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2

나는 그 바에서 밤을 새웠다.

차가운 알코올 기운도 배신감의 불길을 잠재우지 못했다.

강태준의 말이 머릿속에서 울렸다.

‘약속을 지키기 위한 것.’

그는 나를 거래, 지불해야 할 청구서로 여겼다.

나는 그의 동정의 대상이 되지 않을 것이다.

내 이름과 재산으로, 나는 원하는 어떤 남자든 가질 수 있었다.

나를 경멸하는 사람에게 애정을 구걸할 필요가 없었다.

나는 다시 아버지 앞에 섰다. 결심은 더욱 굳어졌다.

“진심이에요, 아빠. 저 현성 씨랑 결혼할 거예요. 그 사람을 믿어요. 저에게 솔직했던 유일한 사람이니까요.”

“하지만 저 아이들은…”

“그 ‘아이들’은 아빠가 미래를 쥐고 있으니 충성하는 거예요.”

내 목소리는 날카로웠다.

“저에 대한 존중은 전부 연기일 뿐이에요.”

나는 눈에 스치는 고통을 감췄다.

내가 낭비한 세월, 쏟아부은 사랑, 모든 것이 농담처럼 느껴졌다.

나는 어깨를 폈다.

“몇 가지 요청이 있어요.”

“뭐든지 말하렴, 얘야.”

“그 네 명 전부, 법인 계좌와 개인 신용 한도를 동결시켜 주세요. 그리고 인턴 유나는 채용 기준 미달로 해고해 주세요. 그녀에 대한 모든 재단 지원도 즉시 중단하고요.”

아버지는 충격을 받은 듯했지만,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원한다면, 그렇게 하마. 네 판단을 믿는다.”

가슴을 짓누르던 무게가 사라졌다.

나는 고개를 든 채 서재를 나섰다.

나는 서린 그룹 본사 중앙의 거대한 대리석 계단에서 유나를 마주쳤다.

섬세한 흰색 드레스를 입은 그녀는 순수함 그 자체였다.

그녀는 달려와 내 팔에 팔짱을 끼려 했다.

“엘레나 상무님! 마침 찾고 있었어요! 오늘 밤 자선 파티가 있다면서요. 저도 데려가 주시면 안 될까요? 네?”

나는 그녀의 얼굴, 그 달콤한 미소를 보며 속이 메스꺼워졌다.

이것이 내 사랑을 훔치고 내 고통을 비웃은 소녀의 얼굴이었다.

나는 역겹다는 표정으로 그녀의 손아귀에서 팔을 뺐다.

그녀의 눈이 놀라움으로 커졌다.

그러더니, 순전히 연극적인 천재성으로, 그녀는 작은 비명을 지르며 계단 마지막 몇 칸을 극적으로 굴러떨어졌다.

“유나야!”

계단 아래에서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강태준이었다.

권시혁과 이선우가 바로 뒤에 있었다.

나는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들 모두가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권시혁이 분노로 얼굴이 붉어진 채 나를 손가락질했다.

“서엘레나, 이 악독한 년! 어떻게 유나를 밀 수 있어? 질투심에 미쳤구나!”

한편, 유나는 이미 일어나 눈물을 글썽이며 나를 변호하기 위해 달려왔다.

“아니에요, 아니에요! 엘레나 상무님이 그런 거 아니에요! 제가 그냥 미끄러졌어요. 상무님은 절대로 저를 해치실 분이 아니에요.”

그녀의 말은 나를 더 유죄처럼 보이게 만들 뿐이었다.

그녀의 눈가는 붉었고, 입술은 떨리고 있었다.

완벽한 피해자였다.

남자들은 모두 순수한 혐오감으로 나를 쏘아보았다.

강태준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차갑고 경멸적인 시선으로 나를 한번 쳐다본 뒤, 마치 유리로 만들어진 것처럼 유나를 품에 안고 자리를 떴다.

나는 계단 위에 홀로 남겨졌다.

수많은 손가락질과 속삭임의 표적이 된 채.

그날 저녁, 회사 창립 기념 파티에서 나는 맞춤 제작 드레스를 입고 완벽한 평정을 가장한 채 나타났다.

하지만 당연히 그녀도 그곳에 있었다.

해고되었어야 할 유나가 강태준의 개인 ‘비서’ 자격으로 그의 곁에 서 있었다.

그녀는 부드럽고 달콤한 목소리로 내게 다가왔다.

“엘레나 상무님, 오늘 아침 일은 정말 죄송해요. 그리고 저랑 태준 씨 일은 걱정하지 마세요. 제 분수를 알아요. 상무님의 행복을 절대 방해하지 않을 거예요.”

강태준은 그녀 곁을 맴돌며, 마치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인 양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녀가 춥다고 떨자 숄을 둘러주었고, 직접 샴페인을 가져다주었다.

그녀가 하이힐 때문에 발이 아프다고 불평하자, 그는 수백 명의 하객들 앞에서, 반짝이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그녀의 발목을 부드럽게 살폈다.

그는 그녀를 위해 무릎을 꿇었다.

나는 얼어붙었다.

내 열세 번째 생일이 떠올랐다.

파티의 중심에는 그랜드 피아노가 있었고, 나는 강태준의 연주를 듣고 싶었다.

그는 이미 천재였고, 그의 음악은 그 자신처럼 눈부시고 강렬했다.

아버지는 그에게 남자는 오직 아내를 위해서만 무릎을 꿇는 것이라고 가르쳤다.

하지만 그날, 아버지는 마지못해 하는 열여섯 살의 강태준을 보며 말했다.

“엘레나를 위해 연주해라. 저 아이가 너의 미래다, 태준아. 너의 모든 것이야.”

강태준은 조용한 굴욕감으로 가득 찬 얼굴로 연주했다.

미래의 신부를 위한 공연, 미래의 제국을 위한 거래.

회차 3

아버지의 말은 선언이자, 강태준의 운명을 결정짓고 나의 미래를 약속하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그에게 내가 그의 세상이 되어야 하며, 무엇보다 존중해야 할 여자라고 말하고 있었다.

피아노 의자에 나란히 앉았을 때, 심장이 세차게 뛰던 그 느낌을 기억한다.

내가 그를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을 처음 깨달은 순간이었다.

나는 너무 어렸고, 너무 깊이 빠져 있어서 그의 눈에 타오르던 수치심을 보지 못했다.

나는 다시는 사람들 앞에서 그에게 연주해달라고 부탁하지 않았다.

그의 자존심을 너무나 존중했기에.

이제, 나는 그가 다른 여자를 위해, 유나를 위해 기꺼이, 즐겁게 무릎 꿇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는 내 눈이 시릴 정도로 다정한 눈빛으로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그 광경은 날카롭고 견딜 수 없는 물리적인 고통이었다.

나는 억지로 시선을 돌렸다.

바로 그때, 차현성 대표가 내 곁으로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저와 춤추시겠습니까?”

그는 방 안의 다른 모든 사람을 무시한 채 물었다.

나는 그의 손을 잡고 댄스 플로어로 나갔다.

음악에, 왈츠의 회전에 몸을 맡기며, 나를 짓누르는 숨 막히는 현실에서 벗어나려 애썼다.

노래의 마지막 음이 사라질 때, 금속이 뒤틀리는 역겨운 소리가 홀 전체에 울려 퍼졌다.

고개를 들었다.

내 좌석 바로 위에 있던 거대한 크리스털 샹들리에가 흔들리더니, 주 지지 케이블이 실처럼 끊어지고 있었다.

그것은 나를 향해 추락했다.

군중이 비명을 질렀다. 시간이 느려지는 것 같았다.

나는 눈이 커진 채 마침내 반응하는 강태준을 보았지만, 그는 너무 멀리 있었다.

파티에 ‘압도당한’ 유나를 위로하는 데 너무 집중한 나머지, 그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있었다.

번개처럼 움직인 것은 차현성 대표였다.

그는 나를 덮쳐 밀쳐냈고, 바로 그 순간 샹들리에가 내가 서 있던 자리에 떨어져 크리스털과 강철 파편을 흩뿌리며 폭발했다.

크리스털 조각이 내 종아리를 베었다.

고통의 안갯속에서 나는 강태준을 찾았다.

그는 이제 공황 상태의 얼굴로 나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그는 나의 보호자, 아버지가 내 안전을 맡긴 사람이었다.

그는 실패했다.

그는 그녀에게 정신이 팔려 있었다.

다음 순간, 나는 다리에 수십 바늘을 꿰맨 채 병원 침대에 누워 있었다.

강태준은 죄책감에 시달리는 듯, 내 간병인을 자처했다.

그는 완벽한 간호사였다. 세심하고 부드러웠다.

식사를 가져다주고, 책을 읽어주었으며, 내가 고통스럽지 않도록 신경 썼다.

며칠 동안, 내 안의 어리석은 부분이 한 줄기 희망을 키우도록 내버려 두었다.

어쩌면 그가 신경 쓰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 사고가 그에게 무언가를 깨닫게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유나가 보온병에 담긴 수프를 들고 찾아올 때마다 그의 눈이 빛나는 방식, 내가 보지 않는다고 생각할 때 그들이 나누는 비밀스러운 미소를 볼 때마다, 그 희망은 시들어 죽어갔다.

어느 날 밤, 잠을 이룰 수 없어 나는 조용하고 소독약 냄새가 나는 개인 병동 복도를 절뚝거리며 걸었다.

비상구를 지날 때, 목소리가 들렸다.

하진우와 강태준이었다.

“이번엔 너무 심했어, 태준아.”

하진우의 목소리는 낮은 독설이었다.

“그녀가 죽을 수도 있었어. 저 샹들리에 무게가 1톤이야.”

내 피가 차갑게 식었다.

심장이 귀에서 쿵쾅거리는 것을 느끼며 벽에 몸을 기댔다.

강태준의 대답은 소름 끼치도록 차분했다.

“케이블이 낡은 건 알고 있었어. 몇 주 전에 시설팀에 수리 요청을 해뒀지. 계획은 케이블이 미끄러져서 공황 상태를 유발하는 거였어. 내가 달려가서 그녀를 구하고, 약간의 공포심으로 그녀를 더 의존적으로 만들려는 거였지. 실제로 떨어질 줄은 계산하지 못했어.”

그는 나의 추락을 계산했다.

사고가 아니었다. 계획이었다.

“그래서 이게 네 속죄냐?”

하진우가 물었다.

“헌신적인 간병인 노릇 하는 거?”

“끝까지 해낼 거야.”

강태준이 말했다.

“그러면 이 모든 게 끝날 거야. 그녀는 괜찮아질 거고, 우린 앞으로 나아갈 수 있어.”

메스꺼움이 밀려왔다.

가슴에서부터 온몸으로 차가운 기운이 퍼져나갔다.

병원 에어컨과는 아무 상관없는 한기였다.

그가 나에게 이런 짓을 했다.

고의로.

나를 ‘겁주기’ 위해.

나를 ‘관리하기’ 위해.

나는 피 맛이 날 정도로 입술을 세게 깨물었지만, 고통을 느끼지 못했다.

심장의 고통이 너무나 커서 다른 모든 것을 압도했다.

이것은 단순한 배신이 아니었다.

이것은 괴물 같은 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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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네 명의 가짜 연인들의 집을 불태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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