로 소리가 들려왔다. "후속 치료는 유선생님이 직접 진행할 겁니다. 유선생님은 이 분야의 권위자이니 안심하시고 치료에 임하세요. "
회차 3
'뭐야? 이제 와서 치료는 유선생께서 책임진다고?'
박주안의 미간이 순식간에 좁아 들었다.
그는 할아버지의 절친 유의사가 이 분야의 전문의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일은 눈앞에 있는 여자 외에 다른 사람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박씨 가문은 규모가 크고 내부 관계가 복잡했다.
그러니 박씨 가문의 후계자인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수많은 사람들의 감시를 받고 있었다.
남자의 존엄과 관련된 은밀한 병이 소문으로 퍼지면, 아무리 사소한 흠집이라도 흑심을 품은 자들이 그를 공격하는 무기가 될 수 있고, 심지어 그룹 내에서의 그의 지위마저 흔들릴 수가 있었다.
그렇다면 가문내의 전속 의료팀에게 맡기면 어떨까?
그건 더더욱 안 될 일이었다.
의료팀은 가문 전체를 위해 봉사하고 있었고, 인원수도 적지 않으니 누가 누구의 사람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그러니 의료팀에 비밀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그에게 자신의 절친인 유의사를 찾아가라고 한 이유도 바로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지금, 그가 가장 은밀하고 수치스러운 비밀을 소시은이라는 여자가 이미 알고 있었다.
이제 유의사 한 명 더 늘어나면 위험도 한층 더 커질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진단 과정부터 검사, 그리고 보고서 작성까지 모두 그녀가 완성했다는 점이다.
이제 와서 상황을 전혀 모르는 유의사를 찾아가 처음부터 다시 그 수치스러운 과정을 겪어야 한다는 말인가?
박주안은 그 생각만 해도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출력했습니다." 소시은은 몇 장의 A4 용지를 정리하고 병력과 검사 결과지를 함께 서류 봉투에 넣어 그에게 건넸다. "환자분, 이건 환자분의 모든 검사 자료입니다. 이 자료를 가지고 내일 유선생님을 찾아가시면 됩니다."
말을 마친 그녀는 손목시계를 확인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흰 가운을 벗었다.
"퇴근 시간이 다 됐네요." 가방을 챙긴 그녀는 퇴근할 준비를 하는 것 같았다.
박주안은 서류 봉투를 받지 않고 그녀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당신, 퇴근할 수 없습니다."
소시은은 그 말에 하려던 동작을 멈추고,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를 돌아봤다. "환자분, 제 근무 시간은 이미 끝났습니다."
"제가 퇴근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박주안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압도적인 기세로 그녀에게 다가갔다.
진료실 문을 쾅 닫은 것도 모자라 잠그기까지 했다.
좁은 공간에 분위기가 순식간에 팽팽해졌다.
소시은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는 무리한 요구를 하는 환자들을 많이 봤지만, 박주안처럼 기세가 강하고 막무가내인 환자는 처음이었다.
팔짱을 낀 그녀는 태연한 모습으로 그를 쳐다보며 짜증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환자분, 지금 뭐 하자는 겁니까? 의사를 불법 감금이라도 하겠다는 겁니까? 그게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알고는 있습니까?"
"결과?" 박주안은 그 말에 실소를 터뜨리더니 그녀 앞에 다가가 차갑게 내려다봤다. "저의 병을 진단한 사람은 당신입니다."
"그래서요?" 소시은은 전혀 두려움 없이 당당하게 그의 눈을 마주했다.
"그러니까." 박주안은 낮은 목소리로 한 글자 한 글자 힘주어 말했다. 마치 최후통첩을 내리는 것만 같았다. "시작을 했으면 끝까지 책임을 져야죠. 그러니 저의 후속 치료는 마땅히 당신이 책임져야 합니다."
소시은은 어이가 없어 웃음이 터져나올 것 같았다.
여태껏 의사 생활을 하면서 이렇게 무례하고 억지스러운 요구는 처음이었다.
"환자분,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이곳은 병원이지 환자분의 회사나 집이 아닙니다. 게다가 저는 더욱이 환자분의 부하 직원이 아니고요." 그녀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반박했다. "저는 진료를 하고 보고서를 작성했습니다. 그러니 제 책임은 이미 끝났습니다. 후속 치료는 더 전문적인 유의사가 진행할 겁니다. 이게 최적의 방안이기도 하고요. 이제 비켜주세요. 전 이만 퇴근해야 하니까요."
"당신이 책임져야 합니다." 박주안은 그녀의 말을 완전히 무시하고 고집스럽게 반복했다.
그는 자신의 운명이 다른 사람에 의해 결정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고, 자신의 약점과 비밀을 두 번째, 세 번째 사람의 손에 넘기는 것을 더더욱 받아들일 수 없었다.
눈앞에 있는 이 여자가 밉살스럽지만, 적어도 비밀은 그녀 한 사람의 손에만 쥐어져 있었다.
"소선생." 박주안의 목소리가 차갑게 가라앉더니 위협적인 기색이 묻어났다."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게 좋을 겁니다. 제일병원의 최대 주주가 박씨 그룹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겠죠? 당신한테 저의 치료를 책임지게 하거나, 내일부터 이곳에 출근하지 못하게 하는 건 나한테 있어서 전화 한 통이면 결정 지을 수 있는 일입니다."
노골적인 위협이었다.
이 직장이 필요한 젊은 의사라면 아마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로 겁을 먹었을 것이다.
하지만 소시은은 그를 가만히 쳐다보더니 가방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다시 그의 앞에 마주섰다.
팔짱을 낀 그녀는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남자를 천천히 올려다봤다.
"박주안." 그녀는 대놓고 그의 이름을 부르며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첫째, 권력으로 사람을 억압하는 건 그야말로 치사한 짓이죠. 둘째, 저는 단지 의사일 뿐만 아니라 병원에서 특별 초빙한 객원 교수입니다. 제가 없으면 병원의 손실이 더 커질 겁니다."
그녀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딱딱하게 굳은 그의 얼굴을 슬쩍 훑어보았다.
그리고 진술에 가까운 말투로 넌지시 말했다. "지금 저를 필요로 하는 건 박주안 씨이지 제가 박주안 씨를 필요로 하는 게 아니라는 점 명심하세요. 그리고 타인에게 부탁할 때는 그에 걸맞은 태도를 갖춰야죠."
박주안은 완전히 멍해졌다.
'객원 교수였어?'
그는 눈앞에 있는 지나치게 젊은 얼굴을 보며 한동안 그녀와 교수라는 직함을 연결하지 못했다.
게다가 남한테 부탁할 시 그에 걸맞은 태도를 갖추라는 그녀의 따끔한 충고는 마치 그의 얼굴을 사정없이 후려치는 손바닥 같았다.
헌데, 천하의 박주안이 언제 남한테 부탁을 해본 적이나 있었겠냐는 말이다.
하지만 그는 반박할 수 없었다.
그녀가 한 말은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지금 그는 환자의 입장이고, 그를 위해 비밀을 지킬 수 있는, 그리고 능력까지 겸비한 의사가 필요했다.
눈앞에 있는 이 여자는 어찌 보면 그의 유일한 선택이자 최고의 선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