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1
"김소희, 지옥으로 꺼져! 제발 죽어!"
킹사이즈 침대에 누운 여자의 목을 조르는 남자는 증오가 가득한 표정이었다. 남자의 얼굴에서는 조금의 망설임과 미안함을 찾아볼 수 없었으며 두 팔의 혈관이 터지도록 여자의 목을 졸랐다.
아직 잠이 덜 깬 여자는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숨이 쉬어지지 않아! 살려줘!'
그녀의 목에 닿은 손이 얼음장처럼 차가웠고 마치 그녀를 집어삼킬 것과 같은 느낌이 들었다. 혼란에 휩싸인 그녀는 당장이라도 죽을 것 같은 공포에 사로잡혔다.
그녀는 발버둥을 치며 본능적으로 어떻게든 숨을 쉬려고 남자의 손을 있는 힘껏 잡아당겼다.
하지만 남자는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꽉 쥔 손에 힘을 더 주었고 여자의 얼굴은 점점 빨개지면서 눈동자 주변은 충혈되고 시야가 점점 흐려졌다.
쿵!
그때,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방문이 열리고 집사가 달려들어왔다. 얼굴이 하얗게 질린 집사는 남자의 팔을 잡고 소리를 질렀다. "도련님! 빨리 손 좀 놓으세요! 이러다 사모님 죽습니다!"
"그녀는 살아있을 자격이 없어!" 남자의 두 눈은 반쯤 미쳐 있었고, 입에서는 험한 말이 튀어나왔다.
집사는 힘으로 남자를 말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마음이 급한 나머지 침대 옆에 무릎을 꿇고 애원했다. "도련님! 제발 정신 좀 차리세요! 제발 사모님을 살려주세요. 사모님께서 돌아가시면 노부인께서 편히 눈을 감지 못할 거예요!"
할머니?
집사의 말을 들은 박태준은 꽉 쥐었던 손을 천천히 풀었다.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김소희는 재빨리 몸을 일으켰다. 얼굴이 하얗게 질린 그녀는 몸을 바들바들 떨며 구석으로 기어갔다. 모퉁이에 도착한 그녀는 몸을 웅크린 채 겁에 질린 얼굴로 박태준을 쳐다보았다.
박태준의 정신이 몽롱한 틈을 타 집사가 계속하여 말했다. "도련님! 오늘은 사모님과 도련님이 공식적으로 이혼하는 날입니다. 사모님의 어머니를 생각해서라도 이번쯤은 살려주세요! 잊으셨습니까? 그분께서 노부인의 목숨을 살려주셨습니다! 그러니 제발 정신 좀 차리세요!"
박태준은 집사의 말 뜻을 알아차리고 천천히 침대에서 일어나 잠옷을 몸에 걸쳤다. 방을 나서기 전, 그의 서릿발 같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비서가 이혼 서류를 가져올 거야. 사인하고 당장 꺼져. 다시 집에 돌아왔을 때, 너의 얼굴 같은 건 보고 싶지도 않으니까."
증오가 가득 담긴 표정은 그녀의 가슴에 비수를 꽂은 것만 같았다. 그가 방을 나서자 집사도 곧바로 그의 뒤를 따랐다.
쾅! 문이 닫히며 나는 소리가 김소희의 마음마저 진동시켰다. 아직도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그녀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그리고 이불 속에 몸을 숨긴 채 자신의 가슴을 꼭 움켜쥐고 눈물을 흘렸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자신의 몸을 바라보았다. 실오라기 하나 걸쳐있지 않은 몸은 투명할 정도로 하얗고, 몸 군데군데는 검붉은 멍 자국이 남아 있었다.
조금 전까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해 뿜어져 나오는 아드레날린으로 인해 크게 느끼지 못했지만, 조금 정신을 차려보니 온몸이 쑤시고 심하게 맞은 것과 같은 고통이 밀려왔다.
김소희는 자신이 입을 수 있는 옷을 찾으려고 드레스 룸으로 향했다. 드레스 룸에는 남성용 셔츠와 어두운 색 정장만 가지런하게 걸려 있었다.
그녀는 셔츠와 정장 바지를 꺼내 입었다. 터무니없이 큰 바지는 축 늘어져 땅바닥에 질질 끌렸다.
몸이 시큰거리는 고통도 적응할 새 없이 바로 두통이 나타났다. 그녀는 신음 소리를 내며 천천히 소파에 앉아 눈을 감았다. 곧 그녀에게 속하지 않은 기억들이 떠올랐다.
잠시 후, 그녀는 다시 눈을 떴다. 그 기억들은 이 몸의 전 주인인 김소희 것이었다. 소파에 가만히 앉아 뒤죽박죽이 된 머릿속을 정리하던 그녀는 마침내 두 가지 결론을 내렸다.
이솔이었던 그녀가 김소희로 환생했다.
이 몸의 전 주인은 박태준을 미치도록 사랑하는 애송이였고 어머니는 병으로 일찍 돌아가신 데다가 아버지는 구질구질한 쓰레기였다.
그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생각에 잠긴 그녀는 소리가 나는 방향을 쳐다보았다. 문밖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모님, 방에 계십니까?"
그녀는 서둘러 바지 밑단을 말아 올리고 문을 열었다. 키가 크고 무표정한 남자가 서류를 손에 쥐고 서 있었다.
"차윤호 씨." 김소희는 재빨리 기억을 더듬어 남자의 이름을 찾아 불렀다.
차윤호는 무표정한 얼굴로 서류와 펜을 그녀에게 건넸다. "사모님, 사장님께서 서류에 사인하는 즉시 집을 나가달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배웅하겠습니다."
김소희는 조금 전 집사가 했던 말을 떠올리며 서류를 힐끔 쳐다보았다. 오늘은 박태준과 김소희의 결혼 2주년이자 이혼하는 날이었다.
이혼 서류가 1시간도 안 되 만들어졌다고? '박태준은 진짜 김소희를 싫어하나 봐.'
그녀는 이혼 서류를 받아 페이지를 넘기며 꼼꼼하게 자신의 이름을 적었다. 30초도 안 되는 사이에 사인이 끝났다.
"자, 여기요." 김소희는 사인을 마친 서류를 차윤호에게 건네며 말했다.
깜짝 놀란 차윤호가 미간을 찌푸리고 그녀를 쳐다보았다. 김소희가 이혼 서류에 이렇게 빨리 사인할 줄 몰랐기 때문이다. 박태준이 그에게 이혼 서류를 가져오라고 분부했을 때, 김소희는 이혼을 반대한다고 말했다. 그리하여 김소희가 이혼 서류에 서명을 하도록 협박을 해야 하나 고민까지도 했었다.
"사모님, 서류를 읽어 보셨나요?" 차윤호는 김소희가 건넨 서류를 받지 않고 물었다.
김소희는 서류를 흘겨보며 단호하게 대답했다. "아니요."
"이혼하고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차윤호는 복잡해진 마음을 다스리며 물었다.
김소희는 흘러내리는 바지를 추스르면서 싱긋 웃어 보였다. "뻔한 결과겠죠. 두 가지 경우를 생각하고 있어요. 하나는 빚더미에 올라 곧 파산을 한다. 두 번째는 빈털터리로 쫓겨난다. 무엇이든 상관없어요. 박태준은 이미 최고급 변호사들을 준비해 두고 있겠죠? 전 어차피 그의 상대가 아니에요."
차윤호의 눈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는 김소희가 건넨 이혼 서류를 손에 쥐고 말했다. "사장님께서는 두 번째 선택을 하셨습니다."
"네. 대신 고맙다고 전해주세요." 김소희는 자신이 받을 수 있는 위자료에 대해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박태준을 사랑한 사람은 그녀가 아니라 이 몸의 전 주인 이였고 심지어 박태준이 죽든 말든 자신과 전혀 상관이 없었다.
그녀는 자기 아내의 목을 졸라 죽이려는 폭력적인 남자를 남편으로 원하지 않았다. 다시 한번의 기회가 주어졌으니 열심히 살아보기로 결정했다.
차윤호는 김소희의 목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사모님, 의사를 불러 들일까요?"
김소희는 잠시 멍하니 차윤호를 쳐다보았다. 그제야 자신의 목 위의 빨간 멍 자국에서 통증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녀는 손으로 자신의 목을 쓰다듬은 뒤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괜찮아요. 신경 써줘서 고마워요." 김소희는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네. 그러면 준비하고 나오세요." 차윤호의 말투가 다시 평소의 냉랭한 말투로 돌아왔다.
김소희는 고개를 끄덕이고 흘러내리는 바지를 잡고 방을 나섰다. 그녀의 침실은 여기와 멀리 떨어져 있었다. 김소희를 증오하는 박태준은 집에서 그녀를 마주치지 않기 위해 자신의 방과 제일 멀리 떨어진 반대쪽에 김소희의 방을 마련해 주었다.
그녀가 자신의 침실에 도착하는 데 한참 걸렸다.
이 방은 원래 창고로 사용하던 방이었다. 김소희와 박태준이 결혼한 후, 김소희는 이곳을 대충 청소하고 살고 있었다. 그녀는 작은 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갔다.
방은 정말 작았다. 침대와 화장대만으로 방을 꽉 채워 한 사람이 몸을 돌릴 공간마저 없었다.
김소희가 챙겨갈 물건은 많지 않았다. 화장대 곳곳에 널려 있는 화장품 몇 개와 옷 몇 벌을 제외하고 짐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그녀는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은 뒤 나머지 물건들을 트렁크에 쑤셔 넣었다.
"좋아, 다 준비됐어. 이제 떠나볼까. 차윤호 씨, 다시는 보지 맙시다! 안녕히 계세요!" 김소희는 트렁크를 끌며 홀가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언니, 지금 어딜 가려는 거야?" 마침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정장을 입은 여자가 나타났다. 짧은 치마에 빨간 하이힐, 하이힐과 대리석 바닥이 마찰되어 내는 소리가 그녀의 날카로운 목소리와 완벽하게 일치했다.
회차 2
김소희는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여자를 가만히 지켜보았다.
"김서연?" 김서연은 그녀의 이복 여동생, 여우짓 하기를 좋아하는 여자였다.
그녀의 앞에 선 김서연은 싱긋 웃으며 말했다. "우리 언니, 지금 이사라도 하려는 거야?"
김소희는 눈을 치켜 뜨고 입 꼬리만 올리며 가식적인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게 얼마 만이야? 넌 왜 아직도 이렇게 멍청한 질문만 하니? 당연한 걸 가지고 뭘 그렇게 대단한 걸 발견이라도 한 것처럼."
그녀의 말에 김서연의 얼굴은 순식간에 달아올랐다. 하지만 그녀는 곧 마음을 가다듬고 불쌍한 연기를 시작했다.
"언니, 내가 언니를 얼마나 걱정하고 있는데. 어떻게 날 그렇게 생각할 수 있어?"
걱정?
웃기고 있네. 그냥 조롱하려고 온 것이겠지.
차윤호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는 김소희를 보며 말했다. "사모님, 이제 나가셔야 할 시간입니다. 사장님께서 곧 돌아오실 겁니다."
그녀는 한쪽 입 꼬리만 올리고 김서연을 가리키며 말했다. "개가 사람의 앞을 가로막고 있어서 못 움직이는 거예요. 갑자기 물어버리면 어떡해요? 너무 무서운데?"
차윤호는 그만 말문이 막혔다.
김서연의 두 눈에 눈물이 맺혔다. "언니... 나는 언니가 오늘 이혼하는 날이라 슬퍼할까 봐 일찍 퇴근하고 왔는데. 언니...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나는 언니 동생이잖아."
"그만! 난 너 같은 동생 둔 적 없어!" 김소희는 재빨리 김서연에게서 한걸음 떨어지고 차윤호를 향하여 말했다. "차윤호 씨, 이러는데 어떻게 갈 수 있겠어요?"
차윤호는 갑자기 관자놀이가 튀기 시작했다. 그는 한숨을 내쉬며 김서연을 보며 말했다. "서연 씨, 그만 비켜주세요."
김서연은 자신의 아랫입술을 꼭 깨물었다. 그녀의 두 눈은 분노로 가득했지만 앞머리로 가려져 있어 누구도 발견하지 못했다.
"차윤호 씨, 훈련되지 않은 개는 사람의 말을 알아듣지 못해요." 김소희는 김서연을 비웃으며 말했다.
그녀의 말은 김서연의 성질을 충분히 건드렸다. 그녀는 주먹을 꽉 쥐고 김소희를 노려보았다.
김서연이 화를 참으려고 애쓰는 모습을 본 김소희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비릿하게 웃었다.
그 오만한 미소를 본 김서연은 순간 당황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평소에 겁이 많고 순종적이던 김소희가 왜 하루아침에 변한 것 같지? 완전 딴 사람 같아!'
"김서연 씨." 차윤호는 귀찮은 듯한 말투로 김서연의 이름을 불렀다.
김서연은 김소희에 대한 의심을 거두고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윤호 씨, 언니가 떠나는 길을 막으려는 건 아니었어요. 태준 씨가 이곳 상황을 보고해달라고 하셔서..."
그녀의 말을 들은 차윤호와 김소희는 깜짝 놀랐다.
"저도 태준 씨가 시켜서 이곳으로 온 거예요. 이혼 서류에 적힌 내용대로 언니가 박 씨 가문의 물건을 훔쳤는지 지켜보러 왔어요.'빈털터리로 쫓겨난다.' 계약서에 그렇게 적혀 있는 거 맞죠? 언니가 계약서 내용을 잘 지키고 있는지 감독하러 온 거예요." 김서연은 김소희의 옆에 있는 가방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면 언니, 트렁크를 잠시 열어봐도 될까? 지금 이곳에서 트렁크를 열어 태준 씨 물건이 있는지 확인해 봐야겠어."
김소희는 미간을 찌푸리고 말했다. "트렁크에는 내 물건들 뿐이야! 박 씨 집안의 물건 따위 없어!"
김서연은 한발 앞으로 다가가 김소희의 손에 있는 트렁크를 힘껏 잡아당겼다. "언니, 그건 언니가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야. 박 씨 집안의 물건이 없다면 지금 이곳에서 열어봐도 상관없지 않겠어?"
그리고 김서연은 트렁크를 활짝 펼쳤다.
트렁크에는 김소희가 쑤셔 넣은 옷 몇 벌 이외에 다른 물건은 없었다.
김소희가 진짜 자신의 옷 몇 벌 이외에 다른 물건을 챙기지 않은 것을 본 김서연은 믿기지 않는 표정으로 계속하여 뒤적였다. 마치 박 씨 집안의 물건이 나타나지 않는 이상 멈추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김소희의 옷과 화장품 밖에 없었음에도 김서연은 10분은 넘도록 뒤적거렸다.
"그만하지 그래?" 김소희는 김서연을 내려다보며 쌀쌀맞게 물었다.
"난 태준 씨의 지시대로 했을 뿐이야. 확실하게 해두면 좋잖아." 김서연의 나긋나긋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 네가 원하는 물건이 나올 때까지 뒤져. 이 까짓 옷들 필요 없어." 김소희는 더 이상 이곳에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박태준이 돌아와서 다시 자신의 목을 조를가봐 걱정됐다. 상상만 해도 몸에 소름이 끼쳤고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가 욱신거렸다.
말을 마친 김소희는 엘리베이터가 있는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차윤호도 재빨리 그녀의 뒤를 따랐다.
땡!
엘리베이터가 3층에 도착했다. 엘리베이터 문이 천천히 열리고 김소희는 그대로 자리에 얼어붙었다.
제일 먼저 그녀의 눈에 들어온 것은 반짝 빛이 나는 구두였다. 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들자 박태준의 냉랭한 낯빛이 눈에 들어왔다.
"사장님." 박태준을 발견한 차윤호가 제일 먼저 고개를 숙이고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
"김소희, 아침에 내가 한 말을 벌써 잊은 거야?" 박태준의 얼굴에는 김소희에 대한 애정이라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박태준의 얼굴을 본 김소희는 오늘 아침 그가 자신의 목을 조른 고통이 생각나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두려움에 그녀는 몸을 떨며 그의 눈치를 살폈다.
김소희는 자신의 목을 만지며 말했다. "기억해요!'
"그래? 그런데 네가 왜 아직도 이곳에 있는 거지?" 박태준은 긴 다리를 움직여 그녀가 있는 곳으로 걸어왔다.
위협감을 느낀 김소희가 뒤로 천천히 물러섰다. 그녀의 등이 벽에 닿자 절망감을 느낀 그녀는 두 눈을 감고 박태준의 시선을 피했다.
"그건... 김서연한테 물어보세요. 김서연이 갑자기 나타나 저의 트렁크를 뺏고 시간을 지체했어요. 그래서..."
그때,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차오른 김서연이 김소희의 말을 끊었다.
"언니, 어떻게 거짓말을 할 수 있어?" 그녀는 불쌍한 척 하며 말했다.
"내가 거짓말을 했다고?" 김소희는 마음속으로 김서연의 욕을 백 번은 하고도 남았다. 김서연이 아니었다면 자신은 이미 한 시간 전에 이 집을 떠났었고 박태준과 부딪칠 일도 없었을 것이다.
제기랄!
김서연은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처럼 말했다. "태준 씨, 언니가 떠나려는 것을 일부러 막은 건 아니에요. 저는 태준 씨의 지시대로 언니가 집에서 물건을 훔쳤갈 까봐 감시하러 온 거예요. 언니는 어릴 때부터 거짓말을 즐겨 했어요. 지금 이 상황에서도 거짓말을 할 줄은 몰랐어요..."
김서연의 말에 박태준은 그 동안 김소희의 행동이 뇌리에 스쳐갔다. 그는 평소보다 더 싸늘한 표정을 짓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가 진짜 너를 죽일 수 없을 것 같아?"
갑자기, 박태준은 김소희의 목을 조르며 벽에 밀어붙이자 그녀의 뒤통수가 벽에 부딪쳐 쿵 하고 소리가 났다. 그의 행동을 조금도 예상하지 못한 김소희는 박태준의 손을 본능적으로 잡아당겼다. 뒤통수에 강한 통증이 밀려오고 머리가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다.
"박.... 박태준!" 김소희는 그의 이름을 힘겹게 불렀다.
"내 인내심을 왜 자꾸 시험하려는 거야?" 박태준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시간이 일분일초 흘러갈수록 김소희는 점점 정신을 잃어갔다. 그녀는 박태준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었다.
옆에서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던 차윤호가 황급히 다가와 박태준을 말렸다. "사장님, 만약 사모님께서 잘못되시면 임원들도 사장님의 약점을 잡고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 사장님의 계획이 물거품이 되는 것도 한순간입니다."
"빌어먹을!" 박태준은 화를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김소희의 목을 얼마나 세게 움켜쥐었던지 그의 손가락은 핏기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회차 3
차윤호는 김소희가 걱정되었지만 박태준에게 다시 말을 걸 엄두를 내지 못했다.
이대로는 죽을 수 없어...
김소희는 마지막 힘을 다해 박태준의 손을 밀어냈다. 천천히 폐에 들어가는 공기를 느끼며 그녀는 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박태준을 노려보았다.
"오늘...내가...이 자리에서 죽어도 난...난...당신 아내의 신분으로 죽는 거야. 박 씨...집안의 며느리로! 언젠가 당신이...죽으면 나와 나란히 묻히게 되겠지? 귀신이 된다고 해도 영원히 당신을...당신을 괴롭힐 거야!"
김소희는 힘겹게 말을 내뱉었다. 얼굴은 뻘겋게 부어져 갔고 조금씩 의식을 잃고 있었다.
"아직도 자기 주제를 모르겠어? 너는 박 씨 집안의 땅에 묻힐 자격도 없어! 만약 네가 죽는다면 나는 네 몸을 태워 쓰레기통에 버릴 거야! 너 같은 여자는 쓰레기와 제일 어울려!" 박태준의 쌀쌀맞은 목소리로 잔혹하게 말했다.
이 말을 들은 김소희는 헛웃음을 지었다.
"웃어?" 박태준이 물었다.
"당신이 나의 유골을 쓰레기통에 버려도, 나는 당신의 아내이자 박 씨 집안의 며느리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 당신은 내가 죽도록 밉겠지? 하지만 어떡하지? 내가 죽더라도 당신은 나를 영원히 떨쳐내지 못할 거야!"
박태준은 다시 손에 힘을 주고 김소희의 목을 움켜쥐었다. "윽!" 김소희는 낮게 신음 소리를 내며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서서히 의식을 잃어가던 김소희는 몸의 전 주인과 박태준의 모습이 보였다. 박태준은 갑자기 움켜쥐었던 손에 힘을 풀고 그녀를 놓아주었다.
김소희는 그대로 땅에 곤두박질 했다. 차가운 땅에 쓰러진 그녀는 뼈가 부러지는 느낌을 받았고 작은 움직임에도 고통스러운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쿨럭! 쿨럭!" 그녀는 심하게 기침을 하고 숨을 몰아 쉬었다.
차윤호는 김소희를 무심하게 쳐다보고 고개를 숙였다. "사장님, 모두 제 잘못입니다. 사장님께서 지시하신 일을 제가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습니다. 처벌을 받겠습니다."
박태준의 자비 없는 모습을 본 김서연은 겁에 질려 무릎을 꿇고 애원했다. "태준 씨, 이... 이건 제 잘못이에요! 제가 언니 가방을 빨리 검사해야 했어요... 모두 제 잘못이에요. 언니가 거짓말하도록 시간을 만들어 준 것도 제 잘못이에요..."
김소희는 가쁜 숨을 몰아 쉬며 기침을 했다.
"당, 당신의 물건 따위, 쿨럭... 쿨럭... 필요 없어!!" 그녀는 쉰 목소리로 힘겹게 말을 했다.
박태준은 혐오스러운 표정으로 김소희의 목에 닿았던 손을 물티슈로 여러번 닦았다.
"아무것도 가져가지 않았다고? 네가 지금 입고 있는 그 옷도 내 돈으로 산 거야. 김소희. 뻔뻔스럽긴."
김소희는 입을 꾹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본인의 옷은 벌써 박태준과 김소희의 결혼식 날, 박태준의 취향이 아니라는 이유로 김서연에 의해 모두 불태워 버렸다.
"옷을 모두 벗기고 내쫓아." 말을 마친 박태준은 차윤호와 함께 떠났다.
두 사람이 떠난 후, 김서연은 싸늘한 표정을 지으며 또각또각 김소희의 곁으로 다가왔다.
"김소희, 태준 오빠와 결혼했다고 해서 네가 뭐라도 된 것 같지? 하지만 이제 어떡해? 결국 너는 이 집에서 쫓겨나는 신세밖에 될 수 없어. 넌 아직도 동화 같은 사랑 이야기를 꿈꾸고 있는 건 아니지? "꿈 깨! 그런 이야기는 절대로 네 인생에서 일어나지 않을 거야. 내가 시킨 대로 진한 화장을 하고 살을 찌우면 태준 오빠가 너를 좋아할 줄 알았지? 멍청한 년! 그걸 그대로 믿은 네가 얼마나 멍청한지 알기나 해? 너처럼 뚱뚱하고 멍청한 여자를 어느 남자가 좋아할 것 같아? 난 그저 태준 오빠가 너를 많이 미워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너를 가지고 장난친 것 뿐이야."
김소희는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바닥에 가만히 엎드려 있었다. 김서연의 도발에도 그녀는 한 번도 고개를 들어 쳐다보지 않았다.
김소희가 아무런 반응이 없자 김서연은 버럭 화가 났다. "김소희, 지금 나를 무시하는 거야?"
"하! 김서연, 참 불쌍해." 김소희는 극심한 고통을 참으며 코웃음을 쳤다.
그녀는 자신이 큰 부상을 당했다고 확신했다. 말 한마디 하는 것만으로 오장 육부가 꼬이는 고통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아프다는 기색을 드러낼 수 없었다. 아프거나 힘든 기색을 나타내면 김서연은 그 재미로 자신을 더 심하게 괴롭히려고 하기 때문이다.
"너 방금 뭐라고 했어?" 김서연은 악에 받쳐 소리를 질렀다. 자신이 불쌍하다는 말을 들은 김서연은 길길이 날뛰고 있었다.
"그러니까..." 김소희는 아픈 가슴을 진정시키기 위해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넌 정말 비열하고 불쌍해. 내가 만난 사람들 중에서 가장 한심하게 느꼈던 사람이 바로 너였어. 사생아라는 말 때문에 스스로 인생을 비참하게 만들었지? 넌 어렸을 때부터 내가 가진 모든 걸 뺏으려고 애썼어. 왜냐하면 나는 김 씨 집안의 장녀고 너는 바람 펴서 태어난 더러운 사생아니까. 김 씨 집안의 호적에 이름도 올릴 수 없는 사. 생. 아!"
"그 입 닥쳐!" 김소희는 마침 김서연의 아픈 곳을 찔렀다.
김소희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지난 2년 동안 나는 너를 굳게 믿고 있었어. 하지만 넌 내가 박태준의 관심을 받고 싶어 하는 사실을 알면서 그 약점을 이용해 나를 속이고 그 사람이 나를 싫어하도록 온갖 방법 수단을 가리지 않았지. 처음에 박태준은 나한테 아무런 감정도 없었어.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를 싫어하기 시작했고 이제는 나를 혐오하기까지 했지. 김서연, 이제 만족해?"
김서연은 주먹을 꽉 쥐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네가 멍청한 탓이야!"
"그래. 네 말이 맞아. 멍청한 내 탓이야." 김소희는 자신의 어리석음과 잘못을 깔끔하게 인정했다. 지난 2년 동안 자신이 얼마나 한심했는지 모른다.
부유하고 권력이 있는 가문의 장녀였음에도 왜 이렇게 비참한 삶을 살고 있을까?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흥. 잘 알기는 하네." 김서연의 웃음 소리에는 오만함과 방자함으로 가득했다.
"죽다 살았는데 자신에 대해서 이 정도의 파악은 있어야지. 너처럼 알면서 모른 척은 하지 않을 거야." 김소희는 자신이 얼마 다쳤는지 확인하려고 두 팔을 땅에 붙이고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하지만 숨이 쉬어지지 않을 듯한 고통에 그녀는 다시 땅에 철퍼덕 엎드리고 말았다.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고 두 손은 딱딱한 바닥을 누르고 있었다. 얼마나 많은 힘을 주었는지 그녀의 손등에 있는 혈관들이 불룩하게 솟아올랐다.
김서연의 얼굴에 험악한 표정이 드리웠다.
"김소희, 이 와중에 입은 살아 있구나? 넌 나한테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어. 기억해! 넌 더 이상 태준 오빠의 아내도 아니고, 박 씨 집안의 사모님도 아니야! 박씨 노부인도 이제 세상을 떠나셨으니 너의 편은 이제 없어. 나한테 무릎이라도 꿇고 애원을 하는 건 어때? 그러면 아버지한테 가서 너를 받아들이라고 할 수도 있어!"
김서연이 박태준의 할머니를 입에 올리자 김소희의 눈빛이 흐려졌다.
김소희가 박태준의 아내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모두 그의 할머니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박 씨 집안의 며느리로 들어온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할머니께서는 세상을 떠났다. 할머니가 살아계셨을 때, 할머니는 그녀의 유일한 편이고 수호자였다. 그 기간 동안, 김소희는 박 씨 집안에서 사모님 대접을 받으며 살았다.
"김서연, 내가 박태준과 이혼하면 네가 박 씨 집안의 사모님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그녀의 말을 들은 김서연은 어깨를 펴고 당당하게 말했다. "너도 할 수 있는 걸, 난 왜 못할 것 같아?"
"넌, 안돼!" 김소희의 목소리는 힘이 없었으나 아주 단호했다. "박태준이 너와 결혼할 것이라고 그렇게 확신하는 이유가 뭐지? 박 씨 집안에 들어올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뭐냐고?
네 엄마는 첩이야! 한 가족을 망친 사람이라고. 박태준도 사생아지만 그는 아버지가 결혼 하기 전에 태어난 아이고, 그의 어머니도 다른 사람의 가족을 파괴하지 않았어! 처음부터 너랑은 다른 존재라고.
그래서 김서연, 넌 죽어도 안돼." 김소희는 김서연을 거만하게 쳐다보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