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1
나는 오랫동안 잃어버렸던 JS 그룹의 상속녀였다.
보육원에서 힘겹게 보낸 어린 시절을 뒤로하고 마침내 집으로 돌아왔다.
부모님은 나를 끔찍이 아꼈고, 남편은 나를 소중히 여겼다.
내 인생을 망치려 했던 여자, 윤채라는 정신병원에 갇혔다.
나는 안전했다. 나는 사랑받고 있었다.
내 생일날, 나는 남편 이환의 사무실에 깜짝 방문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그는 그곳에 없었다.
그를 찾은 곳은 시내 건너편의 한 개인 갤러리였다.
그는 윤채라와 함께 있었다.
그녀는 병원에 있지 않았다.
내 남편과 그들의 다섯 살배기 아들 곁에 서서 환하게 웃고 있었다.
나는 유리창 너머로 이환이 그녀에게 입 맞추는 것을 지켜보았다.
바로 오늘 아침, 그가 내게 했던 것과 똑같은, 익숙하고 다정한 몸짓이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그들의 대화가 들려왔다.
놀이공원에 가고 싶다는 내 생일 소원은 거절당했다.
그가 이미 아들을 위해 공원 전체를 약속했기 때문이었다.
그 아이의 생일은, 내 생일과 같은 날이었다.
"쟤는 가족이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서 우리가 하는 말은 뭐든 믿잖아."
숨통을 조여오는 잔인함이 섞인 이환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떻게 보면 좀 불쌍하지."
나의 모든 현실.
이 비밀스러운 삶의 자금을 대준 사랑하는 부모님, 헌신적인 남편.
모든 것이 5년간의 거짓말이었다.
나는 그들이 무대 위에 세워둔 바보에 불과했다.
휴대폰이 울렸다.
이환이 그의 진짜 가족과 함께 서서 보낸 문자였다.
"방금 회의 끝났어. 너무 피곤하다. 보고 싶어."
그 태연한 거짓말이 마지막 결정타였다.
그들은 내가 자기들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그저 감사할 줄만 아는 한심한 고아라고 생각했다.
그들이 얼마나 틀렸는지, 이제 곧 알게 될 것이다.
제1화
"아직도 그 여자 그렇게 쉽게 봐준 게 믿기지 않아."
최지수가 커피를 저으며 고개를 저었다.
"윤채라가 너한테 한 짓을 생각하면 말이야."
그 이름에 나도 모르게 얼굴을 찌푸렸다.
5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아물지 않은 상처 같았다.
"지수야, 제발."
"진심이야."
그녀는 변호사 특유의 본능을 발휘하며 말을 이었다.
"그 여자는 거의 네 언니나 마찬가지였잖아. 부모님이 널 찾기 전까지 몇 년 동안이나 데려와서 애정을 쏟아부은 애라고. 근데 그 은혜를 어떻게 갚았어? 네가 자기 대본을 표절했다고 누명 씌우고 네 커리어를 바닥에 처박으려고 했잖아."
익숙하고 씁쓸한 기억에 한숨이 나왔다.
윤채라. 부모님의 후원을 받던 아이, 내 자리를 차지했던 비공식적인 딸.
진짜 상속녀인 내가 발견되어 집으로 돌아왔을 때, 동화 같은 재회는 채라의 지독한 질투로 산산조각 났다.
표절 스캔들은 그녀가 꾸민 복수의 걸작이었다.
하지만 가족은 내 주위에서 굳건한 방패가 되어주었다.
"진실이 밝혀진 후에 그 애가 완전히 정신적으로 무너졌다고 들었어."
나는 지난 5년간 붙들고 있던 이야기를 반복했다.
"부모님은 책임감을 느끼셨지. 그래서 최고의 개인 병원에 보내서 치료받게 해주셨어. 이환 씨도 그게 가장 인도적인 방법이라고 동의했고. 이제 그 여자는 끝났어, 지수야. 가족이 날 지켜준 거야."
나는 그들을 믿었다.
나는 서아리, 어린 시절 잃어버렸던 부유한 가족과 재회하고 마침내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드라마 작가였다.
사랑 많은 부모님과 잘생기고 성공한 남편이 있었다.
나는 안전했다. 나는 사랑받고 있었다.
보육원과 외로움이라는 과거의 유령들은 아득히 멀게만 느껴졌다.
이것이 나의 현실, 단단하고 진실된 현실이었다.
"그래도 말이야."
나는 화제를 바꾸며 한숨을 쉬었다.
"요즘 이환 씨가 너무 바쁘지 않았으면 좋겠어. 나 정말 놀이공원 가고 싶거든? 딱 하루만이라도. 다시 어린애가 된 것처럼 놀고 싶어."
나는 지수에게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곧 내 생일이잖아. 같이 가자고 문자 보내긴 했는데, 생일 때문이라고는 말 안 했어. 우리 둘만의 작은 비밀로 하고 싶었거든."
바로 그때,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테이블 위 휴대폰이 울렸다.
화면에 '강이환'이라는 이름이 뜨자, 나는 희망에 찬 미소를 지었다. 심장이 작게 뛰었다.
그의 답장은 짧고 무심했다.
"안 돼. 회사에 긴급 프로젝트가 있어. 앞으로 몇 주간은 정신없을 거야.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마."
어깨가 축 처졌다.
지수는 내 얼굴에 어린 실망감을 보고는 테이블 너머로 손을 뻗었다. 그녀의 표정은 격려로 가득했다.
"야. 그냥 가봐. 사무실로 바로 쳐들어가서 생일 소원이라고 말해. 이환 씨는 널 사랑하잖아. 널 위해서라면 뭐든 다 할걸."
그녀의 말에 한 줄기 희망이 피어올랐다.
그를 놀라게 해주고 싶었다.
한 시간 후, 나는 그가 가장 좋아하는 커피 두 잔을 들고 휴젠 바이오의 번쩍이는 로비로 들어섰다.
로비의 보안 직원은 정중하게 미소 지었다.
하지만 엘리베이터 앞에서 이환의 비서가 미안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막아섰다.
"정말 죄송합니다, 사모님. 대표님께서 오늘 오후에 개인적인 약속이 있으셔서요. 이미 퇴근하셨습니다."
"아."
나는 실망감을 감추려 애쓰며 말했다.
"어디 가셨는지 말씀 안 하셨어요?"
"서쪽에 있는 채라 갤러리에 가셨어요."
그녀는 그의 일정을 확인하며 말했다.
"매주 화요일마다 가세요."
뱃속에서 차가운 덩어리가 뭉치는 기분이었다.
채라. 그 이름이 머릿속에서 메아리쳤다.
나는 운전대를 꽉 쥔 채 차를 몰았다.
주소는 내가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시크하고 현대적인 아트 갤러리로 나를 이끌었다.
간판에는 '갤러리 채라'라고 쓰여 있었다.
오늘은 일반에 공개되지 않는 날이었지만, 갤러리 앞에는 여러 대의 값비싼 차들이 주차되어 있었다.
그중 하나는 우리 아버지의 차였다.
나는 길 아래쪽에 차를 세우고 건물 쪽으로 걸어갔다.
바닥부터 천장까지 이어진 통유리창 너머로, 이해할 수 없는 광경이 보였다.
그리고, 그를 보았다. 내 남편, 강이환.
그는 정장을 입고 있지 않았다.
편안한 옷차림에, 내가 몇 년 동안 보지 못했던 편안한 미소를 띤 채였다.
그는 네댓 살쯤 되어 보이는 어린 남자아이를 어깨에 태우고 있었다.
아이는 꺄르르 웃으며 작은 손으로 이환의 검은 머리카락을 헝클어뜨렸다.
그리고 그들 옆에 서 있는 여자를 보았다.
그녀의 손은 이환의 팔에 얹혀 있었다.
윤채라.
그녀는 몰락하지 않았다.
치료 시설에 있지도 않았다.
실크 드레스를 입고 빛나는 모습은, 영락없는 행복한 엄마이자 파트너였다.
나는 소름 끼치게 기억하는 그 웃음소리를 내며, 그녀는 몸을 기울여 이환의 뺨에 입을 맞췄다.
그는 고개를 돌려 그녀의 입술에 화답했다.
바로 오늘 아침, 그가 내게 했던 것과 똑같은, 익숙하고 다정한 몸짓이었다.
숨이 멎었다. 세상이 통째로 기울어지는 것 같았다.
나는 커다란 조각상 그림자 속으로 비틀거리며 뒷걸음질 쳤다.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살짝 열린 옆문으로 다가가자, 그들의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어린 아들, 준우가 흥분해서 소리치고 있었다.
"아빠, 약속했잖아요! 내 생일에 놀이공원 가기로!"
이환의 목소리는 내가 한 번도 제대로 받아본 적 없다고 이제야 깨달은 애정으로 가득했다.
"물론이지, 아들. 아빠가 이미 공원 전체를 예약해 놨어. 하루 종일 전부 네 거야."
피가 차갑게 식었다.
준우의 생일. 내 생일과 같은 날이었다.
드디어 모든 것을 이해했다.
이환이 내 소원을 거절한 것은 바빠서가 아니었다.
그는 이미 내 생일을 다른 가족에게 약속했기 때문이었다.
"정말 서아리는 아무것도 의심 안 해?"
채라가 약간 톤을 바꾸며 물었다.
"5년이나 이 짓을 계속했는데."
"쟤는 전혀 몰라."
이환의 목소리에는 내 숨통을 조여오는 태연한 잔인함이 배어 있었다.
"가족이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서 우리가 하는 말은 뭐든 믿잖아. 어떻게 보면 좀 불쌍하지."
"불쌍한 아리."
채라가 한숨을 쉬었다. 거짓 동정의 완벽한 연기였다.
"아직도 너랑 아기 가질 생각만 하던데."
이환은 코웃음을 쳤다.
"내가 어떻게 쟤한테 내 아이를 갖게 해? 이미 너한테 약속했잖아, 채라야. 준우가 우리의 유일한 후계자가 될 거라고. 때가 되면 내가 무정자증이라고 말할 거야. 그러고 나서 준우를 '입양'하면, 영원히 우리 집으로 올 수 있어."
채라는 승리의 미소를 지으며 그의 가슴에 기댔다.
속이 울렁거렸다.
부모님. 그들도 한패였다.
이 호화로운 삶, 이 비밀스러운 가족, 이 갤러리를 위한 돈.
모두 그들에게서 나왔다.
원래 내 것이었어야 할 JS 그룹의 재산에서.
나의 모든 현실.
사랑하는 부모님, 헌신적인 남편, 보육원에서 보낸 어린 시절 끝에 마침내 찾았다고 믿었던 안정감.
모든 것이 정교하게 짜인 무대였다.
그리고 나는 다른 배우들이 막 뒤에서 나를 비웃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주연을 맡은 바보였다.
나는 나무 인형처럼 뻣뻣한 동작으로 천천히 물러났다.
차에 올라탔지만, 몸이 너무 심하게 떨려 시동키를 제대로 돌릴 수조차 없었다.
무릎 위에서 휴대폰이 울렸다. 이환이 보낸 문자였다.
"방금 회의 끝났어. 너무 피곤하다. 보고 싶어. 집에서 봐."
그가 진짜 가족 옆에 서서 타이핑했을 그 태연한 거짓말이 마지막 결정타였다.
세상은 그냥 기울어진 게 아니었다. 내 주위에서 산산이 부서져 먼지가 되어버렸다.
나는 차를 몰았다. 우리가 함께 살던 저택이 아닌, 그들이 통제할 수 없는 미래를 향해.
슬픔이 물리적인 무게가 되어 가슴을 짓눌렀다.
하지만 그 아래에서, 작고 단단한 결심의 불씨가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들은 내가 한심하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내가 바보라고 생각했다.
그들이 얼마나 틀렸는지, 이제 곧 알게 될 것이다.
회차 2
그날 밤, 와인과 채라의 향수 냄새를 풍기며 이환이 집에 돌아오는 소리를 들었다.
평소 같았으면 그를 위해 해장국을 준비해 뒀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위층으로 올라왔을 때, 그는 침대 가장자리에 조용히 앉아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가 나를 안으려 했지만, 나는 본능적으로 몸을 피했다.
그는 내가 아직도 놀이공원 일로 삐졌다고 생각했는지 한숨을 쉬었다.
"미안해, 아리야."
그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내가 다 보상할게. 네가 갖고 싶어 하던 새 버킨백 사줄게, 응?"
나는 그저 텅 빈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가 잊어버린 모든 생일, 그가 깼던 모든 약속을 생각하며.
그는 나를 팔로 감쌌다. 그의 포옹은 감옥처럼 느껴졌다.
"새 대본 쓰느라 너무 무리했어. 좀 쉬어야 해."
그가 중얼거리는 모든 단어가 거짓말이었다.
차갑고 날카로운 분노가 고통을 뚫고 솟아올랐지만, 나는 그가 침대로 나를 이끌도록 내버려 두었다.
그의 가짜 걱정을 받아들이는 내 표정은 아무것도 읽을 수 없었다.
그의 숨소리가 깊은 잠으로 고르게 바뀌는 순간, 나는 곧장 그의 서재로 향했다.
서재는 항상 잠겨 있었다.
그는 중요한 업무 서류 때문이라고 했다.
예전에는 그 말을 존중했다.
이제는 그곳이 그의 비밀을 담은 금고라는 것을 알았다.
우리의 결혼기념일을 눌러봤다. 우리가 만난 날. 어머니의 생일. 아무것도 열리지 않았다.
그때, 고통스러운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내 손가락이 떨렸다. 나는 내 생일, 즉 준우의 생일이기도 한 날짜를 입력했다.
딸깍, 소리와 함께 자물쇠가 열렸다.
방은 흠잡을 데 없이 깨끗했고, 커다란 마호가니 책상이 중앙을 차지하고 있었다.
나는 거기서부터 시작했다.
잠긴 서랍 안에서 작고 가죽으로 장정된 사진첩을 발견했다.
떨리는 손으로 그것을 열었다.
이환, 채라, 그리고 그들의 아들 준우의 사진이 끝없이 이어졌다.
공원에서, 해변에서, 케이크와 촛불로 생일을 축하하는 모습.
완벽하고 행복한 가족.
한 사진에는 부모님도 함께 있었다.
어머니는 준우를 안고 환하게 웃고 있었고, 아버지는 채라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서 있었다.
그들은 그 도둑맞은 순간에, 내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증거는 차고 넘쳤지만, 나는 더 많은 것이 필요했다.
그의 노트북으로 향했다. 비밀번호는 같았다.
그의 파일은 꼼꼼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개인'이라는 이름의 폴더를 찾았다.
그 안에 또 다른 폴더가 있었다. 'J'.
모든 것이 담겨 있었다.
준우의 첫걸음 동영상. 첫마디.
이환을 아버지로 기재한 출생증명서 스캔본.
그리고 '재정'이라는 이름의 하위 폴더.
클릭해서 열자 피가 차갑게 식었다.
내 부모님, 서진혁과 오은영의 공동 계좌에서 유령 회사로 매달 송금된 내역이 있었다.
각 송금의 메모란은 똑같았다. '채라 갤러리 투자'.
금액은 어마어마했다. 5년 동안 수십억 원.
그들은 이 일을 가능하게 한 것뿐만 아니라, 자금을 댄 것이었다.
그들이 내게 했던 모든 다정한 말, 모든 비싼 선물, 모든 공허한 가족의 약속은,
나를 망치려 했던 여자와 내 남편이 그녀와 함께 키우고 있던 비밀 가족을 부양하는 데 사용된 바로 그 돈으로 지불되었다.
그들의 사랑이라는 환상은 단순한 거짓말이 아니었다. 거래였다.
나는 그들이 채라에 대한 죄책감을 달래기 위해 지불한 대가였다.
나는 모든 것을 작고 암호화된 USB에 복사했다.
모든 사진, 모든 동영상, 모든 은행 거래 내역서.
파일이 전송되는 동안, 나는 휴대폰을 들어 지수에게 전화했다.
내 목소리는 섬뜩할 정도로 차분했다.
"지수야, 지난 5년간 윤채라에 대해 알아낼 수 있는 건 전부 다 알아봐 줘. 전부 다."
나는 그들과 맞서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부인할 수 없는 진실로 무장한 채, 내 방식대로 할 것이다.
휴대폰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로부터 온 메시지였다.
윤채라.
내가 갤러리 밖에서 서성이는 것을 눈치챈 게 틀림없었다.
그녀는 사진 한 장을 보냈다.
내가 방금 본, 부모님과 함께 찍은 그 가족사진이었다.
"오늘 네 남편이 사준 멋진 그림 고마워. 정말 아름답다. 이 풍경이 우리가 처음 만난 날을 떠올리게 한대. 넌 언제나 외부인, 편리한 대체품일 뿐이야."
그 조롱은 나를 부수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잠시 동안은, 정말로 그랬다.
나는 책상에 기댄 채, USB를 손에 꽉 쥐었다.
분노와 슬픔의 뜨거운 눈물 한 방울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하지만 이내 슬픔은 다른 무언가로 굳어졌다.
차갑고 명료한 무언가로.
그녀는 틀렸다.
나는 부서지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들의 세상을 송두리째 불태워 버릴 것이다.
회차 3
채라의 메시지는 선전포고였다.
그녀는 자신이 금박을 입힌 새장 속에 숨어 아무도 건드릴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 열쇠를 내가 쥐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나는 그 갤러리에 한 번 더 들어가야 했다.
단순히 증거를 위해서가 아니라, 진실을 내 눈으로 보고,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날것 그대로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였다.
USB에는 '무엇'이 담겨 있었지만, 나는 '왜'가 필요했다.
온라인 구인 사이트를 뒤져 채라 갤러리의 임시 청소부 자리를 찾아냈다.
대포 계정을 이용해 갤러리 관리 부장에게 연락했다.
일자리가 절실한 미혼모라는 이야기를 꾸며냈다.
월급보다 훨씬 많은 수천만 원을 송금하자, 거래는 성사되었다.
다음 날 오후, 나는 다른 청소부들과 함께 서비스 출입구로 차를 몰았다.
평범한 파란색 유니폼을 입고, 야구 모자를 푹 눌러썼으며, 일회용 마스크를 착용했다.
고개를 숙이고 입을 다물었다.
나는 채라의 개인 사무실을 배정받았다.
방은 거대했고, 도시의 멋진 전망을 자랑했다.
하지만 나는 전망에 관심이 없었다.
나는 그들이 이곳에 지은 삶에 관심이 있었다.
침대 옆 탁자에는 은색 액자가 놓여 있었다.
이환과 채라의 결혼식 날 사진이었다.
물론 그들은 공식적으로 결혼하지 않았다. 이환은 나와 결혼했으니까.
이것은 거짓말 속의 거짓말, 그들만을 위한 의식, 그들이 비밀리에 살아온 환상이었다.
나는 집안을 기계적으로 청소하며 돌아다녔다. 눈은 모든 것을 훑고 있었다.
벽은 가족사진으로 뒤덮여 있었다.
조랑말을 탄 준우. 보트 위에서 웃고 있는 채라와 이환.
갤러리의 건축 양식은 사업가인 아버지의 시그니처 스타일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고, 예술품 큐레이션은 영화감독인 어머니의 미적 감각을 소리치고 있었다.
직원 휴게실에서, 친절해 보이는 직원 안나가 조리대를 닦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목소리를 낮추고 변조했다.
"정말 아름다운 곳이네요. 아주 행복한 가족처럼 보여요."
안나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한숨을 쉬었다.
"그렇죠. 강 대표님은 저 아이를 정말 아끼세요. 그리고 서 회장님은… 자기 사무실보다 여기에 더 자주 오셔서 갤러리 사업 운영을 직접 챙기시죠."
그 말은 물리적인 타격처럼 느껴졌다.
아버지는 내게 무언가를 가르쳐주겠다고 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나는 그에게 내 대본을 읽어달라고, 조언을 해달라고 애원했지만, 그는 항상 너무 바쁘다고 했다.
채라의 갤러리를 위해서는 바쁘지 않았던 것이다.
"사모님은요?"
나는 목이 메어 물었다.
"아, 그분은 매주 할리우드 제작자들이랑 A급 스타들을 여기로 데려오세요."
안나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채라 씨가 자기가 항상 원했던 딸이래요. 그렇게 활기차고 강인하다면서요."
그녀가 항상 원했던 딸.
내가 아니었다.
엄마의 사랑을 몇 년 동안 꿈꿔온 진짜 딸이 아니었다.
속이 뒤틀렸다. 여기서 나가야 했다.
휴게실을 나서려는데, 차도에서 차 소리가 들렸다.
날렵한 검은색 세단. 이환의 차였다.
나는 재빨리 대걸레를 잡고 중앙 홀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고개를 숙이고 마스크를 쓴 채, 엿듣기 위해 일에 몰두한 척했다.
그들이 보였다. 이환, 채라, 그리고 준우.
채라가 입을 삐죽거리고 있었다.
"그냥… 지쳐, 이환 씨. 걔가 곁에 있는 거. 도대체 언제쯤 정리할 거야?"
숨이 턱 막혔다.
이환은 일어서서 채라를 품에 안았다.
그는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그의 목소리에는 날카로운 조바심이 묻어 있었다.
"걔에 대해 그렇게 말하지 마. 그래도 서 씨 집안사람이잖아. 내가 너랑 준우한테 해줄 수 있는 모든 게 걔 덕분이야. 그때 네가 임신만 안 했어도, 난 절대 걔를 배신하지 않았을 거야."
그 말은 어떤 모욕보다도 나를 더 아프게 후려쳤다.
그러니까 나는 단지 대용품이 아니었다.
나는 그가 의무감 때문에 배신한 여자였다.
채라의 질투는 그 말을 듣고 더욱 깊이 곪아 터졌을 것이다.
그녀의 끊임없는 잔인함이 설명되었다.
필요한 것은 다 얻었다. 나는 몰래 빠져나가려고 몸을 돌렸다.
"어이, 거기."
이환의 목소리가 공기를 갈랐다.
"새로 왔나 보네."
나는 그에게 등을 보인 채 얼어붙었다.
"돌아봐. 마스크 벗고."
그의 말투는 날카롭고 권위적이었다.
그는 이곳의 단골이었고, 모든 얼굴을 알고 있었다.
그가 내 삶보다 그의 내연녀 갤러리 직원들에게 더 익숙하다는 생각에 또 다른 얼음 조각이 심장을 꿰뚫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