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2

VIP 병실, 테이블 위에서 휴대폰이 쉴 새 없이 진동했다. 하지만 한 쌍의 남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여전히 격렬하게 키스를 나누고 있었다.

"현우 오빠, 언니가 또 감시하나 봐… 나랑 언니 중에, 오빤 누가 더 좋아?"

여자가 교태를 부리며 물었다. 그녀는 바로 김지아의 이복동생, 김은서였다.

장현우는 바로 휴대폰 전원을 꺼버리고는, 참을 수 없다는 듯 옷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당연히 너지, 자기야. 김지아 그 재미없는 년이 너와 비교나 되겠어? 걔가 나중에 김씨 그룹 지분을 나눠 받을 수 있다는 것만 아니었으면, 함께 하지도 않았을 거야."

김은서의 눈이 번뜩였다. "그 지분은 지금 언니의 미친 엄마 손에 있어. 김지아가 결혼해야만 준다나 봐. 하지만 김지아는 평생 그 지분을 손에 넣지 못할 거야."

"왜?" 장현우가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만약 김지아가 결혼하기 전에 계수연이 죽으면, 지분은 아버지 손에 돌아가서 재분배될 거거든."

김은서가 악독하게 웃었다. "계수연, 백혈병이잖아. 그 여자랑 골수 이식 검사가 일치하는 사람이 누군지 알아?"

문을 열려던 김지아의 손이 순간 멈칫했고 불길한 예감이 머릿속을 스쳤다.

"맞아, 바로 나야!"

김은서가 의기양양하게 웃었다. "김지아 그 멍청이는 꿈에도 생각 못 했을걸? 제 엄마랑 골수가 일치하는 그 착한 기증자가 바로 나라는 걸 말이야. 내가 기증을 거부하면, 계수연은 죽을 날만 기다리는 수밖에 없어. 계수연이 죽으면, 난 아빠한테 그 지분을 전부 달라고 할 거야!"

"자기, 완전 천재인데?"

장현우의 눈이 반짝 빛났다. "그럼 존경하는 공주님, 미래에 제가 당신의 왕자가 될 영광을 누릴 수 있을까요?"

김은서가 아양을 떨며 그의 가슴을 툭 쳤다. "난 오빠 건데, 뭘 새삼스럽게 묻고 그래..."

두 사람은 애틋한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보더니, 이내 서로를 끌어안고 게걸스럽게 키스했다.

문밖, 김지아는 핏발 선 눈으로 둘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고 급기야 목구멍에서 비릿한 피 맛이 올라왔다.

전부 다 가짜였다!

장현우가 입버릇처럼 말하던 사랑한다는 말도 가짜였고 골수 기증자도 가짜였다! 모든 게 계략이고 함정이었다!

그들이 꿈꾸는 아름다운 미래는, 김지아 어머니의 처참한 죽음을 전제로 했다.

'절대 용서할 수 없어!'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할거야!'

김지아는 분노에 찬 눈으로 그들을 한 번 쏘아보고는 조용히 자리를 떴다.

장기 이식 병동은 위층에 있었다.

계수연은 무균실에 누워 잠들어 있었고, 손등에는 링거가 꽂혀 있었다. 이식 전 골수 제거 수술을 받은 지금, 그녀의 몸은 극도로 쇠약해져, 링거에 의지해 겨우 기본적인 생명 징후를 유지하고 있었다.

김지아는 투명한 창문 너머로 어머니를 바라보며, 의사가 보낸 문자 메시지를 떠올렸다.

[골수를 이식 받지 못하면, 계수연은 일주일을 넘기기 힘들 겁니다.]

김지아는 망설일 틈도 없이 주소록에 있는 사람들에게 연락을 돌렸다.

김은서는 절대 기증하지 않을 것이다. 마지막 희망이라고 생각했던 장현우는… 사람의 탈을 쓴 짐승이었다.

현재로선 다른 사람의 도움을 찾아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넓은 세상에서 계수연과 골수가 일치하는 사람을 갑자기 찾는다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느덧 동이 터 왔다.

연락처에 있는 사람에게 모조리 연락을 돌렸지만 도움을 받을 곳은 없었다.

"쿵, 쿵."

둔탁한 소리가 들려왔다. 김지아가 고개를 들자, 어느새 침대에서 내려온 계수연이 두꺼운 창문을 두드리며 그녀를 향해 헤실헤실 웃고 있었다.

지난 세월, 사람들은 모두 계수연을 미치광이라며 손가락질했지만, 김지아의 마음속, 그녀는 언제나 다정하고 인자한 엄마였다.

'엄마, 그런 눈으로 날 보지마...'

'나도 이제 방법을 찾지 못할 것 같아...'

김지아는 비틀거리며 뒷걸음질 쳐 어머니의 시선을 피했다.

뒷걸음질 치던 그녀가 구석에 몰릴 때까지, 계수연은 여전히 힘겹게 목을 빼 들고 그녀를 바라보며 천진난만하게 웃었다. 자신이 곧 무엇을 마주하게 될지 전혀 모르는 것 같았다.

김지아는 더는 참을 수 없었다. 벽에 기댄 채 무력하게 주저앉아 얼굴을 감싸 쥐고 소리 내어 울었다.

그때, 어지러운 발소리가 들려왔다.

김지아는 눈물 어린 눈으로 고개를 들었다. 검은 옷을 입은 남자 몇몇이 그녀 앞에 서 있었다. "아가씨, 저희 회장님께서 모십니다. 저희와 함께 가주시죠!"

병원 아래, 심플하면서도 호화로운 컬리넌 한 대가 서 있었다.

양복을 갖춰 입은 전지훈은 뒷좌석에 앉아 있었다. 그의 냉철한 눈매에서는 범접할 수 없는 위압감이 느껴졌고, 일정한 리듬으로 무릎을 툭툭 두드리는 그의 손가락에서 그의 초조함이 느껴졌다.

그때, 경호원이 차창을 두드리며 공손히 허리를 숙였다. "회장님, 모셔왔습니다. "

회차 3

김지아는 영문도 모른 채 차에 태워졌다. 그녀는 도무지 무슨 상황인지 몰랐다.

곁에서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김지아 씨?"

김지아의 몸이 흠칫 떨렸다.

낯익은 목소리였다.

그녀가 고개를 들자 눈앞의 남자가 보였다. 그는 이목구비가 뚜렷했고, 짙은 눈썹 아래 매처럼 날카로운 눈동자는 감히 마주 볼 엄두도 나지 않았다.

신이 내린 듯한 조각 같은 외모에 기품마저 출중했다.

이런 사람은 한 번 보면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김지아는 그를 본 적이 없다고 확신했다. 방금 느꼈던 익숙함은 아무래도 착각인 것 같았다.

그녀는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시선을 내리깔며 대답했다. "네, 근데 누구시죠?"

남자는 탐색하는 듯한 눈빛으로 그녀를 훑어보았다. "제 이름은 전지훈입니다. 과거 우리 집안은 당신의 아버지와 혼약을 약속한 적 있죠. 이제 제가 그 약속을 이행하려고요."

'뭐라고?'

김지아는 말을 더듬었다. "지, 지금 그 말씀은… 저를… 아내로 맞이하시겠다는…?"

"그렇게 이해해도 좋습니다."

김지아는 그대로 멍해졌다. '세상에, 지금 농담하는 건가?'

전지훈은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를 뜯어 보았다.

그의 눈빛은 여전히 날카로웠고 마치 심문하는 것 같았다. 그의 앞에서는 어떤 생각도 숨길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이 남자! 위험 해.' 김지아는 본능 적으로 느꼈다.

그녀는 안절부절못하며 입을 열었다. "저기…"

"안 씻은 지 얼마나 됐죠?"

남자의 갑작스러운 말에 김지아는 하려던 말을 전부 목구멍으로 삼켰다.

그녀의 아름다운 눈동자가 살짝 커졌고 믿을 수 없다는 듯 그를 쳐다보며 물었다. "네?"

"몸에서 냄새가 나는군요."

전지훈은 그 말이 여자에게 얼마나 큰 상처가 될지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듯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김지아의 얼굴이 눈에 띄게 붉어졌다.

수치심과 창피함 등 온갖 감정이 속에서 휘몰아쳤다.

그녀는 어쩔 줄 몰라 하며 옷자락을 움켜쥐었다. 비에 젖은데다 병원 벽의 먼지까지 가득 묻은 상태였고 볼품 없이 구겨진 옷은 누가 봐도 지저분해 보였다.

홍조는 목까지 번졌다. 그녀는 민망함에 신발 끝만 바라보았고 몸이 뻣뻣하게 굳은 채 꼼짝도 하지 못했다.

전지훈은 시선을 거두고 기사에게 차갑게 명령했다. "여수 정원으로 가."

김지아가 거절할 틈도 없이 차는 빠르게 달렸다.

여수 정원은 별장 구역에 위치해 있었고, 2층짜리 저택이 햇살 아래 위풍당당하게 서 있었다.

차에서 내리자 전지훈은 가정부에게 김지아를 씻기라고 지시했다.

방금 전 그에게서 핀잔을 들은 탓일까. 김지아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가정부가 미간을 살짝 찌푸리는 것 같았다.

그녀는 멋쩍게 입을 열었다. "저 혼자 씻을게요."

가정부는 손에 들고 있던 깨끗한 옷을 그녀에게 건네주고는 몇 걸음 물러서며 말했다. "2층 모든 방에 욕실이 딸려 있습니다. 동쪽에서 세 번째 방을 제외하고는 아무 방이나 편하게 쓰시면 됩니다."

김지아는 무시당하는 이 상황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알겠다고 대충 고개를 끄덕이고는 옷을 품에 안고 서둘러 2층으로 올라갔다.

2층에는 방이 많았다. 그녀는 계단에서 가장 가까운 방의 문을 무심코 열고는 그대로 욕실로 향했다.

옷을 벗자 온몸을 뒤덮은 붉은 자국들이 드러났다. 새하얀 피부 위에 어지럽게 널린 키스 마크와 잇자국이 유난히 선명하게 보였다.

김지아는 몸에 흔적이 남았을 거라 짐작은 했지만, 이토록 심할 줄은 몰랐다…

갑자기 코끝이 찡해졌다. 그녀는 차마 거울 속 자신을 더는 보지 못하고 샤워기를 틀었다. 뜨거운 물줄기가 눈물과 함께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소중한 첫 경험, 그녀는 가장 사랑하는 남자에게 주고 싶었다. 그토록 고대하던 첫경험을 이렇게 허무하게 잃어버리고 말다니...

심지어 상대가 어떻게 생겼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김지아는 미친 듯이 몸을 문질렀다. 걷잡을 수 없는 슬픔에 빠져 있던 그녀는 쏴아아 쏟아지는 물소리 속에서 희미한 문소리가 들려 왔으나 그녀는 듣지 못했다.

그때, 남자의 가벼운 코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김 아가씨, 전씨 가문의 안주인이 되고 싶어 안달이 난 것 같네요."

지금 전체 스토리 읽기
작가를 후원하고 Moboreader의 다음 이야기를 응원해 주세요!
모든 회차 잠금 해제

이 계약 결혼의 유효기간은 평생이야

2화
회차
사용자 설정
다음 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