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1

발렌타인데이에 말기 위암 진단을 받았고,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혼란과 공포에 휩싸여 제정신이 아닌 나한테 세바스찬 내쉬는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무릎을 꿇고 말했다. "미안해, 베티. 다른 여자를 사랑하게 되었어."

그리고 그는 진지하게 약속했다. "우리 혼인을 배신한 건 아니야. 그녀와의 관계는 그냥 정신적 유대감일 뿐이고 육체적인 관계는 절대 없어. 너에 대한 내 감정도 변함없고 남편으로서의 책임도 계속 다 할 거야."

나는 진단서를 꼭 쥔 채 힘겹게 몇 마디를 뱉었다. "그래. 허락할게."

세바스찬은 놀라는 한편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끌어안으며 말했다. "베티, 날 떠나지 마. 그녀를 사랑하지만, 너를 더 사랑해. 제발 화내지 말고 소란도 피우지 마."

나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안 그럴게." 죽음을 앞둔 사람으로서 소란을 피울 일은 없었다.

1.

세바스찬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내 차가운 손을 잡았다. "왜 얼굴이 이렇게 창백해? 위가 또 아픈 거야?"

위에서 다시 날카로운 통증이 느껴졌다.

내가 말기 위암 환자이고 죽음의 문턱에 있다는 사실을 그에게 말하고 싶었다.

그가 나를 걱정하는 걸 알지만, 마음이 딴 곳에 가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 더 있어?" 내가 물었다.

그는 내 얼굴에서 시선을 떼고, 고개를 푹 숙여 발끝만 보며 우물쭈물거렸다.

나는 깊이 숨을 들이쉬고 말했다. "괜찮아, 마음의 준비는 되어 있어."

세바스찬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그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나를 충격에 빠뜨렸다. "재즐린이 임신 9개월이야."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세바스찬은 서둘러 설명했다. "재즐린과 관계를 가진 적 없어. 그 아이는 시험관 아기 시술로 생긴 아이야."

내가 충격받을까 봐 그는 말도 되지 않는 논리로 나를 설득하려 했다. "베티, 너도 늘 아이를 원했지만 건강 문제로 가질 수 없었잖아. 재즐린의 아기가 태어나면 우리가 함께 키우자. 이후에 아기는 너를 엄마라고 부르고 우리의 아이가 될 거야."

나는 멍하니 그의 입술이 움직이는 것만 바라보았고, 그가 무슨 말을 했는지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한참이 지난 후, 그의 희망과 갈등이 가득 찬 눈빛을 보면서, 나는 대답했다. "그래."

세바스찬은 순간 멍해졌다가 놀랍고 기쁜 마음에 나를 끌어안고 진심 어린 눈물을 흘렸다. "고마워, 베티."

그가 나를 꽉 안는 바람에 위가 눌렸고, 목구멍에서 피와 위산의 냄새가 올라왔다.

나는 재빨리 고개를 돌리며, 세바스찬이 내 상태의 이상을 눈치챌까 봐 두려운 마음과 기대감이 뒤섞였다.

그는 위암을 전문으로 다루는 종양전문의다.

세바스찬은 그의 기쁨에 휩싸여 있었고, 두 눈은 내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광채로 빛나고 있었다. "재즐린은 매력적인 여성이야. 만나면 너도 분명 좋아하게 될 거야."

나는 실망했지만 쓴웃음을 지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세바스찬의 마음은 이미 나를 떠난 지 오래였다. 그러니 내가 죽으면 그는 많이 슬퍼하지 않을 것이다.

갑자기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세바스찬은 서둘러 문을 열었다.

재즐린은 몸을 숙였고, 세바스찬은 무릎을 꿇고 그녀에게 슬리퍼를 신겼다.

그녀는 들어오자마자 나한테 무릎을 꿇었다. "언니, 미안해요."

세바스찬도 무릎을 꿇고 조심스레 그녀의 편을 들며 말했다. "베티, 이쪽이 재즐린이야. 다 내 잘못이야. 내가 감정을 조절하지 못했고, 먼저 재즐린을 쫓아다녔어."

갑자기 심장이 날카롭게 아파 위의 통증도 잊을 지경이었다.

그들이 내 앞에 무릎을 꿇는 것을 보며, 이상한 감정이 교차했다. 답답하고 힘이 빠지며, 설명할 수 없는 고통이 밀려왔다.

솔직히 세바스찬이 내 남편이 아니었다면 둘이 꽤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녀는 긴 곱슬머리와 붉은 입술을 가지고 있어 매력적이었다. 임신하여 배가 나왔지만 여전히 아름다워 보였다.

그들이 내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모습은 다른 사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함께 있고 싶어하는 연인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중 한 사람은 10년 동안 같이 살아온 내 남편이고, 다른 한 사람은 그의 정신적 불륜 상대였다.

목구멍의 피 맛을 삼키며 재즐린을 일으켜 세우려 손을 뻗었다. "임신 중인데 바닥이 차가워요. 출산 예정일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 괜찮다면 여기서 지내도 돼요. 그럼 세바스찬이 당신을 돌보기 편리할 테니깐요."

이 말을 하고 나니 속이 후련해지는 느낌이었다.

나의 수명은 얼마 남지 않았고, 재즐린은 곧 세상에 태어날 새로운 생명을 품고 있었다. 이제 내가 물러나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그럴 필요 없어." 세바스찬은 재즐린을 일으켜 세우며 그녀와 그녀의 배를 보호하듯 감쌌다.

심장을 찌르는 듯한 통증이 다시 밀려왔고, 위의 통증이 다시 솟구쳤다.

재즐린은 세바스찬을 원망하는 눈길로 바라보며, 죄책감 가득한 목소리로 나에게 말했다. "언니, 미안하다고 말해도 소용없다는 건 알지만, 만약 괜찮다면 나한테 속죄할 기회를 줘요."

그녀의 눈은 밝고, 진심 어린 순수함이 가득했다. "세바스찬한테서 언니가 어렸을 때부터 위가 안 좋았다고 들었어요. 난 영양학을 배웠어요. 언니의 위가 좋아지도록 내가 돌봐줄게요."

위에서 타오르는 고통이 점점 심해져 더는 참을 수 없었다. 나는 황급히 입을 가리고 화장실로 비틀거리며 갔다.

변기통을 껴안은 채, 나는 피를 토했고, 위산이 목을 타고 내려가며 불에 타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따뜻한 손이 내 어깨에 닿았고, 세바스찬의 걱정 가득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베티, 괜찮아?" 나는 입을 닦으며 급히 변기 물을 내리려 했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작동하지 않았다.

세바스찬은 나를 걱정하는 듯 말했지만, 그의 시선은 거실의 재즐린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가 피를 보지 못한 걸 알고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그가 알게 되는 것이 왜 두려운지 모르겠다.

마음속의 쓴맛을 억누르며 오래전 준비한 이혼 합의서를 꺼내 그에게 서명을 부탁했다. "한 달 후면 너희 아기가 태어날 거야. 이건 당신에게 주는 내 선물이야."

회차 2

세바스찬은 이혼 합의서를 보지도 않고 바로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 그는 나를 꽉 껴안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베티, 당신은 나를 떠나지 않겠다고 했잖아."

그는 급히 사과하며 당황스러운 기색으로 말했다. "재즐린이 여기 사는 걸 막으려는 다른 이유는 없어. 단지 재즐린이 임신 중이고, 당신의 건강이 좋지 않아서 그녀가 당신을 방해할까 봐 걱정했을 뿐이야."

세바스찬의 품에서 벗어나 나는 이혼 합의서를 다시 꺼내 들었다. "가서 서명해, 괜찮아."

병원에서 나오면서 변호사에게 이 합의서를 준비해달라고 요청했다.

첫 몇 페이지는 내가 죽은 후 세바스찬에게 줄 선물에 대한 내용이었고, 마지막 페이지는 이혼 합의서였다.

나는 그를 속여서 이혼 합의서에 서명하게 한 뒤, 핑계를 대고 떠나 멀리서 죽을 계획이었다.

그가 고통받는 것보다 차라리 나를 영원히 원망하게 하는 게 나았다.

세바스찬은 서류를 대략 훑어보았지만 시선은 끊임없이 거실 쪽을 향해 있었다. 사인을 마친 뒤, 그는 미안함과 고마움에 다시 나를 품에 꼭 끌어안으며 말했다. "베티, 고마워. 이 아이는 당신의 아이이기도 해."

그의 죄책감 어린 목소리에 나는 오랫동안 묻어두었던 유치한 질문을 던지고 말았다. "세바스찬, 우리 결혼식 때 당신이 나한테 했던 약속 기억해?"

그는 나를 부드럽게 풀어주고 한 무릎을 꿇었다. 그의 목소리는 예전의 확신은 없었고, 후회로 가득 차 있었다. "베티, 나는 절대 당신을 떠나지 않을 거야, 절대 포기하지 않을게. 나는 당신을 사랑해, 항상 당신 곁에 있을 거야. 영원히 당신만을 위해 헌신할게. 내 마음은 오직 당신에게만 있어."

"아!" 갑작스러운 비명이 거실에서 터져 나왔다.

세바스찬은 번개처럼 빠르게 거실로 달려갔다.

위의 경련과 찌르는 듯한 통증을 견디며 나는 눈가의 눈물을 닦아냈다.

우리는 둘 다 결혼 서약을 깬 것이다.

화장실에서 나와 보니 식탁에는 수십 가지 요리가 차려져 있었다.

국물에서 향긋한 닭고기 냄새가 풍겼다. 세바스찬은 재즐린의 데어서 물집이 생긴 손가락을 열심히 불어주고 있었다. "정말 아프겠다. 내가 마음 아파 죽는 꼴 보고 싶어?"

나는 목이 메어왔다. 경련으로 아픈 배를 잡고 나도 세바스찬에게 아프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때 가느다란 두 손이 내 팔을 잡았다. "언니,다 내가 차린 것이에요. 내 솜씨가 어떤지 한번 맛보세요!"

재즐린은 나를 식탁으로 안내해 앉힌 뒤 반찬을 집어 주며 나를 바라보는 눈빛에는 걱정과 미안함이 가득했다. "언니, 사진보다 훨씬 많이 야위었어요."

세바스찬은 능숙하게 스테이크를 재즐린의 접시에 놓으며 말했다. "베티, 당신은 좀 많이 먹어야 해. 이렇게 마른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파."

그는 재즐린에게만 집중하며 무심코 말했다.

재즐린은 미안한 마음에 자신의 접시에서 스테이크를 내 접시로 옮겼다. "언니, 살이 너무 많이 빠졌어요."

재즐린이 나를 계속 걱정하는 모습을 보며 드디어 세바스찬의 시선이 내게로 향했다. "베티, 왜 이렇게 말랐어? 내가 재즐린을 돌보느라 바쁜 사이, 혼자서 잘 안 먹은 거야?"

는 안타깝고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내 접시에서 스테이크를 가져가 재즐린의 접시에 다시 놓았다. "베티는 어릴 때 위가 상해서, 기름진 걸 먹으면 안 돼."

몸에 다양한 이상 증상이 나타나면서, 나는 5kg이나 급격히 살이 빠졌다.

단순한 체중 감량이 아니라 나는 죽어가고 있었다.

회차 3

위암 말기에는 음식을 한 입 더 먹는 것조차 고통이었다. 더 이상 위의 불편함을 견딜 수 없어, 나는 채소를 조금 먹은 뒤 그릇을 내려놓고 2층으로 올라갔다.

방으로 돌아와 진통제를 먹고 누웠지만, 배의 통증은 더 심해졌다.

침대에 몸을 웅크리고 누워서 침대 옆 서랍을 뒤져 수면제를 두 알 꺼냈다.

고통이 극심해질 때 잠이 유일한 탈출구였다.

침대에서 오래도록 뒤척였지만, 진통제는 거의 효과가 없었고, 배 속의 타는 듯한 통증이 신경을 찌르는 듯했다. 수면제는 오히려 머릿속을 흐릿하게 만들 뿐이었다.

반쯤 정신이 흐릿한 상태에서 아래층에서 재즐린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그녀는 세바스찬을 장난스럽게 꾸짖고 있었다. "세바스찬, 언니한테 너무 냉담하게 굴지 마. 언니가 좀 아파 보여."

세바스찬의 무심한 목소리가 아래에서 들려왔다. "베타는 어릴 때부터 위가 약했어. 괜찮을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마."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수면제가 드디어 효과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내가 거의 잠들 무렵, 옆자리가 살짝 가라앉았다. 아마도 세바스찬이 돌아온 모양이다.

반쯤 잠이 든 상태에서 눈을 뜰 수 없었고, 배 속의 타는 듯한 통증은 가라앉을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의사는 암세포가 빠르게 온몸으로 퍼지고 있다고 말했다.

아마도 이번에 눈을 감으면 다시는 영영 깨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

배의 통증이 더 심해지면서 나는 고통스럽게 눈을 떴다.

집은 집안은 숨 막힐 듯 조용했고, 식탁에는 갓 데운 음식들이 놓여 있었다.

의사가 처방한 약이 떨어져서 억지로 일어나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갔다.

검사 중에 의사는 계속 한숨만 쉬었다. "세바스찬 내쉬 교수님이 최신 위암 관련 특효약을 연구했어요. 위암을 치료할 수는 없지만, 말기 환자의 고통을 크게 줄일 수 있습니다. 당신의 남편이니 더는 숨길 수 없을 겁니다."

주치의의 말을 듣고 세바스찬에게 내가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기로 결심했다.

말기 위암의 고통은 참을 수 없을 정도였다. 복도를 지나가다 커다란 거울에 비친 나 자신을 보았다.

얼굴빛은 창백했고, 볼과 눈 주위가 움푹 들어가 예전의 내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 나는 품위를 지키며 죽고 싶었다.

세바스찬에게 병에 대해 어떻게 말할지 고민하던 중 그의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베티, 병원에 왜 온 거야? 또 위가 아픈 거야?"

위에서 타오르는 통증이 다시 밀려오자, 나는 세바스찬의 팔을 꽉 움켜쥐고 간절히 애원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세바스찬, 나 위암 말기야. 당신이..."

내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세바스찬은 잠시 멈칫하다가 웃음을 터뜨렸다. "베티, 어린애도 아닌데 그런 유치한 거짓말을 해?"

나는 계속 설명하고 싶었지만, 세바스찬은 아이를 달래듯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자, 소란 피우지 마. 재즐린과 아기를 받아들이기로 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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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어가는 동안, 그는 첫사랑과 함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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