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2

그날 밤, 와인과 채라의 향수 냄새를 풍기며 이환이 집에 돌아오는 소리를 들었다.

평소 같았으면 그를 위해 해장국을 준비해 뒀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위층으로 올라왔을 때, 그는 침대 가장자리에 조용히 앉아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가 나를 안으려 했지만, 나는 본능적으로 몸을 피했다.

그는 내가 아직도 놀이공원 일로 삐졌다고 생각했는지 한숨을 쉬었다.

"미안해, 아리야."

그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내가 다 보상할게. 네가 갖고 싶어 하던 새 버킨백 사줄게, 응?"

나는 그저 텅 빈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가 잊어버린 모든 생일, 그가 깼던 모든 약속을 생각하며.

그는 나를 팔로 감쌌다. 그의 포옹은 감옥처럼 느껴졌다.

"새 대본 쓰느라 너무 무리했어. 좀 쉬어야 해."

그가 중얼거리는 모든 단어가 거짓말이었다.

차갑고 날카로운 분노가 고통을 뚫고 솟아올랐지만, 나는 그가 침대로 나를 이끌도록 내버려 두었다.

그의 가짜 걱정을 받아들이는 내 표정은 아무것도 읽을 수 없었다.

그의 숨소리가 깊은 잠으로 고르게 바뀌는 순간, 나는 곧장 그의 서재로 향했다.

서재는 항상 잠겨 있었다.

그는 중요한 업무 서류 때문이라고 했다.

예전에는 그 말을 존중했다.

이제는 그곳이 그의 비밀을 담은 금고라는 것을 알았다.

우리의 결혼기념일을 눌러봤다. 우리가 만난 날. 어머니의 생일. 아무것도 열리지 않았다.

그때, 고통스러운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내 손가락이 떨렸다. 나는 내 생일, 즉 준우의 생일이기도 한 날짜를 입력했다.

딸깍, 소리와 함께 자물쇠가 열렸다.

방은 흠잡을 데 없이 깨끗했고, 커다란 마호가니 책상이 중앙을 차지하고 있었다.

나는 거기서부터 시작했다.

잠긴 서랍 안에서 작고 가죽으로 장정된 사진첩을 발견했다.

떨리는 손으로 그것을 열었다.

이환, 채라, 그리고 그들의 아들 준우의 사진이 끝없이 이어졌다.

공원에서, 해변에서, 케이크와 촛불로 생일을 축하하는 모습.

완벽하고 행복한 가족.

한 사진에는 부모님도 함께 있었다.

어머니는 준우를 안고 환하게 웃고 있었고, 아버지는 채라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서 있었다.

그들은 그 도둑맞은 순간에, 내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증거는 차고 넘쳤지만, 나는 더 많은 것이 필요했다.

그의 노트북으로 향했다. 비밀번호는 같았다.

그의 파일은 꼼꼼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개인'이라는 이름의 폴더를 찾았다.

그 안에 또 다른 폴더가 있었다. 'J'.

모든 것이 담겨 있었다.

준우의 첫걸음 동영상. 첫마디.

이환을 아버지로 기재한 출생증명서 스캔본.

그리고 '재정'이라는 이름의 하위 폴더.

클릭해서 열자 피가 차갑게 식었다.

내 부모님, 서진혁과 오은영의 공동 계좌에서 유령 회사로 매달 송금된 내역이 있었다.

각 송금의 메모란은 똑같았다. '채라 갤러리 투자'.

금액은 어마어마했다. 5년 동안 수십억 원.

그들은 이 일을 가능하게 한 것뿐만 아니라, 자금을 댄 것이었다.

그들이 내게 했던 모든 다정한 말, 모든 비싼 선물, 모든 공허한 가족의 약속은,

나를 망치려 했던 여자와 내 남편이 그녀와 함께 키우고 있던 비밀 가족을 부양하는 데 사용된 바로 그 돈으로 지불되었다.

그들의 사랑이라는 환상은 단순한 거짓말이 아니었다. 거래였다.

나는 그들이 채라에 대한 죄책감을 달래기 위해 지불한 대가였다.

나는 모든 것을 작고 암호화된 USB에 복사했다.

모든 사진, 모든 동영상, 모든 은행 거래 내역서.

파일이 전송되는 동안, 나는 휴대폰을 들어 지수에게 전화했다.

내 목소리는 섬뜩할 정도로 차분했다.

"지수야, 지난 5년간 윤채라에 대해 알아낼 수 있는 건 전부 다 알아봐 줘. 전부 다."

나는 그들과 맞서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부인할 수 없는 진실로 무장한 채, 내 방식대로 할 것이다.

휴대폰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로부터 온 메시지였다.

윤채라.

내가 갤러리 밖에서 서성이는 것을 눈치챈 게 틀림없었다.

그녀는 사진 한 장을 보냈다.

내가 방금 본, 부모님과 함께 찍은 그 가족사진이었다.

"오늘 네 남편이 사준 멋진 그림 고마워. 정말 아름답다. 이 풍경이 우리가 처음 만난 날을 떠올리게 한대. 넌 언제나 외부인, 편리한 대체품일 뿐이야."

그 조롱은 나를 부수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잠시 동안은, 정말로 그랬다.

나는 책상에 기댄 채, USB를 손에 꽉 쥐었다.

분노와 슬픔의 뜨거운 눈물 한 방울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하지만 이내 슬픔은 다른 무언가로 굳어졌다.

차갑고 명료한 무언가로.

그녀는 틀렸다.

나는 부서지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들의 세상을 송두리째 불태워 버릴 것이다.

회차 3

채라의 메시지는 선전포고였다.

그녀는 자신이 금박을 입힌 새장 속에 숨어 아무도 건드릴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 열쇠를 내가 쥐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나는 그 갤러리에 한 번 더 들어가야 했다.

단순히 증거를 위해서가 아니라, 진실을 내 눈으로 보고,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날것 그대로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였다.

USB에는 '무엇'이 담겨 있었지만, 나는 '왜'가 필요했다.

온라인 구인 사이트를 뒤져 채라 갤러리의 임시 청소부 자리를 찾아냈다.

대포 계정을 이용해 갤러리 관리 부장에게 연락했다.

일자리가 절실한 미혼모라는 이야기를 꾸며냈다.

월급보다 훨씬 많은 수천만 원을 송금하자, 거래는 성사되었다.

다음 날 오후, 나는 다른 청소부들과 함께 서비스 출입구로 차를 몰았다.

평범한 파란색 유니폼을 입고, 야구 모자를 푹 눌러썼으며, 일회용 마스크를 착용했다.

고개를 숙이고 입을 다물었다.

나는 채라의 개인 사무실을 배정받았다.

방은 거대했고, 도시의 멋진 전망을 자랑했다.

하지만 나는 전망에 관심이 없었다.

나는 그들이 이곳에 지은 삶에 관심이 있었다.

침대 옆 탁자에는 은색 액자가 놓여 있었다.

이환과 채라의 결혼식 날 사진이었다.

물론 그들은 공식적으로 결혼하지 않았다. 이환은 나와 결혼했으니까.

이것은 거짓말 속의 거짓말, 그들만을 위한 의식, 그들이 비밀리에 살아온 환상이었다.

나는 집안을 기계적으로 청소하며 돌아다녔다. 눈은 모든 것을 훑고 있었다.

벽은 가족사진으로 뒤덮여 있었다.

조랑말을 탄 준우. 보트 위에서 웃고 있는 채라와 이환.

갤러리의 건축 양식은 사업가인 아버지의 시그니처 스타일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고, 예술품 큐레이션은 영화감독인 어머니의 미적 감각을 소리치고 있었다.

직원 휴게실에서, 친절해 보이는 직원 안나가 조리대를 닦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목소리를 낮추고 변조했다.

"정말 아름다운 곳이네요. 아주 행복한 가족처럼 보여요."

안나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한숨을 쉬었다.

"그렇죠. 강 대표님은 저 아이를 정말 아끼세요. 그리고 서 회장님은… 자기 사무실보다 여기에 더 자주 오셔서 갤러리 사업 운영을 직접 챙기시죠."

그 말은 물리적인 타격처럼 느껴졌다.

아버지는 내게 무언가를 가르쳐주겠다고 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나는 그에게 내 대본을 읽어달라고, 조언을 해달라고 애원했지만, 그는 항상 너무 바쁘다고 했다.

채라의 갤러리를 위해서는 바쁘지 않았던 것이다.

"사모님은요?"

나는 목이 메어 물었다.

"아, 그분은 매주 할리우드 제작자들이랑 A급 스타들을 여기로 데려오세요."

안나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채라 씨가 자기가 항상 원했던 딸이래요. 그렇게 활기차고 강인하다면서요."

그녀가 항상 원했던 딸.

내가 아니었다.

엄마의 사랑을 몇 년 동안 꿈꿔온 진짜 딸이 아니었다.

속이 뒤틀렸다. 여기서 나가야 했다.

휴게실을 나서려는데, 차도에서 차 소리가 들렸다.

날렵한 검은색 세단. 이환의 차였다.

나는 재빨리 대걸레를 잡고 중앙 홀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고개를 숙이고 마스크를 쓴 채, 엿듣기 위해 일에 몰두한 척했다.

그들이 보였다. 이환, 채라, 그리고 준우.

채라가 입을 삐죽거리고 있었다.

"그냥… 지쳐, 이환 씨. 걔가 곁에 있는 거. 도대체 언제쯤 정리할 거야?"

숨이 턱 막혔다.

이환은 일어서서 채라를 품에 안았다.

그는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그의 목소리에는 날카로운 조바심이 묻어 있었다.

"걔에 대해 그렇게 말하지 마. 그래도 서 씨 집안사람이잖아. 내가 너랑 준우한테 해줄 수 있는 모든 게 걔 덕분이야. 그때 네가 임신만 안 했어도, 난 절대 걔를 배신하지 않았을 거야."

그 말은 어떤 모욕보다도 나를 더 아프게 후려쳤다.

그러니까 나는 단지 대용품이 아니었다.

나는 그가 의무감 때문에 배신한 여자였다.

채라의 질투는 그 말을 듣고 더욱 깊이 곪아 터졌을 것이다.

그녀의 끊임없는 잔인함이 설명되었다.

필요한 것은 다 얻었다. 나는 몰래 빠져나가려고 몸을 돌렸다.

"어이, 거기."

이환의 목소리가 공기를 갈랐다.

"새로 왔나 보네."

나는 그에게 등을 보인 채 얼어붙었다.

"돌아봐. 마스크 벗고."

그의 말투는 날카롭고 권위적이었다.

그는 이곳의 단골이었고, 모든 얼굴을 알고 있었다.

그가 내 삶보다 그의 내연녀 갤러리 직원들에게 더 익숙하다는 생각에 또 다른 얼음 조각이 심장을 꿰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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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년의 기만, 평생의 복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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