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1

운성 제일병원.

3층 비뇨기과 진료실.

준비를 마친 소시은은 의자를 빼고 책상 앞에 앉았다. 바로 그때, 진료실 문이 벌컥 열리더니

키가 크고 몸이 다부진 남자가 역광을 받으며 들어왔다.

짙은 회색 정장을 입은 남자는 넓은 어깨와 잘록한 허리, 그리고 길게 뻗은 두 다리로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위압적인 기운을 풍겼다.

남자가 역광 속을 걸어 나와 얼굴이 완전히 드러났을 때, 그동안 수많은 미남을 봐온 소시은조차도 감탄을 금치 못했다.

'정말 잘생겼네!'

그녀의 시선이 남자의 얼굴에 2초 정도 머물더니 아래로 내려가 정장 바지에 감싸인 다리를 훑고, 결국 그의 사타구니에 고정되었다.

'너무 아깝다.

어쩜 얼굴은 이렇게 잘생겼는데, 그쪽에 문제가 있다니.'

소시은은 시선을 거두고 괜히 헛기침을 한 번 한 후, 옆에 있는 검사 침대를 가리키며 담담하게 말했다. "침대에 누워 바지를 벗으세요."

박주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순간 진료실 공기가 얼어붙었다.

두 눈이 차갑게 식은 그가 의심과 불신이 가득한 눈빛으로 눈앞에 있는 지나치게 젊은 여자를 응시했다.

하얀 가운을 입고 머리를 높이 올려 묶은 여자의 얼굴은 화장기 하나 없이 깨끗했다.

아무리 봐도 스무 살 초반으로 보이는 얼굴이었고, 아직 졸업도 하지 않은 인턴 같았다.

"유 의사는 어디 있습니까?" 박주안의 차갑게 가라앉은 목소리에 불쾌한 기색이 역력했다.

"유 선생님은 급한 수술 때문에 지금 수술실에 계십니다." 소시은은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가슴에 달린 명찰을 그에게 보여줬다.

명찰에는 주치의 소시은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녀는 턱짓으로 검사 침대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는 소시은라고 합니다. 오늘 유선생 대신 진료를 맡은 주치의고요. 환자분, 저의 시간도 소중하니 얼른 저쪽 침대에 누워 진료에 협조해 주세요."

박주안은 미간을 깊게 찌푸렸다.

그가 오늘 이곳에 나타난 이유는 순전히 할아버지의 협박 때문이었다.

할아버지는 그가 서른에 가까운 나이에도 여자를 가까이하지 않자, 그의 성적취향을 의심하는 반면, 혹시 몸에 이상이 생겼을지도 모른다고 생각에 강제로 종합 검사를 받게 했다.

그리고 유의사는 그의 오랜 절친이니 그 어떤 결과가 나와도 절대 비밀을 지킬 것이라며 안심하라고 타일렀었다.

하지만 지금, 할아버지가 언급한 유 의사는 온데간데없고 웬 젊은 여자가 그의 앞에 떡하니 앉아있다.

결국 인내심이 바닥난 박주안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진료실 문을 향해 걸어갔다.

그는 이런 황당한 검사를 워낙 받을 마음이 없었는지라 할아버지의 협박이든 뭐든 상관없이 이제 될 대로 되라는 식이였다.

"대표님!"

문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비서 진태검이 한달음에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어르신께서... 어르신께서 방금 또 전화하셨습니다. 오늘 검사 보고서를 받아야만 병원을 나설 수 있다고 하시더군요. 그렇지 않으면..."

진태검은 힘겹게 침을 삼키고 마치 죽음을 각오한 듯 비장한 말투로 전했다. "그렇지 않으면... 어르신께서 직접 병원에 오셔서 대표님 검사를 지켜보겠다고 하셨습니다."

'직접...지켜보겠다고?'

박주안의 잘생긴 얼굴이 삽시간에 솥뚜껑처럼 어두워졌다.

그 자리에 굳어버린 그는 관자놀이가 욱신거리는 것을 느꼈다.

그는 할아버지가 경호원들을 데리고 그를 둘러싼 채, 작은 쪽걸상에 앉아 자애로운 눈빛으로 그가 그곳을 검사 받은 걸 일일이 지켜보는 장면을 상상할 수 있었다.

순간, 머리털이 솟구치며 온 몸에 닭살이 돋았다.

스물여덟 살의 박주안은 상업계에서 과감한 결단력과 냉철한 판단으로 승승장구했지만, 지금처럼 진퇴양난에 빠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는 저도 몰래 깊게 숨을 들이켰다. 하지만 가슴은 무거운 돌덩이가 내려앉은 듯 갑갑하기만 했다.

결국 이성은 자존심이라는 것을 이겼다.

다시 진료실에 들어선 그는 뻣뻣한 걸음으로 검사 침대를 향해 걸어갔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금이 간 자존심을 스스로 짓밟는 것 같았다.

"누우세요."

소시은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지만, 아무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박주안은 아무 대답 없이 천천히 침대에 누웠다.

정장 아래 근육은 극도의 인내로 인해 단단하게 긴장되어 있었다.

장갑을 낀 소시은은 검사 침대 옆에 서서 그를 내려다봤다. 마치 생명 없는 의료모델을 보는 것 같았다.

"환자분, 바지를 벗으라고 했지 않습니까. 다시 말해야 합니까?"

턱 선이 팽팽하게 긴장된 박주안은 눈을 감고 깊게 숨을 들이마시더니 거칠게 벨트를 풀었다.

그리고 지퍼를 내렸다.

그는 검사를 받는 내내 얼굴을 옆으로 돌리고 벽에 걸린 남성 생식기 구조도를 뚫어지게 응시했다. 마치 눈빛으로 그 포스터를 태워버릴 기세였다.

소시은의 시선이 그의 몸에 고정되자, 박주안의 몸이 순식간에 돌처럼 굳어졌다.

"긴장하지 마세요." 소시은의 목소리는 여전히 담담했다. "너무 긴장하면 검사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긴장하지 말라고?'

박주안은 당장이라도 숨막혀 죽을 것만 같았다.

지금 그의 심경은 살인을 저지르고도 남을 지경인데, 이 여자는 그에게 긴장하지 말라고 한다.

소시은은 그의 마음속의 격동을 무시한 채 검사를 시작했다.

그녀의 동작은 전문적이고 깔끔했으며,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손가락으로 그의 몸을 정확하게 누르며 검사를 진행해나갔다.

그녀에게는 그저 평범한 업무일 뿐이었다.

하지만 박주안에게는 매 순간이 고통이었다.

하지만 그를 더욱 미치게 만드는 것이 검사를 진행함과 동시에 시작되었다.

소시은이 검사와 함께 일상적인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평소 생활 습관은 규칙적입니까?"

"네." 박주안은 이를 악물고 대답했다.

"아침 발기 현상은 있습니까?"

박주안의 관자놀이가 세게 뛰었다.

그의 잘생긴 옆얼굴이 순식간에 빨개졌지만, 그는 이를 악물고 대답했다. "네."

소시은은 고개를 끄덕이며 놀란 기색 없이 계속해서 물었다. "마지막 성관계는 언제입니까?"

회차 2

진료실은 순식간에 쥐 죽은 듯이 고요해졌다.

박주안은 소시은을 향해 고개를 돌리더니 매서운 눈빛으로 그녀를 노려봤다.

하지만 소시은은 태연자약하게 그와 눈을 맞추며 담담한 눈빛으로 왜 얼른 대답하지 않냐고 다그쳤다.

그러자 한참이 지나서야 박주안은 입을 열었다. "없습니다."

"네?" 소시은은 저도 몰래 말꼬리를 살짝 올렸다. 믿기지 않는다는 눈치였다.

그녀는 병력부에 기록을 하면서 설명을 덧붙였다. "오랫동안 성생활을 하지 않았거나,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과도할 경우 기능성 장애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방금 검사 결과로 봤을 때, 환자분의 생식기 감각부분이나 구해면체 반사가 매우 우수하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박주안은 할 말을 잃었다.

'뭐? 생식기 뭐? 해면체 뭐?... 매우...우수?

이 여자가! 지금 내 앞에서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기는 한 걸까?'

소시은은 드디어 손을 거두고 장갑을 벗어 의료 폐기물 쓰레기통에 던졌다.

"검사는 끝났습니다. 이제 바지를 입으셔도 됩니다."

그녀는 말을 하면서 진료 책상으로 돌아가 병력부에 빠르게 기록을 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공적인 태도는 그 어떤 조롱보다 박주안을 비참하게 만들었다.

그는 검사 침대에서 내려와 평생 가장 빠른 속도로 옷을 정리했다.

벨트를 고정한 박주안은 다시 도도한 모습으로 돌아왔지만, 어둡게 가라앉은 얼굴과 굳게 다문 입술은 그의 기분이 얼마나 최악인지 여실히 보여줬다.

그는 이 터무니없는 악몽이 드디어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는 그 빌어먹을 보고서를 받아 할아버지에게 보여준 다음, 오늘 일어난 모든 일과 소시은이라는 여의사를 기억에서 완전히 지워버릴 것이다.

하지만 소시은의 다음 말은 그를 심연으로 떨어뜨렸다.

"환자분, 기본적인 검사는 끝났습니다." 그녀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방금 촉진과 미세한 생리 반응을 고려했을 때, 혈청 테스토스테론 수치와 신경 전도 기능 검사를 추가로 받는 것을 권장합니다."

박주안은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불쾌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그러니까..." 소시은은 여전히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환자분한테 기능성 장애가 있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럴 리 없습니다." 박주안은 거의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그는 항상 자신감이 넘쳤다. 비즈니스에서도, 그리고...자신의 몸도 말이다.

그는 단지 여자에게 관심이 없을 뿐이지, 기능성 장애가 있는 건 아니다!

소시은은 그의 반응을 예상한 듯 반박하지 않았다.

그녀는 책상 위에 놓인 빈 검사지를 밀어 넣으며 말했다. "환자분은 자신의 주관적인 느낌을 믿습니까, 아니면 과학을 믿습니까?"

박주안은 소시은의 지나치게 차분한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조금이라도 흔들리거나 불확실한 표정을 찾으려 했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도 없었다.

그녀의 눈빛은 전문적이고 확고했다.

그러자 박주안은 가끔씩 업무 과로로 인한 허리 통증과 기력 부족을 떠올렸다.

'그러니 설마...설마 정말 문제가 있는 걸까?'

잠시 망설인 후, 그는 검사지를 움켜쥐고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진료실을 나섰다.

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진태검은 박주안의 얼굴이 저승사자보다 더 무섭게 가라앉은 걸 보고 깜짝 놀랐지만, 용기를 내어 다가갔다. "대표님, 검사는 잘 끝났습니까?"

박주안은 그를 차갑게 흘겨보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검사실로 향했다.

진태검은 그의 단호한 뒷모습을 보며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 상황...뭔가 심상치 않은 것 같은데?'

그렇게 다음 한 시간은 박주안의 인생에서 가장 길고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채혈, 대기, 보고서 수령.

그가 검사 보고서를 손에 쥐고 다시 소시은의 진료실로 돌아왔을 때, 그의 기세는 이미 얼음점까지 차갑게 식어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도 진료실에는 다른 환자가 없었다.

소시은은 그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녀의 책상은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고, 그의 병력부만 남아 있었다.

박주안은 억눌린 분노를 담아 보고서를 책상 위에 탁하고 내리쳤다.

하지만 소시은은 전혀 개의치 않고 고개를 숙여 보고서를 자세히 살폈다.

시간은 1분 1초 빠르게 흘러갔다.

박주안은 그녀의 미세한 표정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고 그녀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그렇게 몇 분이 흐른 후, 소시은은 드디어 보고서를 내려놓고 고개를 들었다.

"제 예상과 일치합니다. 환자분은 신경성 발기부전 초기단계입니다."

'신경성... 발기부전?'

이미 마음의 준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진단 결과가 나오자 박주안의 머릿속은 윙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하얗게 변했다.

"원인은 비교적 복잡합니다. 장기간의 정신적 스트레스와 과도한 피로로 인해 발기를 제어하는 신경 기능에 장애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다행히 일찍 발견했고, 심각한 문제는 아닙니다. 체계적인 약물 치료와 물리적 재활을 통해 완전히 회복할 수 있습니다."

박주안은 어둡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나직이 물었다. "어떻게 치료합니까?"

"제가 자세한 진단 보고서와 치료 계획을 작성해 드리겠습니다." 소시은은 말을 하면서 컴퓨터에 기록을 하기 시작했고, 프린터에서 곧바로 소리가 들려왔다. "후속 치료는 유선생님이 직접 진행할 겁니다. 유선생님은 이 분야의 권위자이니 안심하시고 치료에 임하세요. "

회차 3

'뭐야? 이제 와서 치료는 유선생께서 책임진다고?'

박주안의 미간이 순식간에 좁아 들었다.

그는 할아버지의 절친 유의사가 이 분야의 전문의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일은 눈앞에 있는 여자 외에 다른 사람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박씨 가문은 규모가 크고 내부 관계가 복잡했다.

그러니 박씨 가문의 후계자인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수많은 사람들의 감시를 받고 있었다.

남자의 존엄과 관련된 은밀한 병이 소문으로 퍼지면, 아무리 사소한 흠집이라도 흑심을 품은 자들이 그를 공격하는 무기가 될 수 있고, 심지어 그룹 내에서의 그의 지위마저 흔들릴 수가 있었다.

그렇다면 가문내의 전속 의료팀에게 맡기면 어떨까?

그건 더더욱 안 될 일이었다.

의료팀은 가문 전체를 위해 봉사하고 있었고, 인원수도 적지 않으니 누가 누구의 사람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그러니 의료팀에 비밀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그에게 자신의 절친인 유의사를 찾아가라고 한 이유도 바로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지금, 그가 가장 은밀하고 수치스러운 비밀을 소시은이라는 여자가 이미 알고 있었다.

이제 유의사 한 명 더 늘어나면 위험도 한층 더 커질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진단 과정부터 검사, 그리고 보고서 작성까지 모두 그녀가 완성했다는 점이다.

이제 와서 상황을 전혀 모르는 유의사를 찾아가 처음부터 다시 그 수치스러운 과정을 겪어야 한다는 말인가?

박주안은 그 생각만 해도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출력했습니다." 소시은은 몇 장의 A4 용지를 정리하고 병력과 검사 결과지를 함께 서류 봉투에 넣어 그에게 건넸다. "환자분, 이건 환자분의 모든 검사 자료입니다. 이 자료를 가지고 내일 유선생님을 찾아가시면 됩니다."

말을 마친 그녀는 손목시계를 확인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흰 가운을 벗었다.

"퇴근 시간이 다 됐네요." 가방을 챙긴 그녀는 퇴근할 준비를 하는 것 같았다.

박주안은 서류 봉투를 받지 않고 그녀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당신, 퇴근할 수 없습니다."

소시은은 그 말에 하려던 동작을 멈추고,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를 돌아봤다. "환자분, 제 근무 시간은 이미 끝났습니다."

"제가 퇴근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박주안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압도적인 기세로 그녀에게 다가갔다.

진료실 문을 쾅 닫은 것도 모자라 잠그기까지 했다.

좁은 공간에 분위기가 순식간에 팽팽해졌다.

소시은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는 무리한 요구를 하는 환자들을 많이 봤지만, 박주안처럼 기세가 강하고 막무가내인 환자는 처음이었다.

팔짱을 낀 그녀는 태연한 모습으로 그를 쳐다보며 짜증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환자분, 지금 뭐 하자는 겁니까? 의사를 불법 감금이라도 하겠다는 겁니까? 그게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알고는 있습니까?"

"결과?" 박주안은 그 말에 실소를 터뜨리더니 그녀 앞에 다가가 차갑게 내려다봤다. "저의 병을 진단한 사람은 당신입니다."

"그래서요?" 소시은은 전혀 두려움 없이 당당하게 그의 눈을 마주했다.

"그러니까." 박주안은 낮은 목소리로 한 글자 한 글자 힘주어 말했다. 마치 최후통첩을 내리는 것만 같았다. "시작을 했으면 끝까지 책임을 져야죠. 그러니 저의 후속 치료는 마땅히 당신이 책임져야 합니다."

소시은은 어이가 없어 웃음이 터져나올 것 같았다.

여태껏 의사 생활을 하면서 이렇게 무례하고 억지스러운 요구는 처음이었다.

"환자분,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이곳은 병원이지 환자분의 회사나 집이 아닙니다. 게다가 저는 더욱이 환자분의 부하 직원이 아니고요." 그녀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반박했다. "저는 진료를 하고 보고서를 작성했습니다. 그러니 제 책임은 이미 끝났습니다. 후속 치료는 더 전문적인 유의사가 진행할 겁니다. 이게 최적의 방안이기도 하고요. 이제 비켜주세요. 전 이만 퇴근해야 하니까요."

"당신이 책임져야 합니다." 박주안은 그녀의 말을 완전히 무시하고 고집스럽게 반복했다.

그는 자신의 운명이 다른 사람에 의해 결정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고, 자신의 약점과 비밀을 두 번째, 세 번째 사람의 손에 넘기는 것을 더더욱 받아들일 수 없었다.

눈앞에 있는 이 여자가 밉살스럽지만, 적어도 비밀은 그녀 한 사람의 손에만 쥐어져 있었다.

"소선생." 박주안의 목소리가 차갑게 가라앉더니 위협적인 기색이 묻어났다."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게 좋을 겁니다. 제일병원의 최대 주주가 박씨 그룹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겠죠? 당신한테 저의 치료를 책임지게 하거나, 내일부터 이곳에 출근하지 못하게 하는 건 나한테 있어서 전화 한 통이면 결정 지을 수 있는 일입니다."

노골적인 위협이었다.

이 직장이 필요한 젊은 의사라면 아마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로 겁을 먹었을 것이다.

하지만 소시은은 그를 가만히 쳐다보더니 가방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다시 그의 앞에 마주섰다.

팔짱을 낀 그녀는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남자를 천천히 올려다봤다.

"박주안." 그녀는 대놓고 그의 이름을 부르며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첫째, 권력으로 사람을 억압하는 건 그야말로 치사한 짓이죠. 둘째, 저는 단지 의사일 뿐만 아니라 병원에서 특별 초빙한 객원 교수입니다. 제가 없으면 병원의 손실이 더 커질 겁니다."

그녀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딱딱하게 굳은 그의 얼굴을 슬쩍 훑어보았다.

그리고 진술에 가까운 말투로 넌지시 말했다. "지금 저를 필요로 하는 건 박주안 씨이지 제가 박주안 씨를 필요로 하는 게 아니라는 점 명심하세요. 그리고 타인에게 부탁할 때는 그에 걸맞은 태도를 갖춰야죠."

박주안은 완전히 멍해졌다.

'객원 교수였어?'

그는 눈앞에 있는 지나치게 젊은 얼굴을 보며 한동안 그녀와 교수라는 직함을 연결하지 못했다.

게다가 남한테 부탁할 시 그에 걸맞은 태도를 갖추라는 그녀의 따끔한 충고는 마치 그의 얼굴을 사정없이 후려치는 손바닥 같았다.

헌데, 천하의 박주안이 언제 남한테 부탁을 해본 적이나 있었겠냐는 말이다.

하지만 그는 반박할 수 없었다.

그녀가 한 말은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지금 그는 환자의 입장이고, 그를 위해 비밀을 지킬 수 있는, 그리고 능력까지 겸비한 의사가 필요했다.

눈앞에 있는 이 여자는 어찌 보면 그의 유일한 선택이자 최고의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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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실에 또 남자 환자들로 가득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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