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3

"내 눈에 흙이 들어오기 전까지 안 나타날 줄 알았다!" 서한별의 아버지인 서정환은 그녀를 노려보며 호통을 쳤다.

그의 아내인 이초연은 그에게 눈을 흘기고는 딸에게 다가갔다. "한별아." 그녀가 딸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돌아왔으면 됐구나. 와서 앉으렴."

서한별의 부모는 주태현에 관한 소식을 계속 접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결혼한다는 사실은 물론 잘 알고 있었다. 서정환은 의기소침한 딸의 모습을 보고는 다시 한번 분노했다. "내가 계속 그런 남자랑 엮이지 말라고 했어, 안 했어! 자, 이제 행복하냐?"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당신? 우리 애가 얼마나 힘들어 하는지 안 보여?"

"사람들이 우리 가족에 대해 뭐라고 말하는지 알아? 주씨 가문의 일원이 될 수 있다고 백일몽이나 꾸는 한심한 사람이라고 한다고!"

이초연 역시 이를 알고 있었으나, 서한별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제가 잘못한 건 알아요." 서한별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며 자신이 과거의 행동에 대해 얼마나 후회하는지 보여줬다.

서정환은 코웃음을 쳤다. 그는 더 호통칠 생각이었지만, 마침 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뭐라고?" 서정환은 전화를 받자마자 소리쳤다.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얼굴에는 걱정이 가득 쓰여 있었다.

"무슨 일이에요?" 이초연과 서한별은 모두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마침내 전화를 끊은 서정환은 설명을 시작했다. "회사에 문제가 있어. 장씨 가문이 계약을 해지하고 프로젝트가 끝나기 전에 철수했어."

회사 사이의 원활한 협력을 진행하기 위해 다양한 조건으로 서로를 구속하곤 한다. 지금과 같은 경우에는 먼저 계약을 파괴한 장씨 가문에서는 위약금을 지불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분명 나쁘지 않은 일이지만, 서정환의 회사는 남아있는 돈을 전부 프로젝트를 위한 재료로 사용했다. 프로젝트가 취소된다면 이 모든 재료들은 쓰레기가 될 것이고, 회사는 그 금액을 회수하지 못할 것이다.

"어떻게 하지?" 이초연은 걱정스럽게 물었다. "위약금 물어야 한다는 걸 알고 있겠지?"

"당연하지. 모를 리가 없어. 그러나 그 돈은 우리가 겪게 될 손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야. 장씨 가문이랑 날 잡고 제대로 대화를 해봐야겠어."

서정환이 그들을 놓치게 된다면 그는 어쩔 수 없이 파산 신청 수순을 밟게 될 것이다.

서한별은 아버지가 여기 저기로 전화하면서 간곡히 부탁하는 모습부터 마지막 탄식까지 지켜보며 장씨 가문이 투자를 철회하기로 마음먹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였다.

이초연은 딸의 손을 꼭 잡고 최후 통첩을 기다렸다. "어떻게 됐어?" 서정환이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본 그녀가 물었다.

그는 패배감에 고개를 저었다.

무거운 침묵이 그들 위에 내려앉았고, 오직 이초연의 흐느끼는 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먼저 딸을 위로했다. "괜찮단다, 한별아. 같이 극복하자꾸나."

서한별은 자신의 문제로 부모에게 더 큰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저녁 늦게 서한별은 밖으로 나갔다.

주태현에게 문자를 보냈지만, 답장은 오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발벗고 나서 그를 찾을 계획이었다.

한강 별장 앞에서 몇 시간이나 기다려도 그 남자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서한별은 주태현이 약혼녀와 함께 있으리라는 것을 늦게나마 깨달았다. 당연했다. 주태현이 다시 이곳에 올 이유는 없었다.

서한별이 밖으로 나가려던 찰나, 밖에서 문이 열렸다.

그리고 서한별을 본 주태현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아직까지 여기서 뭐해?"

순간 답답해지는 마음에 무언가 막힌 듯 말이 나오지 않았다. 이렇게나 그녀가 보기 싫었던 건가?

"잠깐 얘기 좀 해."

"수표와 부동산 증서는 탁자 위에 올려놨어. 생각이 바뀌었으면 가져가도 상관없어." 주태현은 예전과 같이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를 지나쳤다.

서한별은 억지 웃음을 지었다. "돈 때문에 온 게 아니야."

"그럼 무슨 일로 여기까지 왔지?"

"우리 가족 회사가 위기에 처해 있어. 프로젝트가 끝나기 전까지 장씨 가문의 협력을 구하려면 당신 도움이 필요해."

"서한별, 이건 내가 개입할 수 없는 문제인 거 알지? 장씨 가문의 뒤를 봐주는 사람은 백한나의 아버지인 백홍찬이야."

서한별은 깊게 숨을 들이켰다. 백홍찬... 주태현의 장래 장인 어른의 이름이었다. 이제 퍼즐이 맞춰지기 시작했다. 주태현이 그녀를 돕기를 거부하는 것은 당연했다. 백씨 가문에서 그녀를 노리고 있었고, 주태현은 이 상황을 그저 보고만 있을 생각이었다.

어이가 없었다.

"그러니까 서한별. 너희 가족이 파산하는 걸 보고만 있지 말고 돈이랑 부동산 가져가서 부모님 도와드려."

서한별은 자신의 두 귀를 의심할 정도였다. 주태현이 이렇게 낯설게 느껴진 건 처음인 듯했다. 마치 처음 만난 사람처럼.

"지금까지 다 알고 있었던 거지?" 그녀는 자조적인 미소를 지으며 속삭였다.

3년 동안 그녀는 주태현의 마음속에서 다소 특별하다고 생각했는데, 현실은 잔혹했다.

"서한별, 이 문제에 엮이지 마. 내 말 들어. 돈 챙겨서 떠나."

그들은 밤새 침대 위를 흠뻑 적실 정도로 열정적이었지만, 침실 밖에서의 주태현은 여전히 차갑고도 매정했다.

서한별은 본능적으로 두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제서야 그녀는 가슴에서 진정으로 느껴지는 고통을 깨달았다.

애초에 마음 없는 사람한테 무엇을 바란 걸까?

"내가 임신했다면?"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도 나를 도와주지 않을 거야?"

"어제 분명히 얘기했던 것 같은데. 나는 사생아를 원하지 않는다고." 주태현의 말투는 처음에는 차분했지만, 이내 그는 눈을 가늘게 떴다. "너 임신했어?"

서한별은 코웃음을 쳤다. "내가 항상 피임약 먹었는지 확인했으면서, 어떻게 임신이겠어?"

그녀는 완전히 환멸을 느꼈다. 그녀는 결코 주태현에게 마음을 주지 말았어야 했다.

"나를 못 돕겠다면 떠날게. 결혼 축하해. 네가... 오래오래 행복하길 바래."

서한별은 남을 축복하는 일이 이렇게 힘들게 느껴지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말문이 막혀왔지만, 그녀는 스스로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나도 네가 행복하길 바라." 주태현은 가볍게 말했다.

서한별은 돌아서서 밖으로 나가기 직전 그녀는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당신을 다시는 사랑하고 싶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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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인이 아닌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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