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1
내 짝, 알파 권이혁에게 10년을 헌신했다. 그리고 오늘, 마침내 내가 실버문 팩의 루나가 되는 날이었다. 내 굳건한 충심을 기념하는 축복의 날이 되어야 했다.
하지만 의식이 시작되기 직전, 나는 그가 베타와 나누는 대화를 엿듣고 말았다. 그는 나를 ‘메마른 땅’이라 불렀다. 임신한 정부인 한소희로 나를 대체하겠다며 비웃었다. 심지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돌아와 애원할 거라며 내기까지 걸었다.
모든 팩의 무리 앞에서, 그는 가짜 진단서를 증거랍시고 흔들며 한소희를 새로운 루나로 선포했다. 내가 그 자리를 떠나려 하자, 나는 그녀를 공격했다는 누명을 썼다.
권이혁의 알파 커맨드가 나를 강타했고, 나는 힘없이 무릎을 꿇었다. 그는 경멸 가득한 눈으로 선언했다. “이 여자가 너희의 미래 루나를 공격했다.”
그의 마지막 명령은 채찍이었다. 은이 박힌 채찍이 내 등을 잔인하게 헤집었다. 그의 전사들은 나를 쓰레기처럼 숲에 내던져 죽게 내버려 뒀다.
고통과 독에 정신을 잃었던 나는, 다시 눈을 떴을 때 또다시 포로가 되어 있었다. 나를 내려다보는 것은 적대 팩의 무시무시한 알파, 류시헌이었다. 그는 내 너덜너덜한 옷과 피 흘리는 상처를 훑어보았다. 그리고 몇 년간 나를 괴롭혔던 그 말을 차갑고 의문스러운 중얼거림으로 되뇌었다.
“쓸모없는 암컷 늑대라?”
제1화
이서아 POV:
류시헌을 처음 만났을 때, 나는 그의 포로였다. 기억은 고통과 공포로 흐릿하지만, 머릿속을 울리던 차갑고 선명한 목소리만은 생생하다.
마인드 링크였다. 늑대인간들 사이의 사적인 통신 채널. 하지만 이건 강제적이고 침입적이었다. 멀리서 울리는 천둥 같은 류시헌의 낮은 목소리가 내 짝에게, 권이혁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네 여자를 잡고 있다, 권이혁. 너의 예비 루나 말이야.”
나는 나무에 묶여 온몸이 쑤셨지만, 나를 진정으로 무너뜨린 것은 권이혁의 대답이었다. 그는 새로운 연인과 함께 일출을 보고 있었고, 그의 생각은 나를 향한 역겨움의 파도 그 자체였다.
“마음대로 해.” 권이혁의 목소리가 어떤 온기도 없이 링크를 갈기갈기 찢었다. “버릇이나 고쳐 놔. 어차피 쓸모없는 암컷 늑대니까.”
그건 과거의 회상이었다. 악몽이었다.
그리고 오늘, 내가 그에게 충성을 맹세한 지 10년이 되는 날. 내가 공식적으로 실버문 팩의 루나가 되는 날이었다. 모두가 그저 형식적인 절차일 뿐이라고, 10년간의 헌신을 축하하는 자리라고 말했다.
내가 틀렸다.
나는 긴장으로 떨리는 마음을 안고 권이혁을 찾으러 알파의 개인 서재로 향했다. 문이 살짝 열려 있었고, 마인드 링크가 아닌 그의 실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몇 년간 애써 무시해왔던 잔인함이 묻어나는 목소리였다.
그는 자신의 베타, 민준과 이야기하고 있었다.
“저 여자는 오늘이 정말 자기를 위한 날인 줄 알아.” 권이혁이 비웃었다. 그 소리는 내 영혼에 얼음물을 쏟아붓는 것 같았다. “한심하기 짝이 없지.”
“어떻게 하실 겁니까, 알파?” 민준이 물었다.
“몇 년 전에 했어야 할 일을 해야지. 이 팩에 후계자를 낳아줄 수 있는 진짜 루나를 발표하는 거야. 한소희는 가임 능력이 있어. 이서아는 그냥 메마른 땅일 뿐이고.” 권이혁이 낮고 추악한 소리로 낄낄거렸다. “사흘 주지. 사흘 안에 내가 던져주는 부스러기라도 얻어먹겠다고 빌면서 기어 돌아올 거야. 내기할래?”
심장이 부서지는 걸 넘어,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나는 의식용 흰 드레스를 입는 것조차 포기했다. 평범한 청바지와 얇은 스웨터 차림으로 의식이 열리는 넓은 공터로 걸어갔다. 모든 팩의 구성원들이 기대에 찬 얼굴로 그곳에 모여 있었다.
권이혁이 나를 보더니, 그의 얼굴이 분노의 가면처럼 일그러졌다. 하급 늑대들을 복종시키는 힘, 그의 알파 커맨드가 나를 강타했다.
“이게 무슨 짓이야, 이서아? 날 망신 주려는 거야?”
그의 목소리는 낮은 으르렁거림이었고, 그 힘이 내 무릎을 꿇리고 사과하게 만들려 했다. 하지만 가슴속의 고통이 그의 명령보다 더 강했다. 나는 꿋꿋이 버텼다.
그는 내 눈에서 반항심을 읽었고, 표정이 굳어졌다. 그는 자신의 패를 꺼내기로 결심했다.
“나의 팩이여!” 그의 목소리가 조용한 군중 속으로 울려 퍼졌다. “우리는 10년간 후계자를 기다려왔다. 달의 여신의 축복을 기다렸다. 이제 여신께서 우리에게 다른 길을 보여주셨음이 분명해졌다.”
그가 옆을 향해 손짓하자, 젊은 오메가, 한소희가 앞으로 나섰다. 그녀는 빛이 났고, 살짝 부른 배에 보호하듯 손을 얹고 있었다.
“달의 여신께서 내게 가임 능력이 있는 짝을 축복하셨다! 한소희가 너희의 새로운 루나가 될 것이며, 그녀는 이 팩의 미래를 품고 있다!” 그는 종이 한 장을 들어 올렸다. 조잡하게 위조된 진단서였다. 군중은 숨을 삼켰고, 이내 몇몇 아첨꾼들이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나는 울지 않았다. 소리치지도 않았다. 차갑고 텅 빈 공허함 외에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그에게, 이제는 수군거리며 나를 손가락질하는 팩에게 등을 돌리고 걸어 나갔다.
“사흘이다, 이서아!” 권이혁의 조롱이 나를 따라왔다. “네가 기어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겠다!”
공터 가장자리에서 한소희가 내 앞을 막아섰다. 그녀는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으며 배를 쓰다듬었다. “이제 그는 내 거야. 이 자리도 내 거고. 미래도 내 거지.”
무감각을 뚫고 마침내 뜨겁고 생생한 분노의 불꽃이 타올랐다. 나는 그녀를 옆으로 밀쳤다. 세게 민 것도 아니었다. 그저 지나가기 위해 살짝 밀었을 뿐이다.
“저 여자가 우리 루나 님을 공격했다!” 누군가 비명을 질렀다.
권이혁은 순식간에 내 옆으로 다가와 쇠사슬 같은 손으로 내 팔을 붙잡았다. 그는 이것을 자신의 미래 후계자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했다.
그의 알파 커맨드가 절대적이고 잔혹하게 나를 덮쳤다. “무릎 꿇어!”
몸이 나를 배신했다. 다리가 풀리며 흙바닥에 쓰러졌다. 굴욕감이 어떤 물리적 고통보다 더 뜨겁게 타올랐다. 권이혁은 경멸 가득한 눈으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이 여자는 너희의 미래 루나와 내 뱃속 아이를 공격했다. 벌을 받아야 마땅하다.” 그는 전사들에게 고갯짓했다. “채찍을 가져와라. 은을 박은 걸로.”
그날 밤, 채찍질로 등이 헤집어진 후, 그들은 나를 내쫓았다. 버림받고 부서진 채, 나는 우리 땅과 경계를 이루는 고대의 숲을 비틀거리며 걸었다. 상처에 스며든 희석된 은은 느리게 작용하는 독이었고, 시야가 흐려지고 다리가 떨렸다.
나는 나뭇잎 더미 위로 쓰러져 정신을 잃었다.
깨어났을 때, 기억 속의 오싹한 메아리가 들려왔다. 이번에는 절벽 끝에 있는 나무에 묶여 있었다. 키가 크고 위압적인 형체가 창백한 달빛을 등지고 내 앞에 서 있었다.
적대 팩인 흑림 팩의 알파였다. 류시헌.
그의 목소리는 그 첫 악몽에서처럼 차갑고 날카로웠다. 그는 내 너덜너덜한 옷과 피 흘리는 상처를 훑어보았다. 그리고 몇 년간 나를 괴롭혔던 그 말, 권이혁이 했던 그 말을 되뇌었다.
그는 고개를 갸웃하며 낮고 의문스러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쓸모없는 암컷 늑대라?”
---
회차 2
이서아 POV:
첫 본능은 애원이었다. 날것 그대로의 절박한 생존 본능이 고통을 비집고 기어 나왔다.
“제발요.” 목이 쉰 목소리로 속삭였다. “소용없어요. 권이혁은 저 때문에 몸값을 지불하지 않을 거예요. 절 내쫓았어요. 그는… 그는 제가 불임이라고 생각해요.”
그 단어는 혀 위에서 독처럼 느껴졌다.
류시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그림자로 가려진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나를 지켜볼 뿐이었다. 그의 침묵은 어떤 위협보다 더 무서웠다.
갑자기 다리에서 진동이 울리기 시작했다. 청바지 주머니에 아직 들어있던 내 휴대폰이었다. 계속해서 윙윙거렸다.
류시헌이 눈썹을 치켜올렸다. 말없는 질문이었다. 내 손은 묶여 있었기에, 그가 몸을 숙여 내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그의 손가락이 내 허벅지를 스쳤다. 짧고 우연한 접촉이었지만, 이상한 온기가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핏줄을 채우는 차가운 공포와는 극명한 대조였다.
그는 화면을 밀어 잠금을 해제하고 액정을 훑어보았다. 진동이 멈췄다. 그가 내가 볼 수 있도록 휴대폰을 들어 보였다.
화면은 한소희가 보낸 알림으로 가득했다.
잔인함이 뚝뚝 묻어나는 메시지들이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한소희: “알파의 저택으로 이사했어. 내가 살던 곳보다 훨씬 크네.”
한소희: “네 낡은 옷들은 현관 앞 쓰레기봉투에 담아뒀어. 태워줄까?”
그리고 사진이 왔다.
그녀와 권이혁이 주 침실에서 뒤엉켜 있는 사진이었다. 내 침실. 내가 몇 년에 걸쳐 부드러운 담요와 향초로 채우며 꾸몄던 그 방이었다. 권이혁은 내가 10년간 갈망했던 그 표정, 경계심 없이 소유욕 넘치는 다정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속이 울렁거렸다. 메스꺼움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사진 아래에는 마지막 메시지가 있었다.
한소희: “곧 루나 자리도 내 차지가 될 거고, 달의 여신께서 우리 아기를 축복하실 거야. 그리고 넌 아무것도 없겠지.”
아무것도. 그 단어는 내 심장이 있던 텅 빈 공간에서 메아리쳤다.
내가 사랑했던 남자가 다른 여자와, 우리 침대에서 함께 있는 모습을 보자, 내 안 깊은 곳에서 이상한 열기가 타오르기 시작했다. 단순히 분노가 아니었다. 야생적이고 통제 불가능한 에너지의 파동이었다. 가장 깊은 감정적 배신에서 태어난 육체적 고통이었다. 피가 끓는 것 같았고, 피부는 열에 들뜬 듯 따끔거렸다. 거부당한 고통, 은의 독, 그리고… 내 앞에 서 있는 알파의 존재에 의해 깨어난 고대의 원초적인 무언가였다.
나는 밧줄에 몸부림치며 목이 메인 흐느낌을 터뜨렸다. “그만! 제발, 그만해요!”
미친 듯한 몸부림에 약해진 밧줄이 갑자기 끊어졌다. 내 몸이 앞으로 쏠리며 절벽 아래로 기울었다.
찰나의 순간, 세찬 바람과 아래의 뾰족한 바위들만 보였다. 나는 추락하고 있었다.
그때, 흐릿한 움직임이 있었다.
류시헌은 인간이 아닌 속도로 움직였다. 그는 순식간에 우리 사이의 거리를 좁혀 강력한 팔로 내 허리를 감싸 안았다. 벼랑 끝에서 나를 다시 끌어당겼다. 그가 나를 그의 가슴 쪽으로 세게 당기자, 내 등이 단단한 근육에 부딪혔다.
그의 맨팔이 위로 말려 올라간 셔츠 때문에 드러난 내 맨살에 닿았다. 그의 피부가 내 피부에 닿는 순간, 그 일이 일어났다.
번개처럼 맹렬하고 밝은 충격이 온몸을 관통했다. 고통스럽지 않았다. 그건… 모든 것이었다. 모든 신경 말단을 노래하게 만드는 순수한 에너지의 흐름이었다. 잠들어 있던 내 안의 늑대가 슬픔 속에서 갑자기 고개를 들고, 알아차렸다는 듯 소리 없는 울부짖음을 터뜨렸다.
류시헌이 굳었다. 그의 몸이 갑자기 경직되고 근육이 뻣뻣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의 숨이 멎었다.
차갑고 계산적이던 그의 시선은 이제 혼란과 더 어둡고, 맹렬한 소유욕이 뒤섞인 폭풍우 치는 바다 같았다.
“죽고 싶었나?” 그가 내 등 뒤에서 낮은 진동으로 으르렁거렸다. 하지만 이내 분노가 사그라들고, 마지못해 부드러움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그놈의 잔인함을 과소평가했군.”
그는 천천히 팔을 풀었지만 완전히 놓지는 않았다. 그가 몸을 숙여 내 목 가까이 얼굴을 가져왔다. 그의 따뜻한 숨결이 피부에 닿았고, 그는 길고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의 향기가 내 감각을 가득 채웠다. 뇌우가 지나간 후의 야생적이고 깨끗한 소나무 향, 그리고 다가오는 눈보라의 날카롭고 차가운 공기가 섞인 냄새였다. 강력하고, 취할 것 같았다. 내 영혼은 긴장을 풀고, 평생 찾아 헤매던 향기를 알아차린 듯했다.
그의 늑대는 만족했다. 나는 느낄 수 있었다. 낮고 기분 좋은 울림이 그의 가슴에서 울려 퍼졌다.
그는 엄지손가락으로 내 입가의 피를 부드럽게 닦아주었다. 그의 손길은 더 이상 포획자의 것이 아니었다. 전혀 다른 무언가였다.
그의 눈이 어둡고 강렬하게 나를 사로잡았다.
“거래를 하지.” 그의 낮은 속삭임이 등골을 타고 소름을 돋게 했다. “그놈에게 돌아가. 네 부모님이 남긴 반지를 가져와. 그놈이 끼고 있는 반지 말이야.”
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 그의 시선은 흔들림이 없었다. “그걸 내게 가져오면, 자유롭게 가게 해주지.”
---
회차 3
이서아 POV:
반지. 그건 내게 남은 유일한 것이었다. 사랑받던 전 알파와 루나였던 내 부모님의 유품. 내 진정한 짝을 위한 것이었다. 10년 동안, 권이혁은 그 반지를 끼고 그 힘을 자신의 것인 양 주장해왔다.
그 반지를 위해서라면, 나는 지옥이라도 다시 걸어 들어갈 수 있었다.
상처투성이 몸을 이끌고, 나는 실버문 팩의 영토로 돌아갔다. 불명예스럽게 비틀거리며 내려왔던 길을, 이제는 차갑고 단 하나의 목적을 품고 걸었다.
팩의 무리가 나를 보고 경멸로 얼굴을 찡그렸다.
“저기 봐, 애도 못 낳는 오메가가 돌아왔네.”
“하루도 못 버텼잖아.”
속삭임이 파리 떼처럼 나를 따라다녔지만, 아무도 감히 나를 건드리지 못했다. 내 이전 지위의 유령이 여전히 내게 달라붙어, 그들의 증오에 대한 연약한 방패가 되어주었다.
나는 알파 저택의 무거운 떡갈나무 문을 밀고 들어갔다. 내 집이었다.
나를 맞이한 광경에 숨이 멎었다.
권이혁과 한소희가 거실 소파에 있었다. 내가 웅크리고 책을 읽곤 했던 바로 그 소파였다. 그들은 벌거벗은 채, 역겨운 열정의 과시처럼 몸을 얽고 있었다.
내가 들어서자 권이혁이 고개를 들었고, 게으르고 오만한 미소가 그의 얼굴에 번졌다. 그는 몸을 가릴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봤지?” 그가 한소희에게 말했다. 내가 똑똑히 들을 수 있을 만큼 큰 목소리였다. “사흘도 안 걸렸잖아. 내가 기어 돌아올 거라고 했지.”
한소희는 그에게 매달리며 어깨에 키스했다. 그녀는 악의에 찬 눈으로 나를 보았다. “자기야, 저 여자 몸은 확인해 봐야지. 그 로그 놈들 캠프에서 무슨 짓을 당했을지 누가 알아?”
그 비난은 추악했고, 나를 비하하려는 의도였다.
권이혁은 소파에서 내려와 내게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는 내 턱을 잡고 고개를 억지로 들어 올린 뒤, 짐승처럼 내 목에 얼굴을 묻고 냄새를 맡았다. 조잡하고 모욕적인 소유의 제스처였다.
그의 몸이 굳어졌다. 그가 나를 마주한 눈은 새로운 종류의 분노, 질투로 타오르고 있었다.
“그놈 냄새가 나.” 그가 으르렁거렸다. “다른 알파 냄새가 난다고.”
오랫동안 침묵하던 내 안의 늑대가 그의 말투에 날을 세웠다. 그는 더 이상 그럴 권리가 없었다.
나는 그를 무시하고 방을 훑어보았다. 내 것이었던 모든 것이 사라졌다. 내 책들, 어머니가 사랑했던 그림들, 내가 몇 년에 걸쳐 모은 작은 장신구들. 모든 것이 현관문 옆에 쓰레기 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이제 여긴 내 집이야.” 한소희가 새로운 왕좌에 앉은 의기양양한 여왕처럼 소파에서 선언했다.
권이혁이 내 팔을 더 세게 잡았다. 그는 나를 가까이 끌어당기며 음모를 꾸미는 듯한 속삭임으로 목소리를 낮췄다. “넌 머물러도 돼. 내 비밀 연인이 되는 거야. 예전처럼 지낼 수 있어.”
그 제안은 너무나 역겨웠고, 존중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어서, 쓴웃음이 목구멍에서 터져 나왔다. 나는 그를 밀쳐내고 미친 듯이 무언가를 찾았다.
그리고 그것을 보았다.
반지. 내 부모님의 반지. 한소희의 손가락에 끼워져 있었다.
그녀는 내가 보는 것을 알아채고 손을 들어 은빛 유품이 빛을 받게 했다. 그녀는 아이처럼 조롱하듯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그리고 내가 그녀에게 한 걸음 다가서자,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며 뒤로 비틀거리다 바닥에 쓰러졌다.
“저 여자가 날 밀었어요! 권이혁, 아기를 해치려고 했어요!”
권이혁의 분노가 폭발했다. 그가 나를 뒤로 밀치자 나는 비틀거렸고, 채찍 맞은 등이 울렸다. 새하얗고 눈이 멀 것 같은 고통이 척추를 타고 솟구쳤다.
하지만 반지를 가져와야 했다.
고통을 무시하고, 나는 그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를 위해서가 아니라, 내 부모님의 유산을 위해서였다.
“제발, 권이혁.” 갈라진 목에서 간신히 말을 쥐어짰다. “반지만 줘. 그분들에게서 남은 건 그것뿐이야. 떠날게. 달의 여신께 맹세코, 로그가 되어서 다시는 네 앞에 나타나지 않을게.”
로그의 맹세는 늑대가 할 수 있는 가장 엄숙한 서약이었다. 모든 인연을 끊고 유령이 되겠다는 의미였다.
내 절대적인 결심이 그를 흔들었음이 틀림없다. 그는 나를 쳐다보았다. 그의 눈에 무언가, 아마도 충격이나 후회 같은 것이 스쳐 지나갔다. 그는 저항하는 한소희의 손가락에서 반지를 빼내 내 앞 바닥에 던졌다.
나는 허둥지둥 반지를 주워 차가운 금속을 손가락으로 감쌌다. 주먹에 꽉 쥐고 천천히, 고통스럽게 일어섰다.
나는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내 목소리는 더 이상 애원하지 않았다. 차갑고 돌처럼 단단했다.
“권이혁, 넌 이걸 후회하게 될 거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