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3
주나연이 사라졌다.
꼬박 24시간 동안 전화도 받지 않고, 메시지도 읽지 않은 상태였다. 마치 증발이라도 한 것처럼.
최경호가 회사에서 막 업무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할아버지의 전화 폭격이 시작되었다.
전화를 받자마자, 할아버지의 우렁찬 목소리가 날카롭게 튀어나왔다. "연이 전화가 왜 안 돼? 너도 연락이 안 되고. 너희들, 도대체 무슨 일이 있는 게냐?"
최경호는 고막이 터질 것 같아 본능적으로 휴대폰을 귀에서 멀리 떼었다.
그는 무심한 어조로 짧게 답했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할아버지의 목소리는 더욱 높아졌다. "연이가 네 처인데, 네가 모르면 누가 알아? 이번 주말에 연이를 안 데리고 오면, 너도 집에 발 들일 생각 마라."
'뚝'하는 소리와 함께 할아버지는 호기롭게 전화를 끊어버렸다.
최경호는 미간을 찌푸리고 휴대폰을 책상 위에 던졌다.
비서 성안준이 조용히 들어와 계약서를 그의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미간을 꾸준히 찌푸리고 있는 상사의 얼굴을 보니,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 흔적이 역력했다.
성안준은 살며시 눈치를 보며 입을 열었다. "대표님, 그 헤드라인 기사... 사모님께 해명하셨습니까?"
최경호는 시선도 떼지 않은 채 냉랭하게 되받았다. "내가 그 사람에게 해명할 의무라도 있다는 거야?"
성안준은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두 분은 법적인 부부시잖아요. 서로에게 충실해야 하는 게 맞지 않을까요? 대표님 스캔들 기사가 나면 사모님께서 오해하실 수밖에 없는데, 남자가 여자를 울게 만드는 건 옳지 않죠."
성안준은 싱긋 미소 지으며 덧붙였다. "침대 위에서 울리는 건 빼고요."
최경호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아는 게 많네. 예전에 찍어봤어?"
질문이 다소 뜻밖이었다.
성안준은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네? 뭘... 찍어봤다는 말씀이신지요?"
최경호는 짧게 대꾸했다. "야동 말이야." 말을 마친 그는 다시 주나연의 번호로 전화를 걸었지만, 여전히 연결되지 않았다.
성안준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어졌다. 그는 모태 솔로였기에 그런 걸 찍어봤을 리가 없었다.
그는 슬그머니 다가가 조심스럽게 상황을 살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여쭤보자면요... 지난번 사모님을 모시고 이동 중 일어난 그 추돌 사고 말입니다. 사실 대표님이 지시하신 거라고 사모님께는 말씀하셨습니까?"
최경호는 미간을 더욱 찌푸렸다. "관심사가 참 넓구나. 차라리 최씨 그룹 대표 자리에 네가 앉는 게 어때?"
눈치가 빠른 성안준은 즉시 겸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아니요, 저는 그럴 능력이 없습니다. 대표님의 개인 비서로서 제 자리를 지키는 게 제 분수에 맞는 일입니다."
최경호는 왠지 모를 기분에 사로잡혔다. 주나연과 서로 침범하지 않고 지낼 때는 모든 것이 평온했다.
그녀는 매일 집에서 그의 식사를 챙겨줬고 세탁을 맡았으며 주말이면 그를 따라 본가에 가서 할아버지의 말동무가 되어드리고 집안일을 도왔다.
어떤 문제도, 어떤 마찰도 없었다.
하지만 그날 밤 그녀와 잠자리를 가진 후, 무언가가 미묘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그날 밤, 그녀는 물처럼 그의 허리를 감싸 안고 그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 뜨거운 열정을 마음껏 표출했다.
그 뜨겁고 격렬한 반응에, 오랫동안 억눌려 있던 그의 욕망이 불길처럼 타올랐다.
공백기가 너무 길었던 탓일까, 아니면 여자에 대한 기준이 너무 낮았던 걸까. 그는 어이없을 정도로 쉽게 욕망에 조종당했다.
성안준은 나가기 전, 주머니에서 알레르기 약 한 통을 꺼내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지난번 대표님이 복숭아 알레르기가 있으셨을 때, 이 약 바르니 효과가 좋더라고요. 목에 긁힌 자국이 모르는 사람이 보면 어떤 여자가 키스 마크라도 남긴 줄 알겠어요."
최경호는 그 약을 흘끗 쳐다보았다. 직원들이 지방 특산물로 선물한 복숭아 몇 개를 한 번 만졌을 뿐인데 온몸에 두드러기와 따끔거림이 생겼었다.
연고통 뚜껑을 열자, 코를 찌르는 약 냄새가 퍼지며 머리가 지끈거렸다.
주나연도 향을 조제할 줄 알았다. 그가 출장을 떠날 때마다 그녀는 작은 향 주머니를 그의 가방에 넣어주었고, 호텔에 도착해 화장실에 걸어두면 은은한 향기가 며칠간 지속되곤 했다.
집에도 항상 달콤한 귤 향이나 은은한 계화 향이 배어 있었다.
최경호는 입술을 꽉 다문 채, 연고통을 다시 책상 위로 던져버렸다.
그는 성안준을 올려다보며 빈정대듯 말했다. "사람 찾으라니까 한 달째 소식도 없고, 이런 약 챙기는 건 빠르네. 집안이 대대로 약장수냐?"
성안준은 말문이 막혔다. 지난달 사모님께 사고가 났을 때, 대표님은 사모님의 구조 요청 메시지를 받았지만 긴급한 국제 회의가 잡혀 있었고, 게다가 그때 대표님과 사모님의 관계가… 다소 경색된 상태였기에, 그에게 직접 사모님을 모셔오라고 지시했었다.
그는 휴대폰 위치 추적을 통해 사모님이 타고 있던 차량을 찾아냈고, 그 차량의 뒤를 들이받는 방식으로 강제로 멈추게 했다.
운전 기사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쥐새끼처럼 풀숲으로 도망쳐 버렸다.
성안준은 서둘러 보고했다. "소식 있습니다. 그 놈이 한 달 동안 잠복하다가 이제야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은행 카드로 마사지샵에서 결제한 기록이 떠서 이미 애들 보냈습니다. 조금만 기다리시면 바로 현행범으로 잡아 올 수 있을 겁니다."
곧 있을 회의를 앞두고 최경호는 시간을 더 낭비하지 않았다. 그러나 회의가 절반쯤 진행되었을 때, 낯선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성안준은 대표님 대신 전화를 끊으려다 실수로 스피커폰 버튼을 눌러버렸다.
전화기에서 밝은 여성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안녕하십니까, 최경호 고객님 맞으시죠? 어제 저희 조루 클리닉에 상담 신청을 해주셔서 연락드렸습니다. 전문의 선생님의 무료 촉진 상담이 가능한데, 시간은 언제께 편하신가요?"
회의실 전체가 죽은 듯이 고요해졌다.
주주들은 충격과 호기심 어린 눈으로 최경호를 바라봤다. 젊고 건장해 보이는 대표님이, 그런 쪽에... 문제가 있다고?
성안준은 허둥지둥 전화를 끊고는, 식은땀을 흘리며 조심스럽게 해명했다. "보이스피싱입니다! 이름이 우연히 같았나 봅니다. 오해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최경호는 눈을 가늘게 뜨고 성안준을 차갑게 노려보았다.
하지만 그 번호는 철저히 비공개된 개인 번호였다. 그것을 누군가에게 알릴 수 있는 사람은, 그 겁 없는 여자 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