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2
서이현 POV:
그 말은 얼어붙은 공기 속에 매달렸다. 명령이자 사형 선고였다.
내 부하들은 내가 수년간 길러온 충성과 폭력의 완벽한 집단처럼 한 몸으로 움직였다.
강태준의 몸이 긴장했고, 그의 손은 본능적으로 항상 총을 두는 허리 뒤쪽으로 향했다.
“이현아, 하지 마.”
그가 낮은 으르렁거림으로 경고했다.
침착한 전략가는 사라지고, 우리의 어린 시절에 보았던 궁지에 몰린 짐승이 나타났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경고를 들을 상태가 아니었다.
그에 대한 신뢰는 20년 동안 굳건하고 움직이지 않는 산과 같았다.
단 하루 오후 만에, 그는 그것을 먼지로 만들어 버렸다.
그는 손을 뻗으며 내게 다가오려 했다.
“일단 얘기부터 하자.”
나는 그의 손길이 나를 태울 것처럼 움찔하며 물러섰다.
“감히 내 몸에 손댈 생각 마.”
나는 쉭쉭거렸다.
“그년한테 닿았던 그 손으로.”
그 여자, 가을이 그의 뒤에서 흐느꼈다. 그녀의 크고 갈색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그녀는 겁에 질려 보였다. 십자선에 걸린 새끼 사슴처럼.
연기 한번 잘했다.
“우린 끝났어, 강태준.”
나는 산성 같은 맛이 나는 말을 뱉었다.
“이거, 우리, 이 제국… 다 끝났어. 이혼하고 싶어.”
그는 정말로 충격받은 표정을 지었다.
“이혼? 이현아, 제발 이성적으로 생각해.”
“이성적?”
쓴웃음이 내 입술에서 터져 나왔다.
“이성적인 걸 원해?”
나는 코트 안에 숨겨둔 권총을 꺼냈다. 차가운 금속이 손안에서 익숙한 위안을 주었다.
나는 그를 겨누지 않았다. 그녀를 겨눴다.
“이성적인 건, 내 가족의 기억을 모독한 네년 머리에 총알을 박아주는 거지.”
공기는 긴장감으로 터질 듯했다.
내 부하들도 무기를 뽑아 들었고, 우리의 폐허가 된 성소의 문 앞에서 대치 상황이 벌어졌다.
가을은 작고 질식할 듯한 흐느낌을 터뜨렸다.
“비켜, 강태준.”
내가 명령했다.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근육과 분노의 벽이 되어 그녀를 완전히 가렸다.
“나를 먼저 쓰러뜨려야 할 거야.”
“날 시험하지 마.”
나는 방아쇠를 당겼다.
총성은 겨울의 정적 속에서 귀를 먹먹하게 했다.
총알은 그녀를 맞히지 않았다. 그럴 생각도 없었다.
총알은 그녀의 머리에서 불과 몇 센티미터 떨어진 나무 문틀에 박혔고,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가을은 날카롭고 찢어지는 비명을 질렀다. 그 소리에 이가 갈렸다.
그녀는 강태준에게 쓰러지듯 기댔고, 몸을 주체할 수 없이 떨었다.
그리고 그 순간, 그가 움직였다.
몇 년 만에 본 것 중 가장 빠르게.
그는 두 번의 긴 걸음으로 우리 사이의 공간을 가로질렀고, 그의 손이 내 손목을 꽉 움켜쥐며 내 팔을 아래로 눌렀다.
그의 악력은 엄청나고 무자비했다. 날카롭고 짜릿한 통증이 팔을 타고 올라왔다.
“그만해.”
그가 내 얼굴 바로 앞에서 이를 갈며 말했다.
한때 나를 숭배의 눈빛으로 바라보던 그의 검은 눈은 이제 차갑고 단단한 흑요석 조각 같았다.
손목에 가해지는 압력은 뼈가 으스러지는 듯했다.
나는 마음속으로 그의 등에 있는 흉터를 보았다. 그가 나를 위해 얻은 상처.
지금 내게 이토록 큰 고통을 주는 이 손은, 우리의 옛 삶의 잔해에서 나를 몇 번이고 끌어내 주었던 바로 그 손이었다.
뜨거운 눈물 한 방울이 내 눈에서 흘러나와 차가운 뺨을 타고 내렸다.
나는 팔의 통증 때문이 아니라, 가슴속의 견딜 수 없는 고통 때문에 울고 있었다.
그 눈물을 보자, 그의 무언가가 흔들렸다. 그의 악력이 아주 잠시 느슨해졌다.
그것이 내가 필요했던 유일한 틈이었다.
나는 더 이상 그가 보호해야 할 소녀가 아니었다.
나는 여왕이었다.
나는 그의 추진력을 역이용해 몸을 비틀었고, 무릎으로 그의 배를 세게 찼다.
그는 신음하며 뒤로 비틀거렸고, 그의 손은 내 손목에서 떨어져 나갔다.
내 팔은 쓸모없는 각도로 매달려 있었고 손목은 비명을 질렀지만, 내 시선은 그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그는 숨을 헐떡이며 몸을 바로 세웠지만, 화난 것 같지는 않았다.
그는… 걱정스러워 보였다.
“손목.”
그가 내게 한 걸음 다가오며 말했다.
“어디 봐봐.”
그는 다시 내게 손을 뻗었다. 내 상처를 고쳐주려는 오래되고 뿌리 깊은 습관.
우리가 어렸을 때 그가 내 상처를 닦고 붕대를 감아주던 방식과 같았다. 그의 손길은 너무나 조심스럽고 부드러웠다.
“저리 가.”
나는 뒤로 물러서며 으르렁거렸다.
그는 멈춰 섰다. 그의 손은 우리 사이의 허공에 머물렀다.
“이현아, 너 다쳤어.”
“날 다치게 한 건 너야.”
나는 쏘아붙였다.
“이건,”
나는 욱신거리는 손목을 좋은 손으로 가리켰다.
“아무것도 아니야. 이건 고칠 수 있어. 네가 저 안에서 한 짓은,”
나는 별장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절대 고칠 수 없어.”
내 목소리에 담긴 단호함이 그에게 와닿은 듯했다.
그의 눈에 서린 걱정은 익숙하고 지친 체념으로 바뀌었다.
그는 나를 알았다. 내가 결코 되돌릴 수 없는 선을 그었을 때를 알았다.
나는 그의 너머, 현관에서 두 손에 얼굴을 묻고 흐느끼는 여자를 보았다.
그리고 다시 그를, 내 세상의 전부였던 남자를 보았다.
“끝났어, 강태준.”
나는 속삭였다. 그 말은 내 영혼에서 찢겨 나오는 것 같았다.
나는 그에게, 별장에게, 우리가 함께 쌓아 올린 20년에게 등을 돌렸다.
나는 순전히 의지력만으로 내 차를 향해 걸어갔다.
내 오른팔인 준호가 문을 열어주었다. 그의 얼굴은 굳어 있었다.
“회장님?”
그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집으로 가.”
나는 마지막 단어에서 목소리가 갈라지는 것을 느끼며 말했다.
차가 멀어지면서 나는 백미러를 보았다.
강태준은 여전히 거기에 서서 내가 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나를 막으려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내가 떠나도록 내버려 뒀다.
그리고 그의 팔에는, 울고 있는 여자를 안고 위로하고 있었다.
그는 선택을 끝냈다.
회차 3
서이현 POV:
나는 우리 펜트하우스의 어둠 속에 앉아 있었다. 서울의 도시 불빛이 흩어진 다이아몬드처럼 아래에서 반짝였다.
이혼 서류는 광택 나는 마호가니 테이블 위에 서명되지 않은 채 놓여 있었다.
하루가 지났다. 그리고 이틀. 변호사는 세 번이나 전화했다.
강태준은 나타나지 않았다. 전화도 하지 않았다.
침묵은 살아있는 생물 같았다. 우리가 만든 삶의 모든 구석을 채우는 숨 막히는 존재.
나는 싸움, 협상, 전쟁을 예상했다.
원나잇 스탠드처럼 잠수 이별을 당할 줄은 몰랐다.
사흘째 되던 날, 소포가 도착했다.
택배 기사가 배달한 작고 우아한 상자. 강태준에게서 온 것이 아니었다.
반송 주소는 일반 사서함이었다.
나는 흔들림 없는 손으로 그것을 열었다.
안에는 검은 벨벳 위에 은색 사진 액자가 놓여 있었다.
강태준과 가을의 사진이었다.
그들은 별장에 있었다. 그는 현관 그네에 앉아 있었고, 그녀는 그의 무릎에 웅크리고 머리를 그의 가슴에 기대고 있었다.
그는 웃고 있었다. 대중에게 보이는 계산된 미소가 아니라, 눈가에까지 번지는 진심 어린 부드러운 미소.
그가 오직 나에게만 보여주던 그런 미소였다.
그의 손은 그녀의 배 위에 보호적으로 얹혀 있었다.
사진 아래에는 섬세하고 동그란 필체로 쓴 쪽지가 있었다.
‘오빠가 내가 당신을 닮았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당신은 늙었고, 더는 그가 원하는 걸 줄 수 없잖아요. 나는 할 수 있어요. 미래는 우리 거예요.’
쪽지 안에는 초음파 사진이 끼워져 있었다.
막 시작된 생명의 작고 흐릿한 이미지.
나는 무너지지 않았다. 비명을 지르지도 않았다.
나는 그저 그 이미지를 응시했다. 차갑고 체계적인 분노가 내 안에서 쌓여갔다.
그는 나를 대체한 것만이 아니었다. 그는 우리 아들을 대체하고 있었다.
“준호 씨.”
나는 인터콤에 대고 말했다.
“그 여자 찾아.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여자 찾아내.”
그녀가 일했던 시내 커피숍의 고용 기록에 적힌 이름은 김가을이었다.
그 아이러니는 너무나 지독해서 역겨웠다.
그는 내 이름과 비슷한 이름을 가진 여자를 찾았다.
싸구려 모조품.
내 계획은 간단했다.
강태준이 서류에 서명하지 않겠다고? 좋아.
내가 이유를 만들어 주지.
나는 그의 소중한 새 미래를 빼앗고, 그가 지켜보게 만들 것이다.
우리는 이틀 후, 산부인과 진료를 마치고 나오는 그녀를 찾아냈다.
내 부하들은 프로였다. 그녀는 비명 한번 지르지 못하고 검은 밴에 실렸다.
만남의 장소는 낡은 조선소였다. 도시 변두리의 녹과 폐허의 장소.
우리가 많은 거래를 성사시키고 많은 목숨을 끝냈던 곳.
하늘은 납빛이었고, 내 영혼의 분위기와 어울리는 무겁고 억압적인 회색이었다.
호수에서 불어오는 매서운 바람은 진눈깨비가 내릴 것을 예고했다.
내가 도착했을 때, 가을은 이미 거기에 있었다.
그녀는 크레인에 하네스로 묶여, 출렁이는 얼음장 같은 운하 물 위 6미터 상공에 매달려 있었다.
그녀는 겁에 질려 얼굴이 창백하고 눈물로 얼룩져 있었지만, 나를 보자 그녀의 두려움은 한심한 허세로 변했다.
“이것 때문에 오빠가 널 죽일 거야!”
그녀는 바람에 맞서 가느다란 목소리로 비명을 질렀다.
“태준 오빠가 널 찾아내서 죽여버릴 거라고!”
나는 그녀를 무시하고 부두 끝으로 걸어갔다.
담배에 불을 붙이자 바람에 불꽃이 흔들렸다.
“강태준은 여자는 안 죽여.”
나는 연기를 내뿜으며 차분하게 말했다.
“그게 그의 몇 안 되는 규칙 중 하나거든.”
“난 그냥 여자가 아니야!”
그녀는 하네스 안에서 몸을 비틀며 소리쳤다.
“난 그의 아이를 가졌어! 이제 내가 그의 가족이야! 넌 그가 버리는 늙은 암캐일 뿐이라고!”
나는 거의 웃을 뻔했다.
그녀는 너무 어리고 순진했다.
그녀는 아기가 우리 세계에서 비장의 카드라고 생각했다.
제국의 운명이 걸렸을 때 그것이 얼마나 하찮은지 전혀 몰랐다.
헤드라이트가 어둠을 갈랐다.
강태준의 세단이 부두 입구에서 끼익 소리를 내며 멈췄다.
그는 분노로 가득 찬 얼굴로 차에서 내렸다.
그는 크레인에 매달린 가을을 보고, 이내 나를 발견했다.
“이현아, 제발!”
그가 내게 다가오며 포효했다.
“저 애 내려줘!”
나는 담배를 천천히 한 모금 빨았다.
“서류에 서명해, 강태준.”
나는 준호가 근처 상자 위에 놓아둔, 돌로 눌러놓은 이혼 서류를 턱으로 가리켰다.
“이건 미친 짓이야!”
그가 내게서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멈춰 서서 소리쳤다.
“그래?”
나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날 이렇게 가르친 건 너잖아. 레버리지. 상대가 가장 사랑하는 걸 찾아내서, 그걸 쥐고 흔드는 것.”
가을은 이제 히스테릭하게 울고 있었다.
“태준 오빠! 살려줘! 아기! 우리 아기!”
그녀의 말은 물리적인 타격이었다.
아기. 우리 것이었어야 할 아이.
그가 내게서 훔쳐 그녀에게 준 미래.
“저 애가 나보고 늙은 암캐래, 태준아.”
나는 속삭임으로 목소리를 낮췄다.
“네가 날 버린다고 했어. 이게 그런 거야? 20년 세월이, 새 모델 때문에 지워지는 거냐고?”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턱을 굳게 다물고 주먹을 쥔 채 나를 쳐다볼 뿐이었다.
그의 침묵이 모든 것을 확인시켜 주었다.
진눈깨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작고 날카로운 얼음 알갱이가 내 얼굴을 찔렀다.
“서류에 서명해.”
나는 다시 말했다. 내 목소리는 감정이 배제된 채 평탄했다.
“아니면 저 애는 물에 빠질 거야. 네 선택이야.”
그는 나에게서 물 위에서 매달려 우는 여자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그의 새로운 삶이 실 한 가닥에 매달려 있었다.
내가 20년 동안 사랑했던 남자는 나를 괴물처럼 쳐다봤다.
어쩌면 내가 괴물일지도 모른다.
결국, 나를 만든 건 그였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