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2
서은하의 시점:
집으로 돌아오는 픽업트럭 안에서, 태준은 한 손으로 운전대를 잡고 다른 손은 우리 사이의 콘솔에 올려두었다. 그는 나를 힐끗 보며 아무렇지 않은 척 입을 열었다.
“은하야, 그거 알아… 며칠 뒤면 유라 기일이야.”
나는 창밖을 응시했다. 익숙한 우리 목장의 풍경이 흐릿하게 스쳐 지나갔다. 심장은 가슴 속에서 죽은 듯이 무거웠다.
“아직 너한테는 힘든 일인 거 알아. 생각하기도 싫을 테고. 할머니랑 나는 그냥 묘지에 잠깐 들렀다 올게. 넌 집에서 푹 쉬고 있어, 알았지?”
그의 말투는 부드러웠지만, 마치 다루기 힘든 아이를 대하듯 거만했다.
지난 5년간, 그는 늘 같은 핑계와 같은 말투로 그날 나를 집에 남겨두었다. 그리고 바보같이, 나는 그의 ‘배려’에 감사했었다.
“알았어.”
나는 속삭였다. 내 목소리는 무서울 정도로 차분했다.
내가 순순히 동의하자 그의 마지막 불안감마저 사라진 듯했다. 다음 신호등에서 그는 내 쪽으로 몸을 돌려, 내 순종에 대한 평소의 보상처럼 이마에 입을 맞추려 했다.
그의 입술이 내 피부에 닿으려는 순간, 나는 움찔하며 몸을 피했다.
그가 얼어붙었다.
트럭 안의 공기가 갑자기 무겁고 팽팽하게 변했다.
“나… 멀미가 좀 나는 것 같아.”
나는 손바닥에 손톱을 박아 넣으며 더듬거렸다. 날카로운 통증만이 나를 바로 서게 했고, 비명을 지르지 않게 막아주었다.
집에 돌아와서, 나는 주스가 마시고 싶다는 핑계로 그를 부엌으로 보냈다. 그가 시야에서 사라지자마자, 나는 곧장 그의 서재로 들어갔다. 그곳은 내가 거의 들어가지 않는 방이었다. 금지된 곳이라서가 아니었다. 그가 언제나 너무나 솔직하고 믿음직스러웠기 때문이었다. 그는 내게 아무것도 숨기지 않았고, 바로 그 투명함이 나를 안심시켰다.
그 아이러니가 씁쓸하게 목을 태웠다.
나는 그의 컴퓨터 전원 버튼을 눌렀다. 화면이 깜빡이며 켜졌고, 단 한 장의 이미지가 내 망막에 낙인처럼 새겨졌다.
태준과 최유라, 그리고 민준이의 사진이었다. 그들은 해바라기 밭에 서 있었다. 태준은 아이를 안고 있었고, 유라는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 채 그에게 기대어 있었다. 햇살이 그들의 머리카락과 웃는 얼굴을 금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순수하고 완전한 행복의 초상화였다.
그의 컴퓨터 바탕화면이었다.
숨이 멎었다. 나는 떨리는 손가락으로 키보드를 움직여, 비밀번호 입력창에 짧은 숫자열을 입력했다. 민준이의 생일이었다.
컴퓨터가 경쾌한 소리를 내며 잠금이 풀렸다.
사진 앨범을 클릭했다. 이미지의 해일이 나를 덮쳤다. 민준이의 백일잔치, 태준이 아이를 안고 있고 내 할머니, 윤숙자 회장님이 옆에서 환하게 웃고 있었다. 지역 아빠와 아들 로데오 대회, 태준이 민준이에게 조랑말에 앉는 법을 참을성 있게 가르쳐주고 있었다. 최유라의 호화로운 목장에서 보낸 수많은 주말들. 바비큐 파티, 수영장 파티, 피크닉.
내 할머니, 윤숙자 회장님은 대부분의 사진에 있었다. 민준이를 안고 있는 그녀의 얼굴에 떠오른 순수하고 무조건적인 사랑의 표정은, 내가 평생 단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것이었다. 그녀는 내 할머니가 아니었다. 그들의 할머니였다.
작년에 태준이 한 목축 잡지와 했던 인터뷰가 떠올랐다. 그는 카메라를 똑바로 응시하며 그 특유의 진솔한 매력으로 말했다.
“저는 제 가족을 사랑합니다. 제게는 가족이 전부입니다.”
이제야 이해했다. 그가 말한 가족에 나는 포함된 적이 없었다.
나는 그의 가죽 의자에 텅 빈 껍데기처럼 앉아 있었다. 그때 주머니 속 휴대폰이 진동했다.
모르는 번호로부터 온 문자였다.
“오랜만이야, 은하야. 네 남편이랑 할머니가 나랑 민준이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보여? 꿈 깨. 태준 씨를 포함해서 흑목 그룹의 모든 건 내 것이 될 거야. 아, 그리고 내일 우리 승마 목장 기념 파티야. 네 남편이 진짜 가족이랑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지 보러 오는 건 어때?”
마지막에는 ‘유라가’라고 적혀 있었다.
바로 그 순간, 서재 문이 활짝 열렸다. 태준이 주스 한 잔을 손에 들고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서 있었다.
“자기야. 나 내일 외박해야 할지도 몰라. 북쪽 목초지 좀 잠깐 확인하러 가는 거야. 아마 늦게 돌아올 것 같아.”
회차 3
서은하의 시점:
나는 최유라의 문자에 답장하지 않았다. 그녀의 도발은 값쌌다. 나는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 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이웃 마을로 차를 몰았다. 유라가 자기 집에서 일한다고 언급했던 가사도우미 아주머니를 찾아냈다. ‘거액의 현금’은 필요 없었다. 내 눈에 서린 절망과 몇 장의 빳빳한 십만 원짜리 지폐만으로 충분했다.
“그 여자요?”
아주머니는 어두운 눈으로 비웃었다.
“우릴 벌레 보듯 해요. 사모님이 주시는 돈이면, 내가 불이라도 질러줄 수 있어요.”
알고 보니 기념 파티 때문에 목장에 일손이 부족했고, 임시 청소 인력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나는 평범한 원피스로 갈아입고, 머리는 스카프로 감쌌다. 마스크와 선글라스로 얼굴을 가렸다. 나는 그날 고용된 다른 일꾼들 틈에 섞여 아무도 모르게 안으로 들어갔다.
호화로운 목장 저택에 들어서는 순간, 심장이 멎었다. 거대한 돌 벽난로 위에는 엄청난 크기의 가족사진이 걸려 있었다.
내 할머니, 윤숙자 회장님이 중앙의 푹신한 안락의자에 앉아 환하게 웃는 민준이를 무릎에 앉히고 있었다. 태준과 유라는 그녀의 양옆에 서서, 내가 꿈에서나 그리던 행복으로 빛나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신입, 꾸물거리지 말고.”
아주머니가 나를 집 안으로 이끌며 중얼거렸다. 그녀는 트로피로 가득 찬 유리 진열장을 가리켰다.
“저 은색 벨트 버클 보여요? 회장님이 민준 도련님 태어났을 때 직접 디자인한 거래요. 세상에 하나뿐인 거.”
머리가 핑 돌았다. 내가 처음 흑목 가문에 들어왔을 때, 기념품으로 작은 가보라도, 하다못해 커프스링크 하나라도 달라고 할머니에게 조심스럽게 부탁했던 기억이 났다.
그녀는 차가운 눈으로 나를 보며 말했다.
“몇 년 전 화재로 다 타버렸다.”
타버린 게 아니었다. 내가 그럴 자격이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건,”
아주머니가 근처 의자에서 화려한 안장 덮개를 집어 들며 말했다.
“회장님이 민준 도련님 조랑말 주려고 한 땀 한 땀 직접 수놓은 거예요. 저렇게 누군가를 애지중지하는 건 처음 봤네. 어떤 손주가 다른 손주보다 더 중요한가 보죠.”
아주머니의 말은 무심했지만, 내 살을 도려내는 듯했다.
다음 일은 긴 복도를 따라 늘어선 수십 개의 액자를 닦는 것이었다. 각각의 액자에는 내 삶에서 도둑맞은 기억과 순간들이 담겨 있었다. 갓 태어난 민준이와 함께 병원에 있는 태준. 민준이에게 낚시를 가르치는 태준. 그네를 밀어주는 태준. 그는 그들의 삶에서 단 한 순간도 놓치지 않았다.
그의 모든 변명들—‘출장’, ‘목초지 시찰’, ‘중요한 고객과의 미팅’—이제 그 모든 것들이 얼굴을 가졌다. 그들은 집이 있었다. 그리고 그곳은 나와 함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저녁이 다가오고 파티 손님들이 도착하기 전, 행복한 가족이 돌아왔다. 그들은 마을의 개천절 축제에 다녀온 길이었고, 민준이는 작은 파란색 리본을 쥐고 있었다.
태준은 아이를 공중으로 번쩍 들어 올려 어깨에 태웠다. 유라는 웃으며 손수건으로 그들의 얼굴을 닦아주었다. 그 장면은 너무나 고통스러울 정도로 단란해서 숨이 막혔다.
나는 다용도실로 몸을 숨기고 문틈으로 엿보았다. 유라가 태준에게 기대며 능숙하고 섬세한 투정으로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태준 씨, 난 그냥… 민준이가 영원히 숨어 살지 않았으면 좋겠어. 걘 아빠를 가질 자격이 있고, 모든 걸 공개적으로 누릴 자격이 있잖아.”
태준이 그녀를 감싸 안았다.
“알아, 자기야, 알아. 시간 좀만 더 줘. 내가 다 처리할게. 넌 닷새 뒤에 있을 민준이 생일 파티에만 집중해. 할머니랑 나는 이미 말 다 맞춰놨어. 은하는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할 거야.”
더 이상 부서질 수 없다고 생각했던 내 심장이 먼지가 되어버렸다.
나는 다용도실에서 빠져나와 출구로 향했다. 그 숨 막히는 곳을 벗어나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마구간을 지날 때, 나는 그와 정면으로 마주쳤다. 태준은 말을 확인하러 나오던 길이었다.
그가 멈춰 섰다. 그의 날카로운 눈이 좁혀지며 나에게 고정되었다.
“처음 보는 얼굴인데?”
그가 의심이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나는 고개를 숙인 채, 심장이 목구멍에서 미친 듯이 뛰는 것을 느꼈다.
그는 한 걸음, 그리고 또 한 걸음 다가왔다. 내 남편의 익숙한 향기가 나를 감쌌고, 나는 질식할 것 같았다.
“고개 들어 봐.”
그가 명령했다.
손바닥이 땀으로 축축했다. 그가 손을 뻗어 내 머리에서 스카프를 낚아채려는 순간, 다른 목소리가 긴장을 갈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