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2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라고 들었어." 감정을 추스른 하연주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강한수는 하연주를 쳐다보지도 않고 대답했다. "응, 이시은에게 결혼식을 빚졌으니까."
3년 전, 강씨 그룹을 막 물려받은 그는 많은 사람들의 미움을 샀다. 결혼식을 올리지 않은 건 이시은이 보복을 당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그의 사람을 함부로 건드릴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강씨 그룹 건물을 나선 이시은의 걸음은 점점 빨라졌다. 이곳을 빨리 벗어나야만 마음이 편해질 것 같았다.
그녀가 차 문을 열려는 순간, 뒤에서 다급하지만 침착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곧이어 따뜻한 체온이 그녀의 등에 닿았고, 남자의 차갑고 강렬한 숨결이 밤바람과 섞여 이시은의 콧속으로 파고들었다.
강한수는 그녀를 품에 안고 귓가에 속삭였다. "집에 데려다 줄게."
그가 뒤따라 나올 줄 몰랐던 이시은은 비웃으며 물었다. "오늘 일 있다면서요?"
강한수는 대답하지 않고 감정을 억누르며 물었다. "오늘 웨딩드레스 피팅 안 갔어?"
웨딩드레스는 공수해 온 것으로, 국제적으로 유명한 디자이너가 직접 수작업으로 제작한 작품이었고 사용 된 다이아몬드 하나하나 모두 엄선된 것이었다.
그의 말에 이시은은 그를 돌아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전 이 결혼식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게 무슨 소리야?" 강한수의 미간을 찌푸려지더니 눈빛에 분노가 일렁였고 차 문고리를 잡은 손에 힘이 실려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렸다.
그가 뒤따라 나온 건, 방금 할아버지에게서 전화가 왔기 때문이다. 할아버지가 말하길 이시은이 결혼식을 취소 하고 싶어한다고 했다.
"말 그대로야." 이시은은 고개를 숙이고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애초에 결혼식을 해줄 생각 없었잖아. 이제 와서 다시 식을 올리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
강한수는 평소 답지 않게 잠시 침묵하더니 확신이 없는 듯한 말투로 물었다. "삐쳤어?"
이시은은 그의 아내로서, 그가 다른 여자를 사무실에 숨겨두고도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는 상황에 화를 내지 않는 게 더 이상한 일 아니냐고 되묻고 싶었다.
하지만 이시은은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차분하게 말했다. "한수씨, 우리 이혼해요."
강한수의 눈빛에 놀라움이 스치더니 얼굴이 즉시 어둡게 가라앉았다. 그는 미간을 찌푸리고 이시은을 쳐다보며 물었다. "너 지금 뭐라고 했어?"
처음이 어려울 뿐 한번 입 밖으로 내뱉은 말을 반복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시은은 마음 속 한 구석이 텅 비어버린 것 같았다. 하지만 오랜만에 느껴보는 후련함이 가슴속에 밀려왔다.
그녀는 고개를 들고 눈앞에 우뚝 선 남자를 쳐다보며 다시 한번 말했다. "우리 이혼해요."
강한수의 안색이 더욱 어둡게 가라앉더니 그녀의 턱을 움켜잡고 날카롭게 쏘아봤다. "이시은, 얌전히 내 아내 노릇이나 똑바로 해. 이혼은 꿈도 꾸지 마!"
이시은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평온하지만 고집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쳐다봤다.
강한수는 심장이 떨렸다. 오랜만에 통제를 벗어난 상황으로 하여 짜증을 느꼈다.
그는 차 문을 열고 이시은을 조수석에 밀어 넣은 뒤, 어두운 얼굴로 시동을 걸었다.
"이혼 합의서는 이미 작성 했어요. 데려다 줄 필요 없고 여기서 사인만 해줘요."
이혼을 입에 올린 이상, 이시은은 더 이상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그리고 이미 말을 뱉었으니 서로의 시간을 낭비할 필요도 없었다.
"나, 분명히 말했어. 이혼 하지 않겠다고."
강한수의 목소리는 마치 살얼음이 서려있는 듯 차가웠다. 그와 동시에 차 속도가 급격하게 빨라지더니 마치 이시은과 함께 죽겠다는 것 마냥 미친 듯이 질주하기 시작했다.
회차 3
이시은은 강한수가 왜 이혼을 거부하는지 의아해하며 손잡이를 꽉 움켜쥐었다. 그녀는 한숨을 길게 내쉬며 말했다.
"걱정 말아요. 이혼 문제는 제가 직접 할아버님께 말씀드릴게요. 제 탓이라고 할 테니 한수씨를 곤란하게 만들지 않을…… 아!"
이시은의 말이 채 끝내기도 전에 차는 다시 한번 속도를 올렸다. 거의 앞차와 충돌 하려던 그때, 그는 급하게 핸들을 꺾어 갓길에 차를 세웠다.
안전벨트를 하지 않았다면 이시은은 차 밖으로 튕겨 나갔을 것이다.
겨우 정신을 차린 그녀는 화난 얼굴로 미친놈처럼 구는 남자를 노려봤다.
"그렇게 급해?" 강한수는 핸들을 꽉 움켜쥔 손이 하얗게 질렸다. 분노를 억누르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이시은은 그가 왜 화를 내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강한수는 이 결혼을 원하지 않았다. 먼저 이혼을 입에 올린 것도 그녀고 어르신 강진철을 설득하는 것도 그녀가 책임지기로 했는데 도대체 아직도 뭐가 불만이란 말인가?
"강씨 그룹 주식은 한 푼도 받지 않을 거예요. 그리고 원한다면 한수씨가 직접 변호사를 선임해 이혼 합의서를 작성하셔도 돼요. 저..."
"이시은!" 강한수는 차갑게 그녀의 말을 가로챘다.
그의 미간에 짙게 드리워진 짜증과 분노는 더 이상 억누를 수 없을 것 같았다. "결혼식은 예정대로 진행할거야. 당장 웨딩드레스를 입어 봐!"
말을 마친 그는 다시 시동을 걸고 강씨 저택으로 향했다.
이맘때 쯤이면 강진철이 이미 잠자리에 들었을 것이다. 강한수는 이시은의 손목을 거칠게 잡아끌고 놀란 얼굴로 그들을 바라보는 집사를 지나쳐 빠르게 2층으로 올라갔다.
"강한수, 이거 놔! 나 결혼 안 해!"
이시은은 자신을 속박하는 큰 손을 뿌리치고 돌아서려 했지만, 강한수는 다짜고짜 그녀를 다시 끌어당겼다.
그가 방문을 거칠게 발로 차 열고 안에 들어서자 침실 중앙에는 화려한 웨딩드레스가 놓여 있었다.
"네가 직접 입을래, 아니면 내가 입혀줄까?"
이시은을 품에 가둔 강한수는 마치 그녀의 거절을 전혀 듣지 못한 듯 했다.
화가 치밀어 오른 이시은은 실소를 터뜨리며 눈앞의 남자를 차갑게 올려다봤다. "강한수, 사람 말 못 알아 들어? 이혼하자고 했잖아! 이혼이란 건, 널 원하지 않는 다는 뜻이야!"
그녀의 한 마디씩 말을 내뱉을 때마다, 강한수의 얼굴은 점점 어두워졌다. 그녀의 말이 끝나자 강한수는 그녀의 턱을 움켜쥐고 그녀의 입술에 거칠게 입을 맞췄다.
이시은은 입술을 꽉 앙다물었다.
그녀의 저항을 느낀 강한수는 강제로 그녀의 입술을 벌리고 마치 야수마냥 거칠게 그녀의 입술을 탐했다.
그녀의 허리를 꽉 붙잡고 있던 강한수의 손에 점점 힘이 들어가더니 급기야 그녀를 번쩍 들어 어깨에 들쳐 메고는 침대로 향했다.
그가 무엇을 하려는지 알아차린 이시은은 필사적으로 저항하며 주먹으로 그의 어깨를 때렸다. "강한수! 이 나쁜 놈!"
"드레스 입어 보기 싫다며? 그럼 다른 거나 하자고."
강한수는 이시은의 저항을 손쉽게 제압했고 약간 차가운 그의 입술 그녀의 귀 뒤에 닿았고 거친 숨이 그녀의 목덜미에 스쳤다.
"지잉, 지잉."
그녀가 저항하는 탓에 침대에 떨어 진 강한수의 휴대폰이 갑자기 울리자 두사람은 동시에 몸싸움을 멈췄다.
이시은이 고개를 돌리자 화면에 깜박거리는 하연주의 이름이 보였다.
강한수는 미간을 찌푸리더니 이내 이시은을 놓아주고 전화를 받았다.
"한수야, 미안해. 지금 전화하면 안 된다는 거 알지만, 정말 누구한테 연락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전화했어."
하연주의 다급한 목소리에는 죄책감이 섞여 있었다.
강한수는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일이야, 천천히 말해봐."
그는 오기 전에 이미 비서를 시켜 그녀를 호텔에 데려다 주었다. 이렇게 짧은 시간 동안 무슨 일이 생겼을 가능성은 크지 않았다.
하연주는 흐느끼며 말했다. "한수야, 나 혼자 있을 수 없을 것 같아... 숨이 막혀 질식할 것 같아. 와서 같이 있어 주면 안 돼? 잠깐만이라도……"
침대 머리에 기대어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를 듣고 있던 이시은은 강한수가 뭐라고 대답할지 이미 예상했다.
역시, 그녀의 예상대로 강한수는 잠시 침묵하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알겠어, 기다려."
강한수의 그 한마디는 마치 커다란 망치가 되어 그녀의 심장을 거세게 내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