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1
의붓동생 장예솔이 나를 '언니'라고 부른 지 10년째 되는 날, 그 애는 내 남편 한은태와 함께 우리 집 현관문을 열고 들어왔다.
나는 내가 3개월 시한부라는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특히 그에게는.
그를 위해 10년간 모든 것을 바친 대가는 남편과 의붓동생의 배신이었다. 두 사람은 SNS에 침대에서 찍은 사진과 함께 '우리 아기가 생겼다'는 글을 올리며 나를 조롱했다.
심장이 찢어지는 고통 속에서 나는 더 이상 착한 아내로 살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그들이 뻔뻔하게 내 집으로 들이닥쳤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가족인 것처럼.
나는 그들을 향해 차갑게 웃으며 이혼 서류를 던졌다.
"나가. 이 집과 회사의 진짜 주인은 나야. 우린 혼인신고조차 하지 않았거든."
제1화
장예솔이 나를 '언니'라고 부른 지 10년째 되는 날이었다. 그 애가 한은태와 함께 우리 집 현관문을 열고 들어왔다.
나는 내가 죽어간다는 사실을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에게 말하지 않았다.
한은태가 오늘 집에 일찍 온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 내 심장이 다시 뛰는 것을 느꼈다. 쿵, 쿵, 쿵. 마치 10년 전 처음 그를 봤을 때처럼 말이다. 보육원 출신인 나를 거둬준 한 씨 가문의 회장이자 그의 조부 덕분에 나는 지금 이 자리에 있었다. 그에게 보답하기 위해 나는 지난 10년간 그의 아들, 한은태의 사업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쳤다.
나는 식탁 위로 따뜻한 음식을 펼쳐 놓았다. 그의 퇴근 시간에 맞춰 정성껏 준비한 음식들이었다. 평소 그가 좋아하던 갈비찜과 내가 직접 담근 김치를 꺼냈다. 와인 잔 두 개를 나란히 놓으며, 나는 오늘만큼은 그가 일찍 와주기를 바랐다. 오랜만에 함께 식사를 하며 평범한 부부처럼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하지만 기다림은 늘 그랬듯 길고 공허했다.
밤 9시가 넘도록 현관문은 열리지 않았다. 나는 식탁 위에 놓인 음식들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스마트폰을 들어 그의 번호를 눌렀지만, 망설였다. 그가 바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의 사업은 늘 내게 최우선이었다.
결국 전화를 걸지 못했다. 대신 그의 비서에게 연락을 했다.
"한 대표님, 아직 회사에 계신가요?"
비서는 잠시 망설이는 듯하더니,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사모님. 대표님은 오늘 일정이 일찍 끝나셔서 퇴근하셨습니다."
나는 심장이 쿵 하고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퇴근했다고? 그럼 왜 집에 오지 않은 걸까.
"어디에 가셨는지 아시나요?" 내가 애써 침착하게 물었다.
"그건… 개인적인 일정이라서 제가 알지 못합니다."
비서의 목소리는 어딘가 모르게 불안해 보였다. 나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이미 답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차가운 공기가 집 안을 맴도는 것 같았다.
식탁 위에 놓인 따뜻한 음식은 이제 미지근해졌다. 내 마음도 그랬다. 지난 10년간 그를 위해 바쳤던 내 모든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장예솔의 SNS를 열었다. 그 애는 늘 나와 한은태의 일거수일투족을 염탐하듯 지켜보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몇 분 전에 올라온 사진이 보였다. 고급 레스토랑의 내부가 찍힌 사진이었다. 그리고 그 사진 속에는… 한은태와 장예솔이 다정하게 마주 앉아 있었다.
장예솔의 얼굴에는 경멸스러운 미소가 걸려 있었다. 마치 나를 조롱하듯, 한은태의 손을 잡고 있었다. 사진 아래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었다. '오랜만에 오빠랑 행복한 저녁 데이트. 역시 오빠가 해주는 요리는 최고야! 우리 앞으로도 영원히 함께하자.'
한은태는 장예솔에게 직접 요리를 해준다고? 나와 결혼한 지 3년이 되도록, 그는 내게 단 한 번도 직접 요리를 해준 적이 없었다. 늘 나만 그를 위해 음식을 준비하고, 그를 기다렸다.
내 손이 떨렸다. 사진 속 한은태의 눈빛은 장예솔을 향해 있었다. 그 눈빛은 내가 10년 동안 그에게서 갈구했던 따뜻한 시선이었다.
나는 헛웃음이 나왔다. 장예솔은 늘 이런 식이었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부러워하고, 빼앗으려 했다. 언니라고 부르면서도, 늘 내 뒤에서 칼을 꽂으려 했다.
나는 기억했다. 몇 달 전, 한은태와 나의 결혼식이 있기 전이었다. 장예솔은 해외 유학에서 돌아오자마자 나를 찾아왔다.
"언니, 결혼 축하해. 하지만… 오빠는 원래 내 남자였잖아? 언니가 뺏어간 거 아니야?"
그 애는 뻔뻔하게도 내 앞에서 그런 말을 했다. 그때 나는 그저 장예솔이 질투심에 하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저 어리고 철없는 동생의 투정이라고 여겼다.
장예솔은 나를 언니라고 불렀지만, 우리 사이에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다. 내가 보육원에서 한 씨 가문의 후원을 받게 된 후, 내 아버지가 재혼하며 데려온 딸이었다. 어려서부터 장예솔은 늘 나를 질투했다. 내가 받은 모든 사랑과 관심을 빼앗으려 했다.
오늘처럼 한은태가 외박하는 날이면, 장예솔은 꼭 내게 전화를 걸었다.
"언니, 오빠가 또 나랑 같이 있다고 하네. 언니는 괜찮아? 혼자 있어도?"
그 애는 낄낄거리며 나를 조롱했다. 나는 그저 한숨을 쉬었다.
장예솔은 유학 시절, 외국인 남자와 결혼해 자식까지 있었다. 하지만 결혼 생활이 순탄치 않았고, 결국 이혼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돌아오자마자 한은태를 유혹하기 시작했다. 한은태는 그런 장예솔에게 쉽게 넘어갔다. 그는 늘 우유부단하고 이기적인 사람이었다.
나는 이제야 깨달았다. 한은태의 마음속에는 늘 장예솔이 있었다는 것을.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그를 위해 모든 것을 바쳐도, 그의 마음은 단 한 번도 내 것이 아니었다.
신혼 첫날밤, 그는 만취한 채 내 이름을 부르며 내 옆에 누웠다. 나는 그저 그를 사랑했기에, 그 순간마저도 행복하다고 믿으려 했다. 그의 숨결에서 다른 여자의 향기가 나는 것을 알면서도, 그의 입에서 다른 여자의 이름이 나오는 것을 들으면서도, 나는 그저 그를 안았다. 평생을 '장청하'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 살 수 있다면, 그렇게라도 그와 함께하고 싶었다.
나는 차가운 식은 갈비찜을 한 조각 집어 입에 넣었다. 씹을수록 비릿한 맛이 났다. 억지로 삼켰다. 차가운 음식이 목구멍을 넘어갈 때마다 내 속은 더 차가워지는 것 같았다.
"사모님, 건강이 너무 안 좋으시니 당분간 휴식을 취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며칠 전 주치의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그는 내게 불치병 진단을 내렸다. 스트레스와 과로로 인한 희귀병이었다. 길어야 3개월이라고 했다. 나는 그 사실을 한은태에게 말할 수 없었다. 아니, 말해주고 싶지 않았다.
그동안 나는 한은태의 성공을 위해 내 몸을 돌보지 않았다.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고, 끼니도 거르기 일쑤였다. 그의 회사를 위해 밤낮없이 일했다. IT 개발자로서 핵심 기술을 개발했고, 회사의 성공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부질없게 느껴졌다.
나는 더 이상 그를 위해 나를 희생하고 싶지 않았다. 그를 위해 죽어가는 것도 싫었다. 남은 3개월, 나를 위해 살고 싶었다.
나는 접시를 치우기 시작했다. 주방이 깨끗해지자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침실로 돌아와 침대에 몸을 뉘었다. 그가 언제 돌아올지는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오늘 밤은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나는 눈을 감았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떴을 때 옆자리는 여전히 비어 있었다. 그가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자, 나는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이젠 아무렇지도 않았다.
나는 습관처럼 스마트폰을 들었다. 그리고 장예솔의 SNS를 확인했다.
새로운 사진들이 올라와 있었다. 한은태와 장예솔이 침대에 함께 누워 있는 사진. 장예솔이 한은태의 품에 안겨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리고 사진 아래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었다. '오빠, 우리 아기가 생겼대! 너무 행복해! 이제 우리 셋이서 행복하게 살자!'
나는 순간 숨이 턱 막혔다. 심장이 격렬하게 뛰었다. 가슴을 쥐어뜯는 통증이 시작됐다. 욱, 욱. 구역질이 올라왔다. 나는 침대에서 굴러 떨어졌다. 바닥에 쓰러진 채 숨을 헐떡였다. 폐가 찢어지는 듯한 고통이 온몸을 휘감았다.
아기가 생겼다고? 한은태와 장예솔 사이에?
내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눈앞이 흐릿해졌다. 나는 온몸에 힘이 풀려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심장이 칼로 도려내지는 것 같았다.
나는 겨우 숨을 고르며 생각했다. '그래, 어차피 난 곧 죽을 사람인데, 이게 무슨 상관이야.'
하지만 통증은 가라앉지 않았다. 몸과 마음이 산산조각 나는 기분이었다. 나는 이대로 죽어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죽음은 정해진 수순이었다. 더 이상 그들을 위해 이 고통을 견딜 이유가 없었다.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초췌하기 그지없었다. 핏기 없는 얼굴, 푸석한 머리카락, 움푹 들어간 눈. 나는 나를 이렇게 만든 그들을 용서할 수 없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착한 아내가 아니었다. 죽음을 앞둔 나는 더 이상 잃을 것이 없었다.
그때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한은태가 장예솔과 함께 들어왔다. 장예솔의 품에는 낯선 아이가 안겨 있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피어 있었다. 마치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가족처럼.
나는 현관에 서 있는 세 사람을 멍하니 바라봤다. 그들의 웃음소리가 내 귓속을 파고들었다. 내 집이, 내 공간이, 그들로 인해 더럽혀진 것 같았다. 나는 분노로 몸이 떨렸다.
나는 그들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내 손에는 따뜻했던 갈비찜이 담겼던 빈 접시가 들려 있었다.
"이게… 무슨 짓이에요?"
내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내면은 거대한 폭풍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그들은 나를 보며 잠시 멈칫했다. 경멸스러운 장예솔의 얼굴에는 경고와 승리의 미소가 교차했다.
나는 그 접시를 바닥에 내팽개쳤다. 듣기 싫은 파열음과 함께 접시는 산산조각이 났다. 그 소리는 내 마음을 찢어지게 하는 소리와 같았다.
"나가!" 나는 처음으로 그들에게 소리쳤다.
한은태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그는 그제야 내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낀 것 같았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그녀는 더 이상 착한 아내가 아니었다.
한은태는 혼란스럽고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장예솔의 얼굴에는 당황스러움과 함께 약간의 불쾌감이 스쳤다. 아이는 갑작스러운 소리에 놀라 장예솔의 품에 더 깊이 파고들었다.
"장청하, 지금 무슨 짓이야!" 한은태의 목소리에는 짜증이 묻어 있었다.
나는 그를 쳐다보지 않았다. 내 시선은 오직 장예솔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내 집에서 나가." 내 목소리는 낮고 차갑게 가라앉았다.
장예솔은 한은태의 팔짱을 끼며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오빠, 언니가 왜 저러지? 우리가 너무 행복해 보여서 질투하는 건가?"
그 애는 나를 자극하려는 의도가 역력했다. 나는 피식 웃었다. 질투? 이젠 그런 감정조차도 사치스러웠다.
"네가 말한 행복이 이런 거야? 남의 가정을 깨고, 위선적인 웃음을 짓는 게?" 나는 장예솔에게 다가섰다.
장예솔은 뒷걸음질 쳤다. 그 애의 눈에 순간 공포가 스쳤다. 나는 그 공포를 즐겼다.
"언니, 왜 이래? 오빠한테 말해서 병원에 가봐야 하는 거 아니야?" 장예솔은 한은태에게 기대며 말했다.
"병원? 그래, 병원에 갈 시간은 아직 남아있지. 하지만 너희 둘은 곧 지옥에 가게 될 거야."
내 말이 끝나자마자, 한은태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는 장예솔을 뒤로 밀어내며 내 앞을 가로막았다.
"장청하, 선 넘지 마. 지금 당장 사과해." 한은태는 나를 노려봤다.
나는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10년 동안 내가 그에게서 본 적 없는 차가운 시선이었다.
"내가 왜? 내 집에서, 나를 기만한 두 사람이 사라져야지."
나는 장예솔의 품에 안겨 있던 아이를 향해 손을 뻗었다. 아이는 겁에 질린 표정으로 장예솔의 치마 뒤로 숨었다.
"이 아이는 또 누구야? 네 자식? 한은태 자식?" 나는 비웃었다.
장예솔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한은태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장청하! 뭐 하는 짓이야!" 한은태가 소리쳤다.
나는 그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뭐 하긴? 내 것을 되찾으려는 거지. 그리고 너희가 저지른 죄의 대가를 치르게 할 거야."
내 말에 장예솔은 몸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한은태는 여전히 분노로 가득 찬 눈으로 나를 노려봤다.
"장청하, 이성을 잃었어. 제정신이 아니야!"
나는 씁쓸하게 웃었다. "그래, 제정신이 아니지. 너희 때문에 이렇게 됐어. 이제부터는 더 이상 참지 않아."
나는 손에 들린 빈 접시 조각을 내려다봤다. 그 접시처럼, 내 마음도 산산조각 나 있었다. 하지만 그 조각들을 다시 맞춰, 훨씬 더 날카로운 무기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고개를 들어 한은태를 다시 바라봤다. 내 눈에는 더 이상 슬픔이 없었다. 오직 차가운 분노만이 존재했다.
"선택해. 나갈 건지, 아니면… 내가 너희를 끌어낼 건지."
회차 2
내 말이 끝나자마자, 장예솔은 공포에 질린 얼굴로 한은태의 뒤로 숨었다. 나는 그들의 비겁함에 역겨움을 느꼈다. 내 심장은 아픔으로 가득 찼지만, 더 이상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한은태는 굳은 얼굴로 나를 노려봤다. 그의 눈에는 여전히 내가 '미쳐버린' 아내로 보일 뿐이었다. 그는 장예솔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나를 향해 낮게 으르렁거렸다.
"청하야, 진정해. 잠깐 방에 들어가서 쉬는 게 좋겠어."
나는 그를 비웃었다. 방? 내가 쉬어야 할 곳은 더 이상 여기였다. 나와 내 공간을 더럽힌 그들이 사라져야 할 곳이었다.
나는 억지로 감정을 다스렸다. 죽음을 앞둔 나는, 더 이상 이성을 잃고 싶지 않았다. 침착하게, 냉정하게, 그들에게 복수해야 했다.
"나가라고 했잖아. 내 말을 못 들었어?"
내 목소리는 아까보다 훨씬 차분했지만, 그 속에는 칼날 같은 차가움이 담겨 있었다. 한은태는 내 변한 모습에 당황한 것 같았다. 그는 잠시 멈춰 서서 나를 응시했다.
그 사이에 장예솔은 애처로운 눈빛으로 한은태를 올려다봤다. "오빠, 나 무서워. 언니가 예전 같지 않아…."
나는 그들의 역겨운 연극에 토기가 치밀어 올랐다. 나는 그들을 무시하고 식탁으로 향했다. 아까 차려놨던 음식들은 이제 완전히 식어버렸다. 어차피 그들이 먹을 음식은 아니었다.
나는 식탁 위에 놓인 접시들을 하나씩 집어 들었다. 그리곤 그대로 음식물 쓰레기통에 쏟아부었다. 쿵, 쿵, 쿵. 접시가 부딪히는 소리가 정적을 깼다.
"장청하! 지금 뭐 하는 짓이야!" 한은태가 소리쳤다. 그의 목소리에는 분노가 서려 있었다.
나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음식물 쓰레기 처리 중이야. 이 쓰레기들이 내가 차려놓은 소중한 상차림을 망쳤으니까."
내 말에 그의 얼굴은 더욱 굳어졌다. 이번에는 장예솔이 나섰다.
"언니, 왜 그래? 오빠가 얼마나 피곤했는데…." 장예솔은 내 팔을 잡으려 했다.
나는 그 애의 손을 매정하게 뿌리쳤다. "더러운 손으로 나를 만지지 마. 그리고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내 집에서 나가."
"오빠, 언니가… 언니가 나를 밀쳤어." 장예솔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한은태에게 매달렸다.
한은태는 내게 다가와 내 어깨를 잡았다. 그의 손아귀에는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장청하, 너 정말 왜 이래? 예전에는 안 그랬잖아!"
"예전의 나는 죽었어. 너희가 죽였어."
나는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내 눈에는 더 이상 순종적이고 사랑에 목매던 예전의 내가 없었다. 오직 냉기만이 감돌았다.
"너희가 아까 먹었던 음식, 다 내가 정성껏 준비한 것들이야. 그런데 너희는 날 기만하고 다른 년이랑 히히덕거렸지."
"장청하!" 한은태가 소리쳤다. 그의 얼굴은 분노로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이제 그만해." 나는 낮게 으르렁거렸다. "너희가 더럽힌 내 집에서, 당장 나가."
"여기가 왜 네 집이야? 우리 집이지!" 한은태는 뻔뻔하게 말했다.
나는 픽 웃었다. "우리 집? 네 명의 이름으로 된 등기부등본이라도 가져와 봐. 이 집은 내 명의로 되어 있어. 내가 산 집이야."
한은태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제야 그는 내가 하는 말이 거짓이 아님을 깨달은 것 같았다.
"무슨 소리야? 부부 공동명의잖아?" 그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물었다.
"부부 공동명의? 우리가 언제 정식 부부가 됐다고 그래? 너는 내 이름으로 된 혼인신고서도 제출하지 않았잖아. 법적으로 우리는 남남이야."
나는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그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장예솔 역시 충격받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 애의 입이 벌어졌다가 다물어졌다.
"거짓말 마! 부모님이 분명…."
"부모님이? 부모님께는 네가 유학에서 돌아온 장예솔과 도망치지 않고, 나랑 결혼해줬으면 하셨겠지. 그래서 네가 나랑 결혼하는 척 연극을 한 거고."
나는 비웃었다. "하지만 난 그 연극에 더 이상 참여하고 싶지 않아. 이제 모든 걸 끝낼 거야."
"장청하, 너 정말 미쳤구나." 한은태는 나를 경멸스러운 눈으로 바라봤다.
"미쳤다고? 그래, 미쳤지. 너희 때문에 미쳤어. 이제 정신 차린 거야."
나는 품속에서 서류 봉투를 꺼냈다. 그리고 그것을 한은태에게 내밀었다. "이혼 서류야. 깔끔하게 정리하고 끝내자. 더 이상 너희한테 내 시간 낭비하고 싶지 않아."
한은태는 서류 봉투를 받아 들었다. 그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는 서류 봉투를 열어 내용을 확인했다. 그의 얼굴은 더욱 창백해졌다.
"이게… 이게 다 뭐야…."
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서류에는 내가 가지고 있던 회사의 핵심 기술 특허권 명의가 모두 나에게로 되어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회사의 모든 자산이 나를 통해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도 함께 명시되어 있었다.
"내가 이 회사에 10년 동안 바친 것들이야. 이제 돌려받을 시간이지." 나는 차갑게 말했다.
"이게… 말도 안 돼! 이건 회장님이… 회장님이 너한테 모든 걸 넘긴 거야?" 한은태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
"네가 병신처럼 아무것도 모르고 술이나 퍼마시고 여자나 쫓아다닐 때, 회장님은 회사를 지키기 위해 나를 택하셨어. 네가 회사를 망가뜨리는 꼴을 차마 볼 수 없으셨던 거지."
내 말에 장예솔은 경악한 표정으로 한은태를 바라봤다. 한은태는 분노와 배신감으로 가득 찬 눈으로 나를 노려봤다.
"너… 너 감히 회장님을 팔아?"
나는 피식 웃었다. "내가 아니라, 네가 회장님을 실망시킨 거야. 네가 회사를 돌보지 않고 장예솔 따위나 쫓아다닐 때, 나는 회사를 지키기 위해 밤낮없이 일했어."
내 말에 한은태는 할 말을 잃은 듯 입을 꾹 다물었다. 그의 얼굴은 분노와 수치심으로 일그러졌다.
"그러니 이제 선택해. 깔끔하게 이혼하고 여기서 떠날 건지. 아니면… 모든 것을 잃고 내 손에 끌려 나갈 건지."
나는 장예솔에게도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너. 네가 한은태를 빼앗았다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나는 너 같은 쓰레기와 더러운 놈팽이에게 미련 없어. 그러니 네가 가질 수 있는 건, 이 껍데기뿐이야."
장예솔의 얼굴은 완전히 질려 있었다. 그 애는 불안한 시선으로 한은태를 바라봤다. 그는 여전히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 멍한 표정이었다.
"오빠…." 장예솔이 겨우 입을 열었다.
"아직도 오빠 소리가 나와? 네가 이곳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부터, 너는 내 남편을 유혹한 간통죄로 고소당할 거야." 나는 차갑게 덧붙였다.
장예솔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애는 몸을 부들부들 떨며 한은태의 뒤로 완전히 숨어버렸다.
나는 그들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내 발걸음 소리가 정적을 깼다. 그들은 공포에 질린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선택은 너희 몫이야. 하지만 내 인내심은 여기까지야."
나는 마지막으로 그들을 노려봤다. 내 심장은 여전히 아팠지만, 이제 더 이상 약한 여자가 아니었다. 나는 그들을 끌어낼 준비가 되어 있었다.
"나가. 당장."
회차 3
내 마지막 경고에 장예솔은 겁에 질려 한은태의 팔을 더 세게 붙잡았다. 한은태는 여전히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멍한 표정이었다. 그들의 눈에는 나라는 존재가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보일 터였다. 예전의 나는 그저 그를 사랑하고 모든 것을 바치던 어리석은 여자였으니까.
나는 그들을 향해 한 발짝 더 다가갔다. 그들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특히 장예솔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그들의 거짓된 감정에 흔들리지 않았다.
"오빠… 나 무서워…." 장예솔이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한은태는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장예솔을 노려보았다. 그의 눈빛은 이미 분노와 혼란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자신의 상황을 이해하려는 듯, 내 얼굴과 손에 들린 서류를 번갈아 봤다.
"장청하, 너 정말 나한테 이러는 거야? 우리가 함께 만든 회사잖아!" 한은태가 겨우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믿을 수 없다는 비난이 담겨 있었다.
나는 픽 웃었다. "함께 만들었다고? 네가 술 마시고 계집질하는 동안, 나는 밤낮없이 기술 개발하고 특허를 냈어. 네가 회사를 망가뜨릴까 봐 회장님이 나 아니면 안 된다고 하셨지. 감히 네가 '함께 만들었다'는 말을 입에 담을 자격이나 있어?"
내 말은 그의 가슴을 꿰뚫는 칼날 같았을 것이다. 그의 얼굴은 순식간에 잿빛으로 변했다. 그는 주먹을 꽉 쥐었다.
"닥쳐! 감히 네가! 내가 네게 베풀어준 은혜를 잊은 거야?"
"은혜? 네가 나한테 베풀어준 은혜? 네가 나를 거둬준 건 너희 할아버지 덕분이었지, 네 덕분이 아니야. 그리고 그 은혜는 지난 10년간 내가 너희 회사를 위해 바친 내 청춘과 건강으로 이미 다 갚고도 남았어."
나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눌렀다. 내 몸속에서 다시 통증이 시작되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나는 이대로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제 그만해. 더 이상 추해지지 마. 내가 깔끔하게 끝내줄 때, 조용히 사라져." 나는 다시 한번 이혼 서류를 흔들었다.
한은태는 분노에 찬 눈으로 서류를 빼앗아 찢어버리려 했다. 그러나 나는 한 발짝 물러서며 여유롭게 말했다.
"그 서류는 사본일 뿐이야. 원본은 내 변호사에게 있어. 네가 찢든 말든 아무 상관없어."
그의 손이 공중에서 멈칫했다. 그는 나를 노려보며 이를 갈았다.
"이런 식으로 나올 줄이야… 장청하, 너 정말 끝까지 나를 실망시키는구나."
나는 그의 말에 웃음이 나왔다. 실망? 그가 나에게 했던 짓을 생각하면, 실망이라는 단어는 그에게 어울리는 말이었다.
"내가 실망시킨 게 아니라, 네가 나를 버린 거야. 장예솔 따위한테 홀려서." 나는 의도적으로 장예솔을 쳐다봤다.
장예솔은 내 시선에 움츠러들며 한은태 뒤로 더 깊이 숨었다. 그 애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고, 가녀린 몸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완벽한 피해자 코스프레였다.
"오빠… 언니가 너무 무서워…." 장예솔이 흐느꼈다.
한은태는 장예솔을 감싸 안으며 나를 향해 말했다. "장청하, 이 애는 아무 잘못 없어. 모든 건 나 때문이야. 그러니 이 애는 건드리지 마."
나는 그들의 역겨운 연극에 구역질이 났다. "아무 잘못 없다고? 네가 이 애가 어떤 짓을 했는지 알면, 그런 말 못 할걸?"
나는 순간적으로 복통이 다시 시작되는 것을 느꼈다. 숨이 가빠왔다. 하지만 나는 내색하지 않았다. 이대로 무너질 수는 없었다.
"장청하, 더 이상 이러지 마. 제발…." 한은태는 애원하듯 말했다. 하지만 그의 눈빛에는 여전히 나를 향한 경멸이 담겨 있었다.
나는 그의 간청 따위에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제발? 네가 내게 '제발'이라고 말할 자격은 없어. 너희 둘 다 내 눈앞에서 사라져. 다시는 나타나지 마."
내 말은 마지막 통보였다. 한은태는 다시 한번 나를 노려봤다. 그의 눈에는 증오가 번뜩였다. 그는 장예솔의 손을 잡고 돌아서려 했다.
그 순간, 나는 마지막으로 그를 붙잡았다. 내 몸이 순식간에 차가워졌다.
"한은태." 내 목소리는 떨렸다. "정말… 이렇게 끝낼 거야?"
나는 그의 얼굴을 바라봤다. 10년이라는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내가 그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그를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었는지를 떠올렸다. 하지만 그의 눈에는 더 이상 나를 향한 어떤 감정도 담겨 있지 않았다. 오직 짜증과 분노만이 가득했다.
그는 내 손을 거칠게 뿌리쳤다. "네가 원하는 게 이거잖아! 이제 와서 무슨 후회라도 하는 거야?"
그의 말은 내 가슴에 비수처럼 꽂혔다. 나는 순간 휘청거렸다. 그의 냉정한 태도에 내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나는 이제야 깨달았다. 그는 정말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 단 한 번도 사랑한 적 없었다.
내 몸이 차가워지는 것을 느꼈다. 심장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나를 죽음으로 몰고 가는 것 같았다.
나는 그에게 마지막 한마디를 건넸다. "그래… 잘 가. 너희 둘, 꼭 행복해야 할 거야."
내 목소리에는 비웃음이 섞여 있었다. 그는 내 말을 듣고 잠시 멈칫했다. 하지만 곧바로 장예솔의 손을 잡고 현관문을 박차고 나갔다. 쾅! 문 닫히는 소리가 온 집안을 흔들었다.
나는 그 자리에 서서 문이 닫히는 소리를 들었다. 내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하지만 그 눈물은 슬픔 때문이 아니었다. 지난 10년간의 어리석은 나 자신에 대한 연민과, 그들에 대한 분노 때문이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울지 않을 것이다. 그들을 위해 흘릴 눈물은 단 한 방울도 남아 있지 않았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내 눈빛은 단단하게 굳어졌다. 이제부터는 나를 위한 삶을 살 것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내가 누구였는지, 그리고 그들이 무엇을 잃었는지 똑똑히 보여줄 것이다.
내 심장의 통증은 여전했다. 하지만 이제 그 통증은 나를 멈추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나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내 손에 들린 이혼 서류 사본은 이제 내게 무기가 되었다.
나는 내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앉았다. 그리고 스마트폰을 들었다. 이제 내게 남은 시간은 많지 않았다. 짧은 시간 안에 나는 모든 것을 정리해야 했다. 그들에게 빼앗긴 내 삶, 내 가치, 내 시간. 모든 것을 되찾아야 했다.
나는 가장 먼저 내 변호사에게 연락했다.
"지금 당장 이혼 소송을 진행해주세요. 그리고 한은태 대표와 회사 간의 모든 계약 관계를 철회하고, 제가 개발한 모든 핵심 기술 특허권에 대한 권리를 행사해주세요." 내 목소리는 단호했다.
변호사는 잠시 놀란 듯했지만, 곧바로 내 지시를 따랐다.
나는 다음으로 한 씨 가문의 회장님께 연락했다. 회장님은 내게 아버지 같은 분이셨다. 그분께는 차마 내가 불치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릴 수 없었다.
"청하야, 무슨 일 있니? 한은태 그 녀석이 또 무슨 실수를 한 건 아니지?" 회장님의 목소리에는 걱정이 묻어 있었다.
"회장님… 죄송합니다. 제가… 한은태 씨와 이혼하려고 합니다."
내 말에 회장님은 한참 동안 말이 없으셨다. 그리고 이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그럴 줄 알았다. 네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알면서도, 내가 너무 방관했구나. 미안하다, 청하야."
회장님의 사과에 나는 울컥했지만, 애써 눈물을 참았다. "아닙니다, 회장님. 제가 너무 어리석었습니다. 이제라도 제 자신을 찾으려 합니다."
"그래, 잘 생각했다. 네 뜻대로 해라. 내가 뒤를 봐줄 테니, 아무 걱정 말고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회장님의 말에 나는 잠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울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나는 이제 약한 장청하가 아니었다.
전화를 끊고, 나는 창밖을 바라봤다. 어둠이 내린 도시는 차갑고 쓸쓸했다. 하지만 내 마음속에는 새로운 빛이 떠오르고 있었다.
나는 남은 시간 동안 무엇을 할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나를 위한 마지막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나는 한 가지 결심했다. 나처럼 어려운 환경에서 꿈을 키우는 여성 IT 인재들을 위한 재단을 설립할 것이다. 내가 가진 기술과 재능, 그리고 남은 재산을 모두 그곳에 바칠 것이다. 그것이 내 삶의 마지막 의미가 될 것이다.
나는 컴퓨터를 켰다. 재단 설립 계획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내 손가락은 키보드 위를 빠르게 움직였다. 이 순간만큼은 내 몸의 통증도, 마음의 상처도 느껴지지 않았다. 오직 새로운 삶을 위한 열정만이 가득했다.
그들이 나를 버렸듯이, 나 또한 그들을 버릴 것이다. 그리고 나 자신만의 빛을 찾을 것이다. 이 병든 몸으로도, 나는 여전히 살아야 할 이유를 찾았다.
"한은태, 장예솔… 너희는 나를 파멸시켰지만, 나는 너희 때문에 다시 태어날 거야."
나는 비장한 각오로 키보드를 두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