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2
교은하의 말에 남자의 눈이 가늘어졌다. 의외라는 듯 그가 물었다. "아가씨, 생각 잘 하신 겁니까? 전 불구예요. 저랑 결혼하면, 오늘 결정 분명 후회하게 될 겁니다."
교은하는 직접 대답하는 대신 되물었다. "다른 여자를 위해 아내를 버릴 수 있습니까?"
"절대 그럴 일 없습니다." 남자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교은하도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그렇다면 저도 절대 후회하지 않을 겁니다. 당신이 결혼하겠다면, 저도 결혼할 겁니다!"
그녀의 단호한 태도에 남자는 더 이상 거절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좋습니다. 그럼 결혼합시다."
그렇게 교은하의 취소될 뻔했던 결혼식은 예정대로 진행되었다.
목사의 주례 아래 그녀는 두 사람의 결혼 증명서를 손에 쥐었다.
교회를 나설 때, 교은하는 아직도 모든 게 꿈처럼 얼떨떨했다. 자신이 정말로 생면부지의 남자와 결혼을 해버리다니!
이제부터 그녀는 새로운 삶을 시작해야 한다.
그녀는 남자의 휠체어를 밀고 밖으로 나가다 문득 생각난 듯 물었다. "참, 아직 성함도 여쭙지 못했네요."
"육준혁입니다." 남자가 대답했다.
교은하는 순간 놀란 얼굴로 되물었다. "그 육씨 그룹의 장남... 육준혁 씨라고요?"
육준혁은 교은하의 놀란 기색을 한눈에 알아채고 입꼬리를 비스듬히 올리며 비웃었다.
"어떻습니까? 세상이 다 아는 폐인과 결혼했다는 걸 알게 되니, 후회라도 됩니까?"
육씨 그룹 장남에 대한 소문은 이 도시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그는 태어날 때 어머니가 난산으로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새어머니를 들였다.
그 후, 교통사고로 두 다리가 마비되어 완전히 쓸모없는 폐인이 되었다는 것까지.
새어머니가 이복동생을 낳은 후, 육준혁은 육씨 가문에서 더욱 찬밥 신세가 되었다.
할머니인 육 노부인이 그를 감싸주지 않았다면, 진작에 육씨 가문에서 내쳐져 길거리의 거지보다 못한 신세가 되었을 것이다...
육준혁은 정상적인 여자라면 자기 같은 폐인과 결혼할 리 없다고 생각했다. 돈 때문이 아니라면 말이다.
하지만 자신은 다리가 마비되었을 뿐만 아니라 육씨 가문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장남이니, 이 여자는 분명 크게 실망했으리라.
육준혁은 교은하의 얼굴에서 분함과 후회의 기색을 읽을 수 있을 거라 예상했다.
하지만 교은하는 오히려 그에게서 동병상련을 느꼈다. 두 사람 모두 가족에게 버림받은 불쌍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먼저 그의 손을 잡으며 진지하게 말했다. "말씀드렸잖아요, 당신과 결혼하기로 한 이상 절대 후회 안 한다고. 우린 이제 부부니까... 제가 더 따뜻한 집을 만들어 드리고 싶어서 그래요."
"그래요? 그랬으면 좋겠네요!"
육준혁은 교은하의 말을 믿지 않는 눈치였다.
그는 이 여자가 자신에게서 아무것도 얻어낼 게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과연 언제까지 이 연극을 계속할지 두고 볼 생각이었다.
곧, 차 한 대가 두 사람 앞에 멈춰 섰다.
"갑시다." 그가 입을 열었다.
교은하는 저도 모르게 물었다. "어디로 데려가는 건가요?"
"당연히 집으로 가야죠. 결혼했으니 이제 함께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집으로 데려간다고?'
교은하의 마음이 순간 뭉클해졌다.
그제야 그녀는 진우택과 함께 살기로 했던 집이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두 사람의 미래를 꿈꾸며 정성껏 꾸민 신혼집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녀는 육준혁과 결혼했으니, 그 안에 있는 자신의 흔적들을 빨리 정리해야만 했다.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제가 아직 처리해야 할 일이 좀 남아서요. 연락처와 주소를 알려주시겠어요? 일이 끝나는 대로 최대한 빨리 그쪽으로 가서 합치겠습니다."
"데려다주지 않아도 괜찮겠습니까?" 육준혁이 눈썹을 치켜 올리며 물었다.
"네, 괜찮습니다. 혼자 처리할 수 있어요." 교은하는 육준혁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다.
육준혁은 더 묻지 않고 교은하와 연락처를 교환한 후 차에 올라 떠났다.
30분 후, 교은하는 한 아파트 단지에 도착해 신혼집 문을 열었다.
그녀는 집 안의 모든 것을 둘러보았다. 식탁 위의 식탁보부터 벽에 걸린 그림, 창가에 놓인 두 개의 화분까지. 크고 작은 모든 것들에 그녀의 손길이 닿아 있었다. 오직 이 집을 더 따뜻한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서였는데...
하지만 교은하는 망설임 없이 그 물건들을 향해 걸어갔다. 그녀는 손수 그것들을 떼어내 몽땅 쓰레기통에 처박기 시작했다.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로 결심한 이상, 과거에 대한 미련 따위는 필요 없었다!
그녀가 불필요한 물건들을 모두 버리고 짐을 챙기고 있을 때, 문밖에 누군가 서 있다는 사실은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진우택은 안에서 벌어지는 광경을 지켜보다가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교은하!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회차 3
아기자기하게 꾸며졌던 신혼집은 본래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엉망으로 변해 있었다.
이 모든 것의 장본인인 교은하는 남은 물건들마저 미련 없이 박스에 담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이 집을 완전히 비워버릴 기세였다.
진우택은 눈앞의 광경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주위를 둘러보더니, 이내 성큼성큼 교은하에게 다가갔다.
"야, 교은하, 너 미쳤어? 내가 잠깐 집 비운 사이에 이런 식으로 분풀이를 해야 속이 시원해?"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화를 억누르는 듯한 그가 그녀에게 명령했다. "당장 한 시간 안에 이 집 원상복구 해놔!"
교은하는 손에 든 물건을 마저 박스에 넣고는, 천천히 몸을 돌려 진우택과 마주 섰다.
그녀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진우택, 너 몰라? 엎질러진 물은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다는 거. 한번 망가진 건 원래대로 돌릴 수 없는 법이야."
귀찮다는 듯 미간을 찌푸린 진우택이 물었다. "대체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데?"
교은하는 진우택이 무슨 자격으로 자신을 추궁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아마 그와 같은 사람은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조차 모를 것이다.
아니, 어쩌면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의 다정함이란 오직 그가 사랑하는 여자, 엽서아에게만 허락된 것이었으니.
무표정한 얼굴로 진우택을 똑바로 쳐다본 교은하가 한 글자 한 글자에 힘을 실어 입을 열었다.
"결혼식 날, 넌 내 체면과 간청을 무시하고 날 식장에 버려뒀어. 그때 내 기분이 어땠을 것 같아? 진우택, 내 생각은 한 번이라도 해봤어? 내가 그런 모욕을 당했는데, 이게 고작 투정 부리는 걸로 보여?"
마음속 깊이 묻어두었던 슬픔이 북받쳐 오른 그녀는 눈시울이 붉어진 채 진우택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그녀의 모습에 진우택은 순간 양심의 가책을 느꼈지만, 이내 고개를 저으며 그 감정을 떨쳐냈다.
두 사람이 함께한 세월이 몇 년인가. 그동안 그가 교은하의 속을 썩인 게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그녀는 언제나 그를 용서해 주었다. 늘 그랬듯,
이번에도 그가 조금만 달래주면 금방 화가 풀릴 것이라 그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자 진우택의 얼굴에서 분노가 씻은 듯 사라지고, 그 자리에 능숙한 미소가 걸렸다. "우리 은하... 알았어, 알았어. 그만해.
네 기분 안 좋은 거 알아. 하지만 이런 식으로 나오면 안 되지. 이게 다 뭐야, 우리 신혼집을."
싱긋 미소 지은 진우택이 교은하의 가녀린 어깨를 잡고 부드럽게 달랬다.
"이제 화 좀 풀렸어? 결혼식은 날짜만 다시 잡으면 되잖아. 내가 약속할게. 전보다 훨씬 더 크고 화려하게 열어줄게. 그럼 됐지?"
교은하는 진우택의 얼굴에 번진 미소를 가만히 지켜봤다. 입으로는 번지르르한 약속을 내뱉었지만, 그의 눈빛에는 이 상황을 대충 얼버무리려는 기색과 그녀를 손쉽게 쥐락펴락할 수 있다는 오만한 확신이 가득했다.
그래, 그는 언제나 이런 식이었다.
교은하는 속으로 씁쓸하게 웃었다. 결국 자신이 그에게 너무 많은 기회를 줬기에, 그는 더 이상 자신을 진심으로 대할 필요조차 느끼지 못하게 된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교은하는 얼굴을 차갑게 굳히고 진우택이 어깨에 올린 손을 경멸스럽다는 듯 거칠게 쳐냈다.
"만지지 마. 더러워."
진우택은 믿을 수 없다는 듯 교은하를 쳐다봤다. 예전의 그녀라면 절대 이럴 리가 없었다.
교은하는 차갑게 쏘아붙였다. "진우택, 결혼식은 이미 끝났어. 다시 할 생각도 없고. 오늘 여기 온 건 짐 싸러 온 것뿐이야."
진우택은 자신의 손이 뿌리쳐진 것에 불쾌감을 느꼈지만, 그녀의 말을 듣고는 의아한 듯 미간을 찌푸렸다. "짐을 싼다고?"
교은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당장 이 집에서 나갈 거니까."
진우택은 우스꽝스러운 농담이라도 들은 것처럼 헛웃음을 터뜨렸다. "네가 갈 데가 어디 있다고?"
진우택은 교은하가 고아원 출신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이 집을 떠나면 그녀가 돌아갈 곳 따위는 없다는 것도.
지난 5년간, 교은하는 늘 그의 곁을 맴돌았다. 그랬기에 진우택은 그녀가 결코 자신을 떠날 수 없으리라 확신했다.
이사를 가겠다는 말도 결국 자신에게 숙이고 들어오게 만들려는 수작에 불과하다고 여겼다.
진우택이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다시 그녀를 설득하려던 참이었다.
그때, 등 뒤에서 엽서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택 씨, 짐만 챙겨서 금방 내려온다면서 왜 이렇게 오래 걸려?"
엽서아는 말을 하며 안으로 들어서다 진우택의 맞은편에 서 있는 교은하를 발견하고는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머, 교은하? 여긴 웬일이야?"
교은하는 엽서아를 흘깃 쳐다보며 말했다. "여기 내 신혼집 아니니? 내가 너한테 설명할 이유는 없지. 오히려 네가 여기 왜 있는 건데?"
엽서아는 상처받은 듯 눈을 내리깔며 가녀린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실수로 과일에 손을 베는 바람에... 우택 씨가 걱정된다며 며칠만 같이 있어 주기로 했어."
말을 멈춘 그녀는 교은하의 짐을 발견하고 믿을 수 없다는 듯 입을 틀어막았다.
"세상에, 교은하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혹시 나 때문에 화난 거야? 그렇다고 이렇게까지 할 건 없잖아. 기분 나빴으면 나한테 직접 말하지 그랬어. 내가 사과하면 되잖아, 왜 일을 이렇게 만들어?"
교은하는 차갑게 입꼬리를 올리며 엽서아에게 다가갔다. "정말 나한테 사과하고 싶어? 진심이야?"
엽서아는 진우택이 보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며 연기를 계속했다.
그녀는 가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네 화만 풀린다면."
"그래. 좋아." 교은하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지만, 그 눈에는 어떤 감정도 담겨 있지 않았다. "네가 진심으로 사과하고 싶다니, 나도 사양하진 않을게."
말을 마친 교은하의 손이 번개처럼 허공을 갈랐다. 그리고 다음 순간, 엽서아의 뺨 위로 날카로운 파열음이 터져 나왔다.
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