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1
신음 소리를 내던 서한별은 손톱으로 주태현의 등을 파고 들었다. 흘러내리는 땀방울이 은은한 조명하에 매혹적으로 반짝거렸고 끈적거리는 욕망이 뜨겁게 공기에 퍼졌다.
그녀의 벌어진 입술은 주태현의 어깨를 탐했고, 이내 둘은 절정을 향해 달려갔다. 살이 부딪치는 소리가 귓가에 크게 울렸고 그녀가 정성스레 말아 올린 속눈썹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잠시 후 탈력으로 인해 몸에 힘이 풀리면서 주태현의 품에 기대어 서한별은 가쁜 숨을 몰아쉬기 시작했다.
달아오른 몸의 열기에 서한별은 얼얼했지만 주태현 몸의 온기를 탐해 그에게서 멀리 떨어지고 싶지는 않았다.
결국 먼저 자리에서 일어선 것은 주태현이었다. 그는 침대 발치에 걸려 있는 회색 가운을 집어 몸에 걸쳤다.
입을 연 그의 목소리는 약간 쉬어 있었지만, 말투는 차가웠다. "서한별, 나 결혼해."
그녀는 벼락을 맞은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서한별은 방금 전까지 나눴던 애정 행각이 거짓말인 듯 느껴졌고, 불그스름했던 얼굴은 이제는 창백하게 변해 있었다.
"그러니까 그만 만나자." 그녀가 말을 꺼내기도 전 주태현이 덧붙였다.
서한별은 뒤엉킨 생각을 정리할 시간도 없었다. 몇 분 전만 해도 열정과 욕망으로 빛나던 그녀의 눈빛은 흐려졌고, 손은 서서히 주먹으로 변해 침대 시트를 꼭 움켜쥐었다.
그녀의 몸은 몇 시간 동안의 애정 행각으로 인해 여전히 뻐근했는데, 주태현은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그녀와의 결별을 통보한 것이다.
늘 본능에만 충실하던 그는 무자비하고도 냉정한 사람이었다.
진작에 알아차렸어야 했다.
그들이 함께한 3년이라는 시간 동안, 서한별은 단 한 번도 주태현의 마음을 얻은 적이 없다는걸.
하긴, 스스로 원해서 바친 몸이라 지금 와서 다른 누구를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차올랐다. 서한별은 고개를 뒤로 젖히고 씁쓸함을 애써 삼키며 아무렇지 않은 척하려 했지만 쉬운 일은 아니었다. "백씨 가문의 그 아가씨랑?"
주태현은 담배에 불을 붙이고 한 모금 빨았다. "그래." 그는 담배 연기를 천천히 내뿜으며 말했다. "양가는 오랜 세대 동안 사이가 좋았지. 이번 결혼은 여러 면에서 나에게 도움이 될 거야."
서한별은 아랫입술을 꾹 깨물고 고개를 돌려 그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했다. 그녀의 어깨와 등에는 방금 생긴 키스마크가 아직도 선명했다.
"그래도 3년이라는 시간 동안 만났으니, 원하는 게 있으면 말만 해. 돈, 집, 차. 뭐든 다 되니까"
"주태현, 난 몸을 파는 사람이 아니야!"
주태현은 재떨이에 담배를 비비며 말했다. "알아. 그러니까 이건 보상이라고. 네가 받으면 우린 퉁 친 거야. 원하는 게 있으면 말해. 오늘 여기서 끝내자고. 깔끔하게."
"이미 말했잖아. 난 몸 파는 사람이 아니니까 보상은 필요 없어."
주태현은 한숨을 쉬었다. "서한별, 억지도 적당히 피워."
서한별은 날카롭게 반박하려다가 이내 말을 삼켰다. 이 남자를 선택한 것은 다름아닌 그녀 본인이었다.
주태현은 항상 여자들에게 무관심하고 냉담한 태도를 보이는 것으로 유명했으나, 서한별은 자신만의 망상에 빠져 이를 거짓이라 생각해 왔다. 그녀는 그와 만난 바로 그날 잠자리를 함께했다. 그는 두 사람이 연애 중이라는 사실을 확실히 인정한 적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부인한 적도 없었다. 곧 그들은 동거를 시작했다.
모든 일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일어난 나머지 서한별은 자신이 그에게 특별한 존재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는 모든 게 그녀의 망상인 듯 보였다.
서한별은 저에게 등을 돌린 남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좌절했다. 이제 그녀를 보기조차도 싫다는 건가?
가슴속에서 깊은 슬픔이 솟구치며 눈물을 훔치던 서한별은 갑자기 속이 울렁거리는 것을 느끼자 침대를 박차고 쏜살같이 화장실로 달려갔다.
주태현은 얼굴을 찌푸리며 뒤따라갔다. "임신했어?"
서한별은 몸을 들썩거렸지만, 헛구역질이었다. 지난 이틀 동안 이런 증상을 겪었지만 단순히 음식을 잘못 먹은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주태현의 질문을 듣고는 그녀의 심장이 가파르게 뛰기 시작했다.
만약 정말로 임신했다면, 아마도...
그러나 이어지는 주태현의 말에 서한별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검사 받아보고, 바로 처리하지. 난 사생아를 원하지 않으니까."
역시, 주태현다웠다. 언제나 매정했으니.
서한별은 천천히 숨을 들이켰다. "그럴 필요는 없어. 어제 이미 병원 다녀왔으니까. 그냥 잘못 먹었을 뿐이야."
주태현은 눈살을 찌푸렸다. "임신 테스트를 안 받겠다는 거야?"
"내 몸은 내가 제일 잘 알아. 걱정하지 마, 너랑은 아무 상관 없는 일이야. 네 결혼식은 예정대로 진행될 거고, 나도 처신 잘 할 거니까."
회차 2
서한별은 다음날 병원에 갔다. 의사가 임신 테스트 결과를 건넸을 때, 그녀의 심장은 털썩 내려 앉았다.
매번 관계를 가질 때마다 피임에 주의를 기울였기 때문에, 언제 임신을 하게 된 것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주태현의 얼굴이 그녀의 머릿속에 불쑥 떠올랐고, 갑작스레 마음의 통증을 느낀 그녀는 눈을 질끈 감았다.
이것은 오직 그녀만의 아이다. 주태현은 이 아이와 아무 관련이 없다. 어떻게든 서한별은 이 아이를 낳을 생각이었다.
서한별은 검사 결과를 구겨서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이어 돌아서서 계단을 내릴 때 무언가를 발견하고는 바로 멈춰 섰다.
그녀는 건물의 유리벽을 통해 주태현이 차에서 내려 조수석으로 향하는 모습을 발견했다. 그는 차문을 열고 한 여성을 에스코트했다. 그녀에게는 단 한 번도 보여준 적 없는 자상한 면모였다.
서한별의 코에서 찡한 느낌이 몰려왔다. 주태현과 그토록 오래 있으면서 그런 따뜻함은 느껴본 적이 없었으니.
전에는 그가 전혀 남자친구답지 않다고 불평하기도 했었다. 둘이 사귀면서 중요한 기념일에 선물 받아본 적도 없고, 그에게서 배려 같은 걸 느껴본 적도 없었다.
이제 알고 보니, 주태현이 모르는 것이 아니었다. 단지 그녀가 그럴만한 가치가 없다고 생각해서 어떤 노력도 들이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면 애초에 왜 그녀를 선택했던 걸까?
서한별은 애써 흐르는 눈물을 참았지만 소용없었다.
'그래, 백씨 가문의 아가씨가 얼마나 존귀한 신분인데, 내가 어찌 감히 경성의 최고 재벌 아가씨와 비교가 되겠는가?'
그녀는 눈물을 닦으며 서둘러 계단을 내려갔다.
로비 한가운데에서 주태현은 그를 쳐다보는 시선을 느꼈다. 2층 계단 쪽을 올려다봤지만 아무도 없었다.
"태현 씨, 무슨 일이라도 있어요?" 백한나는 약간 혼란스러운 듯 물었다.
"아니야." "가자."
서한별은 소지품을 챙기기 위해 곧장 한강 별장으로 향했다. 그녀는 자신이 정성껏 꾸민 방을 바라보며 가벼운 탄식이 스스로 나왔다. 어제만 해도 따뜻하고 아늑한 집 같이 느껴졌던 곳이 이제는 그녀의 어리석음을 증명하는 공간이 되었으니.
우습게도 주태현의 눈에 그녀의 진심은 한 푼의 가치도 없었다. 모든 것이 허무하게 느껴졌다.
마침 이때 휴대폰에서 알림이 떴다. 백씨 가문과 주씨 가문의 후계자들의 약혼 소식이 뉴스에 오르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서한별은 대중이 이번 일을 삼아 그녀를 조롱거리로 삼을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항상 놀림거리였고, 주태현이 어느 정도 그녀를 보호하기는 했지만 제대로 된 조치를 취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른 상황이었다. 이제 그는 공식적으로 다른 여성과의 결혼 계획을 발표한 것이다.
서한별 역시 결혼하고 싶었지만, 모든 건 그녀 혼자만의 생각이었다. 주태현은 그녀를 여자친구로 인정한 적이 없었으니까.
서한별은 아픈 가슴을 억누르며 샀던 옷가지를 모아 캐리어에 넣기 시작했다. 별로 많지는 않았다. 그런 다음 하우스키핑 서비스에 전화를 걸어 별장을 3년 전의 상태로 복원하라고 부탁했다.
모든 것을 정리한 후 그녀는 주태현과 함께했던 주거 공간을 마지막으로 한번 둘러보았다. 이어 뒤돌아보지도 않고 별장을 떠났다.
그녀는 자신이 가질 수 없는 것에 집착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게다가 자신이 백씨 가문 아가씨 백한나와 비길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서한별은 캐리어를 끌고 집으로 돌아갔다.
3년 동안 주태현을 쫓아다니느라 부모님에게 적지 않은 수치심을 안겨주었다. 그 결과 부모님과도 사이가 틀어져서 특별한 휴일을 제외하고는 서로 연락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서한별은 눈앞의 주택을 바라보며 눈시울이 시큰해졌다.
그녀가 문 손잡이를 잡으려고 손을 뻗는 순간,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동작을 멈췄다.
서한별의 손이 저도 모르게 조여졌다. 3년 동안 남자 하나 때문에 가족 내에서 불화를 일으켰으니, 얼마나 어리석은가.
고통과 수치심이 그녀를 덮치면서 서한별은 서서히 몸을 웅크리고 앉았다.
그녀는 주태현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쳤지만, 결국 그녀에게 돌아온 건 다른 여자와의 결혼 소식이었다.
어젯밤에 남자가 했던 말은 아직도 머릿속에서 생생하게 울렸다.
서한별은 잠시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이어 몸을 일으키고 안으로 들어갔다. "엄마! 아빠! 저 왔어요."
다투던 두 사람의 소리가 끊기면서 그들의 시선이 동시에 서한별을 향했다.
회차 3
"내 눈에 흙이 들어오기 전까지 안 나타날 줄 알았다!" 서한별의 아버지인 서정환은 그녀를 노려보며 호통을 쳤다.
그의 아내인 이초연은 그에게 눈을 흘기고는 딸에게 다가갔다. "한별아." 그녀가 딸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돌아왔으면 됐구나. 와서 앉으렴."
서한별의 부모는 주태현에 관한 소식을 계속 접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결혼한다는 사실은 물론 잘 알고 있었다. 서정환은 의기소침한 딸의 모습을 보고는 다시 한번 분노했다. "내가 계속 그런 남자랑 엮이지 말라고 했어, 안 했어! 자, 이제 행복하냐?"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당신? 우리 애가 얼마나 힘들어 하는지 안 보여?"
"사람들이 우리 가족에 대해 뭐라고 말하는지 알아? 주씨 가문의 일원이 될 수 있다고 백일몽이나 꾸는 한심한 사람이라고 한다고!"
이초연 역시 이를 알고 있었으나, 서한별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제가 잘못한 건 알아요." 서한별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며 자신이 과거의 행동에 대해 얼마나 후회하는지 보여줬다.
서정환은 코웃음을 쳤다. 그는 더 호통칠 생각이었지만, 마침 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뭐라고?" 서정환은 전화를 받자마자 소리쳤다.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얼굴에는 걱정이 가득 쓰여 있었다.
"무슨 일이에요?" 이초연과 서한별은 모두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마침내 전화를 끊은 서정환은 설명을 시작했다. "회사에 문제가 있어. 장씨 가문이 계약을 해지하고 프로젝트가 끝나기 전에 철수했어."
회사 사이의 원활한 협력을 진행하기 위해 다양한 조건으로 서로를 구속하곤 한다. 지금과 같은 경우에는 먼저 계약을 파괴한 장씨 가문에서는 위약금을 지불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분명 나쁘지 않은 일이지만, 서정환의 회사는 남아있는 돈을 전부 프로젝트를 위한 재료로 사용했다. 프로젝트가 취소된다면 이 모든 재료들은 쓰레기가 될 것이고, 회사는 그 금액을 회수하지 못할 것이다.
"어떻게 하지?" 이초연은 걱정스럽게 물었다. "위약금 물어야 한다는 걸 알고 있겠지?"
"당연하지. 모를 리가 없어. 그러나 그 돈은 우리가 겪게 될 손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야. 장씨 가문이랑 날 잡고 제대로 대화를 해봐야겠어."
서정환이 그들을 놓치게 된다면 그는 어쩔 수 없이 파산 신청 수순을 밟게 될 것이다.
서한별은 아버지가 여기 저기로 전화하면서 간곡히 부탁하는 모습부터 마지막 탄식까지 지켜보며 장씨 가문이 투자를 철회하기로 마음먹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였다.
이초연은 딸의 손을 꼭 잡고 최후 통첩을 기다렸다. "어떻게 됐어?" 서정환이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본 그녀가 물었다.
그는 패배감에 고개를 저었다.
무거운 침묵이 그들 위에 내려앉았고, 오직 이초연의 흐느끼는 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먼저 딸을 위로했다. "괜찮단다, 한별아. 같이 극복하자꾸나."
서한별은 자신의 문제로 부모에게 더 큰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저녁 늦게 서한별은 밖으로 나갔다.
주태현에게 문자를 보냈지만, 답장은 오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발벗고 나서 그를 찾을 계획이었다.
한강 별장 앞에서 몇 시간이나 기다려도 그 남자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서한별은 주태현이 약혼녀와 함께 있으리라는 것을 늦게나마 깨달았다. 당연했다. 주태현이 다시 이곳에 올 이유는 없었다.
서한별이 밖으로 나가려던 찰나, 밖에서 문이 열렸다.
그리고 서한별을 본 주태현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아직까지 여기서 뭐해?"
순간 답답해지는 마음에 무언가 막힌 듯 말이 나오지 않았다. 이렇게나 그녀가 보기 싫었던 건가?
"잠깐 얘기 좀 해."
"수표와 부동산 증서는 탁자 위에 올려놨어. 생각이 바뀌었으면 가져가도 상관없어." 주태현은 예전과 같이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를 지나쳤다.
서한별은 억지 웃음을 지었다. "돈 때문에 온 게 아니야."
"그럼 무슨 일로 여기까지 왔지?"
"우리 가족 회사가 위기에 처해 있어. 프로젝트가 끝나기 전까지 장씨 가문의 협력을 구하려면 당신 도움이 필요해."
"서한별, 이건 내가 개입할 수 없는 문제인 거 알지? 장씨 가문의 뒤를 봐주는 사람은 백한나의 아버지인 백홍찬이야."
서한별은 깊게 숨을 들이켰다. 백홍찬... 주태현의 장래 장인 어른의 이름이었다. 이제 퍼즐이 맞춰지기 시작했다. 주태현이 그녀를 돕기를 거부하는 것은 당연했다. 백씨 가문에서 그녀를 노리고 있었고, 주태현은 이 상황을 그저 보고만 있을 생각이었다.
어이가 없었다.
"그러니까 서한별. 너희 가족이 파산하는 걸 보고만 있지 말고 돈이랑 부동산 가져가서 부모님 도와드려."
서한별은 자신의 두 귀를 의심할 정도였다. 주태현이 이렇게 낯설게 느껴진 건 처음인 듯했다. 마치 처음 만난 사람처럼.
"지금까지 다 알고 있었던 거지?" 그녀는 자조적인 미소를 지으며 속삭였다.
3년 동안 그녀는 주태현의 마음속에서 다소 특별하다고 생각했는데, 현실은 잔혹했다.
"서한별, 이 문제에 엮이지 마. 내 말 들어. 돈 챙겨서 떠나."
그들은 밤새 침대 위를 흠뻑 적실 정도로 열정적이었지만, 침실 밖에서의 주태현은 여전히 차갑고도 매정했다.
서한별은 본능적으로 두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제서야 그녀는 가슴에서 진정으로 느껴지는 고통을 깨달았다.
애초에 마음 없는 사람한테 무엇을 바란 걸까?
"내가 임신했다면?"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도 나를 도와주지 않을 거야?"
"어제 분명히 얘기했던 것 같은데. 나는 사생아를 원하지 않는다고." 주태현의 말투는 처음에는 차분했지만, 이내 그는 눈을 가늘게 떴다. "너 임신했어?"
서한별은 코웃음을 쳤다. "내가 항상 피임약 먹었는지 확인했으면서, 어떻게 임신이겠어?"
그녀는 완전히 환멸을 느꼈다. 그녀는 결코 주태현에게 마음을 주지 말았어야 했다.
"나를 못 돕겠다면 떠날게. 결혼 축하해. 네가... 오래오래 행복하길 바래."
서한별은 남을 축복하는 일이 이렇게 힘들게 느껴지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말문이 막혀왔지만, 그녀는 스스로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나도 네가 행복하길 바라." 주태현은 가볍게 말했다.
서한별은 돌아서서 밖으로 나가기 직전 그녀는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당신을 다시는 사랑하고 싶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