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1
임신 4개월 차, 미래를 꿈꾸던 사진작가인 나는 상류층의 베이비 샤워 파티에 참석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남편 최진혁을 보았다.
다른 여자와 함께 있는 그를.
심지어 갓 태어난 아기를 ‘자신의 아들’이라 소개하면서.
세상이 무너져 내렸다.
감당할 수 없는 배신감의 급류가 나를 덮쳤다.
진혁은 내가 ‘그저 감정적일 뿐’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그 말에 고통은 몇 배로 증폭되었다.
그의 내연녀 유세라는 내 임신 합병증에 대해 진혁과 상의했다는 사실을 밝히며 나를 조롱했다.
급기야 내 뺨을 때렸고, 그 충격에 숨이 멎을 듯한 끔찍한 경련이 일었다.
진혁은 그녀의 편을 들었다.
사람들 앞에서 나에게 망신을 주며 ‘그들의’ 파티에서 떠나라고 소리쳤다.
이미 한 가십성 온라인 뉴스에는 그들이 ‘그림 같은 가족’으로 포장되어 기사가 올라오고 있었다.
그는 내가 돌아올 거라고 확신했다.
내가 그의 이중생활을 받아들일 거라고.
친구들에게는 내가 ‘드라마퀸’이지만 ‘결국엔 항상 돌아온다’고 떠들었다.
그 뻔뻔함, 계산된 잔인함, 그리고 세라의 소름 끼치는 악의.
그 모든 것이 내 안에서 생전 처음 느껴보는 차갑고 단단한 분노를 지폈다.
어떻게 그렇게 눈이 멀었을까.
몇 달 동안 나를 가스라이팅하며 다른 가정을 꾸린 남자를 어떻게 그렇게 믿었을까.
하지만 변호사 사무실의 푹신한 카펫 위에서 그가 내게 등을 돌렸을 때, 내 안에서 새롭고 결코 부서지지 않을 결심이 굳어졌다.
그들은 내가 부서지고, 버려지고, 쉽게 조종할 수 있는 여자라고 생각했다.
가짜 별거에 순순히 동의할 ‘이성적인’ 아내라고.
그들은 몰랐다.
나의 조용한 수용은 항복이 아니었다.
그것은 전략이었다.
그가 소중히 여기는 모든 것을 산산조각 내겠다는 조용한 약속이었다.
나는 더 이상 ‘다뤄지지’ 않을 것이다.
이해하지 않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을 끝내고, 그들의 완벽한 가족 놀음이 잿더미로 변하는 것을 똑똑히 지켜보게 할 것이다.
제1화
뱃속에서 느껴지는 차가운 불안감은 익숙한 감정이었다.
너무나 여러 번 무시해왔던 느낌.
하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내 눈으로 직접 본 후에는.
나는 떨리는 손으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두 번 울리기도 전에 엄마가 받았다.
내 안의 혼돈과는 대조적으로 차분한 목소리였다.
“지우야? 무슨 일이야? 목소리가 왜 그래.”
“엄마.”
목구멍에 걸린 단어가 고통스럽게 터져 나왔다.
“진혁 씨가….”
전화기 너머로 침묵이 흘렀다.
하지만 그 침묵은 텅 비어 있지 않았다.
무언가 알고 있다는, 기다림의 침묵이었다.
“그 사람이 여기 있어, 엄마. 내가 촬영하기로 한… 이 베이비 샤워 파티에.”
목소리가 갈라졌다.
“다른 여자랑. 그리고 아기랑 같이. 갓난아기야, 엄마.”
믿을 수 없다는 사실과 서서히 밀려오는 공포가 뒤섞여 말이 쏟아져 나왔다.
“사람들이 그 사람을 아빠라고 소개했어.”
엄마가 숨을 헙, 하고 들이마시는 소리가 들렸다.
“그 개자식.”
엄마의 목소리가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
“그럴 줄 알았어. 처음부터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지.”
엄마의 거친 말이 이상하게 위로가 되었다.
인정받는 기분이었다.
나는 미친 게 아니었다.
진혁 씨가 항상 말하던 것처럼 호르몬 때문에 예민하고 피해망상에 시달리는 게 아니었다.
“그 사람은… 내가 상상하는 거라고 했어.”
마침내 뜨거운 눈물이 터져 나오며 속삭였다.
“몇 달 동안이나, 엄마.”
“내 말 잘 들어, 한지우.”
엄마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내 절망을 갈랐다.
“넌 아무것도 상상한 게 아니야. 나도 의심하고 있었어. 내가 좀 알아볼게. 정확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아내 주마.”
“나 이제 어떡해?”
세상이 발밑에서 사라진 기분이었다.
나는 진혁 씨의 아이, 우리 아이를 임신한 지 4개월 된 내 배를 감쌌다.
“넌 지금 당장 숨 쉬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마.”
엄마가 명령했다.
“할 수 있으면 거기 그대로 있어. 내가 다시 전화할 때까지 그 사람하고 마주치지 마. 이건 내가 처리할게. 우리가 처리할 거야.”
아주 조금, 힘이 돌아왔다.
나의 엄마. 나의 버팀목.
“알았어, 엄마.”
“그리고 지우야.”
엄마의 목소리가 약간 부드러워졌다.
“너는 강한 아이야. 그 자식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네가 지금 생각하는 것보다도 훨씬 더. 그거 잊지 마.”
엄마는 볼 수 없었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전화가 끊겼다.
나는 화려한 청담동의 파티장을 둘러보았다.
파스텔 톤의 장식들이 역겹게 느껴졌다.
엄청난 배신감.
그래, 이게 바로 그거였다.
그리고 차갑고 단단한 결심이 뱃속 깊은 곳에서부터 형성되기 시작했다.
이건 내 인생이 될 수 없다.
내 아이의 인생이 이렇게 되게 둘 수는 없다.
다가오는 변화는 마치 해안가에 몰려드는 폭풍처럼 느껴졌다.
회차 2
나는 억지웃음과 잔 부딪치는 소리에서 벗어나 직원용 출입구 근처의 한적한 구석을 찾았다.
목에 걸린 카메라는 쓸모없는 쇳덩이처럼 무겁게 느껴졌다.
다시 한번 봐야 했다.
이 악몽이 현실이라는 것을 확인해야만 했다.
꽃 장식 틈새로 엿보자, 그들이 보였다.
최진혁. 유세라. 그리고 아기.
그들은 완벽한 그림이었다.
끔찍하고 역겨운 가정의 행복을 담은 그림.
진혁 씨는 새하얀 아기 침대 위로 몸을 숙였다.
그의 미소는 넓고 진심이었다.
요즘 나에게는 좀처럼 보여주지 않던 종류의 미소였다.
그는 아기의 턱 밑을 간질였다.
아기가 꺄르르 웃었다.
유세라는 의기양양하고 흡족한 표정으로 진혁 씨의 팔에 손을 얹었다.
그녀의 손가락은 소유욕으로 가득했다.
그녀는 사랑스러운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심장이 산산조각 났다.
깔끔하게 부서진 게 아니라, 지저분하게 찢어지는 고통이었다.
그는 그곳에서 너무나 자연스러워 보였다.
너무나… 헌신적으로.
아까 들었던 소개 멘트가 귓가에 맴돌았다.
‘아기의 헌신적인 아버지.’
우리 결혼식에서, 우리 임신 소식에 축배를 들었던 우리의 친구들이 유세라의 아이를 보며 감탄하고 있었다.
그들은 알고 있었다.
그들의 미소는 지나치게 밝았고, 내 시선을 피하는 행동은 너무나 의도적이었다.
나는 이곳의 이방인이었다.
그들의 축제에 나타난 유령.
내 임신, 내가 품고 있는 아이는 그들의 빛나는 새 현실 속에서 불편한 진실, 환상 속의 존재처럼 느껴졌다.
그는 나 없이 새로운 삶, 새로운 가족을 만들고 있었다.
내가 우리의 미래를 계획하는 동안에.
폐 속의 공기가 재로 변하는 것 같았다.
불신과 역겨운 확신이 싸웠다.
이건 실수가 아니었다.
오해도 아니었다.
이것은 계산되고 잔인한 기만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축하 파티의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온 것이었다.
회차 3
공기가 필요했다.
파티장의 향수 냄새와 숨 막히는 분위기가 아닌, 진짜 공기가.
나는 직원용 문을 통해 골목으로 빠져나왔다.
쓰레기통 냄새가 차라리 반가웠다.
휴대폰이 울렸다. 엄마였다.
“지우야, 생각보다 더 심각해.”
엄마는 서두 없이 말했다.
“그 자식이 아빠 맞아. 친자 확인 끝났대. 몇 달 전에 서초동에 그 여자 오피스텔도 얻어줬어. 이중생활을 하고 있었던 거야.”
하나하나의 단어가 망치처럼 나를 내리쳤다.
그때, 안쪽 직원용 문 근처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진혁 씨의 목소리였다.
“…걱정 마, 민석아. 지우 그냥 예민해서 그래. 알잖아, 임신 호르몬.”
민석. 진혁 씨의 가장 오랜 친구 중 한 명이자 우리 결혼식에서 사회를 봐줬던 사람이었다.
“그래도 그렇지, 형수님이 형을 여기서 본 건… 좀 심했어.”
민석의 목소리에는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다.
진혁 씨가 낮고 깔보는 듯한 소리로 웃었다.
“괜찮아. 걔 원래 저래. 지우는 날 너무 사랑해서 절대 못 떠나. 그리고, 갈 데가 어디 있겠어? 걘 내가 필요해.”
온몸의 피가 차갑게 식었다.
그 냉담함, 목소리에 담긴 절대적인 확신.
그는 진심으로 내가 자신의 소유물이라고, 울다가도 결국 용서할 예측 가능한 인형이라고 믿고 있었다.
“세라 씨는?”
민석이 물었다.
“세라는 상황을 이해해. 인내심이 많지. 내가 지우를 잘 다룰 거라는 걸 알아.”
나를 다룬다고.
마치 내가 처리해야 할 문제인 것처럼.
나는 벽돌 벽에 몸을 기댔다.
거친 표면이 등을 파고들었다.
역겨움이 물리적인 형태로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그는 단지 기만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경멸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내가 약하다고 생각했다.
그를 향한 내 사랑이 나를 영원히 묶어둘 족쇄라고 생각했다.
절망이 무거운 추처럼 가슴을 짓눌렀다.
그는 아무것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