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3
륜의(轮椅,휠체어)가 거울처럼 매끄러운 바닥 위를 천천히 가로질렀고 강운혁은 그림자 속에서 비로소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얼굴이 촛불 아래에 드러나자, 주변의 휘황찬란한 빛마저 빛을 잃었다.
륜의에 앉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타고난 고귀한 기품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그의 얼굴은 요염할 정도로 아름다웠고, 깊게 패인 이목구비와 뚜렷한 윤곽은 마치 극지의 얼음으로 정교하게 조각한 듯 차갑고 완벽했다.
가장 시선을 사로잡게 하는 것은 봉황의 눈을 닮은 그의 눈매였다. 눈꼬리는 살짝 위로 치켜 올라갔고, 눈동자는 짙은 먹색으로 최상급 흑요석보다 더 깊고 그윽했으며 시선은 차갑고 냉정하여 마치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소지영은 고개를 들어 그의 깊이를 알 수 없는 두눈을 마주했고, 만감이 교차했다.
'누가 이런 영웅이 얼마 지나지 않아 죽음을 맞이할 것이라고 예상이나 할까?'
반년 후 북부 야만족이 다시 침략했을 때, 강운혁은 병든 몸을 이끌고 다시 갑옷을 입고 직접 삼천 철기병을 이끌고 적의 후방을 기습하여 승리의 기반을 다졌다.
그러나 그는 오래된 부상이 재발하여 스물여덟 살의 나이로 전장에서 피를 뿌리며 죽음을 맞이했다.
당시, 그녀도 철기병 중 일원이었다. 그의 단호하고 비장한 모습을 직접 목격하며 깊은 충격을 받았다.
소지영은 이번 생에서는 강운혁의 목숨을 구하기로 결정했고 뿐만 아니라 그의 다리까지 고쳐 주어 이 나라의 기둥인 그가 너무 일찍 쓰러지지 않도록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녀는 깊이 숨을 들이쉬며 요동치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대전 전체에 들릴 정도로 단호하게 입을 열었다.
"신녀는 전하를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그 해 영추곡,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전하는 적장을 베어 사기를 높이셨지요. 전하가 아니었다면 이 주나라는 북쪽 만족들에게 침략을 당해 백성들이 도탄에 빠졌을 겁니다. 전하, 전하의 공적은 필시 역사에 길이 빛날 겁니다."
그녀의 눈빛은 불꽃 같았고, 사뭇 진지한 얼굴로 계속해서 입을 열었다.
"전하께서는 비록 다리를 다치셨지만 굳센 기개와 드높은 위엄은 여전하시니 범부(凡夫)들은 차마 전하를 쳐다 보지도 못할 겁니다. 폐하께서 혼인을 하사해 주시어 전하를 곁에서 모실 수만 있다면 그건 신녀가 모든 걸 다 바쳐 바라는 바입니다."
그녀의 우렁찬 말 한마디 한마디가 대전에 울려 퍼졌고 사람들은 숨을 죽이고 그녀를 바라봤다.
강운혁은 말없이 그녀를 깊이 바라봤다. 그녀의 말 속에 진심이 담겨 있는지 알아내려는 듯했다.
"그래! 네 말이 맞다!"
경제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대전의 침묵을 깨뜨렸다. 그는 박장대소하며 소지영을 바라보는 눈빛에는 감탄이 가득했다.
"공적이 필시 역사에 길이 빛난다라. 말 잘 했다! 탁월한 견식과 큰 뜻을 가진 아이로구나!"
그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즉시 입을 열었다.
"어명을 내리겠다. 소씨 가문의 적녀 소지영은 현명하고 도리를 알며, 남다른 혜안을 지녔다! 특별히 예왕 강운혁의 정비로 혼인을 하사하겠노라! 또한, 소지영에게는 금와 보석으로 된 머리 장신구, 남해야명주 일곡, 강남비단 열 필, 황금 천 냥을 상으로 내릴테니 혼수로 삼도록 하라."
"신녀, 폐하의 성은에 감사 드리옵니다!"
소지영은 깊이 절하며 단아한 자세를 유지했다.
소지영이 황제의 찬사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후한 상까지 받는 것을 지켜보는 소하영의 눈은 질투로 번뜩였다.
소하영은 오늘 경성에서 이름을 떨치기 위해 온갖 계략을 다 꾸몄지만 정작 사람들의 이목은 전부 빌어먹을 소지영에게 집중되었다.
서정진의 또한 표정 어두웠고 가슴 속에서는 말 못할 초조함과 상실감으로 뒤섞였다.
그는 소지영의 옆모습을 뚫어져라 응시하며, 그녀의 얼굴에서 불만이나 내키지 않는 표정을 찾아내려 했지만, 눈에 보이는 건 오직 평온하고 담담한 모습뿐이었다.
궁중 연회는 미묘한 분위기 속에서 막을 내렸고, 소지영은 인파를 따라 궁문을 나섰다. 늦가을 밤바람이 싸늘하게 얼굴을 스치며 그녀의 가슴속 답답함을 씻어냈다.
소씨 가문의 마차로 향하던 그녀가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멀지 않은 곳에 검은색 마차가 고요히 멈춰 서 있었는데, 마치 숨어 있는 그림자 같았다.
마차 창문은 반쯤 열려 있었고, 검은 그림자가 어렴풋이 보였다.
강운혁이었다.
'날 기다리고 있는 건가?'
소지영은 잠시 생각하더니 곧 몸을 돌려 마차로 향했고 마차와 몇 걸음 떨어진 곳에 멈춰 서서 우아하게 예를 올렸다.
"소녀, 전하를 뵙습니다."
강운혁은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밤이 되자 봉황 같은 두 눈은 더욱 깊이를 알 수 없었고, 옥처럼 조각된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이 없었다.
"소지영, 폐하 앞에서 한 말이 얼마나 진심인지, 본 왕은 깊이 따지지 않겠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후회하는 마음이 든다면, 본 왕이 부황께 말씀 드려 명을 거두도록 할 수도 있다."
소지영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밝고 아름다운 미소를 지은 채 두 걸음 앞으로 다가가 상대방의 숨결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 다가가더니 몸을 숙이고, 거의 유혹하는 듯한 어조로 나지막이 되물었다.
"전하께서는 신녀의 결심을 의심하시는 겁니까, 아니면… 전하 본인의 매력에 대한 확신이 부족하신 겁니까?"
밤바람이 스쳐 지나가며 그녀의 머리카락 몇 가닥을 흩날렸고, 강운혁의 귀를 간질였다.
강운혁의 몸이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로 살짝 굳어졌다. 이내, 그는 휙 고개를 돌리며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소지영은 그의 귀 끝에 번지는 홍조를 포착했고, 눈가의 웃음은 더욱 짙어졌다.
"너는 참… 말재주가 좋군."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차가웠지만, 은근한 불쾌감이 배어 있었다.
소지영은 빙긋 웃으며 태연하게 받아넘겼다.
"과찬이십니다. 전하."
강운혁은 잠시 침묵하더니, 그녀의 뻔뻔함에 할 말을 잃은 듯 이내 허리춤에 찬 옥패를 풀었다.
그는 그녀를 보지 않고 그저 창문 밖으로 무심히 손을 내밀었다.
"받거라."
소지영은 다소 놀랐지만 이내 두 손으로 받았다.
옥패를 만지자 온기가 느껴졌고, 색깔은 먹처럼 차분했으며, 그 위에는 복잡한 기룡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딱 봐도 예사 물건이 아니었다.
"어려운 일이 생기면 옥패를 들고 왕부에 찾아 오거라."
강운혁의 어조는 여전히 담담했지만, 소지영은 기분이 좋았다.
이 옥패는 강운혁의 인정과도 같았으니 말이다.
소지영은 손가락 끝으로 옥패에 새겨진 문양을 가볍게 문지르며 고개를 들어 눈을 반짝이며 그를 바라봤다.
"전하, 이것은 혹시 정표입니까?"